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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11.16 박범신 <당신>
  2. 2008.12.21 달동네 책거리 15 : <엄마를 부탁해> 2
읽고 끄적 끄적...2015. 11. 16. 08:24

읽는 동안 몸을 아프게 하는 이야기가 있다.

박범신의 <은교>와 <소금>이 그랬고

김현의 <남한산성>과 <내 젊은 날의 숲>이 그랬다.

입 안이 헐기 시작한건,

이 책을 읽기 시작하고 정확히 하룻밤이 지난 금요일 아침부터였다.

사실 그때까지 이 이야기를 어떻게 읽을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었다.

서둘러 읽어낼지 아니면 한 장 한 장 시간을 들여 읽어나갈지를...

그 사이 입안은 점점 더 심해졌고

지금은 물을 삼키는게 힘들 정도로 헐어있고 부어있다.

손가락으로 왼쪽 볼을 누르면 찌르는 통증이 깊게 파고든다.

아마도 앞으로 며칠은 더 견뎌내야 할 듯 싶다.

염증약과 진통제를 삼키며 나는 이 이야기 속의 "당신"을 생각했다.

주호백의 유일한 당신인 윤희옥을,

윤희옥의 당신이었던 김가인과 윤희옥의 당신이 된 주호백을,

김가인의 당신이었을 윤희옥을.

그리고 그들의 부식되지 않은 기억들을...

이야기 속에서 박범신은 말한다.

기억은 지속된다고.

심지어 어떤 기억은 스스로 번식하고 확장한다고.

 

 

 

원(願)이 깊어지면 원(怨)이 된다

한 번 원(怨)을 원(願)으로 믿게되면 삶의 방향은 엉망이 될 수밖에 없다..

일흔넷의 나이에 희옥은 비로소 주호백이라는 "당신"을 "공평"하게 사랑하기 시작했다지만

그건 희(喜)인지 비(悲)인지 나느 모르겠다.

 가끔 두렵다.

생명력 짱짱한 "기억"이 미래의 나를 갉아먹으면 어쩌될까 싶어서..

그렇게 미래의 기억은 다 지워지고

과거의 기억에만 붙들려 있다가 급기야 나를 놓아버리게 되는건 아닐지.

내겐 주호백처럼 매화 나무 아래 사체를 유기해 줄 "당신"도 없는데...

 

지금 내 몸이 아픈 이유는

주호백의 마지막을 거둔 윤희옥의 "공평"이,

그 "공평"의 마디마디가 전부 이해되서다.

홍매 나무 아래 놓여진 의자에 앉아있는 여인.

촛점이 멈춰진 눈.

파킨슨병으로 제 멋대로 흔들리는 손과 발.

그리고 점점 꺼져가는 기억.

그 여인이 나의 과거고 현재고 미래같다.

 

공평하다는건,

얼마나 불공평한 말인가...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8. 12. 21. 10:55

  <엄마를 부탁해> -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그녀가 낸 작품들은 모조리 읽었습니다.

하다못해 산문집까지도...

제게 있어 신경숙은 질투의 대상이이기도 했고, 동경의 대상이기도 했고, 그리고 실망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그녀만의 독특한 감성과 글쓰기에 얼추 젖어버렸다고 할까요?

하지만 분명한 건 지금의 제 느낌들이 작가로서의 그녀에 대한 종착역은 결단코 아닐 거라는 사실입니다.


이 사람...

평범한 일상을 너무 아프게 써 어느 날은 혼자 화가 났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면은... 나를 들여다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뜨끔한 자괴함과 부끄러운 속내를 들킴에 대한 막무가내의 억지였던 건 같네요.

“풍금이 있던 자리”

가령 그녀의 글쓰기는 그렇습니다.

풍금이 있는 자리가 아니라 풍금이 있던 자리인 거죠.

화자가 바로 <나>여야 하는 이야기를 그녀는 <당신>으로 바꿔놓습니다.

그녀의 모태 신앙 같은 도시 정읍, 그리고 차마 분명한 이름조차 갖지 못한 체 등장하는 이니셜의 인물들...

게다가 대화조차도 문장부호 없이 그대로 써버리는 당혹감...

<리진>이라는 소설을 통해서 잠깐 다른 방식의 글쓰기를 시도했던 그녀가 다시 초기작으로 돌아왔네요.

지극히 “신경숙다운” 소설과 함께요...


철들기 시작한 딸들 중 “엄마”라는 이름에 가슴 아프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이 책은 모태로부터 시작된 자식들의 원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총 5장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엄마를 잃어버린지 일주일째다”.....

지독한 두통과 점점 잃어가는 기억들, 수시로 찾아오는 통증을 숨기고 노부부는 자식이 있는 서울로 올라옵니다.

예전의 우리네 아버지들의 발걸음.

아내와 같은 속도로 함께 나란히 걸어가는 게 마치 무슨 대단한 흉이라는 되는 냥 성큼성큼 앞서 갑니다.

자식들의 마중을 마다하고 지하철을 탄 남편의 등골이 순간 오싹합니다.

글조차 읽지 못하는 그 아내가 열차를 타지 못했던 거죠.

성급히 남편은 남영역에서 되집어 전철을 타고 서울역으로 향합니다.

그러나 아내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렇게 4명의 다 큰 자식들은 속수무책으로 어미를 잃습니다.

 

각각의 장은 큰딸, 맏아들,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다시 큰딸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큰딸의 이야기는 “너(2인칭)”의 시점으로, 맏아들의 이야기는 “그(3인칭)”의 시점으로, 아버지의 이야기는 “당신(2인칭)”의 시점으로, 그리고 어머니의 이야기는 “나(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엄마를 찾는 전단지를 만들기 위해 모인 가족들은 서로에게 긁힌 상처를 드러내며 새로운 상처를 만듭니다.

그들에게 던져진 화두 두 가지!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나?”

“엄마가 홀로 남겨지고 있을 때 나는 무엇을 했는가?”

이제 그들은 전단지를 보고 연락한 내용을 따라 엄마를 찾아 헤맵니다.

그들이 찾아간 곳은 예전에 그들의 첫 직장이 있었던 곳이고, 본인 명의의 첫 집을 장만했던 곳 등, 모두 그네들의 흔적이 스친 곳이기도 합니다.

엄마는 정말 그 곳을 다녀갔던 걸까요?

파란 슬리퍼에 뼈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상한 발을 끌고...


우리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엄마에겐 사연이 없다고... 엄만 그냥 처음부터 엄마일 뿐이라고...

어쩌면 이해할 마음조차도 미처 갖지 못할 만큼 자식으로서의 이기심이 너무 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엄마에게도 돌아가 편히 쉬고 싶은 집이 있었을 테고, 그리고 그 엄마에게도 무릎을 베고 누우면 다독여 줄 엄마가 일평생 필요했을 거라는 걸, 우리는 정말 알고 있었을까요???

그런 엄마가 어느 날, 우리들에게 말합니다.

“나는 이제 갈란다... 잘 있으시오”


엄마를 잃어버린 지, 9개월째...

작가인 큰딸은 이탈리아 성 베드로 성당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녀는 그 곳에서 여동생의 편지를 떠올리며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 앞에 섭니다.

“....... 엄마는 엄마가 할 수 없는 일까지도 다 해내며 살았던 것 같아. 그러느라 엄마는 텅텅 비어갔던 거야. 나는 엄마처럼 못 사는데 엄마라고 그렇게 살고 싶었을까?......”
감히 누가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까요?

“엄마니까....엄마란 다 그런 존재니까....”

저는 죽어도 이렇게 말 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소리조차 죽이며 흐느꼈던 내 어미의 아픈 통곡과 내 손을 붙잡고 놓지 않던 내 어미의 거친 손이 지금 저를 여기에 있게 했으니까요...

결국,

이 책은 또 제 이야기이기도 한 셈이네요.


피에타 상...

죽은 예수를 품에 안고 고통과 절망의 순간을 이겨내고 있는 성모 마리아.

어미의 무릎, 제 2의 모태 속에서 아들은 드디어 평온을 맞이합니다.

어미의 손길이 스치기만 하면 이제 모든 고통과 절망은 사라져 흔적도 없어질 테죠.

비로소 모든 잃은 생명 또한 비옥해져 싹이 틀 것이며 자라나 열매를 맺게 될 겁니다.

내 어머니...

어미의 생명은 그렇게 나에게로 옮겨옵니다.....

아무래도 저는 이제 제 자신에게도 말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

“엄마를 부탁해...” 라고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