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6. 2. 2. 08:33

 

 

<달빛 안갯길>

 

일시 : 2016.01.23. ~ 2016.02.06.

장소 :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

극작 : 신은수

연출 : 신동인

출연 : 남명렬, 조연호, 김왕근, 임형택, 정원조, 김유리, 류헤린, 박별

주최 : 극단 한양레퍼토리 

 

연극 <달빛 안갯길>에는 신화와 현실의 세계가 공존한다.

의상대사와 선화공주의 설화는 그대로 부석사 창건으로 이어진다.

부석사 앞마당에 묻혀있다는 석룡(石龍)

어릴때 들었던 그 신화 속 이야기가 환한 달빛 속에 안개처럼 스며든다.

실제로 조선의 역사를 왜곡하고 날조하려는 일본은 노력은 조급했고

그 조급함을 감추기라도 하듯 뒤따르는 행동은 잔인하고 가차없었다.

 

이 작품을 보면서 "왜곡"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했다.

"역사"라는 거대한 담론을 떠나서

지금도 매일 매일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개인적인 왜곡들.

SNS에 올려지는 글과 시진 중 꾸미지 않고 맨얼굴을 그대로를 드러내는 것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왜곡은 망상을 낳고,

망상은 다른 세계를 창조한다.

인간이... 그런 존재다.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자꾸 믿어라... 믿어라... 세뇌하면 어느새 정말 믿게 된다.

그게 지배자들이 피지배자에게 자행하는 "문화정책"의 민낮이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역사가 "달빛"인지 아니면 "안갯길"인지.

 

아차하면 전래동화나 환상동화로 전락할 수 있는 작품인데 그 경계를 비교적 잘 지켜냈다.

아무래도 연기 잘하는 중견 배우들이 든든하게 받쳐주니

젊은 배우들도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개인적으로 배우의 실제 나이와 연기하는 역할 사이의 나이 차이가 너무 많으면

좀 불편해지면서 몰입이 안되는데 이 작품은 그 점에서는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배우 덕분에 작품이 더 살아났다고나 할까!

흔적을 남긴다는 말.

그 말이 주는 깊이와 넓이가 참 막중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역사도, 연기도 모두 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5. 1. 7. 08:43

 

<바냐와 소냐와 마샤와 스파이크>

 

일시 : 2014.12.05. ~ 2015.04.04.

장소 :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

극작 : 크리스토퍼 듀랑

연출 : 오경택

출연 : 김태훈, 서현철 (바냐) / 황정민 (소냐), 서이숙 (마샤)

        김찬호 (스파이크), 김보정 (니나), 임문희 (카산드라)

제작 : (주)연극열전

 

이미 종료된 연극이 좀 민망하지만 최대한 간략한 느낌만 적어보자.

솔직히 말하면 작품에 대한 기대보다 배우에 대한 기대감으로 예매했던 작품이다.

김태훈, 황정미, 서이숙, 그리고 김찬호.

게다가 아주 오랫만에 무대에서 보게될 임문희도 반가웠다.

출연 배우들의 바로 전작들도 다 좋았고 연기력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배우들이라 뭐가 됐든 후회는 안할게 분명하니까...

제목도 요상한 <바냐와 소냐와 마샤와 스파이크>는

그러니까 안톤체흡에 대한 오마주이자 헌정작이라 하겠다.

등장인물들 이름도 모두 체흡의 작품 속 인물들 이름 그대로다.

극 중간중간에 체흡의 4대 장막극 <갈매기>, <바냐 아저씨>, <세자매>, <벚꽃동산>의 장면들과 대사들이 튀어나온다.

그래서 안톤체흡에 익숙한 사람들은 숨은 그림찾는 재미가 꽤 쏠쏠했을것 같다.

개인적으로 <세자매> 빼고는 다 봐서 그런 패러디들이 아주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유쾌, 상쾌한 작품이긴 하더라.

그러면서 아주 노골적을 솔직해서 때로는 통쾌하기도 했다.

스파이크는 역할 자체가 발연기하는 설정이라 과장된 몸짓과 표정이 아주 재미있었고

반대로 카산드라는 연기가 너무 과해서 눈에 살짝 거슬렸다.

그래도 어쨌든 세 시간 정도의 런닝타임이 그다지 지루하지 않았다.

 

관람하고 나오는데 상반되는 두 가지 생각이 들더라.

하나는 이 배우들이 아니었다면 이 작품... 참 밋밋했겠다는 거였고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배우들이 최상의 캐릭터는 분명 아니라는거다.

개인적으론 마샤는 얼마전 <미스 프랑스>를 했던 김선경이 딱이었을것 같고

바냐도 조금 더 코믹하고 덜 지적인 느낌의 배우였다면 좋았겠다.

(서현철 바냐는 못봤지만 적역이지 않았을까 싶다,)

카산드라는 <데스트랩> 한세라가 했어도 좋았을것 같고...

그래도 오랫만에 안톤체흡의 추억에 잠길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안톤 체흡은...

참 어렵고도 재미있는 사람이다.

아마도 안톤 체흡은 연극게의 영원한 노스탤지어로 남을 것 같다.

지구가 멸망할때까지 ^^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4. 7. 17. 07:36

<IVANOV>

일시 : 2014.07.10. ~ 2014.07.20.

장소 :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

극본 : 안톤 체흡

번역, 연출 : 강태식

출연 : 남성진(이바노프), 권성덕 (샤벨스키), 장보규(레베제프)

        이주실(아브도찌야), 전국향(지나이다), 손종학(보르낀)

        배해선 (바바끼나), 김태한(리보프). 김홍택(꼬스이)

        서숙영, 문지영(안나) / 박그리나, 김수현(쌰사) 외

제작 : 극단 체 

 

안톤 체흡 서거 110주년 기념 헌정 공연 <이바노프>

예상대로 안톤 체흡의 작품은 어럽다.

그리고 아주 적나라하고 솔직하다.

너무 솔직하다보니 때론 몰염치의 끝을 보는 느낌이다.

무기력한 치열함으로 따지자면 정말이지 안톤 체흡을 따라올 작가는 없다.

"난 더 이상 산다는 것이 지친다..."

잉여인간의 고백은 그의 최종 선택만큼이나 처절하고 무책임했다.

그래서 나는 그가 가엾지도 안스럽지도 않다.

폐경기 여성의 막을 길 없는 벽덕을 떠오르게 해 오히려 화가 났다.

 

이 작품.

그 당시 러시아의 시대 상황을 안다면 도움은 되겠지만

이해하는데 난해하거나 힘들지는 않았다.

<햄릿>이후 5년만에 연극 무대에 복귀한 남성진의 연기는 예상보다 훨씬 좋았고

(솔직히 손발 오그라드는 연기를 보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너무 잘하더라)

권성덕, 장보규, 이주실, 손종학 등 중견 연기자의 탄탄한 연기는 빛을 발했다.

그리고 이들의 발성 자체는 확실히 다르더라.

매형과 한 무대에 선 김태한도 참 잘했다.

안나 서숙영과 싸사 박그리나가 오점을 남기긴 했지만 나머지 배우들의 연기는 정말 좋았다.

두 여배우의 발성은 솔직히 심각한 수준이었다.

특히 박그리나 쌰사는 더.

(너무 듣기가 싫어서 고성에서는 귀를 막기까지 했다.)

개인적으로 이바노프 역의 남성진은

앞으로도 계속 연극 무대에서 볼 수 있다면 좋겠다.

 

배우들 연기 외에 암울한 조명도 참 좋았고

특히 음악과 음향효과의 섬세함에 많이 놀랐다.

무대셋트는 살짝 빈약했지만 깊이감 있게 사용한 건 인상적이었고

음악과 음향이 작품의 흐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더라.

 

평이 살짝 안 좋아 걱정했는데

개인적으론 나쁘지 않았다.

솔직히 안톤 체흡의 작품을 이해한다는 건

배우에게도, 관객에게도 일종의 로망이다.

햄릿보다 더 찌질하고 무책임한 이바노프의 선택.

그건 도피였을까? 탈출이었을까?

나는 그걸 "완성"이라고 말하고 싶다.

때론 죽음으로 완성되는 삶도 있다.

 

그걸 비난한 자격... 

적어도 내겐 없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3. 12. 16. 09:05

<환상동화>

일시 : 2013.12.06. ~ 2013.12.15.

장소 :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

대본, 연출 : 김동연

작곡 : 이재원 

안무 : 송희진

출연 : 오용, 송재룡 (예술광대) / 최요한, 이현철, 이원 (사랑광대)

        이갑선, 최대훈, 홍승진 (전쟁광대) / 양잉꼬, 김채원 (마리)

        김호진, 이현배, 신성민 (한스)

제작 : 시인과 무사, (주)이다엔터테인먼트

 

<환상동화>가 벌써 10주년이 됐단다.

개인적으론 매번 공연될때마다 묘하게 관람이 어긋났던 작품 중 하나!

그래서 이번엔 아예 작정을 하고 예매를 일찍 예매를 했다.

10주년 기념 공연이라는 타이틀에 혹하기도 했지만

오용과 이갑선 배우를 한 무대에서 볼 수 있다는 매리트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연극 <환상동화>는

이야기 자체도 아주 독특하지만 그걸 표현하는 방식이 더 독특하고 신선하다.

지금이야 다양한 장르의 융합이라는 게 별 특별한 것도 아니지만

이걸 10년 전에 시도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전쟁, 사랑, 예술을 의미하는 스토리텔러 광대들.

세 명의 광대에 의해 시작되는 이야기 속의 이야기, 이야기 속의 이야기 그리고 또 이야기...

이야기의 가장 안쪽엔 한스와 마리가 있다.

전쟁 중에 청력을 잃어버린 피아니스트 한스와

시력을 잃어버린 무용수 마리.

세상이라는 건 그렇다.

단 한가지를 잃었을 뿐인데 그게 모든 것을 잃는 게 될 수도 있다.

마리와 한스처럼...

그러나 그 완벽한 절망 속에서도 "이야기"를 만들고 꿈꿀 수 있다면!

우리는 거짓말처럼 또 다시 살아낼 수 있다.

마리와 한스처럼...

 

인간은,

비명 속에서 태어나고 고통 속에서 살다 절망 속에서 죽어간단다.

누가 됐든 결국은 소멸과 파괴를 향해 기를 쓰고 달려가는 게 인간의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기에

이 모든 절망을 딛고 또 악착같이 일어선다.

또 다시 살아내기 위해서...

외로움을 감추기 위해 책을 읽듯

공포와 절망 속에서 다시 일어서기 위해

인간은 이야기를 만든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누군가에겐 희망으로, 위로로, 행복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지도...

 

기대했던 것보다 작품 자체는 살짝 지루했고 조금은 산만했다.

조명과 음향도 아쉬웠고...

그래도 광대 3인방의 연기는 역시나 좋더라.

특히 전쟁 광대 이갑선 배우의 딕션과 톤은 아주 환상적이었다.

앞으로 이갑선 배우의 작품은 일부러라도 찾아보게 될 듯.

작품보다 배우에 대한 여운이 훨씬 더 길고 깊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2. 5. 18. 05:46

  

<빈터(更地) - sarachi>

 

일시 : 2012.05.09. ~ 2012.05.12.

장소 :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

출연 : 남명렬, 이정미

극본 : 오타 쇼고(太田省吾)

연출 : 이지영

제작 : 극단 소금창고

주최 : 서울연극협회

 

2012년 서울연극제 초청작 <빈터>

이 연극은 <물의 정거장>, <모래의 정거장>의 작가 오타 쇼고(太田省吾)  작이다.

오타 소고는 극단적으로 느린 등장인물의 움직임을 부각시킨 "침묵극" 시리즈로 유명한 작가 겸 연출가란다.

 

집이나 건물이 허물어지고 아무 것도 남지 않은 "빈터"를 뜻하는 일본어 "사라치(shrachi)"

고배 대지진 이후에 일본에서 유행처럼 던진 화두의 단어가 바로 사라치란다.

1992년 일본에서 초연됐고 2000년 서울 연극제에서 초연될 때 오타 쇼고가 직접 내한하기도 했었다.

초연의 배우 남명렬이 또 다시 남편으로 무대에 올랐다.

<바다와 양산>에서 아내 역을 했던 이정미와 함께. 

 

연극은...

극도의 침묵과 느림이 주는 낯섬때문에 당황스러웠다.

솔직히 덜컥 겁이 났다.

내가 이 작품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지가.

"sarachi"는 아무 것도 남지 않은 빈터라는데

실제 무대 위에는 싱크대, 변기, 콘크리트 벽돌 같은 것들이 집의 흔적들이 일렬로 나열되어 있다.

삶의 흔적, 혹은 이야기의 편린들인가 싶었는데 딱히 그래 보이지는 않았다.

무대는 결국 커다란 천으로 그야말로 황량한 빈터가 된다.

현실이었을까?

어쩌면 이 부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승도 저승도 아닌 어떤 곳.

두 부부의 기억이 머무는 그곳에서 부부는 일생을 반추한다.

갓난아기때부터 사춘기 시절 연애이야기, 그리고 아이들 이야기.

 

솔직히 작품은 난해하고 많이 어려웠다.

극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난감해서 어쩔 줄 몰랐다.

때때로 너무나 몽환적이고 고요해서 까무룩 잠이 들 것만 같았다.

(실제로 눈이 감겼던 것도 같다)

sarachi.

결국 모든 게 사라지고 남는 건 빈터다.

그러나 그 비어있는 공간, 텅 빈 폐허 속에는 인간의 모든 이력이 남아있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그 이력위에서 또 다른 이력을 시작한다.

그래서 모든 빈터(폐허)는 신생(新生)의 터전이 된다.

혹 그런 의미였을까?

자신의 빈터에서 모든 게 다시 시작된다고...

그러니 반추하라고!

 

남명렬, 이정미 두 배우의 역량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나는 내내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름답고 성실한 두 배우에게 존경심을 담은 감사를 보낸다.

 

나는 아직 멀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1. 11. 7. 08:50

<해무(海霧)>

일시 : 2011.11.04. ~ 2011.11.20.
장소 :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
출연 : 송새벽(광식), 신철진(완호 아재), 김용준(강선장),
        유인수(경구), 권태건(호영), 나종민(창욱), 송수정(홍매),
        박해영(조선족女), 박동욱(조선족男), 이효상(조선족 男)
극본 : 김민정
연출 : 안경모
제작 : 극단 연우무대

<방자전> 등 몇 편의 영화로 충무로 미친 존재감이 된 배우 송새벽.
그가 다시 연극 <해무(海霧)>로 무대위에 선다.
소속사와의 분쟁으로 마음 고생하고 있는 그에게 아마도 절절한 숨통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분쟁의 자세한 내막이야 모르지만 2007년에 이어 2009년, 그리고 2년만인 올해 다시 동식으로 분한 송새벽의 느낌은 어쩐지 더 남다르고 짠하다.
"친한 친구를 오랫만에 만났는데 몇 달 안 된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2년이라는 시간이 간 것도 실감이 안 날 정도로 친근하다"
프레스콜을 마친 송새벽은 다른 배우가 "동식"을 연기하는 모습을 봤다면
아마도 질투를 했을 것이라며 인간적인 고백의 말을 하기도 했다.

이 말 때문에 이 연극이 더 애뜻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그에게 연극<해무(海霧)>가 남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또 있다.
이 작품에서 송새벽의 연기를 직접 본 봉준호 감독이 영화 <마더>에 직접 그를 캐스팅 했단다.
(봉준호 감독, 연극 참 많이 본다. 나도 공연장에서 봉준호 감독의 남다른 싸이즈의 머리를 여러번 목격했다.
 정말 깜짝 놀랐다. 뒷분들 관람하는데 참 애로사항 있겠구나 싶어 안스럽기까지도...)
송새벽의 충무로행은 그렇게 연극 <해무(海霧)>로 시작됐다.
2007년 초연때부터 워낙에 좋은 작품이란 입소문을 많이 들었었는데
초연때도, 그리고 2009년 다시 공연됐을때도 나는 못봤었다.



2007년 극단 연우무대 창립 30주년 기념작으로 초연된 연극 <해무(海霧)>는
당시 차범석의 <산불>을 잇는 리얼리즘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한국 연극 best 7에 선정되기까지 했다.
매번 소극장에서 공연됐었는데 이번에는 제법 규모가 있는 중극장에서 공연된다.
덕분에 회전 무대를 이용해 실제로 배가 움직이는 모습이 심감나게 보여진다.
배우들 역시 움직이는 배 위에서 연기하는게 보기보다 힘들다며 심한 멀미때문에 고생중이란다.
집에 돌아가서 잠자리에 누우면 천장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 같다고...
공미리 잡이가 주업인 전진호.
그러나 거듭된 조업 실패로 선원들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게 이른다.
그들의 텅빈 공미리 어창(漁倉)은 은밀하게 조선족 밀항자 30명의 거처로 용도변경된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해경의 훈련과 태풍, 그리고 지독한 해무(海霧)에 갇혀버린 전진호.
급기야 통풍구가 닫히는 바람에 어창에 숨어있던 조선족 전부가
기관실에 있던 홍매를 제외하고 전부 질식사하고 만다.
살기 위해서 근본을 떠나는 사람을 살기 위해서 실어 나르는 사람들.
그러나 해무 속에서 모든 것들은 길을 잃고 점점 흐려진다.
혼돈과 공포, 처참한 비극이 축축하게 스며드는 전진호.
무대 전체에 올려진 "전진호"는
그렇게 점점 거대한 재앙이자,무덤, 폐허가 된다.
연극을 보면서 나는 눈에 보여지는 공포때문이 아니라 소리가 주는 공포때문에 몸이 떨렸다.
뱃사람을 아름다운 노래로 유혹에 물에 빠져 죽게 만든다는 신화속 주인공 싸이렌.
싸이렌을 떠올리게 하듯 중간중간 들리던 여자의 목소리는 그런 공포감를 어이없이 감미롭게 배가시킨다.
어쩌면 해무(海霧)에 갇혔을 때 선원들이 느꼈을 공포감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갇혀버린 인간이 종국의 모습?
공포는 야만보다 잔인하다.
그리고 그 모습은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의 현재 모습이기도 하다.
어쩌면 전진호를 바라보는 관객은 사실 제일 먼저 전진호에서 죽은 유령인지도 모른다.
짙은 안개의 출처는 이것으로 분명해졌다.
암.담.하.다.



연극이 시작되자마자 파도소리와 함께 들리던
배우 강신일의 나레이션.
그래, 그 느낌을 압도(壓倒)라고 명명하자!
연극 <나는 너다>에서 고종으로 나온 강신일의 스크린 모습과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렀었다.
<해무>에서 그이 목소리를 듣는 순간,
매섭게 추운 어느날 한꺼번에 얼음이 쩡~~ 하고 일제히 갈라지는 것 같았다.
사람의 목소리가...
이럴 수가 있구나!
연극 <해무(海霧)>의 모든 것이
그의 나레이션 안에 깊이깊이 다 스며있다.
이야기의 시작과 결말이...
이 모든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그외의 다른 모든 것들 전부가 그 안에 고요하게 포효하고 있었다.
문득 무섭다.


바다에서 만나는 짙은 안개를 해무(海霧)라 한다.
바다에서 바람보다 무서운 것은 바로 안개다.
파도에도 길이 있고
바람에도 길이 있으나
안개에는 길이 없기 때문이다.
짙은 해무(海霧)는 어부들의 조각난 마음은 물론
바다와 하늘의 경계조차 허문다.
남는 것은 한없는 무기력과 끝을 알 수 없는 정체(停滯)와 고립(孤立).
어디서 다가올지 모르는 위험에 대한 공포뿐이다.
어둠이 아닌 빛 속에서 길을 잃는 것,
그것이 해무(海霧)가 주는 공포다.
어둠 속에선 불을 밝히면 되지만
빛 속에선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1. 5. 22. 17:33


정말이지 이 작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놓치고 내내 아쉬워하기에는 공연 기간조차도 너무 짧다.
단 4일 동안 고작 다섯번 공연되는 작품.
진심으로 궁금했다.
단 다섯번의 공연을 위해 이 모든 대사들을 외우는 배우들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게다가 그들이 이름만으로도 쟁쟁한 연기 9단의 내공을 가진 이 어마어마한 배우들이라면...
이호재, 전무송, 윤소정.
1969년생 이명호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연극 배우인데
이 세 명의 대가들 앞에선 어쩐지 그조차도 아직 어린 아이에 불과하단 생각까지 든다.

연극 <응시> 
놀랍게도 초연되는 작품이란다.

"지원의 얼굴"로 알려진 조각가 권진규(1922~1973)의 삶이 모티브가 된 작품.
일본에서의 성공적인 미래를 버리고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생활고와 소외감에 시달리다
결국 51세의 나이로 자신의 아틀리에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조각가 권진규.
그의 테라코타 휴상들는 고요하면서 동시에 극도의 공포심이 느껴질 정도로 섬득하다.
잘 썩지 않는다는 불멸의 테라코타.
차마 마주하고 오래 서있기가 힘든 그의 흉상들.
외면하려 애를 쓰지만
마지막 순간에 최면에 걸리듯 몸 전체를 돌려 다시 한 번 더 적나라하게 대면하게 만들어
결국은 각인하게 만드는 깊고도 무서운 흡인력(吸引力).
몰입과 집중은 그래서 "공포"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
길게 늘어진 차가운 쇠사슬, 마치 피가 밴듯한 흉물스러운 붉은 벽돌가마.
생살이 찢겨 뼈가 드러난 것 같은 철조 구조물.
그리고 버려지듯 나뒹그러진 볼품없는 의자.
무대를 마주하고 앉기가 어쩐지 나는 덜컥 두렵고 무서워졌었다.
그 무대를 정면으로 마주한다는 게 버거웠다. 
어쩌자고 시작부터...



준태(이호재)의 아내 역으로 함께 무대에 오른 윤소정은 말했다.
"이호재씨는 쉽게 말해 힘이 좋고 외적인 표현에 강합니다. 전무송씨는 내적인 연기에 잘 어울리지요"
그래서 연극판에서는 이런 말도 있단다.
"전무송의 긴장, 이호재의 이완"
뭐랄까?
이 작품에서는 두 사람이 긴장과 이완을 교차시키면서 수시로 감정을 교환한다.
두 인물 모두에게서 어쩐지 귀기(鬼氣)가 느껴져 섬득했다.
어릴적 친구 형우(전무송)의 소개로
고향집에 집을 마련하게 된 준태(이호재).
그러나 이사 첫날부터 준태는 이상한 음성과 말울음소리, 글자들의 환영을 보게 된다.


절지(折枝)하여도 포절(抱節)하리라.    
(가지가 잘려져도 품어 지키리라)
포절(抱節)하다가 고사(枯死)하리라.    
(지키다가 차라리 말라 죽으리라)

기억이 한 사람을 근원의 생으로 부른다.
유년의 기억이, 첫사랑의 기억이, 그리고 모성의 기억이 그렇게 한 사람의 일생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한다.
암시였을까?
도입부분 준태는 작업실에 홀로 서서 말한다.

"시간은 여기 그대로 있고,
  나는 마침내 올 곳을 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빈 집을 가득 채운 부스러진 시간의 조각들.
준태에게 남은 건 이젠 대면의 시간이다.

" 넌 왜 그렇게 너 자신을 짖누르니?
  와서 하고 싶은데로 해!
  어디에도 매이지 마!
  그래 그래, 우린 같이 가야해!"


권진규는 준태의 삶 속으로 어느새 투영된다.
또 다시 시작되는 답습(踏襲)이었을까?
아니면 윤회(輪廻)?
그러나 삶의 봉인이 뜯기면 누구도 다음을 기약할 수 없다.
내 것이었던 삶은 철저히 나를 배반하고
나는 그저 하나의 현상이 되버린다.
어디로 가야하나?
중산층을 꿈꾸던 소망은 생의 한귀퉁이로 매몰차게 내동댕이쳐졌다.
보지 않아도 되는 것을 본 사람은
그래서 뒷걸음을 치게 되는 건지도...

형우는 준태를 기어이 데려가고 싶었던 걸까?
어쩐지 나는 준태의 회귀(回歸)가 철저히 자발적이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준태는 스스로 선택했던 것은 아닐까?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귀신에 홀렸든, 노구의 심장이 진실을 견뎌내지 못했든 간에 말이다.

나는 여기 있습니다.
안락했지만 허전했던 나날들.
가만히 눈을 감고 바라보면,
잠시 숨을 멈추고 참을성있게 지켜보면 
모든 것이 다 저 뒤의 뒷쪽까지 선명하게 보인다는 것을 젊어서는 왜 몰랐을까요?
결국 버려도 버려지지 않고,
가져도 가져지지 않는 것들이었는데..
바람이 부네요. 
내 자리로 돌아갑니다.
그러니까 아주 오래전에 내가 처음 생겨나고 멸했던,
또 생겨나고 멸했던 거기로....

                     <자소상 1969~1970>                                   <지원의 얼굴 1967>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1. 4. 11. 08:53


<봄 날>

부 제 : 가슴으로 만나는 아름다운 시간
일 시 : 2011.03.31. ~ 2011.04.17.
장 소 :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
대 본 : 이강백
연 출 : 이성열
주 최 : 극단 백수광부
출 연 : 오현경(아버지), 이대연(장남),
         장성익, 강진휘, 정만식, 박완규,
         유성진, 김현중, 김란희


배우 오현경이 또 다시 아버지 역으로 출연한다는 소식만으로도 무척 탐나는 연극이었다.
행여 놓칠세라 서둘러 조기예매를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1984년 초연 당시 제 8회 대한민국연극제 대상을 수상했던 작품.
2008년, 무려 24년만에 극단 백수광부와 이성열 연출에 의해 다시 무대에 올랐을 때
전석 매진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면서 서울연극제 연출상까지 수상했다.
그리고 이번엔 24년만이 아니라 3년만에 올려진 세번째 <봄날>
1984년, 2008년에 이어 또 다시 배우 오현경이 아버지 역으로 무대 위에 선다.
배우 윤소정과 오현경.
존재감만으로도 무대를 빈틈없이 꽉 채우는 대가들.
이런 찬사조차도 배우 오현경과 윤소정에겐 왠지 민망하고 죄송스럽다.
도대체 어디서 그런 열정과 힘이 나오는 걸까?


짧은 봄날같은 젊음!
젊음은 구차한 욕망이고 버려진 그리움은 질기디 질긴 절망인가?
젊음도 그리움도 단지 탐욕의 다른 이름처럼 느껴진다.
회춘을 꿈꾸며 어린 소녀를 품어 따뜻한 기를 받으려하는 초라한 늙음도
그런 절대권력의 아비를 상대로 역성혁명을 꿈꾸듯
아비를 속이고 숨겨놓 재산을 파헤쳐 대처로 떠나 돌아오지 않는 비겁한 젊음 역시도
비루하고 누추하긴 모두 마찬가지다.
그러나 어쩌랴!
그 비루함이 바로 인간의 모습인걸...
따지고보면 젊음도 봄날도 너무 짧기에 그 댓가가 이렇게 큰 건지도 모르겠다.
산불로 황폐하고 시커멓게 변해버린 청계산의 아무도 끄지 않는 불처럼..

 

의외로 무대와 뒷배경이 빈약하고 초라해서 놀랐다.
그래도 배우 오현경이 나오는 작품인데...
그런데 참 신기하고 이상한 건,
30여분이 지난 뒤 아버지 역의 오현경 선생님이 등장하면서부터는
정말이지 무대의 휑한 여백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
장남으로 나오는 이대연도 그러더라.
"선생님은 무대에만 서시면 기운이 솟아나세요.
 평소와 달리 무대에 서는 순간 엄청난 집중력이 살아나시거든요"
75살의 배우 오현경은,
쉰아홉에 식도 수술을 받을 당시 상태가 안 좋아져서 심폐소생술로 간신히 살아났다고 한다.
그리고 계속되는 위암, 목디스크 수술을 포함한 4번의 대수술. 
현재 체중은 고작 54kg이란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54kg의 몸피를 가진 노인의 발성으로 공연장 전체가 그렇게 꽉꽉 찰 수 있다는 사실이...
딕션은 또 얼마나 정확하시던지... 
무대에 서 있는 모습 자체가 감동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함께 연기했던 자식같은 후배 배우들도
그리고 관객들도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감동의 박수를 보냈다.
(연극 자체도 감동적이지만 마지막 그 모습은 꼬끝이 찡하게 감동적이었다)

 

무대가 짱짱하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존재감을 발산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배우 오현경의 모습을 보면서 마디마디 절감하고 감동했다.
“전 감투, 돈과 같은 세속적인 욕심은 전혀 없어요. 하지만 다 내려놓을 때도 됐는데도 배우의 자존심만은 양보 못하겠어요. 어두운 객석의 누군가가 최선을 다한 나의 연기에 ‘감정의 교류’를 했을 거라는 자부심, 그게 바로 배우의 자존심이죠.”
이동은 시간적인 것이고 정착은 공간적인 것이다.
그래서 음악은 시간예술이고, 미술은 공간예술에 속한다면
배우는 이 두 가지를 전부 아우르는 존재가 아닐까?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다니는 유목민으로서 배우의 완성은
그런 이유로 시간의 경과가 필연적인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나는 "아우라"라는 말에 그닥 긍정적인 편이 아니다.
그런데 배우 오현경의 무대를 보면서
왜 우리가 배우를 향해 "아우라"를 운운하는지
그 근본적인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건 카리스마조차도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그런 위엄이고 진심으로 충만함이었다.
그가 무대에 선 모습을 또 다시 볼 수 있을까!
폭력같은 갈증이 목울대를 넘는다.
울컥, 울컥!
배우 오현경은 좋겠다.
그는 결코 더 이상 나이들지 않으리라.
그의 회춘이, 그의 청춘이
그의 이팔청춘이 나는 눈부시게 고맙다.

노쇄한 아비가 남긴 마지막 말끝이 내내 나를 붙잡는다.
"그놈들 얼굴이나 다시 봤으며...
 죽기 전에 다시 봤으면..."

그래, 봄날은 너무 짧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