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고 끄적 끄적...2011. 8. 5. 08:47
지난 주말에 일본에서 온 조카와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
자기가 직접 사진을 찍어보고 싶다고 해서
몇가지 설명해주고 사진기를 넘겨줬더니 좋아하면서 셔터를 누르던 조카 ^^
카메라를 넘겨주면서도 별 기대 안했는데
느낌이 좋은 사진을 몇 컷 찍었다.


구도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느낌이 괜찮다.
금관 뒤로 열심히 도자기를 살펴보고 있는 나랑 언니의 모습도 흥미롭고...
조카녀석이 의도하고 찍은 건 아니겠지만 제법 잘 찍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 박물관을 찬찬히 둘러보는 게 참 좋다.
그리고 도자기를 보고 있으면 맘이 차분해지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꿈꾸는 도자기!
시간이 지나도 저런 빛깔과 광채를 보일 수 있다는 게
마냥 신비롭고 대견하다.

 

 시간과 공간을 품고 있는.
완벽하고 온전한 하나의 세계!
그 세계는
언제나  경의롭고 황홀하다.

*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장의 조명은 참 맘에 안 든다.
   (특히 3층은 전시실은 더더욱)
   어쩜 그렇게 하나같이 작품들을 제대로 볼 수 없게 조명을 설치했을까?
   너무 어둡거나 아니면 반사광이 심해 가오리눈을 해야만 제대로 볼 수 있을 정도다.
   그건 은밀함이 아니라 감춤과 숨김에 가까운 빛이다.
   조명때문에 이 멋진 작품들이 제 빛을 맘껏 보이지 못하는 것 같아 늘 안스럽고 안타깝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10. 6. 06:31
오르한 파묵!
또 다시 이 사람에게 완벽하게 매혹당하다.
이런 이야기일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첫 장편소설
오르한 파묵은 말했다.
"나는 이 소설로 기억될 것이다”

5월에 우리나라에 출판됐을 당시에 바로 손에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펼쳐보지 않았었다.
오래오래 숨겨놨었다.
힘들 때, 지칠 때, 위로가 필요할 때 펼쳐보리라 다짐했었다.
지금은 더 오래 이 책을 간직했어야 했던건 아닌가 후회하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휩싸이면 제자리를 찾기가 또 얼마나 버거울까?
단지 소설책일뿐인데도 나는 이 매혹과 질투와 신비에 화가 난다.
오르한 파묵의 책을 읽는 동안은
나는 먹지 않아도, 자지 않아도 괜찮다.
허기도 졸음도 그의 책을 손에 잡는 동안만은 저절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버린다.
오르한 파묵!
비참함이 느껴질 정도로 나를 완벽히 매혹시키는 작가!
그것도 여러 번,
철저히 치명적으로...



한 여자와 만나 44일 동안 사랑하고,
339일 동안 그녀를 찾아 헤맸으며,
2864일 동안 그녀를 바라본 한 남자.


또 다시 신물나는 사랑 이야기라고?
맞다!
그러면서 동시에 아니다.
한 사람을 너무 사랑한다고해서
그 사람의 입과 손이 닿았다는 이유만으로 담배꽁초 4,213개를 집에 모아놓는 사람이 있을까?
귀걸이, 소금통, 도자기 개인형, 화장수 병, 라크 잔, 설탕통, 모과를 가는 강판 등은 어떤가?
이 정도의 집착이라면 사랑이 아니라
단지 도착적인 정신병의 일종이라고 판단하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인정하고 희망하게 된다.
언제가 꼭 "순수 박물관"을 방문하리라.
그래서 케말이 수집하고 보관했던 퓌순의 흔적이 남겨진 이 모든 물건들을 두 눈으로 확인하리라.
물론 "순수 박물관"을 방문할 땐 반드시 이 책을 들고 가게 될 것이다.
책 안에 있는 1회 무표 입장권을 보여주면서 말이다.
너무 책 속에 빠진 생각이라고 말하고 싶을까?
역시나 그렇지 않다.
올해 하반기에 터키 이스탄불에 "순수 박물관"이 정말로 일반에 공개된단다.
(계획대로라면 8월에 이미 공개됐을지도 모르겠다)
소설의 주요 배경이 된 이스탄불 추쿠르주마에 있는 퓌순의 집.
그곳을 방문하면 소설에 나오는 모든 물건들을 실제로 볼 수 있단다.
번역자의 말처럼 이야기가 책에서 나와 현실에 존재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되는 셈이다. 
소설의 모든 것들을 재현한,
작가가 창조한 한 편의 소설이 이렇게 현실로 재현된다는 게 신비롭다.
문학이 현실을 새롭게 창조할 수 있다는 사실!
글의 힘에 전율이 인다.
...... 오르한 파묵이라는 작가의 작품을 번역하는 가장 큰 보람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의 작품을 전 세계에서 누구보다 먼저 읽어 볼 수 있는 특권을 갖는 것이며, 처음 읽는 순수한 감동과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고 답하겠다. 그러므로 이후에 이어질 지옥과도 같은 번역의 고통을 이겨 낼 수 있는 힘도 아울려 얻는 것이라고 ......
번역자 이난아는 말했다.
나는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번역자가 너무 부러워서 불같은 질투가 난다.



퓌순과 케말.
그 둘의 사랑은 이루어졌을까?
이루워졌을 수도 있고 이루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인생은 절대로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고 했던가?
그렇더라도 이 사랑은 충분히 의미있고 그리고 완벽하게 아름답다.
사랑하는 사람이 눈 앞에서 사라졌을 때 삶의 모든 광채도 함께 사라졌다고 말하는 사랑.
그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한순간에 제자리를 찾는 것 같고,
세상이 의미 있고 아름다운 곳으로 변해버린다는 사랑.
그녀와 한 집에 살 수 없기에 그녀의 손길이 닿았던 물건들을 하나하나 훔치는 사랑.
그 사소한 물건들은 아름다운 순간을 연상시키는 물건을 넘어, 순간의 일부가 된다.
그리고 그것은 집착적으로 사랑하지만 '소유할 수 없는' 누군가에게서 어떤 일부를 떼어 내는 행복이란다.
9년의 기다림 끝에 함께 할 수 있게 된 두 사람의 최후가 되어버린 밤.
신파라고 작위적이라고 비난하진 말자.
이 책을 읽으면 소설속 이야기는 그대로 현실이 된다.
그것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생생한 현실.
나는 내 가슴팍으로 운전대가 꽃힌 것처럼 내내 극심하게 아팠다.
그리고 그 고통은 묘하게 육체의 통증을 동반했다.
영리한 사람들은 인생이 아름다운 것이며,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라는 것을 잘 안단다.
그런데 나중에는 행복하다고 말하는 건 바보들 뿐이라나!
"순수 박물관"은 그런 바보들을 위한 책이며 장소다.
점점 사라지고 희미해지는 "시간"이  하나의 "공간"으로 형체를 갖게 되는 곳.
<순수 박물관>
터키에 가게 되면 꼭 이곳에서 하루를 보내리라. 
꼭 그렇게 하리라...

너는 한때 나의 연인이었지
내 곁에 있을 때조차 나의 그리움이었지
지금 너는 다른 사랑을 찾았어
행복이 너의 것이길
고통과 번민은 나의 것이니
삶이 너의 것이 되길, 너의 것이 되길


<순수 박물관>을 탈고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오르한 파묵은 이미 새로운 소설 집필에 착수했단다.
그러니 견디자, 버티자.
그의 글을 읽기 위해서라면 긴 노동같은 기다림도 나는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
괜찮다.
견딜 수 있다,
버틸 수 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그냥 끄적 끄적...2010. 9. 30. 06:16
10시 넘어서 집에 들어가니 종이 상자가 식탁 위에 보였다.
얼마전부터 방과후 교실에서 요리교실을 다니고 있는 초등학교 2학년 여자 조카.
요 녀석이 또 뭘 만들었나 싶어 상자를 열어봤다.
귀여운 머핀 3총사!



비록 좀 까맣게 타긴 했지만
내게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을 것 같은 머핀이다.
사실 아까워서 먹지도 못하고 보고만 있었다.
조막만한 손으로 이걸 만들었을 조카 녀석이
그리고 다 구워진 빵을 가지고 자랑하려고 집에 곱게 가지고 왔을 조카 녀석이
마냥 귀엽고 사랑스럽다.
얼마나 재재거리면서 자랑했을까?
자기 엄마가 퇴근해서 데리러 올 때까지 또 얼마나 기다렸을까? 
추석 전에는 송편을 만들어와서 재재거렸었는데...
(송편 중에 속이 안 들어있는 게 하나 있는데 복불복 송편이라나 뭐라나... ^^)
이렇게 뭘 들고 온 날은 꼭 한 마디 한다.
"이모! 이모 컴퓨터에 올려줘~~~!" (^^)



또 얼마전에는 도예반에서 만들었다고 다기들을 몇 개 들고 왔었다.
라면기, 생선접시, 그리고 손톱만한 장난감 도자기까지...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할지 모르지만
요 녀석은 유달리 손재주가 많다.
아이클레이로 뭘 만들어낼 때도 그렇고
종이접기를 할 때도 그렇게
이모를 놀라게 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주변에선 가끔 내게 말한다.
엄마도 아니면서 참 애뜻하게 지극정성이라고...
솔직히 말하면
조카 녀석들을 위해서라면 나는 뭐든 할 수 있다.
이상하지?
조카 녀석들의 커가는 모습은
늘 종교처럼 신성하다.
그러니 나는 늘 맹목적이 될 수밖에...

사이비종교 추종자라고 놀린데도 어쩔 수 없다.
할.수.없.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2. 6. 06:14
박물관을 가면 오래 서서 찬찬히 보게 되는 곳.
아주 오랜 옛날
어느 날은 누군가의 입을 채울 밥을 담고 찬을 담다 
그러다 어느 날,
걸죽한 탁주나 맑은 청주가 담기기도 했을테지.
시간 속에서
그때그때 일상을 담았을 그릇들은
이제 유리벽 넘어 "도자기"라는 유물로 남아 있다.



도자기를 마주하면
이상하지?
긴 시간 앞에서의 짧은 대면이지만
언제나 맘은 깊고 아늑하다.
문득 저 위에 소담하게 따뜻한 밥 지어
오래오래 곱씹으며 꿀꺽 삼키고 싶다는 생각.
그 고슬고슬한 아득함에 허기가 지기도...





주위는 온통
고려청자같은 은은한 청록빛.
때로는
분청사기같은 고요한 흙빛으로 가득하다.
이런 작은 빛깔의 세심함이 고마워
주책맞게 헤실헤실 헤픈 웃음도 흘리다.



한참을 바라봐도
결코 지치지 않았을 시선
그곳에 두고
휘적휘적 발걸음 옮기다.
고실고실한 생각,
어쩌면 아직 거기 담겨 있을지도...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11. 9. 06:01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 - 배용준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

일본에 사는 저희 언니의 말입니다.

일본 아주머니들이 왜 그렇게 욘사마에 열광하는지 모르겠다는 핀잔성 발언을 하는 저에게 배용준이란 한국배우가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얼마나 유명하고 대단한 위치에 있는 줄 아느냐며 해 준 말이었죠.

욘사마랑 같이 여객선을 타고 여행하는 크루즈 상품이 판매된다면 그 상품은 수 초 만에 대박 매진이 될 것이고, 그렇게 바다 위를 함께 여행하는 어느 날, 정말 아무런 이유도 없이 욘사마가 ”뛰어!“라고 외치면 의심의 여지도 없이 배 위의 모든 여자들이(남자들은 물론 아니고) 거침없이 푸른 바다 속으로 줄줄이 뛰어 내릴 거라고...

언니의 말을 듣고 배용준의 입지가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솔직히 좀 공포스럽긴 했죠.

사이비 종교의 집단 최면 상태가 떠올랐기에...

거대 한류산업의 최대 기업체 배용준이 자신의 이름으로 여행 에세이를 출판했습니다.

“연예인 프리미엄”

저는 개인적으로 이 책이 연예인 프리미엄의 극대화를 보여주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의 질적인 부분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책을 만든 모든 과정과 배용준이 선택한 여행의 여정들, 그리고 만나게 된 모든 사람들에 대한 언급이죠.

우리같은 일반인들에게 감히 금지된 혹은 쉽게 허락되지 않은 곳을 직접 보고 경험하고 온 특별한 사람의 기록!

딱 배용준이기에 만들 수 있었던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마음 한켠으론 뭉클한 동정심이 일기도 했죠.

조금은 두려웠습니다.

배용준의 여행길을 함께 동행하는 게 아니라, 그의 외로움을 들여다보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스러움...

책을 집필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그는 말합니다.

어느 날 일본에서의 인터뷰 중 한 기자에게 “혹시 추천 해주고 싶은 한국의 여행지나 명소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게 됐다고 합니다.

“부끄러웠지만 별로 아는 것이 없었다.”

그의 솔직한 고백이었답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고 하네요.

“......잘 알지 못했던 우리 문화를 알아 나가면서 나는 내 자신을 다시 찾고 싶었고 그럴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전히 외롭고 또 그리운 것을 찾고 싶은 한 인간으로서 다시 서고 싶은 심정이 들었던 것 같다......”

그의 마음속에는 아마도 자신조차도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커다란 구멍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다르게 숨쉬는 방법을 선택하게 된 건지도요...


"떠나다 - 머물다 - 버리다 - 사색하다 - 돌아오다 - 다시 떠나다 "
그가 선택한 여행의 루트입니다.

그 각각의 여정 속엔 딱히 타이틀과 어울리지 않은 부분들도 많이 있긴 하지만 그는 이런 감성의 루트로 여행을 이어갑니다.

떠남을 준비하면서 그는 정갈하고 소담한 아침상을 받는 것으로 그 여행을 시작하죠.

“일상의 단순함이 큰 의미를 줄 수 있듯이, 매일 차려먹는 단순하고 소박한 가정식이 내 활력의 근본이었다”고 말하는 배용준.


늦은 가을의 끝자락 생애 최초의 김장을 통해 힘찬 겨울나기 갈무리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 그 여행의 끝에 그는 자신만의 래시피로 김장을 하고 싶다는 소망도, 지인들과 소박한 김장모임을 만들고 싶다는 바램도. 우리나라 김치명가를 찾아 떠나는 또 다른 소망의 여행도 꿈꿉니다.

옻칠공예와 전통한지, 템플 스테이, 차, 도자기 속으로의 잠깐 동안의 멈춤.

(모두 오랜 시간을 들여 곱게 곱게 그리고 고요히 정제되고 있는 것들이죠.)



우리나라보다 오히려 일본에서 더 유명한 옻칠공예 장인 전용복 선생(그가 일본의 세이코 시계와 함께 만든 자계 손목시계는 최고 9억 원을 호가하는 엄청난 명품 예술품으로 인정받고 있죠)과의 만남, 천 년의 세월을 견뎌온 전통 한지의 신비감, 이상하게도 건강한 식욕을 솟구치게 만드는 발우공양, 야생차밭에서 채다(採茶)된 덖음차의 깊고 고요한 맛. 흙과 하나가 되는 도공의 물레와 춤추는 불꽃 가마 앞.

읽는 동안 저 또한 그가 머물렀던 곳을 신기한 풍광을 보듯 기웃거립니다.

(우리의 전통 문화를 신기한 이국의 풍경을 보듯 바라보고 있는 제 모습이 어쩐지 처량하기까지 합니다.)

부럽다는 생각.

이런 대가들의 작업장을 방문해서 고급의 전통문화의 진수와, 그 정신의 정갈함을 직접 보고 체화할 수 있는 사람... 과연 얼마나 될까요?

초특급 배우 배용준이기에 방문이 허락된 곳도 분명 여러 곳 있기에 괴리감이 느껴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일반인에겐 공개되지 않는, 어떤 의미에선 선택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진정한 노블리스 고급 문화의 한 단면을 보는 심정은 열등감 비슷한 자괴감까지 들게 합니다.

물론 전통한지를 만드는 열악한 환경에 대한 토로나 점점 사라져가는 가양주에 대한 안타까움에 대한 기록도 있습니다. 만약 누구라도 관심만 가져준다면 살려낼 수 있는 전통에 대한 안타까운 현실고백들 말이죠.

점점 잊혀져가는 그래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전통 문화에 대한 개인적인 안타까움과 관심은 급기야 그의 집에 옻칠 공예 작업대를 들여놓고 하고, 도자기를 만드는 물레와 가마를 들여놓게까지 했습니다.

대단하다는 생각도 물론 들지만 어쨌든 세상 다수의 사람들은 아무리 관심이 깊어도 쉽게 이런 것들을 구비하며 탐구할만한 여유가 없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관심은 있지만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동경이 대부분 사람들의 심경이죠.

아마도 배용준이란 한 사람이 이런 것들에 대해 관심에 갖게 된 이유는 “깊이에 대한 외로움”이 그 원류가 아닐까 가늠합니다.

환하게 비춰지는 스포트라이트 앞에서, 숱한 파파라치들과 그를 향한 시선들 속에서 어쩌면 그는 깊은 곳으로 잠시 침참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죠.

“우선 향은 단내가 났다. 차분하게 눌려있는 기운이다. 맛은 대체로 맑았다. 색은 약간 황금빛이 돌았다. 그리고 배에서부터 팔다리로 따뜻한 기운이 펴져나갔다...... 녹색의 진함이 강렬하고, 색이 맛으로 고스란히 전달된다. 부드러운 거품과 은은한 향이 점점 강해지면서 몸 속까지 푸르게 만들어 버릴 것만 같다.”

한 잔의 덖음차를 목울대로 넘기는 그의 느낌이 어쩐지 저는 절절하게 느껴졌습니다.

그에게 필요했던 건 “휴(休)”였던 것 같네요.

그 방법으로 그가 선택한 것이 바로 문화 속으로의 정중동(靜中動)이었음을 조금씩 이해하고 다독이듯 보듬게 됩니다.

주춧돌만 남은 황량한 폐사지 앞에서 버림으로 다시 흥하는 문화를 생각하고 한글과 세종대왕, 경복궁과 천상열차분야지도의 현대적 해석과 적용을 깊게 깊게 음미하고, 국립중앙박물관 앞에서 원류에 대한 탐구로 미래의 길을 찾으려고 그는 노력합니다.


“'미지의 것'을 마음에 품고 살 때 그것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유익한가를 나는 알고 있다. 그것은 사람을 순수하고 겸손해지게 한다. 그리고 노력하게 하며 반짝이게 한다. 배움의 열의를 갖게 한다. 너무 많으면 바보가 되고, 너무 적으면 교만하게 만들지만 적당히 가지면 유익한 것이 바로 그 미지의 것이다.”

그의 여행을 압축한 문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가 꿈꿨던 “휴(休)”라는 건 그러니까 방황하지 않는 법을 찾아내는 것이었네요.

아마도 그는 또 다른 책을 다시 쓰게 되겠죠.

하고 싶은 말들이 아직은 많이 남아있는 것 같거든요.


그리고 이 책 한 권으론 그 말들을 충분히 담을 수 없었다는 것까지요...

바람이 있다면 다음에 만들어지게 될 책은 조금 더 정직했으면(그냥 여러 가지 의미에서요)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한류의 열풍을 타고 일본에서도 폭발적인 주문이 이어지고 있는 책이니까요. 그들에게 번역본으로 책이 출판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구절들이 상당히 있습니다.

이 모든 전문적인 글들(특히 옆에 따로 기재되어 있는 각주같은 것들)이 분명 배용준의 머릿속에서 나온 건 아닐 텐데 참고한 문헌에 대한 명확한 기재가 없다는 게 좀 그렇습니다, 그리고 사진에 대한 설명도 부족하죠. 더불어 본인이 찍은 사진과 다른 사람이 찍은 사진을 좀 구별했다면 그 느낌도 남다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마치 이 모든 사진들을 그가 찍은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하죠.

물론 책을 보고 있으면 그의 얼굴이 담긴 사진들이 많기 때문에 뭐 굳이 포토그래퍼들을 전면에 드러내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죠.

그리고 띄어쓰기가 잘못 된 곳도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일정한 그의 감정에서 살짝 벗어나는 어투들도 간혹 보입니다. 다른 사람의 손길이 닿은 흔적 같은 거죠.

뭐, 그렇더라도 이런 시도는 박수를 보내기에 충분하다 생각합니다.
잊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한 안스러움을 일깨워주니까요. 그리고 이 책을 만들기 위해 그가 찾았을 숱한 자료들과 책들에 대한 탐구도 눈부십니다. 모든 구술(口述)들까지도 말입니다.


녹차가 채집시기에 따라 세작, 중작, 대작이 구분된다는 것도, 세종대왕이 즉위 후 처음 한 말이 “우리 논의합시다!”였다는 사실도, 노비들에게 출산휴가를 주었다는 사실도, 도자기를 굽는 가마에는 적어도 한번에 1톤의 나무가 필요하다는 것도 모두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

우리 전통 문화에 대한 고급스러움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는 걸 책을 덮은 후 이해하게 됐습니다.

비록 그것이 소수에게만 허락되는 문화일지라도 그 소수의 사람이 의해 다수의 사람에게 전달되기를 그는 꿈꿨던 거죠.

“유명인이 되기에 앞서 진정한 문화인이 되라.”

그가 방문했던 사찰의 큰 스님이 그에게 신신당부한 말이라고 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 남들이 보기에는 내가 인기와 명예로 정말 풍요로울 거라 생각하겠지만 나는 내가 그것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죽는 것이다라고 항상 스스로 되뇌인다. 아직 그렇게까지 무뎌지고 싶지는 않다. 나는 언제나 꿈을 꿀 것이고 꿈을 꾸고 있어야 내가 살아가는 것이니까 .......

척박할수록 더 질기게 발휘되는 게 인간의 잠재력이라고 합니다.

그 잠재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우리 전통 문화의 정수인 원칙, 정성, 노력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반드시 필요하겠죠.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동시대 사람들이 함께 꾸어가는 꿈이 바로 “문화”라고 하네요.

아마도 그는 그 “문화”를 공유함으로써 소통을 꿈꾸려 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타인과의 소통,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소통까지 말이죠.

그는 이 책을 통해 분명 낯선 말걸기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어쩐지 잘 들었노라고 가만히 대답해주고 싶어지네요.

어쩌면 이 대답이 문화 공유를 꿈꾸는 우리 모두의 첫 교감이 되 줄지도 모르니까요.

어쩌면 정말 그럴지도요...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