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2. 3. 9. 06:07


- 음악극 <백야(白冶)> -

일시 : 2012.02.18. ~2012.03.04.
장소 :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출연 : 이정열, 이계창, 장용철, 한성식, 한동규, 문종원, 박주형, 선영
극본 : 김영인
연출 : 최용훈
작곡 : 이형주

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와 신시컴퍼니가 공동 제작한 음악극 <백야>
뮤지컬과 음악극의 차이가 어떤 건지 잘 모르겠지만 연출가 최용훈의 말에 의하면 둘의 가장 큰 차이는 드라마성에 있단다.
그래서 음악극은 뮤지컬같은 스펙터클한 화려함보다는 배우를 중심으로 드러나는 드라마에 집중되어 있다는 게 그의 말이다.
처음 의도했던 것보다 음악이 더 많아지긴 했지만 관객들 역시 <백야>를 드라마 중심으로 관람하길 당부했다.
어쩌다보니 삼일절에 이 작품을 보게 됐다.

일단 출연진이 좋아서 기대를 했던 작품이다.
(장용철, 한동규 배우는 캐스팅 발표가 좀 늦게 나긴 했지만)
김좌진 역엔 이계창과 이정열이 더블 캐스팅 됐는데 이날 캐스팅은 이정열이었다.
아르코 대극장에 들어서면서 꽤 오래전에 본 <청년 장준하>가 생각났다.
서영주가 장준하로 분해 정말 눈물나게 열심히 했었다.
아마도 관람한 날이 8월 15일 광복절이라 더 특별했는지도 모르겠다.
장소도 그렇고, 시기적으로도 그렇고, 독립운동가가 주인공인 것도 그렇고 어쩐지 데자뷰스럽다.
뭐 특별히 이 나라에 대한 불타는 애국심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이런 작품들을 보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기득권층에서 태어났지만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함께 사는 삶을 선택한 김좌진 장군
이 작품을 통해 그의 인간적인 모습과 고뇌를 담고 싶었단다.
그래서일까?
일본군과의 대결보다 오히려 소소한 장면들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1막 마지막에서 만주로 떠나는 사람들이 부르는 "풍년가"
......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할 일은 무엇이냐
부귀야 영화를 누렸으니 이 몸이 족할까 .....
예전부터 알고 있는 노래였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구슬프고 처량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내가 이렇게 센치했던가!)
그리고 마지막 커튼콜에서 모든 배우들이 함께 부른 "애국가"도.
현재 우리가 부르고 있는 곡이 아니라 일부러 최초 원곡의 애국가를 찾아서 썼다는데
참 애잔하고 뭉클하더라.



작품성보다는 출연하는 배우들이 정말 너무 열심이여서 그 모습 자체가  감동적이었다.
무대와 배경은 학예회 수준처럼 빈약했지만
배우 한 사람 한 사람의 진정성으로도 작품을 충분히 채울 수 있다는 거!
분명 아름답고 감동적인 모습이다.
단지 하세가와 대좌역의 문종원은 계속 비슷한 모습을 답습하고 있느 것 같아 안타깝다.
<조로>를 보면서도 느낀건데 이상하게 딕션이 점점 안 좋아진다.
그런 배역들을 해서인지는 모르지만 눈과 몸에 힘이 너무 들어가서 정작 대사가 뭉개진다.
이젠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할 때가 아닐까???
연극배우 장용철은 그런 점에서 문종원과 비교하면 훨씬 매력적이다.
지금까지 네 작품 정도 본 것 같은데 그때마다 느낌이 다 달랐고
언제나 독특한 존재감을 남긴다.
황보 역의 한동규는 무대에서 처음 본건데 이치로 경사 한성식과 다른 능청과 맛깔스러움이었다.
(살짝 뮤지컬 <영웅>의 조휘가 떠오르기는 하더라)
오민욱의 박주형, 한은희의 선영도 딕션과 감정연기가 좋았다.
처음에 두 사람이 부르는 노래는 전주부터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가 생각나 혼자 웃어버렸다.
김좌진으로 분한 이정열은 늘 그렇듯 기본은 충분히 해 주는 배우다.
표정과 눈빛이 특히 좋았다.



배우들에게 감동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다.
이 작품에 이 배우들이 나오지 않았다면?
미안하게도 참 막막하고 지금보다 훨씬 더 밋밋했을것 같다.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결정적인 장면도 없고 전체적으로는 다분히 신파적이다.
흑두건 픽션도 왠지 어리숙한 것 같고...
암튼, 뭐 내 느낌이 그랬다는 거다.
배우들의 열연은 참 아름다웠지만
그것만으로 음악극 <백야>가 살아 남을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노파심 한 토막!
그냥 그렇다는 거다!
혼자 마냥 안스러운 마음에...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09. 6. 16. 13:09

간송미술관에서 "정선화파전" 보고
잠시 들렀던 만해 한용운 선생님의 유택 <심우장>
한용운 선생이 마지막 눈을 감은 곳.
그 한 켠에는 사람이 여전히 살고 있다.
(예전엔 후손이 직접 살았는데 바라다보이는 일본대사관이 도저히 보기 싫어 관리인을 두고 이사를 갔다고...)
한옥의 고풍스러움과
신비하게도 지붕을 피해 뻗어나간 소나무
마치 소나무 한 그루가 한용운 선생의 정신을 호위하고 있는 것 같아
왠지 숙연한 느낌마저 든다.



사람의 발걸음을 거부하지 않고
한사람 한사람 맞이하는 고택의 다정함.
처마밑에 앉아 있는 느낌이 따뜻했다.
아이의 사진을 찍고 있는 이국(異國 )의 가족
그 모습까지도 낯설지 않게 품는 마음.



만해 한용운의 절개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곳곳의 흔적들.
액자에 곱게 담겨져 있던 그의 친필들,
그리고
나를 향하는 그의 얼굴은 단호히 묻는 것 같다.
"바르게 살고 있는가!"를....



두런두런,
아이와 함께 무릎걸음으로 앉은 어머니,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을까?
살짝 엿듣고 싶은 욕심도...



내려오는 길에 만났던 골목길들, 대문들, 시멘트 담벼락들.
어릴 적 깨복쟁이 시절을 생각나게 해
눈을 뗄 수가 없었던 추억들.



"성북동 아름다운 나무"라는 푯말이 붙어 있던,
밑둥 부분이 붙은 연리지.
보물찾기를 하는 것 같아 절로 웃음이 가득.

성북동!
골목 골목마다 비밀을 품고 있는 동네.
운이 좋다면 걸음 속에서
우연히 지나간 시간을 만날 수도 있는 곳.



"심우장"의 편액은 위창 오세창이 쓴 것이란다. 
‘심우(尋牛)’는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한 선종(禪宗)의 열 가지 수행 단계 중 하나로
 ‘자기의 본성인 소를 찾는다’는 심우(尋牛)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만해 한용운 선생은
일제시대에 호적도 올리지 않고 배급도 받지 않은 채
이곳 심우장에서 영양실조로 66세의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당시 이곳 일대 20만평의 땅으로 그를 회유하기 위해 찾아온 청년은
뺨을 맞고 돌아갔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그럴 수 있는 사람!
지금 이 시대에 아직 있을까?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