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6. 11. 4. 08:09

두브로브니크를 떠나는 날.

사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오래 고민했던건 마지막 일정이었다.

한국행 비행기를 타려면 자그레브까지 가야 하는데

두브로브니크에서 자그레브까지 어떤 방법으로 갈 것인지가 관건이었다.

비행기를 탈 것인가 아니면 9시간 걸리는 야간버스를 탈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다

주위의 만류를 뒤로 하고 선택한건 밤 9시에 출발하는 야간버스였다.

이유는 딱 하나.

아침 일찍 열리는 돌라체 시장을 보기 위해서였다.

결론적으로 선택은 옳았다.

덕분에 두브로브니크이 밤을 세 번이나 지켜볼 수 있어서 그것도 좋았다.

 

밤 9시 야간버스를 타기 전에 마지막으로 둘러본 두브로브니크.

작은 교회를 들어갔는데 의자가 인상적이다.

일반적으로 봤던 긴의자가 아니라

예전 초등학교때 사용했던 나무의자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소박한 모습에 반에서 한동안 조용히 머물렀던 곳.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동상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고,

카페를 기웃거리다 피아노 치는 사람과 눈도 마주치고,

(그런데 연주 실력은 영...)

성당으로 들어가는 결혼식 행렬의 뒤도 밟고

대리석 바닥에 비친 내 모습도 오래 바라보고...

 

 

그렇게 조용 조용히,

삼일 동안 숱하게 지나왔던 두브로브니크의 길들과 작별인사를 했다.

머무는동안 행복하고 즐거웠으니

그걸로 됐다.

충분하다.

 

안녕!

두브로브니크.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6. 11. 3. 08:03

까도 까도 끝이 없는 양파같은 세상.

비겁하지만 나는 추억 속으로 숨기로 했다.

지난 여행을 복기(復記)하다보면 적어도 웃을 수 있는 순간과 만날 수 있으니까.

사실 이 복기가 끝나지 않았으면 싶다.

하지만 끝이 보인다.

탐독(耽讀)도, 복기(復記)도 끝장나버리면...

아무래도 제 3의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다.  

 

 

물과 나무 그리고 길.

바빈 쿡은 걷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햇빛과 바람길을 따라 수시로 달라지는 물빛.

그걸 사진으로 담는다는건,

그래 어리석은 짓이다.

게다가 이렇게 작렬하는 태양과 정면승부를 해야한다면 완패는 뻔한 일이다.

하지만 괜찮다.

머릿속에 선명히 찍어놨으니까.

 

 

물 속에 먼저 들어간 여자는 남자를 향해 빨리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망설이나 싶던 남자가 이내 물 속으로 다이빙을 한다.

물에 들어감고 동시에 남자의 입에선 탄성이 흘러나온다.

'Lovely!"

순간 발길이 우뚝 멈췄다.

세상에... loverly라니.

남자가 내뱉은 lovely라는 단어 속엔

러블리한 날씨, 러블리한 애인, 러블리한 바다, 러블리한 상황 등 수많은 러블리가 담겨 있었다.

그러고보니 이런 울렁하는 느낌, 예전에도 한 번 느낀 적 있었다.

2015년 2월 스페인 마드리드.

혼자 코르도바를 가기 위해 아토차역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내 옆에 있던 남자의 핸드폰이 울렸고 남자는 전화를 받자마자 웃으며 말했다.

"Sweety!"

그때도 지금처럼 순간정지가 됐었다.

Loverly와 Sweety.

단어가 주는 말랑말랑한 느낌때문이 아닌 두 남자의 어감이 지금도 선명하다.

진심이 가득 담긴 말이었다.

그래서 마치 우주에 남겨인 유일한 단어처럼 생각됐다.

Lovely가 불러낸 Sweety의 기억.

 

타인의 시선이 오래 머무는게 싫었을텐데

두 연인은 오히려 나를 향해 손을 흔들며 들어오란다.

아니요, 당신들을 보는 걸로 나조차도 충분히 loverly 한걸요.

그들에게 질세라 나도 커다랗게 손을 흔들어줬다.

두 연인과 나.

바다를 사이에 두고 함께 했던 짧은 추억.

 

 

되돌아오는길,

꼬마숙녀의 뒷모습이 내 발목을 붙잡았다.

소녀는그러니까 지금 삐져있는 중이고 그걸 표현하기 위해 최대한 애쓰는 중이었다.

이건 정말 lovely + sweety다.

소녀의 삐짐은 곧이어 쫒아온 가족에 의해 금방 풀어졌지만 솔직히 난 많이 아쉬웠다.

정말 정말 loverly한 모습이었거든...

 

바빈 쿡은 이렇게 온통 lovely 천지였다.

그렇구나.

그해서 이렇게 선명하구나.

Lovely Babin Kuk.

지금도 바빈 쿡을 떠올리면

난 여전히 심쿵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6. 10. 21. 08:04

두브로브니크에서 가장 가까운 반예(Banjie)해변.

바다는...

내가 직접 들어가는게 아니라면 언제나 아름답다.

특히 적당한 거리에서 바라보면 아늑함까지도 느껴진다.

플로체 게이트를 빠져나와 늘 가던 콘줌 마켓에서 바나나와 생수 한 병을 샀다.

그리고 비닐 봉지를 털래털래 흔들면서 계속 앞으로 직진했다.

나무잎이 만들어낸 그늘 자리를 귀신같이 찾아낸 고양이는 오수(午睡)

한 밤의 잠처럼 깊은 오수(午睡)에 빠져있다.

 

 

반예 해변은

BANJE BEACH RETAURANT 계단을 통해 내려가면 쉽게 갈 수 있다.

원래는 East West Beach Club이었는데 주인장이 바뀌었는지 이름이 다르다.

알아주는 길비보인 나는 East West 입구를 찾겠다고 한참을 혼자 올라갔다.

계속 올라가다보니...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 뒤돌아 되짚어 내려왔다.

반예 해변은 청명하게 맑은 바다때문에 유럽인들이 지상낙원으로 손꼽는 곳 중 한 곳이란다.

주변에 트레킹 할 수 있는 섬들도 많고,

스노클링 장비를 빌려주는 곳도 있다.

그리고 밤이되면 해변 전체가 거대한 클럽으로 변해서

우리의 밤은 당신들의 낮보다 아름답다...라는 말이 진정으로 가능한 곳!

 

 

해변을 기웃거리다 플로체 게이트쪽으로 내려오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건너오는게 보인다.

깃발을 휘두르면서 연주에 맞춰 힘차게 노래까지 부르면서...

지나가는 현지인들도 박수를 치면서 신나게 노래를 따라 부른다.

로컬 축제인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결혼식장으로 향하는 신랑쪽 사람들이었다.

(아닐 수도 있고...)

일종의 총각파티라고나 할까?

동네 축제같은 결혼 문화라니...

참 부럽더라.

 

떠나야할 시간은 점점 다가오는데

이 도시는 멈출 줄 모르고 끊임없이 매력발산을 이어간다.

도대체 어쩌라고...

째깍째깍!

시간만 간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6. 10. 20. 08:24

"Libertas(자유)"

두브로브니크 여름 축제가 시작되면 

"Libertas"라고 쓰여진 깃발이 여기 저기에 내걸린다.

이 단어는 두브로브니크를 대표하는 문학가 군돌리체바와 관련이 깊다.

그가 그랬단다.

"신은 우리에게 세상의 보물인 자유를 주었다.

 자유만이 두브로브니크를 빛내는 유일한 장식이다.

 세상의 모든 금을 주어도 아름답게 빛나는 자유와 바꾸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두브로브니크는 자유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자유...자유...자유...

간절한 말이고, 결정적인 말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말이다.

 

 

여름축제때는 이곳 로브리예나츠 요새에 야외 무대가 설치되고

세익스피어의 <햄릿>이 공연된단다.

혼자서 대체 어디쯤에 무대가 설치되는걸까 찾아다니다

머리 위에서 바다를 향구 총구를 내밀고 있는 대포를 봤다.

그제서야 실감이 됐다.

여기서 요새라는게...

그래, 이렇게 아름다움 풍광을 뺏기지 않으려면 요새를 쌓을 수밖에는 없었겠다.

아름다웠던 풍경이고, 아름다운 풍경이고,

앞으로도 계속 아름다울 풍경이니까

지켜내야만 하는게 맞다.

누구라도!

 

 

요새 꼭대기에서 조망한 구시가지 성벽의 아웃라인.

이 모습은 몇 번을 보고 또 봤는데도 지치지 않고 아름답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무감할까?

풍경이 주수입원인 사람들.

이쯤되면 밥벌이는 지겨움이 아니라 황홀함이 되겠다.

(현지인이 들으면 남모를 소리한다고 타박할지도 모르지만...)

 

 

이곳에서 미국의 인기 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촬영하는데 올 해 시즌 6까지 방영했고

2018년 시즌 8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단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이 드라마의 열혈 시청자라고!

올 시즌이 방영되기 전에도 HBO측에 미리 DVD를 살 수 없느냐는 요쳥해서 이슈가 되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티리온 라니스터라는 등장인물 때문인데

왜소증이라는 약점을 딛고 탁월한 지략으로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는 모습이 자신을 닮은것 같아서란다.

전세계를 좌지우지하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최초의 흑인대통령으로 살아가는게 그리 쉽지지는 않은 모양이다.

거리...라는게 그렇더라.

멀리서 보는 것과, 가까이에서 보는 것과의 간극이 하늘과 땅 차이다.

그 차이를 최소한으로 만드는 것,

그게 삶이고, 정치고, 사랑이고, 행복인것 같다.

그렇다면 두브로브니크는 성공한 생(生)이다.

하늘빛과 물빛이 저렇게 다정하게 손을 잡고 있으니...

 

그렇게 내내 잡은 손 놓치 않기를...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6. 10. 19. 09:28

전날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다음날 아침 일찍 다시 찾은 로브리예나츠 요새.

이곳은 서쪽으로부터 쳐들어오는 적을 감시하기 위해 11~14세기에 만들어졌다.

절벽의 높이는 무려 37m.

사실 이곳에 요새를 세울 생각을 맨 처음 한 건 베니스공국이었다.

11세기 초에 막대한 부로 해상왕국을 건설한 베니스는

두브로브니크를 자신들의 속국으로 만들기 위해서 요새를 세울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자유"를 목숨처럼 생각하는 두브로브니크인들이 그 계획을 알아채고 먼저 요새를 세워버린다.

그것도 무려 3개월 만에!

베니스인에게 보란 듯이 저렇게 멋지게!

(두브로브니크 사람들, 정말 대단하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아침밥을 먹고 바로 출발했더니

이번에서 역시 사람이 아무도 없더라.

그래서 한동안 주인행세를 할 수 있었다.

와! 그런데... 진심 주인이었음 싶더라.

이건 뭐 눈돌리는 곳마다 그림 그 이상이다.

창문 앞에 서면 그대로 액자속 풍경화를 눈 앞에 펼쳐놓고

밖으로 나오면 보석같이 빛나는 아드리아해의 푸른 바다가 코 앞까지 다가온다.

나른해지고 몽롱해지는 느낌.

꿈이라고 해야 믿어질 풍경.

 

 

어설프게 찍은 사진마다 다 그림이다.... 라고 말하고 싶었건만,

카메라가 테러리스트다.

 

렌즈 좀...

닦아야겠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6. 10. 7. 08:32

두브로브니크의 경제 중심지 역할을 했었던 스폰자 궁전(Sponza Palace).

과거에는 이곳에서 조폐, 은행, 재무, 세관 등 주로 재정과 관련된 업무를 주관했다.

현재는 고문서와 역사를 기록한 문서들을 보관하는 국립기록보관소 및 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고

건물 왼쪽편은 신유교 연방과 크로아티아 내전 중에 희생당한 사람들을 기리는 방이 있다.

밖에서 볼 때 2층과 3층 외벽장식, 특히 2층 창문장식이 아름다웠던 곳. 

왼쪽 건물과 지붕을 비교해서 보니 스폰자 궁전이 지나온 시간의 흔적이 짐작된다.

 

 

3층의 건물 한 가운데는 역시나 수호성인 블라호의 조각인데 좀 무섭게 생겼다.

(밑에서 올려 찍어서 지못미가 되기도 했지만...)

스폰자 궁전은 시계탑과 연결되어 있는데 연결아치 위에는 작은 종이 여러개 보인다.

아마도 시계탑에서 울리는 종의 근원이 이곳이지 싶다.

그러면 마로와 바로가 있는 종탑은 페이크인가???

싶다가도 에이, 설마하면서 혼자 열심히 북치고 장구를 친다.

(어찌나 혼자 잘노는지...)

 

 

스폰자 궁전 내부를 둘러싸고 사진이 전시되어 있어서 살펴봤다.

전부 흑백사진이었는데 주제가 뭔지는  도통 모르겠더라.

패션화보집 같기도 하고, 기업 이미지 같기도 하고,...

뭐가 됐든 궁전의 내부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오히려 사진보다는 내부를 꾸미기 시작하는 사람에게 시선이 갔다.

처음엔 파티가 열리나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았다.

결혼식 준비를 하는 중이라는걸.

처음엔 궁전에서 결혼식을 한다는게 신기했고.

그 다음엔 그걸 전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현지인의 일상이 부러웠다. 

 

 

잠시 후에 스폰자 궁전으로 들어서는 신부와 신부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설마... 아빠가 아니고 신랑이었을까????)

운좋게 현지인 결혼식을 보나 싶었는데 초대장이 없으면 아예 궁전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그래도 구시가지가 워낙 작아 돌아다니다보면 궁전 앞을 몇 번식 지나가게 되니

본의 아니게 생면부지의 결혼식을 계속 지켜보는 꼴이 됐다.

결혼식은 생각보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졌다.

본식이 끝난 뒤엔 의자가 치워지고 스탠딩 테이블을 설치해서

피로연 비슷한 와인파티가 한동안 이어지더니

완전히 깜깜해지니 라이브밴드의 연주가 시작되면서 댄스파티로 이어졌다.

그야마로 말로만 듣던 축제같은 결혼식이었다.

솔직히 많이 부럽더라.

식장입구에서 돈봉투를 들이밀고 서둘러 식당으로 향하는 우리네 결혼식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어서...

 

다음날 아침,

이른 시간에 다시 찾은 스폰자 궁전은

파티의 흔적이라곤 눈씻고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깨끗했다.

여기가 어젯밤 늦게까지 파티를 했던 곳이 맞나 싶을 정도다.

그런거구나.

이렇게 완벽하게 정리를 해버리니 궁전도 결혼식장으로 내어줄 수 있는 거구나.

헐... 이 사람들, 정말 대단하네!

아침부터 제대로 "멋짐"을 목격해버린 나.

 

부럽고 또 부럽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6. 10. 6. 10:38

두브로브니크에 가면 이곳만은 꼭 가겠노라 작정했었다.

그래서 머무르는 3일 동안 찾고 또 찾았는데

역시나 길치인 나에겐 이마저도 수월하지가 않았다.

현지인에게 물어봐도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서 거의 포기할 지경이었는데

이날은 아예 작정하고 찾아다녔다.

우여곡절...우여곡절... 이리 기웃... 저리 기웃...

결국 최종적으로 착한 현지인의 도움으로 무사히 도착했다.

황송하게도 직접 문 앞까지 데려다 주셔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계속 물어보는 내가 그 분 눈에도 답이 없어 보였나보다.)

입구에 서고 보니 좀 허무하더라.

프란체스코 수도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골목이어서...

 

 

40kn의 입장료를 내고 전시관으로 들어가니 검은색 파일 하나를 챙겨준다.

사진전을 보고 나가면서 반납하란다.

열어봤더니 전시된 모든 사진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게 적혀있었다.

명치 끝이... 뭉클해왔다.

정보가 아니라 전쟁의 참상을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알리고픈 간곡함이 느껴져서... 

그 마음을 받아 천천히 한 장 한 장의 사진을 바라본다.

사는게 더이상 사는게 아닌 사람들이

살기 위해 철조망을 맨 손으로 오르고,

살기 위해 바다 위를 필사적으로 헤엄치고,

빛 하나 없는 어두운 곳에서 숨을 죽인다.

벗어나려는 사람도, 막아서려는 사람도 모두 다 참혹하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결코 겪고 싶지 않은 전쟁이라는 비극.

사진을 보면서

나는 자주 멈춰섰고,

자주 믿기지 않았고,

자주 눈을 감아버렸다.

 

그리고 감사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전쟁이라는 비극에 내던져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6. 10. 5. 08:15

어떤 말도 필요 없다.

사람들으로 북적이는 두브로브니크 골목 골목에

불이 하나 둘 들어오면 그때부터 사랑은 시작된다.

사람을 향한 사랑이 아니라고 열렬하지 말란 법은 없다.

원래 대답없는 사랑이 더 애뜻하다.

오히려 넋을 놓고 대놓고 바라봐도 뭐라 할 사람 없어 사람을 향한 사랑보다 편안하다.

깜빡깜빡 불이 켜지는 순간은,

또 어찌나 애닮은지...

몇 번의 점멸로 밀당을 하더니 한순간 완고하게 불을 밝힌다.

주변은 순식간에 팝콘이 터지듯 빛이 터진다.

사랑이 이렇게 명확하기만 하다면,

사랑때문에 아플 일도, 힘들 일도... 전혀 없겠다.

 

 

오늘 하루치의 수고를 짐 속에 꾸리고 있는 거리의 악사. 

그의 어깨 위로 딱 하루만큼의 자유가 내려앉는다.

노곤한 하루.

그의 하루는 이제 시작일까? 아니면 끝일까?

뭐가 됐든 몸도 마음도 무도 편했으면 좋겠다는 바람.

명(明)에서 암(暗)으로 천천히 바뀌는 두브로브니크 골목에서

나는 고적한 주인공의 데뷰에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어두워진 골목길.

머리 위로 보석들이 쏟아진다.

어쩜 저리 한결같고 어쩜 저리 단정한지...

홀로 눈에 띄겠노라 작정하고 거대하게 몸집을 키운 놈도 없고

원색의 네온으로 화려하게 몸을 치장한 놈도 없다.

마치 한 배에서 태어난 형제처럼 다정하게 어깨를 나란히 한 불들.

이걸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게 밤마다 나는 이 사랑때문에 애닳고 행복했다.

 

지금도 그 밤의 불빛들이 내내 그립고 보고프다.

그래, 이건 분명 사랑이다.

함부러 애틋한 사랑.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6. 9. 21. 08:05

필레문 쪽으로 프란체스코 수도원이 있다면

플로체문 쪽에는 도미니크 수도원과 박물관이 있다.

도미니크 수도회는 스페인의 그리스도교 성직자 성 도미니코에 의해 창설됐고

청빈한 삶과 설교를 바탕으로 한 복음의 진리를 탐구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전의 수도회는 넓은 토지를 소유하고 농사와 학문에 종사했는데

도미니크 수도회는 특정한 성당에 소속하지 않고 곳곳을 돌아다니며

고정수입도 바라지않고 탁발로 의식을 해결하는 생활을 했다.

이들은 복음 전파를 위해 신학의 학문적 중요성을 강조해 대학으로 진출하기도 했다.

도미니크 수도회가 배출한 학자로는 스콜라 철학을 완성한 토마스 아퀴나스가 대표적이다.

 

 

30kn를 내고 수도원 안으로 들어가봤다.

내부는 프란체스코 수도원 성당보다 더 소박했고

햇살 가득한 중정과 성당 내부의 명암차이가 선명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던 선물 하나,

바로 티치아노의 그림이었다.

실제로 보면 그림이 풍기는 아우라가 엄청나서 그대로 붙잡힌 듯 서있게 된다.

 

 

 

도미니크 수도회 성당에서 가장 유명한(?)건 예수의 일생이 그려진 커다란 나이브 아트 나무십자가다.

"나이브(Nalve)"란 단어는 '자생적으로 획득된'이란 의미의 라틴어로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의 순수한 예술적 즐거움을 위해 그린 그림을 뜻한다.

나이브 양식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선명한 색채와 원근법의 무시에 있단다.

개인적으론 동화책 삽화가 떠올랐다.

선명하고, 밝고, 곱고, 귀엽고, 이쁜,

그야말로 순수함으로 가득한 착한 그림이라고 할까?

 

 

입구 반대편은 나이브 아트 갤러리가 있는데

두 번을 찾아갔지만 문이 닫혀 있어 들어가지 못했다.

대신 근처에 있는 갤러리가 있어서 조금이나마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도미니크 수도회 건물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은,

건물 외벽에 있는 삼각 모양의 계단.

여기 정말 예뻐서 하루에서 몇 번씩 와서 바라보고는 했다.

이상하게 이곳만 오면 시간이 멈추버릴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특히 해가 어스름할 때 오면

다른 시간과 다른 세계가 열리는 입구에 와 있는 느낌이 든다.

내게 몽환적인 환상을 품게 만들었던 곳.

도미니크 수도원.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6. 9. 20. 08:29

프란체스코 수도원과 박물관.

1234년 두브로브니크에 정착한 프란체스코회 수도사들은 1317년 지금의 성당을 짓게 된다.

프란체스코 수도회는 성 프란체스코에 의해 창설된 최초의 탁발 수도회로

프란체스코 성인은 "제 2의 그리스도"라고 불린 인물이다.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모든 재산을 버린 뒤 철저한 가난과 겸손의 길을 걸었으며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정신은 복음을 완전무결하게 생활하는데 있다.

하느님에게 반대되는 모든 이기적인 것들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정신대로 사는 것, 그것이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이상이다.

초기에는 육체노동과 걸식을 통해 생활하기도 했고,

가난한 사람이나 병든 사람 특히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는데 성심을 다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작은 형제회"가 바로 프란체스코 수도회 제 1회에 속한다.

 

 

필레문으로 들어가면 성벽투어하는 출입구가 보이고  바로 옆에 사비오르 성당이 보인다.

사비오르 성당과 프란체스코 성당 사이에

프란체스코회 수도원 박물관과 약국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

프란체스코 성당 문 위에는 1498년에 만든 "피에타"조각이 있는데

대지진이 발생했을때 파괴되지 않고 남은 유일한 조각이란다.

피에타 좌우에 있는 조각은 성 제롬과 세례 요한.

(제일 꼭대기에 있는 조각상은.... 뉘신지 홀랑 까먹었다 ㅋㅋ)

성당 첫번재 문 옆에는 귀면상(鬼面像) 같은 돌이 튀어나와있는데

그 위에 올라가 사진 찍는 사람들이 많더라.

아이같이 환하게 웃는 연인들 모습이 너무 이뻐서 카메라 셔터를 찰깍!

 

 

성당은 음악연주홀로도 사용돼서

성당 앞에는 콘서트를 알리는 포스터들이 서있다.

성당의 내부 모습.

정면에는 예수가 구원의 깃발이 매달린 십자가를 들고 서있다.

소박하고 정갈한 내부가 무척 인상깊었던 곳.

그리고 내가 너무 좋아하는 소원초들.

저 간절함들이 모두 다 이루어졌으면...

 

 

수도원 박물관으로 들어가면 제일 먼저 아름다운 안뜰과 만나게 된다.

이날 햇살이 너무 예뼈서 정원은 보석처럼 빛났고

회랑의 그림들은 색이 뿜어내는것 같았다.

그리고 과거 두브로브니크 성문을 개폐에 사용된 열쇠 네 개가 전시돼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열쇠 끝 모양이 다 다르다.

이곳엔 한국사람들에게 엄청나게 유명한 곳이 한 곳 있는데

바로 수도원에서 운영하고 있는 약국 "말라 브라체(Mala Brace)"가 그곳이다.

"말라 브라체"는 작은 형제라는 뜻으로 1317년부터 운영된

유럽에서 세번째로 오래된 약국이다.

이곳이 유명한 이유는 다름 아닌 장미 크림으로 대표되는 화장품 때문이다.

이곳 수도사들 사이에서만 내려오는 방법으로 만든 천연 화장품들인데

장미 크림 외에도 라벤다 크림, 오렌지 크림, 비누, 오일, 화장수 등 종류가 꽤 많다.

(이 크림을 만드는 수도사는 제조 방법을 발설하지 않겟다는 서약을 한다던데...) 

한 개에 60kn로 나도 궁금해서 몇 개 사긴 했는데 사용은 못해봤다.

가족들한테 선물하고 나니 정작 내가 쓸 게 없더라.

(써 본 사람들 말로는 보습력도 좋고 향이 정말 끝내준다고.)

플라카 골목 곳곳에 "수도원 장미크림 판매"라고 한글로 써놓은 곳이 있는데

게스트하우스 주인장 말에 의하면 전부 가짜란다.

수두원 약국에서 파는 것만 진짜라고. 

 

 

성당 종탑에도 올라가고 싶었는데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아 못올라갔다. 

자고로 종탑은 올라가서 내려다봐야 제 맛인데...

요거 하나는 정말 아쉽다.

^^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