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6. 10. 13. 08:18

두브로브니크 성벽 투어는 로브리예나츠 요새까지 올라가야 완성된다.

이곳은 성벽투어 티켓이 있으면 24시간 이내에 입장이 가능하고

만약 티켓을 분실하면 다시 입장권을 구입해서 들어가야 함다.

그러니까 티켓보관도 잘하고  시간 계산도 잘 해야 한다는 뜻!

로브리예나츠 요새를 가기 위해서는 일단 필레문 밖으로 나와야 한다.

나오면 바로 왼쪽에 "나우티카(NAUTICA)"라는 레스토랑이 보이는데

그 바로 아래에 요새 방향을 알려주는 화살표가 있다.

여기에 와서야 비로서 알았다.

오후 7시 30분까지만 입장할 수 있다는걸!

헐~~~~!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가는건 아닌것 같아서

예행연습이라 생각하고 올라갈 수 있는 곳까지 가보기로 했다.

 

 

사실 이렇게 늦게 간 이유는,

이곳에서 보는 석양이 아름답다고 해서 그걸 보려고 일부러 늦게 갔던거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곳도 성벽의 일부분이니 열리고 닫히는 시간도 당연히 같을텐데 그걸 놓친거다.

나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이 많은지 닫힌 입구에서 서성이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그래도 덕분에 혼자서 호젓한 산길도 만끽했고

로브리예나츠 요새에 있는 멋진 성 블라호 조각도 눈여겨 봤다.

(두브로브니크에서 지금까지 본 성 블라호 조각 중 가장 화려하고 가장 아름다웠다.)

저 멀리 성벽의 아웃라인이 그리는 유려한 곡선미를 만끽하다

외벽 한쪽에 숨어있듯 앉아있는 블라호 조각상을 발견(?)했다.

그러고보니 앉아 있는 조각상은 처음 본 것 같다.

다행이다.

뒤돌아서 바로 가버렸다면 이 모든 것들 다 못보고 지나갔을 텐데...

확실히 걷는 시간과 거리만큼 더 많은 걸 볼 수 있는것 같다.

비록 나 혼자 하는 보물찾기지만 ^^

 

 

내려오는 길,

저 위 스르지 산에는 석양을 보려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고

눈 앞에는 에어콘을 수리하려고 지붕 위를 오르는 아저씨가 보인다.

그리고 눈 아래로는 바다에서 하나 둘 돌아오는 카약들의 행렬.

위도, 앞도, 아래도 보이는건 다 그림이고 평화다.

그리고 BGM처럼 점점 푸르게 고요해지는 바다,

하루종일 뜨거운 햇빛에 달궈진 담벼락엔 물에서 올려진 옷들이 차곡차곡 내걸린다.

재네들... 참 따뜻하겠다는 생각.

확실히 바람이 조금씩 차갑긴하다.

서둘러 내려오는데 카약 데스크에 있는 아저씨가 카메라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조각같은 상체였다면... 참 좋았겠으나 낯선 이방인을 반겨주는게 고마워 발걸음을 멈췄다.

매우 익싸이팅하니 내일 카약타러 오란다.

"Maybe...OK!"

내가 생각해도 참 어정쩡한 대답이다.

(죄송하지만 나란 인간이 물을 무지막지하게 무서워해서...)

 

혹시 내일 이 아저씨 다시 만나는건 아닐까?

설마... 아닐거야.

여기 오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닐텐데 ...

그래, 나는 그냥 흔하디 흔한 잠재고객일 뿐이야.

아저씨의 지나가는 말에 잠깐이지만 혼자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여행은 이런 착각마저도 유쾌하게 만든다.

혹시라도 정말로 날 기억하고 아는척을 한다면,

그까짓것 카약!

내가 타고 만다~~~!

매우 익싸이팅하게.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6. 9. 8. 07:56

두브로브니크 성벽 투어 마지막 사진은

민체타 요새에서 바라본 풍경들.

내리쬐는 햇빛을 마주봐야해서 눈은 많이 부셨지만

그래도 아드리아해의 푸른 바다와 구시가지의 붉은 지붕의 하모니는 시종일관 절묘하다.

민체타 요새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선 가파르고 좁은 계단을 올라가야만 한다.

위치와 높이가 달라질때마다 벽에 뚫려있는 구멍으로 보이는 모습은

마치 액자 속에 담긴 풍경화 같다.

생각해보니,

살면서 이렇게 많은 지붕들을 한꺼번에 본 적이 있었나 싶다.

북촌의 기와지붕들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사실 그 기억도 오래전 일이고

지금의 북쪽은 개통없는 개량으로 예전만큼의 정취가 느껴지진 않는다.

뭐가 됐은 경계 지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의 무의식 속에 굳게 자리하고 있는 모양이다.

 

 

두브로브니크에 있는 동안 날씨가 너무 좋아서 시야가 정말 선명했다.

비가 왔더라면 시야도 흐리고 성벽자체도 미끄러워 걸어다니기 위험했을텐데...

(특히 나처럼 잘 넘어지는 사람에겐 최악이라 하겠다.)

그러고보니 여행때마다 날씨운 하나는 늘 좋았던것 같다.

운전먼허 없이 다니는 뚜벅이 여행자에겐 정말 감사할 일.

더위를 거의 않타는 나로서는

내리쬐는 땡볕도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성벽을 내려와 시간을 확인했더니 거의 네 시간이 지나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지루하거나 힘들지 않았다.

아마 일방통행이 아니었다면 한 바퀴 더 돌겠다고 나섰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다시 올라가서 걷고 싶다.

구석구석 남김없이 전부 다.

뚜벅뚜벅.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6. 9. 7. 08:29

레베린 요새.

이곳에서 시리즈 영화(TV 영화?) 촬영지라 매니아들 사이에선 성지로 알려진 곳이다.

(현재까지 시리지는 계속되고 있다고...)

영화 제목을 그대로 사용한 현지 투어도 있긴 하던데 문외한인 나는 당췌 모르겠고...

뭐가 됐든 카메라가 눈독 들일만한 뷰임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눈 앞에 끝없이 펼쳐지는 구시가지의 주황색 지붕의 물결.

같은 주황이지만 색의 농담(濃澹) 이 다른 이유는

내전당시 파손된 부분을 새롭게 보수했기 때문이다.

숨막히는 아름다움 속에 감춰진 피의 시간은

그렇게 울컥울컥 붉은 핏빛으로 지붕 위에 새겨졌다.

 

 

성벽을 걷다가 우리나라 궁궐 지붕의 어처구니와 비슷한 장식이 보여 멈춰섰다.

평범한 굴뚝을 거부한 집주인의 귀엽성있는 센스에 와락 웃음이 터진다.

엄마 아빠를 아장아장 뒤쫒는 아이들 같기도 하고,

이제 막 떠나려는 이를 향해 짐까지 벗어던지고 손을 흔드는 사람 같기도 했다.

이쪽이든, 저쪽아든 다 다정해서 몸이 나른해온다.

또 다시 시작되는 몽(夢).

 

사진을 보고 있는 지금도

스르륵 눈이 감.긴.다.

저 멀리서 꿈 같은 잠이 천천히 걸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뚜벅뚜벅... 총총총.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6. 9. 5. 08:51

성 이반 요새로 가는 성벽 길.

오른편으로 나란히 바다가 함께 걷는다.

욕심없이 아주 평화로운 동행.

저 멀리 유명한 부자카페도 보인다.

(누나 덕분에 한국인들에게 부자카페는 일종의 성지가 됐다.)

혼자걷는 걸음이 방해되는게 싫어서

이곳엔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이만큼의 거리에서 내려다보는 것 역시 나쁘진 않았다.

일종의 전지적 작가 시점이 느껴지는 뷰(View)라고나 할까? ^^

 

 

성벽 위의 여행객의 행복한 모습도 좋고,

성벽 위에서 훔쳐보는 현지인의 평범한 일상도 더없이 좋다.

보기에 좋더라, 좋더라, 좋더라...의 연속.

일생이 늘 이럴 순 없지만

가끔만이라도 이럴 수 있으면 생을 버텨가는게 확실히 편안하리라.

꼭 지금의 나처럼.

 

 

시샘 반, 부러움 반으로 사람들이 말한다.

좋았겠네요. 유럽여행도 가고...

여윳돈이 많으신가봐요. 매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 역시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 월급쟁이다.

독거인이기에 책임질 부양가족이 없다는걸 빼면

내 삶도 다른 직장인의 삶처럼 늘 팍팍하고 간당간당하다.

다른게 있다면 옷이나 가방, 화장품 그리고 식(食)에 그다지 욕심이 없다는거.

옷은 15년 넘은 게 수두룩하고,

화장품은 미샤제품을, 그것도 시즌 세일에 사두는 편이다.

지금 가지고 다니는 가방은 인터넷으로 2만원 주고 사서 3년째 쓰고 있고,

신발은 항상 만원을 넘지 않는다.

(워낙 잘 넘어져서 좋은 신발 사기가 영...) 

하다못해 공항 면세점에서 뭘 사 본 기억도 없다.

여행도 항상 6~8개월 전에 최저가를 찾아서 준비하고

숙소는 일행이 없으면 늘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한다.

여행 중 식(食)이 차지하는 부분이 워낙 적기도 하지만

다녀와서 총경비를 말해주면 다들 화들짝 놀란다.

그 돈으로 유럽여행이 가능하냐고...

 

그러니까...

나는 좀 못 입고, 좀 못 먹고, 잠 좀 못자도 전혀 상관없다.

그냥 여행 자체가 너무 좋을 뿐.

내 두 발로 걸어서,

내 두 눈으로 보고,

내 두 손으로 만져서

내 기억 속에 담는거!

그 하나가 날 미치게 설래게 한다.

뭐가 됐든 살기 위해서는 숨은 쉬어야 하니까...

그러기 위해서 내가 선택한 게 이거다.

 

...여행...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6. 9. 2. 09:02

두브로브니크 성벽 위.

보카(르) 요새에서 성 이반 요새 가는 길.

이곳은 어디서 보든 로브리예나츠 요새가 잘 보인다.

하늘빛 아직 옅은 색이지만 바다빛은 깊다.

성벽 아래 무너진 건물의 담벼락 위에 한 무리의 비둘기가 소풍중이다.

총총총.

음악같을 발자국들...

 

 

성곽을 보수하는 인부들의 손길은 분주하고

어제의 노동은 빨래줄 위에 고스란히 널려있다.

세상에나...

이제는 빨래들에게까지 질투가 생길 판이다.

혼자 웃으며 걷는 성벽 위 산책길.

멀어졌다 가까워지는 성곽의 윤곽은 그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듯

무심하게 고요하다.

고요한 풍경 속에 햇빛만이 분주하다.

시종일관 게릴리차럼 치고 빠지는 전술을 구사하는 태양.

 

이 모든게,

몽(夢)이고 환(幻) 같다.

두 눈 크게 뜨고 꾸는 꿈.

 

꿈 속에 길이 있고, 길 위에 내가 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6. 9. 1. 09:06

두브로브니크 여행의 하이라이트라는 성벽 투어.

해가 더 뜨거워지면 걸기가 힘들대서 게스트하우스에서 아침을 먹고 바로 출발했다.

1.94km의 성벽을 둘러보는데 최소 두 시간 이상이 걸린대서

(나는 분명 그 이상이 걸린테고!)

스플리트에서 산 비스켓과 말린 크렌베리를 비상식량으로 챙기고

중간중간 마실 물은 얼려서 보냉파우치에 넣었다.

나름대로 만반의 준비를 마친 상태!

 

 

두브로브니크 성벽은 10세기에 처음 만들어진 후,

13~14세기에 한 번의 보완을 했고

15세기에 오스만투르크의 위협을 방어하기 위해 더 견고하고 두껍게 증축했다.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육지 쪽 성벽은 두껍고 바다 쪽 성벽은 얇게 만들어졌는데

가장 얇은 곳은 1.5m고 가장 두꺼운 곳은 무려 6m에 달한다.

입구는 필레 문과 플로체 문 두 곳이 있는데

내가 선택한 곳은 필레 문 쪽!

성벽을 걸을 때는 전혀 몰랐는데 내려와서 시계를 보니 무려 4시간이나 있었더라.

 

풍경에 홀려서...

 

이무래도 성벽 투어 사진은 꽤 길어질 것 같다.

오늘은 보카르(Bokar) 요새 부근까지만 ^^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