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4. 7. 24. 07:25

<수탉들의 싸움-COCK>

일시 : 2014.07.11. ~ 2014.08.03.

장소 : 두산아트센터 space111

극본 : 마이크 바틀렛(Mike Bartlett)

번역 : 이인수

연출 : 송정안

출연 : 박은석(존), 김준원(M), 손지윤(W), 선종남(F-M의 아버지)

제작 : 노네임씨어터컴퍼니

 

헐! 이 엄청난 파이터들 좀 보소!

그 어떤 싸움보다 더 치열하고 사생결단의 끝으로 치닫는 단 한 판의 경기.

하필이면 무대 조차도 사각의 링을 떠올리게 한다.

4면을 빙 둘러싼 객석 한 가운데 어떠한 무대셋트 없이 덩그라니 놓어있는 고집스럽고 일방적인 무대.

객석을 찾아 앉으면서 생각했다.

엄청난 싸움의 현장을 눈 앞에서 목격하는 증인이 되겠구나... 하고.

누군가는 그러더라.

<수탉들의 수다>라고...

그런데 난 이 표현도 충분히 이해가 됐다.

말...말...말... 그리고 선택.

등장인물의 계속되는 동어반복들이 나는 그 어떤 폭력보다 더 무차별적이고 잔인하게 느껴졌다.

서로는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존도, M도, W도, 아버지도 참 많이 무례하더라.

그런데 그게 당연하다.

이건 침목회가 아니라 싸움이니까.

싸움에 정의나 예의가 끼어서는 안된다.

전략과 전술을 총동원하고 때로는 느닷없는 기습이 필요한게 싸움이다.

그게 싸움의 기술이고 싸움에 대한 예의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의 싸움은 아주 정직하다.

비록 쳇바퀴를 굴리고 굴리고 또 굴리는 제자리 걸음에 불과한 행위일지라도...

연극을 보면서 나는 누구보다도 존에게 화가 났다.

결정장애자.

존은 지금 정체성 혼란의 문제를 겪고 있는게 아니라 어른이 될 생각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애다.

누군가 결정을 내려줘고 퍼미션을 받아야만 그 다음을 할 수 있는 아이.

미안한 말이지만 그런 사람은 절대 "사랑"해서는 안된다.

그 사람의 성적 취향은 아무 문제가 아니다.

"선택"하지 못한다면 "사랑"할 수 없다.

그게 맞다.

양 손에 동시에 쥘 수 없는 떡도 분명히 있다.

존은 그걸 알고 있으면서 그걸 피하고 외면했다.

댓가는 참혹하다.

당연하게도 존은 잎으로 계속 쿠션을 챙기고 전등을 끄고 M의 침대로 들어가게 될거다.

선택하지 못한 자의 선택.

존의 결론은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

 

사실 이 작품 박은석 배우때문에 선택을 했는데

김준원 배우에게 매혹돼서 왔다.

박은석 배우는 <히스토리 보이즈>에서는 전혀 못느꼈었는데 

이 작품에서는 발음이 특히 ㄷ과 ㅈ 발음이 부정확하더라.

그래도 표정이나 우유부단한 말투, 전체적인 인물표현은 아주 좋았다.

김준원 배우는 이번에 처음 봤는데 작품 속에서 참 압도적인 존재감더라.

작품 속 인물도 그렇고, 그 인물을 표현하는 배우도 그렇고.

M은 표면적으로는 남성적이고 권위적인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작품에서 가장 여성성이 강한 인물이 M이다.

존이 스스로의 존재를 끝없이 확인받고 결정받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M은 존의 부재에 대해 엄청난 겁을 먹고 있는 사람이다.

두 사람이 헤어졌을때 무너질 사람은 존이 아니라 M이다.

그래서 나는 M이 치즈 케이크를 마지막 무기로 존을 붙잡았을때 참 먹먹했다.

존이 갈팡질팡하고 우왕좌왕 하는 동안에도

M의 선택을 언제나 한가지였다.

승자는...

기쁨을 누려도 된다.

쿠션과 전등을 챙겨도 된다.

 

M을... 이렇게 만든 사람... 확실히 존이다.

아마도 존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앞으로의 삶을

두 사람의 관계를 책임져야만 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그게 싸움의 룰이다.

그게 패배를 자초한 사람의 운명이다.

 

파이터의 세계는,

언제나 정직하고 명확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3. 6. 21. 08:00

<I Am My Own Wife>

일시 : 2013.05.28. ~ 2013.06.29.

장소 : 두산아트센터 Space 111

대본 : 더그 라이트

번역 : 김기란  /  무대 : 여신동

조명 : 최보윤  /  음향 : 임서진

연출 : 강량원

출연 : 남명렬, 지현준 (샤롯데)

제작 : 두산아트센터

 

아름다운 여자를 만났다.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를 한줄한줄 정성껏 읽어나갔다.

서로 다른 두 시대를 살아온 여장남자.

 그녀의 삶 전체에 대한 모든 이야기,

그러나 그 인생 전부를 읽어내고도 결코 다 알아낼 수 없는 그런 여자.

샬롯 데 폰 말스도르프.

처음에 대면한 건 프레임 액자 속에 담긴 정물화 한 점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빛,

스르륵 비밀처럼 열리는 문.

알 수 없는 미소와 함께  객석을 휘 둘러보고 거침없이 사라져버리는 그녀, 샤롯데!

끝나고 나서 알았다.

그 미소가 나를 베를린 그륀더자이트(Gruenderzeit) 박물관에 깊숙히 들어가게 했다는 걸...

 

작품을 보기 전,

조금 두려웠었다.

남명렬 배우의 게이스런 모습을 목격하게 될까봐.

그렇게된다면 참 난감하고 당황스럽지 않을까 생각했다.

(배우 남명렬을 개인적으로 조금 알기에...) 

다행이 게이스런 몸짓과 목소리는 없었다.

단지 그녀만이 있었을 뿐.

 

남명렬의 샤롯데은,

질투가 날만큼 아름답고 포근하고 따뜻했다.

일부러 목소리를 여자처럼 꾸미지도 않았고 자세는 오히려 남자의 움직임에 더 가깝다.

그러나 그의 샤롯데는 너무나 섬세하고 세밀해서

여자인 내가 보기에도 질투가 느껴질 정도다.

특히 말의 끝에 여성만이 감지할 수 있는 섬세함이 담겨있다.

소리와 빛,

마치 그녀처럼 중복되며 겹쳐지는 그림자들.

이 작품은 지독한 탐독을 부른다.

남명렬이 읽어준 이 작품은,

오직 한 사람의 이야기였고, 한 사람의 목소리였다.

1인 35역의 모노드라마... 운운은 일종의 미사여구라고 생각하련다.

나는 이 작품 속에서 35명을 만난 게 아니라,

대단한 단 한 명의 여자를 만났고, 봤고, 읽었을 뿐이다.

그녀, 샤롯데!

배우 남명렬의 특유한 발성과 딕션은 내겐 마술이고 최면이다.

뭉개지는듯하면서 명확한 그의 "ㅅ발음"을 들으면서

나는 또 다시 이곳과 저곳의 경계에서 서성였다.

그 목소리가 신비와 현실, 거짓과 진실, 그와 그녀 사이 어딘가로 나를 데리고간다.

아주 자연스럽고 평범하게!

 

 

샤롯데에게 누군가 물었다.

가구가 망가지거나 오래되면 어떻게 하느냐고,

수리하거나 버리느냐고.

그녀가 대답한다.

 "나는 절대로 가구를 수리하거나 버리지 않아요.

  그 모든게 존재했다는 증거죠.

  모든 것은 보존해야 해요. 있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만 합니다.

  이건 기록이예요. 삶의 기록!" 

순간 나는 그녀의 오래된 컬렉센 중 하나가 되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품었다.

그녀의 거짓들이 그녀에게 그랬듯

(어디까지 타인의 관점에 불과할뿐이지만)

그게 내게도 자가처방이 되어줄지도 모른다는 절박함.

아! 그렇구나!

이 작품은 절박한 기록에 대한 이야기었구나.

문득 시계추가 움직이며 커다란 소리를 낸다.

나치와 공산주의라는 서로 다른 두 시대를 살아낸 그녀가 남긴 소리.

그 소리가 마치 급작스럽게 들린 총소리처럼 가슴을 뚫고 지나간다.

내 오른쪽 입꼬리도 살짝 올라간다.

꼭 그녀처럼... 

 

나는 그녀를 읽었다.

비록 전부는 아닐지라도.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