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5. 7. 23. 08:53

바실리카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Basilica Santa Maria del Fiore).

정식 명칭보다는 두오모로 불리는 피렌체의 상징.

두오모 성당은 1296년 아르놀포 디 캄비오가 산타 레파라타(Santa Reparata) 성당이 있던 자리에 짓기 시작해서

1436년 브루넬레스키에 의해 완성했다.

그 뒤 정면 파사드는 19세기에 원래의 것을 허물고 다시 재건해 지금의 모습이 갖추게 됐단다.

건축 당시 삼색 대리석은 이탈리아 전역에서 가장 유명한 대리석만을 사용했다.

흰색 대리석은 카라라(Carrara)산, 분홍색은 마렘마(Marremma)산, 녹색은 프라토(Prato)산.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로 유명세를 치루고 있는 쿠폴라는

역시 브루넬레스키의 작품으로 거대한 붉은 타일로 덮여 있다.

15.5m의 거대한 지름을 가진 쿠폴라는 당시 사다리 없이 지어진 가장 큰 건물이었단다.

베드로 대성당의 쿠폴라 공사를 맡은 미켈란젤로가 두오모 쿠폴라를 보고 그랬단다.

"산 피에트로 대성당의 쿠폴라는 피렌체 두오모의 쿠폴라보다 크게 지을 수는 있어도 아름답게 만들 수는 없다"

 

 

160m 높이의 두오모 쿠폴라는 463개의 계단을 올라야 정상에 이를수 있다.

하지만 당연한 말이지만 정상에 오르면 쿠폴라를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

(고래 뱃 속에서 고래의 전체 모습을 볼 수 없듯이)

부지런히 내려와 옆에 있는 조토의 종탑 414개의 계단을 또 부지런히 올라간다. 

드디어 확 트인 피렌체의 전경과 함께 그림같은 두오모 쿠폴라의 모습이 눈 앞에 펼쳐진다.

카메라 셔터를 쉴새없이 눌러댄다.

말 그대로 아무렇게나 눌렀는대도 엽서같은 사진이 쏙쏙 찍혀 나오는 기적을 경험한다.

낮게 내려앉은 구름은 환상적이었고.

구름 사이로 한줄기씩 내려오는 햇살까지 축복같다.

잔인하게...

아름다운 풍경이다.

 

 

때마침 머리 위에서 정각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종치기가 시간맞춰 나와서 의식처럼 묵묵히 줄을 당길거라 기대한건 아니지만 

그대로 드러난 기계장치로 울리는 종은 살짝 당황스럽더라.

한 집 걸러 한 집이 성당인 유럽에서 종소리를 듣는건 여러모로 장관이다.

근데 이게 또 일제히 같이 울리고 같이 멈춰주면 모르겠는데

미묘한 시간 차이를 두고 주체적으로 울려댄다.

일종의 불협화음에 웃음이 절로 났다.

조카녀석이 귀를 막으며 농담처럼 말한다.

"이거 하나 딱딱 못맞추나???

조카녀석 귀에도 산발적으로 울리는 종소리가 좀 이상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난 그 불협화음이 참 귀엽고 경쾌하더라.

마치 소풍 온 초등학생들의 소리같아서...

 

 

조토의 종탑에서 내려다본 피렌체의 모습은

두오모 쿠폴라에서 내려다본 모습과 높이감도 거리감도 완전히 다르다.

역시나 우뚝 솟은 베키오 궁전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고

저 멀리 레푸블리카 광장의 회전목마도 보인다.

시뇨리아 광장을 가다 길을 잘못 들어 레푸블리카 광장에 들어갔는데

움직이는 회전목마를 보고 정말 깜짝 놀랐었다.

탈까 말까 망설이다 돌아섰는데 이제와서 뒤늦은 후회가...

보수 중이라 가림막에 덮여있는 산 조반니 세례당도 보이고

또 역시나 빼곡한 낙서들도 보인다.

심지어 한글로만 채워진 부분도 있다. 

 

형준, 석규, 수현, 윤빈, 선호, 희주...

우리...

제발 이러지 말자.

눈치보며 새겼을 당신들 이름이

당신들의 추억을 보장하진 않는다.

눈에 담고, 마음에 새기고, 머릿속에 간직하면

그게 훨씬 더 오래, 더 깊게 남는다.

여기에 새긴 당신들 이름이

다른 사람들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흉물이 되고 있다는거,

꼭, 꼭, 꼭 기억해줬으면...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5. 7. 22. 08:08

조토의 종탑(Companile di Giotto).

14세기말에 조토가 디자인하고

제자 안드레아 피사노와 프란체스코 칼렌티, 루카 델라 로비아에 의해 완성된 높이 84m의 거대한 탑.

이 곧게 뻗은 직선의 종탑은 단정한 아름다움과 함께

신을 향해 나아가려는 인간의 열망이 담겨 있다.

피렌체 대성당보다 한 세기 뒤에 만들어 졌음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삼색 대리석을 사용해 마치 한 건물같은 조화를 만들어내는 종탑.

유럽을 여행하다보면 도시마다의 색감이 느껴지는데

로마는 붉은 흙빛이,

피렌체는 상아빛 흰색이 먼저 떠오른다.

그것도 시간의 흔적이 정갈하게 베어있는 흰색.

 

 

463개의 계단을 찬찬히 오르다보면 어느새 정상에 도착한다.

점점 좁아지는 계단은 정국엔 한 사람만 겨우 올라갈 정도만 협소해진다.

내려오는 사람과 만나기라도 하면 벽에 바짝 붙어서야 할 정도.

그러니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놀이처럼 올라가길 권한다.

조그만 창을 통해 깊숙히 들어오는 햇빛도 보고

램프가 비추는 그림자도 내려다보고,

동굴 탐험을 하듯 그렇게 천천히...

나는 463계의 계단을 오르면서 자주 벽을 쓰다듬었다.

사람의 손을 타서 반질반질해진 벽.

지금보다 더 많은 시간이 지나면 이 벽이 거울처럼 변하지 않을까 싶다.

나란히 걷는 실제의 나와 거울 속의 나.

생각해보니 나쁘지 않겠다.

다정해도 보이고.

 

조토의 종탑 문양의 주제는 "인간의 구원"이란다.

제일 아랫층 육각형 대리석에는 

인간의 창조와 농업, 예술, 법률 등에 관한 내용이 조각되어 있고,

세 번째 층에는 세례자 요한, 시빌리 무녀, 고대 예언자들의 조각상이 모셔져 있다.

하지만 역시나 모두 모사품들.

진품는 두오모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는데

하필이면 보수 중이라서 아예 봉쇄되어 있다. 

그렇다면 도나텔로의 "막달라 마리아" 역시도 못본다는 의미다.

피렌체에서 제일 보고 싶었던게 이 조각이었는데...

또 아쉬움이 한웅큼 남았다.

 

 

두오모 쿠폴라에 오르면서 가장 안타까웠던건

여기 저기 무자비하게 쓰여있던 낙서들.

곳곳에 붙어 있는 "Do not write on the wall" 안내문이 무색할 지경이다.

심지어 스프레이 페인트로 커다랗게 쓴 글씨와 문양들도 있다.

꼭 그래야 했을까?

자신이 왔다 갔다는 흔적을 이런 식으로 남겨야만 했을까?

많이 씁쓸했다.

한글로 쓰여진 낙서가 나올 때마다 내가 쓴 것도 아닌데 고개가 숙여졌다. 

(지정훈, 지상윤, 전영교는 정말이지 아주 많이 부끄러워 해야만 한다!!)

이쯤되면 철망에 걸린 자물쇠 정도는 애교라고 해야겠다.

하지만 이것 역시 절대 금물!

무분별하게 채워진 자물쇠 때문에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넘어가는 문화재가 얼마나 많은데...

노파심에 애궃은 어린 조카에게 한 마디 했다.

펜으로 새겨 놓고, 열쇠로 채워야 믿어지고 기념되는 사랑이라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사랑의 맹세는 가슴  깊은 곳에 간직하는 거라고...

조카녀석이 자신은 절대로 이런 짓 안할거라고 믿으란다.

별 거 아닌데 왠지... 안심이 되더라.

 

두오모 쿠폴라 정상에 올라 바라본 피렌체 전경.

저 멀리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과 산타 크로체 성당이

바르젤로 미술관과 베키오 궁전이 손에 잡힐듯 가깝다.

마치 신이 된 것처럼  내려다 본 세상은

천지창조를 끝난 하나님의 심정과 비슷하더라.

"보시기에 참 좋았다..."

하지만 신으로의 빙의도 짧은 일정 앞에서는

바벨탑 허물어지듯 우르르 무너진다.

 

나는 그저 언제까지나

아쉬움 가득한 인간일 뿐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