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1. 7. 12. 06:28


연극 <돐날>
연출 : 최용훈
기간 : 2011.06.03.~2011.07.10
장소 :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
출연 : 길해연, 홍성경, 서현철, 김왕근, 김은석,
        황정민, 
정승길, 정세라, 김문식 외.


극단 <작은 신화>가 차단 25주년을 맞아 기념 공연으로 3편의 연극을 대학로에 올리고 있다.
<가정식백만 맛있게 먹기> , <돐날>, <황구도>
<돐날>은 부제가 "돌아버린다" 란다.
"돐날"이라는 사랑스럽고 앙증맞고 행복한 단어 속에 이렇게 비루하고 비참한 일상이 담길 줄은 정말 몰랐다.
그런데 더 비참한 건 이 일상이 지극히 현실적이고 적나라하게 사실적이라 할 말이 없다는 거다.


혁명을 가고 비루한 일상만 남다!
혁명과 변혁의 시대를 살았던 386세대의 자기파괴적인 종말!
8년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 연극 <돐날>은.
서로의 상처를 감싸안는 마지막 장면을 의도적으로 삭제해버렸다.
그런데 아마도 마지막 장면이 예전과 같았다면 난 아마도 이렇게 공감하면서 보진 못했을거다.
최용훈 연출 역시도 말했다.
"재공연을 준비하면서 10년 전 초연 때와 비교해보니 당시 아픔과 좌절이 해결되거나 좋아진게 전혀 없었다. 오히려 더 좌절하고 절망감을 느끼게 됐다"
그는 관객들이 위안을 얻어가지 않길 바랐단다.
그의 의도적은 결말은 아주 적절했고 그리고 절실했다.

 

모든 게 자신만만하고 적개심마저도사랑했던 젊은 시절은 사라지고
사는 게 지겹고 신물나는,
그래서 맨하탄 쌍둥이빌딩처럼 한 방에 무너뜨리고 싶은 삶으로 전락해버린 일상!
마치 그 일상을 비웃든 극악스럽게 웃어대는 사람들.
(돐잔치에 모인 사람들의 괴기스럽기까지하던 웃음소리는 공포로 다가온다.)
폭탄처럼 쏟아지던 빗소리와
어지럽게 흩어지던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
그리고 엄마의 포악과 저주 속에 사생결단처럼 울어대던 아기.
잔칫날의 주인공이여야 할 아이는 마치 갓난아이처럼 강보에 싸여있다.
(부모의 사랑을 받을 수 없었던 아기는 아마도 자라기를 거부한 모양이다.)
"시간이 흐르면 점점 익숙해지는 게 당연한데 왜 사는 건 그렇지 않니?"
정숙이 친구에게 묻는 질문은
우리를 일상의 공포로 몰고간다.
그리고 이 대사는 우리 모두의 독백이자 처절한 고백이다.
후줄근한 삶을 연명해야 하는 우리는,
반미운동하던 사람은 미국이 만든거라 안전하다며 피라이드 주방세제를 팔고
땅투기 아비 덕에 돈푼 꽤나 만진 놈은
인맥형성을 위해 다니는 경영대학원의 학위 논문 대필을 거래한다.
(그 당당함이라니...)
뒷담화와 뒷거래의 찬란한 일상이여~~!
"너 왜 이렇게 됐니?"
그러나 이런 질문을 하는 본인의 삶 역시도 모든 사람의 삶처럼 거짓과 감춤의 삶일 뿐이다.
다른 사람처럼 평범하게 살기를 바라는 소망은
정말 소망에 불과한건가?
몸 속으로 무딘 칼끝을 찔러넣는 인생.
만약 누군가 데려다 줄 수 있다면
엄마 뱃속으로 돌아가 다시는 세상으로 나오고 싶지 않은 그런 인생!
세상 모든 남편들의 일생은 비참하고
세상 모든 아내들은 삶은 또 그만큼 박복하다.
그리하여 삶은 또 다시 언제나처럼 비루하고 비참하다.
내가 세상을 사랑하지 않아서였나?
아니면 세상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였나?
자기분열의 결말을 지켜보는 관객에게
자기분열의 질문이 남는다.

피투성이 무대와 현란한 비발디의 사계 속에서...

 

8년 만에 재공연된 <돐날>은
길해연, 홍성경, 서현철 등 초연 때 섰던 배우들이 그 역할 그대로 돌아와 무대를 빈틈없이 채웠다.
그리고 배우 정승길.
이 멋진 배우들을 한 무대에서 볼 수 있다는 건 더없는 행운이었다.
비록 비루하고 비참한 삶의 관음이었지만
그 비루함을 채우는 배우들의 열연은 풍요로움 그 이상의 만찬이었다.
뭐라고 명명해야 할까?
이 거침없는 포만감을...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10. 9. 28. 08:18

<소문> - 오기와라 히로시


몇 년 전 출판된 <마케팅 2.0 iWOM>이라는 책을 아십니까?
마케팅 2.0 시대의 새로운 이론이자 홍보 기법이었던 WOM을 설명하는 책이었죠.
(지금은 벌써 마케팅 3.0 세대이니 시간 참 무지 빠르네요. 뭐 솔직히 2.0도 이해하고 있다고 말할 순 없지만 말이죠.)
"WOM"은 Word of Mouth의 약자로 쉽게 말하면 “입소문 마케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덧붙이자면 “WOM”이란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확산되는 모든 언어, 비주얼, 행동, 유행 등을 총칭하는 말입니다. 즉, 입소문을 사회적 확산의 형태로 확장한 개념이죠. 이 WOM의 마케팅 기법을 이용한 모든 전략은 “iWOM"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설명하니 왠지 머리가 복잡하죠?
그럼 이 방법은 어떤가요?
사람들은 자신에게 의미 있게 각인된 어떤 것이 있다면 일주일동안 평균 2.5명에게 그것을 직접 말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게 negative한 것이든 positive한 것이든 말이죠.
그런 식으로 구전에 구전이 계속 되다보면 일주일이면 무려 10만 명에게 각인됐던 내용이 전달된다고 하니 우습게 여길 일은 절대로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기 이 "WOM 마케팅“이론을 가지고 발 빠르게 소설을 쓴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그것도 사이코 서스팬스 소설을 말이죠.
1956년 태어난 작가 오기와라 히로시는 일본에서는 꽤나 인기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 중 한 명이라고 합니다.
<모방범>, <낙원>의 작가 미야베 미유키가 여성의 시각과 감성으로 사건을 보고 풀어나갔다면 오기와라 히로시는 남성의 시각에서 여성의 입장을 응용하고 도움을 받으면서 사건을 풀어나간다고 할까요?
꼭 여성과 남성의 중간에 서 있는 그런 느낌입니다. 생물학적으로 그렇다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감성적으로 그렇다는 의밉니다.

"한밤중에 시부야에는 뉴욕에서 온 살인마 레인맨이 나타나서 소녀들을 죽이고 발목을 잘라 간대! 하지만 뮈리엘을 뿌리면 괜찮대!"
신제품 향수 뮈리엘을 둘러싼 소문의 내용입니다.
상품의 광고를 위해 은근히 WOM마케팅을 이용한 거죠.
향수 모니터를 위해 모여든 패션 감각이 남다른 여고생들에게 설문 조사(표면적 의도)를 하면서 기획회사 사장은 지나가는 말로 이런 거짓 소문(실질적 의도)을 은근히 흘립니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라는 단서를 붙이면서 말이죠.
사실 “WOM" 마케팅은 인간의 뒷담화 욕구와 모방심리를 교묘히 이용한 뒷공작 마케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학적(?)으로 표현하자면 Dark side of the moon 이죠.
성공만 한다면 low cost에 비해 엄청난 high return을 얻을 수 있는 전략이죠. 모든 기업의 최대 목표이자 영원한 숙제인 ”low cost-high return"
“WOM 마케팅”은 확실히 이 전제에 정확히 부합되는 전략이긴 합니다. 어디까지나 성공했을 때의 일이지만요.
negative한 WOM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도산하는 회사도 생기는 현실이기에 이제 소문을 그저 단순히 소문으로만 듣고 넘기기엔 위험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분명히 “아니 뗀 굴뚝에 연기는 나는 법“이니까 말입니다.
WOM이 퍼지는 가장 큰 심리적 요인을 꼽으라면 아마도 인간의 잠재적인 공포와 불안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혹시 나만 모르고 있었던 거 아니야?”, “나 혼자 유행에 뒤떨어 진건가?” 혹은 “나만 모르고 있어서 다른 사람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감, 현대인의 신경증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은밀한 공포감의 일종이죠.

뮈리엘의 향수와 관련된 소문과 똑같은 살인사건이 발생한 시부야의 공원.
발목이 잘린 10대 소녀의 시체.
범인을 찾지 못한 체 우왕좌왕하는 사이 두 번째 사건 현장이 발견되고 시체의 두 발목은 역시나 잘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번째 사건의 희생자는 담당 남자 형사 딸의 친구이기도 합니다. 남형사와 파트너로 함께 두 피해자의 방을 조사하던 여형사는 그곳에서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죠.
뮈리엘 향수병과 두 사람 모두 그 향수 모니터링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사실을 말이죠.
결국 경찰 조사는 광고회사와 광고를 위탁받은 기획회사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도시괴담이 되어버린 살인자 레인맨!
그리고 레인맨에 의해 자행된 쾌락 살인의 정체!
사건의 해결은 세 번째 시체가 발견되면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합니다.
세 번째 시체는 비록 한 짝이긴 하지만 잘린 발목 하나가 함께 발견됩니다.
거꾸로 칠해져 있는 페티큐어의 꽃다발 방향과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페티큐어 색, 그리고 세 번째로 발견된 사건 현장이지만 시기적으로 가장 먼저 일어난 사건, 즉 그 사건은 뮈리엘 향수 관련 소문의 시작일보다 훨씬 전에 일어난 사건이었죠.
그렇다면 향수 뮈리엘은 정말 이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걸까요?
아니면 계획된 잔인한 홍보 프로젝트의 연속이었을까요?
10대 소녀의 잘린 발목.
여성의 발에 대한 페티시즘(Fetishism)을 가진 성도착자에 의한 범죄?
인격체가 아닌 물건이나 신체 부위 등에서 성적 만족감을 얻는 페티시즘은 원시 신앙 중 하나인 주물숭배와 비슷한 현상으로 성적 도착증의 하나죠.
온전한 인격체로서의 인간 전체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 특정 신체 부위를 사랑하고 집요하게 집착하는 정신 이상 증상이죠.
물론 범인이 페티시즘적인 인물이긴 하지만 묘하게도 이 소설은 사건의 시작과 사건의 결말이 서로 교묘히 교차하면서 엇나갑니다.
이야기는 사이코 서스팬스 소설치고, 그리고 일본소설 치고는 촘촘하지 않고 엉성한 편입니다. 시작의 강렬함을 끝까지 쭉 끌고 가진 못하죠.
결말 부분의 반전도 사실 조금 예상했던 내용이라 그다지 충격적이지도 않았지만 제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충격적이었던 건 WOM이란 마케팅 이론을 적용해서 하나의 꽤 그럴 듯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는 참신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전문적인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요즘의 마케팅 기법과 홍보이론들을 엿보는 재미도 제법 있습니다. 낯선 세계를 들여다보는 “지적 관음증”의 발동이죠.
제가 지금 사이코 서스팬스 소설을 소개하면서 마케팅의 재미를 이야기하고 있네요.
뭐 이것도 독서의 매력이라고 박박 우기렵니다.
의외의 발견에서 오는 만족감이었다고...
혹시 본격적인 일본 추리 소설을 읽고 싶다면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을 읽어보라 권하고 싶네요.
이야기가 좀 길긴 하지만 촘촘한 구성과 지적인 기발함, 괴이함까지 느낄 수 있습니다.
이상 별 희한한 재미로 책읽기를 하기도 하는 달동네 책거리였습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