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0. 11. 3. 06:01
제목만 보고는 이 책을 읽을 것인가 말 것인가 망설였다.
칙릿이거나 뻔한 로맨스 소설이겠거니 했다.
이 계절에 칙릿을 읽는 건 왠지 처량해 보여서...
지은이 조진국은 소위 잘나가는 드라마 작가다.
<두근두근 체인지> <안녕, 프란체스카>, <소울메이트>
쾌나 매니아층을 형성했던 드라마다.
첫 장편소설이긴 하지만 그전에 두 권의 에세이를 출판했다.
<고마워요, 소울메이트>,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
대략 어떤 내용이고 분위기일지는 감지되고도 남는다.
이 소설은 2009년 9월부터 11월까지 <코스모폴리탄>이란 잡지에 연재했단다.
패션모델, 스타일리스트, 작가, 네일 아트스트
등장인물들과 어울리는 잡지에 연재했다는 게 아무래도 플라스 효과가 되지 않았을까?
적당히 감각적이고 적당히 감상적이고, 적당히 유치하다.
소설의 제목인 "Kiss Kiss Bang Bang"은
Pizzicato Five 노래 제목이란다.
들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책을 읽고 나면 어떤 느낌의 음악일지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또 다시 류이치 사카모토 탱고 음악이 등장한다.
글 쓰는 사람들에게 유난히 영감을 많이 주는 류이치 사카모토.
한 번 찾아서 들어봐야지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소설은...
4명의 주인공이 각자 화자가 되어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하는
흔하고 흔한 로맨스 소설이이다.
솔직히 두 명의 화자는 유치하고 뻔했고
두 명의 화자는 그런데로 읽어줄만 했다.



# Poison prince ㅡ 나현창 / 25세 / 삼류 모델
# My heart is as black as night ㅡ 민서정 / 33세 / 스타일리스트
# Writing to reach you ㅡ 정기안 / 34세 / 소설가
# Broken bicycles ㅡ 조희경 / 33세 네일 아티스트

때로는 한 문장에, 혹은 한 단어에 꽂혀 끝까지 책을 읽게 될 때도 있다.
"Writing to reach you"
이 문장이 내게 그랬다.
나도 가끔은 분홍색 코끼리를 보는 사람이기에...
1941년 만들어진 디즈니 애니메이션 <덤보>
그 애니메이션에서 아기 코끼리 덤보가 샴페인을 먹고 취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덤보 눈에 분홍색 코끼리들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게 보이게 된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술에 취한 사람이 환각을 보는 걸 분홍색 코끼리를 본다고 한다나....
그렇다면 나는 더 심한 편일지도 모르겠다.
술에 취해서가 아니라 맨 정신으로도 분홍 코끼리를 보니까 말이다.

이 소설에서 나는 로맨스를 읽거나 줄거리를 읽진 않았다.
냄새, 낌새를 읽었다.
하얀 눈으로 사방이 덮여있다고 그 속까지 깨끗한 건 아니다.
어차피 지저분하게 드러나게 돼 있는 걸 잠깐 거짓말로 만드는 것일 뿐.
"영원히" 라는 말은 어차피 없다.
잠깐 스쳐가는 찬란한 순간만 있을 뿐.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5. 21. 12:48
"연극열전 시리즈3"의 다섯 번째 작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좀 특별하게 기다렸던 연극이었다.
예매도 일지감치 했었고...
공교롭게도 나중에 잡힌 세미나와 겹쳐지는 바람에
세미나 중간에 두시간 정도 도망(?)치는 결과까지 초래하게 만든 연극이다.
(다행히 세미나가 서울대병원이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최고의 드라마 작가 노희경이 1996년도 자신의 동명 드라마를 연극 대본으로 만들고
"베토벤 바이러스"의 PD 이재규가 직접 연극 연출을 했단다.
두 사람만의 조합으로도 끔찍하게 궁금했었다.
(그러면서도 생각했다. 이 연극을 표민수 PD가 연출했다면... 하고) 
1996년 MBC에서 방영했다는 이 드라마를 나는 보지 못했었다.
주현, 나문희, 김영옥, 이민영, 이종수
이들이 한 가족으로 나왔단다.
그리고 2010년 나는
최정우, 송옥숙, 이용이, 박윤서, 이현응이 만든 가족 이야기를
연극이라는 전달 수단을 통해 바라본다.




이 세상 모든 이야기들의 근원은 "가족"이라고 했던가?
함께 있음에 충분히 말하지 못하고 전하지 못하게 되는 모든 감정들이
아내의,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을 통해 전면에 등장한다.
뻔한 이야기에 뻔한 결말인데
그리고 그걸 다 알고 있는데
공연장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통곡보다 깊고 서러운 눈물을 흘린다.
나는 참 많이 불편해졌다.
울어야 하는데... 울어야 하는데...
어쩌면 내게 "가족"이란,
솔직한 감정의 표현조차도 도저히 불가능한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느낌은 "감히..."에 닿아있다.
반성보다 더 깊은 죄책감이 오히려 두 눈을 부릅뜨고 버티게 했는지도...
그날 아마도 나는 공연장에서 눈물 한 방울 안 흘리는
최고로 "독한년"의 모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치매에 걸린 노모, 의료사고로 월급쟁이 의사가 된 남편,
삼수생 아들, 대학졸업 후 피곤한 직장인이 된 딸.
거기다 도박에 빠진 동생에 지지리 궁상 올케까지...
그리고 불현듯 선고된 자궁암 말기의 "며느리이자 아내이자, 엄마이자 누나"인 한 여자.
굳이 노희경식이 아니더라도 신파의 모든 요소가 이 연극 속에는 다 들어있다.
자, 우리는 이미 완벽하게 준비가 다 됐다.
이제 앉아있는 너희들도 울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는가....
꼭 그렇게 묻는 것 같다...
극장을 나서면서 "가족"을 생각하면 좋겠다고 연출가 이재규는 말했는데
나는 극장을 나서면서 "가족"이 아닌 "드라마"를 생각했다.
어쩐지 내겐 현실적이지 않다.
자신이 죽은 후 가족들을 힘겹게 할 치매 노모를 생각하며 함께 죽자며 목을 조르는 장면도
아들이 아버지에게 대학 발표날까지만이라도 엄마를 살아있게 해달라고 울먹이는 장면도
딸에게 "말 안해도 알지? 넌 나야!"라고 말하는 주인공의 대사에도
난 불안한 눈만 껌벅인다.

어.쩌.지?
난 참 많이 불편해지고 말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
내겐 "세상에서 가장 불편한 이별"이 되고 말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