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 책거리2009. 8. 3. 06:35
 <스타일> - 백영옥


스타일
 

"Hyorish"와 “신상녀” , "Rainism"

한때 우리나라 스타일을 대표하는 단어라고 할 수 있죠.

<스타일>이라.... 참 스타일 안 따라주는 제가 말하기엔 뭣 한 부분이긴 하지만 그래도 책이라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잠시 쉬면서...

(사실 저의 스타일이라 함은 “럭셔리”는 꿈도 못 꾸는 “없셔리”에, 실용이라 박박 우기는 “싼티” 패션인 관계로.... 근데 요즘 물가가 너무 올라 이러기 정말 힘듭니다...)

 

혹시 “칙릿(chick-lit) 소설”이라는 말 들어 보셨나요?

“젊은 여성”을 뜻하는 “chick"이라는 단어와 "문학”을 뜻하는 “literature"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신조어인데요, 영미 문화권에서 시작된 젊은 여성을 겨냥한 일명 “꽃띠 문학”을 지칭하는 문학 장르입니다.

칙릿 소설의 시작은 <브리짓 존스의 일기>가 그 시작이라고 하네요.

그 후에 정말 물밀듯이 쏟아졌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섹스 앤 더 시티>, <워커홀릭>, <쇼파홀릭>...

유행에 뒤처지면 혈압 무지 올라가는 우리나라도 문학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우리나라도 <달콤한 나의 도시>, <오늘의 거짓말>, <달의 바다>, <아내가 결혼했다>, 오늘 소개하는 <스타일>까지 칙릿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책들이 상당히 많이 출판되어 있답니다.

공통점을 꼽자면 일단은 무지 재미있다는 사실입니다.

내용 자체는 좀 가벼운 감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시대 변화를 보여주는 문학적 흐름임에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네요.

“신데렐라 콤플렉스”와 “여자 온달 신드롬”의  현대판 해석이라는 생각도 개인적으론 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killing time" 소설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답니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죽이기에 적당한 내용이라는 뜻이죠.(절대 시간 낭비의 개념은 아닙니다.... 저 역시도 기본적으로 간을 낭비하는 만드는 책은 세상에 없다는 주의거든요.)


패션지 「A 매거진」 여기자인 서른 한 살 이서정.

그녀는 직장 생활 8년차로 예금도, 보험도, 그 흔한 펀드에 애인 하나 없는, 현재 고민사항은 44 싸이즈 스키니진을 입고 그 체험담을 써야 하는 실로 엄청난 과업 성취를 주문받은 안타까운 인생입니다.

뭔 놈의 여자들은 전부 44에 환장을 했는지 본의 아니게 44 싸이즈의 강한 압박에 그녀는 괴로운 다이어트를 고민하고 있죠. (패션 잡지에 대해 너무 실감나게 그려 대단하다 했더니 실제로 작가 백영옥은 그쪽 일을 한 전과(?)가 있네요.)

거기다 전설적인 요리 평론가 “닥터 레스토랑”의 정체를 파악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까지 부여 받은 상황입니다.(제 발에 제가 넘어진 꼴로다.....)

음식칼럼 하나로 유명 레스토랑들을 초토화시킨 이 비밀스런 요리평론가는 매번 바뀌는 메일 주소만 알려져 있을 뿐입니다. 서정은 '닥터 레스토랑'의 이름은 커녕, 나이도, 주소도, 성별조차 모르고 있는, 일명  벽 보고 대화를 시도해야 하는 팡당한 시츄에이션에 그야말로 내던져 있습니다.(아~~ 죽일 놈의 밥벌이여~~~!!)

거기다 현대 직장 여성의 최대 관심 중 하나인 남자도 역시 등장해 주십니다.

애매모호한 선을 오고가는 직장 선배 김민준, 그리고 오래전에 선을 보기로 한 자리에서 만나보지도 못하고 퇴짜를 맞힌 의사였던 박우진이라는 남자까지...(이 남자 은근 신비주의 풍깁니다.)


<스타일>은 한마디로 젊은 세대들의 감각과 욕망에 대한 가벼운 터치의 소설입니다.

패션, 영화, 음식, 명품, 다이어트, 사랑, 등 다양한 소재들을 숨가쁘게 그러나 자연스럽게 쏟아내고 있죠. 그 속에 유행처럼 수시로 바뀌는 요즘의 젊은 세대들의 욕망들 또한 빠르고 다양한 방법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스타일>에 등장하는 이런 다양한 욕망과 욕구들은 또 다른 욕망들과 만나면서 때론 심한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고, 뜻하지 않은 곳에서 화해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에 휘둘려야만 하는 현실과 내면의 목소리 사이의 갈등, 명품에 대한 소비 욕망과 빈곤층에 기부금을 내고 싶은 욕망 사이의 갈등, 44사이즈의 스키니 진을 입고 싶은 마음과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고 싶은 마음 사이의 갈등.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계속해서 이런 다양한 욕망들과 갈등하게 되죠.(뭐 이런 것도 갈등꺼리가 되는 거냐고  묻는다면 결단코 갈등꺼리가 된다고 그것도 충분히 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갈등의 가장 오래고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오해와 진실 사이의 갈등이 아닐까요?

근거 없는 소문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 또한 근거 없는 소문에 의해 상처를 받고, 오해가 쌓여 진실과 점점 멀어지게 되는 갈등.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개인적인 루머와 외적 욕망, 피상적 인간관계에 의지해서 살아가고 있죠. 모두가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말입니다.

주인공 이서정은 그러한 삶에 회의를 느끼고 힘들어 하면서도 결국엔 현실 도피를 택하지 않고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는 방법을 찾습니다.

그녀는 결심하죠. 자신의 삶과의 화해를...

자신이 주변 상황들과 인물들에 대해 화해를 시도하자 이서정의 현실도 더 이상 그녀를 고달프게 하지 않습니다.

드디어 사람들과의 진짜 관계가 시작된 셈이죠.

진짜 관계라...

비록 stylish한 유행처럼 한 순간에 사라질 수 있는 관계일지라도 그 속에 진실을 담게 된다면 어쩌면 유행 그 이상을 만들어 내게 되지 않을까요?

서정도 진실 된 삶이 사실은 진실이 사라졌다고 믿은 자신의 현실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겁니다. 진짜 인생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금 있어야 할 바로 그 곳에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말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게 일명 죽이는 요즘의 “style”이라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지....

뭐 “Hyorish"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책, 분명 ”stylish"한 소설임에는 맞는 것 같네요...^^


* 이 책을 읽으면서 “아, 이거 또 드라마로 만들어 지겠구나” 했는데...

  역시나 발 빠른 SBS에서 드라마로 제작해 지난 주말부터 방송을 시작했네요 

  김혜수, 이지아, 류시원 주연...
  이들이 어떤 stylish한 드라마를 만들어갈 지 자뭇 궁금하기도 합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8. 12. 12. 06:32

<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 조용헌


 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이 책은 한 네 번쯤 읽은 것 같아요.

뭐랄까. 읽으면 읽을수록 진국이 스며드는 느낌이랄까!!

오래 묵은 빛깔 좋고 향 좋은 장 같은 느낌...

이 책은 우리 병원 도서관에서 처음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가끔 대출해서 읽고 있는 책 중에 한 권이고, 지금 현재도 제가 대출해서 가지고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이 책의 특별함은...

명문가(名門家)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해 준다는 점에 있습니다.

흔히 지금의 명문가는 재산의 정도에 의해 평가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많은데 4백, 5백년 동안 명문가라는 명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도덕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상하게 우리나라에는 “노블리스”의 개념이 “럭셔리”의 개념으로 이어지면서 졸부들의 부티크 문화 형태를 띄고 있긴 하지만, 그 진정한 의미는 상류층(지적이든, 물적이든)의 도덕적 의무감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이탈리아가 문화의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도 거상 메디치가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듯이 우리나라도 그에 못지 않은 명문가가 있다는 건 참 어깨 으쓱한 일입니다.

메디치가가 이탈리아 정부에 가문 대대로 모아온 문화제, 예술품을 기증하면서 단 한 푼도 받지 않았다는 걸 아시나요? 조건은 단 하나였다고 합니다.

“절대로 이 문화제를 다른 나라에 반출시키지 말 것”이라는 조건...

이쯤되면 그냥 거상이라고 하기에 너무 민망하지 않을까요?


이 책에는 그런 우리나라 명문가 15곳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먼저, 경주 최부잣집.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달성한 집안입니다.

어릴 때 어르신들이 “경주 최부잣집 재산이라도 못 남아 나겠다”라는 말을 하셨었는데 그땐 그게 무슨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인 줄 알았었습니다. 뭐 신화나 전설처럼요...

그런데 실제로 12대동안 만석의 재산을 유지한 유일한 우리나라 거부라고 하네요.

그러면서도 흉년에는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가풍이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흉년기에 논밭을 사는 일도 금지했구요.

심지어 재산이 만석이 넘어가면 무조건 사회에 환원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 사회 환원 방법은 소작료를 낮추는 거였다네요. 그래서 소작인들은 최부잣집 재산이 늘어나는 걸 오히려 반가워했다고 하니 요즘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은 부분입니다.

결국은 그 모든 재산을 전부 영남대에 기부하고 지금은 필부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선조에 대한 자부심이 허뜬 삶을 살 수 없게 한다고 후손들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명문이라는 건 그런 것 같아요.

재산이 아니라 자부심과 자긍심을 후손에게 남겨주는 거...

그런가 하면 하인들에게 쉴 수 있는 정자를 마련해준 가문도 있고, 재산이 아닌 지식을 남기기 위해 “인수문고”라는 문중 문고를 만들어 최고의 민간 아카데미를 만든 남평 문씨 문중도 나옵니다.

말로만 듣던 3년 시묘살이(부모가 사망했을 때 3년 동안 무덤 옆에 초막을 짓고 생활하는 것)를 직접 시행한 예산 이씨, 5대째 걸출한 화가를 배출하고 있는 양천 허씨 문중의 이야기도 나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더 신기하게 다가오는 것은,

“풍수”라는 사상이 그냥 허투루 생긴 게 아니구나 하는 겁니다.

책의 저자는 풍수에 관계해서 이 명문가들의 고택들을 해석하고 있는데요, 풍수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도 어느 정도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떠어떠한 지형은 구도자가 많이 나오는 지형이고, 어떤 지형은 문필가가 나오는 지형, 또 어떤 지형은 예술가가 나오는 지형이 있는데 정말 거짓말처럼 몇 대를 이어 그런 자손들이 나옵니다.

뭐 풍수라는 게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고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될 수도 있겠지만 어찌됐든 좋은 풀이로 고택들을 조망한 게 솔솔한 재미를 줍니다.

그리고 멋진 고택들을 찍은 흑백사진들이 참 아늑한 느낌을 갖게 합니다.

찾아가 보고 싶다는 유혹이 느껴질 만큼요...

그러면서 종가나, 명성 있는 고택을 보전하고 유지한다는 건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었습니다.

저와는 하등 관계없는 문중들이라지만 그 존재들이 사라지는 게 참 안타깝고 씁쓸하네요.

진정한 명문가란 “고택을 유지하는 가문이다”라고 말한 작가의 심정이 이해가 됩니다.

멋진 옛집들을 보면 “아~ 이런 집에서 살고 싶다~~”라고 꿈꿨었는데...

그 말의 현실이 얼마나 힘들고 고된 일인지 알고 나서는 함부러 이런 말을 꺼내기가 송구스럽기까지 하네요.


혹 여러분들도 명문가를 꿈꾸시나요?

지금까지의 운명을 바꿔 진정한 명문가로 거듭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드릴까요?

4가지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① 적선(積善)     ② 명찰(明察)     ③ 풍수(風嗽)   ④ 다독(多讀)


위 방법들에서 제가 노려봄직한 것은 역시 ④번 하나밖에 없네요.

그런데 참 기분 좋은 일 아닙니까?

다독이 운명을 바꿔 명문가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이라니...
다...독...이...라...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