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5. 12. 1. 08:10

 

 

<터미널>

 

일시 : 2015.11.25. ~ 2016.01.10.

장소 :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

극작 : 창작집단 독(讀)

무대 : 김종석

연출 : 전인철

출연 : 권귀분, 정수영, 구도균, 우현주, 김태근, 김태훈, 김주완, 안혜경, 이창훈, 정재은

제작 : LG아트센터

 

창작집단 독(讀)은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과 출신 작가들의 모임이다.

2013년 프레젝트박스 Seeya에서 이들이<터미널>이란 제목으로 9 편의 옴니버스 연극을 올렸었다.

그때 입소문이 워낙 자자해서 보고 싶어했었는데 기회가 닿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대학로에서 이 작품이 올라온단다.

2013년 작품 중 완성도가 높았던 3편(소, 전하지 못한 인사, 러브 소 스윗)의 에피소드와

새롭게 선보이는 6편의 에피소드들과 함께.

게다가 내가 너무나 좋아하고 사랑하는 극단 맨씨어터와의 협업이라니 이 얼마나 좋은가!

9편의 에피소드가 하루에 다 올려지는게 아니라

중복되지 않게 조정하는게 쉽지 않지만 일단 다섯 편의 에피소드를 확인했다.

 

내가 이미 너였을때 - 박춘근 作

거짓말 - 김현우 作

소 - 천정완 作

망각이 진화를 결정한다 - 고재귀 作

가족여행 - 조인숙 作

 

첫관람에서 만난 다섯 편의 에피소드는

작품 자체가 너무 좋았고,

출연 배우들은 그보다 더 좋았고,

배우들의 연기는 그보다 더 더 더 좋았다. 

가장 인상깊었던 에피소드는 <소(牛)>와 <망각이 진화를 결정한다>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에피소드 <소(牛)>는 비참했고

<망각이 진화를 결정한다>는 잔인했다.

돼지처럼 먹고, 개처럼 자고, 소처럼 일하다 소가 되버린 아버지.

그리고 소가 된 아버지를 팔아 그 돈을 사이좋게 나눈 둘째 아들과 막내딸.

그 둘은 서서히 소로 변해가는 장남이 소가 되는 날 다시 만나기로 한다.

"늬들이 아무리 지랄발광을 해도 늬들도 결국은 소가 된다!".

아니라고 부정할 수가 없어서 비참했다.

 

pure human, less than half cyborg, more than half cyborg.

100년 후의 미래가 에피소드 <망각이 진화를 결정한다>의 같다면,

비극일까? 희극일까?

그렇다면 나는 어떤 인간의 유형이길 원할까?

기억메모리칩으로 타인의 기억을 경험하고

유한한 장기를 티타늄 장기로 교환하고

간직하고 싶지 않은 기억 따윈 델리트키로 삭제해서 클린화시키고...

망각이 무서운건,

그 자체가 이미 너무 크고 완강한 욕망이기 때문이다.

그냥 모든 순간과 장면이 잔인하고 끔찍했다.

그게 미래의 모습이 아니라 지금의 모습인것만 같아서 무서웠다.

 

가볍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하나 같이 묵직하다.

누군가의 평처럼 "짧고 굵다"라는 표현이 적합한 적품이다.

웃고 있지만 웃는게 아니고.

슬프지만 울 수가 없더라.

머리속에 다섯 편의 이야기가 그대로 대롱대롱 걸려버렸다.

유쾌하지 않다.

하지만 무시할 수도 없다.

결국 오도 가도 못하고 

그대로 "터미널"에 발이 묶여 버렸다.

 

어디로 가야 하나...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5. 6. 16. 08:31

 

<프로즌>

 

일시 : 2015.06.09. ~ 2015.07.05.

장소 :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극작 : 브리오니 래버리(Byrony Lavery)

번역 : 차영화, 우현주

윤색 : 고연옥

무대 : 정승호

연출 : 김광보

출연 : 박호산, 이석준 (랄프) / 우현주(낸시), 정수영(아그네샤)

제작 : 극단 맨씨어터

 

연극 <프로즌>

무겁고 우울한 작품이라는 소문을 듣긴 했는데

직접 관람한 내 느낌은,

너무 치밀하고 은밀하고 그리고 집요한 작품이다.

그리고 배우들이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었을것을 같아 안스럽더라.

김광보 연출은...

이번에도 배우들을 편하게 해주지 않았구나... 싶었다.

출연 배우들과 포스터의 느낌만으로는 <디너>가 떠올랐는데

실제로 연극을 보면서 떠올린 작품은 김광보 연출의 또 다른 연극 <스테디 레인>이었다.

두 작품은 분위기도, 뉘앙스도, 아주 유사하다.

 

용서할 수 있는 것과 용서할 수 없는 것.

용서받을 수 있는 것과 용서 받을 수 없는 것.

같은 말 같지만 명확히 따지자면 다른 의미다.

왜냐하면 용서의 주체가 완전히 다르니까.

"용서"라는게 그렇게 쉬울까?

자식을 처참하게 죽인 사람을 용서한다는게

정말 가능할까?

그걸 세상 사람 모두가 "죄"가 아닌 "증상"이라 한대도

가족에게는, 엄마에게는 "죄"여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이들이 진실을 다 말했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아니 아주 계획적으로 비밀을 감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의미에선 랄프를 찾아간 낸시의 행동은,

용서를 가장한 타살일 수 있지 않을까?

아무런 형체도 담겨져 있지 않는 까만 사진을 보면서 이야기 나누는 장면이

그래선지 나는 참 섬뜩했다.

감춰진 사진 처럼 그 둘의 관계의 진실도 감춰져 있는 것 같아서..

랄프 역시 죄책감에서 비롯된 자살이 아니라

분열된 자아를 감당하지 못한 최후의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랄프의 장례식에서

넨시가 아그네샤에게 남긴 마지막 말.

"그냥 고통스러워하세요..."

그 말이...

날 자꾸 그렇게 몰아간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4. 5. 28. 08:14

<Some Girl(s)>

일시 : 2014.05.06. ~ 2014.07.20.

장소 :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대본 : 닐 라뷰트

연출 : 이석준

출연 : 정상윤, 최성원 (영민)

        태국희(미숙), 김나미(태림), 이은(상희), 노수산나(소진)

제작 : 극단 맨씨어터

 

그동안 정말 궁금했었고 기다리기도 했다.

배우 이석준이 언제쯤 연출을 시작하게 될지가!

블로그에서 쓴 적이 있지만 몇 년 전부터 이석준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그 속에 배우와 연출가의 시선 두 가지가 다 느껴졌었다.

그래서 조바심 내며 바라기까지 했다.

아내 추상미보다 이석준이 먼저 연출가로 입봉하기를...

그랬더랬는데 그의 첫 연출작이 이렇게 <썸걸즈>가 됐다.

맨씨어터 우현주 대표의 권유도 있었다지만 개인적으로 아주 이석준다운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연극 <Some girl(s)>라면

2007년 초연부터 2008. 2010년까지 세 차례 올려질때마다 

배우 이석준이 남자주인공으로 출연했던 작품이다.

남자주인공 직업이 영화감독이자 대학교수였던 진우에서 작가 영민으로 바뀌고

some girl들의 이름도 다 바뀌긴 했지만 어쨌든 맥락은 같다.

나... 결혼해, 그 전에 우리 한 번 만나자!

"나쁜 남자" 이야기?

글쎄... 나는 좀 생각이 다르다.

진짜 나쁜 남자들,

절대 이런 짓 안 한다.

일단 모냥새 너무 빠지니까!

 

솔직히 이석준이 출연한 <썸걸즈>를 못봤었다.

이석준 출연작은 대부분 다 찾아보는 편인데

이 작품은 세 번이나 공연됐음에도 불구하고 세 번을 다 놓쳤다.

그래서 연출 데뷔작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배우 정상윤이 이석준 역으로 첫 연극 데뷔를 한다니 여러가지로 흥미롭긴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

이석준의 연출은 아주 깔끔했고

그리고 무엇보다 배우에게 많은 부분을 맡겼더라.

연출가 이석준과 배우 정상윤 사이의 "믿음"이 작품을 보는 내내 느껴져 개인적으로 흐뭇했다.

정상윤의 섬세한 연기는 역시나 좋았고, 표정과 딕션, 대사 타이밍도 아주 좋았다.

단점이 있다며느

도저히 "나쁜 남자"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거.

그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이석준이 왜 이 작품의 남자주인공으로 정상윤을 선택했던게!

 

에피소드 4편의 균형감이 일정하지 않았던건 안타까웠지만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은 관극이었다.

(그래도 두 번 보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인상깊었던 에피소드 순서를 꼽자면,  

3 -> 2 -> 1-> 4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노수산나의 인물 설정은 너무 신경질적이지 않았나 싶다.

뭐랄까. 병적인 히스테릭 징후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그럴거라면 차라리 극도로 시니컬하던가,

아예 대놓고 다중인격스러웠으면 더 좋았을텐데...

(뭐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

 

그런데, 중요한 건!

나는 극 중 "영민"이 충분히 이해된다는 사실이다.

사귀던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고 잠수를 타는 방식으로 헤어짐을 통보하는 사람.

비겁하긴 하지만 이해 불가는 아니다.

때론 그게 최선일 때도 있다.

그렇지않나!

 

역시나 썸타는 일은...

쉽지 않다.

솔직히 그걸 왜 하나 싶다.

아무래도 내게 썸남, 썸녀의 기질은 전무한 모양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2. 10. 24. 08:03

<벚꽃동산>

일시 : 20.12.10.12. ~ 2012.10.28.

장소 :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작가 : 안톤 체홉 (Anton Pavlovich Chekhov)

연출 : 오경택

출연 : 이석준, 박호산 (로파힌) / 우현주 (라네프스카야)

        김태훈 (가예프) / 정수영 (바랴) / 전미도 (아냐)

        정동환, 최용민, 정승길, 권지숙, 이재인, 신용진, 박채원

주최 : 극단 맨씨어터

 

안톤체흡의 작품들은,

솔직히 어렵고 힘들다.

(특히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머리에 쥐가 날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톤 체홉의 작품이 올라오면 꼭 챙겨보는 이유는 너무나 서정적이고 섬세하고 아름다워서다.

이야기와 인물들 속에 빠져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황홀해진다.

맨씨어터는 작년에도 지금까지와 약간 다르게 해석한 안톤 체흡의 <갈매기>를 올렸었다.

보고 싶었던 작품인데  예매를 해놓고도 보지 못해서 이번 <벚꽃동산>은 놓치지 말자 생각했었다.

안톤 체홉의 마지막 작품 <벚꽃동산>

안톤 체홉의 작품 중에서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 작품을 체홉은 스스로 "코미디"라고 정의했고,

1904년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초연을 올린 연출가 스타니슬랍스키는 "비극"이라고 정의했다.

나는 이 작품을 화사하고 찬란한 비극이라고 말하고 싶다.

원작을 읽고 봤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개인적으로 원작을 꼭 챙겨보는 편인데 이상하게 안톤 체홉의 작품은 무대뽀 정신으로 보게 된다)

그리고 출연배우들!

도대체 이 대단한 배우들을 어떻게 이 한 작품에 전부 섭외할 수 있었을까?

분명히 이 작품엔 뭔가가 확실히 있으리란 기대감.

솔직히 출연진에 기가 팍 죽었었다.

 

20세기 초 러시아.

농노제 폐지로 시작된 러시아의 변혁은 러시아의 모든 것들을 빠른 속도로 바꿔놨다.

과거 부유한 영주의 자손이었던 라네프스카야(우현주)와 가예프(김태훈)의 벚꽃동산도

급기야 경매에 넘어갈 처지가 되버렸다.

그러나 두 사람은 아직 평온하다.

그런데 어쩌지!

난 이 오누이의 평온과 순수가 너무나 눈물겹게 아름답고 예뻤다.

벚꽃동산을 별장지로 임대해서 돈을 벌라고 권유하는 로파힌(박호산).

두 오누이의 환상을 현실에 끌어오기 위해 끝없고 집요한 설득을 거듭하지만

오누이는 너무나 태평해서 심지어 몽환적이기까지 하다.

마지 꽃비 내리는 따사로운 봄날 벚꽃동산에 피크닉이라도 와있는 느낌이다.

오히려 절박하고 간절한 건 로파힌이다.

오누이와 로파힌의 대비되는 모습이 연극을 보는 내내 참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주변의 사람들.

뭔가 깊숙히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다가도

그냥 지나가면서 무슨 일이 생겼나 잠깐 시선을 주고 곧 제 갈 길 가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오직 로파힌만이 절박할 뿐이다.

실제로 이 "벚꽃동산"을 지키고 싶은 사람은 사실 로파힌 한 사람 뿐인 것 같다.

이 아름다움 벚꽃동산의 벚꽃들이 잘려나가든,

품위없는 별장지가 되어 사람들의 소란 속에 묻혀버리든 상관없다.

어쨌든 지켜낼 수는 있으니까.

 

박호산의 로파힌은 참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가장 순수하고 아이같은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이석준은 로파힌을 어떤 인물로 해석했을지 궁금하다.)

사실은 작품 속 인물 들 중에서

벚꽃동산을 제일 지키고 싶어한 사람, 너무나 벚꽃동산을 원했던 사람은 로파힌이 아니었을까?

변화를 보는 시선에 옳고 그름을 정의하긴 어렵다.

어쨌든 시간은 흐르고,

지금 있는 모든 것들은 결국은 어떤 형태로든 잊혀진고 없어진다.

그리고 인간은 그 잊혀진 것들을 또 서럽고 아프게 기억하고 그리워한다.

정말 바보같이...

  

벚꽃동산에 있던 모든 사람이 떠나고 홀로 남겨진 피르스(정동환)의 독백,

그 마지막 장면은 정말 압권이다.

그리고 별 비중없어 보이는 피브스에 왜 정동환이라는 배우가 필요했는지도 조금은 알 것 같다.

툭툭 베이지는 벚나무와 생의 마지막 안식을 향해 걸어가는 피르스의 발자욱 소리.

 "떠나셨어! 날 잊어버리셨어!

  괜찮아!, 그래!

  ...... 산 것 같지도 않은 게 한평생이 다갔군.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 아무것도. 에이... 이런 바보"

피르스의 마지막 대사가 주는 무게감은

누워있는 피르스 위로 관뚜껑처럼 닫히는 무대 장치와 함께 가슴 속에 턱 얹힌다.

희극과 비극을 오고 간 <벚꽃동산>을 결국

이렇게 깊은 무게잠과 존재감으로 맘 속 깊이 파고 들었다.

파괴와 변화 뒤엔 그 폐허를 딛고 새로운 희망과 미래가 태어난다.

어쩌면 벚꽃동산에 춤추던 그 무수한 꽃잎들은 일종의 팡파레였을지도 모르겠다.

눈물나게 아름답고 서럽게 찬란한 결말을 보면서 나는 눈이 부셨다.

 

무대는 아름다웠고

배우들의 딕션은 정확했으며,

연기는 진중하고 섬세했다.

작품과 무대에 대한 깊은 경외심이 느껴졌다.

(정말 진심으로 멋있었다. 이 배우들...)

커틑콜에서 정동환 배우를 향해 출연 배우 모두가 박수치며 존경의 모습을 보이는 장면은,

뭉클할만큼 감동적이었다. 

이 작품...

아마도 오래동안 간직될 것 같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