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1. 10. 19. 05:23
터키여행에서 길과 함께 내 눈을 많이 사로잡았던 건
이슬람 사원인 "자미(Cammi)"였다.
유명하고 큰 규모의 자미부터 어디를 가든 보였던 이름 모르는 동네의 조그마한 자미들까지
그 독특한 모양과 건물을 보고 있으면 묘한 아우라가 느껴지기도 했다.
터키어로 "꿇어 엎드려 경배하는 곳"이라는 의미의 자미(Camii)
둥근 천장의 돔과 뽀족하고 긴 첨탑의 미나레.
모든 걸 감싸안는 대지같은 둥금과 뭔가를 향해 매섭게 찌르는 날카로운 예리함.
건물을 보고 있으면 포용과 통찰,
지성과 이성의 조합이란 생각이 든다.



이집션 바자르 바로 옆에 있는 예니 자미(Yeni Camii)는
이스탄불의 자미 중 가장 오랜 공사시간이 걸렸단다.
메흐메트 3세의 어머니이자 술탄 셀림 2세의 부인이었던 사피예의 명으로 짓기 시작했는데
건립 도중 술탄이 세상을 떠나면서 재정적 문제가 겹쳐지면서 공사가 중단되는 비운을 겪었다.
중단된 기간만도 무려 56년!
그러다 메흐메트 4세에 의해 1663년에 비로소 완공되었다.
완공기념 개막 기도회 때는 술탄과 술탄의 어머니, 재상, 많은 학자들이 참석했는데
축하의 의미로 금으로 된 동전을 시민들에게 뿌렸다고 한다.
묘하게도 술탄 아흐메트 1세 자미(블루 모스크)를 떠올리게 한다.
월요일의 자미는 한산했고 세족을 위한 수돗가의 빈자리는 문득 평화로웠다.
자미 내부는 쏟아지는 햇빛으로 보석처럼 은은히 빛나고 있었다.
조용하고 고요한 자미 내부의 이방인도 그 움직임이 조심스럽고 잔잔해진다.
평화로웠고 그리고 따뜻했다.




이집션 바자르 입구 오른편에 위치한 뤼스템 파샤 자미(Rustem Pasa Camii)
자미 아래가 전부 상점이라 입구를 찾기위해 조금 헤맸다.
상점들 사이로 조그만 통로가 보여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거짓말처럼 자미 마당이 나왔다.
(1층의 상가 임대료로 자미 유지비믈 충당하고 있다니 상점들을 보면서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자!)
뤼스템 파샤 자미는 쉴레이만 대제 당시의 재상 뤼스템을 기리기위해 1561년 미마르 시난이 건립했다.
술탄이 뭐 재상까지 친히 기념할까 싶었는데 이 사람이 쉴레이만 대제의 사위란다.
사위가 도대체 얼마나 이뼜길래 장인어른이 이런 엄청난 자미를 지었을까???
'파샤'란 단어도 오스만 제국의 고관을 지칭하는 뜻이란다.
사윗님께서도 장인어른에게 무지 감격해서 처갓집 말뚝에 골백번 절을 했겠다 싶다.
(이런 단순 무식하고 아주 관념적인 상상이라니...)
뤼스템 파샤 자미는 내부를 장식하고 있는 타일이 유명하다.
정원의 외벽과 내부 기둥, 벽에 사용된 꽃모양의 타일은
타일의 명산지 이즈닉에서도 최고급으로 치는 제품이었다고 한다.
특히 사원의 남동쪽에 있는 '토마토 레드'라 불리는 붉은색 타일은
현대의 기술로도 만들기 힘든 당대의 명품이었라고...
복장규정이 엄격하다는 에윕 자미도 반바지 입고 들어갔었는데
이곳은 입구에서 아저씨 한 분이 치마를 건네주셨다.
왠지 발걸음을 더 조심해야 할 것 같은 느낌!
자미에 대한(정확히 말하면 종교에 대한) 터키인들의 경건함과 신성함을 보노라면
꿇어 엎드려 동그래진 돔같은 몸피에서 깊은 신뢰감마저 느껴진다.
그래서였을까?
마지막 일정에서까지 굳이 자미를 찾았던 건,
아마도 자미가 주는 신뢰감과 아우라를 기억에 담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정화(精化)에 대한 간절한 열망이었는지도...
터키는 내겐 길의 나라다.
그리고 동시에 신성한 자미의 나라다.
그래서 터키는 내겐 두 개의 신성(信性)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1. 10. 17. 08:16
전날 시간이 늦어서 갈라타 탑 전망대에 올라가지 못한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피에르로티 찻집의 석양을 포기하고 다시 갈라타 탑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꼭 그곳에서 석양과 야경을 보겠다 다짐하면서...
예전에는 입장료 없이 올라갔었다는데 지금은 11TL의 관람료를 받는다.
6시 넘어서 도착했을 땐 이미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이 탑 주변을 뺑 둘러싸고 있었다.
이러다 또 못보는 건 아닌가 걱정했는데
다행히 줄이 줄어드는 속도가 빠르다.
입장료를 사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까지 올라갔다.
다시 좁은 원추형 계단을 꽤 올라가니 드디어 탑 전망대다.
이곳은 저녁 8시까지 관람객을 받는다.
그 시간 이후부터 엘리베이터는 나이트클럽과 레스토랑을 찾는 손님들로 바빠진단다.
특히 갈라타 탑에서 밤마다 공연되는 벨리댄스가 유명해서
아예 여행상품으로 나와 있는 것도 많다.
춤은 보는 것도, 하는 것도 잼뱅이인 관계로 pass!
(내 입장에서 벨리댄스는 아무리 생각해도 비현실적은 몸놀림이다!)



갈라타 탑 전망대는 360도 돌면서 주변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그것도 아나로그적인 방식인 두 발로 직접 걸아서 돌아야 한다.
폭이 좁고 관람객은 많아 좌우, 앞뒤 간격 모두 촘촘하다. 
한 곳에 오래 머무르고 싶다는 다른 여행객에게 길을 잘 내줘야 한다.
자리잡고 비키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있으면 나머지 사람들은 대략 난감해지므로...
갈라타 탑에서 보는 이스탄불의 정경은 아름답고 시원하고 경쾌하다.
중간중간에 view point에 주변을 설명해주는 안내판도 있다.
우뚝우뚝 솟은 자미의 미나레의 갯수를 세면서 혼자 이름을 맞춰보기도 했다.
(혼자 놀기의 진수를 즐기는 중 ^^)
오스만 제국 최고의 술탄 쉴레이만 대제에게 봉헌된 쉴레이마니예 자미!
골든혼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지어진 자미의 미나레를 세본다.
모두 4개의 미나레.
쉴레이만 대제가 이스탄불을 수도로 삼은 네 번째 술탄임을 뜻한다.
그리고 10개의 발코니는 자신이 오스만 제국의 10번째 술탄임을 상징하는 의미고...
이런 숨은 그림같은 이력을 알아가는 것 역시 이스탄불의 매력이고 즐거움이다.
마치 소풍날 보물찾기 하는 느낌이다.



천천히 한 바퀴를 돌자니 해가 진다.
점점 어둑해지면 갈라타 탑 아래 또 다른 이스탄불의 모습이 태어난다.
하나 둘 불빛이 밝혀지는 자미와 거리의 상점들.
그리고 보스포러스 해협을 물들이는 석양의 붉은 빛깔.
이곳에서 바라보는 석양은 신비감보다는 친근함에 가깝다.
손에 잡힐듯한 풍경과 빛깔이 꼭 내게로부터 시작된 것 같다.
내 시선이, 내 생각이, 내 느낌이
이 모든 것들을 창조했구나!
어쩌면 풍경의 진실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터키는 내게,
참 거칩없이 아름다웠다.
그리움 그 이상의 마음때문에 나는 지금 버겁다.
내가 보지 못한 뭔가가 아직 그곳에서 나를 잡아 끌고 있다.
이제 그만 돌아오라고...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