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1. 10. 11. 06:32
오늘은 시간 여행이다!
개인적으로 박물관이나 옛 궁궐터를 오래 걸어다니며 보는 걸 정말 무지 좋아한다.
아마도 그게 "길"의 연장선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시간의 길을 뚜벅뚜벅 내 두발로 걸으면서 넘나든다는 건,
늘 생각하는거지만 참 뭉클한 축복이고 행복이다.
(그래서 꿈꾸는 여행 중의 하나가 "유럽 박물관 투어"다.)
더더군다가 이스탄불이 너무 이쁜 건,
술탄 아흐멧에서 한 정거장만 걸어가면
(트램따라 걸어가는 이 길도 참 이쁘고 재미있다)
고고학 박물관과 고대 동방 박물관, 도자기 박물관 세 곳을 한꺼번에 볼 수가 있다.
요금은 통합 입장료로 10TL.
일단 들어가면 모두 한 곳에 모여있어 티켓을 다시 보여주거나 하지는 않는다.



고고학 박물관!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 곳.
그 유명한 알렉산더 대왕 석관이 있는 곳도 바로 이곳이다.
그런데 알려진 것과 달리
이 석관의 주인이 알렉산더가 아니라는 설도 있다.
BC 333년 알렉산더가 이수스에서 페르시아를 물리친 뒤 이브달로니모스를 왕으로 만들어줬는데
이 석관이 바로 그 사람의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브달로니모스는 알렉산더의 후견으로 왕이 된 사람이라
자신의 관에도 평생의 은인인 알렉산더의 모습을 새겨넣은 것이라고.
(어느게 진실인지는 잘 모르겠다)
암튼 분홍빛을 띠는 대리석은 무지 아름답고 조각들의 정교함에 내 손이 다 떨릴 정도다.
조명과 명암, 채도의 배려가 눈에 띈다.
어두운데도 유난스럽지 않게 돋보이는 석관은
조각의 작은 부분까지도 세심하게 보여지도록 전시되어있다.
우리나라 박물관에서 반사광때문에 가오리눈이 된 적이 많아서
이런 배려를 보니 참 민망하게 감동적이기까지했다.



이곳은 유난히 대리석으로 만든 조각들이 많다.
처음엔 신기해하면서 이곳저곳 매혹되서 들여다 봤는데
또 나 혼자라 등골이 서늘해져 버렸다.
급기야는 대리석상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달려오는 듯한 어처구니 없는 착각까지도...
이 현실적인 비현실감이란!
(어이없겠지만 경험할 당시엔 무지 섬득하더라)



고대 동방 박물관!
고고학 박물관 바로 앞에 있는 건물로
터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각지에서 출토된 고대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벽화들과 청동상, 스핑크스와 미라를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곳.
무덤에서 출토된 것들이 대부분인듯.
역시나 좀 무섭긴 했지만 귀염성있는 청동상들이 가끔씩 나타나줘서 다행스러웠다.
아주 오래된 유물인데도 조각의 표정이 다양해서 보면서 많이 놀랐다.
아무래도 고대 사람들이 지금 우리보다 표정이 훨씬 더 풍부하고 밝았던 것 같다.



왼쪽편이 위치한 도자기 박물관은 처음에 입구를 못 찾아 혼자 헤매고 있었다.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손가락으로 바로 옆을 가르킨다.
길치는 또 민망한 표정으로 "thank you!'를 연발할 수밖에...
(하필 그렇게 찾던 입구가 바로 앞에 있을걸 뭔지. 에효~~)
이곳엔 12~20세기까지 셀주크, 오스만 제국의 도자기가 전시되어 있다.
그 중에서 16세기 이즈니크 도자기는 역사적 가치가 높은 전시품이라는데
가사 및 살림에 문외한인 나는 거의 눈뜬 장님 수준이다.
그래도 이쁜 그릇(이게 딱 내 수준이다)을 봐서 나쁘진 않았다.
이 그릇들에 밥 먹으면 정말 맛있겠다는 무지 원초적인 생각도 잠깐! ^^
전시실이라는 느낌보다는 집을 개조한 것처럼 느껴졌는데
(문턱이랑 창문의 위치도 그렇고...)
술탄의 별관으로 쓰였던 곳이란다.
1472년에 건립됐다는데 그렇다면 보존을 상당히 잘 한 것 같다.

시간을 들여서 보자면 아마 한나절로도 모자라겠지만
여행자의 눈은 가능하면 많은 것을 담고 싶은 욕심이라
고작 반나절로 이 멋진 시간 여행을 마무리했다.
나중에 이스탄불에 다시 가게되면
이번에는 꼭 해지는 오후에 이곳을 찾아보리라!
지는 해를 받은 대리석들이 어떤 빛을 띄는지 꼭 보고 싶어서...
차가운 돌의 따뜻한 끌림.
그걸 다른 시간의 품에서 꼭 한 번 확인하고 싶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10. 8. 31. 05:55

<The Road> - 코맥 매카시

로드(THE ROAD)

“미국 현지에서 감히 <성서>에 비견되었던 소설”
이런 광고와 함께 2008년 6월 우리나라를 그야말로 강타했던 소설입니다.
<The Road>
책의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일관성(?)있게 계속 길 위를 떠도는 (도저히 목적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이유는...) 내용입니다.
어쩌면 우리나라 정서와는 어울리지 않는 내용이기에 이해가 어려운 부분도 있고 심지어는 거부감마저도 느껴질 수 있는 그런 소설입니다.
글쎄요... 개인적으로는 왜 이 소설이 성서에 비교되고 있는 건지 납득은 잘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사실은 독특한 메시지를 준고 있다는 사실이죠.
“인류 대제앙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그 묵시론적 이야기”... 이 책에 대한 평들의 대부분을 장식하는 해드라인 문구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제에게 설득력이 좀 없어 보입니다.(또 저의 찌질한 이해력 부족이 그 밑바닥에 깔려있긴 하겠지만요)
그들이 살아남은 유일한 사람도 아니고, 그리고 이 책엔 어떤 묵시론적인 암시나 계시 혹은 계명 같은 것들은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폐허와 추위의 땅 위에서 살아남는 10가지 방법쯤을 알려주는 길 위의 삶을 다룬 실용서는 더더욱 아닙니다.
주인공인 남자와 소년은 "불을 운반하는 사람"이라는 상징적인 의미의 존재입니다.
불이라… 인류의 문명이 시작이 불에서 비롯됐던가요?
그렇다면 그들을 계속 걷게 만들었던 건 다시 꽃피워야 할 새로운 문명에 대한 책임감이었을까요? 아니면 모든 회복의 근본이어야 할 선한 인간성 회복이었을까요? 그것도 아니면 항상 무엇인가의 완벽한 해답인 사랑? 아니면 판도라의 상자에 마지막으로 남았던 절망을 이겨낼 희망?
어쩌면 그 모든 것 다 일 수도 있고, 전혀 다른 어떤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느끼는 바로 그것일 수도 물론 있죠)

일단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의 특징은 익명성에 있다 하겠습니다.
남자, 소년, 사내, 노인, 여자….
그 누구도 구체적인 이름이나 심지어는 형체조차도 소유하지 않기도 하죠.
마치 현대인처럼요…(혹시 난 이름이 있는데…. 라고 말하고 싶으신가요????)
어쩌면 불탄 거리에 꽂혀 있는 반쯤 타버린 인간 미라들과 주인공들이 서로 다르지 않음을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요?
살아남음의 이유가 어떤 목적과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연 내지는 일종의 눈속임 같은 건 혹 아닐지…
실제로 이들이 살아 있는 사람들이라고 누가 감히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이 책의 주인공들.
그들이 실제 "부자지간"인지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마치 어린 신을 모시고 길에 떠나는 제자의 느낌이라고 할까요? 물론 그 신의 어깨 위엔 반드시 인류 구원이라는 대전제가 걸려 있어야 하겠죠!!
그런 점에선 확실히 성경의 모티브가 느껴지긴 합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주인공들이 있는 지금 이 세계는 불의 재앙으로 거의 모든 인류와 세상이 멸종 상태에 있습니다.
아직 뜨거운 재앙이 열기가 채 식지 않은 이곳에서 그들은 필사적으로 음식을 구하며 방수포에 의지하여 추위를 견디며 남쪽으로 남쪽으로 낡은 쇼핑 카트를 끌고 이동하고 있습니다.
이 모습만 떠올린다면 참 코믹하고 우수운 비주얼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두 주인공의 선문답에 가까운 단답형의 대화.
그들의 대화는 지금 그들이 처한 환경만큼이나 미약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생명의 숨결이 느껴져 차라리 비장하기까지 합니다.
잠시 찾았던 완벽한 환경의 은신처마저도 그들은 버려야 했고 또 다시 굶주림과 추위의 땅으로 마른 몸과 낡은 카트를 끌고 들어섭니다. 늘 그랬듯이…
이젠 슬슬 제 몸도 피곤해지기 시작합니다.
때론 이런 환경에 영 어울리지 않는 아이의 동정심에 제가 다 화를 내면서 몇 개 남지 않은 깡통이 마치 내 것인냥 움켜쥐며 눈에 핏발을 세우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책의 표현처럼 순간 제가 "좀비"가 된 듯한 느낌이죠.
이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 걸까요?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에서는 신도 살 수도 없다"고 말하는 그곳, 아니 이곳에서요.
지금 내 세상에서 "재앙"이란 어떤 형태일까요?
그 "재앙"을 뚫고 우리는 꼭 뭔가를 남겨야만 하는 걸까요?
소년은 어느 순간 묻습니다.
"아빠! 우리는 지금도 좋은 사람들인가요?"

남자는 소년을 남기고 이제 눈을 감으려 합니다.
그는 소년에게 남쪽으로 계속 가라고 말합니다.
소년은 잠시 길 위에서 마주쳤던 작은 아이를 떠올리며 묻습니다.
"하지만 길을 잃으면 누가 찾아주죠? 누가 그 아이를 찾아요?"
남자가 마지막 말을 합니다.
"선(善)이 꼬마를 찾을 거야. 언제나 그랬어. 앞으로도 그럴 거고…."
아빠라는 남자를 잃은 소년은 또 다른 남자를 만납니다.
함께 가자고 말하는 남자에게 소년은 말합니다.
"아저씨가 좋은 사람이란 걸 어떻게 알 수 있죠?"
남자는 말합니다.
"알 수 없지. 그냥 운에 맡겨야지, 뭐"
길을 잃은 소년의 앞에 나타난 남자는 꼬마를 찾아온 선(善)이었을까요?
만약 그 질문이 당신에게 주어진다면 뭐라고 말하고 싶으세요?

* 이상하게도 불편한 책들을 많이 읽고 좋아하게 됩니다.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일게 되는 건 그 불편함이 주는 즐거움과 의미 때문일겁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자꾸 또 다른 불편한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눈 먼 자들의 도시>를 어쩔 수 없이 떠올리게 
   됩니다.
   책 표지를 다시 살펴봤죠.
   역시나 주제 사라마구의 책을 번역했던 정영목의 번역작이네요.
   이 책의 마지막 4페이지는 옮긴이의 말이 실려 있습니다.
   이 부분도 꼭 읽어보라고 권해드리고 싶네요.
   번역가의 작가에 대한 애정과 작품에 대한 믿음을 느낄 수 있는 부분입니다.
   "코맥 매카시"에 대해 어쩌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