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5. 10. 30. 08:06

높은 곳을 보면 오르고 싶어진다.

그것도 아주 성실하게 두 발로 꾹꾹 눌려가면 정상에 올라가고 싶다.

세비아의 대성당 종탑도,

피렌체 두오모 구폴라와 조토의 종탑도 그래서 올라갔고

여기 산 피에트로 대성당 쿠폴라로 일말의 망설임없이 올라갔다.

많은 살마들이 중간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지만

난 일부러 551개의 계단을 성실히 걸어올라가는 방법을 선택했다.

(엘리베이터 7유로, 계단 5유로)

처음엔 넓고 낮았던 계단이 위로 올라갈수록 좁고 높아져

급기야 한 사람이 겨우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의 폭으로 변해버린다.

올라가면서 나는 내게 폐소공포증이 없음을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만약 그랬다면 이곳은 지상에서 올려다봐야만 하는 불모의 공간이었을거다.

누군가 그랬다.

맘 속에서 길을 잃었을때 높은 곳에 올라가라고.

높은 곳에서 지상의 길들을 내려다보면 거짓말처럼 맘 속의 길이 보이게 될거라고.

(고백컨데, 이건 내가 나 스스로에게 해 준 말이다)

길은... 그렇더라.

내 맘이 열려야만 비로소 보여주더라.

 

 

피에트로 대성당을 처음 설계한 사람은 브라만테였다.

브라만테는 만신전(萬神殿)인 판테온의 쿠폴라보다 더 크게 만들고 싶어했지만

건축가들의 반대와 거대한 돔을 지탱해야만 하는 기술적인 한계에 부딪쳐 결국 포기하고 만다.

브라만테의 뒤를 이은 사람은 우리 모두의 Hero인 미켈란젤로!

미켈란젤로는 1547년 그의 나이 72세에 베드로성당의 쿠폴라 공사를 맡게 된다.

하지만 노구의 몸은 결국 완성을 보지 못하고 사망하고

미켈란젤로가 수정한 설게에 따라 공사가 마무리된다..

쿠폴라를 오르다보면 중간쯤에서 내부를 내려다보는 코스가 나오는데

철망 사이로 보이는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라 한참을 서성였다.

아래에서 올려다볼때는 작아 보였던 라틴어 글자들이

가까이서보니 사람 키쯤은 우습게 넘기는 크기라 깜짝 놀랐다.

베르니니의 천개는 아득했고,

베드로의 옥좌 위 황금구는 태양처럼 빛을 발했다.

황금구 안의 비둘기는 아래에서는 잘 안 보이더니 여기에 오르니 선명하게 잘 보인다.

저렇게 날개를 펼친 모습이었구나... 처음 알았다.

외부에서 쿠폴라로 올라가는 마지막 여정.

맘이 먼저 설렌다.

 

 

쿠폴라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페에트로 광장,

오벨리스크를 따라 일직선으로 난 길은 신탄첼로성과 연결된다.

점점 기울어가는 빛 속에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준 천국의 열쇠가 선명하게 모습을 보인다.

마치고대로부터 내려온 묵시록같아

나는 오랫동안 침묵했다.

땅 위의 새겨진 저 십자가를 따라 길의 끝에 서면

우리는 무언가를 결국 만나게 되리라. 

이제는 알겠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맡긴 천국의 열쇠는

바로 "인간"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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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 끄적끄적2015. 10. 8. 08:14

벨베데레의 정원(Cortile del Belvedere)은

교황 안토켄티우스 8세를 위해 지은 별장의 안뜰로 "팔각형의 안뜰"이라고도 불린다.

그리고 바로 이곳이 바티칸의 유명한 조각상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제일 먼저 만난 조각상은,

헬레니즘 시대 최고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라오콘 군상"

이 조각상에는 몇 가지 일화가 담겨 있다.

1506년 산타마리아 마조레 성당 근처 포도밭에서 밭을 갈던 농부에 의해 고대 로마의 목욕탕 유적을 발견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이 조각상도 함께 출토됐다.

그 당시 교황이었던 율리우스 2세는 포도밭 주인에게 이 조각상을 사들여 팔각 정원에 전시하게 되는데

이게 바티칸 박물관의 기원이 됐다고! 

 

 

처음 이 조각상이 발견됐을 당시에는 오른쪽 팔이 짤려나간 상태였는데

팔의 모양을 두고 학자들간의 의견이 분분했었단다.

미켈란젤로는 가슴과 배의 근육 모양으로 봤을 때

오른쪽 팔이 굽어져 있다고 주장했는데

결국 그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하늘을 향해 팔을 펼친 모습으로 복원이 된다.

시간이 흘러 400년이 지난 1957년,

한 석공의 작업장에서 잘려진 라오콘의 오른팔이 발견됐는데

놀랍게도 미켈란젤로의 주장 그대로 팔이 굽어져 있었다.

그래서 뒤늦게 재복원에 들어가 지금의 모습으로 공개됐다.

이 일화를 듣는데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에 등골이 오싹해지더라.

 

 

인체의 완벽한 비율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받는 "아폴론".

이 조각상은 1489년 안티오에 있던 네로 황제의 별장에서 발견된 2세기 중엽의 조각상이다.

아폴로가 활을 쏜 직후 날아가는 화살을 응시하는 모습으로

잘려진 왼손에는 활을 들고 있다.

전세계 수많은 작가에 의해 가장 많은 모작으로 만들어진 작품이기도 하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뒷태가 예술이라는데 막혀 있어 볼 수는 없었다.

(360도 돌아가면서 관람할 수 있는 동선이었다면 정말 좋았을텐데...)

 

"티그리스 강의 신"은,

티그리스 유르라테스 강의 기원을 상징하는 물의 신으로

처음 발견됐을 당시에는 머리, 오른팔, 왼쪽 손 등 여러 부분이 잘려 나간 상태였단다.

잘려진 조각상을 지금과 같은 상태로 완벽하게 복원한 사람은,

다름 아닌 천재 미켈란젤로.

이쯤 되면 미켈란젤로를 신의 한 수라고 불러도 무방하겠다.

 

 

동물의 조각상이 가득한 동물의 방(Sala degli Animali)을 지나 뮤즈 여신의 방으로 향한다.

거기 한 가운데 또 다시 시선을 끄는 위대한 조각상이 유리보호막 안에 자리하고 있다.

"토르소"

작자 미상인 이 조각상은 대략 BC 1세기 작품으로 추정되는데

미켈란젤로라 카라큘라 목욕장에서 발굴했다.

위대한 천재 미켈란젤로가 없었다면 도대체 어땠을까....???

이 예술가의 손을 거치지 않은 작품을 있기는 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미켈란젤로는 인체를 해부학적으로 완벽하게 표현한 토르소에 감탄을 금치 못했단다.

이후 시스타나 성당의 프레스코화 "최후의 심판"을 그릴 때

성 바르톨로메오의 몸에 이 작품의 구도를 이용하기까지 했다.

우리가 잘 아는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도 역시 이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단다.

심지어 미켈란젤로는 이 작품의 복원을 거절하기까지 했다.

이유는 감히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이미 완벽한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안목에 겸손함까지... 미켈란젤로 승!)

조각상 중간 중간에 뚫려 있는 구멍은 건물과 연결시켰던 흔적들이란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며칠 뒤면 이 작품이 다른 나라로 긴 전시 여행을 떠난다고 하더라.

그리고 외국으로 전시될 경우 그 전에 보수와 점검을 먼저 해놔야 해서 일반인에게 공개가 안된단다.

다행히 얼마전에 복원이 끝나 잠깐 공개하게 됐다며

우리에게 행운이라고 하더라.

 

"Fortune"

확실히 그랬다.

이번 여행은 키워드는 "행운"이었다.

그래서 그 행운이 끝나가는 지금,

나는 좀 견디기 힘든 상태가 되버렷다.

아무래도 또 다시 행운을 꿈꿔야 할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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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 끄적끄적2015. 10. 7. 08:19

피나코테카(Pinacoteca)

드디어 고대했던 바티칸 박물관의 회화관에 들어갔다.

마음 같아서는 혼자서 찬찬히 둘러보고 싶지만

단체 투어에서 개별행동은 민폐가 되니 부지런히 쫒아다녔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성수기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 관람이 민망할 정도라는데

우리는 대부분의 작품 앞에서 막힘없이 통째로 서있을 수 있었다.

(복되고 복도도다, 비성수기의 은혜로움이여...)

 

 

벌써 꽤 오래된 일이긴한데

몇 년 전 바티칸의 보물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왔었다.

그때 한가람미술관을 몇 번씩 돌면서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내가 바티칸에 가서 이 작품들을, 이보다 더 많은 작품들을 실제로 보는 날이 올까....

특히 시스타나 성당은 모형과 비디오 자료뿐이어서 갈증이 더했다.

그런데... 그런 날이 정말 왔다.

파니코테카에 있는 작품들을 둘러 보면서 

그때 생각에 혼자 감회가 깊었다.

여담인데 가이드 말에 의하면,

저 아기 천사들은 화가 잔득 났을 때 쳐다보면 마음을 평화롭게 해주는 작품이란다.

좀 찔리는 마음에 사진 속에 담아왔다.

(화가 났을 때 극약처방용을 사용하려고...)

 

 

앞의 작품은 르네상스 최고의 꽃미남 라파엘로 역작 세 편

"폴리뇨의 성모"와 "에수 그리스도의 변모" 그리고 "성모대관"이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변모"는 라파엘로 작품 중 최고의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런 명성도 전부 라파엘로 사후의 영예고

살아 있을 때는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단다.

다른 화가들의 작품을 모방했다며 적지 않은 비난을 받았다.

"에수 그리스도의 변모"는 마태복은 17장의 내용을 그린 작품인데

게세마네 동산에 올라 기도를 하던 중 모세와 엘리야 예언자를 만나 고난 뒤의 영광을 예고하는 모습이다. 

라파엘로가 죽은 후 발견되 그의 장례식장을 장식했던 그림이다.

고난 후의 영광...

그건 어쩌면 라파엘로 개인의 간절한 바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키리바조...

그의 그림은 어둡다.

하지만 그의 색채는 너무도 선명하고 엄격하다.

특히 "십자가에서 내리심"이 보여주는 입체감은 경이 그 자체였다.

그림과 현실의 경계가 그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된다.

카라바조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내가 관람자가 아닌 그림과 같은 공간에 있는, 아직 그려지지 않는 인물같다.

섬세한 근육과 피부, 그리고 그 집요한 시선이 나에게 묻는다.

"너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

 

 

1시간 30분 가량 주어진 점심시간.

나는 아주 깔끔하고 단호하게 점심을 포기했다.

그리고 지나온 길들을 다시 되집어 혼자 그림 앞에 섰다.

그때 느꼈다.

신은 지금 나와 함께 있노라고.

 

완벽한 기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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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 끄적끄적2015. 10. 6. 08:18

이곳은 이탈리아 여행에서 내가 가장 가고 싶었던 곳.

국토면적 0.44 제곱킬로미터.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이자 동시에 가장 영향력있는 나라 바티칸(Vatican) 시국.

일반적으로 이곳은 단체 투어를 많이 하는데

우리가 "유로 자전거나라" 현지 투어를 신청했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극성수기에는 입구에서만 4시간 넘게 대기한다는데

우리는 다행히 30여분만에 입장할 수 있었다.

(유럽 비수기 시즌이라는 특권은 이번 여행을 아주 풍요롭고 여유롭게 만들었다.)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의 조각상이 새겨진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출입국 심사대가 나왔다.

바티칸은 엄연한 독립국가이니 출입국 심사를 하는건 당연한 일.

하지만 통상적인 출입국 심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간단하다.

하지만 출입국 심사까지 끝나고 주세페 모모의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니 실감이 되더라.

내가 드디어 바티칸에 입성했다는게!

 

 

바티칸은 바티칸 시국, 산 피에트로 대성당, 산 피에트로 광장 세 부분으로 나뉘고

우리가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박물관에 해당하는 바티칸 시국.

그동안 책으로만 보고 상상했던 그림과 조각들을

이제 눈 앞에서 실제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떨렸다.

박물관 내에서는 설명이 불가한 곳이 많아서

오리엔테이션 개념으로 1시간 가량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다.

한 시간 이라고 해서 지루할까봐 걱정했는데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 두 천재에 대한 이야기들이 관람하는데 많은 도움을 줬다.

 

 

본격적인 관람을 하기 전 잠깐 휴식을 취했던 정원.

산피에트로 대성당의 쿠폴라가 손에 잡힐듯 가깝다.

새파란 하늘과 초록의 잔디

그리고 눈부신 햇살.

모든 것이 꿈처럼 완벽했다.

심지어 삼삼오오 모여있는 사람들까지도.

 

 

솔방울 정원으로 불리는 피냐 정원(cortile della Pigna)

4m가 넘는 거대한 솔방울을 이곳에 만들어 놓은 이유는

사람들이 교황청을 방문할 때 이 앞에서 자신의 죄를 씻고 정화하라는 의미란다.

하지만 지금은 그 의미보다는 인증샷을 찍는 장소가 되버린것 같다.

정원 한복판에는 설치된 황금빛의 거대한 원형 조형물은

그 유명한 아르날도 포모도로의 "천체 안의 천체(Sfera con Sfera)"다.

이곳 역시도 인증샷 장소

하지만 나는 가까이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과 달리 좀 멀리 떨어져서 두 조형물을 바라봤다.

아주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난 이 두 조형물이 어딘지 바티칸과는 어울리지 않더라. 

뒤에 있는 건물들의 아우라를 막아서고 있는 느낌.

피냐 정원의 첫인상은 내겐 그랬다.

의미가 담겼다고 꼭 가슴에 담기는건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도

결국은 개인의 취향일 뿐이다.

아니면

정죄 받을 것이 많은 인간의 완강한 회피였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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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 끄적끄적2015. 7. 23. 08:53

바실리카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Basilica Santa Maria del Fiore).

정식 명칭보다는 두오모로 불리는 피렌체의 상징.

두오모 성당은 1296년 아르놀포 디 캄비오가 산타 레파라타(Santa Reparata) 성당이 있던 자리에 짓기 시작해서

1436년 브루넬레스키에 의해 완성했다.

그 뒤 정면 파사드는 19세기에 원래의 것을 허물고 다시 재건해 지금의 모습이 갖추게 됐단다.

건축 당시 삼색 대리석은 이탈리아 전역에서 가장 유명한 대리석만을 사용했다.

흰색 대리석은 카라라(Carrara)산, 분홍색은 마렘마(Marremma)산, 녹색은 프라토(Prato)산.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로 유명세를 치루고 있는 쿠폴라는

역시 브루넬레스키의 작품으로 거대한 붉은 타일로 덮여 있다.

15.5m의 거대한 지름을 가진 쿠폴라는 당시 사다리 없이 지어진 가장 큰 건물이었단다.

베드로 대성당의 쿠폴라 공사를 맡은 미켈란젤로가 두오모 쿠폴라를 보고 그랬단다.

"산 피에트로 대성당의 쿠폴라는 피렌체 두오모의 쿠폴라보다 크게 지을 수는 있어도 아름답게 만들 수는 없다"

 

 

160m 높이의 두오모 쿠폴라는 463개의 계단을 올라야 정상에 이를수 있다.

하지만 당연한 말이지만 정상에 오르면 쿠폴라를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

(고래 뱃 속에서 고래의 전체 모습을 볼 수 없듯이)

부지런히 내려와 옆에 있는 조토의 종탑 414개의 계단을 또 부지런히 올라간다. 

드디어 확 트인 피렌체의 전경과 함께 그림같은 두오모 쿠폴라의 모습이 눈 앞에 펼쳐진다.

카메라 셔터를 쉴새없이 눌러댄다.

말 그대로 아무렇게나 눌렀는대도 엽서같은 사진이 쏙쏙 찍혀 나오는 기적을 경험한다.

낮게 내려앉은 구름은 환상적이었고.

구름 사이로 한줄기씩 내려오는 햇살까지 축복같다.

잔인하게...

아름다운 풍경이다.

 

 

때마침 머리 위에서 정각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종치기가 시간맞춰 나와서 의식처럼 묵묵히 줄을 당길거라 기대한건 아니지만 

그대로 드러난 기계장치로 울리는 종은 살짝 당황스럽더라.

한 집 걸러 한 집이 성당인 유럽에서 종소리를 듣는건 여러모로 장관이다.

근데 이게 또 일제히 같이 울리고 같이 멈춰주면 모르겠는데

미묘한 시간 차이를 두고 주체적으로 울려댄다.

일종의 불협화음에 웃음이 절로 났다.

조카녀석이 귀를 막으며 농담처럼 말한다.

"이거 하나 딱딱 못맞추나???

조카녀석 귀에도 산발적으로 울리는 종소리가 좀 이상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난 그 불협화음이 참 귀엽고 경쾌하더라.

마치 소풍 온 초등학생들의 소리같아서...

 

 

조토의 종탑에서 내려다본 피렌체의 모습은

두오모 쿠폴라에서 내려다본 모습과 높이감도 거리감도 완전히 다르다.

역시나 우뚝 솟은 베키오 궁전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고

저 멀리 레푸블리카 광장의 회전목마도 보인다.

시뇨리아 광장을 가다 길을 잘못 들어 레푸블리카 광장에 들어갔는데

움직이는 회전목마를 보고 정말 깜짝 놀랐었다.

탈까 말까 망설이다 돌아섰는데 이제와서 뒤늦은 후회가...

보수 중이라 가림막에 덮여있는 산 조반니 세례당도 보이고

또 역시나 빼곡한 낙서들도 보인다.

심지어 한글로만 채워진 부분도 있다. 

 

형준, 석규, 수현, 윤빈, 선호, 희주...

우리...

제발 이러지 말자.

눈치보며 새겼을 당신들 이름이

당신들의 추억을 보장하진 않는다.

눈에 담고, 마음에 새기고, 머릿속에 간직하면

그게 훨씬 더 오래, 더 깊게 남는다.

여기에 새긴 당신들 이름이

다른 사람들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흉물이 되고 있다는거,

꼭, 꼭, 꼭 기억해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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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끄적 끄적...2013. 1. 16. 09:03

<바티칸 박물관전>

부제 : 르네상스이 천재화가들

장소 :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일시 : 2012.12.08. ~ 2013.03.31.

 

세계 3대 박물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영국의 대영 박물관, 바티칸 박물관.

한가람미술관에서 세계 3대 박물관 중 한 곳인 바티칸 박물관전이 열렸다.

(몇 년 전 클림트전 이후에 한가람 미술관을 찾은 건 정말 오랫만이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 "바티칸 시국"

교황이 살고 있고 전세계 가톨릭의 중심지.

그곳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회화, 장식미술, 조각 73점이 한국에 전시중이다.

게다가 르네상스의 천재 화가 3인을 한자리에서 볼 수도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산치오.

놓치면 아무래도 후회가 될 전시회임에는 분명하다.

 

참고로 지금 예술의 전당에서는 3개의 특별 전시회가 진행중이다.

한가람 미술관에서는 "바티칸 박물관전"과 "미국 인상주의 특별전"이.

디자인 미술관에서는 "불멸의 화가 반고흐 in 파리"가 진행중이다.

반고흐전도 너무 보고 싶었는데 계단까지 길에 늘어선 줄을 보고 포기했다.

아무래도 이 전시회는 평일날 다시 찾아야 할 것 같다.

이번 바티칸 박물관전은 기대했던 것보다 작품이 적었고 그나마도 사진으로 대체한 것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도 어딘가!

하긴 시스타나 경당 천정화를 뜯어올 수는 없는 일.

언젠간 이곳을 반드시 가봐야겠다.

(나의 로망 박물관 투어에 빼놓지 말고 들러야 할 곳!)

이곳에서 하루종일 천정과 벽만 들여다보고 있어도 황홀하지 않을까?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산드로 보티첼리의 프레스코를 보고 있으면

목디스크의 걱정 따윈 아무렇지 않게 던져버릴 수 있을 것 같다.

"천지창조"나 "최후의 심판"을 눈으로 보게 되면 어떤 느낌일까!

(지금은 단지 무한 상상일 뿐이다)

 

미술에 문외한이기도 하지만

작품을 둘러보는데 목판에 템페라와 금으로 그렸다는 작품들이 많았다.

템페라가 뭐지?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달걀 노른자와 아교를 섞은 불투명 물감을 뜻한다.

템페라는 빨리 마르기 때문에 색을 서로 섞어서 사용할 수 없지만 안료의 원래 색상과 아주 가깝게 마르는 장점이 있단다.

그림들이 거의 파란빛이 띠길래 색을 내는 특별한 안료가 아닐가 상상했는데...

(이로써 단편적인 지식 하나가 늘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의외로 보존성이 좋아 보인다.

보존을 위해 뭔가 용액을 덧바르게나 색이 더 두드러지게 복원했을 수도 있겠지만.

몇 가지 작품들이 눈에 많이 들어왔다.

상아로 만든 병풍를 보면서 그 조각술에 경탄을 했고

검은 대리석에 하얀 상아로 부조한 "십자가에서 시신을 내림"을 보면서는

그 극명한 대비효과에 섬득함마저도 느꼈진다.

안으로 삼키는 무엇으로도 위로받을 수 없는 통곡과 비통이 그대로 전달되는 것 같았다.

 

1537년 경에 만들어진 대형 태피스트리를 보면서 또 얼마나 놀랐던지...

태피스트리를 만들어본 사람은 알거다.

테두리를 이렇게 일자로 만들기가 쉽지 않다는 걸.

그것도 세로 4m, 가로 3m가 넘는 태피스트리를 이렇게 제대로 직사각형으로 짠다는 건

엄청난 노고와 세심함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스케치북만한 태피스트리를 짜면서 성격의 바닥을 보여주는 사람 여럿 봐서 내가 안다)

대리석 조각과 석고상들을 보면서

그 미세한 근육의 표현에 경이로웠고

살아 꿈뜰댈 것 같은 표정에 눈을 맞췄다.

 

기대했던 성베드로 대성당의 미켈란젤로 "피에타"상은 대리석으로 조각된 원본이 아니라

1975년 제작된 스페셜 에디션 석고상 전시라 많이 아쉬웠다.

심하게 훼손된 걸 복원했다고 해서 궁금했는데...

(아무래도 이건 직접 바티칸으로 날아가야 볼 수 있으려나!)

피에타 상을 만들었을 때 미켈란젤로의 나이는 26세였단다.

어느날 그는 피에타를 두고 미켈란젤로 작품이 아닐거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래서 성베드로 대성당으로 몰래 들어가 마리아의 옷깃에 서명을 남겼단다.

"페렌체 사람 미켈란젤로의 작품"이라고...

도장 한 번 제대로 찍은 셈이다.

멋지다, 미켈란젤로! 

(이렇게 뚝심있고 성깔있는 예술가의 곤조에 어찌 아니 반할쏘냐~~)

 

목판에 유채로 그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광야의 성 히에로니무스 (1480)"는

미완이 남긴 묵시론이 오히려 더 장엄하고 비장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얼굴은 근육과 표정 하나하나와 완벽하게 살아있다.

인간의 이성과 정신은 늘 살아 있어야만 한다는 의미였을까? 

어느날 갑자기 몰아친 화산재로 폐허가 되버린 향락과 사치의 도시 폼페이가 떠올랐다.

(생각해보니 예전에 품페이 유물전에도 갔었다)

묵직하다 못해 두려움이 느껴지는 그림이다.

어쩌면 완성되지 못해서 더 경외감이 느껴지는지도...

"주님탄생 예고"는 그림은 내가 본 수태고지 중에서 최고다.

명화를 두고 이런 표현을 해도 되나 모르겠지만 동정녀 마리아 중에서 외모가 정말 갑이시다.

순수하고 가녀리면서도 고결한 느낌이 충만하다.

곁에 서있는 천사조차도 절로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는 순결함이다.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빛은 마리아의 복부쪽으로 조심스럽게 닿아있다.

수태의 찰나를 정말 절묘하게 포착했다.

실제로 보면 그림 사이즈도 상당히 큰 편인데 앞에서 한참을 서있었다.

멀리서도 보고, 가까이에서도 보면서...

그림의 내용뿐만 아니라 색감과 명암의 표현이 내 발을 오래 붙잡아놨던 작품이다.

라파엘로의 세폭짜리 프레델라 사랑도 눈길을 오래 잡았다.

작품 자체도 따뜻하고 사랑스럽지만 청록색 색감이 평온과 안정감을 안겨준다.

어미 품 속을 파고드는 아기들.

그 중 한 명이 마치 나인듯 하다.

 

몇몇의 작품들 앞에선

욕심같아서는 좀 오래 서있고 싶었는데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여서 안타까웠다.

아무래도 좀 찬찬히 감상을 하려면 평일을 이용해야 할 듯!

이것 말고도 탐나는 전시회가 몇 개 더 있는데

(예술의 전당 반고호전이랑 시립미술관에서 하는 팀버튼전)

주말은 필히 삼가해야 할 것 같다.

 

어쨌든 오랫만에 전시회 나들이를 해서 주말이 풍족했다.

기본 지식 없는 문외한의 내 멋대로 이해와 감상에 불과하겠지만...

^^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10. 1. 25. 06:16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 - 최영미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

나이를 깨닫고 살기엔 너무 어렸던 나의 20대 초반에 만났던 책입니다. 그 시집 앞에서 전 오지 않을 30대를 비웃듯 좀처럼 공감하기 힘들다 혼자 결정하고 책꽃이 한 켠에 방치하듯 내버려뒀더랬습니다.

나중에... 나중에... 그래 “서른”이 되면 그때 한 번 읽어주리라.

아마도 꽤나 거만한 다짐을 했었겠죠.

그리고... 정작 서른이 됐을 때는 까맣게 그 책을 잊어버렸고, “서른”을 지나버린 지금은 차마 두려워 책장의 표지도 건드리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십대였을 때 나는 나에게 삼십대의 시간은 결코 오지 않을 거라 호기있게 믿었었는데...

시인 “최영미”

그렇게 제때 읽지 못해 놓쳐버린 그녀의 시들은 아직까지도 제겐 조목조목 무안함과 면목 없음으로 남아 책꽃이 한 켠에서 물그러미 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마치 뭉턱뭉턱 시간이 통째로 도려내진 것 같은 휑한 느낌.

그런데  때로 그 느낌은 실제로 내 살점의 일부가 뜯기는 것처럼 저릿저릿 아프고 처절하기까지 합니다.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

여행집 신간으로 소개된 이 책이 눈에 들어왔던 건 아마도 작가에 대한 저의 이런 막연한 부채감이 한 몫 했으리라 짐작됩니다.

부채가 눈덩이처럼 쌓여 빚더미에 앉기 전에 이번엔 제때 읽어내리라 다짐하게 됐는지도...

작가 최영미는 이 책의 표지에 산문집이라고 책의 소속을 명확히 밝혔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단어 선택은 정말이지 솔직하고 정직했습니다.

이 책에는 여행지의 흥분감과 낯섬, 그리고 이국을 향하는 신비감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행지를 담은 그 흔한 사진조차 만나기 어렵죠.

여행은 “존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살기”위한 과정이라고 말하는 그녀는 이 책을 통해 삶과 사람을 기꺼이 만나 철저히 홀로 대화하고 소통하고 있습니다.

여행은 어딘가로 떠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누군가에게로 떠나는 것 또한 포함된다고 낮게 이야기하고 있죠. 

조곤조곤한 독백같은 대화들.

책을 읽는 내내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그것도 최선을 다해서 말이죠.

1부 "아름다움에의 망명"은 그녀가 그동안 국내의 신문과 잡지 등에 기고한 여행과 관련된 글들을 성실히 모아놓은 부분입니다.

시를 쓰고 소설을 쓰는 작가 최영미가 아니라 서울대 미대와 홍익대 미술대학원을 거친 미술학자로서의 그녀의 근원을 만날 수 있죠.

그녀에게 "미술"은 그러니까 영원한 노스텔지아인 셈입니다. 

불편해진 손이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미술의 정교함과 세밀함을 그녀는 글을 통해 대신 그려내기로 작정한 듯 보입니다.

2부 "예술가의 초상"은  문학, 미술, 영화 등 문화 전반에 대한 그녀의 짧은 사색과  개인적인 담론들이 오롯이 담겨있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숨겨진 이야기들과 위대한 예술가들의 애뜻한 비화들도 만날 수 있죠.
그리고 살아있는 사람들에 대한 인간적인 사귐의 글들까지도요.
솔직히 최영미가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좀처럼 믿어지지 않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작가 "최영미"를 그저 여류시인으로만 기억하려 했던 모양입니다.
선입견을 가진 삐뚜름한 시선이었죠.
여성을 글은 날카롭지 않고,  대담하지 않고, 그리고 체계적이고 치열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 담긴 글들...
삶이 치열하다는 걸, 하루하루가 생명을 목전에 둔 사람처럼 간절할 수 있다는 걸 가슴 뻐근하게 느끼게 합니다. 그것도 제겐 너무 치명적으로 잔잔하게...


오십을 앞에 둔 한 여자가 말합니다.

"여행과 스포츠는 내 삶이 다하도록 나와 함께 할 정열이다"

단지 이 말만으로도 지독히 그리고 강렬히 그녀가 부러워 야만의 짐승처럼 그녀의 사지를 물어뜯고 싶었다면 이해가 되실까요?

진심으로 저는 그러고 싶었습니다.
저 또한 그랬노라, 간절히 그래보고 싶었노라 그녀를 향해 발악이라도 하고 싶었습니다. 

여행지에서 할 일 없이 톡톡 손발톱을 깎으며, 발뒷꿈치의 오랜 각질을 정성껏 밀어내며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밀린 일기를 쓰고 싶었다고...

호들갑스럽게 유명 여행지를 눈도장찍듯 훓고 지나가는 게 아니라 가슴에 담긴 한 곳에 예정없이 머물면서 감정이 바닥날 때까지 그렇게 정착하듯 일상을 보내고 싶었다고... 

아직도 계속 건축중인 가우디 성당 앞에서,

미켈란젤로의 가죽을 들고 있는 섬뜩한 장면이 숨어있는 "최후의 심판" 앞에서.

나 또한 꾸역꾸역 밀려오는 졸음처럼 나른한 시간들을 오랫동안 보내고 싶었노라고...

내 눈 속에만 보이는 보물을 가슴에 숨기며 그렇게 애뜻하게, 그렇게 가슴 뻐근하게 그러면서도 잠시 무료하게 삶을 살아내고 싶었노라고...
그러나 그 꿈들이 내겐
항상 인류멸망의 최후보다 더 요원하고 늘 가팔라 상상만으로도 숨이 턱까지 차올랐노라고...


문득 그녀의 글들을 읽으며
저는 오래 참았던 숨을 크게 쉬어 봅니다.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라고 그녀가 말합니다.
그러나 이제 너무 겁쟁이가 되어버린 저는 알던 길도 잃을까봐 하루하루를 전전긍긍하며 살아갑니다.
정직하게 사랑하지 못했음으로 청춘을 잃은 사람.
그래서 젊은 적이 없기에 늙을 수도 없는 사람.
이 책을 읽는 저의 시선이 꼭 이랬음을 고백하게 되네요.
마음 안에 또 다시 굵은 매듭이 한 줄 묶이는 걸 느낍니다.
"예술에 재능이 없는 사람이 예술에 집착하는 것만큼 무서운 일은 없다네"
화가 세잔은 에밀 졸라의 이 말에 상처를 받고 그후로 죽을 때까지 세상과 등지고 살았다네요.
세상에 너무 많이 집착하며 살고 있는 저는 이제 무엇과 등지고 살아야 할까요?
책장을 덮은 마음 끝이 내내 묵직합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1. 8. 06:14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
내게 작가 최영미를 알게 한 최초의 책이자 그녀의 첫 책.
20대에 이 시집을 소유했을 땐
서른이 요원했기에 이해하지 못할까봐 건성건성 들춰봤었다.
(사실 그때는 내게 서른이란 시간은 결고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턱없이 어이없는 자신만만함이었음을 그때 조금이라도 알았었더라면...)
"서른"이 지나 내 잔치가 끝났을 때 다시 조목조목 읽어보리라 혼자 다짐했던 책.
그리고 오랫동안 나는 그 책을 외면했다.
지금은...
이미 "서른"을 훌쩍 넘겨버린 나는
이 시집의 제목만으로 덜컥 겁이 나 감히 책 장을 펼쳐보지도 못한다.
마치 뭉턱 시간을 통째로 도려낸 것 같은 느낌.
그 느낌은 실제로 살점이 떨어져 나간 것처럼 아리고 처절하다.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
제목만 들었을 땐 여행집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책 표지에 산문집이라는 자신의 소속이 정확히 밝혀져 있다.
최영미의 단어 선택은 정직했다.
1부 "아름다움에의 망명"은 그녀가 그동안 국내의 신문과 잡지 들에 기고한 여행과 관련된 글들을 모은 부분이다.
2부 "예술가의 초상"은  문학, 미술, 영화 등 문화 전반에 대한 그녀의 짧은 사색과
개인적인 경험들이 오롯이 담겨있다.
1부의 글조차도 여행지를 소개한다는 느낌보다
어떤 특정한 그림이나 조작에 일일이 말을 걸고 있다는 느낌...
그것도 조근조근한 독백으로....
여행지를 담은 그 흔한 사진조차도 이 책에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시를 쓰고 소설을 쓰는 최영미가 아나라
서울대 미대와 홍익대 미술대학원을 거친 미술학자로서의 최영미를 만날 수 있다.



마흔을 훌쩍 넘긴 한 여자가 말한다.
"여행과 스포츠는 내 삶이 다하도록 나와 함께 할 정열이다"
지독히 그리고 강력히 그녀가 부러워 야생의 짐승처럼 물어뜯고 싶어진다.
진심으로 나는 그러고 싶었다.
여행지에서 편하고 손발톱을 깎으며 오래 밀린 일기를 쓰고 싶었다.
호들갑스럽지 않게 유명 여행지를 눈도장찍듯 훓고 지나가는 게 아니라
며칠이라도 감정이 바닥날 때까지 한 곳에 정착하듯 머물며 일상을 보낼 수 있기를...
아직도 계속 건축중인 가우디 성당 앞에서, 
미켈란젤로의 가죽을 들고 있는 섬뜩한 장면이 숨어있는 "최후의 심판" 앞에서
나는 졸음처럼 밀려오는 시간들을 오래동안 보내고 싶었다.
그 꿈은 요원하고 늘 가파라 상상만으로도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몇 가지 표현과 글들이 눈에 들어와 담아본다.
특별히 공감했던 부분들과 지극히 부러웠던 부분들.
문득 숨쉬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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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여자들은 프랑스 여자들보다 화장이 진하다. 유럽의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여인네들으 얼굴이 울긋불긋해진다. 내 경험을 일반화하지면, 젊은 여성에게 두터운 화장을 강요하는 사회일수록 여성의 지위가 낮다.

The ugly can be beautiful, but the pretty never - 고갱
예술을 알면, 문학을 좋아하면 인생이 복잡해진다. 좋게 말해 인생이 풍요로워진다. 보통 사람들은 밖에 보이는 것만 보고 이렇다 저렇다 미추를 논하는데, 예술가들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다른 각도에서 보는 사람들이거든, 자신이 남다른 생을 살아야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이 눈에 들어오는 법이다. 그래서 위대한 인생이 위대한 예술을 낳는다는, 예술가는 모두 불행하다는 신호가 성립하지.

버락 오바마, 그는 인종이 아니라 인간에 호소했다. 그는 선동하지 않고 설득했다. 자신감이 그의 성공의 열쇠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처럼 대단한 자신감의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그는 이렇게 답했다. 어려서부터 여러 대륙, 여러 문화에서 자라며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을 배웠노라고.

나는 이 모든 처음, 최초들을 의심한다.

어쩐지 이건 너무 만들어진 장치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진짜 상처는 드러나지 않는 법이다. 그리고 너무 고통스러우면 눈물도 마른다. 그 눈물을 억지로 짜내려는 모든 시도는 그래서 결국 어설픈 신파로 전락할 따름이다.
그날의 광주에 대한 지식인의 해묵은 "부채의식"에서 태어난 영화 <꽃잎>. 장선우 감독이 과거를 들여다보는 창에는 시종일관 감상이라는 필터가 부옇게 끼어 있다. 신파의 본질은 자기 연민이다. 일종의 정신적 딸딸이에 다름 아니다. 감상과 자기 연민의 안개를 거도 광주는 언제 신파에서 구출될 것인가? "우리"는 언제 눈물을 그치고 현실을 직시할 것이가? 이는 장선우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화두이다. 서둘러 고아주를 형상화하려는 허튼 기도보다는 지금은 차라리 광주를 손대지 않고 그냥 놔두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시사회장을 떠나며 나는 다짐했다. 싸구려로 위로받느니 차라리 냉정한 무관심을 택하겠노라고.   - 장선우 감독의 영화 <꽃잎>을 시사회를 본 후 느낌을 적은 글

시는 그것을 쓴 사람이 아니라 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의 것이다.

세계는 인간 없이 시작되엇꼬, 또 인간 없이 끝날 것이다. - 레비스트로스(프랑스 인류학자이며 사상가)

사랑받지못했으므로 청춘을 잃은 사람들, 그래서 젊은 적이 없기에 늙을 수도 없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위로가 되면 좋겠다. - 잉게브르크 바흐만의 산문집 <삼십세>

예술에 재능이 없는 사람이 예술에 집착하는 것만큼 무서운 일은 없다네 - 에밀 졸라의 이 말에 깊은 상처를 받아 그후로 죽을 때까지 세상과 인간을 등지며 산 화가 세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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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 책거리2008. 12. 21. 10:55

  <엄마를 부탁해> -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그녀가 낸 작품들은 모조리 읽었습니다.

하다못해 산문집까지도...

제게 있어 신경숙은 질투의 대상이이기도 했고, 동경의 대상이기도 했고, 그리고 실망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그녀만의 독특한 감성과 글쓰기에 얼추 젖어버렸다고 할까요?

하지만 분명한 건 지금의 제 느낌들이 작가로서의 그녀에 대한 종착역은 결단코 아닐 거라는 사실입니다.


이 사람...

평범한 일상을 너무 아프게 써 어느 날은 혼자 화가 났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면은... 나를 들여다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뜨끔한 자괴함과 부끄러운 속내를 들킴에 대한 막무가내의 억지였던 건 같네요.

“풍금이 있던 자리”

가령 그녀의 글쓰기는 그렇습니다.

풍금이 있는 자리가 아니라 풍금이 있던 자리인 거죠.

화자가 바로 <나>여야 하는 이야기를 그녀는 <당신>으로 바꿔놓습니다.

그녀의 모태 신앙 같은 도시 정읍, 그리고 차마 분명한 이름조차 갖지 못한 체 등장하는 이니셜의 인물들...

게다가 대화조차도 문장부호 없이 그대로 써버리는 당혹감...

<리진>이라는 소설을 통해서 잠깐 다른 방식의 글쓰기를 시도했던 그녀가 다시 초기작으로 돌아왔네요.

지극히 “신경숙다운” 소설과 함께요...


철들기 시작한 딸들 중 “엄마”라는 이름에 가슴 아프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이 책은 모태로부터 시작된 자식들의 원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총 5장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엄마를 잃어버린지 일주일째다”.....

지독한 두통과 점점 잃어가는 기억들, 수시로 찾아오는 통증을 숨기고 노부부는 자식이 있는 서울로 올라옵니다.

예전의 우리네 아버지들의 발걸음.

아내와 같은 속도로 함께 나란히 걸어가는 게 마치 무슨 대단한 흉이라는 되는 냥 성큼성큼 앞서 갑니다.

자식들의 마중을 마다하고 지하철을 탄 남편의 등골이 순간 오싹합니다.

글조차 읽지 못하는 그 아내가 열차를 타지 못했던 거죠.

성급히 남편은 남영역에서 되집어 전철을 타고 서울역으로 향합니다.

그러나 아내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렇게 4명의 다 큰 자식들은 속수무책으로 어미를 잃습니다.

 

각각의 장은 큰딸, 맏아들,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다시 큰딸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큰딸의 이야기는 “너(2인칭)”의 시점으로, 맏아들의 이야기는 “그(3인칭)”의 시점으로, 아버지의 이야기는 “당신(2인칭)”의 시점으로, 그리고 어머니의 이야기는 “나(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엄마를 찾는 전단지를 만들기 위해 모인 가족들은 서로에게 긁힌 상처를 드러내며 새로운 상처를 만듭니다.

그들에게 던져진 화두 두 가지!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나?”

“엄마가 홀로 남겨지고 있을 때 나는 무엇을 했는가?”

이제 그들은 전단지를 보고 연락한 내용을 따라 엄마를 찾아 헤맵니다.

그들이 찾아간 곳은 예전에 그들의 첫 직장이 있었던 곳이고, 본인 명의의 첫 집을 장만했던 곳 등, 모두 그네들의 흔적이 스친 곳이기도 합니다.

엄마는 정말 그 곳을 다녀갔던 걸까요?

파란 슬리퍼에 뼈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상한 발을 끌고...


우리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엄마에겐 사연이 없다고... 엄만 그냥 처음부터 엄마일 뿐이라고...

어쩌면 이해할 마음조차도 미처 갖지 못할 만큼 자식으로서의 이기심이 너무 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엄마에게도 돌아가 편히 쉬고 싶은 집이 있었을 테고, 그리고 그 엄마에게도 무릎을 베고 누우면 다독여 줄 엄마가 일평생 필요했을 거라는 걸, 우리는 정말 알고 있었을까요???

그런 엄마가 어느 날, 우리들에게 말합니다.

“나는 이제 갈란다... 잘 있으시오”


엄마를 잃어버린 지, 9개월째...

작가인 큰딸은 이탈리아 성 베드로 성당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녀는 그 곳에서 여동생의 편지를 떠올리며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 앞에 섭니다.

“....... 엄마는 엄마가 할 수 없는 일까지도 다 해내며 살았던 것 같아. 그러느라 엄마는 텅텅 비어갔던 거야. 나는 엄마처럼 못 사는데 엄마라고 그렇게 살고 싶었을까?......”
감히 누가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까요?

“엄마니까....엄마란 다 그런 존재니까....”

저는 죽어도 이렇게 말 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소리조차 죽이며 흐느꼈던 내 어미의 아픈 통곡과 내 손을 붙잡고 놓지 않던 내 어미의 거친 손이 지금 저를 여기에 있게 했으니까요...

결국,

이 책은 또 제 이야기이기도 한 셈이네요.


피에타 상...

죽은 예수를 품에 안고 고통과 절망의 순간을 이겨내고 있는 성모 마리아.

어미의 무릎, 제 2의 모태 속에서 아들은 드디어 평온을 맞이합니다.

어미의 손길이 스치기만 하면 이제 모든 고통과 절망은 사라져 흔적도 없어질 테죠.

비로소 모든 잃은 생명 또한 비옥해져 싹이 틀 것이며 자라나 열매를 맺게 될 겁니다.

내 어머니...

어미의 생명은 그렇게 나에게로 옮겨옵니다.....

아무래도 저는 이제 제 자신에게도 말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

“엄마를 부탁해...” 라고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