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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3.17 <제비를 기르다> - 윤대녕
  2. 2010.04.13 매화 그리고..
  3. 2009.03.21 열매
읽고 끄적 끄적...2011. 3. 17. 05:46

윤대녕의 글을 읽고 있으면 온 몸이 싸늘해진다.
김훈의 그것과는 또 다른 싸늘함.
김훈의 소설 속에 바람을 읽을 수 있다면
윤대녕의 소설 속에는 폭설을 읽을 수 있다.
쓸어도 쓸어도 집요하게 다시 쌓이는 거침없는 하얀 눈발.
그의 소설은 세상의 모든 길을 묻은 길고 오랜 폭설,
그 하얀 풍경(설경)이 담긴 오래된 묵화같다.
그의 소설 속에는 그 폭설을 뚫고 시간을 천천히 통과하는 사람이 있다.
그쪽에서 이쪽으로 찾아오는 그런 시간, 그리고 그런 사람.
동시에 찾아오는 그 두가지를 대면하는 건
오래오래 침묵하게 하고, 오래오래 집중하게 한다.
그의 글들은 앞으로도 얼마나 더 그림같을 것인가!!!
내게 그의 글은 바로 "옛날 영화"다.


연(鳶)
제비를 기르다
탱자
편백나무숲 쪽으로
고래등
낙타 주머니
못구멍
마루 밑 이야기


윤대녕의 네 번째 소설집엔 담긴 8편의 중,단편의 그림들.
(그의 소설은 그림처럼 읽힌다. 그것도 아주 또박또박...)
이 그림들을 읽으면서
나는 책 속에 있는 인물들이 다 내 오랜 피붙이같이 마다마디가 저릿했다.
피붙이에 대한 이야기를 풍문(風聞)으로 듣는 건 또 얼마나 괴로운 일이던가! 
인간사(人間史)!
윤대녕의 단편들에도 장편에서처럼 "시간"이 보인다.
그대로 멈춰서 현재까지 이어지는 시간.
혹은 상관있어야 하는데 부러 무시하고 계속 흘러가는 시간.
그 시간속에 그들이 있다
..... 낮에 잠깐 열어두었던 창문을 닫고 집안으로 들어가는 여자처럼 보였다. 이미 굳어버린 콘크리트 반죽처럼 도대체 아무 표정이 없는 ......  그들은
이렇게 삶이 뜻하지 않은 각도로 인생을 바꿔놓은 사람들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일이 어떤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계기로 작용해 생의 전모를 바꿔놓는 수가 종종 있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삶의 원리이자 저마다 이면에 감춰진 속박이자 굴레이기도 하다.

생에는 화해할 수 없는 관계라는 것도 엄연히 존재하게 마련이란다.
그걸 인정하면 악마같던 삶이 관대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고...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선 오래된 작부집의 늙어버린 문희나 고래등을 만든 아버지처럼
많은 시간들이 더 지나야만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나?
사람은 정화되지 않으면 나이를 먹을 수 없다는데...

윤대녕의 단편 속에 담긴 한 사람의
혹은 한 가정의 전 생애를 들여다보는 일은,
마치 누군가 내 등에 대고 직접 망치를 치는 것처럼 뜻밖의 고통이었다.
어이없기도 하지만 동시에 어찌할 수도 없는 고통.
윤대녕이 말했다.
...... 나는 '그 모든 어찌할 수 없음'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그리움을 자주 체험했다. 삶의 정체는 결국 그리움이었을까? ..... 나는 문학이 왜 내게 문학이어야만 하는 이유를 새삼 절실하게 깨달았다. 그 어찌할 수 없는 그리움들을 밖으로 떨쳐내기 위해서라도 나는 또한 쓰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삶이 계속되는 한 그리움은 계속될 것이고 또한 누군가 조용히 숨어 글을 바라고 쓰는 일도 계속될 것이다 .....


그리고 누군가는 조용히 숨어 
시간이 담긴 윤대녕의 그림들을 또박또박 읽어나갈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날 문득,
이쪽과 저쪽의 시간이 서로 만나지는 날이 올지도...

Posted by Book끄-Book끄
찍고 끄적 끄적...2010. 4. 13. 05:54
사진을 찍기 시작했을 때
제일 좋았던 건,
꽃을 가까이서
그리고 아주 찬찬히 들여다 볼 이유가 생겼다는 거였다.
아주 작은 꽃일수록 그 속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냥 신기하고 신비롭기만 해서...
작은 것들 안에 들어 있는 세계가
내겐 향기롭고 너무나 완벽해 보였다.
사진을 잘 찍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도
어쩌면 이 이유 하나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꽃을 더 잘 들여다보기 위해서...



백매화 홍매화.
같으면서도 또 완전히 다른 한 세계.
봉오리에서 꽃이 피어나는 모습은
모든 창조와 진화와 소멸의 과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한 나무 안에서도 각기 다르게 피어나는 한 송이 한 송이의 세계는
오랜 생명의 시간조차도 무색하게 만든다.
그 빛깔 마져도 미묘하게 다른 세계.
작은 몸 안에 이 모든 걸 담고 있으려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러니 이렇게 활짝 피어날 수밖에...
일제히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그 다음 생.



꽃들의 꿈은 어쩌면...
하늘 저 위에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껓가지를 높여 하늘을 향해 향기 터트린 모습을 보노라면
마치 신과의 대면을 보는 듯
묘한 경외감까지도 느껴진다.
빛을 만나 더 선명해지고 더 밝아지는 꽃.
그 속을 읽어내라는 묵시록 같기도...



꽃이 훔친 빛.
꽃이 훔친 해,
꽃이 훔친 바람
꽃이 훔친 풍경.
꽃이 훔친 세상.
그리고 꽃이 완벽히 훔친 나... 
Posted by Book끄-Book끄
찍고 끄적 끄적...2009. 3. 21. 14:20

처마 끝
붉은 열매
귀 기울여 듣는 풍경



와르르~~~
터진 웃음에
그만 얼굴 붉어졌네,




자장 자장
나무결을 스다듬는
바람이 지나가면




홀로 나와
하루를
지켜보다



대롱대롱....
온종일 기다렸던
그...리...움...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