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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10.07 바티칸 박물관 - 피나코테카 (Pinacoteca)
  2. 2011.03.09 박완서 <잃어버린 가방> / 최인호 <인연>
여행후 끄적끄적2015. 10. 7. 08:19

피나코테카(Pinacoteca)

드디어 고대했던 바티칸 박물관의 회화관에 들어갔다.

마음 같아서는 혼자서 찬찬히 둘러보고 싶지만

단체 투어에서 개별행동은 민폐가 되니 부지런히 쫒아다녔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성수기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 관람이 민망할 정도라는데

우리는 대부분의 작품 앞에서 막힘없이 통째로 서있을 수 있었다.

(복되고 복도도다, 비성수기의 은혜로움이여...)

 

 

벌써 꽤 오래된 일이긴한데

몇 년 전 바티칸의 보물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왔었다.

그때 한가람미술관을 몇 번씩 돌면서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내가 바티칸에 가서 이 작품들을, 이보다 더 많은 작품들을 실제로 보는 날이 올까....

특히 시스타나 성당은 모형과 비디오 자료뿐이어서 갈증이 더했다.

그런데... 그런 날이 정말 왔다.

파니코테카에 있는 작품들을 둘러 보면서 

그때 생각에 혼자 감회가 깊었다.

여담인데 가이드 말에 의하면,

저 아기 천사들은 화가 잔득 났을 때 쳐다보면 마음을 평화롭게 해주는 작품이란다.

좀 찔리는 마음에 사진 속에 담아왔다.

(화가 났을 때 극약처방용을 사용하려고...)

 

 

앞의 작품은 르네상스 최고의 꽃미남 라파엘로 역작 세 편

"폴리뇨의 성모"와 "에수 그리스도의 변모" 그리고 "성모대관"이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변모"는 라파엘로 작품 중 최고의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런 명성도 전부 라파엘로 사후의 영예고

살아 있을 때는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단다.

다른 화가들의 작품을 모방했다며 적지 않은 비난을 받았다.

"에수 그리스도의 변모"는 마태복은 17장의 내용을 그린 작품인데

게세마네 동산에 올라 기도를 하던 중 모세와 엘리야 예언자를 만나 고난 뒤의 영광을 예고하는 모습이다. 

라파엘로가 죽은 후 발견되 그의 장례식장을 장식했던 그림이다.

고난 후의 영광...

그건 어쩌면 라파엘로 개인의 간절한 바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키리바조...

그의 그림은 어둡다.

하지만 그의 색채는 너무도 선명하고 엄격하다.

특히 "십자가에서 내리심"이 보여주는 입체감은 경이 그 자체였다.

그림과 현실의 경계가 그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된다.

카라바조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내가 관람자가 아닌 그림과 같은 공간에 있는, 아직 그려지지 않는 인물같다.

섬세한 근육과 피부, 그리고 그 집요한 시선이 나에게 묻는다.

"너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

 

 

1시간 30분 가량 주어진 점심시간.

나는 아주 깔끔하고 단호하게 점심을 포기했다.

그리고 지나온 길들을 다시 되집어 혼자 그림 앞에 섰다.

그때 느꼈다.

신은 지금 나와 함께 있노라고.

 

완벽한 기쁨이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1. 3. 9. 06:02
 

박완서의 글은 그렇다.
오랫동안 깊고 따뜻하게 생각한 마음의 진득함,
꽁꽁 얼어있는 발을 녹여주는 포근함.
그리고 오래오래 고은 뽀얀 사골 국물에 후루룩 밥 말아 먹는 것 같은 꽉찬 포만감까지 느껴진다.
그래서 그분의 책이 꽃혀있는 서점 코너만 들어서도
시골 할머니집 아랫목에 앉아있는 느낌이었다.
그 할머님은 이제 더 이상 찐고구마를 소반에 담아 내올 수 없게 됐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 기억은 가슴을 따뜻하고 뭉클하게 한다.
갑작스럽게 실감이 된다.
더 이상 그 분의 새로운 자식들을 읽을 수는 없다는 사실이.
이제 아픈 배를 쓸어주고 지친 어깨를 두드려주던 정답던 손길을 마냥 그리워만 해야하는구나.
그랬다. 내게 박완서라는 소설가는,
두터운 가마솥에서 방금 긁어낸 푸짐한 누룽지같았다.
그래서 박경리의 타계 소식보다도
박완서의 타계 소식이 내겐 더 치명적이었다.


<잃어버린 여행가방>
박완서의 기행산문집.
노구의 몸을 한 발 한 발 움직여 찾았던 곳.
그 장소보다도 그 곳을 말하는 그분의 시선이 너무나 따뜻하고 정겹다.
챕터 시작 첫 페이지에 작게 담겨 있는 얼굴 사진은...
책 장을 넘기고 싶지 않을 만큼 오랜시간 다정하게 마주하게 한다.
문득 궁금하다.
누가 찍었을까?
풍요롭고 따뜻한 당신의 미소는 지금도 여전히 수줍은 소녀같다.
내게 박완서는 분명 로망이다.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는 로망...
어느날은 나도 박완서처럼 남도땅을 하나하나 밟으며 폭삭폭삭한 흙의 결을 느끼고 싶고
젖은 낙엽이 풍기는 냄새에 오랫동안 안겨있고 싶다.
비가 품은 냄새처럼 은근하고 약간은 비릿한 그 냄새...
벌써부터 이 모든것들이 당신처럼 그저 그립다.

...... 모든 것은 돌고 돈다. 가장 앞서갔다고 생각되는 게 가장 처진 게 될 수도 있다. 지금 가장 낙후된 고장처럼 보이는 것이 가장 앞선 희망의 땅이 될 수도 있다. 발전이란 이름으로 만신창이가 된 국토에 마지막 남은 보석 같은 땅이여, 영원하라 ......

박완서는 말했다.
...... 타는 사람보다도, 나는 사람보다도, 뛰는 사람보다도, 달리는 사람보다도, 기는 사람보다도, 걷는 사람이 난 제일 좋다 ......

이 글귀처럼
그분은 생전에 우리나라의 남도땅 구비구비를,
바티칸을, 중국을 통해 백두산을, 상해를
에티오피아와 인도네시아를
세계의 지붕 티베트를, 가트만두를 걷고 또 걸었다.
걷는 육신의 피로함은
말간 정신의 청명함으로 지금 내 눈 앞에 활자화되어 있다.
겸손하고 나직한,
그러나 선연하고 강인한 그분의 글을 나도 다리품하듯 읽고 또 읽었다..

"그립다"는 말...
참 두고두고 서럽구나......



한때 최인호의 이 에세이가 서점의 베스트셀러 윗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오히려 읽을 생각을 안 했었는데...
책을 손에 잡은 건,
아마도 표지에 있는 사진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강에 떠 있는 나룻배 한 척.
그리고...
책 속에 담긴 사진들은 내가 퓨파인더로 보던 시선 그대로다.
솔직히 책의 내용보다는 사진이 눈에 밟힌 책이다.
이렇게 말하면 턱없는 소리라 생각되겠지만
꼭 내가 찍은 사진들 같다. (^^::)

"인연"이라고 단어때문에
나는 이 책이 작가 최인호가 만남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일거라고 생각했다.
하긴, 따지고 보면 "인연"이라는 게 어디 사람하고만 맺을 수 있는 건가!
사람에 대한 인연보다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이 사람 아닌 것과 맺는 관계이리라.
꽃들과 나무들, 그리고 작은 것들을 바라보는 최인호의 시선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내겐 최인호의 책들이
아직은 여전히 낯설다.

* 공교롭게도 이 두 책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한 사람이 있다.
   영화배우 "안성기"
   내겐 "안성기"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같은 게 있다.
   문화예술인의 "노블레스 오블리제"라고 말하면 이해가 될까? 
   따뜻하고 바른 사람에게는
   누구라도 악한 감정이 생길 수 없다는 걸 안성기를 통해 느끼게 된다.
   참 보석같은 사람이다.
   어쩔 수 없이 빛나는 사람.
   그런데 그 빛은 과하지 않고 언제나 영롱하고 깨끗하다.
   "카리스마"라는 단어조차도 왠지 주눅들게 만드는 그런 사람 *^^*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