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11.09 <그로칼랭> - 로맹 가리
  2. 2010.08.12 <심령카툰> - 오차원 1
  3. 2009.06.22 달동네 책거리 51 : <듀이>
읽고 끄적 끄적...2010. 11. 9. 06:26
아자르 - 가리 사건
1974년 에밀 아자르라는 무명작가가 자신의 첫 소설 <그로칼랭>을 출판사에 보냈다.
그리고 메르퀴르 드 프랑스 출판사에서 이 책을 출간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편집자들은 작가에게 난해한 마지막 장을 잘라낼 것을 요구했고.
소설가는 이를 받아들여 책을 출간했다.
소설은 대성공을 거뒀다.
이게 바로 프랑스 문단을 뒤흔든 아자르-가리 사건의 시작이다.
당시에 비밀은 완벽히 지켜졌다.
에밀 아자르라는 신인 작가는 브라질에 사는 것으로 되어 있었고,
원고와 관련된 모든 사항들은 피에르 미쇼라는 중개자에 의해 전달됐다.
1975년 9월 에밀 아자르는 두번째 소설 <자기 앞의 생>을 세상에 내놓는다.
이번에는 더욱 완벽한 조치를 취하기 위해 아자르에게 실체를 마련하기로 했다.
자신의 오촌 조카 폴 파블로비치를 에밀 아자르로 내세웠다.
가짜 이력도 꼼꼼히 준비했다.

1956년 로맹 가리는 자신의 본명으로 쓴 <하늘의 뿌리>로 공쿠르 상을 수상했다.
1975년 또 다른 이름 에밀 아자르로 쓴 소설 <자기 앞의 생>도 공쿠르 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1980년 12월 2일,
로맹가리는 자신이 바로 "에밀 아자르"라는 유서를 남기고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로써 로맹 가리는 한 작가에게 두 번 주지 않는다는 공쿠르 상을 중복 수상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기다.
로맹 가리는 나중에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에서 말했다.
"내가 얼마나 통쾌했을지 상상해보시라" 라고... 
로맹 가리!
그는 프랑스 문단에 통쾌한 한방을 날렸다.
그리고 동시에 문학적으로도 전무후무한 일을 남겼다.



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란 이름으로 4권의 책을 출간했다.
<그로칼랭>, <자기 앞의 생>, <가면의 생>, <솔로몬 왕의 불안>
아자르의 작품이 인기를 얻으면서 그의 실체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프랑스 시민들은 "아자르어(語)"라는 별명까지 만들 정도로 그의 독특한 문체에 열광했다.
아자르어는 매우 독창적이면서도 '부적절함'에 기반을 두고 있단다. 
코믹하면서도 동시에 불안정한 언어.
로맹 가리는 왜 에밀 아자르라는 제 3의 인물을 만들었을까?
아마도 그는 "로맹 가리"라는 오래된 진부함에서 탈피하고 싶었으리라.
로맹 가리라는 작가적인 한계에 대해 또 다른 탈출구를 만들고 싶었는지도...
소설은 다른 것, 다른 세계의 창조이며 자기에서 벗어나 다른 삶을 사는 출구가 될 수 있기에...
한 사람에게 주어진 두 개의 천재성!
신은 가끔은 이렇게 불공평할 때가 있다.



에밀 아자르란 이름으로 쓰여진 첫번째 소설 <그로칼랭>
이야기 자체는 상당히 그로테스크하다.
파리에 사는 서른일곱살 독신남 미셸 쿠쟁.
그는 아프리카에서 온 2m 20 cm의 거대한 비단뱀을 자신의 반려동물로 선택했다.
그 뱀에게 심지어 열렬한 포옹이라는 뜻의 "그로칼랭"이란 이름까지 지어줬다.
"비단뱀은 천성적으로 붙임성이 좋은걸요, 착착 감기니까요."
쿠쟁의 한 마디에 그야말로 나는 팡 터졌다.
비단뱀은 탈피하지만 항상 다시 시작합니다. 그렇게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어요. 새로 거듭나지만 조금 더 새로워질 뿐 똑같은 상태로 되돌아옵니다.
그래서 로맹 가리에게도 에밀 아자르가 필요했던건지도 모르겠다.
책은 두 개의 결말을 동시에 수록하고 있다.
출판됐을 당시에 편집자가 삭제를 요구한 대로 삭제된 결말과
그리고 원래 의도였던 결말, 네 장의 추가된 일명 그로칼랭의 생태학적인 결말.
두 결말의 차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쿠쟁에게도 로맹 가리에게도 더 이상 그로칼랭은 필요하지 않다.
완전히 그 자신의 껍질에 만족해버렸기 때문에...
쿠쟁은 스스로 비단뱀이 되어 세상을 기어다니기로 작정한 것 처럼 보인다.
불편하게 기묘하며 어느 면에서는 충격적이기까지 한 결말들.
많은 사람들이 자기 껍질 속에서도 불편해하는 것은 그 껍질이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이 소설의 두 결말이 다 불편한 건 그래서이리라.

나는 이리저리 열망하는 상태, 잠복 상태를 겪고 있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그것은 불안, 식은땀, 출산 전 구토, 파격적인 외침으로 표출된다. 나는 정체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불안을 조장하지 않기 위해. 예의 바르고 품위 있게 지내기 위해 식품을 먹는다. 게다가 사람들은 고용과 부끄러움 없이 유익한 삶을 위해 모두가 훌륭한 모습으로 가장할 수 있도록 인공 팔다리를 제작한다. 때로는 미래에 받아들여질 날을 대비해 한밤중에 얼어나 척추를 유연하게 하는 체조를 한다.

철학적이면서 동시에 정치적이다.
결코 재미있거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제대로 읽는다면,
소설 속에 은밀하게 깔려있는 조롱과 저항을 읽어내는 재미도 특별할 것이다.
(물론 내가 그 재미를 다 느꼈다는 건 아니다. 맛을 좀 봤다고 할까?)
정말 2미터가 넘는 비단뱀같은 소설이다.
그냥 보고만 있을 때는 혐오감이 일어 피하고 싶지만
일단 착착 감기는 뱀의 똬리 속에 들어가 있으면 속수무책이 될 수밖에 없는 그런 이야기.
"선택적 친화력"
로맹 가리의 그로칼랭을 읽으면서 이 단어에 절감하는 중이다.

...... 선택적 친화력. 헛되이 모색한 끝에 감정이 끌리는 대로 선택하는 거야. 사전에도 나오지만 사전은 장래를 위해 있는 거니까 믿으면 안 돼. 확실히 친화력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어.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전혀 모르니까. 뭔가 남다른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나는 뜻을 모르는 표현을 자주 신중히 사용해. 적어도 거기에는 희망이 있으니까. 이해를 못하면 가능성이 있는 거야. 그게 내 인생관이야. 나는 항상 주위에서 모르는 표현을 찾지. 그러면 적어도 그게 다른 무엇을 뜻한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 ......

나는 또 다시 충격을 받았다.
로맹 가리에게도.
에밀 아자르에게도.
그리고 두 인물이자 동시에 한 사람었던 그가 쓴 소설들에도...
확실히 신은 불공평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8. 12. 05:31
처음에 손에 잡았을 때는
솔직히 무지 재미있을 줄 알았다.
주변에선 그랬다.
이젠 별 책(?)을 다 읽는다고...
어쨌은 읽고 난 후의 느낌은,
나한테는 재미없는 내용이었고 살짝 낚인 것 같은 찜찜함이...



삼차원과 사차원의 세계로 이해하가 버거운 나로써는
기면증을 가진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 오차원이 그리고 쓴 카툰들이 막막할 뿐이다.
본인이야 영(靈) 현상과 심령체험이 고통스러웠겠지만
일반적인 경험들이 아니라 이걸 과연 믿어야 하나 싶긴 하다.
그렇다고 내가 의지가 무지 강건하여
"귀신"과의 대면에 담대하리라... 자신할 수는 도저히 없지만
어쨌든 일단 현재까지는 직접 대면한 경험이 없으니
여기에 대해선 대략 할 말이 없다.
글과 그림을 쓴 오차원은 자신이 수없이 경험한 기이한 귀접(鬼接) 현상들을
50개의 에피소드로 하나하나 이야기해주고 있다.
인터넷에 연재된 카툰이라는 것도 같고...
지금 그녀는 서울을 떠나 작은 소도시에서 반려동물과 살고 있단다.
가족외 다른 사람들과는 가능하면 접촉하지도 않고
일도 사람을 직접 대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하면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나!



이 책에 의하면 나 역시도 빙의가 잘 되는 영매 체질인 것 같은데
다행한 일이겠지만 이런 황당한 경험은 없다.
자각몽이라는 루시드 드림도 잘 꾸는 편이고
잠을 잤어도 늘 피곤하고 무기력한 것도 딱인데... ㅋㅋ
어쩌면 내가 절대로 오컬트적인 인간이 될 수는 없겠다 싶다.
흥미로운 부분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닌데 (렘수면이나 ESP같은)
유체이탈이나 우주 여행, 혼줄(실버코드) 등 대부분의 내용은 좀...
그래도 끝까지 봤던 이유는 그림이 좋았기 때문이다.
액소시즘 같은 그림이 아니라 좀 멀쩡한 그림들의 색감이 선명하고 예뻐서...
전문가가 아니라 잘은 모르겠지만 일러스트레이터로서는
지금 현재 괜찮은 평가를 받고 있을 것 같다.
뭐, 어쨌든 하나라도 괜찮았으니 다행이긴 하다. ^^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6. 22. 13:33
<듀이 : 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

                    - 비키 바이런, 브렛 워티  

듀이


반려 동물!

이제 우리나라에도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는 관계입니다.

예전에 집동물이라고 하면 키워서 먹는다는 보양(?) 개념의 축생이었는데 지금은 동반자 관계를 넘어 부모자식으로까지 발전된(?) 관계도 아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론 동반의 반려관계는 마음의 독거인(獨居人)인 그네들의 외로움과 고독감을 둘만의 긴밀한 소통으로 치유할 수 있는 묘한 “미스터리”의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긴 해도 지하철이나 공공장소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개나 고양이를 풀어놓고 마음껏 뛰어놀게 하는 “개어머님”, “개아버님”을 보면 개념도 함께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는 것 같아 난감한 표정을 짓게 되죠.

주먹만한 강아지도 무지 무서워하는 저로서는 쉽게 손에 들기 어려운 책이었습니다.

책 표지에 버젓이 등장하고 있는 눈 큰 고양이의 시선이라니......

예전부터 고양이는 영매(靈媒)로 쓰였다는데......

그래도 일단 만나보기로 했습니다.

그래봤자 뭐 책 속의 고양이일 테니까요.


1988년 1월 18일, 가장 추웠던 겨울 날 !

아이오와주 스펜서 마을 공공 도서관 사서 비키는 도서 반납함에서 동상에 걸린 자그마한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합니다.

세상은 매서운 계절보다 더 세차게 몰아치는 경제 위기의 상황이었죠.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동상 걸린 네 발을 가진 버려진 오렌지색 새끼 고양이는 그렇게 해서 "듀이“라는 새 이름을 갖게 됩니다.

“Dewey Readmore Books"

도서관 고양이로는 아주 적절한 이름이 아닐까요?

우여곡절 끝에 도서관에 새로운 식구가 된 “듀이”는 오랜 경제 위기로 희망을 잃어가는 마을 사람들에게 새로운 활력과 사랑, 위안을 안겨 주며 마을 전체의 친구가 되어 갑니다.

그런 듀이에게도 그만의 관계맺기 방식은 있습니다.

“한 번에 단 한 사람의 마음만을 얻어간다“는.....

한 번에 단 한 사람에게만 최선을 다함으로써 그 사람의 마음의 문을 끝내 진심으로 열고야 마는 작은 고양이 듀이.

인맥 네트워크의 대가라고 소개해드리고 싶을 정돕니다.

그렇게 마음을 얻어낸 듀이는 급기야 도서관을 찾는 사람 각자에게 필요한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 줍니다.

동물을 싫어하는 아이의 마음도 이해하고, 말벗이 필요한 노인들의 무릎 위로 올라가 기꺼이 체온을 나누며, 장애우 아이에게 웃음을 되찾아 주기도 하죠.

그렇게 이 작은 고양이는 마을 사람들을 하나로 만들어 갑니다.

단지 마음을 나누는 방식, 그것 하나로 말이죠.

사람을 완전히, 못 말린 정도로 믿어주는 고양이 듀이는 사람 사이의 연결 고리가 되어줌으로써 사람들 한명 한명을 특별한 존재로 만드는 비상한 재주꾼이기도 합니다.

실패하는 법이 없고 그리고 결코 실망하거나 포기하는 법이 없죠.

사람의 가치는 이웃들에게 얼마나 존경받느냐에 달려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듀이는 이미 고양이로써 사람의 가치 그 이상을 넘어서는 존재가 된 셈이네요.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만들어낸 큰 기적!

단지 반려 동물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갖는 서양인의 시선이 아니더라도 누런 피부에 까만 눈을 가진 이국(異國)의 제 눈에도 이 고양이의 특별함은 인지되고도 남습니다.

상처 없이 사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상처를 숨기는 사람은 어디서든 그 티가 나는 법입니다.

그러니까 이 고양이 듀이는,

상처를 보고 아는 체를 해 주는 고양이였다는 생각이 드네요.

보고도 뻔히 모른 체하고 지나쳐버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과감한 반기를 들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누설(漏泄)”

우리는 우연한 비밀을 알게 되면 크든 작든 폭로하고픈 누설의 욕망에 부딪칩니다.

그러나 아는 체를 해 달라며 온 몸으로 힘듬을 누설하는 사람을 보면 굳이 철저한 비밀보장을 맹세하며 못 본 척 고개를 돌려줍니다.

사실 그가 원한 건 그런 외면이 아님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 내가 옳았다 스스로 합리화하는 건지도 모르죠.

“듀이”라는 작은 고양이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 건,

도서관에 버려진, 그래서 그곳에서 사람들과 별 탈 없이 그럭저럭 잘 살아내고 있는 고양이라서가 아닙니다.

듀이의 역할이 결코 스펜서 도서관의 마스코트에 불과한 게 아니라는 걸 이해했다면 그렇게 숱한 "미투(mee too) 듀이“가 탄생되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됩니다.

엄밀히 말하면 그런 “미투 듀이”의 재생 역시 “동물 학대”의 또 다른 형태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죠.

확실히 도서관이라는 곳은,

고양이가 살 만한 적당한 곳은 아닙니다.

그런 도서관에서의 삶을 선택한 “듀이”

어쩌면 작은 고양이에게도 그 사실은 하나의 큰 도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 자신이 있을 곳을 찾아라. 그리고 가진 것에 만족하고 행복해하라.

 인생은 물질에 관한 것이 아니다. 사랑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사랑이 어디에서 찾아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


2006년 위종양으로 안락사하기 전까지 19년간 듀이는 자신이 선택한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습니다.

고양이에게 “신화”라는 단어를 쓰는 게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Dewey Readmore Books"는 이제 스펜서의 신화를 넘어 전 세계의 신화로 남겨졌습니다.

누군가 읽어주길 바라는 상처를 보게 된다면,

듀이처럼 재빠르게, 듀이처럼 적절하게, 그리고 듀이처럼 진심으로 그 상처를 알아봐주고 그리고 기꺼이 소통하는 사람이 되어 달라 이 책은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상처!

참 고약한 놈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 기회가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아픈 틈이기도 합니다.

“그 틈새로 들어가세요~~!‘

황금빛 커다란 눈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자, 그럼 이제 우리도 용기 한번 내 볼까요!!!


*듀이 공식 홈페이지 : www.deweyreadmorebooks.com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