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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21 달동네 책거리 76 : <천만 개의 사람꽃>
  2. 2009.03.30 달동네 책거리 38 : <동주야>
달동네 책거리2009. 12. 21. 05:55
 <천만 개의 사람꽃> - 임종진


천만 개의 사람꽃 


사진작가 임종진.

전 이 사람을 김광석이라는, 10여년에 훌쩍 세상과의 이별을 선택한 통기타 가수를 통해 알게 됐습니다.

2008년 2월에 나온 <김광석 그가 그리운 날에>라는 책이 바로 그 인연이죠.

“한겨레신문”의 사진기자로 오랫동안 일했던 임종진은 떠나버린 김광석을 그리워하며 짧았지만 여운 깊었던 그와의 만남과 함께 나눴던 생각, 마음의 교감들을 이 책을 통해 고백했었습니다. 십여 년 동안 혼자 간직했던 생전의 젊고 다정했던 김광석의 모습들을 이 책을 통해 만날 수 있었죠.

서른의 대표곡이 된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

이미 그 나이를 한참 전에 넘겨버린 저는,

20대엔 절대 공감하지 못했던 이 노래가 지금은 가끔 내 지난 모습의 반추처럼 느껴집니다.

김광석이란 가수의 목소리에 달라붙어있던 그리움과 아련함의 깊이를 이해하기엔 20대의 시간은 아무래도 너무 활기찼겠죠.

사람들로부터 떠나 버린 가수 김광석, 그리고 사람들에게로 늘 떠나는 사진작가 임종진.

그 두 사람은 공통점은 그러나 “그리움”이었습니다.

디지털이 지배하는 세상에 여전히 구식 필름 사진을 고집하는 사진작가 임종진.

그는 “달팽이 사진작가”라는 별명을 자랑스러워하는 온기 가득한 사람입니다.

그가 찍은 사진들을 보면 아프고 다정한 사람들의 모습에 울고 웃고 희망을 걸게 됩니다.

사진을 찍는 이유...

어설프지만 저 역시도 사진 속에 담기는 멈춤에 넋을 잃는 사람이기도 하죠.

아직 내공이 부족하기에 제 카메라 앵클의 시선은 여전히 풍경입니다. 사람을 그 모습 그대로 담아낸다는 게 아직까지는 영 자신이 없기 때문이죠. 더 오래, 더 많은 시간이 지난다면 가능한 일이 될까요?

6차례 방북 취재로 김정일 최고위원장에게 “남녘 사진작가”라는 별칭까지 받기도 했고, 반전평화팀의 일원으로 이라크 그 화염의 도시 속을 다니다 민병대에 스파이로 오인돼 생사의 갈림길에 서기도 했답니다.

위기의 상황에서 번번이 그를 살렸던 건 한 장의 사진에서 비롯된 인연이었죠.

어쩌면 그의 사진 속엔 담겨있는 "생명“이 그의 생명을 지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천만 개의 사람꽃>

2008년 가을에 출판된 이 포토 에세이집에는 인도, 캄보디아, 티베트, 네발, 이라크, 그리고 우리나라의 생명 품은 사람들이 모습이 담겨져 있습니다.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다”는 노랫말처럼 이 책속에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 속에는 희망 품은 웃음이 꽃처럼 만개해있습니다.

그리고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출생부터 고통을 짊어진 아픈 생명들의 채 피워지지 못하고 꺾일 숱한 꽃들도 있죠.

품질 좋다는 이라크 석유의 최대 매장지 남부지역 바스라.

1991년 1차 걸프전 당시 퍼부은 수백만 발의 열화우라늄탄으로 이 지역의 신생아 30%는 선천성 백혈병이나 치명적인 기형 장애를 안고 세상에 태어납니다.

아기의 첫 울음으로 남자아이야 여자아이냐를 가늠하지 않고 병이 있느냐 없느냐를 가늠하는 것이 일상의 모습이 되어 버린 곳. 아무런 병 없이 태어난 아이들도 대부분은 극심한 영양실조와 부족한 의약품으로 얼마간의 삶만이 허락될 뿐입니다.

그리고 어미는 아이를 맘껏 안아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지는 향기를 바라보기만 합니다.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어린 꽃은 만개의 소원을 피워내지 못한 채 봉오리 그대로 세상 속에 삼켜집니다.

알까요?

그 봉오리가 한 귀퉁이라도 벌어진다면 그 순결한 향기를 우리도 맡을 수 있었다는 걸...

기껏해야 평균 수명 15세.

꽃이 집니다... 꽃이 집니다...

맘껏 피지도 못한 어린 꽃들은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그렇게 향기를 거둬갑니다.

미안하다는 말조차도 감히 할 수 없는 한 사람의 시선이 조용히 또 한 장의 책장을 서둘러 넘길 뿐입니다.




사람은 “추억을 기록”하기 위해, 그래서 “오래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 걸까요?

사진에 담긴 멈춰진 시간 속에서 그러나 저는 움직임을 봅니다.

사람의 시선은 늘 다른 방향을 향하고 기억 또한 왜곡과 변형을 거듭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기억하는 것들에 대한 의심과 불신이 생기기도 하죠. 누구라도 결국은 자신에게 유리하게만 담겨지는 기억...

사진은 그러니까 그 기억 속에 일부러 던져지는 모난 돌멩이와도 같습니다.

섬뜩한 파문이 일죠.

이 사진 속의 너의 기억은 온전히 사실인가?

사진이 내게 물어 옵니다.

그래서 때로는 한 권의 책보다 한 장의 사진으로 더 많은 것들을 읽고 이해하게 됩니다.

사람의 감각 중 가장 강력하다는 시각.

예전에 저는 본다는 것에 대해 지독히 넌더리냈던 적이 있습니다.

내 눈 앞에 보여지는 모든 것들이 믿을 수 없었고 믿고 싶지도 않았기에 그냥 그대로 눈이 멀어버려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사람이 되길 소원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봤던 흑백 사진집 한 권.

사진작가 최민식 선생님의 <인간(HUMAN)>이라는 책이었죠.

그 책을 보면서 저는 내가 보는 세상에 넌더리내야 하는 게 아니라 나라는 인간에 넌더리내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뭉턱뭉턱 올라오던 울음 때문에 책장을 넘기기가 얼마나 아프고 서러웠던지...



 
신문을 들고 있는 장애우는 아직까지도 신문을 들고 한 팔을 휘저으며 한 다리로 뛰고 있을 것만 같고, 아직도 저 아주머니는 생선을 벌여놓고 비닐로 비를 피하며 다음 생계를 위한 장사를 하고 있을 것만 같고, 아직도 작은 나무통 속에 아기는 조각난 군밤을 작게 오물거리며 허기를 채우고 있을 것만 같아 지금도 눈 밑이 붉어집니다.

이 책, <천만 개의 사람꽃>도 느낌은 조금 다르지만 탄피 더미 속에 앉아 있는 아이의 분노에 찬 눈빛,  붉은 막대사탕 하나를 들고 찬란한 미소를 보내는 천진한 눈빛의 아이를 보고 있으면 왠지 미안해지고 안스러워집니다.

사진은 권력이라고 했던가요?

매번 사진이 휘두르는 진실의 권력 앞에 여지없이 무너지게 되네요.

그리고 한 장 한 장 사진 옆에 적혀 있는 임종진만의 단상들도 많은 화두를 던져줍니다.

프로패셔널한 사진작가의 수줍고 단정한 글들은 일부러 꾸며 쓴 것이 아니라 비록 서툰 표현들이지만 다정하기까지 하죠.

글이라는 건 꼭 잘 써야 전달되는 게 아니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됩니다.


# 천사의 새치기


조금 피곤한 어느 늦은 오후였습니다.

처음엔 요 녀석에게 별 관심이 없었답니다.

그 옆에 아주 귀여운 놈이 따로 있었거든요.

가만히 지켜보면서 눈을 마주치다가

적절한 때를 봐서 한 컷 건지려고 했지요.


그래, 이제 되었구나 싶어 슬쩍 카메라를 들어 셔터를 누르는 순간, 살살 눈치만 보며 기웃거리던 요 녀석이 불쑥 뛰어든 겁니다.

이때다 싶었던 거지요.

도저히 내칠 수 없는 환한 웃음을 코에 걸고 뛰어들었으니 어쩌겠습니까.

마냥 따라 웃을 수밖에요.


어딜 가나 천사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기운을 줍니다.

때론 해맑은 소녀였다가 개구쟁이 소년의 모습이기도 하고

때론 늙은 농부의 여유로움과 갓난아이의 천진스러움이기도 하고

때론 길바닥 걸인의 형상이기도 합니다.


캄보디아 씨엠립의 한 골목길에서 천사는 그렇게 나타나

지친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습니다.


임종진 그가 찍은 천만 개의 사람꽃과 천만 개의 단상들을 보며 저도 함께 말했습니다.

“요놈, 요놈, 요 이쁜놈!”

어쩌면 당신도 당신의 멈춰 있는 기억 속에 조용한 움직임을 주는 한 장의 사진을 이 책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 누구에게 닿아 꽃을 피웠을까요?

조용히 떠올리고 싶습니다.

어떤 향기를 남겼는지를......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3. 30. 08:56

<동주야> - 문익환


     

 

  <윤동주(뒷줄 오른쪽)와 문익환(뒷줄 가운데) 모습>

 

 동주야


동주야

너는 스믈 아홉에 영원이 되고

나는 어느새 일흔고개에 올라섰구나

너는 분명 나보다 여섯달 먼저 왔지만

나한테 아직도 새파란 젊은이다.

너의 영원한 젊음앞에서

이렇게 구질 구질 늙어가는게 억울하지 않느냐고

그냥 오기로 억울하긴 뭐가 억울해 할 수 있다만

네가 나와 같이 늙어가지 않다는게

여간만 다행이 아니구나

너마저 늙어 간다면 이 땅의 꽃잎들

누굴 쳐다보며 젊음을 불사르겠니

김상진, 박래전만이 아니다.

너의 "서시"를 뇌까리며

민족의 제단에 몸을 바치는 젊은이들은

후꾸오까 형무소

너를 통째로 집어삼킨 어둠

네 살속에서 흐느끼며 빠져나간 꿈들

온 몸 짓뭉게지던 노래들

화장터의 연기로 사라져 버린 줄 알았던 너의 피묻은 가락들

이제 하나 둘 젊은 시인들의 안테나의 잡히고 있다.



문익환 목사를 아시나요?

그럼 이런 질문은요?

배우 문성근의 아버지를 아시나요?

별로 TV를 보는 편이 아니지만 우연히 보게 된 화면에서 이 시를 만났습니다.

3월 18일 강호동이 진행하는 “무르팍도사”라는 프로에 영화배우 문성근씨가 나와 아버지 문익환 목사님에 대한 내용들을 술회하더군요.

그러면서 이 시가 소개가 됐습니다.

제가 뭐라고 감히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윤동주, 장준하 등 독립운동을 하다 목숨을 잃은 친구들에 대한 미안함을 안고 사회운동, 통일운동에 남은 생애 전부를 걸었던 목사 문익환.

그 분의 타계한지 올 해로 꼭 15년이 됐다고 하네요.

제 기억에 생생한 모습은,

반쯤은 헝클어진 머리에 두루마기까지 갖춰 입고 꼿꼿한 몸으로 항상 시위대열의 선두에 서 있던 모습이었습니다.

종교인의 정치참여라는 게 익숙치 않았던 제 눈에 어쩌면 괴짜 노인네로 보였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1989년 북한을 방문하여 김일성 주석과 회담 후 귀국, 그러나 살벌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투옥되어 옥고를 치루기도 했던 분입니다.

그러나 그 분이 사회운동에 직접 뛰어들게 된 건 처음부터가 아니었습니다.

친구이자 독립운동가였던 “고 장준하”의 의문사를 계기로 50대 후반에 비로소 사회운동에 투신하게 됐다고 합니다.

60대와 70대를 펄펄한 청춘으로 다시 살기 시작한 문익환 목사는 마지막 17년의 삶 중 11년을 감옥에서 보내게 됩니다.

아들은 노구의 몸으로 옥고를 치루는 아비를 보고 간곡히 말합니다.

이제 그만 쉬시면서 글을 쓰시면 어떻겠느냐고....

아비는 그런 아들을 매서운 눈으로 한 번 바라봅니다.

그 눈이 말하고 있었다고 하네요.

“이제 시작이다!” 라고....

먼저 간 친구들을 떠올리며 산다는 건,

어쩌면 평생 자신의 어깨 위에 그 친구들의 의무와 희망을 함께 짊어지고 살아야만 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부채의 느낌이든, 아니면 무언의 약속이었든 말이죠.

생체 실험으로 29살 청춘에 희생된 시인 윤동주, 그리고 일본군에 자원입대하여 탈출에 성공해서 임시정부를 찾아 죽음의 길이라고 불린 파촉령을 끝내 넘었던 장준하.

문익환 목사님은 이 두 사람의 남긴 삶까지도 책임지며 살아냈던 겁니다.

가끔 생각합니다.

나 혼자만의 삶을 사는 것도 너무 힘들고 버겁다고...

그런데 한 사람의 몸으로 누군가의 남긴 삶까지 끌어안고 그것도 내내 펄펄하게 살아낸 사람도 있다는 걸 느낄 땐, 가슴 저 바닥까지 섬뜩해집니다.

난 여전히 호사를 꿈꾸고 있다는 생각...

지독한 불평뿐인 제게 일침이 가해집니다.


......구질 구질 늙어가는게 억울하지 않느냐고......

 

꽃이 핍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해...

그리하여 우리 후손들이

이 산을 다시 넘게 하지않기 위해.."서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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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뭐라고...

감히 꽃을 피우고 싶네요...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