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11.24 <ROOM> - 엠마 도노휴 1
  2. 2010.03.12 <성녀의 구제> - 하가시노 게이고
읽고 끄적 끄적...2010. 11. 24. 05:44
2008년 오스트리아에서 믿을 수 없는 사건이 발생했었다.
(해외토픽에서 이 뉴스를 본 게 선명하다. 도저히 믿겨지지 않았었다.)
요제프 프리츨이라는 73세의 노인이
24년간 자신의 친딸을 밀실에 가두고 성폭행해온 사건이었다.
게다가 딸은 감금당한 채로 아버지의 아이까지 낳았다고 한다.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희대의 사건!
엠마 도노휴의 소설 <ROOM>은 바로 이 사건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특별한 엄마와 아들이 있다.
하루종일 두사람은 재미있는 놀이를 하면서
이 세상 어떤 부모자식의 관계보다도 사랑스럽고 친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처음에 두 사람의 이런 관계 때문에 이 소설은 오히려 평화스럽고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아마도 아이의 눈으로 쓰여졌기에 더 그랬으리라.



그런데 사실은 두 모자가 생활하는 곳은
뒷마당 헛간에 철제로 만들어진, 외부와 철저히 격리된 밀실(Room)이다.
외부세상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오래된 TV 뿐이고
매주 일요일 그녀를 강금한 올드 닉이란 인물이 필요한 물품을 가져다 준다.
그만 알고 있는 문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삐릭 삐릭...
아이의 다섯살 생일에 엄마는 말한다.

난 열아홉 살이었는데 그가 날 훔쳤어.
그가 나한테 잠드는 나쁜 약을 먹였어.
일어나 보니 난 여기 있었단다.
우린 여기서 나가야 해! 그것도우리 힘으로!

두 사람은 탈출계획을 짜고 드디어 어렵게 어렵게 성공한다.
다섯 살 어린 아이는 엄마가 세운 계획을 실행하면서 (물론 중간에 작은 실수들이 있었지만)
엄마와 자신의 생명을 구한다.
작은 방이 세상의 전부였던 아이는 이제 텔레비젼 밖의 세계가 진짜라는 걸 하나씩 알게 된다.
아이는 직사광선에 노출되는 데에도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고
바람이 빰에 닿은 느낌조차도 낯설게 받아드릴만큼 
외부 세계를 경험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렇게 세상에 나온 그들은 당연의 세간의 이목에 집중된다.
7년간 납치되어 강금당한 채 강간과 폭행을 당한 여자!
그리고 죽이고 싶도록 증오스러운 납치범의 아들을 낳은 여자!
그러나 그 아들 잭 때문에 고통의 시간을 버텨내고 탈출을 계획한 여자!
세상으로 겨우 탈출에 성공한 엄마에게 세상은 묻는다.
"단 한 순간이라도 아이의 머리를 베개로 눌러버리고 싶지 않았나요?" 
누군가는 그녀에게 스톡홀름 신드롬(Stockholm syndrome)을 의심한다.
인질이 범인에게 동조하고 감화되는 비이성적인 심리 현상을 뜻하는 스톡홀름 신드롬!
감금되어 있는 현실을 뻔히 알면서도 무책임하게 아이를 낳았다는 비난의 말도 듣는다.
여자는 말한다.
"난 사람들이 우리가 끔찍한 일을 겪은 유일한 사람들인 양 취급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은 온갖 방식으로 감금돼 있어요"
힘들었을까?
엄마는 치료와 보호를 받고 있던 클리닉에서 한웅큼의 약을 삼킨다.
꼼짝도 하지 않고 자고만 있는 엄마를 보며 아이는 말한다.
"엄마가 없어졌어요"



끔찍한 범죄를 이야기하는 아이의 시선은
신비스러울만큼 사랑스럽다.
범죄이야기를 이렇게 읽어도 되는 건가?
죄책감이 들 만큼 아이는 사랑스럽고 순수하다.
엄마를 병원에 남겨두고 외할머니집에서 생활하게 된 아이는 생각한다.
...... 네 살 때는 텔레비전에 있는 모든 것이 그냥 텔레비젼인 줄 알았지만, 다섯 살이 되자 엄마는 텔레비전 안의 많은 것들이 진짜 물건들의 그림이고 밖의 세상도 정말 진짜라고 알려주었다. 그런데 이제 바깥세상에 나와 보니 그중에 많은 것들이 진짜가 아니었다 ......
아이의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말한 것에 불과하지만
이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범죄를 보는 우리의 심리에는 어느 정도 관음의 시선이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끔찍한 범죄일수록 더 자극적이게 묘사하고 폭로하려는 심리.
어쩌면 이게 스톡홀름 신드롬보다 더 잔인한 인간심리인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자극적인 범죄 자체에 세상의 시선이 집중되는 사이
피해자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지에 이야기의 촛점을 맞췄다고 한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세상은 또 얼마나 상습적으로 일어나던지...
성범죄 관련에서는 항상 이런 역치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안타깝게도 더욱 더.

엄마의 시선과 힘...
어떤 상화에서도 이해되지 못할 만큼 강한 것 같다.
세상이 한 아이를  범죄자의 핏줄로 보는 동안에도
엄마의 눈에는 단지 사랑스럽고  반드시 지켜야할 자신의 아들일 뿐이다.
올드 닉이라는 범죄자의 손아귀에서 간신히 벗어난 엄마는
이제 세상이라는 더 큰 손아귀로부터 아들을 지켜내야 할지도 모른다.
차라리 밀폐된 좁은 방이 아들을 지키기가 훨씬 더 쉬웠을까?
그래도 엄마는...
결국은 자신의 아들을 지키고 보호해내지 않을까?
아들과 홀로 독립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나 스스로도 그 희망과 의지가 결코 꺽이지 않으리라 안심했다.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시선"과 "모정"에 가슴이 뻐근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3. 12. 05:45
또 하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읽다.
역시나 범죄 스릴러,
특이한 구성이라면 이 책은 처음부터 아예 범인을 명확히 드러낸다.
솔직히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일반적으로 이런 종류의 책에선 반전의 반전을 거듭할 끝에
범인이 밝혀져야 하는건데...
누가 범인인지 확실히 알고 있으면서 묘하게 점점 의심을 하게 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제 3의 인물"을 추궁하게 되는 나.
아니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당신이 여자고 얼마 후면 꽤 괜찮은 남자와의 결혼을 앞두고 있다고 가정하자.
어느날 남편이 될 사람이 당신에게 말을 한다.
"결혼하고 나서 만약 1년 안에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 헤어지자!"
보통 일반적인 여자라면 이렇게 말하겠지.
"헤어져! 헤어져! 내가 뭐 아기 낳는 기계냐? 너 혼자 잘 먹고 잘 살아라!" (^^)
확실히 이 남자의 결혼의 이유, 조건, 목적은 "아기"다.
이 남자에게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는
폐기가능한 대체상품일 뿐이다.
유효기간이 끝났으니 당신은 이제 폐기처분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이 남자는 대략 이런 살벌한 상황을 아내될 여자에게
지금 예고하고 있는 중인거다.



두 사람 사이에 아이는 생기지 않고 (당연하지! 여자는 불임이니까...)
아내는 남편을 살해한다.
독극물을 정수기 필터에 바르고 집을 비운 아내.
그런데 이 일은 아내는 1년 전에 했다.
그리고 1년 동안 아내는 남편이 정수기 물을 마시지 못하게
철저하게 가정적이고 헌신적인 아내의 역할을 수행한다.
냉장고엔 생수가 떨어지지 않았고
남자는 한 번도 직접 물을 끓여 스스로 커피조차도 만들어 마시지 않았다.
솔직히 이런 남편이라면 죽어도 싸지만(^^)
1년의 과정을 되짚어 나가는 설정은 재미있고 그리고 꽤나 구성이 치밀하다.
물론 너무 작위적인 느낌도 들긴 하지만
하가시노 게이고가 소위 먹히는 작가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납득이 된다.
일단 재미 하나는 확실히 있으니까...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
그러나 한 가지는 꼭 기억하자.
범죄 소설에서 읽는 사람의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는다면
그 이야기는 결코 재미있어지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