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고 끄적 끄적...2016. 4. 7. 08:38

봄바람이 등을 떠밀었다.

2시간을 훌쩍 뛰어 넘은 긴 산책.

꽃이 바람에 흔들린다.

봄도 따라 무더기로 흔들린다.

바람 안 날 재간따위,

도저히 없다.

사태, 사태, 꽃사태.

전천후로 밀고 들어오는 무차별 폭격에

재빠르고 깔끔하게 항복했다.

해야 할 항복이라면 재빨라야 한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천천히 그리고 오래 걸었던 오후와 밤이었다.

덕분에 짧지만 아주 깊은 단잠이 곁에 와줬다.

오래 걸어온 자의 건강한 잠.

그 잠 속에서도 꽃은 계속 피고 또 폈다.

향기가 아주 가까워 손을 뻗으면 그대로 만져질 것 같았다.

꿈도 잠도 아닌 시간 속엔

성산대교의 불빛도,

한강에 비춰진 잠영들도 꽃처럼 흩날린다.

 

 

짧은 봄이고,

짧은 잠이었다.

하지만 나를 회복시키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찍고 끄적 끄적...2013. 4. 19. 07:46

바람이 찼다.

차가운 바람과 비가 두서없이 내리기도 햇다.

흐드러진 벗꽃을 보기가 쉽지 않겠구나 생각은 했는데

기어이 꽃이 진다.

벌써 초록 잎은 톡톡 튀어나와 빠른 속도로 영역을 넓혀간다.

난.분.분.

바람에 날리는 분홍 꽃잎의 화려한 낙화를 보고 싶었는데

아마도 그 소망은 내년으로 미뤄야 할 것 같다.

점점 낙화가 이상해지고 있긴 하지만...

 

그나마도 놓칠까봐 출근길에 카메라 셔터를 성급하게 눌렀다.

6시가 조금 넘어선가?

사진이 흐리다.

새벽에서 아침으로 넘어가는 시간,

그 시간은 늘 그렇게 흐리다.

그래도 그 명암 속에는 온전한 하루가 꼬박 담겨있다.

나는 그 순간을 절정"이라고 말하련다.

균형이 이제 막 깨지려고 하는 찰나.

어쩌면...

벗꽃도 지금 그 찰나에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초록 잎사귀들의 폭격은 이제 막 시작됐다.

그러나 아직은 연한 분홍 꽃잎들의 세력도 만만치 않다.

어느 순간 역전이 되겠지만

아직은 "공존"의 시간을 함께 나누고 있다.

서로의 순서를 존중하면서...

 

하늘 위에 걸린 두 개의 세계.

혼돈 위에 얹힌 순간적인 평정.

정직하게 흔들리고

깨끗하게 상처받자!

Posted by Book끄-Book끄
찍고 끄적 끄적...2012. 4. 20. 06:19

꽃잎 터진 날.

꽃들은 하루 종일 말을 했더랬다.

수런수런 낭창한 수다가

우수수 웃음으로 떨어질 때,

땅은 이야기 품은 꽃비를 넉넉히 받아냈다.

 

바람에 밀려 

이곳으로 혹은 저곳으로

꽃들은 못다한 이야기를 꿈처럼 날리며 내내 재잘댔다.

 

폭죽처럼 터지는 꽃을 보며

밤에도 사람들은 몇 번씩 만개(滿開)했다.

짧은 계절이 주는 선물은,

몸서리치게 아름답다.

 

돌아서지 못하는 발걸음은 그대로

꽃도장되어 땅을 꾹꾹 밟는다.

 

돌아가지 말자!

절대로!

 

하루는 일 년처럼 느리게 흐르지만

일 년은 하루처럼 빠르게 스쳐간다.

꽃은 핀다.

꽃은 진다.

꽃의 시간은

그게 전부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찍고 끄적 끄적...2011. 4. 23. 06:19
봄이 올 때쯤이면 한상 다짐하는 일 하나.
꽃을 보리라...
더 정확히 말하면
꽃이 터지는 순간을 목격하리라.
어느 날 난데없이 활짝 핀 꽃들을 보면서 난감했던 기억이 몇 번이던지.
언제나 꽃은 나란 존재를 피해서
늘 은밀하고 조용히 핀다.
이상하게 그 모습을 보면 묘한 배신감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이번에도 꽃은 여지없이 나를 등지고 피어났다.
그리고 도무지 따뜻한 기미조차 느껴지지 않는 축축하고 찬 비...
오래 앓은 사람처럼 감기로 허덕이다 반쯤 몽롱한 눈으로 세상을 본다.
벗꽃은 이미 눈물처럼 뚝뚝 떨어져 
사람들의 거친 발걸음에 눈물자욱 흥건하고
팝콘처럼 터진 목련의 목은 절단이라도 날 듯 금방이라도 위태롭다.
화단엔 작은 생명들이 색은
그래서 오히려 이국적이다.
아, 꽃의 세상에도 늙음과 신생이 한 뿌리 속에 나란히 공존하는구나...
목격되지 않는 것에 불안했고
확인할 수 없는 것에 가슴이 섬뜩하다.

 

누군가의 과거를 보는 건,
꽃의 과거를 보는 것 만큼이나 안스럽고 강팍한 일.
시간은 아무 것도 말해줄 수 없다.
누가 눈 앞에 있는 걸 다 볼 수 있다고 말할까?
볼 수 있다면 당신이 이미 이 세상을 버린 사람이다.
뚝뚝 떨어져내린 꽃처럼...
꽃은 생명을 다 버릴 때,
그 때가 되야 진짜 피어난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0. 5. 6. 06:29
사실 나비축제를 찾아가면서 조금 걱정스러운 게 있었다.
엄청난 규모의 부지라고 들었는데 그 곳을 전부 나비로 다 채울 수 있을까 싶었다.
하루 종일 나비만 보게 된다면?
처음엔 신기하고 예쁘겠지만 곧 지치진 않을까 하는 노파심 ^^
성공한 지역문화 축제에 나비로 신물이 나진 않을까 하는 생각을
솔직히 품고서 축제장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서는 입구부터 제법 귀엽성있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져있다.
곳곳에서 만나는 거대한 곤충 구조물들은
섬뜩하기도 하고 어쩐지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두루마기에 갓을 쓰고 있는 실버봉사대의 모습도 정감있다.
나이를 불문한 지역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많은 자원봉사자가 곳곳에서 안내와 시연을 보이는 모습도 특별했다.


맨 처음 들어간 곳은 <나비그림전시실>이었다.
작가 한 분이 직접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이 다정하다.
그녀의 설명 속엔 지역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나비"라는 테마가 주는 소중함까지 느낄 수 있었다.
작은 벗꽃 송이 하나하나로 큰 나비 그림을 형상화한 게 특히 인상적이었다.
"꽃과 나비"라.
궁합으로 따지자면 이것보다 완벽한 궁합도 없으리라.



<다육식물관>에서 만난 선인장들.
마치 소인국 테마파크에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거대한 선인장 전시실은 그래도 몇 번 봤는데
작은 선인장들이 주가 된 전시관은 또 나름의 멋이 있다.
다정하고 소박하고 그리고 소꼽놀이 하는 듯한 경겨움까지도 느껴진다.



<자연생태관>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작은 들꽃들이 풍성해서 또 바빠졌다.
꽃뿐만 아니라 테마를 정해서 옆에 함께 설치한 인형들이 만든 한 세계도
어린 시절을 내 모습을 떠오르게 해 흐뭇한 순간이 여러번이었다.



작은 부분까지도 하나하나 세심하게 신경썼다는 느낌!
어쩌면 이런 세심함이 성공한 지역축제를 만드는 원동력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지역민이 이 축제에 사할을 걸고 있다는 느낌까지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짜증내고 피곤해하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어쨌든 지역주민이 한 방향을 보고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그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다른 곳을 찾아
go~~go~~

Posted by Book끄-Book끄
찍고 끄적 끄적...2010. 4. 10. 05:58
꽃이 핀다... 꽃이 핀다...
돌아가지도 못하고
밤꽃 앞을 서성이다.
마음을 뺏겨버린 사람.



밤꽃 나무 아래.
그대로 길 잃고 헤맨 밤.


Posted by Book끄-Book끄
찍고 끄적 끄적...2009. 4. 12. 13:41

2009년 4월 11일.
꽃으로 피어난 남산 오르다.
하늘 향하는 게이블카
그리고 그 뒤를 쫒는 개나리...


눈이 시리게 피어난
꽃들... 잎들...


파란 하늘.
어디서부터 시작된 색일까?


땅 위에도
물 위에도
그리고 전부를 채우며 날리는 그대들...


남산에서 만난 도산 안창호
선명한 단지의 마음.


진달래 꽃무더기 앞세운
김소월의 <산유화> 시비
"산에는 꽃피네, 꽃이 피네..."

하늘 위로
키 세운 곧은 나무


그리고
사람들...사람들...사람들...


정상 위
하늘을 나는
또 다른 그대들도..


새롭게 시작된
개와 늑대의 시간...


해에게서 시작된
또 다른 낮선 풍경들.


남산은 지금,
꽃말곤 아무 것도 아닌 곳...

꽃이 되어
휘청  만개한 곳...

지독한 탐욕으로
몸서리치게 아름다운 곳...


신내림같은 꽃눈으로
신병 앓는 남산...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