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7. 12. 11. 08:44

오스트리아 빈에서 개인적으로 제일 가고 싶으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Zentiralfriedhof.

"거대한 평온의 뜰"이라는 뜻의 빈 중앙묘지.

아침 일찍 지하철 U3를 타고 종점 simmering에서 내려 트램을 기다렸다.

6번과 71번 중 6번이 먼저 왔다.

빈 사람들은 그런단다. 

"그 사람 어제 71번 트램을 탔어..."라고 말하면 "그 사람 어제 사망했어..."나는 의미라고.

슬픔을 가리는 다정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죽음이라는게 끝이 아니라 또 다른 곳으로의 시작이나 여행처럼 느껴져서...

 

 

중앙묘지는 거대한 뜰 답게 입구가 무려 4개나 된다.

그 중 음악가의 묘역과 가장 가까운 곳은 Zentralfriedhof 2 Tor.

두 개의 거대한 오벨리스크 기둥 사이로 출입문이 보인다.

그 길을 따라 좌우로 펼치는 죽은 자들의 도시를 거닌다.

이른 아침이었고,

사람들도 거의 없었고,

날씨도 잔뜩 흐렸고, 심지어 춥기까지해서

마치 이곳과 저곳 경계 어디쯤에 있는 느낌이었다.

간간히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가 아니었다면 현실감을 잃었을지도...

 

죽은 자들의 도시는 늘 나를 사로잡는다.

저기 어디쯤에 몰래 숨어있다 나란히 눕고 싶다는 간절함.

이뤄질 수 없는 열망으로 늘 몸이 단다.

 

 

32-A "Musiker"로 들어서면

초록 잔디 위 맨 앞에 길게 Liechtenstein이 누워있고

뒷편으로 Veethoben, Mozart, Schubert의 묘가 삼각형 형태로 모여있다.

음악의 신동 Mozart는 가매장이 되는 바람에 유골을 찾지 못해 비어있는 상태지만

클래식의 대가 세 분이 이렇게 가까이 있으니 외롭지 않고 참 좋겠다.

어쩌면 도란도란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지도...

헌화된 꽃들도 예쁘고

묘소 주위에 소담스럽게 모여있는 노란 가을잎들도 탐스럽다.

존경과 사랑으로 보살펴지고 있다는게 느껴져 부럽고 다행스러었다.

고요하고 장중한 레퀴엠 같은 곳.

 

 

요한 스트라우스와 브람스를 비롯한 음악가들조차도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 앞에선 빛을 잃는다.

유명(有名)이라는게 이런거구나...

이름 끝자리 흔적조차 남기지 못할 내가 할 걱정은 감히 아니겠지만

안스러워 몇 번씩 눈길이 갔다.

오래 기억됐고, 앞으로도 오래 기억될 죽음.

그 죽음 자리가...

머릿속에서, 눈 속에서 내내 서걱거린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11. 19. 08:25



윤소정, 박지일, 이호성, 길해연, 서은경.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뛰는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연극 <33개의 변주곡>
2009년 3월 미국 "유진 오닐" 극장에서 초연됐을 때 
여주인공 캐서린 역을 제인 폰다가 분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작품은 그 해 토니상 5개 부분에 후보로 올랐고 아쉽게도 무대디자인 상만 수상했다.
무대는 확실히 상을 받기에 충분할만큼 독창적이고 아름답고 실용적이다.
그리고 작품은...
무대보다 훨씬 멋지다.
연극은 캐서린의 죽는 순간까지 연구했던 베토벤 논문 서문으로 시작된다.
(이 말은 베토벤의 말이기도 하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기원에서 시작해봅시다.
어떤 것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에서 시작합시다.
왜 그런 방식으로 생겨나게 되었으며
어떻게 현재의 모습이 되었는지...




디아벨리 왈츠를 주제로한 베토벤의 테마가 있는 33개 변주곡.
이 변주곡은 베토벤의 변주 기법를 집대성한 작품이자
바하의 골든베르크 변주곡과 함께 변주곡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란다.
연극을 보고 일부러 그 변주곡 전체를 찾아서 들어봤다.
베토벤의 33개 변주곡은 총 4개의 구조로 나뉜다.
(연극에서 베토벤으로 분한 박지일이 열정적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1. 발전군 : 제 1 변주 ~ 제 10 변주
2. 코트라스트군 : 제 11 변주 ~제 20 변주
3. 스케르쪼군 : 제 21 변주 ~ 제 28 변주
4. 피날레군 : 제 29 변주 ~ 제 33 변주

디아벨리의 왈츠는 50초 가량의 비교적 짧은 곡이다.
베토벤은 이 왈츠의 리듬을 가지고 총 50분이 넘는 변주곡을 만들었다.
베토벤은 처음엔 디아벨리의 왈츠를 "구두 수선공의 헝겊조각(cobbler's patch)"이라며 폄하했단다.
그러나 마음을 바꿔 무려 4년의 시간동안 이 변주곡에 집착해 33개의 변주곡을 만들었다.
왜 베토벤은 디아벨리의 왈츠에 집착했을까?
음악학자 캐서린 브랜트(윤소정)는 지금 그 부분을 추적하고 있는 중이다.
서서히 화석이 되는 루게릭 병을 진단받고서도 말이다.
캐서린은 급기야 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베토벤의 스케치가 남아있는 베토벤하우스로 날아간다.
독일의 본으로... 그것도 혼자서..
캐서린의 집착과 베토벤의 집착은,
놀랍도록 닮아있다.



현재와 19세기가 한 무대 위에서 공존하는 모습은
이 연극의 대사를 그래도 빌려 표현하자면,
"여기서부터 용들이 산다!"
딱 그렇다.
베토벤 문서연구소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장면에서 천정의 조명이 순차적으로 내려오는 모습,
악보를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스크린에 비쳐지던 베토벤의 실제 스케치들.
그리고 무대 한 켠에서 라이브로 연주되는 디아벨리 변주곡들.
어떤 형태로 두 세계를 보여줄까 궁금했는데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깔금하고 매력적이다.
도저히 산만할 틈조차 없다.
무대에는 악보들로 빽빽하다.
시간을 가르는 것 같은 커다란 테이블.
시각적인 장치들이 너무 커서 배우들의 연기를 왜소하게 만든다는 평도 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전혀 그렇지 않는다.
왜소해지기에는 배우들의 열정이 너무 대단했다.
특히 캐서린 윤소정씨.
대상포진을 앓고 있다고해서 걱정했는데 그 걱정이 무색할만큼 아름다웠다.
지난 봄 <에이미>를 보면서도 감탄했는데 이번 역할도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어떻게 그 많은 대사들을 그렇게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까?



원작자 모이시스 카프먼은 작가 노트에서
이 희곡에는 무대 위 등장인물 외에 2명의 등장인물이 더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음악이고, 다른 하나는 극에서 영상으로 나타나는 베토벤의 오리지널 스케치들.
영상을 보면서 잠깐 소름이 돋았다.
그냥 그 천재성이 섬뜩함으로 다가왔다고 할까?

"이 희곡은 디아벨리 변주곡의 탄생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토대로 하지만 나는 이 이야기를 허구의 관점에서 들여다보려고 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역사적 사건의 재구성이라기보다는 삶의 한순간에 대한 일련의 변주라 하겠다."  -    모이시스 카우프먼 메모

묘하게 연결되는 장면 전환들도 상당히 좋았다.
무대 위에 7명이 전부 나와서 서로 중첩되는 대사를 하는 장면은
와, 정말 황홀하더라.
내겐 그 순간이 베토벤과 캐서린이 동일화되는 장면처럼 느껴졌다.
연극을 보기 전에 캐서린과 베토벤이 대화를 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이 장면 덕분에 실제로 두 사람이 대화하는 모습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기원""변모"
나는 이 연극을 두 단어로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 두 단어의 합일은 바로 "예술"이다.
케서린은 "예술"을 통해 베토벤과 딸 클라라를 이해하게 되고
딸 클라라 역시 "예술"을 통해 엄마 캐서린을 이해하게 된다.
그러니까 이 연극은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던거다.
기원을 쫒는 과정, 그리고 변모해가는 과정.
그래서 천재성이 번득이는 "예술"이 탄생되는 과정.
그야말로 여기서부터 용들이 산다...



연극의 스토리텔러가 캐서린에서 베토벤으로 그리고 클라라로 전환되는 것 역시도
하나의 변주였음을 연극을 다 본 후에 깨달았다.
그리고 날조된 기록을 남긴 베토벤의 비서 쉰들러도
비엔나의 50인 음악가에게 변주곡을 의뢰한 악보 출판업자 디아벨리도,
그리고 클라라의 연인 마이크와 베토벤 하우스의 거투루트까지도 전부 하나의 변주였음도...
그러니까 모든 사람의 삶은 전부 "변주"인거다.
그렇다면 이제 확실해진 거 아닌가?
삶은 충분히 아름다운 과정 속에 있다.

연극 <33개의 변주곡>
내게 참 다양하고 광범위한 아름다움을 남겼다.
아무래도 이 작품...
오래오래 간직될 것 같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7. 31. 05:48
무지 매력적이고 지적인 책을 만나다.
클래식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애써온 마에스트로 금난새.
오랜 시간 진행해온 청소년 음악회도 같은 맥락이었다.
몇 달 전 강호동의 무릎팍 도사에 나와서
"어떻게 하면 클래식을 더 많이 들게 될까요?" 라는 고민을 토로했던 금난새.
웃으면서 이야기했지만
아마도 이 일은 마에스트로 금난새의 필생의 업인 모양이다.
<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은 현재 1.2권까지 나와 있다.
고작 1권을 읽었을 뿐인데 참 놀랍다.
어쩜 글도 이렇게 재미있고 맛깔나게 썼는디...
전 체하는 고지식한 글들이 아니라 소설처럼 재미있고 읽을 수 잇는 글이다.
이름만으로 알고 있었던 거장들.
그들의 생애와 숨겨진 이야기, 세기의 곡들이 탄생하게 된 배경들을 읽으면서
듣는 클래식이 아니라 읽는 클래식에 감동하게 된다.



18세기에서 19세기에 활동한 위대한 대표 작곡가  16명을
그 작풍이나 성격이 대조되는 음악가들로 둘씩 짝지어 비교한 구성이 읽는 재미를 한층 배가시킨다.
그의 바람처럼 마치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
그것도 맨투맨으로 해설가가 쫒아다니며 설명해주는 것 같다.
왠지 읽고 있으면 나 스스로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책에 소개되어 있는 음악가의 조합은 이렇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 vs 음악의 어머니 헨델
음악의 신동 모차르트 vs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
고뇌하는 예술가 베토벤 vs 음악의 미식가 로시니
가난한 가곡의 왕 슈베르트 vs 귀공자 멘델스존

피아노의 시인 쇼팽 vs 오빠 부대를 몰고 다닌 인기스타 리스트
고전적 낭만주의자 브람스 vs 종합예술가 바그너
러시아 음악의 선구자 차이코프스키와 림스키-코르사코프
프랑스의 자존심을 되살린 드뷔시와 라벨
 

솔직히 고백하건데 두 사람의 조합 중에서 동시대 인물인줄 몰랐던 사람들이 태반이다.
클래식 음악을 가끔씩 즐겨 듣기는 하는데
참 기초지식 없이 맨땅에 해딩하듯 듣기만 했구나 싶다.
그러니 당연히 이 책이 아주 간곡하게 지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실제로도 이 책은 참 지적이고 매력적인 책이다. 
(항상 고맙다. 나를 일깨우는 책들은...)



마에스트로 금난새는
출판사로부터 청소년들을 위한 클래식 입문서를 써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을 때 
이 일은 음악가들 중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했단다.
한편으로 오랫동안 기다려오던 소식을 들은 것 같은 반가움을 느꼈다고.
그 이유는 이 일이 그가 그 동안 음악가로서 믿음과 사명감을 가지고 꾸준하게 펼쳐온 일련의 활동들과 맞닿아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다고.
확신을 가지고 책을 만든 금난새는 말한다.

...... 나는 이 책이 독자들에게 음악교과서처럼 읽히기 보다는 예술작품을 대하는 자세와 접근하는 방법으로 익히고 가다듬게 하는 보기가 되엇으면 합니다. 아울러, 음악을 통해 각자의 개성과 취향을 찾고 상상력을 펼쳐가는 신성하고 즐거운 경험의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

그의 바람은 그대로 적중했다.
클래식을 해설하는 자상함 속에는 멋진 명화들을 포함한 다양한 예술작품들을 더불어 만날 수 있다.
비화들을 들려주는 부분에서는
그의 클래식에 대한 사랑의 정도가 그대로 전달된다.
이 한 권의 책은,
그대로가 이미 종합예술이다.



이 책이 아니었으면,
같은 엉터리 의사에게 치료받고 음악의 어머니 아버지가 똑같이 시력을 잃었다는 걸,
미식가로 유명한 로시니가 37세에 오페라 작곡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직접 요리를 배워서 요리책을 내기도 했다는 걸
아마 영영 몰랐을 것이다.
너무 가난했던 슈베르트는 피아노 살 돈이 없어 기타로 숱한 명곡들을 작곡했고,
바흐의 최고의 명곡 <마태 수난곡> 악보가 100여 년 후에 멘델스존에 의해 푸줏간에서 발견된 사실은
(푸줏간 고기를 싸는 용도로 사용돈 악보)
마냥 신기하고 놀랍기만 하다.
게다가 멘델스존은 작곡뿐만 아니라 상당한 그림 실력까지 가지고 있었다.
책 속에는 그가 그린 풍경화 한 점이 나오는데 문외한인 내가 봐도 상당히 멋진 그림이다.
그런가하면 31살에 요절한 슈베르트는 시를 잘 쓰기도 했다고...
잘생긴 외모와 신들린 듯한 피아노 연주로 여자들에게 엄처안 인기를 받았던 리스트.
그의 곁에는 소위 요즘 말로 "오빠부대"들이 가득했단다.
급기야 그의 아버지는 이런 유언을 남겼다.
"너는 여자들만 조심하면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다..."

고리타분한 클래식 해설서가 아니라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함께 있어 클래식 소품을 틀어 놓고 읽으면
딱 무릉도원을 느끼게 해 주는 책이다.
각 챕터의 마지막메 있는 "쉽게 풀어 쓴 음악 상식"이나 "금난새의 추천 음악"은
클래식과 관련된 용어들과 상식들도 많이 일캐워준다.
1권이 읽고 나서 꼭 2권을 찾아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더불에 관계된 음악이 있는 CD도 함께 들어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미 그런 버전도 있다.
 
책을 읽고 있으면.
자신이 하는 일에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의 진정성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진심으로 부럽고 존경스럽다.
그리고 더불어 닮고 싶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