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0. 4. 29. 06:37

처음엔 고양시 아람누리를 찾아갔었다.
5년 전 놓쳤던 <Miss Saigon>이 다시 공연된다 했을 때도 사실 난 좀 무감했었다.
충무아트센터의 음향이 개인적으로 믿음직스럽지 않아
아람누리를 찾았을 때까지도...
(솔직히 말하면 4대 뮤지컬이라니 한 번은 봐야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결국은,
고양시를 거쳐 성남까지 찾아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일부러 김성기, 김보경, 마이클리의 casting을 선택했다.
더블 캐스팅이니 다른 팀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굳이 이 팀을 다시 선택한 건 고양시에서 느꼈던
전율에 가까운 감동이 잊혀지지 않아서였다.
오케스트라 피트(OP)석에 좋은 자리가 있어 다행히 예매를 할 수 있었다.
얼굴 표정을 아주 자세히 볼 수 있겠구나 내심 기대하면서도
혹시나 MR 반주로 가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기도 했다.
(다행이다. 음악감독 김문정이 피트에 자리하고 있다 ^^)
그리고 이들은 나를 또 다시 아프게 만들었다.



세계 4대 뮤지컬의 하나인 <Miss Saigon>의 시작은 작은 사진 한 장에서였다고 한다.
대본과 가사를 쓴 알랭 부브리(Alain Boublil)와
음악과 대본을 만든 클로드-미셸 쇤버그(Clude-Michel Shonberg)는
우연히 잡지에서 한 장의 사진을 보게 됐단다.
조그만 베트남 소녀가 호치민 공항에서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진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깊은 절망과 슬픔으로 딸을 바라보고 있는 어머니의 시선이 보인다.
어머니는 지금 자신의 딸을 아버지에게 보내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다시는 그녀는 딸을 못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문제의 사진>

두 사람은 이 사진을 보고 깊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마치 자신이 그 아이의 엄마인 것처럼,
자신의 어린 자식이 영원히 자신의 곁을 떠나는 것처럼 괴롭고 아팠단다.
그리고 프랑스 군인과 일본 게이샤와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한 편의 프랑스 소설 <Madame Chrysanthemum>,
마지막으로 자식을 위해 모든 걸 헌신한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까지...
이렇게 한 장의 사진과 한 편의 소설, 한편의 오페라는
세기의 뮤지컬 <Miss Saigon>로 다시 태어난다.



두 번째 관극은 첫 번째 놓첬던 부분들을 보게 하는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게다가 OP석에서 본 그들의 얼굴 표정과 작은 연기 하나하나는
성남까지 찾은 수고를 대번에 날려주고도 남는다.
확실히 마이클 리의 발음은 5년 전 공연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아졌고
(물론 완벽하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그의 감정 몰입은 지금 생각해도 역시 대단하다)
김보경의 킴은 어머니로서 더 강해졌다.
따지고 보면 고작 20살 어린 나이의 엄마인건데...
2주간의 짧은 크리스와의 사랑은
킴을 3년간 버티게 했고 그리고 그 3년의 시간은 그녀 인생의 모든 시간이기도 하다.
스무 살의 나이로 평생을 표현해야 하는 어려움을 그녀 김보경은
때로는 순수하게 때로는 아름답게
때로는 가슴 아프게 때로는 강인하게 연기해냈다.
알 것 같다.
왜 뮤지컬 여배우들이 <Miss Saigon>의 킴을 꿈꾸는지...
그건 완벽하게 배역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결코 보는 사람에게 감동을 전달할 수 없기 때문일거다.
그렇다면 그녀 김보경은,
확실히 "킴"을 이해하고 있고 "킴"과 이미 동일화되어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킴과 크리스 뿐만 아니라
이 팀들의 무대가 나는 너무나 감동적이고 황홀하다.
(이런 유치한 표현밖에 쓸 수 없다는 게 정말 너무나 억울하다)
김성기 엔지니어도, 김선영 엘렌도, 이경수 투이도 나를 완전히 몰입시킨다.
첫 번째 관극 때 안타깝게도 나는 이경수 투이를 제대로 느끼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번 관극에서는 그의 목소리와 연기 역시도 섬뜩하다는 걸 느꼈다.
(어느 순간 그는 나를 완전히 압도해버렸다)
투이의 입장에서 본다면 킴을 향한 변하지 않는 사랑은 또 얼마나 절절한 순애보인지...
투이 이경수의 목소리에 담긴 격정과 분노를 나는 어이없게도 이제야 이해했다. 
투이와 크리스가 교차되면서 시작되는 헬기장 장면은
이 날도 여지없이 나를 완벽하게 무너뜨렸다.
생각만으로도 옴 몸이 아득해지도록 아프고 잔인한 기억이다.
또 다시 묻게 되는 질문 하나.
도대체 당신들 내게 무슨 짓을 한 거죠?



어쩌지?
이 팀들 고스란히 다시 또 보고 싶다.
나는 조만간 충무아트센타를 다시 기웃거리게 되지 않을까?
"아마도"가 아니라 "확실히" 말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8. 11. 30. 15:08


 <완득이> - 김려령 

책 이미지

 

지난주 토요일에 읽은 책입니다.

진료 끝나고 손에 잡았던 책인데 1시간 만에 뚝딱 읽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쾌, 상쾌, 통쾌에다 플러스 알파를 주고 싶은 책입니다.

<완득이>를 처음 손에 잡았을 때의 느낌을 그대로 표현하자면...

“뭐야?? 이거 인터넷 소설인거야? 귀여니의 아류쯤 되는 건가?????”

저처럼 에니메이션한 책 표지에 속는 사람 아마 여럿 있으리라 싶습니다.

일단 작가 김려령!

이 책 한 권으로 마해송 문학상, 문학동네 어린이 문학상, 창비청소년 문학상 이렇게 그랜드슬램을 해 버렸습니다.(당신은 욕심쟁이, 우후훗!)

청소년 명랑 소설쯤으로 생각하신다면 제가 많이 서운할 듯.(도대체 제가 뭐라고....^^)

정신 수준은 가히 “만득이” 수준을 왔다 갔다 하는 이 “완득이”라는 놈이 글쎄 주말에 저의 완소남으로 완전 등극해버렸습니다.(고작 고1 어린 놈이 자식에게......)

“도완득”

도를 완전히 터득한 놈이라고 할까요~~~^^ (한마디로 득도한 놈입니다. 득도의 방향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득도를 하긴 했습니다.)

어느 분은 그런 표현도 쓰셨던데요.

현대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고...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는 아마도 아부지 도정복의 공이 크다 싶습니다.


가족 구성원 살펴봅니다.

왜소증인 아버지 도정복 : 카바레가 문을 닫자 오일장을 개척하는 생활 역꾼. 본인은 정직하게 기록했는데 결혼 중개소에서 난쟁이라는 말을 일부러 지워 본의 아니게 베트남 처자의 가슴을 아프게 만드신 장본인 되시겠고...

베트남 어머니 : 가난한 나라 사람이 잘 사는 나라의 가난한 사람과 결혼해 여전히 가난히 살다 어찌 어찌 아버지와 헤어져 음식점에서 한달에 두 번 밖에 못 쉬면서 과다한 노동 중이시고...

삼촌 남민구 : 춤이 좋아 아버지에게 춤을 배우게 된 말더듬이. 생긴 건 요즘 말로 사망 지경인데 지능이 좀 떨어지고 춤은 무아지경 환상의 수준에 도달하신, 남들에게 “난닝구”라는 편안한(?) 별칭까지 하사 받으신 비혈연 관계이긴 하나 어쨌든 삼촌 되시겠고...


그리고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우리의 사회 선생 똥주(이동주)


“정말 이러시기예요? 가시관에 머리가 찔려서 잘 안 돌아가세요? 똥주 하는 꼴 좀 보라고요. 학생 집에서 술 퍼마시고, 꼴리는 대로 학생이나 패고, 선생이라는 작자가 인성 교육이 안 돼 있으니까, 학생들한테도 그런 교육을 못 시키잖아요. 다시 어린애로 돌려서 교육시킬 수도 없고,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요. 죽여주세요. 이번 주에도 안 죽이면, 나 절로 갑니다. 하나님 안 믿어요!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완득이의 표현을 쓰자면 “부자 아버지 밑에서 가난한 척하는”, “생활보호 대상으로 나온 제자의 햇반을 날로 드시는(그것도 잡곡으로다.....)”, “이주노동자를 불법 고용하여 무지하게 일 시켜 먹는 자기 아버지를 경찰에 고발하는” 한마디로 대책 없는 선생 똥주...

이런 선생님 학교 다닐 때 만났다면 아마 제 인생도 달라지니 않았을까 하는 에니메이션한 상상까지도 하게 만드는 인물입니다.


요는, 정말 다 살아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 나오는 인물들은 꾸며진 사람들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완벽히 살아있는 사람들입니다.

책을 읽고 있으면 마치 내 옆에서 이 사람들이 정말 수다스럽게 서로 말하는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저도 자꾸 한마디 거들고 싶어지게 만들 만큼요.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유쾌한 이야기 속에 장애인이나 외국인 노동자 같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편견들을 자연스럽게 풀어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장애인 아버지와 이주 노동자 어머니를 가진, 그래서 동시에 두 배의 편견에 시달리는 완득이의 가족을 통해 우리들의 사소한 선입견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도 단편적으로 돌아볼 수 있게 해 주죠.(너무 깊은 내용을 기대하진 마시라... 이 소설의 타이틀은 어찌됐든 청소년문학이니까.....)

또한 똥주를 통해 외국인 노동자를 이용하는 악덕 기업주와 그들을 돕는 봉사자들의 모습도 단편적이긴 하지만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들조차 그리 무겁지만은 않다는 사실, 적절한 가벼움을 유지하되 진지한 이야기를 함께 엮어내어 유쾌하게 웃으면서도 우리 사회의 문제들에 대해 한 번쯤은 생각하게 만들고 있죠.

그래서 읽는 내내 큰소리로 웃을 수 있었고, 그러면서도 가슴 한쪽이 뻐근해지는 느낌 또한 지울 수 없었던 책이었습니다.


어쩌면 완득이는 “열등감”에 관한 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완득이는 주변 사람들을 통해, 그리고 킥복싱을 통해 이 열등감을 아주 유쾌하고 건강하게 극복하고 있는 중입니다. 정말 현재 진행형으로...

어쩌면 더 많은 TKO 패를 당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계속 하다보면,

언젠가는 TKO 승을 하는 날이 오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멋진 완소남 도완득인데....^^


“아버지와 내가 가지고 있던 열등감, 이 열등감이 아버지를 키웠을 테고 이제 나도 키울 것이다. 열등감 이 녀석, 은근히 사람 노력하게 만든다....”


저도 한마디 해주고 싶네요.

“완득아!!!~~ 힘내라!!! 누나가 지켜본다~~~~~”

이 녀석, 한마디 할 것 같습니다.

"됐거든요~~~ 똥주 하나로도 기도하기 바쁘거든요~~~"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