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2. 5. 14. 05:57

토요일에 광화문에 갔다가 노무현 대통령 서거 3주기 추모 전시회 사진전을 보고 왔다.

미공개사진과 생전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전시되어 있었다.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행렬을 보면서 뭉클했다. 

대통령으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그분의 마지막은 측은하고 안타깝다.

사진들을 둘러보고 있는데

두 장의 사진에 종이로 곱게 접은 카네이션이 달려 있었다.

아마도 어버이날 누군가 일부러 챙겨와 달아놓은 모양이다.

(어쩌면 생전에 그토록 이뻐했던 손주들인지도...)

빨간 장화에 손수 손주들의 이름을 써서 선물한 할아버지 마음을 바라보면서

가족들이 내내 품고 있을 슬픔때문에 혼자 먹먹했다.

 

노무현재단측에서 나온 자원봉사자들의 모습도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손이 까맣게 됐는데도 묵묵히 먹을 묻혀 판화를 찍어내던 손길,

한자한자 정성껏 손글씨를 쓰는 사람들.

캐리커쳐를 그리고 기념품을 판매하는 사람들.

밀려드는 인파로 힘도 들고 팔도 아프고 짜증도 날 법 한데

참 열심히 그리고 미소를 잃지 않고 봉사하는 모습에 존경심담긴 아름다움을 느꼈다.

 

그렇구나!

벌써 3년이란 시간이 지났구나!

노무현 대통령이 봉하마을 부엉이 바위에서 스스로 뛰어내려 서거했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내 가슴속에서도 뭔가가 쿵하고 함께 떨어졌다.

오래 그리고 깊게 절망했고 우울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추모 전시회날 공교롭게도 나는 주진우 기자가 쓴 <정통시사활극 주기자>를 손에 쥐고 있었다.

나는 MB정권의 말로를 열심히 기다리고 지켜볼 생각이다.

어쩌면 이렇게 구석구석까지 이렇게 완벽하게 국민의 삶을 망가뜨릴 수 있을까?

우리는 또 다시 부끄러운 대통령과 갖게 됐다.

단 한 사람때문에 모두가 처참한 시기를 자나왔고 지나오고 있다.

하지만 조금만 기다리자!

이제 조금만 지나면 이 모든 것들이 다 지나간다.

그리고 두 눈 똑바로 뜨고 평가하자!

전직 대통령의 예후 하나는 확실히 하겠다는 그의 말처럼

MB를 충실히, 그리고 가차없이 예후해서 철저하게 던져주자!

이 모든 굴욕과 비참을 기억 속에서 절대로 도려내거나 구석에 밀어넣지도 말자.

기다려라!

당신이 5년동안 온갖 술수로 불린 부의 축적, 그 하나만 가지고도

당신의 남은 생은 패배고 굴욕이고 수치다.

나는 애국자도 아니고 정치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분명히 안다.

그는 심판을 받아야하고 댓가를 치러야 한다,

당신은 몰락하기에 너무나 완벽한 인물이디.

몰락하기에 이보다 더 완벽한 사람은 이전에도, 앞으로도 없다.

기다려라.

당신에게 되돌아갈 이 모든 것들을...

 

 

 

 

Posted by Book끄-Book끄
그냥 끄적 끄적...2009. 5. 31. 16:23
국민장을 위해
봉하마을을 떠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영결차 주위를 맴돌았다는 흰 비둘기.
떠난 분의 마음이었을가?
평화를 기원하는....



영정사진 위를
유유히 날아다니던 하얀 나비.
하고 싶은 말들
그대로 날개짓으로 남기고...



하늘에 떠 있던 오색 채운
마른 하늘 위에 남긴
못다한 마지막 유언



믿어지지 않는
거짓말 같은 현상들.
함께 울었구나... 함께..
온 몸이 투명해져
마침내 다시 빛으로 남겨지다...



붉은 쪽달
모두 함께
붉은 눈물 흘렸던 날.
Posted by Book끄-Book끄
그냥 끄적 끄적...2009. 5. 28. 06:37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살지, 살아서 싸우지 왜 죽어”

경향신문 | 오도엽 | 시인



이소선에게 삶과 죽음의 경계는 없다. 전태일의 분신항거 뒤로 이소선에게 삶이란 무엇이고, 죽음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소선에게 중요한 것은 살아야 할 때 어떻게 살 것이고, 죽어야 할 때 어떻게 죽느냐다.

전태일 이후로 숱한 사람이 소외된 사람과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쳐 항거하였다. 그 소식을 접할 때 이소선의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온 소리는 긴 한숨과 함께 "살지, 살아서 싸우지 왜 죽어"였다.
이소선이 지난 25일 누무현
전 대통령의 덕수궁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지난 토요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안타까운 소식을 들은 이소선은 긴 한숨만 내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기서 봉화 마을까지 가려면 얼마나 가야 하냐?"
네다섯 시간은 가야 한다는 말에 이소선은 덕수궁 앞으로 가자한다. 도저히 그곳까지 갈 몸 상태가 아니라고...

이소선이 덕수궁 앞 분향소로 가겠다는 이유가 또 있다.

"야, 분통이 터져서라도 덕수궁으로 가야겠다. 뭐, 국민장이라고? 지랄한다. 칼로 찔러야만 죽인 거냐? 잘못했으면 조사해서 밝히고 처리하면 되지, 검찰이라는 것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날만 새면 낮이든 밤이든 가리지 않고, 언론 불러 모아놓고 이리 씹고 저리 볶아대는 게 검찰이 할 짓이냐? 이건 죽게 만든 거야. 이명막하고 검찰이 죽게 만든 거 아니냐? 이제 와서 사과도 안 하고 국민장 한다고. 순서가 맞지 않잖아. 말로만 국민장 한다면 다냐? 경찰차로 분향소 똘똘 가로막고, 이게 무슨 국민장이냐. 이명박이 죽게 한 거 먼저 사과하고 시민들 참여할 수 있게 경찰차 치우고 나서 국민장을 하든 시민장을 하든 해야지. 태일이 떠나고 40년 됐는데, 이런 정권 이런 대통령, 이리 주책없고 도리도 없는 대통령 첨 봤어. 언론들도 마찬가지야. 받아 적는 게 언론이냐. 저기 장자연인가 연예인 죽을 때도 진실도 못 밝히는 것들이 만날 죽은 사람 얼굴만 떡 하니 갖다 놓고 씨부리다 말고. 이번에는 검찰이 지랄한다고 덩달아 춤만 추고. 이게 언론이냐?"

이 말을 하기 위해서라도 덕수궁 분향소에 가는 게 맞겠다고 한다. 25일에 이소선은 덕수궁 분향소 고인의 영정 앞에 앉아 민주화 운동을 함께했던 노 전 대통령을 위해 기도를 했다. 그리고 기자들 앞에서 위에서 한 말보다 더 '세게' 욕까지 덧붙여 말했다. 말을 마치고는 청와대를 쳐다보며 "나도 잡아가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소선에게는 가신 님에 대한 애틋한 기억이 가득하다. 1987년 옥포 대우조선소 이석규가 최루탄에 맞아 사망했을 때, 이소선은 장례위원장을 맡으며 노무현 당시 변호사와 함께하지 않았던가. 원진레이온 산업재해 사건 때도 마찬가지고.

"이석규 할 때, 노무현 변호사 할 때야, 장지로 출발하기 전에 변호사 주머니에 남아 있던 돈 2만원을 내가 홀랑 뺏지 않았냐. 변호사니까 돈 없어도 갈 수 있잖아, 하며. 내가 한푼도 없었거든. 장지로 가는 버스를 탔는데 고성 삼거리에서 경찰이 몰려나오니까, 변호사가 나한테 내가 나가서 알아볼 테니 내 짐 좀 가지고 있으라며 차 밖으로 나갔는데 경찰한테 딸랑 잡혀가지 않았냐. 나는 얼른 산 속으로 도망가고. 나중에 대통령 되고 나서 무슨 기념식에서 만나니까, 이러는 거라. 엄마는 내 짐 맡아달라니까 혼자 도망가. 그래서 대통령님 이런 데서 주책없이 옛날 일을 그렇게 말하면 되겠냐고 했어. 그라니까 그런가, 하며 자기 자리로 가서 앉더라고. 참 인간적으로 격식 없이 좋은 분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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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개인적으로 존경하고 위대하게 생각하고 있는 분,
이소선 여사 !
젊은 아들을 타는 불길 속에 보내놓고
다시 그 아들이 된 어미 !
고령의 나이에 청춘으로 되돌아가 노동운동의 어머니가 된 이소선 여사.
그 분에게도 노무현 대통령과 관계된 일화가 있다는 걸 기사를 통해 알았다.
두 아들을 잃은 어미의 심정 !
덕수궁 분향소를 찾아 사진을 어루만지는 그 분의 심정이
얼마나 불꽃처럼 일렁였을까 생각하니 또 고개가 숙여진다.
"엄마는 내 짐 맡아달라니까 혼자 도망가!"
아마도 그 말이 목에 걸려 그렇게 사진을 쓸어 내리지 않았을까?

허락한다면,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다.
나는 자꾸 편하게 살아내려고만 하는데...
하루하루가 조금 덜 부끄럽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내기를 다짐하기 위해서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다.
두 아들을 잃은 어미를...
그리고
어미를 남긴 두 아들을....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