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2. 4. 4. 06:14

<엘리자벳> 세번째 관람이다.
옥주연, 김준수, 민영기, 김수용, 이태원, 이승현 캐스팅.
어쩌다 보니 세 번의 관람으로 송창의 토드를 빼고 전 캐스팅을 한 번씩은 다 본 셈이다.
티켓 구하기가 어렵다는 김주수의 토드를 어쨌든 3층 가운데 맨 앞줄에서 봤다.
이번엔 망원경까지 챙겨서 갔다.
지난번 3층 관람에서 무대의 전체적은 분위기를 조망했기에 이번엔 감히 3층에서 표정과 디테일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아무진 꿈이긴 했는데 망원경으로 보니까 그게 또 너무 잘 보여서 신기하더라)
확실히 여러 번 보면 더 놓쳤던 부분도 더 많이 보이고
배우들의 대사도 점점 또렷하게 들린다.
요제프와 엘리자벳의 결혼식 장면에서 다른 토드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김준수 토드는 공중에서 와이어를 타길래 좀 놀랐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이 좀 생뚱맞았다.
약간 경망스러운 느낌도 없지 않아서...
게다가 3층에서는 시야장애가 있어선지 처음엔 다리만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길래 이건 뭔가 했었다.
다른 토드들에게선 이 와이어 부분이 없었던 것 같은데... 
그렇다면 그건 다분히 팬서비스 차원의 와이어 액션처럼 보여지기에 충분하다.
토드가 굳이 그렇게까지 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었을까 싶다. 
(뭐 내가 류토드를 두 번 보면서 이 부분을 놓쳤을 수도 있겠지만... 근데 아무래도 놓친 것 같지는 않다) 

샤토드 김준수!

사실 처음엔 샤토드의 "샤"가 무슨 뜻인지 전혀 몰랐다.

개인적으로 동방신기 노래는 물론이고 JYJ의 노래도 들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래서 김준수라는 배우(?)가 어떤 톤과 음색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

계속되는 해외 공연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목소리 톤이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목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솔직히 첫 등장에서 노래가 좀 약해서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그런데 열심히 하는 모습은 정말 이쁘더라.

그냥 유명한 아이돌 섭외로 티켓파워를 올리겠다는 취지의 인물로는 느껴지지 않았다.

김준수에게 뮤지컬은 일종의 일탈과 휴식, 그러면서 따뜻한 위로와 깊은 치료처럼 느껴졌다.

무대위에서 너무 열심히, 간절히 연기하는 모습이 어쩐지 측은하기까지 했다.

(어디까지나 이건 개인적인 느낌이고!)

일단 배우로서 표정과 당당한 시선, 그리고 무대를 책임지려는 자세는 확실히 존재감이 있었다. 

이 녀석이 조금 더 나이를 먹고 연륜이 생기면 어떤 배우로 무대에 서있게 될지 조금씩 궁금해졌다.

최소한 한때 젊은 패기로 뮤지컬을 시작한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본인이 캐릭터 설정을 그렇게 했건지 모르겠지만

김준수 토드는 꾹꾹 찍어 누르면서 일부러 박자를 약간씩 쳐지게 넘버를 부른다.

그게 의외로 여유있게 들리고 뭔가를 control 하고 있는 듯한 묘한 power가 느껴진다. 

숨과 호흡의 장단을 가지고 독특한 악센트를 이용하는 매우 영리한 연기도 보인다.

불같은 질투를 거침없이 휘두르며 과감하게 유혹하는 준수 토드!

절대 한 눈 파는 것 따위는 용서하지 않을테니 결단코 나만 보라는 잠언을 남긴다.

그리고 의외의 젊은 관능미(?)가 보여 놀랐다.

약간 사악한 느낌도 들고...

다만 웃음은 좀 어색하고 작위적이다.

(류토드의 웃음은 정말 압권이었는데...)

그리고 분장이 너무 과한 것 같다.

다른 토드들에 비해 유난히 햐얗게 보여 강씨같은 느낌이 든다.

분장과 웃음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꽤 괜찮았다.

만약 이 친구가 올해도 <모차르트>를 한다면 챙겨 봐야 갰다는 생각이 들만큼...

한류스타, 아이돌 그룹으로서는 어떤 모습인지 전무하지만

일단 처음으로 만난 뮤지컬 배우 김준수는 괜찮았다.

무대 위에서 끝까지 시선을 놓치 않는 모습도 그렇고

일종의 촉(燭)을 세우고 있는 듯한 모습이라 인상적이다.

앞으로 뮤지컬 배우로서의 모습이 많이 기대되는 배우다.

 

어쩌다보니 김수용 루케니까지 3인의 루케니(박은태, 최민철, 김수용) 전부를 클린했다.

개인적으로는 김수용 루케니가 가장 맘이 들었다.

개입할 때와 관조할 때를 확실하게 구분해서 표현했고 노래와 연기 모두 안정적이다.

"행복한 종말"과 "밀크"에서도 자신이 돋보일 곳과 앙상블에게 자리를 넘겨줘야 할 곳을 영리하게 잘 구분한다.

(시종일관 부각되는 박은태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딕션도 좋았고, 연기, 노래도 너무 훌륭하다.

폭발적인 성량은 아니지만 자유자재로 고음을 조종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탄했다.

김수용이 보여준 밀크에서의 4단 고음은 과하지 않으면서도 인상적이다.

마리오네트 인형극 장면도 가장 잘 표현했고

마지막 장면에서 목을 매다는 표현도 인상적이다.

신비감이 느껴질만큼 묘한 음색이다.

(남한산성이나 wait for you를 보면서는 못 느꼈던 부분인데...)

마냥 간난이 동생일 것 같은 김수용인데 벌써 삼십대 중반이란다.

뮤지컬배우로 이렇게 자리를 잘 잡은 그의 모습을 보면 왠지 흐뭇하고 뿌듯하다.

이승현 루돌프의 연기는 확실히 어색하고 서툴렀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작품에서는 돋보였던 것 같다.

"그림자는 길어지고"에서는 여러모로 존재감이 묻혀버렸지만

(이 넘버는 역시 류정한과 전동석이 끝장이다! 마치 두 개의 불꽃이 튀는 것 같다.)

"내가 당신의 거울이라면"에서는 부족한 듯한 모습이 오히려 두려운 떨림으로 느껴져 감정전달이 더 잘됐다.

어설퍼서 더 많은 연민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3층 관람에서 꼭 잊지 말고 볼 것은

1막과 2막에서 요제프와 엘리자벳이 함께 노래하는 호숫가(?) 장면이다.

노을진 배경의 색감이 정말 너무 예쁘고 그 배경을 따라 흐르는 두 인물의 노래도 너무 잘 어울린다.

그림처럼 내내 기억 속에 담기는 장면이다.

 

이로써 세 번의 관람으로 송도트를 제외한 모든 캐스팅을 다 한 번씩은 확인한 셈이다.

만약 네 번째 관람을 하게 된다면

김선영, 류정한, 윤영석, 이정화, 전동석 캐스팅으로 보고 싶다.

개인적으로 옥주현은 민영기와 김선영은 윤영석과 음색이 서로 잘 맞는 것 같다.

그리고 민영기는 이태원과, 윤영석은 이정화와 맞는 것 같고...

(아무래도 <명성황후>의 영향이 큰 것 같다)

뮤지컬 배우 류정한이 JTBC 종편 드라마 <러브 어게인>에 김지수와 출연한다는 소식은 상당히 충격적이긴 하지만

(아무리 황인뢰 연출에 대한 신뢰로 결심했다지만 불륜 캐릭터가 왠 말이냐 말이다...)

마지막 티켓 오픈에 이 캐스팅이 실현되면 당연히 베팅 할거다.

그리니 부디 <엘리자벳> 출연하는 모든 배우들이 마지막까지 컨디션 조절에 힘써주길 기도해본다.

배우는 역시 무대 위에서

자신의 최고의 모습을 자신의 최선의 노력으로 보여줘야만 할 책임이 있기에...

 

* 이미 촬영에 들어갔다지만 솔직히 아직까지 뮤지컬 배우 류정한의 드라마 결정은 좀 의아하다.

  영화 <기적>도 "내가 뮤지컬 배우지, 영화 배우냐!" 하며 하차한 그가

  (이런 인터뷰를 한지 얼마나 됐다고...)

  뮤지컬과 겹치기 출연까지 하면서 드라마를, 그것도 종편 드라마를 선택했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

  얼마나 놓치기 싫은 인물이었기에 주변의 안 좋은 소리까지 감수하면서 출연 결정을 했을까 싶지만 

  솔직히 뮤지컬 배우 류정한의 오랜 팬으로써 노파심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건강도 좋지 못하다는 소문이던데...

  참 만감이 교차한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1. 3. 21. 06:08
약간의 공통점이 있는 두 권의 일본 소설을 읽다.
두 권 다 여류 작가에 의해 쓰여졌다는 거.
역시나 일본소설답게 아무렇지 않게(?) 불륜이 등장한다는 거.
그리고 불륜이 나오니 더불어 성적인 요소가 다분하다는 거,
하나는 조금 조심스럽고 조용하게
그리고 하나는 아주 노골적이고 집요하게.
사실 일본 소설을 읽는 건,
때론 참 불편하고 헛헛하다.
다른 감수성과 다른 세계와 다른 촉각의 이야기들은
당황스럽기도 하고 그게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있게(?) 지치지도 않고 이어질 때는
묘욕감 비슷한 불쾌감도 든다.


<초초난난>
표지에도 있듯이 남녀가 정겹게 속삭이는 모습이란다.
그런데 문제는 그 남녀가 불륜이라는데 있다.
소설 속에는 다행히(?) 그 둘의 비밀스런 관계가 적나라하게 묘사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함께 먹는 음식이나 일본 전통 기모노에 대한 이야기가 부각돼서 나온다.
(이런 부분들은 신선함마저 느껴진다. 
 일본이란 나라... 같은 동양권이지만 음식과 옷에 관한한 유럽이나 미국보다 더 이국적인 것 같다.)
음식과 옷이라...
아주 친밀한 사람과 함께라야 완벽하게 즐길 수 있는 게 이 두 가지인 것 같다.
생각해보라,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과 혁대를 풀어놓고 본능적으로 아구아구 먹을 수 있는지...
(이상하게도 요즘 참 음식과 관련된 책, 공연 연달아 접하게 된다)
작가 오가와 이토는 전작 <달팽이 식당>에서도 음식과 관련된 소설을 썼던 모양이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소재로 찾은 셈.
식욕과 성욕, 그리고 장식적인 기능의 옷에 대한 욕망.
아주 원초적인 인간의 욕망을 그래도 눈살 찌푸리지 않게 수위조절(?)을 하면서 쓴 것 같다.
봄날 몽롱한 아지랑이 같은 나른함을 안기는 소설 ^^
몇몇 묘사나 표현들은 선명하고 차분했다.


"double fantasy"는 원래
존 레논과 오노 요코가 1980년에 발표한 타이틀 곡이다.
남녀가 아무리 서로 사랑해도 서로 전혀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음을 뜻하는...
왜 이 노래 제목을 사용했는지 솔직히 지금도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성욕을 통한 창작욕의 점화?
차라리 대놓고 포르노그라피 소설이라고 했으면 정직하지 않았을까?
드라마 작가인 주인공 여자의 남성편력에 넌덜머리가 났다.
왕성한 성욕은 고유한 생명력의 발로고 
그 생명력은 창작에 대한 욕구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고 책의 인물 중 한 명이 말한다.
그런데 솔직히 이건 관능도 뭣도 아니다.
관능적이기엔 너무 파렴치하고 중심이 없다.
차라리 철저한 쾌락과 탐닉, 아니면 관음의 미학이라도 펼치던지...
존 레논과 오노 요코 부부에게 내가 다 미안해진다.
글을 쓴 무라야마 유카는 과거에 나오키상을 수상한 작가란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녀가 썼던 소설과는 완전히 180도 다른 소설이라고.
이 소설이 그녀의 다음 작품에 어떤 창작열의 원천으로 작용할지는 잘 모르겠다.
작가가 만족했다면 뭐 할 말 없지만...
일본 작품은 너무 극과 극을 달려서 싫다.
<더블 판타지>에 비교하면 <초초난난>은 아예 초등용 문고라고 할 수 있겠다.

삼천포로 빠지는 이야기지만,
개인적으로 인간으로 태어나서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것 중 하나가 "불륜"이라고 생각한다.
자기만 파괴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쌍방의 부부와 그 자식들까지도 파괴하는 짓이니까...
그래서 불륜의 책들이 나는 참 싫다.
이런 책을 만날 때면,
일단 손에 잡은 건 끝까지 읽어야 하는 결벽증같은 성질머리가 참 맘에 안 든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11. 25. 05:58
개인적으로 파울로 코엘료는 <순례자>, <연금술사> 이후
중기 작품들이 맘에 든다.
순서적으로 약간 이상하게 출판되긴 했지만 이 책 <브리다>는
기네스북에 오를 만큼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연금술사> 2년 후 작품이다.
(<연금술사>는 "한 권의 책이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작가"로 기네스북에 기록되어 있단다)
1990년 발표된 작품이지만 우리나라엔 2010년에야 번역, 출판됐다.
<순례자>를 통해 깨달음을 시작하고 <연금술사>로 그 진실의 정수와 조우했다면
<브리다>는 그 순례의 길에서 만난 운명을 찾아 떠난 스무살 여자에 대한 이야기다.
여자와 운명...
코엘료스러운 조합이긴 한데 좀 어리둥절하게 한다.
중반 이후까지 아주 "코엘료" 스럽다가 후반부터 사람 애매하게 만들어버려서...
등장인물이 아니라 읽고 있는 나를...
물론 <승자는 혼자다>만큼 혼란스럽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이런 이야기가 더 이상 가슴 저릿저릿하지 않다는 건,
어쩌면 내가 너무 무디게 나이가 들어가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소울 메이트"
가슴뛰는 단어였다가 점점 무덤덤해지는 단어가 되버린 말.
이젠 소울 메이트라고 하면 "불륜"의 그럴싸한 핑게가 먼저 떠오르는 지경이니... 쯧쯧!
어쨌든 사람의 삶은,
 자신만의 소울 메이트를 만나기 위한 긴 순례의 길이란다.
그리고 하나의 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다른 길들을 포기해야만 하고...
“살아가다보면 어느 순간 우리 모두는
자신의 소울메이트를 만나고 그를 알아보지”

꼭 만나야 할 단 하나의 운명!
브라다는 현자(마스터)이자 스승인 마법사에게 되물는다.
"소울메이트를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알고 싶어요?' 라고...
왼쪽 어깨 위에 반짝이는 점과 눈 속의 광채를 통해 알 수 있다는 현자의 말은...
너무 동화적이라 그만 기운이 빠지고 만다.



파울로 코엘료가 말하고 싶었던 건,
운명을 발견하기 위해 당신은 얼마만큼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가? 라는 물음이다.
그게 뭐 꼭 사람이어야 할 필요는 없겠지만... 
운명을 위해 신비(비밀)의 전승과 위험 감수 중  어느 것을 택하겠는가?
브리다는 마녀의 입문식을 행함으로서 신비(비밀)를 택했다.
이 두 가지에서 하나를 선택했다면 안심하지 말지니,
또 다른 선택이 기다리고 있다.
운명을 찾았다면 그 외의 다른 모든 길은 포기하겠는가?
포기할 수 있을 때 비로서 생과 우주를 이해할 수 있다고 코엘료는 말한다.
남자의 지식과 여자의 변화가 만날 때 "지혜" 만들어진단다.
그리고 감정이란 야수와 같아서 그것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지혜"란 놈이 필요하고...
그래서 내가 애매해져버린거다.
이 책이 운명을 말하는 건지, 지혜를 말하는 건지... 
양쪽 모두라고 한다면... 할 말 없다...쩝!
아무래도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내가 마법사라도 돼서
태양 전승이든, 달 전승이든 하나를 깨우쳐야 할 것 같다.
너무 많은 이야기가 나오는데 마무리는 너무 약하다.
그래서 내겐 꽤 산만한 이야기가 되버렸다.
코엘료의 다음 소설 <알레프>에서 다시 "코엘료"스러움을 찾아봐야하나???
이건 초기작이라 뭐라고 말하긴 그렇지만
확실히 코엘료가 요즘 변하긴 한 것 같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4. 19. 06:31
윤대녕의 소설을 읽으면 맘이 설렌다.
뭐랄까?
완벽함이 주는 불안감 대신 불안감이 주는 묘한 안도감이 느껴진다.
윤대녕식 신파를 나는 긍정하고 그리고 이해한다.
손쓸 수 없을 만큼 쏟아지는 대설처럼
그렇게 몰아치듯 그의 단편집을 읽었다.
<대설주의보>



1. 보 리
2. 풀밭 위의 점심
3. 대설주의보
4. 꿈은 사라지고의 역사
5. 오대산 하늘 구경
6. 도비도에서 생긴 일
7. 여행, 여름
7편의 단편들은 마치 단단한 눈덩이처럼 서로 뭉쳐있다.
어딘가 은밀한 사람들, 어쩐지 처연하기까지한 불륜들.
정말 그에겐 모든 우연이 "필연"이었던건 아닌가?
윤대녕의 불륜을 나는 도저히 손가락질할 수 없다.
그냥 질끈 눈 감아버리는 수밖에...



누군가는 말했다.
윤대녕의 인물들은 병들어 견디고 견디며 죽는다고...
내게도 그의 글들은 그렇다.
일몰무렵에 일출 명소에 와 있는 것 같은 막막함 같다고...
윤대녕의 일상은 폐허이면서 동시에 안도감이며 푸른 보리싹같은 생명력이라고...
어느새 나도 그에게 은밀한 공감을 느끼며
더 은밀한 협약으로 공모로 유대를 품는다.
폭설로 길이 끊인 곳에 덩그라니 남아 있어도
길을 떠날 수 있고 그래서
결국은 기다리는 혹은 기다렸던 사람을 만나게 될 거라는 믿음.
그 믿음이 푸짐한 눈발보다 더 푸짐하다.
그러나 눈은 여전히 차다.
그게 결국은 세상 모든 사람의 일생이다.

이 사람의 글은 내겐 그랬다.
아득하면서도 어딘지 모르는 평온함을 주는 느낌.
<은어낚시통신>도, <눈의 여행자>도,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도,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도...
그의 연애는 매번 분간할 수 없는 환상이고
일상은 파삭하게 건조한 무감(無感)이다.
그의 글은  그래서 미안하게도
너무나 나를 닮아있다.
폭설 속에 길을 잃었으면서 하얀 눈 속을 부작정 걷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이 꼭 나 같아 아프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3. 2. 06:23


2007년 뮤지컬 "스핏파이어 그릴"을 마치고 돌연 영국 유학길에 올랐던 그녀. 
영원히 줄리엣일 것만 같았던 "조정은"의 복귀작.
그 이유만으로도 꼭 봐야겠다 다짐하게 만들었던 뮤지컬 <로맨스 로맨스>
2년의 공백 동안 그녀는 어떻게 변했을까?
그리고 얼마나 무대가 그리웠을까?
게다가 계원예고 동창 "최재웅'이 상대역이란다.
오랫만에 동창회에  나오는 그런 느낌도 있지 않았을까?
왠지 그녀의 감회가 나는 기쁘고 그리고 이쁘게 다가온다.



뮤지컬 <로맨스 로맨스>
"Two new musical"이라는 말을 쓰더라.
1막은 19세기 비엔나를 배경으로
2막은 현재를 배경으로 해서 그런가?
"new"라는 단어가 어쩐지 좀 민망하긴 하다.
어쨌든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더이상 새롭지는 않을텐데...  (^^)
아무래도 형식면에서 "Two new musical"이라는 말을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이 작품은 오프오프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1988년에 브로드웨이에서 공연 되면서 큰 호응을 받게 되고
토니상 작품상, 대본, 작곡/작사,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작품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미국인들이 우리보다 사랑이라는 감성에 더 악한 것 같다는 생각도...
 


1막 19세기 비엔나
돈 많고 잘생긴 미혼남 알프레드(최재웅)와 화려한 연애편력을 자랑하는 조세핀(조정은).
그들은 진정한 로맨스가 없는 삶이 영 불만족스럽고 무의미하기만 하다.
주인공이 친구 테드와 헬렌에게 보내는 편지 속에는
이런 무료함과 상류층의 사랑에 대한 신물이 구구절절 적혀있다.
뭔가 다른 사랑을 꿈꾸는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Mask(가면)".
두 사람은 똑같이 가난뱅이 시인, 공장 노동자가 되어
은밀한 연애의 즐거움에 빠져든다.
극의 마지막에 알프레드가 그 스스로의 입으로 말하듯
1막은 하나의 "오페레타(operetta)"다.
경쾌하고 가벼운 웃음을 주는 소극.
천연덕스러운 조정은의 연기가 돋보인다.
그동안 정말 그녀는 무대가 많이 그리웠구나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어딘지 그녀의 목소리와 음색도 예전의 곱고 이쁜 것과는 많이 달라져있다.
능청스러웠던 그녀의 표정은 참 즐겁더라...
깨방정 조정은 ^^

 


2막은 현재
대학시절부터 13년째 절친한 친구인 그(최재웅)와 그녀(조정은).
그들은 가족과 함께 여행을 다닐만큼 가깝고 친한 사이다.
복잡한 일상을 벗어나 바닷가 팬션에서 함께 여름휴가를 즐기는 두 사람은 
서로의 배우자가 잠든 깊은 밤,
거실에서 결혼생활, 플라토닉 한 사랑(우정)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
그러니까 그의 말대로 그들은 지금 "연애질" 중인거다.
선을 넘느냐, 넘지 않느냐...
그 연애질의 이제 막 위험한 관계로 넘어가려고 한다.
만약 당신이 이런 경우라면 어떤 결말을 원하는가?
극은 마치 보는 사람에게 이렇게 질문하는 것 같다.
우리가 믿는 모든 사랑의 시작은
환상과 거짓일수도 있다. 아니 확실히 그렇다.
그 환상이 이제 막 현실로 넘어오는 순간은 유머러스하고 수다스럽다.
그러나  반전(?)이랄 수 있는 마지막 대사에서는
모든 유부남, 유부녀들에게 마지막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연애 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공감되는 대목이 많은 풍자극이라고
조정은은 말한다.
그러니까 이 뮤지컬은 결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상황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즐기라는 뜻이다.
2막보다는 1막이 재미면에선 더 있지만
2막에서 오랜 두 남녀 친구가 주고 받는 시덥잖은 대화 속에 담긴
심리적인 고백들과 그 변화를 따라가는 즐거움은
오히려 1막보다 더 솔솔하고 은근한 재미가 있다.



유학생활 중에 조정은은 생각했단다
내가 나의 모국어로 공연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깨달았다고.
그래선가?
그녀는 충분히 그 작은 복귀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그녀의 반짝이는 눈빛이 그동안의 그녀 속에 있던 그리움을 보여주는 것 같다.
앞으로 그녀는 착하고 이쁜 역을 벗어나
아마도 더 많은 다른 모습으로 무대위에 서지 않을까 기대된다.
사실 배우 조정은을 이쁘고 착한 여주인공으로 만들었던 건
관객의 시선일지도 모르겠지만,
배우 조정은은 이제 그 시선에조차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배우 최재웅.
그에게 코믹한 역은 어쩐지 어울리지 않을거란 생각을 했다.
그런데 "꽤"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쁘진 않았다.
오랫만에 본 상큼 발랄한 뮤지컬.
그런데 솔직히 다시 보게 되진 않을 것 같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1. 20. 06:35
만약에 이 사람이 잭 웰치의 재혼녀가 아니었다면
이 책이 성공을 했을까?
잭 웰치의 아내의 자라를 차지(?)함으로써
그녀 인생의 장은 다시 펼쳐진다.
나는 이 책이 연예인 프리미엄보다
더 노골적인 책인 것 같아 시작부터 불편했다.
10-10-10
지극히 미국적인 사고방식에서 나올 수 있는 생각
왜 그런 생각이 자꾸 들까?



하나의 선택을 가지고
10분 후를, 10개월 후를, 그리고 10년 후를 생각하고 결정하라는 조언은
나쁘지 않다.
바로 지금, 눈 앞의 현실만 가지고 결정을 하지 말고
가까운 미래와 먼 미래를 함께 생각해서 결정하라는
지극히 교과서(?)적인 조언을
10-10-10(텐텐텐)이라는 멋진 말로 풀이한 건 훌륭하다.
(특히 "텐텐텐"이라고 발음하면 그 말의 생동감과 참신함이 그대로 느껴진다)
10-10-10의 시작은
잘 만들어진 질문에서 부터 비롯된단다.
그리고 테이터 수집을 하고(그 시간은 아주 짧을 수도, 혹은 길수도 있다)
분석을 함으로써 가장 좋은 선택을 하라는 말.
그녀의 말에 의하면
10-10-10은 선택에 대한 후회와 죄책감을 없애준다고 한다.
자기 가치관에 입각한 결정에는 후회가 없기 때문이라고...
물론 10-10-10이 있다고 해서 일과 가정 간의 갈등이 사라지는 건 아니란다.
(대략 이 책의 주체는 워킹맘들을 위한 책이라고 하는 게 더 맞는 말이겠다)
단지 갈등을 더 잘 이해하고 관리해서
원만하게 타협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게 10-10-10이라고 수지 웰치
이 복받은 여사의 결론이다.
그런데... 솔직히
이걸 누가 모르겠는가.



공교롭게도 나는 이 책을
찜질방에서 서너시간 동안 읽었다.
찜질방 아주머니들의 사소한 일상의 수다를 모아 놓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로 나의 장소 선택은 의외로 탁월한 선택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회사에서 어떤 일을 추진할 때도 사용하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 책에서는 안타깝게도 그런 예를 충분히 보여주고 있지 않다.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들.
그리고 미국적인 복지(?)와 사고가 있어야만 가능하겠구나
좀 씁쓸해지게 만드는 책이다.
GE의 잭 웰치와 재혼한 후
(엄청난 스캔들을 이기고... 그야말로 소위 불륜을 사랑으로 승화시킨 저력이란...)
이 책을 출판한다고 했을 때,
우습게도 원고가 써지기도 전에 수많은 출판사에서 서로 계약을 하겠다고 경쟁이 붙었단다.
우리나라에도 책이 들어온 게 아니라
영어판 원고가 그대로 들어와 초반에 엄청한 이슈를 만들었던 모양.
배유정이라는 스타급 번역자를 선택한 것도
(배유정의 고양이 타령은 정말이지 신물이 난다)
따지고 보면 잭 웰치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수지 웰치 그녀에겐 참 미안한 말이지만...
(그러나 그녀도 충분히 인정하지 않을까?)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09. 10. 15. 06:41

"여행" 같은 책이 있다.
누구도 동반하지 않고 떠나는
혼자만의 짧은 여행같은 그런 책.



"요시모토 바나나"
열대 지방에서만 피는 붉은 바나나 꽃을 너무나 좋아해서
"바나나"라는 pan name을 만든 그녀
그리고 느긋하게 몽환적이며
부도덕적이게도 아름다운(?) 소설
무지개



눈부신 햇살과 새하얀 모래,
투명한 바다와 레몬색 상어
그리고 아내가 있는 한 남자에 대해
처음부터 하나하나 천천히
그러나 집요하게 생각하는
한 여자의 감정의 기록.
타이티섬와 동경(東京)
그 생경한 국적(?) 안에서 길을 찾아가는
그녀의 감성과 내면의 언어들.



고갱을 생각하게 하는 화려한 색채의 그림들.
그런데 어쩐지 그림 속 그녀들의 표정과 입매는
사뭇 비밀스럽다.
그럼에도 감추고 있는 것을 너무나 강렬하게 말하고 싶어하는 욕망의 눈빛
문득, 그 이야기를 전부 들어주고 싶어진다...



뜨거운 이국의 햇살 아래
차가운 열정을 만나는 느낌이라고 할까?
다 읽고 나면 나른해지는 자신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 두 사람,
불륜일지라도 왠지 인정해주고 싶어진다.
참 위험한 마음의 고백...



그런 사람이 있다.
죽어가는 식물에게 선명한 생명의 색을 돌려주고
무관심으로 거칠어진 동물의 털에 반짝반짝 윤기를 주는 사람
그리고 그런 작은 생기들로
은밀하게 대화를 주고 받는 사람.
죽어가는 생명들에게 조금씩 조금씩, 그러나 눈치 챌 수 있게 생명을 불어넣는 사람
정말 그럴수도 있겠구나 인정하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 대화를 나눌 수도 있고
이런 방식으로 사랑을 키워갈 수도 있겠구나...
그래서 결국 단념을 확신하기 위한 떠난 여행에서
오히려 더 큰 확신을 가지고 다시 돌아가는 사람도 있겠구나.
그리고 돌아오길 바라는 기다리는 마음도 있겠구나...



불륜을 미화하려는 동의의 표현은 아니지만
이 소설의 결말이 내겐 다행스럽고도 동시에 위험하게 다가온다.
그래도 여행 속에서 얻은 마음이기에
조금은 이해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 책,
끈질기게 몽환적이다.
다 읽어버린 지금쯤은
꿈에서 깨어나야 하는건가?

이렇게 차갑게 관능적일수도 있구나...
열대의 뜨거운 햇빛,
반짝이는 에메랄드 물빛 속에서
내 몸 구석구석도 레몬빛 관능으로 느리게 헤엄치고 싶다.
파라다이스를 향한 차가운 열정으로...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