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끄적 끄적...2013. 4. 3. 08:48

어제 비가 내린 후에 집 앞 가로수 벗꽃잎이 벙글어졌다.

아마도 조만간에 팝콘 떠지듯 황홀한 분홍 꽃잎을 떠트릴 것 같다.

진해는 군항제가 시작됐다는 것도 같고.

출퇴근 할 때마다 관찰일기를 쓰는 사람처럼 벗나무 아래서 한참을 서성이게 된다.

이제 며칠 후면 이 곳을 지나가는 발걸음이 아주 많이 느려지겠구나...

언제나 그 길은,

차라리 꿈 같았다.

나는 10시 넘은 퇴근길에도 차마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 꿈길을 끊임없이 걷고 또 걷는다.

그건 일종의 몽유이고 촌곤이고 나른이고 생동감이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그 길 위를 느리게 걷고 있으면서도

항상 그 길은 끝없는 아쉬움이다.

집으로 들어가는 마음과 발걸음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곳에 남겨둔다.

심정적인 그러나 너무나 완벽한 육체이탈.

몸은 이곳에 있지만 동시에 내 진심은 여전히 그 길 위에 있다.

내일 아침 출근길에 반갑게 해후할 것을 기대하면서...

어제 처음으로 퇴근길에 한기(寒期)를 못느꼈다.

오는구나!

그렇게 너는...

 

시간들이 아깝다.

일부러라도 잠을 더 줄어야 하나 혼자 고민중이다.

주변에서 미쳤단다.

지금도 결코 많이 자는 게 아니라고...

긍정을 하면서도 시간이 너무 아깝다.

김난도 교수의 "인생시계" 초침에도 무감했는데 이상하다.

게다가 이건 분명 나이듬에 대한 집착이나 불안감 때문도 아니다.

좋았던 순간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다시 과거의 나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건 답이 아닐테니까.

춘곤같은 생각들 때문인지 요며칠은 유난히 정성들여 운동을 했다.

살을 빼겠다거나 몸매를 근사하게 만들겠다는 희망이 솟은 건 아니다.

그냥 좀 단단해지고 싶었다..

어쩌면 나는 지금 돌탑을 쌓듯 조금씩 단단해지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차곡차곡 쌓이는 우울과 조울의 견고함이 때론 아무렇지 않게 느껴질만큼 나는 덤덤해졌다.

그래선가?

덤덤이 단단으로 바뀔 수 있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어쨌든 지금은...

 

사막   - 오르텅스 블루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요즘 마음에 담겨있는 시다.

짧지만 절실하고 간절하고 정직한 시.

때론 나는 머리만 있고 몸이 없는 ghost 처럼 살 때가 있다.

그런데 이 시를 보고 있으면,

정직하게 흔들리고 아주 깨끗하게 상처받고 싶다.

비록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수면 위를 걷어야만 한데도...

침몰하는 동안은, 추락하는 동안은 아무렇지 않다.

언제나 그 다음이 문제다.

바닥에 닿은 그 순간이!

 

난데없이 하얀 눈길이 끝없는 사막처럼 펼쳐진다.

그리고 뒤돌아서서 걷고 있는 내가 보인다.

발.자.국.들.

유일한 동반자가 남긴 자국을 지켜본다.

조금만 더.

덤덤하게 단단해지자!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10. 11. 10. 15:25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 다섯 가지> - 오츠 슈이치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

사실 저는 이런 노골적인 제목의 책들은 거의 안 보는 편입니다.
얼마 전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그리고 영 못마땅하지만 어쨌든 지금까지도 꾸준히 유행하고 있는 “죽기 전에 OO해야 하는 OO가지”의 시리즈의 일환이라고 생각했죠.
그런 책들은 솔직히 “~카더라” 통신과 똑같이 별로 써먹을 데도 없고, 신빙성은 더더욱 없는 일부 선택된 자들의 배부른 취미 생활을 떠올리게 해 불쾌한 감정까지 갖게 됩니다.
뭐, 지들한테 좋았던 게 나한테까지 굳이 좋아 죽겠는게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제발이지 나도 죽기 전에 그 좋다는 곳 다 다녀보고, 그 맛잇다는 거 다 먹어보게 돈벼락이나 떨어지면 좋겠다는 시비조의 불평만 갖게 하는 소위 저에겐 지극히 불건전한 부류에 속하는 책이죠.
그런 제가 이 책을 손에 잡은 건,
순전히 표지에 있는 사진 한 장 때문이었습니다.
사막과 하늘에 남겨져 있는 흔적들이 제 눈을 파고들었죠.
긴 발자국이 찍혀 있는 저 사막은 건조하거나 메마른 사막이 아니었습니다. 저 마른 땅 바로 가까이에 물기가 느껴지는, 그러니까 생명력이 느껴지는 사막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 파란 하늘에 떠 있는 하얀 구름들. 그런데 그 구름의 끝도 자세히 보면 물기를 머금고 있네요.
사막 위의 발자국의 방향을 보면 누군가 그곳을 방금 떠나갔다는 걸 알게 됩니다. 뜨거운 사막의 모래바람도 그 발자국을 지워내지 못했네요.
이 사진 한 장이 이 책의 내용 전부를 저에게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그 순간 더 이상 “~카더라” 통신으로만 취급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이 책은.
그러니까 생명을 가진 누군가가 이제 금방 비가 쏟아질 그곳으로 향하면서 남긴 흔적들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 흔적을 기꺼이 읽기 위해 책장을 넘깁니다.
 
글을 쓴 오츠 슈이치는 말기 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완화 의료(호스피스) 전문의입니다.
일본 최연소 호스피스 전문의였던 그는 현재 도쿄 마츠바라 얼번클리닉에서 말기 환자를 돌보면서 저술, 강연 활동을 하면서 완화의료 및 존엄한 죽음을 함께 나누고 있다고 하네요.
어느 날, 병실 침대에 누워 죽음을 앞두고 있는 환자가 조심스럽게 묻습니다.
"선생님도 무언가를 후회한 적이 있나요?"
그는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천 명이 넘는 환자를 떠나보내면서 "후회"에 관한 질문을 얼마나 많이 받았던가!’
환자에게 남은 시간은 며칠 혹은 길어야 몇 주일이 고작입니다.
그들의 몸은 이미 자유롭지 못합니다. 마음대로 걸어 다닐 수도 없고 낮에도 깨어 있는 시간보다 잠들어 있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암 말기에 흔히 나타나는 체력 저하를 수면으로 보충하려는 현상 때문에...
이 시기가 오게 되면 사람들의 몸과 마음은 물론 이성적인 판단까지도 혼미해집니다. 그런 그들이 지금 하는 후회가 인생에서 미루고 미루던 숙제 탓이라면 그 후회는 스스로의 가슴을 더욱 깊이 후벼 팔 것입니다.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고백하는 사람들의 곁에서 오츠 슈이치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말합니다.
"무엇을 가장 후회하시나요?"
그들은 천천히 입을 열어 자신들의 후회를 하나하나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 후회들은 이렇게 이곳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덜컥 겁이 납니다.
지금도 이 책의 내용을 이렇게 많이 인정하고 공감하고 있는데 죽음을 앞에 둔 나중의 시간에 나는 얼마나 많은 후회로 더 가슴을 치게 될까가 생각나서 말이죠.

첫 번째 후회,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했더라면
두 번째 후회,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했더라면
세 번째 후회, 조금만 더 겸손했더라면
네 번째 후회, 친절을 베풀었더라면
다섯 번째 후회,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여섯 번째 후회,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려고 노력했더라면
일곱 번째 후회,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더라면
여덟 번째 후회,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났더라면
아홉 번째 후회, 기억에 남는 연애를 했더라면
열 번째 후회, 죽도록 일만 하지 않았더라면
열한 번째 후회, 가고 싶은 곳으로 여행을 떠났더라면
열두 번째 후회, 내가 살아온 증거를 남겨두었더라면
열세 번째 후회, 삶과 죽음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했더라면
열네 번째 후회, 고향을 찾아가보았더라면
열다섯 번째 후회, 맛있는 음식을 많이 맛보았더라면
열여섯 번째 후회, 결혼을 했더라면
열일곱 번째 후회, 자식이 있었더라면
열여덟 번째 후회, 자식을 혼인시켰더라면
열아홉 번째 후회, 유산을 미리 염두에 두었더라면
스무 번째 후회, 내 장례식을 생각했더라면
스물한 번째 후회, 건강을 소중히 여겼더라면
스물두 번째 후회, 좀 더 일찍 담배를 끊었더라면
스물세 번째 후회, 건강할 때 마지막 의사를 밝혔더라면
스물네 번째 후회, 치료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했더라면
스물다섯 번째 후회, 신의 가르침을 알았더라면

스물다섯 가지의 후회들.
어쩌면 하나 같이 제 등을 쳐대는 것들 뿐이던지...
세세한 내용을 읽기도 전에 스물다섯 가지의 제목만으로도 덜컹 덜컹 가슴이 내려앉았습니다.
후회라니...
늘 하고 또 하고 있는 그 후회, 후회하는 걸 또 다시 후회하면서 그래도 또 후회하게 되는. 제 모습들에 또박또박 제목을 달아놓은 것만 같아 당황스러운 부분이 한둘이 아닙니다.
그렇게 잔인하면서도 그만큼 선한고 솔직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책.
그리고 책 속에 담겨있는 사진들.
그 흑백의 사진들은 그리 멀지 않았던 과거의 우리나라 사람들의 모습들로 가득합니다.
일본인이 쓴 글에 우리나라 사진이라니, 순간 화들짝 놀랐습니다.
출판사가 각 나라 별로 사진 편집을 다시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오래전 가물가물해진 기억들이 하나씩 들춰지는 기분입니다.
그러지 않았을까요?
죽음을 앞에 둔 그들도 자신의 과거를 조용히 하나씩 흑백사진처럼 반추하면서 하지 못한 뭔가를 조용히 털어놨는지도, 그리고는 조금씩 가벼워 졌는지도...
1000여 명의 사람들을 떠나보내면서 작가는 말합니다.
“죄를 반성할지언정 자책하지는 말자!”고.
지나친 죄책감은 자신을 파괴할 뿐이라고 말이죠. 단지 인간으로서 넘지 말아야할 선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도 나약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단순히 형벌 때문이 아니라, 죄를 범했다는 죄책감이 자기 자신을 공포의 구렁텅이에 빠뜨릴 것이라고요.
아직 어린 나이였을 때,
저는 삶이 “소풍”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아마도 그쯤에 읽은 천상병의 “귀천(歸天)”이라는 시가 가슴에 담겨버려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시의 구절처럼 “죽음”이라는 삶의 최후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로 만들자 그랬더랬는데...
어느새 제는 후회 하나를 또 추가하고 있네요.
아름답죠? 이 세상.
아름다운 것도, 미운 것도 다 내 것으로 만들어 가면서 살아가야 하는데...
그래야 아름다운 소풍 끝나는 날,
하늘로 돌아가 아름다웠노라 말하면서 추억할 수 있을 텐데 말이죠.
후회와 추억.
내 발목 잡는 아득한 꿈이 이만큼 다가옵니다.

귀천(歸天) -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9. 20. 06:37

작가 김주영(71)이 올해로 등단 40년을 맞았다,
칠순을 넘긴 노작가는 그러나 여전히 왕성하다.
<멸치> 이후 8년만에 새롭게 쓴 장편소설 <빈집>을 보며
허랑한 바람앞에 서있는 인간이 다시 떠올랐다.
왠지 허깨비같은 사람들.
장터같은 너저분한 마당에는 그러나 치열한 삶의 기운같은 것이 느껴진다.
한 편으론 바짝 마른 나뭇잎 한 장을 손에 들고 있는 것 같다.
조금만 힘을 줘도 그대로 부서져 버릴 것 같아 들고 있는 두 손은 점점 난감해진다.
"...... 내 안에 터질 듯이 더부룩한 탐욕이 있다. 그것이 나를 천성적인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 내 일생이 소멸될 때까지 이 탐욕과 껴안고 엎치락뒤치락하는 가늠은 계속될 것 같다."
<객주>, <활빈도>, <천둥소리>,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 <화척>, <홍어>, <멸치>, <아라리 난장>
숱한 장편을 쏟아낸 작가에게 아직 겨안고 엎치락뒤차락할 탐욕이 많다는 것은
순전한 독자에겐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의 글을 읽는 건,
펄떡이는 날 것을 바라보는 비릿한 생동감이다.
<빈집>의 처음 장면인 털게의 탈출처럼...
...... 바다를 떠난 지가 도대체 얼마나 되었을가. 기력도 소진되었을 뿐만 아니라, 몰골조차 쪼그라든 게들이 물사레에 떠밀리며 마지못해 수족관 속을 떠다니고 있었다......
그의 글은 고요하게 기습적이다. 
내리쬐는 탱볕 속에 딱 한 방울의 물방울이 이제 막 바짝 마른 흙바닥으로 떨어지려는 중이다.



1998년 발표한 전작 <홍어>에서는 아버지가,
2002년 발표한 <멸치>에서는 어머니가 집을 비웠다.
급기야 <빈집>에서는 도박판을 쫒아 집을 비운 아버지를 찾으러 어머니마저 수시로 집을 비운다.
가족이지만 모여살지 못하는 사람들.
그러나 그 부재는 다름 아닌 가족의 누군가를 찾아나서기 위한,
혹은 가족을 지켜내기 위한 부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정말 가족은 울타리 안에 곱게 지켜졌던가?
책을 읽는 눈길이 가파르고 숨차다.
놀음판의 타짜, 그래서 늘 집을 비우는 아버지,
그 스트레스로 딸을 구박하다가 본인도 집을 나가는 재취 어머니,
빈집에 홀로 남은 어린 딸 어진.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의 영원한 가출은 결국 어진이 홀로 지키던 빈집마저 내주게 만든다.
쫓기듯 한 결혼생활.
벌레 취급하듯 자신의 존재를 혐오하는 남편과 시어머니를 피해 외딴집을 도망친 어진은
그 옛날 아버지가 오동나무에 묻어둔 주소지를 찾아 이복언니 수진에게로 간다.
비곗덩어리 안성댁(수진)과 거식증으로 비쩍 마른 검불데기 절름발이 어진.
둘은 아마도 첫눈에 두 사람이 자매간인걸 알아봤으리라.
알면서도 서로 모른척하며 아무렇지 않게 언니, 동생하고 불러대며 말을 섞었으리라.
서로의 근본을 뻔히 알면서
한껏 다정한 이복자매의 모습은
가족의 부재만큼이나 아득하고 안스럽다.
빈집을 빠져나와 또 다시 빈집으로 건너가는 여정들...
그게 삶이었던가?



......내가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것은 아버지로부터 비롯된 어머니의 상처였다. 그래서 어머니와 나의 관계는 감정과 혼란의 파괴로 이루어진 최악의 결합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겉치레뿐인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모든 것이 가능했고 모든 것이 정당화되면서, 결국은 모든 것이 괴멸되어버린 결과를 낳았다......
백수진, 백어진.
두 자매의 어머니는 평생을 서로 숨바꼭질을 하며 지냈다.
한쪽이 한쪽을 피해 도망치면 며칠 안에 어떻게든 귀신같이 알아내고 찾아오는 여자.
그럴수도 있겠구나.
그런 숨바꼭질 속에서 위로를 받을 수도 있었겠구나.
결국 책을 읽고 있는 나까지도 그 관계 속에 위로받고 있다.
.... 엄마는 죽기 몇 년 전까지 줄곧 그 여자하고 술래잡기를 한 거야. 엄마가 사고무친한 객지를 떠돌면서 살았지만, 무엇하나 엄마를 흥분시키는 일이 있었겠어? .... 그 여자하고 숨바꼭질하는 흥분도 없었다면, 우리 엄마 살맛이 없었을 거야. 우리 엄마 행복했던 때가 있었다면 그 여자한테 쫒겨다니면서 이사하고 살았을 때야. 이번에는 그 여자가 며칠 만에 집을 찾아낼까 긴장하면서 기다렸겠지. 나도 그 속내를 엄마 죽은 다음에야 깨달았지. 그 숨바꼭질이 그나마 폐병 앓앗던 우리 엄마를 예순 살까지 살 수 있도록 생명을 연장시켜준거야.....
......엄마가 참고 또 참았던 건 외로웠기 때문이야. 그런데 외로움을 타고 있기는 그 여자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엄마는 하고 있었던 거야.... 미친년처럼 남편을 찾아 안가는 곳이 없었을 만큼 설레발치고 나섰던 그 여자도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외로웠다는 것을 엄마는 알고 있었던 거지.
이 세상에 나 빼놓고 엄마에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은 그 여자 딱 한 사람뿐이었다면 이해가 돼?......

나는 대답한다.
그래, 이제 이해할 수 있노라고.
모든 것을 놓듯 떠난 이복자매 두 사람만의 여행길.
수진은 방파제 앞에 푸른 재킷을 벗어놓고 사라졌다.
어진은 생각한다.
...... 방파제 앞에 끝간데없이 펼쳐진 곳을 바다로 생각했다면, 신발을 벗어놓았을 텐데, 태양이 작열하는 뜨거운 사막으로 알았기에 껴입고 다녔던 재킷을 벗어놓고 떠난 것이었다. 이제 사막으로 떠난 수진이 언니처럼 바다 끝에 서 있는 나 어진이 역시 온전히 혼자가 된 것이다......

파도같은 설움이 울컥 밀려온다.
사막의 냄새가 이럴까?
비릿하고 짭조름하다.
산다는 건,
늘 듬성듬성한 빈집으로 겅중겅중 뛰는 뜀뛰기같다.
손끝으로 푸른 사막의 비릿내가 진동한다.
어진이는 아마도 또 어딘가 빈집 속에서 오동나무 둥지같은 똬리를 들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제야 온 가족이 모이려나...
아득한 먼 길.
굽이굽이 돌아 이제 다시 모이려나...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5. 24. 05:55

기간 : 2010.05.19 ~ 2010.05.23
장소 : 대학로 예술극장 소극장
극본 : 지경화
연출 : 채승훈
극단 : 창파
출연 : 남명렬, 김호정, 민경진, 이명호



제 31회 2010 서울연극제 참가작 8편 중에 
피날레을 장식하는(?) 작품이었던 연극 <옥수수밭에 누워있는 연인>
극본과 연출자는 낯설었지만
든든한 출연진만으로도 "must see" 목록에 포함시켰던 작품이다.
그런데 연극을 보고 난 후의 이 복잡하고 심란하고 불편한 감정들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공연장을 나서면서 "이제 살았구나..." 하는 안도감에
저절로 숨이 깊어진다.
참 막막하고 어려운 작품이구나...
그래도 정말 다행스러운 것은,
공연장에서 이해하지 못하고 앉아 있었던 찌질이가
결코 나 혼자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이 아주 큰 위로가 된다.




안개가 짙게 깔린 듯 운명적이며, 미스터리 하며, 원초적이며,
잔혹하며, 그로테스크하다!!

현실보다 잔혹한 환상, 환상보다 짜릿한 상상...

연극의 메인 헤드라잇은 이렇게 거하고 완강했다.
뒷북이긴 했지만 뒤늦게 시놉시스를 찾아봤다.
(시놉시스... 대략 참 난감하게 줄거리를 전해준다
 이것은 말을 한 것도, 말을 안 한 것도 아니여~~)

<시놉시스>
시와 도시의 경계에 선 어느 허름한 집. 여명이 어슴푸레한 새벽 그 집엔 이선(김호정)과 한보(남명렬)가 있다. 그들은 무언가로부터 도망친 듯 불안하고 초조하다. 지금 그들은 일종의 모의를 하고 있다. 이선의 아버지(한영:남명렬)로부터 거액의 돈을 타내기 위한 모략. 과연 그들은 아침을 맞아 그들의 계산대로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을까 그들은 걱정된다. 현실의 고통과 존재하지 않는 이상이 억울하다. 마치 거인의 걸음과도 같은 파열음이 들리고 한보는 이선을 집에 남겨둔 채 밖으로 뛰쳐나간다. 그리고 얼마 뒤 낯선 부자(父子)가 집에 들어선다. 이들 부자 역시 평범한 일상의 인물들과는 거리가 멀다. 마치 마음과 육체의 고통들이 당장의 그것들을 넘어 형이상학적인 쾌락이 된 듯하다. 그리고 아버지(민경진)는 죽는다. 이선과 아들(이명호)만 남았다. 그들은 다르지만 또 닮기도 하다. 그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들을 이야기한다. 그때 한영이 찾아오고 한영은 총을 쏴 아들을 맞힌다. 마치 사냥꾼의 행동과도 같이. 그 사냥꾼은 바로 이선의 아버지다. 이선과 한영은 그러나 너무나 먼 거리에 있어 볼 수 없는 것처럼 서로에게 외롭다. 오늘로 인생의 마지막을 장식하려는 듯 집에 남은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비극적 통로로 자신을 몰아넣기 시작한다.



처음에 나는 맨발로 등장하는 이선(김호정)과 아들(이명호)은
이미 죽은 사람들, 즉 "귀신들"이라고 생각했다.
한보(남명렬)가 느끼는 추위와 두려움을 이선은 전혀 느끼지 않았고
오히려  어느 면에서는 편안해 보이고 심지어는 그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모든 상황를 스스로 만들어낸 창조자가 
자신의 뜻데로 모든 게 이루어지는 걸 지켜보며 즐거워하는 묘한 관음의 시선같아 보였다.
(핀셋에 꽃혀있는 아직 살아있는 나비 표본을 바라보는 수집가의 섬뜩함이랄까?)
창백한 얼굴에 베낭을 메고 등장하는 아들은,
늙은 아버지를 졸졸 따라다니며
끊임없이 투정과 떼를 쓰는 비정상적으로 유아적인 인물이다.
불안한 시선과 페티즘을 떠올리게 하는 베낭에 가득한 여자 신발들.
그러니까  여자의 아버지 한영(남명렬)과 남자의 아버지(민경진)은
이 두 귀신들에 의해 상징적으로 죽은 존재들이며
이미 죽은  두 사람의 환상 속에만 살아있는 인물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결국은 그 환상 속 인물들과의 관계마저도
끝장을 내고 끊어버리게 되는 그런...



지금 가만히 되집어 생각해도 극의 내용은 집요하게 어렵고 표현은 찬란하게 수사적이다.
인간의 자유 의지와 숙명과의 갈등을
나비와 사막이라는 단어 속에 마구마구 구겨넣고
참을성있게 앉아있는 관객에게 일방통행적인 이해와 공감을 끊임없이 
그것도 지나치게 강요하는 것 같다.
그 강요는 심지어 거의 무차별적으로 쏟아붓는 폭력처럼 어이없이 일방적이다.
이쯤되면,
작품의 이해 여부를 떠나서
그대로 수건을 던지고 링위에 뻗어버리는 편이 어쩌면 훨씬 나은 선택이 될 것 같다.
무차별 폭력의 뒤끝은 아직까지도 불편하고 내내 찜찜하다.

"도대체 나는 왜,
 일방적으로 그렇게 얻어터지고 있어야만 했는가?"
(혹시 나 지금 K-1 본거니???)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09. 6. 7. 12:42
누구나 한번쯤 읽었던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퍼온 글.
그냥 예전 생각이 나서 미소가 잠시 머물기도..
당신은,
여기서 몇 가지를 기억할 수 있나요?
그냥 궁금해서.... ^^
==================================================================================================


 

"내 비밀은 이런 거야. 매우 간단한 거지.
오로지 마음으로 보아야만 정확하게 볼 수 있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법이야."


 


 

"네 장미꽃을 그렇게 소중하게 만든 것은, 
그 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시간이란다." 
"내가 나의 장미꽃을 위해 소비한 시간이라..." 
잘 기억하기 위해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러나 네가 나를 기르고 길들이면 우린 서로 떨어질 수 없게 돼.
넌 나에게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사람이 되고 난 너에게 둘도없는 친구가 될테니까."


 


 

"나를 길들여줘...
가령 오후 4시네 네가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거야
...

그러나 만일,
네가 무턱대고 아무때나 찾아오면
난 언제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야할지 모르니까..."


 


 

 "나는 해 지는 풍경이 좋아.
우리 해지는 구경하러 가..."

"그렇지만 기다려야 해."
"뭘 기다려?"
"해가 지길 기다려야 한단 말이야."


 


 

사막은 아름다와.
사막이 아름다운건

어디엔가 우물이 숨어있기 때문이야.
눈으로는 찾을 수 없어, 마음으로 찾아야 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일이 뭔지아니?"
"흠... 글쎄요. 돈버는일? 밥먹는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일이란다.
각각의 얼굴만큼 다양한 각양각색의 마음을...
순간에도 수만가지의 생각이 떠오르는데
그 바람같은 마음이 머물게 한다는건 정말 어려운거란다."


 


 

"지금은 슬프겠지만
그 슬픔이 가시고 나면(슬픔은 가시는 거니까)
넌 언제까지나 내 동무로 있을거고,
나와 함께 웃고 싶어 질꺼야."


 


 

"사람들은 이 진리를 잊어버렸어."
여우가 말했다.
"하지만 넌 그것을 잊어서는 안돼.
넌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언제까지나 책임을 지어야 하는 거야.
넌 네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어..."

"난 나의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어."

잘 기억하기 위해 어린 왕자가 되뇌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결코 열어주지 않는 문을...
당신에게만 열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 말로... 당신의 진정한 친구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09. 1. 5. 23:15
 

o 자유는 막막한 대지처럼 광활했으며 빛과 같이 아름답고 잔인하며 눈물처럼 감미로웠다.

o  매일 첫 새벽에 자유로운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자가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은 그 곳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길을 떠났다. 마치 꿈 속에서처럼 그들은 사리진 것이다.

o 눈 속에 스쳐가는 추위

o 그의 목소리는 눈꺼풀 위로 무겁게 내려 앉아 몸속에 잠이 서서히 차오른다.

o 바다는 짙고 난폭하다.

o 공기마저 잔뜩 찌푸리고 있는 것 같다.

o 바람이 데리고 간 사람들

o 등대 불빛들이 붓처럼 바다 위를 쓸고 지나간다.

o 그는 불행에 있어서는 이방인이다.

o 햇살의 불길은 건조하여 모든 것을 자루로 만든다.

o 빛은 물소리를 낸다.

o 주어지지 않은 모든 것, 따라가지 못할 모든 것에 대한 굶주림.

o 그녀의 시선이 그들 위로 지나가면 모든 것이 지워지고 침묵하며 사막처럼 변한다.

o 사소한 상처로 사람들이 죽어갈 땅

o 고통은 그 무엇보다도 강하며 모든 것을 지워버리고 비워버린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8. 12. 15. 06:11
 

<사막> - 르 클레지오


 사막

 


르 클레지오

요즘 제 마음을 완벽히 사로잡은 작가입니다.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처럼 제게 또 다른 환상과 신비주의를 선사한 사람이죠.

작가에 대해서는 달동네 책거리 41편에서 소개해서 여기서는 생략하고 바로 제가 만난 환상 속으로 안내할께요(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책 속에서 우리는 두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누르와 랄라.

이야기는 이 두 사람의 이야기가 번갈아 가며서 진행됩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아프리카 청색인간의 후예 “랄라”와 20세기 초 서구문명(기독교인)에 의해 삶의 터를 점령당하면서 뜨거운 사막으로 끝없는 유랑길에 오른 소년 '누르'의 이야기...

번갈아 가며 서술되고 있는 이 두 이야기는 서로 관련이 없는 듯 보이기도 하고, 마치 동일한 인물이 단지 시대를 바꿔 등장해 구도자적인 길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 둘의 시선은 심지어 마치 일란성 쌍둥이같이 느껴집니다.)

이 책은 그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절판된 책이었는데 노벨문학상 수상하면서 새로운 번역가에 의해 다시 출판하게 됐다고 하네요.

이 사람...

잃어버린 문화에 대한 절절한 굶주림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문화적 허기를 문학적 성찬으로 변모시켰다고나 할까요???

책을 읽고 있으면 가슴까지 차오르는 풍요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허기를 안고 끝없이 이어지는 뜨거운 사막 위를 맨발로 걸어가면서도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다니...(이런 게 정말 신비주의 아닌가요!!!)


로드 무비라는 장르의 영화가 있쟎아요.

이 책도 읽고 있으면 눈앞으로 하얀 스크린이 펼쳐지는 느낌입니다.

집중해서 읽다보면 책을 읽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어떤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다고 느껴질만큼 생생합니다.

주인공들의 감정이 그대로 전달되죠.

사막 안에서 지도자를 잃고 뿔뿔이 흩어지는 민족을 바라보게 되는 누르의 아픈 시선이나 프랑스에서 우연한 기회로 하와라는 유명 모델이 된 랄라의 공허한 시선까지 그대로 따라갈 수 있습니다.

사막을 떠나왔지만 늘 사막의 뜨거운 태양을 갈구하는 랄라에겐 도시인에게선 느낄 수 없는 묘한 분위기와 생명력, 그리고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하와”라는 유명 모델이 된 청색인간의 후예 “랄라”가 도시에서 온 몸으로 발산하는 사막의 강렬함은 결국 그녀를 랄라의 태생지로 돌아오게 만듭니다.

처음 그 곳을 떠나왔을 때의 모습 그대로 맨 발에 누더기 같은 옷을 입고 말이죠.

사막에 도착한 그녀는 이른 새벽 홀로 바닷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청색인간의 후예를 잉태합니다.

랄라가 탄생시킨 생명은 어쩌면 “자연”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파괴와 재건을 반복하며, 진보든 퇴보든 어쨌든 걸어가는 자연.

그리고 그 안의 파괴자는 문명이라고 불리어 지는 우리 자신이구요.

<신>을 잃은 우리는 어쩌면 현실을 사막화하여 이렇게 계속 헤매고 있는 건지도 혹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린 태양이 얼마나 더 뜨거워야 알게 될까요?


...... “자유로 가는 길은 끝이 없었다. 자유는 막막한 대지처럼 광활했으며 빛과 같이 아름답고 잔인하며 눈물처럼 감미로웠다. 매일 첫 새벽에 자유로운 사람들은, 그들의 거주지를 향해 남쪽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자가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은 그곳으로 돌아갔다......


당신은 지금 모래와 하늘, 물처럼 흐르는 바람만 존재하는 막막한 사막 위에 서 있습니다.

느껴지나요?

또 다른 존재가 그 눈으로 이 세상을 쳐다보고 있는 걸...

storytelling..,

그 시선 속에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