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끄적 끄적...2010. 5. 28. 09:04
"서울"은 조선 초기에 철저한 계획 도시로 만들어졌다.
옛 지도를 보면,
서울은 오행사상, 풍수지리사상, 유교사상이 결합된 도시다.
그리고 경복궁은 풍수지리학상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중심에 해당하는 전형적인 명당자리다.
- 배산 : 주산은 백악산(북악산), 안산은 목멱산(남산), 좌청룡으로 타락산(낙산), 우백호로는 인왕산.
- 임수 : 청계천, 한강

 


오행사상은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기본 도리를 뜻하는 것으로
중심에 "경복궁"인 "신(信)"을 두고 인의예지(仁義禮智)가 둘러싸고 있다.


                                                   北 (水, 冬, 黑. 智. 玄武)

                                                                   ㅣ

(木, 春, 靑, 仁, 靑龍)      ㅡ       中 (土, 黃, 信)        ㅡ       西 (金, 秋, 白, 義, 白虎)
                                                                  경복궁
                                                                
                                                                   ㅣ
                                                   (火, 夏, 赤, 禮. 朱雀)

 

서울 도심 사대문의 이름도 소학에서 따온 "인의예지신"를 넣어 오행의 방위에 맞게 명명했다.
동쪽은 "인"을 넣어 홍인지문, 서쪽은 "의"를 넣어 돈의문, 북쪽은 "지(知)"를 정(精)으로 고쳐 숙정문,
남쪽은 "예"를 넣어 숭례문(崇禮文)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중심이 되는 경복궁 가까이에 보신각이 있다.
서울 도성의 4대문과 4소문
- 4대문 : 홍인지문(동대문), 돈의문(서대문, 소실), 숭례문(남대문), 숙정문(북대문)
- 4소문 : 혜화문(동소문), 소의문(서소문, 소실), 광희문(남소문), 창의문(북소문)
서울의 5대 궁
: 경복궁(1395년), 창덕궁(비원 1405년), 창경궁(1483년), 경희궁(1616년), 경운궁(덕수궁 1897년)



                                    <서울의 4대문>

                      숭례문                                                     홍인지문


                           숙정문                                                    돈의문

매년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보신각 종소리.
제야의 종을 33번 치는 이유는 조선 시대에 이른 새벽 사대문 개방과 통행금지 해제를 알리는 타종, 즉 파루를 33번 친 데서 연유된 것이다.
33번의 타종은 우리 민족과 국가는 무력이 아닌, 홍익인간과 광명이세를 근간으로 인, 의, 예, 지로써 백성을 다스리고 교화할 것임을 33천, 즉 우주 전체에 맹세한다는 의미이며 이러한 통치이념을 파루를 칠 때마다 상징직으로 표현했다.


                                                                                                                       <보신각과 종>
서울에 유교사상의 흔적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으로
天은 현재 조선호텔 자리에 있던 "원구단", 地는 사직단(현 사직공원)을 뜻한다.
그외에 조상을 모시는 종묘와 공자를 모시는 문묘도 있다.
종묘에는 역대 왕과 왕비, 추존된 왕과 앙비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드리던 곳으로 정전과 별묘인 영녕전의 35개 신실에 시위 89위를 모시고 있다.
정전에는 조선 제1대 임금인 태조의 신위를 포함해 19실에 신위 49위가 모셔져 있다.


                                종묘                                                      종묘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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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끄적 끄적...2010. 5. 4. 05:52
이권우의 서평집 <죽도록 책만 읽는>이란 책에서 소개된 책이었다.
짧은 소개만으로도 한 번 읽어봐야겠구나 생각했던 책이다.
1071년생.
나와 비슷한 나이를 가진 사람이 쓴 농촌 이야기...
동시대에 태어나고 자랐지만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에 가까운 세계, 농촌.
나는 혹시 이 책장을 펼치면서
양촌리 전원일기의 인자한 김회장이나 수다스런 일용엄니를 만나게 될거라고 기대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 속엔 양촌리 "전원일기" 같은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양촌리 김회장은 진정한 현실에서는 없는 것처럼...
모내기 블루스  / 노래를 못하면 아, 미운 사람 / 윷을 던져라 / 언론낙서백일장
서점, 네시 / 당구장 십이시 / 서울, 눈 거의 내리지 않음 / 열쇠가 없는 사람들 / 배신
9편의 단편들은 하나 같이 구질구질하고 그리고 심지어는 조금씩 불쾌하기까지 하다.
마치 막걸리에 불콰하게 취한 사람이 바로 옆에서 쉰내 나는 트름을 연거푸 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러나 그 불쾌함은 피폐된 농촌 현실과의 적나라한 조우에서 오는 불쾌함이기도 하다.
어차피 매일 한술의 밥을 입 안에 밀어넣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건 다 마찬가진데...
"유전무죄, 무전유죄"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이 말이
이제는 농촌의 실정과 딱 맞아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깔깔한 쌀을 씹듯 씁쓸하다.
입 안에 쌀을 넣을 쌀을 위해 사는 사람이
그 쌀을 키우는 사람에게 이런 측은하고 가여운 마음을 갖게 된다는 게
어쩐지 영 불편하고 송구스럽다.



재미있는 소설이지만 그냥 재미만으로 읽고 넘어가기에
묵직한 대목들이 너무 많다.
웃고 있지만 웃는 게 아닌 현실을 목격해야 하기에...
읽는 동안 박장대소를 하긴 하지만 어쩐지 뒤가 구려 자꾸 멈칫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내가 이렇게 만들었냐?"하며 대거리를 하고 싶어지지만
사실을 따지자면 내가 안 그런 것도 아니니까 할 말이 더 없다.
잰장!
대놓고 훈계하는 소설보다 이런 글을 읽을 때가 더 바늘방석같다.
엉덩이를 지나 온 몸이 따끔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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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도 인터넷으로 고객관리하는 21세기 세상에, 농촌은 이게 뭐래?"
"새천년의 현실이다. 이십일세기는 가는 놈들이 가는 거구, 우리 같은 놈들은 죽기 전에 십구세기를 면할라나도 물러" - 모내기 블루스

한탕주의란 어떤 사조를 가리키는가.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했던 사상. 민주주의보다도, 마르크스주의보다도, 자본주의보다도, 그 어떤 사상보다도 위대했던 사상. 그러나 그 누구도 사상으로 인정하지 않은 사상, 엄연히 확실히 핵폭탄 급수의 장악력으로 늘 존재하면서도 존재를 인정받지 못했던 사상, 하지만 거의 누구에게나 있는 사상, 지극히 간단히 말해서, 말 그대로 한탕해서 모든 것을 만회하거나, 혹은 이후의 모든 것을 마련하자는 사상. - 언론낙서백일장

...... 3차 과정은 지극지긋했던 '학교 다니기'였다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 도합 16년 동안 학교 다니기 훈련을 받았다네. 대학원이나 해외유학이라는 시설을 갖춘 신병 훈련소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었는데, 다행히도, 정말 다행히도, 내가 있던 훈련소에는 재정이 모라자 그런 시설은 없었다네, 물론 내가 있던 훈련소보다도 재정상태가 불량한 훈련소도 있었다네. 거의 드문 경우로는 중학교나 고등학교 시설이 없는 훈련소가 있었고, 흔한 경우로는 대학교 시설이 없는 훈련소가 있었다네.
그리하여 16년에 걸친, 길고 긴 학교 다니기 훈련이 끝나고 드디어 나는 군인의 자격을 얻었는가 싶었다네. 내가 배치될 부대는 어디일까, 설레기도 하면서, 초조하고 불안하기도 하면서 말이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네. 4차 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네
4차 과정은 모든 훈련소가 다같이, 재정에 관계없이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 실시하는 훈련이라는 것을 나는 곧 깨달았다네. 모든 훈련소는 그 훈련과정을 운영하는 데 단 일원의 경비도 투자할 필요가 없었다네. 어느 훈련소의 경우에는 직원들조차 없었다네
살기 훈련, 그것이 4차 과정이었다네. 죽는다는 것이 밥을 먹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면, 산다는 것은 밥을 먹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네. 4차 과정은, 살기, 다시 말해서 밥먹고 견디기였다네. - 당구장 십이시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최선을 다해서 사는 사람들을 신뢰할 수가 없어요. 김지하 선생님의 오적들만큼,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산 놈들이 또 있습니까? 때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산다는 건, 위험합니다. 자신의 최선을 다하는 삶이 때로는 타인에게 억압과 폭력으로 작용할 수 있단 말입니다. 열심히 사는 삶보다, 옳은 방향의 삶이 더 중요하단 말입니다. 옳은 방향의 삶이 아니다 싶을 때는 차라리 열심히 살지 않는 게 낫습니다.

몇 줄의 글로써 살아서 움직이는 사람을 가둬둘 수 잇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글의 오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글은 숙명적으로 사기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버지는 육십평생을 육체노동에 종사해왔는데, 그의 아들은 육체노동이라면 겁부터 내"
대학을 다니지 않았다면, 아버지처럼 농부가 되었을까? 아니다, 아버지처럼 농부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노동한 만큼 대가를 받아야 마땅하다는 자본주의 논리가 가장 안 통하는 곳, 농촌, 그곳에서 아버지처럼 살기는 싫었다.

우리는 서울에서 개겨야 돼. 그게 농촌 출신들의 숙명이야. 대학 나온 우리가 농촌에서 뭘 할 수가 있지? 어떻게서든 서울에서 살아남아야 돼. 우리가 개겨볼 데는 서울밖에 없어. 서울만이 우리에게 관대하지 - 서울, 눈 거의 내리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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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 책거리2009. 9. 8. 05:28
 <내가 가장 예뻤을 때> - 공선옥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작가 공선옥!

얼마전 그녀가 올해 7월에 제 24회 만해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소설집 <나는 죽지 않겠다>, <명랑한 밤길>이 그 수장작이라고 하네요. 제가 그녀의 책으로 처음 읽었던 건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 살>이라는 소설이었습니다. 두 여자의 삶이 어찌나 가슴 짠하던지 그만 덜컥 화가 나기도 했죠. 도대체 왜 나는 그녀의 글을 전적으로 이해하는가? 그리고 전적으로 의지하는가? 어느 날은 속이 상하기까지 했습니다.

1964년 전라남도 곡성 출생....

그녀의 말투가, 하다못해 그녀의 글 속에 나오는 투박한 사투리나 함지박만하게 쏟아내는 푸짐한 욕설들이 그토록 낯설지 않았던 건 “곡성”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네요. “전남 곡성군 삼기면....”으로 시작되는 저의 본적지. 그래서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의 대사나 문체들 그리고 느낌들에서 근원적인 포근함과 따뜻함, 그리고 도망가고 싶은 욕구마저도 느끼게 된 거라는 걸 이제는 이해합니다.

“본적지”라는 이름의 고향!

어쩌면 누군가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단지 서류 속에만 존재하는 아버지의 땅일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언젠가는 한번쯤 돌아보게 되는 그런 곳, 실질적이든 아니면 마음 안에서든 찾게 되는 부모의 땅, 그리고 내 생명의 시작이었던 땅.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이 책을 읽으면서 실제로 살아보지 않은 제 본적지에 대한 희미한 동경에 많이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렇다면 이 책 속에 도대체 뭐가 들어 있었던 걸까요?


이미 위로 딸을 셋이나 둔 집에 네 번째 딸이 태어납니다. 부아가 난 할아버지는 이름을 지어달라는 아들에 말에 한마디 합니다.

"니무랄 것! 암꺼나 허라고 혀!”

그래서 네 번째 딸의 이름은 “암꺼나 혀”의 “해금”이 되어 버렸습니다.

순금, 정금, 영금, 해금 그리고 마지막 5번째 딸 영미(“영미”라는 이름은 내리 다섯의 딸을 낳은 어미가 “금”자에 대해 갖는 마지막 반항이자 일종의 시위였던건 아닐지...)

딸 다섯의 넷째 딸이라니, 그 존재성마저도 너무나 희미한 “마해금” 그녀가 이 책의 서술자입니다. 그녀는 이제 스무 살 무렵을 살고 있는, 그리고 광주라는 대도시가 스무 살인 그녀 삶의 근원지죠.

처음 “광주”라는 지명을 봤을 때, 조심스러웠습니다. 그 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가? 그렇다면 어쩐지 자신이 없을 것 같아서요.... 그러나 다행히 이 책은 그런 제 두려움을 살짝 피해갑니다. 그렇다고 아예 관계가 없는 건 아닙니다. 해금은 광주민주화항쟁 때 공중에서 날아오는 유탄에 친구 경애를 잃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은 그들 친구들에게 분명 어떤 형태로든 변화를 가져오죠.

이제부터 우리는 5명의 여자들과 4명의 남자들. 아직 스무 살인 그들의 지나온 시간들을 정해진 순서 없이 마구잡이로 만나야 합니다.

경애의 갑작스런 죽음에 "세상 사람들은 왜 아무렇지 않지?“라고 반문하며 방황하던 친구 수경은 끝내 저수지에 뛰어 듭니다.

느닷없이 남편이 데리고 들어온 두 번째 마누라를 피해 딸의 자취방으로 찾아든 할머니같은 승희 모친은 추위에 떨며 찾아온 딸의 친구 해금에게 따뜻한 밥을 지어줍니다.

꾸역꾸역 울음과 함께 밥을 넘기는 해금에게 그 어미는 말합니다.

"악아, 우지 마라! 사는 것은 죄가 아닌 게로 우지를 마라!“

그렇게 등을 다독여 주던 승희 어머니는 그 밤, 돌아오지 않는 딸을 내내 기다리며 차디찬 딸의 자취방에서 뇌출혈로 사망을 하고, 그 딸은 그 사실에 충격을 받아 친구들 곁을 떠나 헤매다 배부른 모습으로 어느 날 그들 앞에 다시 나타납니다.

승희에게 마음을 주고 있던 누군가는 방황으로 시간을 보내고,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승희와 승희가 낳은 아들 승춘과 함께 따뜻하게 살고픈 꿈을 키워내고 있습니다.

잘 다니던 대학을 그만 둔 친구 정신은 노동자가 되어 민중 해방의 길로 들어서고, 온 동네 자랑꺼리였던 서울대생 승규 또한 학생운동에 점점 더 깊게 참여하게 됩니다.

누군가 생각합니다.

“꼭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같아...”

그리고 도 누군가는 말합니다.

“아무리 죽을 맛이라지만 죽는 것 보단 낫잖아”


돈이 없다며 월급을 밀려온 사장은 젊은 여자를 끼고 관광호텔을 드나들고, 제 노동의 가치가 무시되고 짓밟히는 세상을 실제로 겪은 만영은 사장의 기름진 얼굴 위로 뜨겁고 기름진 고기 석쇠를 던져버립니다. 와이셔츠 공장에 취직을 한 해금은 상대보다 힘이 세다고, 더 많이 배웠다고, 더 많이 가졌다고, 더 우월하다고 믿는 자들이 부리는 오만과 횡포와 모욕과 폭력과 무례함을 이제 조금씩 경험하게 됩니다.

해금은 언제가 친구 정신이 한 말을 떠올립니다.

“그것들과 맞서기 위해선 우선은 그 오만과 횡포와 모욕과 폭력과 무례함을 견뎌내야 한다고. 모든 오만한 자들이, 모든 무뢰배들이 스스로 부끄러워할 때까지, 견디고 견뎌서, 그 견디는 힘으로 우리가 아름다워지자고. 왜냐하면 모든 추함은 모든 아름다움 앞에선 결국 무릎을 꿇게 되어 있기 때문에.....  오늘, 저 무뢰배의 오만이 횡행할 수 있는 이 야만의 구조, 이 동물적 상황을 나는 견뎌야만 한다고. 저항하기 위해 견딜 것, 아름다워지기 위해 지금은 견뎌야만 한다고....”

구로공단 여공들의 시위.

해금은 자신이 인간이기 위하여. 그리하여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인간의 시간 쪽으로 돌려놓기 위하여 운동장 한가운데로 달려 나갑니다.

유리를 밟아 피투성이에 퉁퉁 부은 발이 된 해금, 얼굴에 피멍이 든 정신은 승규가 붙잡혀 심한 고문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리고 그 승규는 부모에게조차 알리지 못한 체 그대로 군대로 끌려가게 되죠.

보름이면 다가올 아들의 첫휴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승규 모친에게 전해지는 소식.

아들이 군대에서 머리에 총을 쏘고 자살했다는 청천벽력같은 사실.

어미는 내 자식이 그럴리라 없다며 통곡하고 또 통곡합니다.

그 시대, 모든 어미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 통곡은 아마도 그 어미의 모든 일생동안 결코 그치지 않고 이어지리라는 걸 한자리에 모인 친구들 모두 가슴으로 느낍니다.

그들은 생각합니다.

우리는 단지 혹독한 겨울을 견디어내고 있을 뿐이라고.

그들이 가장 예뻤던 때, 스무 살의 겨울 말입니다.


인생에는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온다고 합니다.

“이전”과 “이후‘가 확연히 구분되는 순간 말이죠. 그런 순간은, 예기치 않게 혹은 법칙처럼 결국은 누구에게나 오고야 만다고 합니다.

이 책, <내가 가장 예뻤을 때>가 바로 그 “이전”과 “이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불과 얼만 전에 우리는 “이전”과 “이후”가 구분되는 순간을 지나왔습니다. 어쩌면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 “광주”라는 지명에 그리고 그 때 그곳을 살아내고 지켜왔던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살아낸 “가장 예뻤던 때”에 말이죠.

빚을 진 자에겐 언제나 “의무”가 남습니다.

언젠가 그 빚을 제 힘으로 갚아야 하다는 실질적인 의무 이외에도 꼭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도덕적인 의무까지도요.

당신이 가장 예뻤던 때? 그때를 당신은 기억하고 있습니까?

그때를 지나왔다면, 혹은 아직 지나오지 않았다면 기억하십시오.

그 순간을 어떻게 살아냈느냐에 따라 당신의 빚이 조금은 감면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요.

모른 척 하고 싶다면 당신은 아마도 평생을 도덕적인 빚쟁이로 살아내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치열하게, 당당하게, 그리고 절실하게

견디라고, 지키라고, 이겨내라고... 그리고 살아내라고

이 책 <내가 가장 예뻤던 때>가 말해주네요.

어쩌면 이 책은,

그러니까 “가장 예뻤던 때”를 살아온 그들이 내게 남겨준 화두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가장 예뻤던 때?”
내게는 그때가 과연 언제였을까요?


* 작가 공선옥의 이력이 참 눈물겹네요.
작가가 되기 전 그녀의 직업은 한달 동안 밤낮없이 일을 해야 손에 19만원을 쥘 수 있는 미싱사였다고 합니다. 우연히 동료가 응모해준 소설이 당선돼서 통장에 입금된 60만원의 거금을 보고 그녀는 무척 놀랐다고 하네요.

먼저, 40만원으로 방을 얻고 그 다음으로 밥상을 샀다는 그녀. 늘 밥상 없이 방바닥에 차려놓고 먹던 밥이 내내 서러웠던 거죠. 뜨거운 밥과 찬을 밥상 위에 차려놓고 아이들을 앉혀 놓고 그녀는 그제서야 말했다고 합니다.

“이제야 살 길이 생겼다”고.....

말하자면, 그녀가 쓴 글들은 전부 생존과 결부된 처절한 사투였던 셈입니다.

밥상 위, 한 술 밥의 의미가 문득 처연하게 느껴집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