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6. 11. 18. 08:26

 

<Toc Toc>

 

일시 : 2016.10.13. ~ 2016.11.20.

장소 : 대학로 TOM 2관

극작 : 로랑 바피 (Laurent Baffie)

각색 : 오세혁 / 번역 : 김희재 

연출 : 이햬제 

출연 : 서현철, 최진석 (프레드) / 김진수, 김대종 (벵상) / 정선아, 김아영 (마리) / 이진희, 손지윤 (릴리)

        김지휘, 김영철 (밥) / 정수영(블랑슈)

제작 : (주)연극열전

 

요즘 같은 세상이 계속된다면 나는 차라리 뚜렛증후군 환자이고 싶다.

뉴스를 클릭할때마다 시도 때도 없이 쏫구치는 쌍욕의 욕구는

이쯤되면 쌍욕조차도 아까울 지경이다.

스텐박사를 찾아가 그룹치료든 개별치료든 받아야 할 사람이 수두룩하다.

무의식적으로 걸쭉한 욕이 튀어나오는 뚜렛증후군 프레드,

모든 것을 숫자화해야 하는 계산병 뱅상,

세균과 질병의 공포때문에 타인과 어떠한 신체접촉도 용납하지 못하는 결벽증환자 블랑슈,

외출할 때마다 가스와 수도, 문을 잠궜는지 수 십 번씩 확인하는 확인강박증 마리.

아무리 긴 대화도 꼭 두 번씩 해야만 하는 동어반복증 릴리.

완벽한 좌우대칭에 집착하는 보험설계사 밥은 다니는 회사도 AIA 생명이다.

심지어 선을 밟지 못하는 선공포증 환자.

여섯 명의 대책없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진료실.

원래 집착과 강박이 있는 사람들은

자기와 다른 집착과 강박을 가진 사람들 이해하거나 받아들이는게 쉽지 않다.

왜나햐면,

자기 빼곤 다 비정상같으니까.

쉽지 않는, 아니 곱지 않은 여정이 예상된다.

설상가상으로 어렵게 예약한 스텐박사는

비행기가 문제가 생겨 진료시간까지 못오겠다는 연락을 해온다.

워낙 명성이 자자한 의사라 오랫동안 기다려 겨우 겨우 예약을 했는데...

고민이 시작된다. 

이대로 돌아갈것인가, 아니면 기다릴것인가.

 

2시간이 넘은 공연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아니 지루할 틈이 없다.

코믹연기의 대가 서현철의 능청스러움도 빛을 발했고

모든 배우들이 자신의 역랑을 충분히 발휘해서 보는 내내 유쾌하고 즐거웠다.

그렇다고 한없이 가벼운 극이라고 생각하면 오산!

작품을 보다보면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점점 내가 아닌 타인에게 시선과 촛점이 이동하게 된다.

이즘되면 이 모든 것들을 "건강한 강박"이라 불러도 무방하겠다.

왜냐하면 적어도 이들 여섯명은 그 어렵다는 "주제파악" 하나는 명확히 하고 있으니까.

이젠 별 개 다 부러울 지경이다.

차라리 이렇게 강박증 하나씩 끌어안고 살는게 훨씬 살 만 하겠다.

정말이지 Toc 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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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끄적 끄적...2014. 12. 4. 08:40

<그날들>

일시 : 2014.10.21. ~ 2015.01.18.

장소 : 대학로뮤지컬센터 대극장

대본. 연출 : 장유정

음악감독 : 장소용

안무감독 : 신선호

무술감독 : 서정주

출연 : 유준상, 강태을, 이건명, 최재웅 (차정학)

        김승대, 지창욱, 오종혁, 규현 (박무영)

        김지현, 신다은 (그녀) / 서현철, 이정열 (운영관)

        김산호최지호 (대식) / 박정표, 정순원 (상구)

        김소진, 이진희 (사서), 송상은, 이다연 외

제작 : (주)인사이트 엔터테인먼트 

 

병원에서 올해 송년회로 뮤지컬 <그날들>을 선택했다.

덕분에 이번 시즌 <그날들>을 한 번 더 보게 됐다.

게다가 캐스팅도 지난번 관람했을때와 두 명을 빼고 다 달라서 개인적으론 다행이다 싶었다.

유준상과, 규현은 꽤 많은 뮤지컬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무대에서 보는건 나도 처음이라 기대가 살짝 되더라.

유준상은 초연때무터 이 작품에 대한 애정을 공공연하게 드러냈던 배우고

(기획사 입장에서는 정말 좋은 배우다. 배우가 알아서 홍보를 해주니...)

규현은 슈퍼주니어로서의 입지보다 뮤지컬배우로서의 입지가 훨씬 더 두터운것 같다.

(내가 슈퍼주니어에 대한 너무 몰라서 이런 말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무엇보다 기대되는건 유준상과 규현이 작품 속에서는 또래로 나온다는거!

근런데... 무대 위의 두 사람은 충분히 또래로 보이더라.

유준상은 어린 배우와 상대하면서 일부러 어린척 하지도 않았고

규현 역시도 엄청난 선배님과 연기하면서 전혀 주눅들거나 뒤로 빠지지 않더라.

솔직히 많이 놀랐다.

유준상의 자기관리에도, 규현의 노력에도.

두 사람은, 확실히 배우더라.

그것도 어느 한쪽이 기울지 않고 팽팽하게 균형을 유지하는 멋진 배우.

유준상도, 규현도 개인적으론 재발견이었다.

특히 규현이 기대보다 훨씬 잘 해서 정말 많이 놀랐다.

딕션도 아주 선명했고 연기도 노래도 아주 좋았다.

 

여자주인공 신다은은 노래와 연기 전부 불안했고

운영관 서현철도 노래가 살짝 불안불안했지만 맛깔나는 연기는 역시 최고였다.

앙상블은 노래도 연기도 안정적이었고 아쉬운건 여전히 음향.

음향이 지금보다 좋았다면 훨씬 더 웅장하고 뭉클했을텐데 영 아쉽다.

교실장면에서 학생들의 춤은 여전히 쌩뚱맞긴한데

영애양과 수지의 두 명의 춤사위(?)보다는 덜 생뚱맞다.

재미있었던건 샤워장 장면에서 정말 엄청난 반응이 있었다는거!

참 말이 많은 장면이고 나도 솔직히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장면인데

단체관람이다보니 아무래도...

(우리 병원 직원들...특히 기혼자들... 몸 좋은 남자 정말 오랫만에, 그것도 무더기로 봤구나...싶었다)

아마도 남편들의 동그란 배와 비교분석하다보니 절로 탄성이 나왔나보다.

콘서트를 방불케사는 함성 속에 부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객석 반응이 너무 뜨거워 배우들이 놀라지 않았을까 걱정되더라.

내가 본 <그날들> 중에 최고의 반응이었다.

(어딘지 살짝 민망하기까지... ^^)

 

이날 전석 매진이라 유준상이 무대인사를 했는데

<프랑켄슈타인>때도 느꼈지만 창작 뮤지컬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참 대단했다.

제일 맏형이 이렇게 애정을 드러내니

함께 하는 배우들이 도저히 으쌰으쌰 안 할 수가 없겠더라. 

그 모습이 나는 또 그렇게 보기 좋을 수가 없었다.

아마도 고김광석도 저 위에서 흐뭇하게 보고 있지 않을까!

 

흥해라!

대한민국 창작뮤지컬 <그날들>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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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끄적 끄적...2014. 2. 7. 08:29

<웃음의 대학>

일시 : 2013.11.08. ~ 2014.02.23.

장소 :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

대본 : 미타니 코우키

연출 : 김낙형

출연 : 송영창, 서현철, 조재윤 (검열관)

        김승대, 정태우, 류덕환 (작가)

제작 : (주)적도, (주)연극열전

 

몇 번의 예매와 취소를 반복하다 보게 된 작품.

(캐스팅이 바뀌기도 했고, 갑자기 일이 생기기도 해서...)

2008년 연극열전2로 초연될때부터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무려 6년 만에 드디어 볼 수 있게 되서 혼자 감회에 젖기도 했다.

서련철과 류덕환, 내가 원했던 캐스팅이었고,

목요일 저녁공연이라 할인율도 높았고.

그리고 좌석은 환상적일 정도로 좋았다.

검열관에서 살짝 조재윤과 고민을 하긴 했지만 역시 서현철로 기울 수밖에 없더라.

서현철 특유의 말투와 억양, 표정이 자꾸 나를 끌어당겨서... ^^

역시나 서현철은 대사 타이밍도 좋고 순발력있는 연기도 정말 좋더다.

무대 위에서 오버하지 않으면서 기꺼이 망가질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는 배우.

여전히 참 좋다. 서현철이라는 배우.

작가역의 류덕환과도 잘 맞았고.

류덕환은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배우인데

아무래도 작은키 때문에 배역에 한게가 생길 수 밖에 없어 참 안타깝다.

정말 너무 열심히 하는, 그리고 잘 하는 배우인데...

언젠가 그의 진면목을 발휘할 수 있는 작품이 꼭 나올거라 믿고 싶다.

 

<웃음의 대학>은 1940년대 2차 세계대전이 시대배경이다.

어렵고 힘든 시기에 웃음 따위는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검열관에게

공연허가를 받기 위해 극단 "웃음의 대학" 전속작가의 고분분투기다.

(어디까지나 표면상으로는....)

공연허가를 위해 검열관의 무리한 요구를 받아들이는 7일.

작가는 일곱 번의 수정을 거듭하면서 검열관에과 기묘하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이어간다.

웃을 수 없은 희극작품을 쓰라는 아이러니한 검열관의 요구를 가장한 명령.

그러나 작품 속에선 다행히 검열과 수정이 반복될때마다 오히려 작품은 더 재미있어진다

그리고 급기야 작가과 검열관은

어느틈에 서로를 이해하고 격려하며 존중하는 관계로 변한다.

두 사람의 이런 변화는 일종의 화해이자 완벽한 파괴이기도 하다.

(파괴하지 않으면 창조는 없다!)

 

사실 이 작품은 한바탕 웃고 지나가는 코믹물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 묵직하다.

왜 서민의 즐거움을 빼앗으려고 하느냐는 작가의 대사를 들으면서

<웃음의 대학>의 해프닝이 봇물터지듯 넘쳐나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생각케 했다.

뭐랄까?

우리는 지금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사전을 가지고 사는 것 같다.

가령 그들의 생각하는 "소시민"과 우리가 생각하는 "소시민"의 뜻은 애초부터 완전히 다르다는...

언어의 기본구조가 다르니 화해와 화합도 불가능하다.

희극작가가 (권력과) 싸우는 그 끊임없는 저항의 방법이

지금 우리에게도 있다면 참 좋을텐데...

(혼자 묵직해졌다.... 젠장!)

 

"전 자신감 따윈 없습니다!

 다만 제자신을 믿을뿐입니다"

작가의 검열관에서 던진 대사가 참 뭉클했다.

(이 장면에서 류덕환의 표정과 연기 정말 좋더라)

궁금해졌다.

웃을 수 있으면 살 수 있다는 작가의 말.

그런데 그게 정말일까?

 

웃을 수 있으면...

살 수 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3. 4. 10. 08:17

<그날들>

일시 : 2013.04.04. ~ 2013.06.30.

장소 : 대학로뮤지컬센터대극장

대본. 연출 : 장유정

음악감독 : 장소용

안무 : 정도영

출연 : 유준상, 오만석, 강태을 (차정학)

        최재웅, 지창욱, 오종혁 (박무영)

        방진의, 김정화 (그녀) / 서현철, 이정열 (운영관)

        김산호, 김대현 (대식) / 박정표, 정순원(상구)

        송상은, 이다연 외

제작 : (주)인사이트 엔터테인먼트, (주)이다엔터테인먼트

 

故김광석의 노래로 주크박스 뮤지컬을 만든다는 소식은 꽤 오래전부터 들렸다.

그닥 진전이 없어서 엎어진건가 생각했는데 그야말로 화려한 캐스팅이 공개돼 깜짝 놀랐다.

게다가 제작발표회와 연습실 영상까지 인상적이어서 기대치가 점점 상승됐다.

편곡된 몇 곡의 노래들은 드라마틱할 정도로 웅장했다.

통키타와 하모니카 반주가 거의 전부였던 김광석의 노래가 웅장할 수 있다니...

혼자 신기해하기까기 했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일일까?

공연 날짜는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건물주와 건설시공사와의 다툼으로 개막이 불투명하다는 기사를 봤다.

공연제작사는 4월 4일 개막일을 사흘 앞둔 1일 건설사를 상대로 공연방해금지가처분 신청을 냈다.

배우들은 공연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외부 연습실에 있는 상황이고

장유정 연출과 공연장에 남아 있던 스텝만이 배우없는 테그니컬 리허설을 진행 중이라는 소식도 들었다.

어쨌든 관객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기만을 바랐는데

다행히 예정대로 공연이 올려졌다.

 

아직 정돈되지 않은 대학로뮤지컬센터 대극장은 입구와 로비 모두 흉흉했다.

티켓박스는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고 캐스팅 보드도 간신이 설치된 정도다.

어째 점점 불안해진다.

공연장 앉아서 제일 먼저 본 건 국수발 같은 무대.

사실 좀 난감했다.

내가 혼자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 분위기다.

어쩌면 내가 김광석의 노래에 너무 집중하고 있던 건 아닐까?

(요 몇 년 사이에 뒤늦게 김광석앓이를 심하게 하는 중이라서...)

그래도 내가 선택한 캐스팅은 역시나 믿음이 갔다.

오만석, 최재웅, 방진의, 서현철.

이들이라면 기본 이상은 분명히 해줄테니까!

 

故김광석이 부른 이 모든 곡들은 역시나 엄청나다.

속직히 고백하면,

이런 류의 신파를 기대했던 건 아닌데

원곡의 힘이 워낙 짱짱해서인지 스토리의 취약함이 어느 정도 감춰진다.

특히 1막 "변해가네'에서 "나무"로 이어지는 도입 부분은 정말 좋다.

편곡도 좋았고, 시간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오가는 연출도 돋보였다.

차정학의 안경은 그런 의미에서 작지만 꽤 괜찮은 설정이다.

일부러 코믹한 요소를 많이 넣은 것 같은데

그래선지  전체적으로 가볍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래도 다행스러운건,

워낙에 진지하게 연기하는 오만석, 최재웅인지라 그 가벼움이 살짝 상쇄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다른 배우 조합은 좀 위험스럽지 않나 싶다.

차정학과 박무영으로 캐스팅된 배우들의 연령대 간극이 일단 너무 크다.

(정학을 맡은 배우들이 워낙에 하늘 같은 선배들이라 아무래도 동료의 느낌을 갖기가 좀...)

홍보때문이긴 하지만  TV에서 코믹 요소를 앞세우는 유준상 배우도 갑정이입이 살짝 걱정스럽다.

(배우 입장에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관객입장에서!)

 

과거의 남자 최재웅과 현재의 남자 오만석의 듀엣은 첫 곡부터 발란스가 참 좋다.

마지막 장면에서 정학이 무혁에게 "내가 너무 늦게 왔지?"라고 말하는 장면은

<번지점프를 하다>가 떠오르는 작은 참사가 발생했다.

단지 이 대사 한 마디 때문에 둘의 관계에 동성애적인 뉘앙스가 강력하게 풍기고 말았다.

(도대체 왜 그런 무모한 연출을???) 

2막 첫곡 "부치지않은 편지"에서 서현철의 목소리톤은 환상적이었다.

그런 배우가 있다.

노래실력이 좋은건 아니지만 장면이나 넘버의 분위기에 아주 딱 맞게 노래하는 그런 배우.

배우 서현철은 확실히 그런 쪽이다.

코믹할 때는 코믹하게, 진중할 때는 또 진중하게 설정과 표현을 잘한다.

아마도 운영관 역은 이정열보다 서현철이 훨씬 잘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그녀 역의 방진의는 표정이 인공적인 걸 빼면 전체적으로 배역에 잘 어울린다.

(그런데 왜 이 배우의 표정은 점점 더 인공적으로 변할까?)

 

제일 큰 아쉬움은,

배우들이나 넘버에 비하면 스토리와 무대가 너무 엉성하다.

음향이나 마이크 사고는 공연장에 적응할 시간이 부족해서라고 넘길 수는 있겠는데

스토리는 수정이 필요할 것 같다.

특히나 1막은 너무 산만하고 가볍다.

1막과 2막의 무게중심이 지나치게 기우뚱하고

노래에 억지로 끼워맞춘듯한 장면들도 눈에 보인다.

대형 국수공장을 연상케하는 전체 무대와

"천국의 계단"에서 들락날락하며 내게 트라우마를 안긴 "문짝"을 떠올리게 하는 무대 셋팅도 좀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

무대에 띄우는 영상은 그야말로 폭격의 수준이다.

뭐랄까, 성의없이 툭툭 내뱉는 말투같다고나 할까?

게다가 늘어진 국수발때문에 그 영상들조차도 뚝뚝 끊겨보여 마치 초보 칼잡이의 성긴 칼질을 보는 느낌이다.

그래선지 일부러 눈을 감고 노래만 듣기도 했었다.

몇몇 장면에서는 확실히 이 감상법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안무도 전체적으로 아쉽다.

사건과 인물의 중심이 청와대 경호원이라는 걸 생각하면

훨씬 더 남성적이고 강렬했으면 좋았겠다.

(가령 얼마전에 공연된 <프라미스>의 전쟁장면 군무처럼)

 

이렇게 주절주절 쓰는 걸 보니

내가 확실히 이 작품에 애정과 기대가 많은 것 같다.

물론 아쉬움만 있는 건 절대 아니다.

전체적으로 대사도 너무 좋았고 편곡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노래 한 곡으로 현재와 과거의 시간을 넘나드는 연출도,

같은 곡을 같은 배우가 불러도 장면의 느낌에 따라 표현이 확연히 달라지는 것도 특별했다.

"꽃'과 "내 사랑이여"를 연결시킨 건 정말 기가 막혔고

"먼지가 되어"는 앞부분은 과거의 무혁이, 뒷부분은 현재의 정학이 부르는데

시간과 공간, 거리와 깊이가 순간적으로 완전히 옮겨져 들으면서도 많이 놀랐었다.

출연하는 배우들은 우여곡절을 겪어서 그런지

주조연, 앙상블을 막론하고 호흡도 좋고 집중력도 엄청나다.

(이 작품은 정말 배우 잘 만났다!)

 

아직 시작이라 후한 점수를 주긴 솔직히 힘들지만

희망적인 작품이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6월말까지 공연기간동안 배우와 스텝들이 잘 다듬어 가리라 믿는다.

원곡과 배우가 갖는 근원적인 힘!

그걸 믿게 하는 작품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2. 12. 28. 08:06

<심야식당>

일시 : 2012.12.11. ~ 2013.02.17.

장소 :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원작 : 아베 야로 "심야식당"

대본, 작사 : 정영

작곡 : 김혜성

연출 : 김동연

출연 : 송영창, 박지일 (마스터) / 서현철, 정수한 (타다시)

        임기홍, 김늘메 (코스즈) / 박정표, 최호중 (겐)

        한채윤, 백은혜 (치도리 미유키) / 박혜나 (마릴린)

        정의욱 (켄자키 류)/차정화, 배문주, 김아영 (오차즈케 시스터즈)

 

원래는 계획에 없던 관람이었다.

책장 넘기는게 귀찮아 만화를 워낙에 안 읽기도 하거니와

특히나 일본만화는 이상하게 공감하기가 쉽지않아 더 안 보게 된다.

(나, 그 유명하다는 슬램덩크, 초밥왕 이런 것도 안 봤다.)

아무리 출연진들이 좋다고 하더라도 인터파크에 미리크리스마스 이벤트 30% 할인이 뜨지 않았다면 아마도 외면했을 작품.

솔직히 말하면 이 작품이 창작인줄도 몰랐다.

그런 작품이 있다.

별 기대를 하지 않고 공연장을 찾았는데

첫 장면과 대면하는 순간 속수무책으로 쏙 빠져버리게 되는 그런 작품!

창작뮤지컬 <심야식당>이 내겐 그랬다.

작고 소박한 음식점 앞으로 박지일이 자전거를 끌고 들어서는 순간,

느닷없이 퍼지던 따뜻한 훈김.

그건 마치 이제 막 지어낸 고슬고슬한 밥을 눈 앞에 둔 느낌이었다.

2시간 동안 지독한 허기와 신기한 포만감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어느새 내 빈 속은 꽉 채워졌다.

문어모양으로 자른 베엔나 소시지를 볶은 소리,

달콤한 계란말이 부치는 소리,

전기밥통 여는 소리, 차

밥 위에 차를 따르는 소리,

재료를 손질하는 경괘한 칼질 소리.

음식을 준비하는 이 모든 소리가 그렇게나 다정하고 따뜻할 수 없었다.

(이런 소리들을 작품속에서 그대로 들려주겠다는 생각, 누가 맨 처음 했을까?)

 

저녁 12시 부터 아침 7시까지 문을 여는,

변변한 간판도 없는 심야식당.

메뉴라고는 된장정식 하나뿐이지만

손님이 주문하는 음식은 그때그때 만들어주는 마스터가 있는 그 곳.

사람들은 심야식당 문을 열고 말한다.

"마스터! 늘 먹던 걸로 주세요~~~"

비엔나소시지, 달콤한 계란말이, 고양이맘마, 버터라이스, 모시조개술찜,

달걀후라이를 올린 소스 야끼 소바, 감자셀러드, 오차즈께...

음식과 함께 하나씩 꺼내지는 추억과 사연들에 나는 여러번 뭉클하고 아련했다.

추억에 제대로 채한 사람들.

외롭고 지친 세상에서 나를 알아봐주고 위로해주는 단 하나의 음식.

마스터가 해주는 음식은 "괜찮다, 괜찮다"라며 어깨를 또닥이는 깊은 위로 같다.

(그치,그치,그치,그치~~~~ 네~~~!) 

마스터 역의 박지일은 정말 최고의 스토리텔러였다.

대사와 노래가 많은건 아니지만 작품 속에서의 존재감은 정말 엄청나다.

그 목소리라니...

누구라도 박지일 마스터 옆에 있으면 그동안 꽁꽁 싸매고 있던 깊은 트라우마도 술술 고백할 수 있을 것 같다.

절로 위로가 되는 백만불자리 음성.

늙은 게이 코스즈 임기홍도 신주쿠 뒷골목 역사책 타다시 서현철도 역시나 멋지고 인상적이었다.

(이 두 배우가 내게 일말의 실망을 안겨줄 날이 과연 오기는 할까?)

배우 최호중은 놀라운 발견이다.

이 배우 주목받기에 정말 충분하다!

노래도 괜찮고 그 많은 배역을 정말 완전히 다른 감정과 모습으로 연기했다.

임기홍과 또 다른 부류의 멀티맨 탄생을 예고한다.

매실, 연어, 명란젖 오차즈께 시스터즈는 정말 환상적이었고

작품의 구석구석을 정말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나게 만들었다.

등장하는 10명의  배우들 전부 대단했다.

번잡하지 않은 무대도 너무 좋았고 뮤지컬 넘버들도 하나하나 다 좋았다.

(요즘 공연되는 창작뮤지컬들 정말 대단하다. 정말 만세다~~!)

 

정말이지 이 식당 어떻게든 찾아내서 꼭 한 번 가고 싶다.

찾아내면 문을 드르륵 열고 호기롭게 말하는거다.

"마스터! 늘 먹던 걸로 주세요!"

 

나는...

진심으로 위로받고 싶다.

내 텅 빈 마음속 그 깊은 곳까지

포만감 가득한 위로를 꾹꾹 채우고 싶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2. 6. 7. 08:34

<노이즈 오프>

 

일시 : 2012. 05.04. ~ 2012.06.10.

장소 :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연출 : 백원길

극본 : 마이클 프레인(Michael Frayn)

제작 : 극단 적도

출연 : 장현성, 안신우 / 정의욱, 서현철 / 백원길, 전배수

        황정민, 김광덕/ 김로사, 김나미, 김동곤, 방현숙, 이주원

 

2006년 초연된 당시에 놓쳤던 작품이다.

그때 배우 양택조가 극중 늙은 도둑 역할에 캐스팅됐었는데 간암 초기로 수술이 결정되면서 하차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원래 다른 배역이었던 남명렬씨가 급하게 도둑 역을 대신했던 것 같다.

(보지도 않았으면서 참 별 걸 다 기억하고 있다.)

 

극본을 쓴 작가가 마이클 프레인이라서 좀 놀랐다.

게다가 이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10년이란 세월을 보냈단다.

내가 본 작품중에서 가장 지적이고 경이로울만큼 학구적이었던 <코펜하겐>의 원작자가 이런 희극을?

그것도 이렇게 긴 시간을 들여 완성했다는 게 또 한 번 경이롭다.

그는 10년 동안 직접 공연장을 찾아다니면서 무대와 배우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관객의 반응도 일일히 살피면서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 이 작품을 완성했단다.

그래선가?

끊임없이 웃음을 선사하지만 이야기 구성은 치밀하고  왠만한 추리물보다 잘 짜맞춰져있다.

희극작품이지만 빈틈이 없어서 학구적(?)인 인상을 주는 참 묘한 작품이다.

특히 희극작품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타이밍(Timing)의 정확성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TV와 영화에서 지적인 캐릭터 연기를 주로 했던 장현성이 이작품에서 일종의 연기 변신을 한 셈이다.

1막은 장현성 본래의 이미지에 가깝고

2,3막에서는 조금 헐렁하고 가벼운 모습을 보여주는데

아무래도 내겐 장현성에 대한 고정이미지가 이미 굳게 자리잡혔나보다.

연기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데 보는 내가 어색한 묘한 경험을 했다.

서현철과 황정민 캐스팅이 공연하는 날로 일부러 예매했는데 두 사람의 연기는 확실히 좋았다.

서현철의 표정연기는 특히 압권이다.

김나미의 과장된 사투리 연기도 재미있고

<점프>의 연출자 백원길의 흥분된 연기와 해석불능한 말도 재미있다

백원길은 이 작품의 실제 연출가이기도 해서 아마도 보는 재미가 더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참 재주꾼이다. 이 사람!)

무대 전체가 180도 전환되면서 셋트 뒷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은 역시 인상적이었다.

공연이 되는 무대 정면과, 무대 뒤 배우들의 실제 모습들을 그대로 까발려 보여준다!

이런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보면서 이 상황이 억지스럽거나 과장됐다기보다는 정말 실제로 그럴 수도 있겠구나 긍정하게 된다.

하긴 앞과 뒤가 다른 게 무대 뿐일까?

(연극의 대사에도 나온다. 이게 다 인생이라고...^^)

특히 배우들간의 불화가 극심해진 3막에서는

무대 뒤의 갈등은 점점 더 심해지면서 무대 앞도 난장판이 된다.

결국 수습불가능의 지경까지 이른다.

그 모습이 또 얼마나 재미있던지...

(실제로 이런 상황을 직접 목격했으면 하는 몹쓸 생각도 했다)

실제로 객석에서 사람들의 폭소가 끊이지 않고 터진다.

웃음코드가 많이 떨어지는 나인데도 시종일관 재미있게 봤다.

2막이 시작되면서 조금 지루해지려고 했는데 그때부터 소위 빵빵 터지기 시작한다.

인터미션까지 포함하면 대략 3시간짜리 공연인데 그 시간이 별로 지루하진 않았다.

그래도 역시 허리는 너무 아프다.

허리 통증도 noises off 됐으면 정말 금성첨화였을텐데...

아!... 아프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2. 4. 6. 06:11

 <게이 결혼식>

 

장소 : 학전 블루 소극장

일시 : 2012.03.01 ~ 20.12.07.01.

출연 : 서현철, 남문철 (에드몽) /  최덕문, 이희준, 최대훈 (앙리)

        노진원, 김늘메 (도도) / 우지순, 민성욱 (노베르)

        송유현, 민정 (엘자) 

연출 : 민준호

제작 : (주)적도

기획 : 학전

 

 

프랑스 코미디 연극 <게이 결혼식>

일찌감치 조기예매를 하고 기다렸던 작품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 연극을 보려고 한 건 단지 서현철이라는 배우가 출연해서다.

남명렬, 김영민, 서현철, 정승길, 윤소정. 서은경.

나름대로 내가 격하게 아끼고 사랑하는 연극배우들이다.

그래서 이들이 출연하는 작품은 되도록이면 놓치지 않고 챙겨보려는 편이다.

얼마 전에 남명렬이 출연한 <모래 정거장>과 <죄와 벌>을 놓치고서도 얼마나 속상했던지...

(공연 기간도 너무 짧았고 개인적인 일때문에 시간이 전혀 안 맞았다)

 

연극배우 서현철.

점점 브리운관에서의 활약상도 커지고 있긴 하지만

(얼마전에 <해를 품은 달>에서 비중있는 조연으로 나오기도 했다)

나는 TV에서보다는 공연 무대 위에서 만나는 서현철이 더 좋다.

사람을 마냥 유쾌하고 즐겁게, 밝게 만든다.

그것도 악의 없는 건강하고 씩씩한 웃음.

(내가 골백번 환골탈퇴해도 결코 가질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성향 ^^) 

탄탄한 연기력은 물론 말할 것도 없지만

무대와 관객을 장악하는 능력 또한 엄청나다.

개인적으로 코믹한 작품을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서현철이 출현하는 작품은 주저없이 선택한다.

그리고 실제로 지금껏 본 연극, 뮤지컬 중에서 괜히 봤다 싶은 작품도 없다.

(그렇다고 서현철이 출연하는 작품을 적게 본 것도 아닌데...)

 

엄청난 금액의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 고모의 유언에 따라 억지로 결혼을 하게 되는 앙리(이희준).

그것도 어릴적부터 절친인 친구 도도(노진원)와의 위장 게이 결혼.

서로 win win 하기 위해 1년의 기간을 둔 계약 결혼이라지만

자꾸 예기치 않는 일들이 발생하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거짓말이 시작된다.

명문있는 카톨릭 집안의 장남은 버젓히 게이잡지에 결혼 기사가 실리고

도도는 앙리의 여자친구 엘자(박민정) 때문에 졸지에 장애인 게이 남동생이 된다.

아들 앙리가 진짜 게이라고 믿은 아버지 에드몽(서현철)는

그 와중에 자신도 그렇다면 편안하게 커밍 아웃 하신다.

거기에 이 모든 계획의 출발점인 이혼 전문 변호사 친구 노베르(민성욱)의 이혼 싸움까지...

좀 심하다 싶을만큼 여기저기서 사건이 연발탄처럼 빵빵 터진다.

재미있는 건 보고 있으면

등장인물 각자가 순간적으로 머리 굴리는 소리가 다 들리는 것 같다.

애드립도 아닌데 마치 애드립처럼 느껴지는 거짓말의 향연이라니!

포복절도까지는 아니지만 시종일관 재미있고 유쾌하게 봤다.

등장하는 다섯 명의 배우 전부 연기도 괜찮고...

다만 앙리, 도도, 노베르가 친구로 나오는데

상대적으로 도도역의 배우가 좀 나이가 많이 들어보인다는 게 흠이라면 흠.

뭐 프랑스는 나이랑 친구랑 아무 관계없다고 한다면 대략 할 말은 없다.

 

몰랐었는데 앙리 역의 이희준이 요즘 TV와 영화에서 주목받는 중인가보다.

오늘 김남주와 영화 <화양연화>를 패러디한 장면이 기사화됐는데 사진 분위기 상당히 좋다.

표정이랑 풍기는 느낌도 상당히 괜찮고...

KBS 주말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 나올 장면이라는데

처음엔 이 사진을 보고 이희준인 줄 전혀 몰랐다.

하긴 영화 <화차>에서도 꽤 인상기게 봤는데 거기서도 이 사람인줄 몰랐다.

(영화에서는 훨씬 더 나이가 들어보였는데... 요즘 회춘하셨나???)

요즘 TV나 영화에서 공연배우들을 많이 보게 된다.

오만석, 전수경과 홍지민, 박혜미는 이미 TV 유명스타가 됐고

김무열이나 신성록은 다방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신성록은 군에 있으니까 엄밀히 말하면 hold 중이고)

지금 한창 인기리에 방영되는 <더킹 투 하츠>에서는 조정석이

사극 <무신>에는 이석준, 뱍해수, 김영필 등 제법 많은 공연배우들이 나온다.

신선한 느낌도 있고 연기도 잘하는 배우를 찾다보니

기본기 탄탄한 공연배우들에게 자연스럽게 섭외가 가는 모양이다.

반대로 가수나 탈렌트들이 공연무대에 서는 일도 점점 많아지고 있고...

둘 다 장단점이 있긴 하겠지만

서로의 영역에 해악이 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 분명히 시작은 연극 <게이 결혼식>이었는데 어쩌다 완전히 삼천포로 빠져버렸다. 끙!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1. 7. 12. 06:28


연극 <돐날>
연출 : 최용훈
기간 : 2011.06.03.~2011.07.10
장소 :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
출연 : 길해연, 홍성경, 서현철, 김왕근, 김은석,
        황정민, 
정승길, 정세라, 김문식 외.


극단 <작은 신화>가 차단 25주년을 맞아 기념 공연으로 3편의 연극을 대학로에 올리고 있다.
<가정식백만 맛있게 먹기> , <돐날>, <황구도>
<돐날>은 부제가 "돌아버린다" 란다.
"돐날"이라는 사랑스럽고 앙증맞고 행복한 단어 속에 이렇게 비루하고 비참한 일상이 담길 줄은 정말 몰랐다.
그런데 더 비참한 건 이 일상이 지극히 현실적이고 적나라하게 사실적이라 할 말이 없다는 거다.


혁명을 가고 비루한 일상만 남다!
혁명과 변혁의 시대를 살았던 386세대의 자기파괴적인 종말!
8년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 연극 <돐날>은.
서로의 상처를 감싸안는 마지막 장면을 의도적으로 삭제해버렸다.
그런데 아마도 마지막 장면이 예전과 같았다면 난 아마도 이렇게 공감하면서 보진 못했을거다.
최용훈 연출 역시도 말했다.
"재공연을 준비하면서 10년 전 초연 때와 비교해보니 당시 아픔과 좌절이 해결되거나 좋아진게 전혀 없었다. 오히려 더 좌절하고 절망감을 느끼게 됐다"
그는 관객들이 위안을 얻어가지 않길 바랐단다.
그의 의도적은 결말은 아주 적절했고 그리고 절실했다.

 

모든 게 자신만만하고 적개심마저도사랑했던 젊은 시절은 사라지고
사는 게 지겹고 신물나는,
그래서 맨하탄 쌍둥이빌딩처럼 한 방에 무너뜨리고 싶은 삶으로 전락해버린 일상!
마치 그 일상을 비웃든 극악스럽게 웃어대는 사람들.
(돐잔치에 모인 사람들의 괴기스럽기까지하던 웃음소리는 공포로 다가온다.)
폭탄처럼 쏟아지던 빗소리와
어지럽게 흩어지던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
그리고 엄마의 포악과 저주 속에 사생결단처럼 울어대던 아기.
잔칫날의 주인공이여야 할 아이는 마치 갓난아이처럼 강보에 싸여있다.
(부모의 사랑을 받을 수 없었던 아기는 아마도 자라기를 거부한 모양이다.)
"시간이 흐르면 점점 익숙해지는 게 당연한데 왜 사는 건 그렇지 않니?"
정숙이 친구에게 묻는 질문은
우리를 일상의 공포로 몰고간다.
그리고 이 대사는 우리 모두의 독백이자 처절한 고백이다.
후줄근한 삶을 연명해야 하는 우리는,
반미운동하던 사람은 미국이 만든거라 안전하다며 피라이드 주방세제를 팔고
땅투기 아비 덕에 돈푼 꽤나 만진 놈은
인맥형성을 위해 다니는 경영대학원의 학위 논문 대필을 거래한다.
(그 당당함이라니...)
뒷담화와 뒷거래의 찬란한 일상이여~~!
"너 왜 이렇게 됐니?"
그러나 이런 질문을 하는 본인의 삶 역시도 모든 사람의 삶처럼 거짓과 감춤의 삶일 뿐이다.
다른 사람처럼 평범하게 살기를 바라는 소망은
정말 소망에 불과한건가?
몸 속으로 무딘 칼끝을 찔러넣는 인생.
만약 누군가 데려다 줄 수 있다면
엄마 뱃속으로 돌아가 다시는 세상으로 나오고 싶지 않은 그런 인생!
세상 모든 남편들의 일생은 비참하고
세상 모든 아내들은 삶은 또 그만큼 박복하다.
그리하여 삶은 또 다시 언제나처럼 비루하고 비참하다.
내가 세상을 사랑하지 않아서였나?
아니면 세상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였나?
자기분열의 결말을 지켜보는 관객에게
자기분열의 질문이 남는다.

피투성이 무대와 현란한 비발디의 사계 속에서...

 

8년 만에 재공연된 <돐날>은
길해연, 홍성경, 서현철 등 초연 때 섰던 배우들이 그 역할 그대로 돌아와 무대를 빈틈없이 채웠다.
그리고 배우 정승길.
이 멋진 배우들을 한 무대에서 볼 수 있다는 건 더없는 행운이었다.
비록 비루하고 비참한 삶의 관음이었지만
그 비루함을 채우는 배우들의 열연은 풍요로움 그 이상의 만찬이었다.
뭐라고 명명해야 할까?
이 거침없는 포만감을...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8. 3. 06:16


오랫만에 연극 한 편을 봤다.
<연극열전3> 여섯 번째 작품 <너와 함께라면>
연극 <웃음의 대학>을 쓴 일본 작가 미타니 고우키의 작품으로 역시 코믹이다.
연출은 내가 좋아하는 이해제,
출연 배우들도 탐나는 배우들이라 미리부터 예매했던 작품이다.

기간 : 2010.07.23 ~ open run
장소 : 대학로 문화공간 이다 1관
출연 : 서현철(아버지), 추귀정 (어미니), 
         큰 딸 (이세은). 작은 딸 (김유영)
         남자친구 (송영창), 남자친구 아들 (박준서)
         이발소 직원 (조지환)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 무지, 엄청, 유쾌하고 황당하게 재미있는 연극이다.
보는 내내 사람들의 웃음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마치 웃음소리를 계속 틀어놓은 시트콤처럼...)
2시간 동안 시종일관 사람을 쥐고 흔들면서 박장대소하게 만든다.
모든 상황이, 모든 대사가, 모든 행동이 전부 다.
그런데 그게 억지스럽지 않고 아주 자연스럽게 동화되고 있다는 사실.
사실 코믹물은 억지스런 짜맞추기 같아 개인적으로 거부감을 갖고 있는데 이 연극은 전혀 그렇지 않다.
너무나 황당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자, 상상을 해보자.
내가 부모인데 28살 꽃다운 나이의 큰 딸내미가
어느날 결혼을 하겠다며 애인 사진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가족들이 오해를 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고 덧붙인다.
가족들이 "청년 사업가"로 알고 있는 
그 사람이 사실은 "청년 사업가"가 아니라는 거다.
그 오해의 부분이 차라리 "사업가" 라는 부분이라면 천만 다행일텐데
문제는 "청년"이 아니라는 부분에 있다는 거다.
딸의 남자친구는 73세의 파파 할아버지.
딸의 할머니와 같은 해에 태어난 분으로 엄연한 경로 우대증 소지자시다.



어찌어찌해서 아빠와 여동생에게는 이 사실을 밝혔는데 문제는 엄마!
엄마에게 사실을 말하려고 하는 게 
오히려 거짓말에 거짓말 꼬리 잡기가 되고 만다.
노령의 남자친구는 여자친구의 집에 찾아와
한참 젊은 예비 장인(?)에게 "아버님!, 아버님!"을 연발하며 점수를 따기 위한 필살기 중이시다.
(섬뜩섬뜩한 귀엽성이 있더라. ^^)
설상가상으로 노인의 아들까지 찾아와 이야기는 더 꼬인다.
아들은 엄연히 남편이 있는 그 집 어머니를 자신의 아버지와 사귀는 분으로 착각하고
구렛나루를 휘날리며 "엄마! 엄마!"를 연발한다. 
급기야 건장한 아버지는 이웃집 게이 남자로 둔갑해 버리고
이발소 종업원의 멀쩡한 눈은 졸지에 사시가 되버린다.



마치 탁구 경기를 보는 것 같다.
서로 받아치는 대사들은 탄력성 있고 하나하나 똑똑 튄다.
(원래 거짓말이라는 속성이 그렇긴 하지만...)
배우들의 연기가 감탄스러울정도로 능청맞다.
늙은 남자친구 역을 맡은 송영창이 예비 장인을 향해 날리는 필살기는 은근히 귀여운 게 중독성이 있다.
큰 딸 역의 이세은은 첫 연극 무대 데뷔인데 사실 좀 놀랐다.
연기 잘하는 배우들 틈에서 대략 묻어가겠거니 했는데
딕션도 괜찮았고 무엇보다 철없는 표정연기가 일품이더라.
작은 딸 김유영은 <스프링 에웨이크닝> 이 후 두 번째 작품인 것 같은데 신인같지 않은 안정감이 있다.
약방의 감초같은 역할...
거짓말의 퍼레이드는 오히려 그녀의 입에서 더 부풀려지고 한층 업그래이드 된다.
story-maker 역할이 바로 그녀인듯 싶다.
커튼콜때 그녀의 코에서 튕겨나온 땅콩은 내 손에 정확히 맞았다. (브라보~~)



연극에서 누구보다도 돋보였던 사람은 역시 아버지 역의 서현철.
예전에 <판타스틱스>라는 뮤지컬에서 유랑극단 대표로 나왔을 때도
얼마나 맛깔스럽고 재미있게 연기를 하던지 연신 감탄하면서 봤었는데
이번 연극은 서현철이라는 배우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발휘케 하는 작품인 것 같다.
소위 "물 만난 고기"라고나 할까?


말투와 표정, 행동들 하나하나가 전부 다 재미있고 유괘한 웃음을 자아낸다.
그것도 억지스러운 게 아니라 너무 자연스러워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맨발에 파자마 바람, 헝클어진 머리로 편안한 일요일 오후를 보내고 있는 아빠에게
쓰나미같이 벌어지는 가공할만한(?) 상황.
상당히 불편하고 거북스런 상황을 이렇게 유머와 위트로 만들 수 있다는 게 마냥 신기하다.

출연하는 배우들 7명 모두가 아주 똑 떨어지게 연기를 잘 한다,
과장스럽긴 해도 그 과장이 어디까지나 이 연극속에서는 오버처럼 느껴지지 않고 잘 어우러진다.
그래서 2시간 동안 충분히 즐겁고 유쾌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다시 보라고 해도 처음 보는 것처럼 큰소리로 웃을 수 있을 것 같다.
그야말로 <너와 함께라면>
분명히 재미있고 유쾌한 시간을 다시 한 번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오랫만에... 오랫만에...
박장대소하면서 기분 좋아지는 연극 한 편을 봐서 아직까지도 흐뭇하다.
끈적끈적해서 불괘지수 높아지는 이 여름에
시원한 청량감마저 느껴지는 그런 연극 한 편을 만나다.
<너와 함께라면>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