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8. 2. 6. 09:22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런 설경을 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그것도 산 위에서 내려다 본 기억은 전혀 없다.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일수도 있는 설경.

설산을 오르는 등반가들이 설맹(雪盲)을 두려워 한다고 했던가?

설원에 반사된 햇빛에 장시간 노출될 때 생기는 망막손상 설맹.

일시적인 증상일 수도 있고

심한 경우 시력을 잃을 수도, 정신착란을 일으킬 수도 있단다.

조금은 이해가 된다.

미치지 않고서야...

오랫동안 대면할 수 없는 날카로운 풍경이다.

시각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하늘의 변화가 없었다면

버텨내기 힘들었을 다흐슈타인의 파노라마.

 

 

호수는 제대로 보지도 않았는데...

가빠오는 풍경때문에 걷다 멈췄다를 몇 번씩 반복했다.

할슈타트 전망대와 불과 30여분 거리에 있는 곳인데

이곳과 그곳음 마치 지구의 반대편처럼 완전히 다르다.

이럴수도 있구나...

이게 가능한거구나...

켜켜히 쌓이는 낯선 신기함.

 

 

또 다시 해맑은 조카녀석.

감히 부러워도 못하고

바라만 보는 나.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3. 7. 15. 09:03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정유정의 소설을.

<7년의 밤> 이후 2년 3개월이라는 시간을 공들인 끝에 출판된 <28>

이런 참담한 이야기를 쓰느라고 그랬구나...

이 글을 쓰면서 그녀는 또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을까,

그걸 생각하니 가슴 끝이 뭉클하다.

후반부로 갈수록 책을 덮고 큰숨을 쉬어야만했다.

이렇게 몸을 아프게 하는 책은,

책장을 넘기는 손끝조차도 떨린다.

이 이야기 끝을 알아야 할까?

나는 일말의 희망이라도 보게 될까?

유기견 보호소 드림랜드에서 나는 드림을 꿈꾸게 될까?

처음에 아이디타로드(Iditarod) 경주 부분을 읽을 때까지는

아! 색다른 이야기가 시작되려는구나 생각했었다.

이렇게 참담하고 아픈 이야기일줄은....

온통 눈으로 뒤덮인 시베리아 벌판에서 홀로 개썰매를 끌고 가는 심정이 되버렸다.

화양 28일의 엄청난 속도를 온 몸으로 감당하면서 나는 극한의 공포와 살의(殺意)를 느꼈다.

화이트아웃!

차라리 내게 어서 빨리 설맹(雪盲)이 찾아와주길 바라고 또 바랐다.

진심으로... 

이 뜨거운 불볕 도시 "화양"이 나를 완전히 연소시키기 전에!

무간지옥,

어떠한 구원도 머물지 못할 도시 화양.

나는 그곳에서 나를 지켜낼 수가 없었다.

 

원인체 규명도 되지 않은 '인수공통전염병'인 빨간 눈의 괴질.

받아들일 수 없는 사건은 엄청난 치사률을 보이며 살아 있는 사람들을 삼킨다.

포식의 본능은 단 한번도 쉬지 않고 야수의 그것처럼 맹렬하고 가차없이 물어뜯는다.

그리고 그 야수성에 조금도 뒤지지않고 자행되는 인간의 참상들.

그건 전염병으로 인한 죽음보다 더욱 끔찍하고 포악하고 야만적이었다.

인간들 스스로의 폭력과 증오에서 비롯된 죽음들. 죽음들, 죽음들!

...... 그날의 학살은 화양시내에 남아 있던 군인들의 손에서 시작되고 끝났다. 이후 화양은 콘크리트 덩어리와 시신만 우글대는 정글이 되었다. 빨간 눈은 지옥 불처럼 화양을 태웠다. 용케 불길을 피한 이들은 굶어 죽거나, 얼어 죽거나, 다른 사람들의 손에 죽었다. 약탈, 총질, 강간, 살인, 방화......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온갖 일들이 매일, 매 순간, 도처에서 일어났다. 서로 죽이고 죽고 분노하고 절망하고 공포에 떨며 고속으로 공멸해갔다. 남은 자들은 서로를 피해 가시 세계 밑에 숨어 지냈다 ......

작가 정유정이 이 이야기의 시놉을 쓴 건

구제역 파동으로 생매장당하던 돼지들의 살처분 동영상을 접하던 밤이었단다.

참담하고 슬프고 부끄럽고 두려웠단다.

그리고 그 뒤에 물음 하나가 남았단다.

"만약 소나 돼지가 아닌 반려동물, 이를테면 개와 인간 사이에 구제역보다 더 치명적인 인수공통전염병이 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 물음은...

결국 "울음"이 되버렸다.

 

모든 살아남고자 하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

'살아남고자 하는 것'이 야만의 "욕망"으로 치달은 세상.

정유정의 <29> 속엔 숨겨질 수 없는 지금의 현실과 사회가 적나라하게 담겨있다.

더불어 1980년대 광주의 참담함까지도 그대로 재현시킨다.

이 끝없는 오버랩.

(글 구성이 서로 오버랩되는 것도  작가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무간지옥의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남는 게 목표라면,

이 책을 덮어라!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은 모르는 게 낫다.

모르는 동안은 절망과 맞닥뜨리지 않아도 될 테니까.

만약 이 모든 것들과 맞설 각오가 되어 있다면.

이제 거침없이 책장을 열어라.

다섯 명의 인물(서재형, 한기준, 김윤주, 노수진, 박동해)과

세 마리의 개(링고, 스타, 쿠키) 중에 당신의 모습이 있다.

찾아라!

당신의 정체를!

 

들리는가!

살육과 살육이 범람하는 그곳에서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목소리가!

그들의 목소리가.

당신의 목소리가.

"살...려...주...세...요...!"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