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1. 3. 23. 05:45
2010년 8월 27일 소설가이자 번역가, 평론가, 신화연구가였던 이윤기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은
내겐 엄청난 충격이었다.
심장마비라고 했다.
얼마 후엔 이런 소식도 있었다.
양평에 있는 집필실 책상 서랍에 그대로 책으로 출판할 수 있는 원고가 남아있노라고...
그리고 2011년 그의 소설집과 산문집이 유고집이란 부제를 달고 동시에 출판됐다.
소설집 <유리 그림자>와 산문집 <위대한 침묵>.


"죽음은 죽는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잊히는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이렇듯 잊히지 않고 있으니, 그 떠난 자리가 참 아름답다."

산문집 속에 담긴 이 글귀는 그의 영면으로 드디어 완성되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책을 안 읽어본 사람이 우리나라에 있을까?
그가 쓴 그리스 로마 신화는 재미있었고 그리고 그 재미보다 더 유익했었다.
그래서 인기있는 연재소설을 기다리듯 1권을 읽고 2권을,
2권을 읽고는 3권을 기다렸었다.
재미와 유익함 뒤에는 박학함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독특한 이력들과 다방면에 걸친 글쓰기...
그래, 어쩌면 그때부터 이윤기는 신화의 세계 속에 사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상하게도 그는 이국의 나라 신화를 이야기 할때조차도 뭔지 모르게 구수하고 다정했다.
그 숱한 어렵고 긴 인물의 이름이 이상하게도 그의 글 속에선
바둑이와 재미나게 노는 철수나 영희 같았다.
거대한 몸짓의 그리스 로마 신화가 동구밖 과수원길 이야기처럼 느껴졌었다.
신화를 상대한다는 박학함의 타성을
그는 다정하고 명쾌한 글을 통해 호기있게 깨부쉈다.
그리고 이 모든게 1999년 2월 흑해가 내려다보이는 터기의 "흐린 주점"에서 시작된 것임을
이 책을 읽고 알았다.

...... 그렇다, 나도 나의 흑해를 건너자!
나의 목적지는 그리스였다. 로마였다.
그다음 해인 2000년에는 한국으로 돌아와 그리스와 로마 신화 책을 썼다. 반응이 좋았다. 내가 퍽 자랑스럽게 쓰거니와, 이런 우여곡절 끝에 나의 신화 책은 200만 명에 가까운 독자들 손에 들어갔다.
터키의 흐린 주점에서, 나의 흑해를 건너야 한다고 결심하지 않았으면 나는 어찌 되었을꼬! 나의 신화 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좌절해 잇는 젊은이들을 위해서 쓴다. 흑해는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

 


그가 남긴 37편의 글은은 소소하고 다정하고 평범한 일상들의 기록이다.
작가 이윤기의 글이 아니라 생활인 이윤기의 글!
(그래서 더 눈밑이 붉어진다)
그는 경기도 양평의 집필실 주면에 1000 여 그루의 나무를 심고 가꾸면서
개인적으로 참 멋진 신화 속에 지냈던 것 같다.
글 여기저기에 자연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깊다.
...... 한 번도 "꽃"으로 피어보지 못한 채 나는 "잎'으로만 살았다. 그래도 잘 살고 있느니 젊은이들이여, 힘들 내사라 ......
중학교 졸업후 거의 모든 것을 독학으로 배우고
신춘문예는 당선이 아닌 가작으로 입선하고
대학도 중퇴를 해버린 이윤기의 "잎"같은 푸른 말에 나는 덩달아 위로받았다.

나는 어쩐지 그가 신화 저 너머의 세계에서
제우스나 바쿠스, 헤라클라스나 큐피트와 함께 옹기종기모여 술잔을 치고 있을 것만 같다.
이윤기가 한국에서 이들의 유명세에 한 몫 단단히 했으니
아마 그들도 고마워하며 술잔을 넙죽넙죽 받아넘기고 있지 않을까?
어쩌면 그들 옆에서 이윤기는 개구진 웃음을 웃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제우스의 지팡이와 번개, 바쿠스의 포도주가 담긴 술병, 큐피트 활을 보면서
또 다른 이야기꺼리를 생각하고 있을지도...
그 뒷얘기를 다 들을 수 없음이
이젠 왠지 분하고 억울하다.
신화와 침묵의 세계!
이윤기는 자신이 왔던 곳으로 그렇게 돌아갔다.
그가 없는 신화의 세계란...
어쩐지 밍밍한 맹탕같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11. 3. 06:01
제목만 보고는 이 책을 읽을 것인가 말 것인가 망설였다.
칙릿이거나 뻔한 로맨스 소설이겠거니 했다.
이 계절에 칙릿을 읽는 건 왠지 처량해 보여서...
지은이 조진국은 소위 잘나가는 드라마 작가다.
<두근두근 체인지> <안녕, 프란체스카>, <소울메이트>
쾌나 매니아층을 형성했던 드라마다.
첫 장편소설이긴 하지만 그전에 두 권의 에세이를 출판했다.
<고마워요, 소울메이트>,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
대략 어떤 내용이고 분위기일지는 감지되고도 남는다.
이 소설은 2009년 9월부터 11월까지 <코스모폴리탄>이란 잡지에 연재했단다.
패션모델, 스타일리스트, 작가, 네일 아트스트
등장인물들과 어울리는 잡지에 연재했다는 게 아무래도 플라스 효과가 되지 않았을까?
적당히 감각적이고 적당히 감상적이고, 적당히 유치하다.
소설의 제목인 "Kiss Kiss Bang Bang"은
Pizzicato Five 노래 제목이란다.
들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책을 읽고 나면 어떤 느낌의 음악일지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또 다시 류이치 사카모토 탱고 음악이 등장한다.
글 쓰는 사람들에게 유난히 영감을 많이 주는 류이치 사카모토.
한 번 찾아서 들어봐야지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소설은...
4명의 주인공이 각자 화자가 되어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하는
흔하고 흔한 로맨스 소설이이다.
솔직히 두 명의 화자는 유치하고 뻔했고
두 명의 화자는 그런데로 읽어줄만 했다.



# Poison prince ㅡ 나현창 / 25세 / 삼류 모델
# My heart is as black as night ㅡ 민서정 / 33세 / 스타일리스트
# Writing to reach you ㅡ 정기안 / 34세 / 소설가
# Broken bicycles ㅡ 조희경 / 33세 네일 아티스트

때로는 한 문장에, 혹은 한 단어에 꽂혀 끝까지 책을 읽게 될 때도 있다.
"Writing to reach you"
이 문장이 내게 그랬다.
나도 가끔은 분홍색 코끼리를 보는 사람이기에...
1941년 만들어진 디즈니 애니메이션 <덤보>
그 애니메이션에서 아기 코끼리 덤보가 샴페인을 먹고 취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덤보 눈에 분홍색 코끼리들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게 보이게 된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술에 취한 사람이 환각을 보는 걸 분홍색 코끼리를 본다고 한다나....
그렇다면 나는 더 심한 편일지도 모르겠다.
술에 취해서가 아니라 맨 정신으로도 분홍 코끼리를 보니까 말이다.

이 소설에서 나는 로맨스를 읽거나 줄거리를 읽진 않았다.
냄새, 낌새를 읽었다.
하얀 눈으로 사방이 덮여있다고 그 속까지 깨끗한 건 아니다.
어차피 지저분하게 드러나게 돼 있는 걸 잠깐 거짓말로 만드는 것일 뿐.
"영원히" 라는 말은 어차피 없다.
잠깐 스쳐가는 찬란한 순간만 있을 뿐.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3. 22. 06:25
지난 주 합정동에 있는 양화진문화원을 다녀왔다.
매주 목요일마다 강좌가 있는데 이 날 연사가 소설가 박완서님이었다.
사람은 누구라도 한 번쯤 소설가(작가)가 되기를 꿈꾼다.
그리고 마흔의 나이에 문단에 등단한 박완서님은 그런 사람들의 로망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박완서님은 모든 사람의 로망이 되는 셈이다)
1931년 10월 20일 생이니까 올해 여든이 되셨다.
그런데 너무 정정하고 정말 고운 모습이라서 놀랐고
그 수줍던 미소가 따뜻하고 평화로워서 또 다시 놀랐다.
수줍은 소녀같은 대가의 모습은 향기로웠고 그리고 더불어 잔잔한 물결의 흐름같았다.



<나는 왜 소설가일 수밖에 없는가?>
연좌에 앉아서 옛기억을 반추하며 이야기하는 모습은
아주 달고 시원한 시골집 우물물을 방금 길어와 마시는 것처럼 청량하기까지 했다.
80의 노구(老軀)가 말하는 어릴 적 부모에게 사랑받은 깊은 기억은
울컥울컥 당신의 눈가를 붉게 만들었고
나는 그런 당신의 유년이 탐이나서 할 수 있다면 송두리째 훔쳐내고 싶었다.
<나목>이 서 있는 <유년의 뜰>에서의 <엄마의 말뚝>,
그 기억이 결국은  <친절한 복희씨>까지 쓰게 하는 힘이 됐음을 당신의 고백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신의 이 모든 이야기는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 고스란히 담겨있기도 하다.



강연에서 박완서님은 자신이 소설가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아니 소설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네 가지 정도 언급했다.
첫째, 어릴적 부모님에게서 받았던 지극한 사랑.
둘째, 항상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던 당신의 어머니.
셋째, 동네 여인들의 편지를 써 주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바라봤던 기억.
그래서 당신이 그 엄마의 딸이었기에 "엄마를 흉내내는" 소설가가 될 수 있었노라 고백했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6.25 전쟁을 겪으면서 당신이 겪었던 상황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서였단다.
그 당시 버리지 취급받았던 모욕과 기만, 박해의 기억들을 절대 잊지않고 기억해서 
언젠가는 꼭 글로 쓰리라 다짐하게 됐다고.
그리고 그 다짐이 당신의 시대를 견디게 만들었노라고... 
글로 남기는 게 인간으로서의 최후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라고 당신은 생각했단다.
그게 바로 쓰는 사람에게도 읽는 사람에게도 힘이 되는 "소설의 힘"이노라고...



모든 걸 뒤섞는 전쟁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깊은 "미움"을 박아 놓는다.
그러나 작가 박완서님은 또 분명히 말하기도 했다.
"미워하는 마음만으로는 그러나 글을 쓸 수 없다"라고... 
80의 노구(老軀)의 입을 통해 발음되는 "엄마"라는 단어는
미움을 넘어서 완전하게 풍요로웠으며 사랑으로 충만했다.
마치 꿈을 꾸는 듯한 표정으로 남긴 당신의 말들은 아직까지도 내 가슴 속에 생생하게 담겨있다.
"나는 환영받는 생명이었다"
당신의 입을 통했던 모든 이야기들,
미군 PX에 서울대라는 간판으로 직원이 됐던 이야기,
그 당시 1년간 함께 일햇던 초상화를 그리며 생계를 연명했던 박수근 화백의 모습,
(이 기억은 훗날 당신의 소설 <나목>의 모티브가 되기도 한다)
오빠의 죽음과 아들 이야기까지...
글보다 말이 두렵다며 조심스럽게 강연을 시작한 당신의 말들은
당신의 글만큼이나 따뜻했고 그리고 진실하고 다정했다.
(당신의 촉촉해진 눈가를 내가 어떻게 잊을까!)
이 세상에 허가된 거짓말이 바로 "소설"이란다.
그러나 그 거짓말 속에 진실이 담겨져 있기에 당신의 글을은 이유가 있고 가치가 있고, 믿음이 있다.
아! 이렇게 한 사람때문에 많은 사람이 풍요로울 수 있구나.
감동했고 그리고 진심으로 감사했다.
당신의 글들을 이제 나는 마디마디 조목조목 돒아보고 하나하나 쓰다듬으며 읽어내리라.
내게 당신의 글들이 "진심으로 환영받는 생명"이 됐음을 어떻게 의심할까?
당신이 더 곱기를, 더 소녀같기를, 더 꿈꾸기를 
돌아오는 내내 나는 감히 바라고 또 바랐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09. 12. 4. 06:11
<공중그네>의 작가 오쿠다 히데오.
우리나라에도 상당한 마니아 층이 있지 않을까 생각되는 일본 작가.
이 사람의 소설은 톡 쏘는 탄산 음료 같다.
입 안의 맛과 배 속에서 느껴지는 맛이 다르다.
마냥 재미있다고 말하기엔 미안한 그런 내용.
특별한 이야기가 아닌데도 뭔가 사람을 끌어들인다.
소시민의 매력과 능청이라고나 할까?
계산된 웃음이 아니라 일상의 단면을
아주 기발하고 재치있고 캐치한다.



그의 신착 <오 해피데이>
소소한 일상에서 의외의 순간에 해피함을 느끼는 6명의 사람을 그리고 있다.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무릎을 치며 동의하게 된다.
"맞아! 맞아!" 하면서...
30, 40대 중년의 문턱에 서 있는 사람들이 꿈꾸는
일탈, 그리고 생활!
일탈과 생활을 나란히 써 놓고 보니 어울리지 않는 조합같지만
여기에 코믹과 상상이 첨가되면서
놀라운 재미를 선사한다.



인터넷 경매가 삶의 낙이 된 주부,
그 삶의 낙은 여자에게 활기를 주고 젊음을 되돌려준다.
여자는 온 집을 뒤적이며 옥션에 올린 물건이 없는지 고심한다.
그녀 일생에 포인트가 된 옥션 경매..,
느닷없는 회사의 도산에 전업주부가 된 남자.
이런데 이런!
"전업주부"가 그 남자의 "청산"이 될 줄이야...
별거를 선언한 아내 덕분에 남자의 로망인
아지트를 만든 남자.
로하스에 빠진 아내.
그 이야기를 소재로 소설을 썼으나 가정의 평화(?)를 위해
출판사에 원고 파기를 간청하는 소설가...
읽다보면 참 재미있는 군상들이란 생각도 하게 되지만
딱 내 옆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이기에 더 공감을 하게 된다.



무엇보다 표지에 있는 이 아이의 표정이 너무 재미있어
자꾸 책을 덮게 된다.
상당히 "개죽이(?)"스럽게 느껴지는 아이의 표정.
귀엽기도 하고, 의뭉스럽기도 하다.
책의 내용과 딱 어울리는 그런 표정을 얼굴 가득 짓고 있는 아이...
딱 오쿠다 히데오 스러운 표정이 아닐 수 없다.
담장 위에 앉아 있는 고양이의 표정도 결코 예사롭지 않고...
이거 은근히 중독성 있다.
오쿠다 히데오처럼...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09. 10. 28. 06:25
맥주와 양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그의 최신작을 읽다.
처음엔 그랬다.
IQ(아이큐)84인줄...
지능지수 84인 누군가의 이야긴가... 하고 ^^



1984년 하나의 달이 존재하는 평범한(?) 세계
그리고
1Q84 달이 두 개인 또 하나의 모호한 세계
크고 동그란 노란색 달.
동그랗긴 하지만 작은 초록색 달
리틀 피플과 반리틀 피플의 세력(?)의 팽팽한 긴강감!



선과 악은 항상 장소와 입장을 바꿔간다고 한다.
중요한 건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가 아니라
그 둘 사이의 균형을 유지한 것!
그리고 그 균형 자체가 바로 "선"이 된다는 사실.



난해하다고 생각했다.
몇 년 전 이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야말로 닥치는 데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읽었었다.
한참을 읽고 났더니.
내가 꼭 맥주를 손에 들고 물이 말라버린 우물에 웅클리고 있는 양이 된 것 같아서
혼자 몹시 당혹스러웠던 기억... 



어느 날, 아오마메는 고속도로 비상계단을 지나오다
달이 두 개가 떠 있는 1Q84의 세계로 들어간다.
일상이 바뀐 것도,
눈 앞의 세상이 바뀐 것도 아닌데
그녀는 조금씩 그러다 결국 지배적으로 1Q84의 세계에 개입되고 만다.
그녀가 10살 때 부터 간직했던 사랑하는 사람 덴코마저도...
그 두 사람은 20여 년이 지난 시간까지 단 한번도 다시 만나지 못한다.
그들의 사랑은 모호하고  희미하다
그리나 비현실적인 만큼 지독히도 끈덕지다.



아오마메...
그녀의 직업은 근육 스트레칭을 가르치는 엑스퍼트다.
하지만 깊숙하고 은밀한 직업은 가학적인 남편, 혹은 여성을 성적으로 학대하는 남자들에게
날카로운 아이스픽을 목덜미에 밀어 넣는 일을 한다. 
그들을 저쪽 세계로 처리하는 일종의 cleaner.
덴고...
어릴 적 수학천재로 명성을 날렸지만
지금은 입시학원의 수학강사이며 
결정적인 것은 부족하지만 그래도 꽤 글을 쓰는 작가지망생이라고 할까?
그는 문예 편집자 고마쓰의 제안으로 17세 소녀의 <공기 번데기>라는 소설의 리라이팅 작업을 하게 된다.
그 소설은 소녀의 이름으로 신인상을 수상하고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대히트를 친다. 
동시에 덴고는 모호한 1Q84의 세계와 연결된다.
마치 자신의 글 속으로 빨려 들어간 것 처럼...



이 책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로 작정한다.
모호한 세계는 오래된 두통처럼 괴롭다.
모른 척 하고 싶은데 자꾸 머리 속을 돌아다닌다.
무라카미와 나와의 궁합을 따질 여력도 지금은 솔직히 없다.
현실적이라고 해야 하나? 신비주의라고 해야 하나?
이 사람은 늘 내게 교통정리를 하고 싶게 만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읽을 수록 매력적인 글이라는 사실이다. 
아직 규칙적인 수학공식같다.
그러나 결코 쉽게 풀리지는 않는 세기의 문제라고나 할까?
(혹시 내가 지금 1Q84의 세계 속으로 넘어와 있는 건가?)



모든 일이 겉보기와는 다르다.
평범하지 않은 일을 하면 일상 풍경이 조금 다르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겉모습에 속지 말라.
현실은 언제나 단 하나뿐이다.
현실이란 한없이 냉정하고 한없이 고독한 것이다.

만성적인 무력감은 사람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손상시킨다.

소설가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일 뿐이다.
이야기 속에 권총이 나왔다면 그건 반드시 발사되어야만 한다.
                                                                        - 안톤 체호프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9. 25. 06:17
 <나가사키 파파>- 구효서


나가사키 파파

 

오늘 소개할 책은 <나가사키 파파>입니다.

작가 구효서님은 1958년 생으로 신춘문예를 통해 1987년 등단해서 20 여년 동안 정말 많은 소설을 발표한 분입니다.

<카프카를 읽는 밤>,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  <마디>,  <그녀의 야윈 뺨>,  <물 속 페르시아 고양이>, 
<악당 임꺽정>, <낯선 여름>...

한 때 정말 열심히 찾아 읽던 소설가 중 한 분이었습니다.

<나가사키 파파>는 그가 6년 만에 선보인 장편소설입니다.(중간중간 중단편들은 계속 발표했었지만요)

기대했냐구요? 물론 기대했죠.

그리고 역시 기대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구요.

여성의 문체를 보는 듯한 따뜻함이며 디테일한 섬세함, 그리고 어떤 한 순간을 포착해서 멋지게 서술하는 그만의 특성들을 아주 맘껏 느낄 수 있는 소설이었답니다.

이분의 단편들을 모아서 만든 아주 유명한 영화도 있는데 혹시 아시나요?

바로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죠.


소설의 주인공은 일본 나가사키의 음식점 '넥스트 도어'에서 일하는 21세 한국인 “한유나”입니다.
그녀는 친부를 찾으려는 일념에 바다를 건너 지금 이곳 나가사키에 있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그녀에게 아버지에 대한 진실을 알리는 조금은 철없는 메일을 보내옵니다.

이야기는 주인공의 아버지 찾기라는 가시적인 목적에, 그녀 주변 인물들의 사연과 어머니의 메일을 통한 과거의 이야기가 서로 교차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바리데기>라는 전형적인 “아비 찾기”의 신화 원형을 이야기의 뼈대로 채택하고 있지만 결국은 그 원형을 벗어나 “자아 찾기”로 결말을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유나의 직장 동료들은 대부분 일본 사회의 주변적 존재들입니다.

일본 원주민 '아이누' 출신으로 자폐적 삶을 살아가는 일급 요리사 “쓰쓰이”.

부락민(천민 집단 거주지) 출신 여성을 사랑하는 식당 지배인 '“오오카”.

'조선' 국적을 고집하는 아버지와 불화를 겪는 재일동포 3세 “미루“ 언니.

이상하게 착하고 만만한 스무 살의 퀴즈왕 “히데오”

세상의 온 벽을 찾아다니며 그림을 그리는 그래피티 아티스트인 홀 담당 “기구치”.

엄마가 보고 싶어 눈물짓지만 죽어도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중국인 “아이코”.

그동안 숨겨왔던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과 '출생의 비밀'을 이메일로 털어놓는 철부지 엄마 박성희도 소설을 이끌어가는 또 다른 화자중 한 명입니다.

그녀의 남편 한빈, 그리고 한유나가 찾아 나선 또 따른 아빠 정민태.


궁금했습니다.

왜 <나사사키>란 지명을 차용했을까 하고요.

그래서 찾아봤죠. 그리고 나서 이해가 됐습니다.

<나가사키>는 순혈주의를 고집하는 일본 주류사회로부터 배척받는 이들의 삶터가 된 곳으로 일본 개항 역사의 시발지라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즉 모든 인종들이 혼합될 수 있는 그런 장소가 바로 나가사키였던 거죠.

일본의 순혈주의에서 배척당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아웃 사이드적인 장소.


이 소설은 아버지를 찾아 나선 오랜 길을 통해 오히려 아버지라는 개념을 해체하고 자신의 진정성을 찾아가는 내용입니다.

작가의 인터뷰 내용을 그대로 옮겨 볼까요?

"소설에서 뭘 드러내고 그러면 재미없어질까봐 (메시지를) 꼭꼭 누르긴 했지만 작품 속에서 조금씩 흘러나왔을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로 대표되는 혈통, 고향, 넓게는 민족, 인종 등 테두리 짓고 공통의 정체성을 강요하는 것들에 대해 다루고 싶었다"고...


“스물한 살, 나를 충동한 것은 결국 방황이었다!”

소설에 나오는 대목처럼 정말 그럴 때가 있습니다..

“사는 게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싶을 만큼, 모든 게 만만해지며 터무니없이 행복해지는 순간, 사각형 투성이의 공간도 더 이상 답답하지 않는 순간”이..

주인공 한유나는 생각합니다.

“더 이상 헤매지 않으려면 또 다른 아버지와 가족과 고향을 찾을 게 아니라, 나를 찾아야 하는 거 아닐까.”라고요.

아버지와 가족과 고향과 나라와도 무관한 나. 기대면서 닮고, 닮아서 군림할 수밖에 없게 될 나로부터 도망친, 전혀 다른 이름의 나.

그녀는 알게 된 것 같습니다.

<나>를 찾지 않는다면 어떤 아버지를 찾던 그 아버지를 잃게 될 거라는 거, 아니 결국 스스로 찾은 아비를 버리게 될 것이라는 것을요.


그렇다면 <아버지>란 여기서 결국 내가 품고 있던 옹졸한 꿍심의 다른 이름이었던 모양입니다.

지금까지 내 불확실성이 나 때문이 아니라 불확실한 아버지 때문이었노라 밀어붙일 수 있는 아주 그럴 듯한 보호막이 아버지였던 거죠.

“퓨전”이라는 말을 많이 들으시죠?

별개의 재료들이 합쳐져 제3의 다른 어떤 것으로 재탄생되는 퓨전의 신비,

이 책에서도 그런 퓨전의 냄새를 맡을 수 있습니다(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이질적인 사람들이 이곳 “넥스트 도어”에  모여 있습니다.

실제로 주인공은 이들을 가족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새롭게 만들어진 가족은 혈연과 지연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가족의 의미를 파괴하고 해체하는 그런 형태의 가족입니다.

아마도 주인공은 그 세계에서 더 큰 아버지를 찾게 되지 않을까요?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제가 일하는 곳에서 또 다른 형태의 가족을 만나서 많이 변할 수 있었음을 고백하게 되네요.

누구든 그럴 때가 없겠습니까!

나를 파괴하고 싶고, 철저하게 해체하고 싶고, 내가 내가 아니길 꿈꾸는 그런 때.

해답은 아닐지언정.

그래도 이 책은 공감을 하게 만들어 줍니다.

공감 또한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