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끄적 끄적...2011. 1. 4. 06:34
목표했던 건 아닌데 2010년 한 해 동안 182권의 책을 읽었다.
몇 가지 일을 안했더니(나름대로 안식년이었다)
책을 읽을 여유가 한결 많아져서 다른 해보다 30~40 권 정도 더 읽었던 것 같다.
꼭 몇 권을 읽어야지 작정했던 건 아닌데
적어도 한 달에 10권 이상은 읽자고 했는데 다행이다 싶다.
물론 허접한 책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좋았던 책들이 훨씬 많아서
개인적으로 풍성하고 따뜻했다.
아마도 내가 가장 나다울 수 있는 순간이
바로 뭔가를 눈으로 읽고 있을 때인 것 같다.
힘들 때나, 화가 날 때, 그리고 위로가 필요할 때
제일 먼저 하는 생각은
혼자 조용히 방에 담겨 책장을 넘기면 좋겠다는 거다
어쩌면 책 속으로 숨고 싶은 자폐적인 속성의 발동인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고 주절주절 떠드는 수다를
이제는 조금 줄여봐야겠다.
그 첫 느낌만 간단히 기록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계속 이렇게 수다를 떨다가는 자페적 속성이 더 깊어질 것만 같아서...
어쨌든 책은 나를 이곳과 저곳으로 연결시켜주는 일종의 다리다.
그리고 이 곳도...
이 모든 수다를 감당하느라 두 개의 다리가 꽤나 고단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사람들에겐 자기만의 숨구멍이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로 숨어 위로받을까?
다른 사람의 자폐적인 위로의 대상이 문득 궁금해진다.
나는 이제 다시 책 속으로
돌.아.간.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9. 8. 06:31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은 묘하게 서정적이다.
물가에 앉아 아주 천천히 작은 돌멩이를 던진 다음
역시나 아주 천천히 그 흔들림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
흔들림이 완전히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가 일부러 무심하게 다시 돌을 던지고 또 다시 기다리는 느낌.
일상같기도 하고
일상과 완전히 별개인 것 같기도 한 상황.
철저하게 현실적이면서도 몽환적인 느낌.
요시모토 바나나, 야마다 에이미와 더불어
일본의 3대 여류 작가로 불리는 에쿠니 가오리의 2010년 신작 <빨간 장화>를 읽다.



결혼 10년차를 넘긴 부부 이야기에 무슨 재미가 있을까?
신비감은 완전히 사라졌을테고 아이조차 없어 서
두 사람의 일상은 낮잠같은 무료함과
10년의 세월이 남긴 익숨함에서 오는 편안함이 있으리라.
딱히 둘 사이에 가슴 설렐 일도 없을테고
침묵과 별반 다름없는 수다를 조용조용 내뱉는 아내와
응! 어! 같은 건성의 의성어로 대꾸하는 남편.
아내는 남편은 전신주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점점 커지고 불가사의해지는 남편.
"어째서 나는 이 사람과 있으면 피곤해져 버릴까?"
결혼 10년을 지나온 아내라면 누구라도 한 번쯤 하게 되는 질문이 아닐까?
점점 현실의 남편보다 동일이지만 가상의 남편에게 더 많이 보호받고, 더 많이 의존하게 되는...
책의 아내 히와코는 그런 관계를 "불협화음"이라고 표현했다.
함께 있을 때보다 따로 떨어져 있을 때 남편을 더 좋아하게 된다는 아내의 유머러스한 독백은
진심인 동시에 진실이기도 하다.
이 부부,
위험할까? 삐걱댈까?
그래서 끝장을 보게 될까?



매년 크리스마스때마다 남편이 선물한 빨간 장화 모양의 과자!
3~4년이 지난 후 아내는 남편에게 말한다.
이제 빨간 장화 과자는 그만 선물하라고...
역시나 남편은 건성으로 대답하면서 돌아오는 크리스마스때마다 어김없이 빨간 장화를 선물로 사온다.
그러니까 이 "빨간 장화"는 상징적인 의미다.
"어째서 당신하곤 말이 통하지 않는 거야?"
(이 질문을 아내는 남편에게 했을까? 정답은 아니다. 어차피 남편은 듣지 않을테니까...)
남편 앞에서 끝없이 일상의 이야기하면서도 점점 외로워지는 아내.
세상 대부분의 아내들은 그래서 혼자하는 수다에 지치게 되면 생각하게 된다.
"외로운 건 그만하고 싶어..."

그러나 결말은 역시 일상이다.
남편과의 불협화음을 고백하던 아내 역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불협화음이긴 하지만 단조로운 화음과 견주면 이 또한 얼마나 매력적인가...라고.
어쩌면 결혼생활이란 건 정말 그런건지도 모르겠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어디에나 있는 막(幕)에 싸여 있는 듯한 느낌.
함께 하는 외로움이 주는 불안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모든 것에 익숙해지면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게 되는 지독한 아이러니.
에쿠니 가오리의 이번 소설이 그렇다.
일상을 가만히 들어올러 잠시 흔들어 본 후에(그것도 아주 조금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묘한 편안함이 있다.
그 편안함은 유쾌하기도 행복하기도 슬프기도 홀가분하기도 하다.
특별한 사건이나 이벤트 없이도 서정적인 글을 쓰는 작가.
마치 내가 10년의 결혼생활 속에 지금 막 쉼표를 찍고 있는 소설 속 여자같다.
복잡했지만,
측은했지만,
안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이 편해지기도 한다.
에쿠니 가오리...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1. 29. 06:21
이황, 백광훈, 유성룡, 박세당, 안정복,
이식, 강세황, 박지원, 박제가, 김정희
무려 10명의 조선 대표 선비들의 글을 만날 수 있는 책.
그것도 아들에게 보내는 지극히 개인적인 당부의 편지글들.



정민 선생(?)이 저자이기에
사실 은근히 기대를 하기도 했다.
다 읽은 지금은
좀... 실망스럽다.
조선의 대표 선비 10명의 글이라지만
그 편지글들의 내용은 전부 똑같은 내용뿐이다.
집안을 잘 챙기고, 공부하는 데 게으름 피우지 말고 때를 기다려라.
멀리 떨어져 있는 아비 걱정은 하지 말아라...
좀 더 살가운 것들을 기대했는데
역시 우리네 아비들은 참 무뚝뚝하고 그리고 한결같다(?)



책을 읽지 않으면 사람이 될 수 없다고 말하는 백광훈.
아무리 많이 읽은들 일일이 따져봐 의문이 생기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냐고
아들을 다그치는 유성룡.
책 보기를 그만두지 말라며 이것이야말로 인간 세상의 지극한 맛이라고 말하는 이식.
이 맛을 알지 못한다면 장차 세상을 피해 산속에 들어가더라도 근심과 괴로움을 견디지 못할 것이라며
자뭇 심각한 경고를 하기도 한다.
마음이 가벼운 사람이 놀라고
마음이 허약한 사람이 두려워하는 법이라며
항상 마음을 움직이고 성품을 눌러 마음이 제멋대로 나대는 것을 구하라고 가르친 안정복.
자식이 남을 업신여겨 허물을 즐겨 말한다는 소문을 듣고는
놀라고 비통하여 죽고만 싶노라 말하는 백광훈의 편지.
직접 고추장을 담가 보내고 간장 담글 때를 알리는 아비의 글들은
가슴이 쨍하긴 하다.
책과 종이를 빨리 보내지 않는다고 투정하는 아비의 귀염성들도 웃음을 짓게 한다.
생계를 벗어나 있는 아비의 글들은
생계를 짊어지고 있었을 어미의 팍팍함을 떠올리게 해 문득 아득해지기도 한다.
조선시대 선비의 고아한 삶 속에서
어미의 치열함을 빼면 과연 무엇이 남을까???

원문인 한자 편지를 풀어쓴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해가 되는데
굳이 각 편지마다 해석을 집어넣은 게 영 책 맛을 떨어뜨린다.
똑 같은 내용을 2번씩 읽어야 하는 불편함은
오히려 책을 수다스럽게 느끼게 만든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11. 30. 05:51
 <죽도록 책만 읽는> - 이권우



죽도록 책만 읽는

지난번에 소개한 간서치 이덕무와 유사한 책벌레의 책을 한 권 소개하려고 합니다.

책을 읽고 싶은데 어떤 책을 읽는 게 좋을지 모르겠다고 생각되는 분께 적극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일곱 개의 챕터로 구성된 이 책은 어느 한 쪽에 치우침 없이 다방변의 주제에 대한 책들을 적당한 호기심과 흥미를 유발하도록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이 책을 보면서 희망도서 목록에 상당한 책들을 추가했고 지금 열심히 읽고 있는 중입니다.

저처럼 두루뭉술하게 주절주절(?) 책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소위 말하는 에센스만을 짧고 간략하게 소개해 주고 있는 책입니다.

솔직히 꽤나 열등감과 부러움을 자아내게 만드는 책이죠.

그래도 평소에 책 좀 읽는다고 자부했었는데 이곳에 소개된 책들을 살펴보고는 읽지 않은 책이 훨씬 더 많다는 걸 알고는 번데기 앞에 주름잡은 스스로에 대해 반성하게 만든 계기도 됐습니다.

책의 저자 이권우!

서평잡지 <출판저널>의 편집장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야말로 책에 파묻혀 지냈던 사람이고 현재도 책을 통해 여전히 밥벌이를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스스로 “호모 부커스”를 자처하는 사람이기도 하죠.


“호모 부커스”

책 읽는 인간 존재라는 뜻의 신조어죠.(사실은 꽤 오래된 단어이긴 합니다만...)

이 말 속에는 “공유”의 의미도 함께 포함되어 있습니다.

흔히 독서라는 건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책 읽는 자의 궁극적인 목적은 저 또한 “공유와 소통”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작가 개인과의 생각과 감정 공유를 넘어 더 많은 타인과의 적극적인 소통의 시작이 “독서”의 매력이라고 개인적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호모 부커스”들은 상당히 개방적이며 지독히 현실적이기까지 하죠.

어설픈 독서가들은 현실과 이상 사이의 혼동을 겪게 되지만 “호모 부커스”들은 현실과 이상을 명확하게 구분함으로써 스스로 최대한 편견 없이 판단하고 평가하는 공정함까지 소유하게 됩니다.

“박학다식”이라는 말 속에 항상 “다독”이 포함되어 있는 이유기도 하죠.

눈이 갖는 기억력, 그래서 저는 책을 통해 얻게 되는 기억과 지식들에 대해 차별성을 두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은 말이죠...

사람을 참 조용히 수다스럽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 책, <죽도록 책만 읽는>도 그런 의미에선 상당히 수다스러운 책이죠.

그런데 그게 “바글바글” 떠들며 밖으로 퍼지는 소란스러움이 아니라 “소곤소곤” 다가오는 울림이라는 게 그 차이점이죠.

무려 110권이나 되는 책들의 수다를 들을 수 있습니다.

신문을 펼쳤을 때 부담감 없이 재미있게 보게 되는 한 컷짜리 카툰 같다고나 할까요?

짧은 글 속에 필요한 것들만 쏙쏙 알차게 들어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짧은 글 속에 촌철살인의 문구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가령, “고전”에 대해 말하면서,

“고전, 제목은 알아도 정작 읽어보지 않은 책”이라는 스피노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정곡을 찌르는 이야기를 시작하죠.

“...... 오늘, 다시 고전을 읽는 데는 다른 무엇보다 토론과 논쟁의 정신이 필요하다. 세월의 담금질을 겪으면 겪을수록 그 정신의 순도가 높아지는 것을 일러 고전이라 한다. 앎과 지혜의 고갱이가 가득 쌓인 곳간인 셈이다. 그러나 이 곳간은 좀처럼 자신의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지적 호기심이나 의무감만으로 고전을 읽으면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 정도로는 권위와 명성, 그리고 오해의 더께가 잔뜩 끼인 고전의 빗장을 열어젖힐 수 없다. 나는 고전의 문을 여는 열쇠는 치열한 문제의식이라고 여겨왔다. 우리 시대의 문제상황을 깊이 이해하고, 그 타개책을 찾기 위한 지적 분투의 필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질문만들기’라 할 수 있다.

질문을 만든 사람이 고전을 경전처럼 여길 리 없다. 고전의 지은이와 토론과 논쟁을 벌이게 마련이다. 막장을 뚫고나갈 지혜를 묻고, 그 답이 현재적 가치가 있는지 토론한다. 도전적인 토론은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이 과정에서 지은이의 사상이 안고 있는 한계가 드러나며, 이를 넘어서기 위한 대안을 찾게 된다. 이쯤 되면, 고전의 주위를 맴도는 지은이라는 ‘유령’이 가만히 당할 리 없다. 해석의 오류를 지적하거나 자신의 다른 책을 참조해야 한다고 복화술로 변호하기도 한다. 고전을 읽는 행위는, 그러므로 묵독일 수 없다. 제대로 읽으면 그것만큼 소란스러운 책읽기가 없다. 자신도 모르게 카니발적 책읽기에 몰두하게 된다..... “

고백컨대, 

저를 완벽히 KO패 시킨 문구였습니다.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책은 그러니까 “앎과 함”의 일치를 위해 우리에게 꼭 필요한 행위라고 이 책은 말합니다.

환상은 현실보다 힘이 세다고 하죠. 그래서 우리는 환상에 머물고픈 욕망에 늘 빠지게 됩니다. 그게 어쨌든 일반적인 힘의 논리니까 말입니다.

책은. 그러니까 그 환상을 극도의 차가운 정열로 바라보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카더라” 통신에 빠지지 않고 바른 시각과 주관을 갖게 만들어 주죠.

생각해보면 정말 책만큼 누구에게나 민주적인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책장을 열기만 한다면 누구에게나 공평한 세계를 그것도 비밀 없이 송두리째 보여주죠.

“다 열어보였으니 어디 한 번 맘껏 들여다봐라!”

책벌레들을 그래서 흔히 관음증 환자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책에 새겨진 다른 사람의 욕망을 책장을 커튼 삼아 훔쳐보는 책벌레들...

그러나 책을 탐하는 관음의 시선은 훨씬 더 근원적이고 깊고 고요합니다.

책을 구하고, 읽고, 즐거움을 나누는 모든 과정에 대한 일종의 은밀한 흥분감이죠.

그래서 책의 자궁이라는 것이 있다면 저 역시도 기꺼이 몸을 웅크려 작은 태아가 될 용의가 있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죽도록 책만 읽어도” 다 읽혀지지 못할 책들의 세계.

그 책들의 세계 속에 몸을 웅크리고 지독히 탐욕스런 관음의 시선으로 책들을 바라보자 권하고 싶습니다.

마술사의 비밀을 아는 순간 눈속임의 실체가 드러나는 게 아니라 드디어 스스로 같은 마술사가 되는 거라고 하죠.

오늘 해리포터의 세계로 함께 들어가자 여러분께 손 내밀고 싶습니다.

깊고 고요하고 간절하고 농밀한 관음의 세계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