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5. 6. 26. 08:18

가우디의 또 다른 걸작 카사 밀라 (Casa Mila)는

카사 바트요를 보고 반해버린 밀라 이 캄프스가 가우디에게 직접 의뢰해 만든 건물이다.

지금은 20세기 건축 베스트 10에 들어갈 정도로 유명한 곳이지만

완공 당시에는 엄청난 비난을 받아서

비행기 격납고, 지진 난 집, 말법집, 고기 파이 등 비아냥거리는 병칭들을 많이 받았다.

지금도 건물 앞에는 "La Pedrera"라는 현판(?)이 서있는데

이 단어도 "채석장"이란 뜻이다.

내 눈에는 아무리봐도 채석장처럼 보이지 않는데

스페인 사람들은 뭘 보고 이런 이름을 붙었을까???

(내가 스페인 채석장이 어떻게 생각는지 당췌 몰라서...)

 

 

카사 밀라는 카탈루나 몬세라트 산을 모티브로 지은 아파트먼트로

유려한 곡선의 미가 극대화 된 건물이다.

건물 외관의 모습은 출렁이는 파도의 느낌 그대로고

베란다의 까만 장식물은 해초를 떠올리게 한다.

바닥에서 위를 쳐다보면 

반짝이는 햇빛과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출렁이는 곡선미로

아주 유쾌한 미소를 짓게 만드는 곳.

그야말로 under the sea~~~

 

 

카사 밀라 지붕,

이곳은 외계에서 잘못 추락한 우주인들이 단체로 모여있는 미스테리한 장소다.

(외계인의 실제 용도는 굴뚝과 환기통)

스타워즈의 라스베이터 투구 모티브도 이 지붕에서 시작됐단다.

걱정스러운건,

어느날 이 우주인들이 자기 별을 찾아 다 떠나 버리고

카사 밀라의 지붕이 휑해져버리는건 아닐까다.

건물 외관 뿐만 아니라 지붕 바닥까지도 파도가 넘실거려

하루종일 뛰어놀아도 심심하지 않을 것 같다.

위에서 아래를 바라봐도, 아래에서 위를 바라봐도 출렁이는 파도.

사실 카사 밀라 지붕에서 사람의 흔적없이 사진을 찍는다는건 절대 불가능하다.

그냥 외계인과 지구인과의 만남이라고 생각하고 셔터를 누르면

그게 또 색다른 재미를 준다.

멀리로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과 토레 아그바르가 한 눈에 보이고

건너편엔 카사 밀라의 재해석이라고 할 수 있는 현대식 건물이 마주하고 있다.

(오른쪽에서 두번째 물결무늬 건물)

 

여행자의 회한이지만

가우디를 따라 가면 갈 수록 부러움만 쌓여간다.

일본의 안도 타타오를 바라는건 아니지만

우리나라도 자신만의 미적 기준을 가지고

이렇게 훗날까지 관광자원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건물을 만드는 건축가가 있었으면 참 좋겠다. 

서울을 먹여살리는 건축가.

가슴 뛰지 않을까!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1. 9. 26. 05:54
카파도키아는 워낙에 넓은 지역이라 며칠 동안 둘러본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장기여행자가 아니라면 어쩔 수 없이 tour를 이용하는게 효율적일 수 있다.
(3일을 머물면서 나 역시도 위르굽이나 아바노스 쪽은 아예 보지도 못하고 왔다)
Green Tour는 카파도키아의 서북부 지역의 명소를 둘러보며서 트레킹을 할 수 있는 tour다.
root는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은데
이날 root는 "우치히사르 -> 셀리메 수도원 -> 으흘라라 계곡 ->데린쿠유 지하도시 -> 피죤벨리" 였다. 
미니버스 2대에 나눠타고 세계 각지에서 온 30여명이 함께 움직였다.
우치히사르 아래 로컬 기념품 가게에 잠깐 멈춘 버스가 도착한 곳은 셀리메 수도원(Selime Monastri)
카파도키아에서 가장 큰 수도원이었단다.
(터키인들 거대한 바위를 주거지로 이용하는 데는 단연코 세계 1위일거다)



나름대로 용도에 따라 구획도 잘 나눠져 있고 각각의 바위굴과도 효율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놀랐다.
잘 살펴보면 단순하고 소박한 색깔과 문양의 벽화들을 볼 수 있다.
셀리메 수도원에서 내려다보는 주변 풍경은 아름다웠다.
그리고 한적하고 고요했다.
어둠과 빛의 대비, 그리고 공존이 가장 극명했던 셀리메 수도원.
눈부신 햇빛에서 조금만 걸음을 옮기면 바로 어둡고 고요한 수도원이다.
수도원으로 사용됐던 당시 사람들은 이곳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둠과 빛을 보며 신을 생각했을까?



으흘라라 계곡(Ihlara Vadisi)
거장 조지 루카스 감독의 영화 <스타워즈>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다.
작은 강을 따라 트레킹하면서 눈이 엄청난 호사를 누렸던 곳.
전체 길이가 12km나 된다는데 계곡을 따라 5,000 개의 주택과 100 여개의 교회, 수도원이 있었단다.
전부 비잔틴 시대에 은둔생활을 하던 수도사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저 놀랍고 두렵기만한 종교의 힘!)
초입에 있는 아아찰트 교회를 방문했는데 역시나 성화의 눈과 얼굴 부위는 많이 훼손되어 있었다.
그나마 예수 승천 벽화는 훼손이 덜 한 편인데 아마도 높은 곳에 위치해서가 아닌가 싶다. 



Green Tour에서 가장 좋았던건 단연코 으흘라라 계곡  트레킹.
꽤 오랜 시간을 걸었지만 더 걷고 싶을 정도였다.
아름다운 하늘빛과 끝없이 이어지는 절벽들,
나무와 돌담들. 그리고 물 흐르는 소리.
더 놀라웠던 건 그 높은 절벽 끝에 거짓말처럼 예쁜 마을이 있었다는 거다.
갑자기 눈 앞에 나타난 마을때문에 잠시 어리둥절했던 기억.
주변의 자연에 그대로 흡수되어 있는 마을을 보면서
이곳만은 우리나라처럼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산산조각나지 않길 진심으로 바랬다.
그만큼 눈에 오래오래 담아두고 싶은 모습이었다.
나중에 시간이 허락된다면 으흘라라 계곡 구석구석을
내 두 발로 오래오래 걸어보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심도 생겼다.
그러니 부디 그때까지 이 모든 풍경들이 나를 기다려줬으면... 
제발!



으흘라라 계곡.
이곳에 비상구 하나 남겨두고 오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1. 7. 15. 05:50
최인호는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로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K에 대해 언급하더니
황석영은 <낯익은 세상>으로
소비와 생산의 세상이 남긴 인간 세상의 폐허를 이야기한다.
이러다  정말 "낯익은 OOO"이 문학적 화두가 되는 건 아닐까?
최인호, 황석영, 조정래...
요즘 문학계 노장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그리고 그 심상치않음이 나는 신명나고 즐겁고 그리고 고맙다.
(장편으로 새롭게 탄생된 조정래의 <황토>도 어여 읽어봐야지!)



그에게 이 소설은 여러 의미로 남다르리라.
작가생활 50년 최초로 전작으로 발표한 장편소설 <낯익은 세상>
작년에 <강남몽>의 표절시비로 구설수에 올랐던 황석영은
이번엔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을 떠올리게 하는 "꽃섬"이라는 세계를 만들어냈다.
작품을 위한 칩거였는지, 구설수를 피하기 위한 일종의 은둔(?)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소설을 쓰기 위해 그는 중국 리장(麗江)과 제주도에 거의 머물렀다고 한다.
시간이 멈춘듯한 장소였다는 중국의 리장.
그러나 그곳 역시도 대도시 뉴욕이나 파리처럼 
인간의 욕망에 의해 점령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소설의 모티브를 생각했단다.
뭐 굳이 그걸 중국까지 가서 느낄 필요는 있었을까 싶긴 하다.
왜냐하면 눈만 돌리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딱 그러니까.
소비와 생산의 잔재로 점점 폐해와 쓰레기더미로 변하는 세상.
난지도 쓰레기 매립지에 인접한 곳에 터잡고 산지 오래된 나는
어릴 때 문만 열면 온갖 기묘한 쓰레기 냄새가 아침을 그야말로 화끈하게 열어주곤 했었다.
그 쓰레기산이 지금 저렇게 멀쩡한 상암월드컵경기장으로 변신해서
서울시민의 쉼터가 됐다는 사실이 참 신기하긴 하다.
내가 아는 최고의 before-after 반전스토리가 아닐 수 없다.
옆길로 들어와버리긴 했지만
어쨌든 그 곳에 사람은 산다.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소설처럼 김서방네 가족이 사는 제 3의 공간(도깨비 세상)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지극히 팡당한 시츄에이션인 도깨비를 등장시킨 이유에 대해 황석영은 말했다.
"욕망의 추악한 냄새와 잿더미, 자연적 치유의 순환 고리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도깨비 정령들을 불러내 하나의 화해의 모티브로 제안했다" 라고...
글쎄...
내 지적 능력이 현격하게 떨어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김서방네 대가족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소리다.
"세상에 니들만 사는 줄 아냐?" 라는데
그렇다고 도깨비를 버젓이 등장시킨건 너무 환상적(?)이고 유아적이지 않나?
나이가 들면 어린아이가 된다는데...
황석영의 친구들도 그랬단다.
만년 문학은 "치매문학"이라고.
그래서 대략 그려려니 하고 이해하기로 했다. (*^^*)



수월하고 쉽게 읽혀지는 소설이다.
환상소설? 성장소설? 어른을 위한 동화? 혹은 재난 소설?
암튼...
읽으면서 코멕 맥카시의 <The Road>와 비교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The Road>가 대단한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황석영의 예전 성장소설들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딱히 줄거리가 중요한 것 같지도 않고
깊이감이 있어 읽고 난 후에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류의 책 역시 아니다.
성찰 혹은 반성 좀 하라고 훈계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냥 도깨비 세상 같다.

열심히 필력을 자랑하고 계시는 황석영이 현재 구상하고 있는 책이 있다는데
이게 또 의외다.
"내년이면 등단한 지 딱 반세기인데 50주년 기념으로 《이야기꾼》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쓸 거예요. 황석영을 아바타로 만들어 19세기에 두고 여러 풍랑을 겪는 이야기꾼의 일생을 다룰 예정이죠.연재가 아니라 전작으로 집중해 쓸 겁니다. 저의 80세,90세 때의 모습이 보이시나요?"
그러시단다.
황석영의 아바타라...
그 연세에 참 다양한 시도를 끊임없이 하는 저력은 일단 너무나 놀랍다.
결과물이 그만큼 잘 나와줬으면 하는 바람.
혹시 이러다 스타워즈급의 소설 한 편이 탄생하는 건 아닐까?
문득 황석영 아바타가 광선검을 들고 서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대략 난감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5. 20. 09:17
"메르하바~~~"
(안녕하세요?)
잠깐이었지만 터키를 다녀왔다.
이 책을 나는 이렇게 시작하고 싶다.



이스탄불에서  보스포루스 해협을 횡단하는 페리를 타고
다시 돌무쉬와 트램을 몇 번씩 갈아타면서
나는 하렘를 들러보면서 터키 황실의 화려한 과거를 그려보리라.
"스타워즈"의 촬영지였다는 카파도키아를 들러
지하 도시를 길을 잃어도 오래오래 깊게깊게 다녀보리라.
조용한 호숫가 마을 에이르디르에서는
떠나고 싶을 때까지 마냥 기다림처럼 앉아 있을 것이고.
하루 다섯 번 메카를 향해 절을 하고 기도하도록 알리는 "아잔" 소리에 낯설어 하면서
걸음을 멈춰 볼 것이고,
용기를 내서 "Tree House"에도 올라가보리라.
지중해 고대 도시 올림포스에서는
코발트빛 지중해를 눈이 시리도록 내내 찬란하게 바라보리라.
그리고나면 나는 다시 돌아오고 싶어질까?
어쩌면... 아닐지도...




여행작가 오소희.
1971년생인 그녀는 이제 고작 3살이 된 아들 중빈(JB)과 함께
터키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1.5인의 함께 하는 여행.
그리고 그녀는 분명 아들을 데리고 간 것이 아니라 함께 여행을 했다.
터...키...
내가 늘 꿈꾸는 유토피아의 세계.
언젠가 내가 말없이 훌쩍 사라져버린다면
나는 분명 터키에 있을 것이다.
이스탄불의 블루모나코와 성소피아 성당 앞에서
신에 대한 경외감을 느낄 것이고
올림포스의 지중해 태양아래 펼쳐진 푸른 물 속에서
말갛게 나를 행궈내고 있을 것이다.
터키... 터키... 터키...
나를 터뜨릴 것 같은 이 나라가 나는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 버겁고 그립고
끔찍하게 보고싶다.






이 책은 내게 너무마 치명적으로 절망을 안긴 책이다.
터키... 미치도록 가고 싶은 나라.
아니 미쳐서라도
꼭 가고 싶은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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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낯선 이에게 이렇게 다정한 사람이 아니었다. 여행지에서조차 불필요한 시선이나 말과 미소를 아끼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내가 아이를 키우는 동안 변했던가?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고마움을 배운다"는 것과 동의어다. 그들이 내 아이를 향해 웃었기 때문에 나 또한 그들에게 고마운 미소를 짓는다. 그러면 그들은 어김없이 두 배로 화사한 미소를 다시 내게 돌려준다.
이제는 누가 머저 미소를 짓는지 잘 알 수가 없다. 나는 이곳에서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누구에게나 인사를 한다. 그리고 오느새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는 많은 터키인들 사이에서 손짓 발짓 섞어가며 대화를 하고 있다. 아루런 계산도 긴장도 없이 새로운 사람과 관계 맺기를 즐기는 것. 아무래도 내가 아이를 데려온 게 아니라, 아이가 날 이곳에 데려온 것만 같다.

비슷한 연배의 사람이 험한 노동에 늙어버린 얼굴을 하고 있거나 나무껍질 같은 손을 지니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죄책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내가 가끔씩 거울 속에서 찾아내는 나이듦의 징후들은 이들의 "진짜" 주름에 비하며, 한없이 사치스럽다는 생각이 드는 까닭이다.
"카파도키아"란 중부 아나톨리아 고원 일대를 아우르는 명칭이다. 몇 차례에 걸친 화산 활동으로 이 일대가 잿빛 응회암으로 뒤덮였고, 이중 일부는 풍화 작용을 거쳐 기괴한 모양을 만들었다. 영화 "스타워즈"의 촬영 장소였다고 하면 어느 정도 설명이 되리라.
그러나 이 자연 비경만으로 관광객들이 들끊는 것은 아니다. 이곳은 로마 시대에 탄압을 피해 숨어든 기독교인들의 주거광간이 되기도 했던 지하 도시와 동굴집으로도 유명하여, 역사적 종교적 유적을 확인코자 하는 이들의 발길 또한 끊이지 않는다.

내가 10대였을 때는, 누군가 타인을 위해 봉사하고 내가 하기 어려운 일을 앞장서 해준다 하더라도 그것은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에 불과했다. 내가 20대였을 때, 타인에게 봉사하는 것은 감사해야 할 일이지만, 자신의 삶을 성실히 영위하는 것은 "먹고 살기 위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30대인 내게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것은 "위대한" 일이며, 자신의 삶을 성실히 살아가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자신의 삶을 성실히 꾸려나가는 것에도 부단한 노력과 결심이 필요하다는 것, 그러한 노력과 결심이 조용한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까닭이다.

예전에 나는 낯선 사람과 그렇게 "즉각적으로 공통의" 화제를 찾아 환하게 미소를 터뜨려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쉽게 열리고 나눠본 적이 없는 삶이었다.
그럿은 또 내가 어떻게 자랐는가를, 얼마나 많은 미소와 따스한 손길과 보살핌 속에 성장하여 오늘날 이렇게 존재하게 된 것인가를 감사히 반추하게 되는 계기이기도 했다. 이전에 내가 반추했던 것들이 상처와 얼룩에 대한 기억이었다면, 이후에 나는 아이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면서 내가 받은 사랑의 기억들을 떠올리고 비로소 화해와 치유의 시간을 갖게 된 것이다.

관계의 많은 부분은 희생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자신이 희생하는 것들과만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무언가를 좋아하는데 그것을 얻을 수 없다면 이유는 간단하다. 그 "무엇가"를 위해 자신이 희생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좋아하는 것을 위해 아무것도 희생하지 않으면서 "얻을 수 없다"며 푸념을 늘어놓는 사람들과 거리를 유지하게 되었다. 그들의 오해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과 달리, 그 "무엇가"를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희생하지도 않는 것이다.

아이가 해낼 수 없는 것을 요구하는 것은 부모의 무지이자 욕심이다. 그러나 아이가 해낼 수 있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는 것은 부모의 무능력이다.

아들아, 세상에는 유희가 생략된 유년을 보내야 하는 아이들도 있단다. 따스함과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단다. 네게는 세 살부터 시작된 이런 여행이, 한평생을 다해 노력해도 이룰 수 없는 사치가 되는 사람들이 많이 있딴다. 나는 네가 그런 사람들을 부단히 많이 보아서, 끝없는 속도전에서 비롯되는 초조와 이기심으로 차갑게 마음이 식어버렸을 때마다 스스로 발광하는 태양처럼, 스스로 네 마음을 뜨뜻하게 덥힐 수 있기를 바란다. 가진 것을 느끼고, 가진 것에 감사하고, 감사한 마음으로부터 나누고, 함께함으로써 더 많이 채울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게 융숭 깊은 사람으로 자라주렴.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