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1. 2. 4. 10:42

"무대가 좋다" 다섯번째 작품 <아트>
그리고 악어 컴퍼니의 영원한 스테디셀러 <아트>
오죽하면 수컷들의 수다임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들을 싹 다 여자로 바꾼 아트까지 나왔을까?
대학로에서 제일 많이 본 포스터도 내 기억엔 <보잉보잉>과
<아트>인 것 같다.

2006년도인가 2007년도인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권해효, 조희봉, 이대연이 출연하는 <아트>를 봤었다.
그때 느낀 재미와 충격이란!
아마도 출연배우들의 내공도 큰 몫을 차지했겠지만.
권해효의 규태는 정말 인물과 일체감이 느껴졌었다.
그 표정이며 어이없어하는 말투며, 홍삼다시마 골드를 분노게이지 상승시키며 우걱우걱 씹어대던 모습이며... 
그리고 약간 촌스럽게 생긴(죄송^^) 조희봉의 청담동 피부과 의사 수현 역은 기대 이상으로, 아니 상당히 꽤 세련됐었다.
지금 말하는 까도남의 원조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이대연의 덕수는 구수하고 소박했고 지극히 현실적이었고...


그때 공연장을 나오면서 꼭 다시 봐야지 했었는데 무슨 이유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러지 못했다.
지금처럼 OB팀, YB 팀은 아니지만 그때도 역시 두팀으로 나눠서 공연됐었다.
권해효, 조희봉, 이대연이 한팀이고
다른 한 팀이 박광정, 정원중, 오달수였나?
(몹쓸 놈의 기억력이 또 흐려지는 중이다.)
대학로에서 상당히 오래 공연됐음에도 불구하고 박광정의 규태는 결국 못보고 말았다.
그리고 결국은 영원히 박광정의 규태는 볼 수 없게 돼버렸다.
개인적으로 박광정이 연출하는 연극 무대도 참 좋았지만
난 이 사람이 무대위의 배우로 나오는 모습이 너무 좋았었다.
액센트같던 배우, 무대의 방점 같던 배우 박광정이 그래서 늘 안타깝고 아깝고 그립다.



일부러 정상훈, 김재범, 김대종 YB팀을 선택했다.
류태호, 이남희, 윤제문, 유연수의 OB팀도 궁금하긴 했지만
어쩐지 젊은 수컷(?)들이 만들어내는 아트도 상당히 예술일것 같아서...
그리고 개인적으로 YB팀의 싱크로율이 등장 인물들에 상당히 흡사해보였다.
특히나 뮤지컬 <스팸어랏>를 통해 특별한 우정을 만든 세 사람의 동반 출연이라는 게  흥미롭기도 했고.
그들 스스로가 함께 하고 싶다고, 세 사람이 한 팀이 되겠다고 해서 만들어졌다는 YB팀!
나름대로 호흡과 발란스가 잘 맞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도 됐다.
결론은...
좋았다. 생각보다 훠얼~~~씬!



정말 남자들도 이렇게 소란스럽고 수다스럽고 유치찬란하게 싸울까?
정말 그랬으면 좋겠고 어쩐지 확실히 그럴 것 같다.
수컷들이라고 뭐 별 다를게 있나?

"친구가 그림을 하나 샀습니다.
 하얀색 바탕 위에 선이 있는 하얀색 그림입니다.  
 이 그림의 가격은 무려 2억 8천 만원입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사건의 발단은 규태의 첫 대사에 나오는 것처럼 "앙트로와"가 그렸다는(?) 하얀 바탕 위에 하얀 그림이다.
("앙트로와"가 정말 실존하는 화가인지 찾아보려다 귀찮아졌다. 실존 하던지 말던지...)
그리고 규태(정상훈), 수현(김재범), 덕수(김대종)의 유치찬란 시끌벅적 물고 뜯기가 시작된다.
내 돈 가지고 내가 쓰겠다는데 늬가 무슨 상관이냐?
맞는 말이다!
상관, 당연히 없다!
그런데 어쩌나!!!
그 상관없는 일에 배앓이 꼴리는 건 또 내 몫이다!
왠만한 전셋값뿐만 아니라 집 한 채도 살 수 있는 가격이다.
나라도 철친이라는 인간이 이 따우 짓거리를 했다면(이건 순전히 내 입장에서다...)
분노 게이지 무한 상승하면서 배신감 비슷한 감정 처절히 느꼈으리라.
세 사람도 이 사건이 기폭제가 돼서 고래고래쩍 푹 삭은 감정들이 그야말로 봇물 터지듯 쏟아진다.
(원래 발효의 깊이와 세월만큼 곰삭은 냄새의 상관관계 수직상승하신다)
급기야는 규태 마누라 피부가 돼지 껍데기였노라는 피부과 의사의 충격 고백까지 나오신다.
설상가상으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격으로 문구점 싸장님 덕수가
이 모든 사건의 주범이라는 두 친구의 일방적인 몰아붙이기 사태 발발한다.
그런데 어쩌랴!
본인들이야 참 속꽤나 너덜거리고 남들 보기 넘새스러운 광경의 연출이지만
보는 입장에선 그게 또 그렇게 통쾌하고 속시원할 수 없다.
타인의 찌질함을 들여다보며 박장대소하는 재미는
몰래 들여다보는 관음의 즐거움 그 이상이다.
솔직히 더 짜릿하고 묘한 만족감을 준다.
또 다시 어쩌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다는 게 불구경과 싸움구경이라는데...



연극을 보고 난 뒤 문득 예전에 갖지 못한 생각을 하게 됐다.
정말 수현이 2억 8천을 주고 그 그림을 샀을까?
이게 사실은 수현의 트릭이 아니었을까?
어딘지 이그러지고 어긋나는 그들 세 사람의 우정을 회복하고 싶은 일종의 깜짝쑈!
규태가 파란색 유성팬으로 스키타는 모습을 그리는 걸 바라보는 수현의 표정이
이런 생각을 갖게 한다.
어쨌든 다행인 것은 그들의 우정은 회복됐다는 사실이다.
참 매직블럭처럼 깜직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뭐 색은 약간 바랠 수 있겠지만... (이게 바로 매직블럭의 한계다)



이상하게 나랑 참 시간때가 잘 안 맞았던 김재범을 드디어 무대에서 직접 봤다.
상당히 매력적인 배우다.
살짝 여성스런 감정이 담긴 수현이었던 것 같은데 자신의 색을 과하지 않게 잘 표현한 것 같다.
코믹한 모습을 진지하게 연기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자칫하면 가볍고 정체성 불분명한 인물이 될 수도 있었을텐데
그 한계를 잘 지키면서 연기한 듯.
나중에 다른 작품을 하면 꼭 챙겨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몇 년만에 다시 본 연극이지만
여전히 괜찮은 연극이었고
그리고 괜찮은 배우들이었다.
그래서 괜찮은 나들이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5. 12. 06:51
 <잘가요 언덕> - 차인표



잘가요 언덕 



연기자 차인표가 책을 출판했다고 해서 생각했습니다.

적당한 사진 넣은 스타일리시한 책이거나, 종교서적, 혹은 세계의 가난한 어린이 후원을 목적으로 만든 책일거라고...

와~우!

그런데 이건 아니었습니다.

잘 쓴 책이라고 하기엔 투박하고 약간은 어눌하기도 하고 심지어 유치한 부분까지 있긴 하지만, 꽤 괜찮은 책이라는 걸 분명한 말씀드리고 싶네요.

이 사람,

“시대”에 대한 빚이 있는 걸까요?

예전에 <크로싱>이라는 탈북자 관련 영화를 찍었을 때도 그랬지만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아는 연기자 차인표는, 안티도 없고 가정도 예쁘게 꾸려나가고, 착하고 좋은 일 많이 하는 모범적인 연예인의 대표적 인물! 더 나아가 차인표처럼 열심히 살고 싶다는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사람.

그런데 이 사람이 책을, 그것도 장편 소설을 썼습니다.

본인이 말하더군요.

“저는 이 소설을 엉덩이로 썼습니다.” 라고.

(이 말을 들었을 때 전 그가 책을 쓰면서 느꼈을 부족함과 절실함에 대한 고백 그리고 그걸 채워낸 집념과 열정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또 말합니다.

“우리나라에 실력 있고 뜨거운 가슴을 가진 많은 작가 지망생들이나 신인 작가분들이 한 권의 작품을 출간하기 위해 오랜 세월 노력하는데 저는 연예인 프리미엄으로 너무 쉽게 책을 출판하게 된 것에 대해 미안함도 함께 있습니다.”

저는 이 사람의 배려심 담긴 말들이 참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책도 참 따뜻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자녀가 있는 분들은 꼭 읽어보길 권하고 아니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더불어 다 읽은 후엔 아들, 딸의 손에 꼭 직접 들려줘서 자녀들도 읽게 만들라고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책을 쓴 차인표도 제일 먼저 자신의 아들에게 읽어보라고 했다네요)

내가 잊고 살았던 것, 그리고 점점 잊혀져 어쩌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게 될 것들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내 세계의 축복받음에 대해 느낄 수 있도록 말이죠.

저는 이런 내용을 이렇게까지 예쁘고 착한 소설로 만들어준 작가가 한없이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호랑이 마을, 붉은 소나무 마을, 잘가요 언덕, 엄마별, 순이, 용이. 훌쩍이....

느끼셨겠지만 지극히 동화적인 배경이고 그리고 지극히 동화적인 인물들이 사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이 동화의 세계라는 건 다름 아닌 일제의 흔적이 지나가기 전 우리나라의 모습이기도 하죠.

아름답고 평화로운 호랑이 마을에 어느 날 황포수와 그의 아들 용이가 찾아옵니다.

촌장을 만나서 마을의 걱정거리인 호랑이(6발이)를 잡아줄테니 움막을 짓도록 허락해달라고 하죠.

사실 그 두 사람이 잡으려고 한 호랑이는 육발이가 아니라 백호였습니다.

어머니와 갓난쟁이 여동생을 집어 삼킨 호랑이 백호.

순박하고 착한 사람들이 품은 아픔은 참 깊고 집요합니다.

평화로운 순간을 만나면 우리는 그 시간과 공간이 그 상태로 영원히 멈추길 희망합니다.

그 안에 안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 따뜻함이 너무나 간절해서 말이죠.

이보다 더 좋을 필요도 없으니 뭐든 다 비켜가길 바라는 마음...

그러나 이 산골 마을에도 일제의 날카로운 손끝에 의해 여지없이 할큄을 당합니다.

“조선인 여자인력 동원 명령서”

촌장의 손녀 순이가 그 희생자로 지목됩니다.

지금까지 아름다웠던 동화의 세계는 이제 잔인한 “역사”의 세계로 넘어갑니다.

(그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직접 아프게 읽어내시길.....)


<나눔의 집>을 알고 계시나요?

일본에 종군위안부로 끌려갔다 살아남은 할머님들이 모여서 서로 의지하며 살고 있는 곳.

그 곳의 할머님들은 말씀합니다.

“가장 두려운 것은 우리가 죽은 뒤에 우리들에게 저질러졌던 범죄가 하나 둘 잊혀지는 거” 라고요...

이제 이곳에 남아 있는 분은 모두 7분이라고 하고, 이 분들도 현재 건강상태가 좋지 못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대사관 앞에서의 수요집회를 멈추지 않고 있으시죠.

어쩌면 우리는 그 분들이 두려워했던 것처럼 머지않아 이 모든 걸 잊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뭘 잊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살아가게 될지도요.

이 책에서 순이는 말합니다.

“나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죽고 싶어!”

이 땅에서 “엄마”라는 이름으로 죽고 싶었던 많은 분들을 오래오래 따뜻하게 기억하는 게 이 땅 위에 지금 살고 있는 우리가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라는 걸 저 또한 너무나 자주 잊고 살았습니다.

전쟁은 남의 일이라고,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고 솔직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 제게 이 책은 말합니다.

“그렇게 살고 싶으면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하라고....”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말입니다.

다시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죽는 걸 소망하는 시대가 되게 하지 말라고...


이 땅을 떠난 모든 엄마는,

엄마별에 모여 살면서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다고 합니다.

당분간은 직접 안아줄 수 없어서 따뜻한 별빛으로 대신 안아주는 거라고요, 언젠가 아이들이 엄마별로 오게 되면 다시 만난 엄마와 아이는 영원히 헤어지지 않고 함께 살게 될 거라고요...

감히 믿고 싶습니다.

이 땅에서 “엄마‘라는 이름으로 죽고 싶었던 모든 분을 또한 그곳에 계실 거라는 걸요.

“엄마별”을 찾는 방법,

까만 하늘 위에서 엄마별을 찾지 못하는 용이에게 순이는 말합니다.

“엄마별은 가장 따뜻한 색”이라고...

그리고 용서를 하면 그 별을 볼 수 있을 거라고요.

어쩌면 지금의 우리는 용이보다 더 엄마별을 못 찾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엄마별을 보기 위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용서를 해야만 할까요? 혹은 얼마나 많은 용서를 빌어야 할까요?


책을 읽으면서 소망하게 됩니다.

저 역시도 언젠간 이런 말을 할 수 있기를요...

“따뜻하다... 엄마별...” ·


* 개인적으로 이 책이 베스트셀러를 넘어 오랫동안 사랑받는 스테디셀러가 되어주길 간절히 바랍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3. 23. 21:51

<향수> - 파트리크 쥐스킨트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페이퍼북)

 
파트리크 쥐스킨트!

이 매혹적인 작가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요?

<좀머씨 이야기>, <콘트라베이스>, <비둘기>, <깊이에의 강요>

우리나라에 번역된 그의 작품 모두 하나같이 다 문제작이긴 하지만 <향수>라는 책을 읽었을 때의 그 강렬함이라니...

작가가 만든 “신세계”의 미궁에 제대로 빠져버렸다고 한다면 이해가 되실까요?

이 책,

사연도 참 많습니다.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라는 부재를 달고 있는 이 책은,

1991년 12월 국내 초판 됐고(제가 가지고 있는 책이 파란 표지의 그 오래된 초판, 바로 그 거랍니다) 1995년, 2000년 두 차례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영화 개봉과 더불어 다시 신판이 출판되면서 폭발적인 판매 기록을 보였죠. 초스테디셀러에 등극한 이 소설은 지금까지 30쇄 이상 재판됐다고 합니다.

(영화 예술의 힘! 작년에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자들의 도시>를 베스트셀러 2위에 올려놓는 걸 보면서 또 다시 절감했죠)

그런데 이 사실도 아세요?

이 책이 “19금 이야기”의 선정 도서가 됐었다는 사실도요.

책의 후반부쯤에 나오는 사형집행장에서의 집단 난교 부분과 마지막 충격적인 결말들이 이런 영예(?)를 안겨준 셈이죠.

그것도 출판된 지 한참이 지난 후에 이런 에피소드가 생긴 걸 보면, 책은 정말 살아 있다는 환상을 여전히 품게 합니다.

“환상”이라는 말이 나왔으니까 하는 말인데요,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작가에 대한 극단적인 환상을 심어주는 사람이기도 하죠.

전세계의 집요한 매스컴의 추적을 거의 완벽하게 피하면서 숨어있는 사람.

대인공포가 있다는 소문, 동성연애자라는 소문, 그리고 흉한 장애가 있다는 소문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사람들과의 만남도 싫어해 문학상도 거절하고 인터뷰도 거절하며 철저하고 은둔하고 있는 작가!

그는 자기 작품에 대한 관리 전체를 형에게 맡긴 채 현재 프랑스 남부에 있는 작은 오두막집에 잠금장치까지 하고 살고 있다고 합니다.

친하게 지내는 사람도, 동료 작가도 없고 심지어 자신의 신상에 대해 발설한 사람이면 친구와 부모를 가리지 않고 누구와도 절연해 버릴 정도라고 하니 오래된 사진 한 장으로만 알려진 그를 세상에 불러낸다는 건 도무지 불가능해 보이네요.

그러나 생각합니다.

그는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작은 오두막에서 지금 <향수>보다 더 매혹적인 작품에 몰두하고 있을 거라고...

(사실 그의 새로운 책의 출판을 전 아주 많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책 <향수>의 줄거리는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있을 거예요.

질긴 생명력으로 생선 내장 더미 위, 아무 냄새도 갖지 못하고 버려지듯 태어난 아기 그르누이.

그의 삶의 목적, 그건 사람의 “냄새”를 내 몸에 갖겠다는 강렬한 탐욕이었습니다.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갖고자 하는 욕망.

우리가 일상적으로 말하는 “탐욕”이라는 의미는 그러나 그에겐 적절치 않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품은 “탐욕”은 소유에 대한 집착보다 오히려 생명에 대한 무심한듯하지만 강렬한 집착에 가깝기 때문이죠.

“생명”이라는 거,

“향기”를 품지 않는 생명이란 죽음의 다른 이름이라는 걸 그르누이는 그의 살인 행각을 통해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심지어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을 가장 가까운 동반자로 만들어 버리기까지 하죠.

그를 피해 달아나는 향기가 그에게 무사히 채집되기를 나 또한 간절히 바라는 마음.

향기를 채집하는 그의 섬세한 행동 하나 하나가 성스럽고 예술적으로 느껴지는 그 순간,

이제 그의 옆에 제 2의 그르누이의 자리가 만들어지고 있는 겁니다.

25명의 향기가 채집되기까지 저 역시도 그의 동조자가 되어 가만가만 숨을 죽입니다.

어쩌면 결말 혹은 끝장을 보고 싶다는 저의 또 다른 탐욕인지도 모르겠네요.

그의 향기에 취해 그를 탐하는 무리에 둘러싸이게 되는 마지막 결말.

악마적인 황홀경에 빠져 그의 향기를 먹어치우는 무리 속에 나 자신이 없다고 과연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함께 한 사람들은 이미 무언의 합의를 끝낸 듯 합니다.

그건 “구원”의 행위였다고......

그의 향은 우리를 구원했고 그리고 우리는 그를 각자의 몸 안에 조각내 피난시킴으로 구원을 해줬다고......

이제 남겨진 사람을 우리는 누구라고 불러야 할까요???.......


서번트 신드롬 (savant syndrome)!

지능은 보통사람들보다 떨어지지만 음악연주나 달력계산, 암기, 암산 등 어떤 특별한 부분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이는 사람들을 간혹 보게 됩니다.

프랑스어로 이 말은 배우지 않고(바보 idiot) 터득한 기술(석학 savant)이라는 뜻이죠. 특히 발달장애나 자폐증 같은 뇌기능 장애를 가진 이들이 그 장애와 대조되는 천재성이나 뛰어난 재능을 보일 때 이 서번트 신드롬(savant syndrome), 석학증후군 이란 말을 하게 됩니다.

영화 <레인 맨>에서 톰 크루즈의 형으로 나왔던 더스틴 호프만이 바로 서번트 신드롬을 가진 자폐인을 연기했었죠. 

말하자면,

그르누이도 서번트 신드롬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흔히 천재성은 그 “광기”로 인해 인생 전체를 “파괴”하기도 하죠.

“Utopia”가 아닌 “Destopia”의 탄생.

철저하게 파괴함으로써 이상향을 만들겠다는 “Destopia”

<향수>

그 위험한 Destopia의 세계.

그 세계가 섬뜩했던 건 사실이지만 그보다 더 매혹적이었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네요.


만약, 

당신에게 아직 향기가 있다면....

조심하길 진심으로 당부합니다.

조각난 그르누이가 혹 당신을 탐할 수도 있으니.....


                                                      <유일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사진>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