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1. 5. 2. 06:35
심리학의 대중화를 이끈 말콤 글래드웰
이 사람의 책을 읽으면 기막힌 반전으로 가득한 소설을 읽는 것보다
100배쯤은 훨씬 더 재미있다.
아껴두고 그리고 숨겨두고 혼자 읽고 싶을만큼 재미있다.
묘한 독점욕을 일으키게 한다.
책을 구입한지는 거의 1년 이상이 됐다.
<티핑포인트>와 <블링크>를 읽고 너무 아쉬워서 정말 아끼고 아껴뒀던 책이다.
그런데 손에 잡는 순간 정말 손살같이 읽어버렸다.
읽으면서도 책장이 넘어가면서 분량이 줄어드는게 너무 아까워서 미치는 줄 알았다.
이 시대 최고의 저널리스트이자 타고난 스토리텔러인 말콤 글래드웰!
이제 <그 개는 무엇을 보았는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읽을 것인가, 아낄 것인가...
아마도 읽게 될 것 같다.
안철수의 책을 읽은 후에...
(안철수 역시도 내겐 많은 화두와 생각을 남겨주는 사람이다)


* Outlier

1. 본체에서 분리되거나 따로 분류되어 있는 물건,
2. 표본 중 다른 대상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통계적 관측치.
3. 보통사람의 범위를 뛰어넘는 사람

5월에 진료지원부를 대상으로 프리젠테이션을 하게 된다.
어쩌다보니 우리과를 상대로 준비했던 게 크게 확대되고 말았다.
마이크 울렁증이 있어서 많이 걱정이 되긴 하지만 솔직한 심정은 정말 잘하고 싶다.
그리고 이걸 계기로 종종 직원들 상대로 강의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열심히 준비해서 잊지 못한 순간을 만들겠다는 게 지금의 심정이고 각오다.)
PT를 준비하면서 도움될만한 책들을 다시 열심히 챙겨보고 있다.
그리고 블러그에 끄적인 것들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이 책도 그래서 열심히 정리했다.
지금 현재 준비하는 것에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지만
앞으로 다른 기회가 생기면 또 도움이 충분히 되고도 남을 내용이기에...
말콤 글래드웰은 부러움과 좌절감조차도 느끼지 못하게 한다.
이 사람은 누구보다 탁월하고 또 확실히 구분된다.
지성 이외의 다른 재능까지도 겸비하고 있다.
이렇게 넓고 유연한 사고를 가진 사람을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말콤 글래드웰!
이 사람은 그래서 내겐 거의 신화적인 존재다.
확실히...


* '사람(Person) 대 상황(Situation)'의 논쟁을 성공의 영역으로 가져옴 (아리스토 텔레스 VS  갈릴레오)
   니스벳 박사의 연구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된 책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개인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에 문화가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

* "Outlier"가 되기 위해서는?
1. 1만 시간의 법칙 (노력)
2. 충분한 시간 허용
3. 문화적 유산과 기회를 제공


* 로제토(미국에 이민한 이탈리아인) :  65세 미만 사람들 중에 심장마비 환자가 거의 없다는 믿기지 않는 현실
  -> 당시 미국에서는 심장마비가 65세 미만 남성의 사망원인 중 선두 
      조사결과 해답이 식생활이나 운동, 유전, 지역에 있는 게 아니라 로제토 마을 자체에 있었다.
      (마을 전체가 확장된 가족집단같은 분위기, 대가족 위주)

1부. 기회(Opportunity)

1장, 마태복음 효과
 :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마태복음25장 29절)

o Genius + Opportunity
o 우리가 성공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전부 틀렸다! 
o 개인적인 특성만으로는 성공을 설명할 수 없다. 
   우리가 속한 문화와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성취의 방향을 결정한다.
o 미래의 성공으로 이어지는 특별한 기회를 얻어낸 삶이 성공을 거두게 된다. (누적된 이득)
o 작은 차이가 큰 차이를 낳는 기회로 이어지고 그것은 또 다른 기회로 이어져 천재적 아웃라이어로 거듭나게 된다.
o 우수한 운동선수들의 생년월일 (1월에 출생한 하키 선수수가 프로 레벨에 도달할 확률이 월등)
  -> 운동선수 선발 연령 제한 날짜와의 관계 (제한 날짜가 1월 1일이면 초고 수준 선수들으니 1,2월에 몰려있다)

2장, 1만 시간의 법칙

o 타고난 재능 + 연습 (재능의 역할은 줄어들고 연습이 하는 역할이 점점 커진다)
o 1만 시간의 법칙 - 다니엘 레비틴(Daniel Levitin) , 매직넘버
  --> 어느 분야에서든 최고가 되지 위해서는 1만 시간의 연습이 필요하다 (하루에 3시간씩 10년)
o 최고 중의 최고는 그냥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훨씬, 훨씬 더 열심히 한다.
o 빌 조이(천재 프로그래머), 비틀즈의 함부르크 시절, 빌 게이츠의 고교시절의 공통점은 1만 시간 이상의 연습
o Genius + Opportunity + 노력
o 1830년대 초반에 태어난 산업재벌들, 1955년대 태어난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 1930년대에 태어난 변호사들 분석

3장 4장, 위기에 빠진 천재들

o 한 사람의 높은 IQ는 수많은 영리한 사람과 만났을 때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o 상위 레벨의 IQ지수 차이는 성격이나 인격 같은 요소보다 훨씬 덜 중요한 역할만 수행한다.
o Genius + Opportunity + 노력 + 상상력
o 지능과 성추도 사이에는 그 어떠한 상관관계도 없다.
o Genius + Opportunity + 노력 + 상상력 + 설득의 능력(실용지능:설득하는데 쓰이는 특정한 기술)
o 실용 지능은 후천적으로 습득해야 하는 지식(knowledge)이다. 그리고 그 지식을 대부분 가족에게서 배운다.
  (집중 양육의 중요성)
o 아무리 뛰어난 천재도 혼자서는 자기 길을 만들어가지 못한다.

5장, 조셉 플롬에게 배우는 세 가지 교훈

o 혼자서 성공하는 사람은 없다. 성공은 특정한 장소와 환경의 산물이다.
① 유태인이라는 정체성(집안 배경)
② 통계학적 행운(타이밍, 재벌, 프로그래머, 변호사)
③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믿음
o 환경과 기회의 강력한 조합
o 성공한 사람들에게 가장 큰 기회를 안겨준 것은 바로 그들의 세계, 즉 그 들의 문화, 세대, 집안 내력이다.

2부. 유산(Legacy)

6장, 켄터키주 할란의 미스터리

o 애팔레치아산맥 켄터키주 할란이란 마을에 사는 사무엘 하워드와 윌리엄 터너 두 집안 사이에 벌어진 총싸움
o 그 시점 애팔래치아산맥의 위아래 작은 마을에서 거의 동일한 폭력 사건이 벌이지고 있었다.
o 분쟁의 원인은 소위 '명예 문화(culture of honor)' 영향 때문. 
   --> 목축을 주된 생업으로 사는 문화에서 많이 발생
o 명예 문화가 최고로 발달한 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 출신의 이민자가 압도적인 다수 차지.
o 문화적 유산의 힘은 강력하며 뿌리 깊게 박혀 있어 오래토록 지속된다.
   또한 세대를 넘어 지속되는 것은 물론 그것을 탄생시킨 경제적, 사회적 배경이 소멸된 이후에도 살아남는다.

7장, 비행기 추락에 담긴 문화적 비밀

o 1997년 8월 5일 괌공항에 착류하려던 대한항공 801편기의 추락 사고
o 1990년 1월 컬럼비아 항공사의 아비앙카 52편 추락 사고
   (비행학교에서 교재로활용, 몇 번의 계속되는 연착으로 인한 연료부족이 원인)
o 블랙박스의 조정실 녹취록 분석 (조종실이 조용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생사를 결정짓는 의사소통)
o 비상사태에서 완곡어법을 사용하는 건 무용지물
o 기장  - 명령 어법, 부기장 - 완곡한 표현(힌트주기), 강압적 성격이 강한 공항 관제탑과의 의사소통
o 기장이 조종석에 앉아있을 때 훨씬 더 많은 추락 사고 발생
o 완곡어법 사용을 금지하고 협동심을 높여 조종실 내의 PDI 낮춤
  (PDI:Power Distance Index, 권력 간격 지수)
o PDI가 높은 나라, PDI 낮은 나라 출신 조종사의 특성 (ex : 미국 VS 컬럼비아) -> 문화적 배경이 다른 나라
o PDI 높은 나라 : 브라질 -> 한국 -> 모로코 -> 멕시코 > 필리핀
o PDI 낮은 나라 : 미국 -> 아일랜드 -> 남아프리카공화국 -> 오스트레일리아 -> 뉴질랜드
o 비행기 추락 사고를 유발하는 세 가지 요인 : 사소한 기술적 잔 고장, 나쁜 날씨, 피곤한 조종사
  -> 세 가지 요인보다 더 큰 요인은 조종석에 있는 모든 사람의 실수의 합
o 한국인의 경어체계
o 대한항공의 공용어를 영어로 바꿈 (한국어의 경어체계를 사용할 수 없다)
o 기장이 두 번 실수를 반복하면 조정권은 자동적으로 부기장에게 넘어감
o 개인은 그가 속한 문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8장, 아시아인이 수학을 더 잘하는 이유

o 쌀농사(벼농사, 논농사)를 가업으로 이어가던 아시아인 (한정된 땅에서 수확량을 늘려야만하는 현실)
  ① 노력과 결과 사이에 명확한 관계가 있다
  ② 복잡하다
o 숫자의 영어 표현은 길고, 아시아 표현은 짧다. (아시아 숫자체계의 간결함)
o 벼농사 문화와 수학실력의 놀라운 상관관계
  -> 전 세계에서 모인 1,000명의 중학교 2학년생을 대상으로 치루는 수학 올림피아드 순위
      : 싱가포르 -> 한국 -> 대만(중국) -> 홍콩 -> 일본
o 아시아인들은 어려운 일 속에서도 가치를 찾아내는 문화적 속성을 지닌다

9장, 마리타에게 찾아온 놀라운 기회

o 1990년대 중반 뉴욕시 루게릭 중학교에 문을 연 키프(KIPP, Knowledge is Power Program) 아카데미
  -> 설립된 지 고작 10년 만에 기프가 뉴욕시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선호하는 공립학교가 됨, 수학에서 명성
o SSLANT라고 말하도록 교육
  - Smile, Sit up, Listen, Ask question, Nod when being spoken to, Track with your eyes
o 미국의 독특한 문화유산 : 긴 여름방학 (그 기간동안 무엇을 했는가?)
o 각 나라의 평균 수업 일수 : 미국 - 180일, 한국 - 220일, 일본 243일
o 키프는 바로 긴 여름방학이 갖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
  - 긴 여름방학 동안 배운 것을 잊게 되는 빈곤층 자녀들에게 방학을 기게 주지 않는 단순한 방법 채택
  - 문제를 풀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허락 (천천히 함으로써 더 많은 것을 배운다)
  -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충분한 시간이 수학을 가치있는 것으로 만들어줌.

* 에필로그

o 자메이카 노예 출신인 자신의 가족 역사 역시도 기회와 환경의 영향
o 재능은 성공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재능을 완전히 꽃피우기 위해서는 기회와 노력과 행운이 모두 필요하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사회가 지니고 있는 다양하면서도 독특한 문화 요소도 크게 작용한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1. 4. 18. 06:22
폴 오스터의 소설은 흥미롭고 매력적이다.
폴 오스터의 세계는 항상 몇 가지의 세계가 함께 공존한다.
그리고 그런 연결되어 있기도 전혀 그렇지 않기도 하다.
그의 소설 제목처럼 그건 보이는 세계이면서
동시에 보이지 않는 상상과 공상이 만들어낸 세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부적인 스토리텔러 폴 오스터를 거쳐가면
그 세계는 현실보다 더 생생해서 지금 살고 있는 세계를 공상화한다.
그을 읽고 있으면 내가 화자가 되고 서술자가 되어 주도적으로 이야기 속으로 파고든다.
이건 일종의 마력이고 중독이다.
때론 진심으로 궁금하다.
내가 지금 몹쓸 흑마술에 걸린건 아닌지가...


각 장마다 시점과 서술자가 달라지고
믿어지지 않는 새로운 사실의 등장과 폭로는
읽는 사람을 불연듯 섬득하게 만든다.
어쩌면 소설 속 인물 워커의 말처럼 좀 혐오스러운 이야기일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읽기를 그만둔다면,
보른의 말처럼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 보이는 세상에서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은?
혹은 지금 보이는 세상이 내게 보이지 않는 것은?
책은 철학적인 질문으로 나를 내몬다.
나는 이 모든 사람들이 쏟아내는 폭로같은 진실들을 믿을 수 있을까?
아니면 진짜 진실이라는 게 이 중에 있기는 한걸까?
오스터의 글은 점점 재미와 함께 무거운 중압감을 남긴다.
그의 앞으로의 글들이 그래서 나는 조금씩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그의 세계가 내겐 moon hill 이다.

이 소설에서 오스터가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현실 속에 어떤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에 그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이 벌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에(기억이든 환상이든 우연이든) 그 사건이 존재한다. 이렇게 볼 때 나라는 존재가 먼저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생각해 내는 이야기가 먼저 있고 그 이야기 속의 나는 얼마든지 <그>로 대체 가능하다.... 다시 말해 어떤 사람이 갖고 있는 - 꾸며낸 것이든 혹은 꾸며내지 않은 것이든 - 일관된 이야기가 그 사람의 자아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인간들은 모두 호모 파블라토르(Homo fabulator, 이야기를 말하는 사람)다 

작품 속에서 <보이지 않는 invisible>이라는 단어가 명시적으로 사용된 문장을 이러하다.
.... 나 자신을 1인칭으로 서술함으로써, 나는 나 자신을 질식시켰고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내가 찾고 있던 것을 찾는 게 불가능해졌다. 나는 나 자신으로부터 떨어트릴 필요가 있었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나 자신과 나의 주제(바로 나 자신) 사이에 약간의 공간을 두는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나>는 <그>가 되었다.
나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나를 <그>나 <너>라고 보게 된다는 것이다.



작가 김연수를 이야기할 때 항상 나오는 책이 바로 이 책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였다.
문단계에서 오래전부터 주목받고 있는 그의 작품을 그래도 몇 편 찾아 읽었고,
읽고 나서 혀를 내눌렀었는데
공교롭게도 이 책은 매번 놓였었다.
드디어... 드디어.. 읽어버렸다.
김연수.
그는 아무래도 신내림을 받은 사람인 것 같다.
그것도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그의 몸 속에 웅크리고 있는 게 분명하다.
참 볼품없는 억지스런 엉김이지만 내 또래의 나이다.
고작 그정도의 나이테밖에 갖지 못한  그가
조선 시대를 이야기하고, 신민지 시대를 이야기하고
만주 지역을 이야기하고, 혜초의 왕오천국국전을 이야기한다.
그것도 기록된 역사를 철저히 불신하면서 완벽하게 고립의 언어로 말이다.
그의 글들은 비극적이라는 표현이 희극적으로 들릴만큼 비의적이다.
이미 늙어버린 그의 언어는 세상 그 어떤 생물보다 생명력있게 펄덕인다.
그 펄덕임이 문득 무섭다.
마치 그게 유일한 생명력 같아서...
꼭 태고의 눈으로 뒤덮인 낭가파르파트 꼭대기에서 홀로 조난당한 느낌이다.
참. 비.극.적.이.다.
인간도, 인간이 만든 모든 역사도 신기루가 되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그만둘까?
그만둘 용기도, 허세도 없는 인간은
신기루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 신기루 속으로 자진해서 들어간다.
별 수 있나!
인간은 이해될 수 없는 존재고,
역사는 믿을 수 없는 존재인데...
달리 무슨 방법이 있을까!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11. 19. 08:25



윤소정, 박지일, 이호성, 길해연, 서은경.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뛰는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연극 <33개의 변주곡>
2009년 3월 미국 "유진 오닐" 극장에서 초연됐을 때 
여주인공 캐서린 역을 제인 폰다가 분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작품은 그 해 토니상 5개 부분에 후보로 올랐고 아쉽게도 무대디자인 상만 수상했다.
무대는 확실히 상을 받기에 충분할만큼 독창적이고 아름답고 실용적이다.
그리고 작품은...
무대보다 훨씬 멋지다.
연극은 캐서린의 죽는 순간까지 연구했던 베토벤 논문 서문으로 시작된다.
(이 말은 베토벤의 말이기도 하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기원에서 시작해봅시다.
어떤 것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에서 시작합시다.
왜 그런 방식으로 생겨나게 되었으며
어떻게 현재의 모습이 되었는지...




디아벨리 왈츠를 주제로한 베토벤의 테마가 있는 33개 변주곡.
이 변주곡은 베토벤의 변주 기법를 집대성한 작품이자
바하의 골든베르크 변주곡과 함께 변주곡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란다.
연극을 보고 일부러 그 변주곡 전체를 찾아서 들어봤다.
베토벤의 33개 변주곡은 총 4개의 구조로 나뉜다.
(연극에서 베토벤으로 분한 박지일이 열정적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1. 발전군 : 제 1 변주 ~ 제 10 변주
2. 코트라스트군 : 제 11 변주 ~제 20 변주
3. 스케르쪼군 : 제 21 변주 ~ 제 28 변주
4. 피날레군 : 제 29 변주 ~ 제 33 변주

디아벨리의 왈츠는 50초 가량의 비교적 짧은 곡이다.
베토벤은 이 왈츠의 리듬을 가지고 총 50분이 넘는 변주곡을 만들었다.
베토벤은 처음엔 디아벨리의 왈츠를 "구두 수선공의 헝겊조각(cobbler's patch)"이라며 폄하했단다.
그러나 마음을 바꿔 무려 4년의 시간동안 이 변주곡에 집착해 33개의 변주곡을 만들었다.
왜 베토벤은 디아벨리의 왈츠에 집착했을까?
음악학자 캐서린 브랜트(윤소정)는 지금 그 부분을 추적하고 있는 중이다.
서서히 화석이 되는 루게릭 병을 진단받고서도 말이다.
캐서린은 급기야 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베토벤의 스케치가 남아있는 베토벤하우스로 날아간다.
독일의 본으로... 그것도 혼자서..
캐서린의 집착과 베토벤의 집착은,
놀랍도록 닮아있다.



현재와 19세기가 한 무대 위에서 공존하는 모습은
이 연극의 대사를 그래도 빌려 표현하자면,
"여기서부터 용들이 산다!"
딱 그렇다.
베토벤 문서연구소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장면에서 천정의 조명이 순차적으로 내려오는 모습,
악보를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스크린에 비쳐지던 베토벤의 실제 스케치들.
그리고 무대 한 켠에서 라이브로 연주되는 디아벨리 변주곡들.
어떤 형태로 두 세계를 보여줄까 궁금했는데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깔금하고 매력적이다.
도저히 산만할 틈조차 없다.
무대에는 악보들로 빽빽하다.
시간을 가르는 것 같은 커다란 테이블.
시각적인 장치들이 너무 커서 배우들의 연기를 왜소하게 만든다는 평도 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전혀 그렇지 않는다.
왜소해지기에는 배우들의 열정이 너무 대단했다.
특히 캐서린 윤소정씨.
대상포진을 앓고 있다고해서 걱정했는데 그 걱정이 무색할만큼 아름다웠다.
지난 봄 <에이미>를 보면서도 감탄했는데 이번 역할도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어떻게 그 많은 대사들을 그렇게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까?



원작자 모이시스 카프먼은 작가 노트에서
이 희곡에는 무대 위 등장인물 외에 2명의 등장인물이 더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음악이고, 다른 하나는 극에서 영상으로 나타나는 베토벤의 오리지널 스케치들.
영상을 보면서 잠깐 소름이 돋았다.
그냥 그 천재성이 섬뜩함으로 다가왔다고 할까?

"이 희곡은 디아벨리 변주곡의 탄생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토대로 하지만 나는 이 이야기를 허구의 관점에서 들여다보려고 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역사적 사건의 재구성이라기보다는 삶의 한순간에 대한 일련의 변주라 하겠다."  -    모이시스 카우프먼 메모

묘하게 연결되는 장면 전환들도 상당히 좋았다.
무대 위에 7명이 전부 나와서 서로 중첩되는 대사를 하는 장면은
와, 정말 황홀하더라.
내겐 그 순간이 베토벤과 캐서린이 동일화되는 장면처럼 느껴졌다.
연극을 보기 전에 캐서린과 베토벤이 대화를 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이 장면 덕분에 실제로 두 사람이 대화하는 모습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기원""변모"
나는 이 연극을 두 단어로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 두 단어의 합일은 바로 "예술"이다.
케서린은 "예술"을 통해 베토벤과 딸 클라라를 이해하게 되고
딸 클라라 역시 "예술"을 통해 엄마 캐서린을 이해하게 된다.
그러니까 이 연극은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던거다.
기원을 쫒는 과정, 그리고 변모해가는 과정.
그래서 천재성이 번득이는 "예술"이 탄생되는 과정.
그야말로 여기서부터 용들이 산다...



연극의 스토리텔러가 캐서린에서 베토벤으로 그리고 클라라로 전환되는 것 역시도
하나의 변주였음을 연극을 다 본 후에 깨달았다.
그리고 날조된 기록을 남긴 베토벤의 비서 쉰들러도
비엔나의 50인 음악가에게 변주곡을 의뢰한 악보 출판업자 디아벨리도,
그리고 클라라의 연인 마이크와 베토벤 하우스의 거투루트까지도 전부 하나의 변주였음도...
그러니까 모든 사람의 삶은 전부 "변주"인거다.
그렇다면 이제 확실해진 거 아닌가?
삶은 충분히 아름다운 과정 속에 있다.

연극 <33개의 변주곡>
내게 참 다양하고 광범위한 아름다움을 남겼다.
아무래도 이 작품...
오래오래 간직될 것 같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11. 11. 06:31
한 인간이 완벽한 타인이 돼서 산다는 게 가능할까?
우발적인 살인으로 시작된 다른 사람 되기!
그것도 아내와 두 아이가 있는 뉴욕 월가의 잘나가는 변호사가
부모가 남긴 신탁기금으로 근근히 살아가는,
숱한 잡지사에 매번 퇴짜를 맞는 별볼일 없는 삼류 사진가로 살아가기로 했다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지금과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건
적어도 내겐 일종의 환상이자 유토피아다.
책을 쓴 작가 더글라스 케네디.
어딘가에서 그를 두고 "듣보잡" 작가라는 표현을 썼다.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그의 책 <빅 픽처>는
발간된지 한달도 되지 않아 5쇄에 들어갔을 만큼 현재 서점가의 베스트셀러다.
블로그나 독서 모임 카페에서도 한창 블루칩인 소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조국인 미국보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지역에서 인지도가 높은 작가란다.
이미 10권이 넘는 소설과 여행집까지 발간한 더글라스 케네디.
미국 태생이면서 영국에서 주로 활동하고 프랑스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작가.
그야말로 그로벌한 인물이다.
2007년 4월에는 심지어 프랑스에서 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단다.
2009년 11월에는 또 다시 프랑스의 유명 신문 <피가로>지에서 수여하는 그랑프리상을 받고...
정치적으로 미국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프랑스에서 열광하고 있다지만
<빅 픽쳐>를 읽고 나면 기발한 상상력과 표현력에 천상 스토리텔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진작가의 꿈을 아버지로 인해 접고
월 스트리트의 잘나가는 변호사가 된 벤 프레드포드.
공교롭게 이웃집 별볼일 없는 삼류 사진작가 게리 서머스와 아내의 불륜을 알게된 그는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르고 낯선 곳에서 게리 서머스가 된다. 
완전범죄를 꿈꾸며 철저하게 증거인멸을 하는 그의 솜씨는
과히 충격적이고 섬뜩하다.
(와인병에서 냉동고로 급기야 전기톱까지 등장하니 그럴 수밖에...)
사람은 자신이 가진 걸 모두 잃게 되면 필사적으로 되찾고 싶어한다는데
벤 이 사람은 필사적으로 자신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노력한다.
요트사고로 스스로를 죽은 사람으로 만든 벤은
되도록이면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살고자 서부의 허름한 마을에 게리 서머스란 이름으로 정착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가 찍은 인물 사진과 산불 사진이 미국 전역의 신문과 매스컴에 실린다.
하루 아침에 유명 인사가 된 벤.
급기야 의도적으로 떠나온 뉴욕 <타임>지에서도 함께 일하고 싶다며 연락이 오고
전국에서 전시회와 책 출간 제의가 쏟아지듯 들어온다.
여기에 미국이라는 나라의 특성이 독백처럼 나온다. 
꽤나 재미있고 상당히 예리한 조롱이다. 
 
일주일 동안 나는 미국 생활의 자명한 진리 중 하나를 깨닫게 됐다. 일단 인기를 얻으면 어디서나 그 사람을 찾는다. 미국 문화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은 늘 무시된다. 고군분투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취급되기 일쑤다. 발행인, 잡지 편집자, 제작자, 갤러리 주인, 에이전트들을 설득하려고 필사적으로 앴는 사람은 낙오자로 취급될 분이다. 성공할 수 있는 길은 각자 찾아내야 하지만, 그 누구도 성공을 이룰 기회를 얻기란 쉽지 않다. 명성을 얻지 못한 사람에게 기회를 줄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의 재능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있더라도, 자기 판단만 믿고 무명의 인물에게 지원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런 까닭에 무명은 대부분 계속 무명으로 남는다. 그러다가 문이 열리고 빛이 들어온다. 행운의 빍은 빛에 휩싸인 후로는 갑자기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고 반드시 써야 할 인물이 된다. 이제 모두 그 사람만 찾는다. 모두 그 사람에게 전화한다. 성공의 후광이 그 사람을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그러서였나?
더글라스 케네디가 미국인이면서 영국에 사는 이유가...
어쩌면 벤은 케네디 자신의 대리인인지도 모르겠다.
미국의 스타 산업에 대한 염증과 허상.
이 소설 속에는 미국 문화 전반에 대한 은근한 조롱과 비웃음이 깔려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빅 픽처>란 제목에도 암시성이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사실적으로 찍었다고 해도
사진(picture)은 찍은 사람의 의도와 왜곡이 담겨있다.
그리고 그 사물이 커질수록(big) 왜곡은 심해진다.
어차피 그 전부를 온전히 담을 수는 없기 때문에...



사진 전시회 오프닝 행사.
새로운 연인 앤의 앞에서 그는 전처 베스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는 황급히 자리를 피한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기자 루디와 함께 달아나듯 도망치다 교통사고를 당하고 자신은 가까스로 빠져나온다.
다음날 발행된 신문의 헤드라인에 기사!
"천재 작가 게리 서머스 교통사고로 사망"
벤은 앤과 함께 했던 오두막에서 혼자 중얼거린다.
"나는 이제 또 죽은 사람이 됐다"
또 다시 반전이다.
벤은 어떻게 될까?
(궁금한 사람은 직접 책에서 확인을...)
영화로 만들기에 딱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만들어졌고  프랑스에서 11월에 개봉했단다.
현재 프랑스에서 최고 인기라는 로맹 뒤리스가 주연이고 (누군지는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 꽤 유명한 가트린느 드뇌브도 출연한다.
(국내에 개봉하면 꼭 챙겨봐야겠다.)
인생을 몇 번씩 다른 사람으로 살 수 있다면?
그 최종 결말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 내 상태로는 꽤나 부러울 따름이다.
하긴 이런 걸 꿈꾸기엔 내가 가진 재능(?)이라는 게.
참 치명적으로 전무(全無)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6. 17. 06:34
소설 노동자 김탁환과 과학콘서트 정재승이 만나서 책을,
그것도 소설책을 썼단다.
뇌 과학자와 팩션 소설가가 만나 쓴 미래소설.
일단은 귀가 솔깃한 내용 아닌가?
이 두사람의 인연은 KAIST에서 시작된다.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인 정재승.
그리고 좀 의외라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소설가 김탁환이 KAIST 교수로 오면서
우연한 술자리에서 이 이야기가 시작됐다고 한다.
1990년대 초에 사건이 하나 있었단다.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서울대공원에서 한 여자가 남자 친구에게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여달라며
사자 우리에 손수건을 던진 후 가져오라고 했단다.
그런데 이 남자,
사랑에 눈이 멀었는지 어땠는지 모르지만 사자 우리 안을 들어갔단다.
그 최후는.... 뻔하지 않겠는가?
결국 남자는 사자에게 처참하게 죽임을 당함으로써 엽기적인 결말이 백주대낮에 발생하게 된거다.
나중에 이 남자의 시신을 부검했더니 그의 입 속에서 사자털이 잔뜩 나왔다나.
인간의 "생존 본능"이 그 상황에서 사자를 물어뜯게 만들었다는 거다.
그리고 이 세기의 사건은 과학자 정재승의 뇌리에 각인되어 화두가 되었단다.
소설을 써 보고 싶다는 생애 첫 충동을 일으킬만큼...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순간,
엄청난 분노와 함께 미친 듯이 덤벼대는 인간의 폭력 성향.
이 "생존 본능"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낼 수는 없을까?
로봇에게 생존 본능을 코드화해서 자신을 분해하거나 부수려는 존재에게 맞서 분노하게 만드는 일이 가능할까?
소설 <눈먼 시계공>은 그러니까 정재승의 화두에
김탁환의 캐릭터가 만나면서 이야기가 되어 세상에 나온 셈이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 <데몰리션맨>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다.
지방 자치제가 활성화되고 국가보다 지역 내 기업의 경제적 영향력이 증대된 2049년의 세계에서는
국가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특별시 체제로 재편하는 게 유행처럼 늘어나게 된다.
인간과 사이보그, 그리고 로봇이 함께 공존하는 세상.
마치 월드컵과 K-1을 연상시키는 로봇 배틀원 경기에 열광하는 사람들.
그리고 의문의 연쇄 살인 사건.
발견되는 시체는 하나 같이 뇌가 사라진 상태다.
피해자의 뇌에 남겨진 기억을 끌어내 범인을 잡았던 비밀 수사대 스티그마팀은 당혹스럽다.
뇌가 깜쪽같이 사라져버렸으니...

 <김탁환과 정재승>

이야기는 로봇 격투 경기와 살인 사건이 함께 맛물리면서 긴박하게 이어진다.
이야기 자체는 아주 흥미롭고 재미있다.
책장을 금방금방 넘기게 만들만큼...
김탁환이야 탁월한 스토리텔러로 유명한 사람이고
정재승 또한 입담 있는 과학자로 여러 편의 베스트셀러를 쓴 작가이기도 한다.
바이오 및 뇌공학자로 실제 소설의 내용과 비슷한 연구를 하고 있는 정재승의 과학적 상상력도 재미있다.
인간의 뇌와 로봇의 완벽한 인터페이스.
예전에는 결코 가능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충분히 가능할거란 쪽으로 변했다.
(딱히 이 책 때문에 그렇게 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세상은 늘 불가능을 현실화시키는 걸 계속 봐왔으니까...)
Impossilbe!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는데...
정말 그렇게 되고 있음을 절감하고 체감한다.
기계와 인간이 몸을 섞는 그런 시대가 온다면,
우리는 어찌됐든 그걸 새로운 진화와 혁명으로 받아들이게 될까?
로봇의 머리에 인간의 머리를 이식하게 된다면
그 존재를 사이보그가 아니라 인간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을까?
입력된 코드에 의해 계산과 통계를 통해 행동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서 행동하게 된다면...

이 소설에서는 인간의 "분노와 증오"를 격투 로봇에게 이입시킴으로
폭발적인 에너지를 내도록 프로그래밍 시킨다.
일부러 극심한 공포와 자극 속에서 사람을 살해함으로써
인간의 뇌에 저장되어 있는 그 살해 순간의 분노를
엄청난 폭력으로 분출시키는 프로그래밍.
기억은 세포를 바꾸고 세포의 변화가 곧 기억이 된단다.
그러니 기억은 과거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존재한다.
SF적인 상상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엔 세상은 너무 멀리까지 와 있다.
그러한 세계에서 나는 살아갈 수 있을까?
책장을 덮은 뒤끝은 영 찜찜하다.
당신의 전두엽엔 어떤 기억이 저장되어 있는가?
언젠가는 누군가 당신의 분노와 증오의 기억을 노리게 될지도 모른다.
다들 머리를 조심하라!!!!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6. 3. 06:43
오랫만에 폴 오스터의 소설을 읽다.
<기록실로의 여행>
사진으로 본 폴 오스터는 마치 사립탐정같은 느낌을 준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의 소설 속에는 사립탐정이 많이 등장한다.
뭔가 확실히 2%쯤 부족한 느낌을 주는...



"폴 오스터"
천상 이야기꾼인 이 사람을 어떻게 할까? (^^)
마치 그동안의 자기 작품들에 대한 참신한 헌사라고 할까?
<기록실로의 여행> 속에는 그가 창조해낸 소설속 인물들이 등장한다.
<뉴욕 3부작>의 피터 스틸먼, 대니얼 퀸 그리고 쇼,
<거대한 괴물>의 벤저민 삭스, <달의 궁전>의 마르코 포그,
데이비드 짐머는 <환상의 책>의 주인공이었고 <신탁의 밤>에 나온 존트로즈까지...
기억을 잃은 "미스터 블랭크"에게 질문하는 것 같다.
"저한테 왜 그랬나요?"라고...
그러니까 "기록실"이란 "미스터 블랭크"라는 의미심장한 이름으로 대변되는
스토리텔러 폴 오스터의 머릿속이라고 이해해도 무방할 듯.
소설의 시선을 철저히 "관찰자"의 입장이다.
재미있고 그리고 독특하다.
소설 속에서 소설의 온갖 기법과 요소들을 뒤엎는 방식.
폴 오스터는 망각의 상태에 있는 "미스터 블랭크"라는 자신의 대용물(?)을 소설 속에 등장시켜
그가 창조한 모든 인물들과 대면하게 만든다.



감시카메라와 미이크가 설치된 방에 살고 있는 미스터 블랭크.
"기억하지 못하시겠지만 우리는 선생께서 해달라는 데로 해드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를 찾아온 의사가 남긴 말과 식사때마다 삼켜야 하는 알약들.
그리고 타자 원고 한 묶음.
원고의 결말을 이야기해달라는 의사 파.

"창조자는 자신의 창조물에 대해 과연 전권을 소유해도 되는가?"
등장하는 인물들을 쫒아가면서 생각하게 되는 질문이다.
소설가가 이런 질문이 화두처럼 주어진다면 막막할텐데
폴 오스터는 이걸 가지고 이렇게 멋진 이야기를 또 창조해냈다.
무섭다. 이 사람...
이 책을 읽으면 우리가 알앗던 모든 결론들이
어느날 송두리째 바뀔 수도 있을거난 상상까지 하게 된다.
어쩌면 나도 내 기억 속 인물들에게 
기억하지 못하는 가혹한 짓을 했을 수도 있다는 사실...
폴 오스터의 문학 세계가
느닷없이 내 등골을 서늘하게 만든다.

어느날,
"미스 블랭크"와 대면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서 있을지도... 
자!, 이제 부실한 기억력을 점검할 시간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5. 27. 06:38


너무나 보고 싶었던 공연인데 3번의 내한 공연때마다 매번 놓쳤던 작품이다.
매튜 본(Matthew Borune)의 댄스 뮤지컬 <백조의 호수>
4번째 내한공연에서 드디어... 드디어...
이 멋진 신세계를 만나다.

 
                                                                                                    - 메튜 본과 백조들

1960년 영국 런던 출생 메뉴본은 무용계의 이단아로 불린다.
영국 최고 권위의 예술상인 "올리비에상(Olivier Awards)"를 무려 4번이라 수상한 인물.
그의 이력을 찾아 보고 두 번 놀랐다.
생각보다 너무나 젊은 사람이여서 놀랐고, 또 하나는 엄청난 천재성에 놀랐다.
22세에 런던의 현대 무용 컨서버토리안 라반 센터(Laban centre)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단 한 번도 무용 교습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남들보다 늦어도 한참 늦게 자기 길을 찾은 사람 늙각이 안무가가
지금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새로운 예술 장르를 만들어냈다.
22살까지 쌓아온 연극과 무용, 그리고 올드 뮤지컬에 대한 깊고 방대한 지식이
그를 이 분야에서 특별한 사람으로 만드는 밑받침이 되었단다.



1987년 27세의 나이에 자신만의 댄스 컴퍼니인
"어드벤쳐스 인 모션 픽쳐스(Advantures in Motion Pictures)" 창단해서
<호두까기 인형> 같은 고전 발레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새롭게 해석하는 작업을 시작한다.
1995년 남성 무용수들을 백조로 기용한 파격적인 <백조의 호수>는 
큰 센세이션을 일으키면서 전 세계적인 집중을 받았다.
대사 없이 노래와 춤으로만 극이 진행되는 "댄스 뮤지컬"을 처음 만들어낸 안무가 메튜 본.
<백조의 호수>는 스티븐 달드리의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엔딩장면에 감동적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엔딩 장면은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클라이맥스이기도 하다. 
실제로 영화에서도 <백조의 호수>의 1대 백조인 아담 쿠퍼(Adam Cooper)가
성인이 된 빌리로 나와 비상하듯 하늘을 향해 높게 뛰어 오른다.
(8월 드디어 엘튼 존이 참여한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가 우리나라에서라이센스 공연에 들어간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 엔딩 장면                               1대 백조 아담 쿠퍼

<라만차> 이후 오랫만에 찾은 LG 아트 센터.
다행히 내가 보고 싶었던 조나단 올리비에 백조와  샘 아처 왕자다.
낮공연은 다른 사람들.
캐스팅 공지가 미리 되지 않기 때문에 은근히 걱정했었는데
횡재한 느낌까지 들었다.
그리고 그 횡재는 지금까지도 내내 계속된다.
(어쩌면 좋아... 이 사람들...) 




백조와 흑조(낯선 남자)를 연기한 조나단 올리비에.
이 사람의 손끝과 발끝에 완전히 넋을 잃었다.
솔로로 춤을 출 때는 역동적이고 힘이 넘치고
왕자와 페어를 이룰 때는 너무나 아름답고 애절하고 그리고 사랑스럽다.
또 군무에서 주변 백조들과 발란스를 맞추는 모습에서는 묘한 평화로움까지 느껴진다.
(키 작은 백조들과 키 큰 백조들 사이에서 올리비에의 보폭과 점프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백조의 군무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감탄을 한다.
"정말 아름답다..."
2막에서 흑조(낯선 남자)로 나와 파티장의 모든 여자들을 후리는(암만 생각해도 이 표현이 딱이다) 모습은
옴므파탈이라는 단어조차도 무색하다.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놀라운 점프력. 


                                                                          - 조나단 올리비에

감탄하지 말자... 감동하지 말자...
지금 나는 계속 내게 주문을 걸고 있다.
"감동하면 지는 거다!"
아니,
"감동하면 파산하는 거다!"
이렇게 5월 30일까지 버텨야 한다...



무대와 의상, 조명도 환상적이라 누가 참여했는지 찾아봤다.
무대 및 의상 디자인은 리즈 브라더스톤(Lex Brotherston),
조명 디자인인  릭 피셔(Rick Fisher)란다.
두 사람 다 세계적인 사람이란다.
백조 의상은 잘못 만들면 참 우수울 수도 있었을텐데
보면 볼수록 정말 백조 같다.
(저렇게 위는 맨살을 보이고 있는데도 말이다)
소란스럽고 번잡스럽지 않은 무대는 깔끔하고 고요하다.
그리고 조명은 춤의 포인트를 따라가면서 관객에게 하나하나 해설을 해주는 느낌이다.
오직, 경이로울 뿐...
메뉴 본은 어떻게 백조를 남자로 만들 생각을 했을까?
그것 역시 경이로울 뿐...



내 작품들에 어떠한 이름을 붙일 것인가가 매우 큰 이슈로 여겨지고 있다.
이게 뭐야? 무용이야? 맞다. 연극이야? 이 말도 맞다. 우리는 이것을 "댄스 시어터(dance theater) 또는 "댄스 뮤지컬(dance musical)"이라고 부르고, 나 자신을 연출가이자 안무가라고 한다. 그러나 연출로 더 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등의 작품을 위해 플롯을 구상해 나가는 작업은 마치 영화 시나리오나 연극의 극본을 쓰는 것과 흡사했다. 음악을 계속 들으면서, 그리고 원작 시나리오 속에 숨어 있는 아이디어들을 생각하면서 이야기를 쌓아 나갔다. 이것은 내가 영화나 연극을 구상하고 발전시키는 과정과 같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을 안무가라기 보다는 일종의 "창조자", "스토리텔러"로 본다. 스토리텔링은 내가 가진 최고의 재능이라고 여겨진다.                           --- Matthew Borune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