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5. 7. 17. 08:36

오랜 시간 꿈꿨었던 스페인 여행.

처음 바람은 어렵게 획득한(?) 2주라는 시간을 온통 스페인에 쏟겠노라... 였다.

적어도 한 도시에 이틀 이상은 머물 생각이었고

마음에 드는 도시는 일정을 무시하고 하루쯤 더 머물겠다 작정했다.

그런데 동생의 함께 가자는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고

꼭 피렌체와 로마를 가고 싶어 해서 처음 계획과 차질이 생겨버렸다. 

이번이 함께 가는 마지막 여행이라고,

다음부터는 절대로 안끼워줄거라고 엄포를 놓고 일정을 수정했다.

나는 늘 혼자 하는 여행을 꿈꾸고

실제로 그런 여행이 나와는 잘 맞는다.

어쨌든 동생은 여행자이기 전에 "엄마"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바르셀로나에서 묵었던 숙소 Hotel S.ANTONI.

성가족성당과 대성당 중간에 있어서 위치가 정말 좋았다.

두 곳 다 걸어갈 수 있는 정도의 거리.

(그런데 물론 찾아가면서 엄청 헤멨다...)

한국에서는 아침에 커피를 마시는게 전부인데

여행지를 가면 조식은 항상 대식가의 수준으로 먹는다.

특히 유럽의 조식은 채소와 과일이 풍부하고

빵과 치즈, 요커스가 환상적이다.

그러고보니 미국이나 캐나다를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아마도...

빵과 커피, 시리얼 중심의 아메리칸 블랙퍼스트가 싫어서는 아닐까 싶다.

스페인에 있는 동안 아침에 눈 뜨면

이 나이에도 조식먹을 생각에 행복했다.

먹어야 힘이 나고, 힘이 나야 헤맬 수 있으니까!

 

 

숙소 근처의 풍경과

(하늘 빛이 너무 예뻤다...)

가우디 투어때 점심 식사 했던 곳으 풍경.

정박해 있는 요트가 여유있어 보였고

이채로운 조형물을 보는 재미가 솔솔했다.

저 동그란 구조물을 보고 조카녀석이 그러더라.

"발로 빵 차고 싶게 생겼다..." 고.

헐~~~!

가우디가 디자인했다는 보도블록도 한 컷.

 

 

카탈루나에서 람블라 거리 초입에 있는 NURIA에서 먹었던 먹물 파에야.

맛집으로 유명한 곳인데 이때 길을 잃어서 사실 음식맛에 대한 기억은 없다.

(와이파이 때문에 어디라도 들어가야 했으니까...)

먹물 파에야를 제대로 먹은 곳은

역시나 가우디 투어 중에 찾은 "MARINA BAY".

구운 빵에 올리브유와 토마토 소스를 발라서 먹는 에피타이저도 색다른 맛이었고

새우 요리도 맛있었고

(새우킬러 조카때문에 귀퉁이만 조금 먹었지만...)

푸짐하게 한 판 나온 먹물 파예야도 단백했다.

배가 너무 불러 디저트는 포기했지만

조카녀석은 꿋꿋하게 저 달콤한 유혹의 바닥까지 비워내더라.

비행기를 타고 바르셀로나를 떠나오면서도

카메라를 손에서 놓기가 힘들었다.

아쉬움 때문에, 그리움 때문에...

점점 작아지는 바르셀로나의 윤곽을 보며

스페인과 작별하는게 이렇게 힘든 일이구나 실감했다.

 

여행이 병(病)이 되는 순간.

정신 차리자!

안그러면 피렌체와 로마에서 골골할지도 모르니까.

아직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5. 6. 25. 08:35

1905년 짓기 시작해서 1907년 완성된 카사 바트오(Casa Batilo)

이 건물은 사업가 바트요의 의뢰로 가우디가 만들었다.

"뼈로 만든 집"이란 별칭을 가지고 있는 집.

새로 지은 건물은 아니고 기존의 건물을 재건축한거라

무엇보다 기능적으로 튼튼한 건물로 만드는걸 최우선으로 생각했단다.

가우디의 유명세때문에 바로 옆의 카사 이마트예르(Casa Amatller)는 예전만큼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이 건물을 만든 건축가가 가우디의 스승이라던데

그게 맞다면 청출어람 청어람의 전형적인 증거라고 하겠다.

이 건물도 투어가 가능한데 이곳을 몇 번씩 지나다녔봤지만

투어객을 본 기억이 거의 없었다.

오로지 카사 바트요에만 인산인해.

 

 

카사 바트요는 지중해를 테마로 만들어서

내부에 들어가면 바닷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단다.

시간이 없어서 내부 투어는 결국 못했는데

그게 지금까지도 내내 후회가 된다.

지붕까지 올라가 카탈루나 수호신인 용의 비늘을 봤어야 했는데...

내부에서 뼈들 사이로 밖의 모습을 보는 것도 근사했을텐데...

바르셀로나에서 있는 동안 어디로 가든 항상 이 앞을 지나쳐 다녔다. 

하루는 조카녀석이 그러더라.

"이모, 우리 바르셀로나 와서 이 건물만 한 백 번은 본 것 같다. 그치?"

"왜" 싫어!"

"아니, 이쁜 집이라서 기억에 남을 것 같아"

조카녀석이 카사 바트요 내부를 봤다면 그 집에서 살고 싶다고 했을지도 몰랐을텐데...

겉모습을 너무 많이 봤다는 이유로 내부를 홀랑 놓쳐버린 곳.

이곳을 창문을 받치고 있는 다리뼈와 해골모양의 테라스도 신기하지만

건물 외벽 모자이크 장식의 색감이 나는 참 로맨틱하고 예뻐서 자주 넋을 놓고 쳐다봤다.

색색의 고운 꽃가루를 뿌려 놓은 느낌.

또 다시 꿈결같이 달콤한 가우디의 색감에 빠져버렸다.

 

 

깊은 밤 카사 바트요의 모습은

또 다른 반전을 선사한다.

섬뜩하기도 하고 괴기스럽기도 하고...

하지만 조명을 통해 보이는 해골의 눈은 의외의 귀염성으로 가득하더라.

비유를 하자면,

호기심 많은 거대 우주괴물이 

하필하면 한 밤 중에 지구에 떨어져서

큰 눈을 꿈뻑거리며 열심히 상황파악을 하고 있는 모습 같다.

포도넝클에 떨어져 온 몸에 포도송이를 주렁주렁 매달고서... ^^

 

모든 풍경은,

낯과 밤의 모습이, 새벽의 모습이 완전히 다르다.

그걸 알고 싶다면 방법은 하나.

조금 부지런해지는거.

그것 뿐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5. 6. 3. 08:33

가우디 투어.

그룹투어를 워낙 싫어해서 정말 고민을 많이 했는데 결국 유로자전가나라를 선택했다.

바르셀로나 곳곳에 흩어진 가우디의 작품을 길치인 내가 찾아다닌다는건 자폭에 가깝다.

게다가 동생과 조카를 데리고...

(그건 정말이지 쓰나미급 재앙에 해당된다!)

유로자전거나라의 가우디투어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투어고,

다른 하나는 전용버스로 이동하는 투어다.

내가 선택한건 후자.

이유는 전용버스 투어에 "디비다보"가 포함되어 있어서였다.

가보고 싶었던 곳인데 교통편이 애매해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유로자전거나라 덕분에 아주 깔끔하게 해결됐다.

 

 

구엘 공원은 가우디의 후원자 구엘이 평소 동경하던 영국풍의 전원 도시를 모델로 만들었다.

원래는 스페인 부유층에게 분양할 계획이었으나 당시 이곳의 입지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 외면을 당했단다.

총 60여 채를 짓을 계획이었으나 구엘의 죽음으로 지금난에 빠져들어 공사는 중단이 됐다.

그때까지 분양이 확정된 건물은 고작 3 채 뿐이었고

그것도 구엘과 가우디, 그리고 구엘의 변호사가 전부였다.

그러니까 실제 분양율은 제로!

덕분에 지금 바르셀로나는 동화의 나라에 나옴직한 멋진 공원 하나로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지만

당시에는이곳은  여러 사람 피말리게 하는 장소였다.

가우디가 디자인한 기다란 타일 벤치에 앉아 있는 기분은...

동화의 세계를 한층 더 비현실로 느끼게 만들더라.

투어만 아니었다면

이곳에서 제대로 자리잡고 앉아 책을 읽었을텐데...

과자의 집(?) 한 채는 보수 중이었지만 다른 한 곳은 한귀퉁이를 뜯어 입에 넣고 싶어질만큼 맛있게 생겼더라.

아마도 가우디의 머릿속엔

신앙, 자연, 동심... 이렇게 세가지 뿐이었나보다.

 

 

자연환경을 다치지 않게 만든 가우디의 건축물은

사진이나 다큐로 봤을 때보다 실제로 내 두 눈으로 보는게 훨씬 더 섬세하고 아름다웠다.

예전에 나는 모자이크 기법을 쓰는 예술가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한번에 스~~윽 그어도 되는 선을

왜 일일히 점을 찍어 선 하나를 만드는지 그 수고스러움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하나 하나의 점을 찍고, 조각의 작은 빈틈을 찾아 맞춰내는 과정 자체가 예술이라 걸.

그건 하나의 인내고, 고통이고, 경계를 넘어서는 무엇이다.

가우디는 엄청나게 소요되는 타일을 확보하기 위해

인부들에게 따로 부탁을 했다.

공사장으로 올 때 거리에 버려진 유리병이, 커피잔 같은 것들을 모아 오라고...

인부들이 빈 손으로 출근하면 화를 내기도 했다고...

인부들 입장에서 보면 가우디는 친절한 사람은 결코  아니었겠다.

미쳐야 미친다던데...

그런 의미에서 가우디는 광인(狂人)이 분명하다.

 

 

 

구엘공원의 타일 도마뱀 분수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는건 참 무모한 일이다.

내 사진이지만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더 많이 나올 수밖에 없는 도마뱀 분수

애당초 인증사진을 찍는 의욕 따윈 없는 사람이지만

조카녀석 사진 한 장 건지느라 진을 다 뺐다.

비수기가 이 정도인데 성수기엔 사진을 찍으면 모르는 사림과 자연스럽게 단체사진이 되버리겠다.

꽃보다 할배 영향도 있겠지만

둘러보는 모든 곳이 다 한국인이라 여기가 스페인이 맞나 싶더라.

워낙 사진 찍을 때 사람을 피해 좀 기다렸다가 찍는 편인데

이곳에서는 아주 깨끗하게 포기했다.

그야말로 관광객 모드로 셔터를 눌렀다.

그래도 가우디의 타일 재활용은 역시나 아름답다.

타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와인병도 보이고, 찻잔받침도 보이고, 찻잔 손잡이도 보이고. 도자기 인형도 보인다.

가우디는 스페인뿐만 아니라 이젠 전 세계적인 위인이 됐고

스페인 당국은 그를 성인으로 추대하기 위해 준비중이란다.

죽은 가우디가 바르셀로나를 먹여살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그럴만도 하겠다

문득 서울은 뭐가 먹여 살리나를 찬찬히 생각해봤다.


바르셀로나가...

진심으로 부럽더라.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5. 6. 2. 08:47

오후 12시 40분그라나다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2시 5분에 바르셀로나(Barcelona) 도착했다.

호텔에 도착해 짐을 던져놓고 로비에 있는 관광지도 한 장을 들고 길을 나섰다.

가우디의 도시, 바르셀로나!

이곳을 눈으로 직접 보는 날이 내게더 올까 싶었는데

거짓말처럼 여기에 내가 와 있다는게 신비롭게 느껴졌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찾아간 곳은 바르셀로나 대성당.

솔직히 고백하면,

원래 이곳을 목적으로 숙소를 나섰던건 아니다.

구획된 길을 따라 이리저리 걷다가 어느 순간 눈 앞에 대성당이 나타났다.

생각지도 못한 느닷없는 대면은 나를 잠깐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1298년 착공해서 150년 만인 1448년 완공된 대성당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명실상부한 바르셀로나의 중심이다.

정면의 파사드가 다른 곳과는 이질적인 느낌이 들어 찾아봤더니

이것만 19세기에 개축했단다.

정확한건 아니지만 파사드 정중앙에는 예수님 조각상이 있고

그 좌우로 12명의 제자들이 나열해있다.

그 앞 광장에 학생들이 모여앉아 스케치를 하고 있었는데

살짝 들여다본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역시 가우디의 후예들이구나.... 싶더라.

 

 

스페인의 대성당 중 내게 가장 큰 뭉클함을 안겨운 대성당이 바로 이곳이다.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느꼈던 평온함은...

종교 그 이상의 거룩함이었다.

무언가에 둘러싸여 온전히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

그래, 그건 일종의 "아우라"였다.

이번 일정에는 몬세라트에 가지 못해 많이 아쉬웠는데

이곳에 몬세라트 대성당의 검은 마리아상 복제품이 있어 아쉽움을 달랠 수 있었던 것도 축복이다.

성당 주제단 한가운데 있는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더니

바르셀로나 수호성녀 에우랄리의 순교 장면을 조각한 대리석이 모셔져 있었다.

조카녀석이 조각을 보고 한 마디 한다.

"이모, 저 여자분 너무 무섭고 너무 아팠겠다..."

그래.. 그랬겠다.

그렇게 조각가 바톨로메 오르도네스는 조카의 마음을 건드렸다.

세기와 세기는 이렇게 교차된다.

 

성당에서 오래 머뭇거리다 난생 처음 미사에 참석했다.

스페인어로 진행되는 미사 자체도 난감했지만

더 난감했던건 어쩌다보니 맨 앞 줄에 앉게 됐다는거!

하지만 카톨릭 특유의 경건함은 나를 조금씩 고요하고 엄숙하게 만들었다.

여행의 들뜸이 가라앉는 느낌.

덕분에 나는 조금 단정해졌다.

 

성당 맞은편 건물의 그림은 피카소의 작품으로

"사르다나를 추고 있는 사람들"이다.

실제로 일요일 정오가 되면 대성당 광장에 사람들이 모여서

카탈루나 민속춤인 "사르다나"를 춘단다.

이번 여행에서 꼭 보고 싶었던 모습 중 하나였는데

야간열차 일정이 틀어지는 바람에 아쉽게도 놓쳐버렸다.

그래도 괜찮다

이제 고작 바르셀로나에 도착했을 뿐이니까...

내일은 가우디를 만나는 날이다.

가우디가 내게 어떤 문을 열어줄지 그게 또 신비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5. 4. 21. 07:57

호기로움도 자신감도 아니었다.

이 거대한 알함브라 궁전을 가이드없이 돌아다니겠다고 결정했던건!

사실 현지 한국어 가이드 투어를 신청할 생각이었는데

공교롭게도 내가 원하는 곳이 그날만 투어 일정이 없었다.

유럽은 현지 한국어 로컬 가이드 투어가 워낙 많아서

다른 곳을 쉽게 찾을 수도 있었지만 고민하다 그냥 우리까지 다니는 걸로 결정했다.

우루루 몰려가서 가이드 설명에 따라 똑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또 우루루 이동해야 한다는게 싫었다.

다 둘러보지 못하더라도,

중요한 곳을 놓치게 되고,

지도를 제대로 못읽고, 

입구와 출구를 못찾아 헤매게 되더라도

알함브라 궁전만큼은 나만의 시선과, 나만의 시간 간격으로 느끼고 싶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역시나 옳았다.

 

 

알카사바를 둘러본 후 발걸음을 옮긴 곳은 카를로스 5세 궁전.

이곳은 "알함브라 궁전의 이단아"라고 불리는 곳이다.

아랍 건축물에 홀로 서있는 르네상스 양식이라니..,

주위 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이렇게 용감무쌍한 궁전을 지은 인물은

궁전 이름에 나와 있듯 카를로스 5세다.

이 사람은 도대체 무슨 복은 타고 났는지

친가쪽에선 신성로마 제국을, 외가쪽에선 스페인을 물려받아 거대한 영토의 주인공이 됐다.

공식명칭은 신성로마제국에서는 카를로스 5세로, 스페인에서는 카를로스 1세.

이 궁전은 1526년 결혼한 카를로스 5세사 이곳으로 신혼여행 온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왕 짓는거 주변과의 관계를 좀 고려하면 좋았을테데

바쁘신 왕께서는 당시 유행한 스타일과 스케일에만 관심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러고보니 코르도바에 있는 이슬람사원(메스카타)에 대성당을 지은 인물도 바로 카를로스 5세였다.

아무래도 이 왕께서는 "조화와 균형"이라는 개념도 "종교" 앞에선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모양이다.

그래도 다행스럽게도

시간이 많이 흘러 건축 당시만큼의 이질감은 느껴지진 않는다.

(그걸 온전히 이해하기엔 나의 지적, 미적 감각이 기준이하겠지만...)

 

 

이 궁전은 특징은 겉에서 보면 분명 사각형 건물인데

안으로 들어가면 눈 앞에 커다란 둥근 홀(hall)이 열린다는 거다.

내부는 2층 구조로 되어 있고

예전에는 1층 원형홀에서 투우 경기도 했다는데

지금은 바닥이 돌로 덮여져 있어 투우의 흔적을 찾을 길이 없다.

대신 매년 여름마다 그라나다 국제음악제가 개최되고

회랑 1층은 알함브라 박물관이, 2층은 순수 예술 미술관이 자리하고 있다.

별도의 입장료를 내고 관람이 가능한데

미술보다 건축에 혼이 뺏겨 있는 상태라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광장 한가운데는 중심점에 해당하는 동그라미가 있는데 그곳에 조카녀석을 데리고 갔다.

"아~~~"하고 소리를 내보라고 했더니 미심적은 얼굴로 따라한다..

조카가 낸 소리는 이내 커다란 홀을 지나면서 점점 크게 공명된다.

그렇게 한동안을 조카와 소리를 내면서 놀다가 다른 여행객이 오길래 자리를 양보히고 돌아섰다.

손을 잡고 걸는데 조카녀석이 갑자기 물어온다.

"정말 신기하다! 근데 고모는 이런걸 어떻게 다 알아?"

책에서 봤다고 말하려는데 조카가 또 한마디를 한다.

"하긴 고모는 모르는게 하나도 없더라!"

 

...................

 

정신이 번쩍 들었다.

조카에게 정체가 들통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휴~~~우!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5. 4. 1. 08:20

마드리드에서 10시에 출발한 Renfe는

12시 30분 세비아 중앙역 산타 후스타 역에 도착했다.

스페인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이고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성당을 가지고 있는 도시 세비야.

콜럼버스의 대항해가 시작된 곳이 이곳 세비야의 팔로스 항구다.

이후 식민지에서 가져온 금과 은 각종 보석들로 세비야의 경제는 풍요로움이 넘쳐난다.

그래서 한때는 세비야를 "황금의 도시"라 부르기도 했단다.

"황금의 도시"를 둘러보기 전에

다음날 론다로 가는 버스를 예매하기 위해 혼텔에 짐을 놓고 길을 나섰다.

목적지는 프라도 데 산 세바스티안 버스터미널.

당연히 헤맸다.

그것도 아주 많이...

지도상으로는 아주 가까웠는데 막상 걸어가려니 거리가 만만치 않더라.

어찌됐든 우여곡절 끝에 시외버스를 예매하고 세비아 대성당을 향했다.

(버스터미널에서 대성당까지 찾아가는 과정도 너무 구구절절해서 차마 못쓰겠다.)



세비아 대성당과 히랄다 탑.

지금은 세계에서 바티칸 산 피에트로 성당, 런던의 세인트 폴 성당에 이어 세번째로 큰 성당이지만

1401년 이슬람 사원이 있던 자리에 짓기 시작한 세비아 대성당은

1519년 완공됐을 당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이었단다.

그래서 "미친 자들의 작품"이라고 불렸다고!

대성당 정문에는 한 손에는 방패, 다른 한 손에는 종려나무 잎을 청동 여신상 "엘 히랄디요"가 있는데

이슬람과의 세력 다툼에서 이긴 기독교

이 청동 여신상과 히랄타 탑 꼭대기에 있는 여신상과 똑같은 모양이란다.

대성당의 주제단은 목제에 만들어졌지만 엄청난 양의 금으로 도금이 되어 있어 세비아의 번영을 대변해준다.

금의 제단 옆에는 화려한 은의 제단이, 

그리고 곳곳에 무리요, 고야 등의 유명 화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두 눈을 휘둥그렇게 만든다.

게다가 이곳은 공중에 들려진 콜럼버스 관이 안치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관이 이런 형태가 된 이유는 콜럼버스의 유언 때문이다.

"내가 죽으면 스페인 땅을 다시는 밟지 않게 해달라..."

콜롬버스의 유해는 남미의 산토도밍고에 매장되었다가 쿠바의 이바나로 옮겨졌고

1898년 미국으로 양도된 후 최종 세비야 성당에 안치됐다.

현재까지도 스페인에 진짜 콜럼버스의 유해가 있는지에 대한 여부는 의견은 분분한 상태고 

얼마전에 콜럼버스로 추정되는 유해가 남미 어딘가에서 발견됐다는 뉴스도 있긴 했다.

결국 콜럽버스의 항해는 죽어서도 끝나지 않은 셈.


 

콜럼버스의 관은 레온, 카스티아, 나바라, 아라곤 국왕의 어깨위에 들려있는데

고개를 살짝 숙인 왕은 콜럼버스의 대항해를 반대한 왕이었다고.

앞쪽에 있는 왕의 오른족 발을 만지면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세비야를 오게 되고

왼쪽 발을 만지면 부자가 된다는 속설이 있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다 한 번씩 만지면서 지나가더라.

나는.... 뭐... 워낙 욕심이 없어서 그냥 사진만 ^^



대성당 옆의 히랄다 탑과 예전에 이곳이 이슬람 사원이었을때 모스크 첨탑으로 쓰였던 곳이다.

16세기에 기독교인들이 종탑으로 바꾸고 꼭대기에 풍경계를 설치했는데

이때부터 "바람개비"라는 뜻의 히랄다로 불리게 됐단다.

올라가는 길은 왕이 말을 타고 올라갈 수 있게 계단이 아닌 경사로로 만들어졌다.

번호를 따라 34번 골목(?)을 꺽어 올라가면 드디어 탑의 정상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보는 세비아의 전경은...

정말 눈이 부시더라.

역광만 아니었다면 그래도 조금은 더 멋진 사진을 담을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



대성당 오렌지 안뜰 벤치에서 한참 해바라기를 하다 

오렌지 안뜰에서 바라본 히랄다 탑은 정말 예쁘더라.

파란 하늘과 초록 잎들, 그리고 하얀 종탑과 대성당 겉면을 장식하고 있는 조각상들.

좀처럼 꺼내지 않는 망원렌즈를 꺼내서 사진을 담았댜.

한참만에 대성당에서 나와 로마시대부터 왕이 사용했다는 알카사르를 보려고 승리의 광장 쪽으로 이동했다.

알카사르는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을 모델로 만든 성이라고 해서 내부가 무척이나 궁금했는데

안타깝게도 입장시간이 지나버려서 들어가지 못하고 뒤돌아서야 했다.

확실히 여행지에서 많은걸 보겠다 작정한다면 시간조정이 관건이긴 하다.

나는 늘 양보다 질에 패배하는 편이라서...

아쉬운 마음을 알카사르 정문 사자의 문 앞에서 해바라기하는 걸로 달랬다.



승리의 광장에서 대성당과 알카사르를 바라보면 생각했다.

스페인이란 나라는 1년을 여행한대도 턱없이 부족한 곳이겠구나.

이렇게 장님 꼬끼리 만지는 식의 짧은 여행은

더 큰 갈증을 후유증으로 남기겠다.

1박 2일 동안 세비아에 머무는 동안

그래서 정말 정말이지 최선을 다해 마음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동안 스페인을 지나오면서 나를 너무 많이 남겨놔서.

이대로 가다간 돌아갈때쯤이면 또 다시 너덜댈게 뻔하다.

(여행의 후반부로 갈수록 극도로 과묵지는 나...)

여행 초보자인 나는

언제쯤 여행에서 나를 지켜내는게 쉬워질까.

그게 여전히 고행으로 남아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5. 3. 23. 08:16

마드리드에 도착한 동생과 조카를 데리고 톨레도로 가기 위해 서둘러 택시를 탔다.

Eliptica 버스터미널까지 택시를 타면 10 유로 정도.

(세 명이 움직일때는 확실히 지하철보다는 택시가 유용하다)

톨레도까지  ALSA 직행버스 왕복요금은 9.77 유로 (5.43 / 4.34)

펠리페 2세에 의해 마드리드로 수도가 옮겨지기 전까지

스페인의 수도였던 도시 톨레도는

그리스 화가 엘 그레코가 너무나 사랑한 도시이기도 하다.

버스터미널에서 나오면 친절한 핑크색 선이 나오니 그걸 따라 이동하라는 정보를 그대로 믿었다.

그런데... 핑크선이... 참 많더라.

결국 소코도베르 광장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찾아가기까지 험난한 여정이 이어졌다.

동네 어르신들에게 물어보면 친절하게 대답해주시긴 하는데

문제는 우리가 에스파냐어를 모른다는 사실.

열심히 설명해주시는데 못알아들으니 그것도 참 죄송스럽더라.

뭐, 어찌어찌 에스컬레이터를 찾긴 했다.

(이게 뭐라고... 무지 반갑더라.)

버스터미널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바로 나오는 에스컬레이터를 찾느라

윗길, 아래길을 얼마나 헤매고 다녔던지...

지도를 볼 줄 모르는 사람이 여행을 하려면

남들보다 5배 정도는 더 걸어다닐 각오를 해야만 한다.

(이런 사람들에겐 구글맵이라고 유용할리 만무하다.)



미로같은 좁은 골목길을 걷는건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느낌이다.

저 골목을 지나면 말 탄 기사나 수도사가 지나갈지도 모른다는 상상.

그게 현실로 느껴지는 곳이 바로 "톨레도"다.

이런 곳에서 평생을 살게 된다면...

바쁠게 하나도 없을것 같다.

실제로 스페인 사람들의 삶은 참 느긋하고 여유롭다.

"빨리빨리"에 익숙한 한국사람에게 스페인의 속도는 복장을 수십번은 터트리게 할지도 모르겠다.

톨레도에서 처음 먹은 "메뉴 델 디아"만 해도 그렇다.

일종의 런치세트인데 저렴한 가격대로 점심때만 먹을 수 있는 코스요리다.

혼자 여행할때는 끼니를 잊기가 일수였지만 조카가 있으니 제대로 된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다.

그런데....

식사 시간만 무려 2시간 정도.

톨레도를 구석구석 둘러보겠다는 생각은 그저 야무진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결국 디저트는 포기하고 식당을 나섰다.

스페인 여행 준비를 할 때 항상 점심은 "메뉴 델 디아"로 먹겠다고 다짐했는데

과감하게 포기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지만 도저히 "금강산"이포기가 안되더라.

내가 또 다시 스페인을 올 수 있을까 싶으니 자꾸 절박해져셔...

여행지에서는 나는 그저 여행자일 뿐이다.

도저히 생활인은 될 수 없다.

그걸 알기에 "식후경"이 멀어지고 "금강산"이 먼저 선택되더라.

(꼭 먹겠노라 다짐한 톨레도의 "마자판"도 결국 못먹었다. 아쉬운 마음에 사진만...)




톨레도 대성당(4uro)은 원래 이슬람 사원이었는데

카톨릭이 이슬람 세력을 물리치면서 그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성당으로 재탄생됐다.

(스페인에 있는 거의 모든 대성당이 똑같은 과정을 거치긴 했지만...)

1226년 건축을 시작해 1493년에 완성됐다니 건축기간만도 무려 270년.

정면에 3개의 문이 있는데 

중앙는 용서의 문, 오른쪽은 심판의 문, 왼쪽은 지옥의 문이다.

톨레도 대성당은 성가대석에 모셔져 있는 성모상이 유명하다.

전세계에서 유일한 웃고 있는 성모 마리아상.

원래 성모 마리아는 슬픈 표정을 짓거나 거룩한 표정을 짓고 있는게 대부분인데

여기에 모셔져 있는 성모상은 눈꼬리까지 웃음이 가득하다.

한때는 신성모독으로 손가락질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래서 작가도 알려져있지 않다고...)

지금은 많은 관광객의 카메라 세례를 받고 있다.

재미있는건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본 대부분의 성모상과 예수상은 

그동안 익숙하게 봐온 서양인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나라 불상의 느낌이 강했.

자비심이 느껴지는 모습.

그 낯설지 않은 친근감때문에 스페인 성당 안에선 카메라에 많이 비빠진다.



톨레도를 출발할땐 정말이지 원대한 꿈(?)을 가졌었다.

마음 속 루트에는 산토 도메 성당도, 산타 크루스 미술관도, 엘 그레코의 집도, 성모 승천 시나고가도, 알카자르도 다 있었다.

하지말 실제로 여유있게 둘러볼 수 있었던 곳은,

끝없는 헤맴과 Iglesia de S. Marcos와 톨레도 대성당과

겨우겨우 막차로 탔던 소코트렌 탑승이 전부.

그래도 톨레도의 상징인 "대성당"은 놓치지 않았으니 다행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분명 저기 저 앞에 대성당이 보였는데 골목을 빠져나오면 대성당이 사라져버렸다.

정말 테세우스도 울고 갈 라비린토스에서 한참을 입구를 찾아 헤매고 또 헤맸다.

비록 산토 도메 성당에 있는 세게 3대 성화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은 못봤지만

끝없는 헤맴끝에 대성당에 찾아

엘 그레코와 티치아노의 그림을 봤으니 그걸로 됐다.

내가 미치게 사랑하는 티치아노의 선명한 붉은 색.

그걸 눈 앞에서 봤으니... 

충분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5. 3. 18. 08:14

마드리드 나흘차.

아침에 일어나니 발가락이 사단이 나있었다.

커다란 물집이 세 개나 자리잡고 있는 것이...

하긴 삼일동안 국가대표 상비군이라도 된 듯이 걸어다녔으니 사단이 날만도 했다.

고민하다 물집을 터트리고 밴드로 감싼 뒤 두꺼운 양말을 신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7시 정각에 조식을 먹으려고 식당으로 내려갔다.

마드리드에 있는 4박 5일 동안 내가 묶었던 호텔 Regente.

그랑비아 대로변에 있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도, 늦게까지 돌아다니기에도 괜찮았던 호텔.

그리고 무엇보다 조식이 깔끔하고 맛있었다.

서울에서는 아침은 커피 한 잔으로 끝이었는데

여행만 가면 아침을 연말 회식 수준으로 먹게 된다.

조식이 그날의 유일한 한끼가 될 확률이 높아서도 그렇지만

유럽의 치즈와 빵은 내 입맛에 잘맞아서 자꾸 손이 가게 되더라.

(그래서 이번엔 작정하고 덩어리 치즈를 몇 개 사왔다)

그리고 역시나 커피.

스페인에 있는 동안 "카페 콘 레체"를 하루에도 몇 잔씩 마셨는데

Regente 호텔은 테이블마다 뜨거운 커피와 우유가 셋팅되어있어 정말 원없이 마셨던것 같다.

커피머신이 아니라 자기 취향대로 농도를 조절해서 마실 수 있다는게 큰 장점.

아침을 먹으면서 보통 4잔의 커피를 마셨는데

첫 잔은 커피보다는 우유를 많이 넣어 위에 자극되지 않게 마셨고

다음 잔부터는 커피의 농도를 늘려가면서 마셨다.

그러니까 매 잔마다 다른 맛의 커피를 즐겼던 셈.

스페인을 여행하는 동안 마드리드 Regente 호텔에서 마신 커피가 가장 맛있었던건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일거다.

일종의 나만의 레시피 ^^



이날이 동생과 조카가 마드리드에 도착하는 날이라 아침 일찍부터 분주했다.

호텔 프런트에 부탁해서 조금 일찍 싱글룸에서 트리플룸으로 짐을 옮겼고 

(3일 동안은 운좋게 더블룸을 싱글룸 가격으로 있었다.)

조식을 먹고 바로 마드리드 왕궁을 둘러보기 위해 호텔을 나섰다.

마드리드 왕궁은 원래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전이었다는데 화재로 소실됐다.

후에 펠리페 5세가 그 자리에 베르사이유 궁전을 닮은 궁전을 지으라 명령해서 만들어진게 지금의 모습.

터키의 톱카프 궁전도 베르사이유 궁전을 모델로 만들었다고 하던데

당시 베르사이유 궁전이 유럽의 황제들에겐 일종의 선망의 대상 혹은 왕권의 상징이었던 모양이다.

왕궁 앞 오리엔테 광장에 서있는 기마상은 펠리페 4세 기마상.

후대에 세워진건지 선대왕에 대한 헌정의 의미였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5세가 아니라 4세라도 좀 의아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공원에도 왕궁 앞에도 사람이 거의 없어 혼자 주인 행세를 하며 돌아다녔다.

광장 주변엔 말 탄 경찰들이 순찰을 돈다는데 아침 일찍이라 그런지 흔적도 없더라.

덕분에 혼자 실없이 이 끝에서 저 끝으로 뛰어다니고, 

펠리페 4세 기마상의 앞태, 뒷태, 옆태를 자세히 감상하고,

왕궁 창살 너머 여기 저기 원없이 기웃거리고,

열린 문틈에 머리도 들이밀어보고...

잔뜩 지푸린 하늘 아래에서 혼자 놀기의 진수를 펼쳤다.

펠리페 4세가 말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그랬겠다.

"아침부터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저 여자사람.... 정체가 도대체 뭐니?" 



왕궁 뒷편에는 아르메리아 광장이 있고

그 건너편에는 알무데나 대성당이 자리잡고 있다.

그냥 지나칠뻔 했는데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있는 성자상(聖子狀)에 끌려 안으로 들어갔다.

성자상이 꼭 이렇게 말하는것 같았다.

"들어와..."

성당 내부는 화려함보다는 따뜻함과 평온함으로 가득했다.

아침 햇살을 가득 담은 주제단 앞에 한참을 앉아있었다.


종교라는건,

결국은 위로의 손길이더라.

나약해서가 아니라 위로받기 위해 사람들은 종교에 의지하게 된다.

내가 지금 낯선 스페인 땅에서 위로받고 있는 것처럼.

그래서 이 여행이 내겐 전지전능한 "종교"고 "구원"이다.

이 위로의 시간을 지나고 나면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을테다.

그리고 그 힘으로 다시 삶을 시작하게 될테고...

사람들은...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고 구원한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5. 3. 2. 08:42

호텔에 체크인을 하자마자 캐리어만 던져놓고

핸드폰과 10유로 달랑 들고 무작정 길을 나섰다.

사진기를 가지고가면 욕심이 생길것 같아 그냥 그대로 풍경을 보자고 작정했다.

(그래도 욕심이 생겨 핸드폰으로 남긴 사진들.)

너무나 맑고 화창했던 마드리의 날씨는 긴 비행의 피로를 순식간에 사라지게 만들더라.


걷고, 걷고, 또 걸었다.

마드리드의 번화가 그랑 바아를 혼자 걷는 기분은 

아주 행복했고, 다정했고, 즐거웠고, 그리고 풍성했다.

박물관 두 곳을 둘러보고서도 해가 진 마드리드 시내를 그렇게 걷고 또 걸었다.

자꾸 행복해 혼자 배시시 바보처럼 웃어댔다.


아름다웠다.

그리고 참 다행이었다. 

생전 처음 본스페인의 마드리드의 풍경이 차갑지 않아서...

이번 여행,

그래도 온기를 품고 다니겠구나... 생각했다.


눈부시게 화창한 날씨.

파란 하늘과 새햐얀 구름.

여행의 첫날 마드리드가 내게 준 선물.

너무나 행복해서 미안하기까지 했던 내 여행의 첫인상.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