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3.19 <아랑은 왜> - 김영하
  2. 2009.09.27 영화 <내사랑 내곁에> - 2009.09.24.
읽고 끄적 끄적...2011. 3. 19. 05:53
김영하를 말할 때 이 작품은 항상 앞자리를 차지한다.
2001년 2월 출판된 <아랑은 왜>
2010년 다시 출판될때까지 한때 잠깐 이 책을 구입하지 못한 때가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때 이 책을 찾으려고 잠시 여기저기 뒤적거리기도 했었다.
서평서나 아니면 책 좀 읽는다는 간서치들도 손꼽았던 책 <아랑은 왜>
김영하 작품이라면 왠만하면 다 읽었던 나로서는
너무 늦게 이 책을 읽은 셈이다.
와~~~우!
그런데 이 작품!
물건도 이런 물건이 없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설이 길다~~~~"라고 하는 그 "사설"로
이렇게 기막히고 멋지고 완벽히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이건 확실히 "탄생" 그 자체다!


...... 아랑은 나비가 되었다고 한다 ......

소설은 별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처럼
약간은 심드렁한 말투로 시작된다.
아마도 "아랑은 나비가 되었다"라고 시작했다면 나는 첫 문장부터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나비가 되었다고 한다"라는 말 속에 담겼을 숱한 비화들과 논쟁거리들이
첫 문장을 읽는 순간 빠져들게 했다.
확실히 뭔가가 있는 있구나 기대감을 잔뜩 품게 한다.
"아랑(阿娘)" 전설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굳이 "아랑"이라는 이름을 모른다고 해도 그 전설 자체는 어릴 적 "전설의 고향"에서도 한 번쯤 봤던 숱한 이야기다.
억울하게 살해된 아랑이 신관사또가 부임하면 첫날 찾아와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려고 하지만
지레 겁을 먹은 사또들은그만 그 밤에 줄줄이 죽어나간다.
그러다 용감한 사또가 부임하면서 아랑의 혼백을 만나 억울함을 듣고 비로소 사건을 해결한다는 이야기...
(다 아는 이야기를 굳이 쓰려니 참 민망하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작가의 말처럼 아랑전설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여 새롭게 재구성한
아랑 전설의 틈찾기라고 할 수 있다.
작품속에 등장하는 작가는 여기저기 아주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마치 한 편의 시나리오 전체를 총 지휘하는 영화감독이 된다.
연기할 배우를 캐릭터를 설명하고 그 배우와 이야기를 하고...
작품 여기저기에 다른 세상들이 시간과 공간을 오가며, 그것도 믿어지지 않을 만큼 질서정연하게 펼쳐진다.
이건 무작정 빠져들 수밖에 없는 구조고 이야기 전개고
그리고 모든 것이다.
모두가 아는 익숙한 이야기를 다르게 쓴다는 건 만만찮은 일이라고 작가는 책을 빌어 볼맨 소리를 하지만
이런 페이크조차도 무지 재미있고 흥미롭다.


전설 속 아량 이야기.
작품 속의 연출가(?)인 작가가 만든 현실 속의 가상 인물 "박"과 "영주"
그리고 또 그 작가가 만난 선운사 앞에서 큰줄흰나비 박제를 팔고 있던 현재의 아랑!
거기다가 여기저기서 친절하게 출처까지 밝혀준 각종 문헌 자료들은
은근히 이 이야기를 학구적이고 고증학적이게 만드는 묘미까지 있다.
(어쩐지 이 책에 나온 모든 문헌들이 거짓이라도 나는 진실이라고 끝끝내 믿고 싶어진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아랑 전설의 모든 것을 뒤집는 이야기는
허를 찔리는 기분이기도 하고 농락당하고 있는 기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랑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전설이다.
그러니 아무도 진실이 무엇인지는 결코 알 수 없고
그런 이유로 모든 이야기는 진실일 수밖에 없다.
김영하가 만든 완전히 다른 세계를 덮으면서 책 속의 이 문장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다.

......과연 누가 중독자들만큼 지루할 수 있을까? 강력한 자극이 엄습하기를 기다리고 준비하는 시간은 얼마나 길 것인가. 다가올 환상에 대한 기대가 클수록 더욱 그렇겠지 ....

그렇다!
나는 지금 김영하에게 중독되어 버린 것이다.
이제 나는 어쩔 수 없이 지루한 사람이 될 팔자다.
그리고 이건 순전히, 전적으로
김영하 때문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09. 9. 27. 08:21
정말 오래 기다렸던 영화
개봉하는 날 달려가서 꼭 보리라 다짐했던 영화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했던 영화
영화를 보기 훨씬 전부터 충격과 감탄 먼저 해야했던 영화.
그 영화 <내사랑 내곁에>를 보다.

 

그런데 정말 몰랐었다.
영화가 개봉되기 전까지 나는 김명민이 연기한 남자 주인공 "백종우"는 알고 있었지만
하지원이 연기한 "이지수"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그리고 그녀 하지원에게도 이지수에게도 놀랐다.
루게릭병을 앓는 백종우를 연기한 김명민의 비현실적인 체중감량의 소식을 접하면서
항상 백종우를 부축하면서 끝까지 사랑을 놓치 못했던 이지수는
왜 모른척 했을까?
거의 모노 드라마로 생각하고 한 사람만 떠올리고 있었던 나.
하지원의 이지수는...
김명민의 백종우만큼 절절하고 아프다.
한 사람은 망가지는 몸으로 아프고
한 사람은 망가지는 맘으로 아프고...



김명민...
그는 확실히 대단하다.
영화를 보면서 굳이 그렇게까지 몸을 말렸어야 했을까 하는 개인적인 의문을 자꾸 갖는다.
그인들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김명민은 결정은 "그렇다!"였다.
그는 말했었다.
"시나리오만 봐도 수척해졌다..."고

장래지도사 이지수.
실제 영화를 보면 백종우보다 오히려 이지수 씬이 더 많다.
그리고 나는 그 감정의 끈을 붙잡고 있었을 하지원을 새롭게 보게 됐다.
그녀는 말한다.
"아직도 백종우를 가슴 속에서 떠나 보내지 못하겠다"고...
락스물과 세제 속에서 문질러 대던 세상에서 제일 이쁜 손,
그 손에 끼워져 있던 서럽고 서럽던 하얀 장갑...
그걸 봐야 하는 내 눈도 힘들다.

주연들보다 더 서럽게 울게 만들던 병실 안 사람들.
햇살 좋은 날,
병원 옥상에서 휠체어에 앉아 일렬로 해바라기를 하고 있던
멈춰버린 사람들의 멈춰버린 시간도 울컥 생각난다.
힘들었던 건 김명민 그 뿐만이 아니었겠구나......

 

그러나...
영화는,
어딘지 자꾸 듬성듬성하다.
뭔가 일부가 뭉턱 빠져나간 것 같은 헐거움...
내가 너무 많이 그리고 너무 깊게 기다렸기 때문일까?
그래도 확실히 극의 초반 편집은 이상하다.
시간이 없다... 거기엔...
시간이 느껴지지 않는 장면은 마치 혼자 떠도는 혼령을 보는 느낌이다.
툭 하고 떨어진 알맹이를 미처 다 줍지 못한 느낌.
너무 강한 햇빛 속에 갑자기 들어선 사람처럼 아찔하다.
스멀스멀 시작되는 햇빛 속 멀미...

 

지금보다 훨씬 어리고 지금보다 훨씬 순수했을 때
(그런 때가 정말 있긴 했었나???)
누구라도 한 번씩 해 봤던 생각.
"사랑하는 사람이 어느날 불치의 병에 걸린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누군가가 물으면
과거의 나는 그랬었다.
"그 사람 곁에서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지금의 나는 뭐라고 대답하게 될까?
지금의 나는
너무 많은 걸 겪었고,
너무나 많은 시간을 지나왔고
너무나 많은 것을을 봤다.
그래서 지금은 안다.
예전과 같은 대답은 죽었다 깨어나도 도저히 할 수 없다는 걸...

이 영화는...
그래서 내겐 너무 독한 "판타지"다...

* 너무 오랫만에 <다시 태어나도>를 듣다.
  예전에 김돈규가 이 노래를 발표했을때 정말 무지 좋아했었는데...
  그것도 이젠 너무 오래된 기억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