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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5.28 서울을 아세요?
  2. 2009.12.16 달동네 책거리 75 : <고산자>
그냥 끄적 끄적...2010. 5. 28. 09:04
"서울"은 조선 초기에 철저한 계획 도시로 만들어졌다.
옛 지도를 보면,
서울은 오행사상, 풍수지리사상, 유교사상이 결합된 도시다.
그리고 경복궁은 풍수지리학상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중심에 해당하는 전형적인 명당자리다.
- 배산 : 주산은 백악산(북악산), 안산은 목멱산(남산), 좌청룡으로 타락산(낙산), 우백호로는 인왕산.
- 임수 : 청계천, 한강

 


오행사상은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기본 도리를 뜻하는 것으로
중심에 "경복궁"인 "신(信)"을 두고 인의예지(仁義禮智)가 둘러싸고 있다.


                                                   北 (水, 冬, 黑. 智. 玄武)

                                                                   ㅣ

(木, 春, 靑, 仁, 靑龍)      ㅡ       中 (土, 黃, 信)        ㅡ       西 (金, 秋, 白, 義, 白虎)
                                                                  경복궁
                                                                
                                                                   ㅣ
                                                   (火, 夏, 赤, 禮. 朱雀)

 

서울 도심 사대문의 이름도 소학에서 따온 "인의예지신"를 넣어 오행의 방위에 맞게 명명했다.
동쪽은 "인"을 넣어 홍인지문, 서쪽은 "의"를 넣어 돈의문, 북쪽은 "지(知)"를 정(精)으로 고쳐 숙정문,
남쪽은 "예"를 넣어 숭례문(崇禮文)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중심이 되는 경복궁 가까이에 보신각이 있다.
서울 도성의 4대문과 4소문
- 4대문 : 홍인지문(동대문), 돈의문(서대문, 소실), 숭례문(남대문), 숙정문(북대문)
- 4소문 : 혜화문(동소문), 소의문(서소문, 소실), 광희문(남소문), 창의문(북소문)
서울의 5대 궁
: 경복궁(1395년), 창덕궁(비원 1405년), 창경궁(1483년), 경희궁(1616년), 경운궁(덕수궁 1897년)



                                    <서울의 4대문>

                      숭례문                                                     홍인지문


                           숙정문                                                    돈의문

매년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보신각 종소리.
제야의 종을 33번 치는 이유는 조선 시대에 이른 새벽 사대문 개방과 통행금지 해제를 알리는 타종, 즉 파루를 33번 친 데서 연유된 것이다.
33번의 타종은 우리 민족과 국가는 무력이 아닌, 홍익인간과 광명이세를 근간으로 인, 의, 예, 지로써 백성을 다스리고 교화할 것임을 33천, 즉 우주 전체에 맹세한다는 의미이며 이러한 통치이념을 파루를 칠 때마다 상징직으로 표현했다.


                                                                                                                       <보신각과 종>
서울에 유교사상의 흔적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으로
天은 현재 조선호텔 자리에 있던 "원구단", 地는 사직단(현 사직공원)을 뜻한다.
그외에 조상을 모시는 종묘와 공자를 모시는 문묘도 있다.
종묘에는 역대 왕과 왕비, 추존된 왕과 앙비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드리던 곳으로 정전과 별묘인 영녕전의 35개 신실에 시위 89위를 모시고 있다.
정전에는 조선 제1대 임금인 태조의 신위를 포함해 19실에 신위 49위가 모셔져 있다.


                                종묘                                                      종묘제례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12. 16. 05:48
 <고산자> - 박범신


고산자 


1993년 문화일보에 소설을 연재하다가 돌연 절필을 선언했던 박범신이 몇 년 전부터 열혈 청년 작가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1946년 생으로 올해 63세, 청년 작가 박범신!

2008년 네이버에 연재된 <촐라체>라는 소설을 아주 인상 깊게 읽은 기억때문인지 올 해 그의 생애 첫 역사소설 <고산자>가 출판된다고 했을 때 개인적으로 기대가 컸습니다.

“절필 선언 이후 처음 쓴 소설 <흰소가 끄는 수레>에서 작년에 출판된 <촐라체>까지 지난 10년 동안 나는 자기성찰, 구도 등 내면에 많이 붙잡혀 있었습니다. 한번 나로부터 떠난 소설을 갖고 싶었어요. <고산자> 이후에는 어떤 것에도 억압받지 않고 소설의 바다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책을 발표한 후 인터뷰에서 그가 한 말입니다.

박범신, 아마도 그는 작가로서의 한 세대를 끝내고 이제 새로운 세대로 넘어가려는 모양입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살았던 시대는 너무 바빴고 변화가 많아서 현실을 보는 데만 급급했다고 고백하는 그가 이제 역사적 시점으로 눈을 돌리고 싶다고 말하네요.

앞으로 종종 역사소설을 쓰고 싶다는 박범신, 아무래도 <고산자>라는 작업이 그에게 또 다른 구도의 길이 됐던 건 아닌지 생각합니다. 


“평생 시대로부터 따돌림 당했으니 고산자(孤山子)요, 나라가 독점한 지도를 백성에게 돌려주고자 하는 그 뜻이 드높았으니 고산자(高山子)요, 고요하고 자애로운 옛 산을 닮고 싶어했으니, 그는 고산자(古山子)라고도 했다.”

대동여지도를 만든 고산 김정호(金正浩)!

그러나 지도의 명성에 비해 고산 김정호에 대한 기록은 이상하리만큼 미미하고 그 생애 또한 확실치 않다고 합니다. 생존 시기도 단지 추정에 불과할 뿐, 고향은 물론 본관, 신분조차도 여러 설로만 전해지고 있다고 하네요.

누군가는 김정호가 자신이 만든 상세한 지도 때문에 첩자로 몰려 옥사했다고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백두산에 올라 신선이 됐다고도 합니다.

김정호의 생에 대한 추적과 대동여지도와 관련된 진실.

<고산자>에서는 이 두 가지에 대한 작가적 상상과 해석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매서운 눈보라가 몰아치는 어느 겨울,

김정호의 아비 김해준과 22명의 무지렁이 백성들은 “홍경래의 난” 진압을 위해 차출되어 산을 넘다 그만 눈보라 속에서 길을 잃고 억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당시 그들은 관아에서 독점하여 제작, 관리했던 지도 한 장에 의지한 체 길을 떠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엉터리 지도가 22명의 젊은 생명을 그대로 차디찬 눈 속에 생매장하게 만드는 이유가 됐죠.

실종된 아비를 찾아달라고 탄원하다 결국 고향 땅을 등지고 도망을 가야 했던 어린 김정호는 생각합니다.

“지도는 나라의 것이기에 앞서 백성의 것”이어야 한다고...

이 생각이 그의 온 생애동안 조선팔도를 직접 두 발로 걸으며 정확한 축적의 지도를 만들게 하는 시작이 되었습니다.

비록 허구일지라도 그가 홀로 지도제작에 일생을 바친 이유를 이 책에서 만날 수 있죠.

“조정과 양반이 틀어쥔 강토를 골고루 백성에게 나눠주기 위해서이고, 조선이라는 이름의 본뜻이 그러하듯, 강토를 세세히 밝혀 그곳에서 명줄을 잇고 있는 사람살이를 새롭게 하고자 한 것뿐이다. 땅의 흐름과 물의 길을 잘 몰라 떠도는 사람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그뿐이다.”

대동여지도는 22첩의 분철절첩식으로 고안된 목판본 지도입니다.

물에 불린 피나무를 이용해 22첩의 목판본 하나하나를 사람의 손으로 직접 조각해서 만든. 그것도 산맥의 고저, 강폭의 너비, 길의 유무까지 세세하게 기록한 미스터리에 가까운 정확성을 보여주고 있는 지도죠.

분철한 이유는 커다란 지도를 전부 가지고 다니는 불편을 없애고 필요한 부분만 간편하게 들고 다니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대동여지도엔 “독도(우산국)”이 표기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일본이 독도를 자신들의 땅이라 주장하고 내세우는 근거에 고산 김정호의 대동여지도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분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그들은 말하죠.

“봐라! 너희들이 가장 정확한 지도라고 말하면서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는 대동여지도에도 독도가 빠져있지 않느냐?”

그러나 “독도”가 빠진 이유는 정확한 축적을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대동여지도에 독도를 표기하기 위해선 축적을 무시하고 울릉도 바로 옆에 그리던지 아니면 별도의 목판 2개를 덧대 지도의 외형을 사각틀에서 완전히 벗어나 삐져나오게 하던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고 하네요.

고산 김정호의 선택은 정확한 축적 표기를 위해 독도를 제외시켜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그건 박범신의 지적처럼 “뛰어난 과학자이며, 섬세한 예술가”였던 김정호의 장인정신에서 비롯된 고집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당시 벌목금지와 고가의 목판 가격도 한 몫 했을 거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고산자> 이 책은 상상된 이야기를 따라가는 재미도 숨겨진 역사를 따라가는 재미도 골고루 갖춘 천상 이야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팩션소설이긴 하지만 어쩐지 역사에 비중이 조금 더 많이 느껴지는... 그러나 실제로는 역사보다 작가 개인의 상상력이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전 자꾸 역사를 들여다보는 느낌이네요. 물론 정사(正使)는 아니고 야사(夜思)나 잠사(潛史)쯤이라고 할까요?

전혀 알려지지 않은 그의 인간적인 삶에 대한 조명이며, 인연들, 그리고 신분을 넘는 지식인들과의 만남 김병연(김삿갓), 이규경, 최한기, 신위 등). 천주교 박해와 민초들의 난까지.

저에겐 조금씩 가물가물해진 역사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어 준 좋은 계기가 된 책이었습니다.

작가 박범신은 첫 역사소설로 고산 김정호의 이야기를 쓰면서 “현실에 어떻게 관계하면서 살아야 하는지를 많이 배웠다”고 술회합니다.

그러면서 이제부터는 청년보다 “늙어가면서 깊어져서 향기로운 길을 가고 싶다”는 소망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가 지금 준비하고 있는 책은 는 "감수성을 충분히 해방시키는 아름답고 슬픈 연애소설"이라니 왠지 그 이야기도 기대가 되네요.

작가라는 세계.

참 부럽지 않습니까?

이렇게 역사에 개입할 수도 있고 환갑을 넘긴 나이에 아름다운 연애를 꿈꾸고 있노라 대중 앞에 밝힐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작가들처럼 직접 쓰는 행위로 개입을 할 수 없는 우리 민초들은 이렇게 “읽음”을 통해 살짝 그 끄트머리의 세계로 동참을 꿈꿉니다.

어쩐지 은밀한 즐거움까지도 발견하게 되네요.

겨울입니다.

열심히 읽고 더 많은 개입을 꿈 꿀 수 있는 시간 여행의 문이 열리는 시간입니다.

떠나는 당신의 여행 가방 안에 담겨도 좋은 한권의 책, <고산자>였습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