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5. 6. 16. 08:31

 

<프로즌>

 

일시 : 2015.06.09. ~ 2015.07.05.

장소 :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극작 : 브리오니 래버리(Byrony Lavery)

번역 : 차영화, 우현주

윤색 : 고연옥

무대 : 정승호

연출 : 김광보

출연 : 박호산, 이석준 (랄프) / 우현주(낸시), 정수영(아그네샤)

제작 : 극단 맨씨어터

 

연극 <프로즌>

무겁고 우울한 작품이라는 소문을 듣긴 했는데

직접 관람한 내 느낌은,

너무 치밀하고 은밀하고 그리고 집요한 작품이다.

그리고 배우들이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었을것을 같아 안스럽더라.

김광보 연출은...

이번에도 배우들을 편하게 해주지 않았구나... 싶었다.

출연 배우들과 포스터의 느낌만으로는 <디너>가 떠올랐는데

실제로 연극을 보면서 떠올린 작품은 김광보 연출의 또 다른 연극 <스테디 레인>이었다.

두 작품은 분위기도, 뉘앙스도, 아주 유사하다.

 

용서할 수 있는 것과 용서할 수 없는 것.

용서받을 수 있는 것과 용서 받을 수 없는 것.

같은 말 같지만 명확히 따지자면 다른 의미다.

왜냐하면 용서의 주체가 완전히 다르니까.

"용서"라는게 그렇게 쉬울까?

자식을 처참하게 죽인 사람을 용서한다는게

정말 가능할까?

그걸 세상 사람 모두가 "죄"가 아닌 "증상"이라 한대도

가족에게는, 엄마에게는 "죄"여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이들이 진실을 다 말했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아니 아주 계획적으로 비밀을 감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의미에선 랄프를 찾아간 낸시의 행동은,

용서를 가장한 타살일 수 있지 않을까?

아무런 형체도 담겨져 있지 않는 까만 사진을 보면서 이야기 나누는 장면이

그래선지 나는 참 섬뜩했다.

감춰진 사진 처럼 그 둘의 관계의 진실도 감춰져 있는 것 같아서..

랄프 역시 죄책감에서 비롯된 자살이 아니라

분열된 자아를 감당하지 못한 최후의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랄프의 장례식에서

넨시가 아그네샤에게 남긴 마지막 말.

"그냥 고통스러워하세요..."

그 말이...

날 자꾸 그렇게 몰아간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4. 4. 22. 07:26

<알리바이 연대기>

일시 : 2014.04.17. ~ 2014.04.20.

장소 :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극작 : 김재엽

연출 : 김재엽

출연 : 남명렬, 지춘성, 정원조, 이종무, 전국향, 유준원, 유병훈, 백운철

 

이 연극...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만큼 놀라운 작품이다.

아들의 입을 통해 이야기되는 아버지의 일생이라는 덤덤한 이야기 속에 일제 강정기부터의 이어지는 대한민국의 현대사가 아주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짧지만 그 어느때보다 방대하고 치열하고 암울했던 시대.

그 시대의 끄트머리를 지나온 나에겐 어린 세대들에게 박물관 역사와 별반 다르지 않을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경계인과 주변인도 못됐던 내조차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몇몇의 사건들.

그걸 보면서 "기억"과 "보존"에 대해 생각해봤다.

이 작품은 극을 쓰고 연출을 한 김재엽이 10여년 전에 아버지를 간호하면서 쓴 병상일기가 시작이다.

(작품 속 등장하는 아들의 이름 역시도 "재엽"이다.) 

“제가 3~4개월 동안 아버지의 회고를 들었어요. 그런데 거의 돌아가시기 직전에 했던 말씀이 뭔지 아세요? ‘내가 탈영을 했었단다’라는 것이었어요. 그것이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숨겨놓은 말이었어요. ‘이제 속이 다 시원하다’고까지 하시더군요.”
다행이다.

김재엽의 아버지도 다행이고,

김재엽도 다행이고,

그리고 나까지도 다행이다.

이 작품.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

4월 25일부터 5월 11일까지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다시 공연된다니 일부러라도 찾아봤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의 어처구니없는 현대사를 이렇게라도 조금 알게 되면 좋겠다.

이해까지는 못하더라도...

 

극장 맨 앞 줄 보조석에 어린 대학생들이 단체로 관람을 하더라.

노파심에 불과하겠지만 그들의 눈에 이 연극이 단지 허구로 보일까봐 걱정스러웠다.

이 아이들 중 몇 명이 장준하를, 그의 어이없는 추락사를,

유신헌법을, 민청학년 사건을,

평화의 댐 성금을, 전교조를,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죽어간 대학생들의 분신을,

문익환 목사의 눈물을 이해할까?

가슴이 먹먹하고 답답해왔다.

그래, 차라리 너희들은 이 모든 걸 몰랐으면 좋겠다!

이런 일들이 실제로 벌어졌다는걸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면 좋겠다.

그래서 그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은 완전히 다를 수 있다면...

이 작품은 기꺼이 허구로 기억돼도 좋다.

 

아들에게 언제든지 사람이 많이 몰려있는 쪽에 서라고 말하는 아비의 말은,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만큼은 필생(必生)을 위한 절대적인 진리다.

모난 돌이 되어서는 안된다.

중요한 건 앞에 나서지 않고 가운데 서는 일.

죽음을 앞둔 아비의 고백이 나는 너무나 서럽고 서러웠다.

"아비는 피하고 싶었다..."

누군들 그렇지 않았을까!

피할 수 있다면 누군들 그러고 싶지 않았을까!

 

죽음을 앞둔 아비의 마지막 대사가 내내 가슴을 친다.

너무나 옳아서!

반박의 여지가 전혀 없을 만큼 너무나 옳아서

슬프다. 막막하다. 답답하다.

"한국이란 나라는 말이다. 아버지가 살아보니까 진실에 뿌리를 내린 지도자를 만난 적이 없는 것 같다. 진실에 토대를 두지 않은 권력은 그 정도나 방향에 차이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모두 다 독재나 마찬가지라구. 독재는 말이지, 진실과 함께 할 수 없으니까 거짓을 감추려고 자꾸 알리바이를 꾸며댄다니까. 그래, 그랬던것 같다. 이제 또 어떤 놈이 나와가지고 알리바이를 꾸며댈련지......"

진실에 뿌리를 내린 지도자.

잠깐이라도 좋으니 그런 지도자를 만날 수만 있다면 좋겠다.

그럴 수 있다면...

그가 남자든, 여자든, 그 누구이든.

(심지어 인간이 아니더라도...)

절망 속에서 희망을 보겠다.

 

일시에 무너지고 가차없이 절망해야 하는 대한민국.

끝없는 알리바이 왕국에 완강한 조의(弔意)를 표하며...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2. 5. 7. 06:07

<그리고 또 하루>

 

부제 : 혹시, 빛고래를 본 적 있어요?

일시 : 202.04.25. ~ 2012.04.29.

장소 :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춮연 : 남명렬, 이지현, 이화룡, 이지현

극작 : 최명숙

연출 ; 안경모

제작 : 극단 연우무대

주최 : 서울연극협회

 

오랫만에 연극배우 남명렬을 무대에서 만났다.

지난 1년 동안 그는 개인적으로 작품을 좀 쉬었다고 했다.

여러 의미로 이 작품이 쌍방간의 숨통인 샘인다.

물론 이 작품 전에 아주 짧게 두어 작품이 공연되긴 했지만 나는 보지 못했기에 숨을 수지 못했다.

물리적인 시간의 흐름 끝에 만난 작품은 긴 공백의 여운을 성실히, 그리고 차곡차곡 채워 졌다.

무인도에 갇힌 한 쌍의 남녀.

그리고 남자와 여자의 분신같은 또 다른 한 쌍의 노인과 소녀.

노인은 마치 자신의 자서전을 퇴고하듯 천천히 길고 긴 양피지의 글자를 읽는다.

양피지는 흘러넘쳐 남자와 여자가 떠 있는 섬의 바다와 닫아있다.

작품은 특이했고 등장하는 네 배우들의 연기는 미안할만큼 성실하고 진실했다.

저 사람들에게 저 말도 안되는 환경을 현실로 공감하면서

그 시간들을 몰래 들여다보는 행운을 오랫만에 누렸다.

나른하고, 몽환적이고, 그리고 실존적인 시간이 흐르는 곳, 흐르는 날들의 이야기.

"그렇게 또 하루가 갔다"

문득문득 그 시간들을 손으로 꼽는 나는 발견한다.

 

꾸준히 성실한 극단 연우무대의 60번째 정기공연작 <그리고 또 하루>

이 작품은 2012년 서울연극제 공식 참가작이기도 하다.

난해한 작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쉽고 편안한 작품도 아니다.

이 작품은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며,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다.

그리고 꿈과 현실의 이야기며, 벗어남과 머뭄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다 결국 모든 게 합쳐져서 바다로 나아간다.

남명렬의 목소리와 연기는 바다처럼 아득하고 잔잔했고

작은 이지현의 목소리는 그 바다 위로 떨어지는 햇빛처럼 찬란하고 명쾌했다.

이화룡과 또 다른 이지현은 남녀는 바다 위의 날씨처럼 때로는 광폭하고 때로는 처연하고 또 때로는 무심했다.

배우 오화룡은 이 작품에서 처음 봤는데 놀랐다.

따뜻하고 듣기 좋은 음성을 지녔다.

적어도 이 작품 속에서 그의 연기는 적절했고 성실했다.

작품을 이해하고 배역을 사랑하는 사람이 갖는 깊이와 눈빛이 아름답다웠다.

눈과 몸짓이 맑다.

맑은 눈과 맑은 몸의 언어를 가진 배우의 이력은 아마도 수월하지 않을 것이다.

막막한 걱정과 안도가 무인도처럼 저기 저만큼에서 외따로 떠있다.

피아노 소리.

이게 없었다면 아마도 이 작품은 조금 더 힘든 작품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나이 든 남자가 그녀와 비슷한 여자를 보고 말을 거는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면

작품은 전체적으로 참 좋았다.

좋은 배우들의 힘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그래서 짧은 공연기간이 아쉬움으로 남는 그런 작품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