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2. 5. 7. 06:07

<그리고 또 하루>

 

부제 : 혹시, 빛고래를 본 적 있어요?

일시 : 202.04.25. ~ 2012.04.29.

장소 :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춮연 : 남명렬, 이지현, 이화룡, 이지현

극작 : 최명숙

연출 ; 안경모

제작 : 극단 연우무대

주최 : 서울연극협회

 

오랫만에 연극배우 남명렬을 무대에서 만났다.

지난 1년 동안 그는 개인적으로 작품을 좀 쉬었다고 했다.

여러 의미로 이 작품이 쌍방간의 숨통인 샘인다.

물론 이 작품 전에 아주 짧게 두어 작품이 공연되긴 했지만 나는 보지 못했기에 숨을 수지 못했다.

물리적인 시간의 흐름 끝에 만난 작품은 긴 공백의 여운을 성실히, 그리고 차곡차곡 채워 졌다.

무인도에 갇힌 한 쌍의 남녀.

그리고 남자와 여자의 분신같은 또 다른 한 쌍의 노인과 소녀.

노인은 마치 자신의 자서전을 퇴고하듯 천천히 길고 긴 양피지의 글자를 읽는다.

양피지는 흘러넘쳐 남자와 여자가 떠 있는 섬의 바다와 닫아있다.

작품은 특이했고 등장하는 네 배우들의 연기는 미안할만큼 성실하고 진실했다.

저 사람들에게 저 말도 안되는 환경을 현실로 공감하면서

그 시간들을 몰래 들여다보는 행운을 오랫만에 누렸다.

나른하고, 몽환적이고, 그리고 실존적인 시간이 흐르는 곳, 흐르는 날들의 이야기.

"그렇게 또 하루가 갔다"

문득문득 그 시간들을 손으로 꼽는 나는 발견한다.

 

꾸준히 성실한 극단 연우무대의 60번째 정기공연작 <그리고 또 하루>

이 작품은 2012년 서울연극제 공식 참가작이기도 하다.

난해한 작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쉽고 편안한 작품도 아니다.

이 작품은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며,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다.

그리고 꿈과 현실의 이야기며, 벗어남과 머뭄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다 결국 모든 게 합쳐져서 바다로 나아간다.

남명렬의 목소리와 연기는 바다처럼 아득하고 잔잔했고

작은 이지현의 목소리는 그 바다 위로 떨어지는 햇빛처럼 찬란하고 명쾌했다.

이화룡과 또 다른 이지현은 남녀는 바다 위의 날씨처럼 때로는 광폭하고 때로는 처연하고 또 때로는 무심했다.

배우 오화룡은 이 작품에서 처음 봤는데 놀랐다.

따뜻하고 듣기 좋은 음성을 지녔다.

적어도 이 작품 속에서 그의 연기는 적절했고 성실했다.

작품을 이해하고 배역을 사랑하는 사람이 갖는 깊이와 눈빛이 아름답다웠다.

눈과 몸짓이 맑다.

맑은 눈과 맑은 몸의 언어를 가진 배우의 이력은 아마도 수월하지 않을 것이다.

막막한 걱정과 안도가 무인도처럼 저기 저만큼에서 외따로 떠있다.

피아노 소리.

이게 없었다면 아마도 이 작품은 조금 더 힘든 작품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나이 든 남자가 그녀와 비슷한 여자를 보고 말을 거는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면

작품은 전체적으로 참 좋았다.

좋은 배우들의 힘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그래서 짧은 공연기간이 아쉬움으로 남는 그런 작품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1. 11. 7. 08:50

<해무(海霧)>

일시 : 2011.11.04. ~ 2011.11.20.
장소 :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
출연 : 송새벽(광식), 신철진(완호 아재), 김용준(강선장),
        유인수(경구), 권태건(호영), 나종민(창욱), 송수정(홍매),
        박해영(조선족女), 박동욱(조선족男), 이효상(조선족 男)
극본 : 김민정
연출 : 안경모
제작 : 극단 연우무대

<방자전> 등 몇 편의 영화로 충무로 미친 존재감이 된 배우 송새벽.
그가 다시 연극 <해무(海霧)>로 무대위에 선다.
소속사와의 분쟁으로 마음 고생하고 있는 그에게 아마도 절절한 숨통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분쟁의 자세한 내막이야 모르지만 2007년에 이어 2009년, 그리고 2년만인 올해 다시 동식으로 분한 송새벽의 느낌은 어쩐지 더 남다르고 짠하다.
"친한 친구를 오랫만에 만났는데 몇 달 안 된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2년이라는 시간이 간 것도 실감이 안 날 정도로 친근하다"
프레스콜을 마친 송새벽은 다른 배우가 "동식"을 연기하는 모습을 봤다면
아마도 질투를 했을 것이라며 인간적인 고백의 말을 하기도 했다.

이 말 때문에 이 연극이 더 애뜻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그에게 연극<해무(海霧)>가 남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또 있다.
이 작품에서 송새벽의 연기를 직접 본 봉준호 감독이 영화 <마더>에 직접 그를 캐스팅 했단다.
(봉준호 감독, 연극 참 많이 본다. 나도 공연장에서 봉준호 감독의 남다른 싸이즈의 머리를 여러번 목격했다.
 정말 깜짝 놀랐다. 뒷분들 관람하는데 참 애로사항 있겠구나 싶어 안스럽기까지도...)
송새벽의 충무로행은 그렇게 연극 <해무(海霧)>로 시작됐다.
2007년 초연때부터 워낙에 좋은 작품이란 입소문을 많이 들었었는데
초연때도, 그리고 2009년 다시 공연됐을때도 나는 못봤었다.



2007년 극단 연우무대 창립 30주년 기념작으로 초연된 연극 <해무(海霧)>는
당시 차범석의 <산불>을 잇는 리얼리즘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한국 연극 best 7에 선정되기까지 했다.
매번 소극장에서 공연됐었는데 이번에는 제법 규모가 있는 중극장에서 공연된다.
덕분에 회전 무대를 이용해 실제로 배가 움직이는 모습이 심감나게 보여진다.
배우들 역시 움직이는 배 위에서 연기하는게 보기보다 힘들다며 심한 멀미때문에 고생중이란다.
집에 돌아가서 잠자리에 누우면 천장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 같다고...
공미리 잡이가 주업인 전진호.
그러나 거듭된 조업 실패로 선원들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게 이른다.
그들의 텅빈 공미리 어창(漁倉)은 은밀하게 조선족 밀항자 30명의 거처로 용도변경된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해경의 훈련과 태풍, 그리고 지독한 해무(海霧)에 갇혀버린 전진호.
급기야 통풍구가 닫히는 바람에 어창에 숨어있던 조선족 전부가
기관실에 있던 홍매를 제외하고 전부 질식사하고 만다.
살기 위해서 근본을 떠나는 사람을 살기 위해서 실어 나르는 사람들.
그러나 해무 속에서 모든 것들은 길을 잃고 점점 흐려진다.
혼돈과 공포, 처참한 비극이 축축하게 스며드는 전진호.
무대 전체에 올려진 "전진호"는
그렇게 점점 거대한 재앙이자,무덤, 폐허가 된다.
연극을 보면서 나는 눈에 보여지는 공포때문이 아니라 소리가 주는 공포때문에 몸이 떨렸다.
뱃사람을 아름다운 노래로 유혹에 물에 빠져 죽게 만든다는 신화속 주인공 싸이렌.
싸이렌을 떠올리게 하듯 중간중간 들리던 여자의 목소리는 그런 공포감를 어이없이 감미롭게 배가시킨다.
어쩌면 해무(海霧)에 갇혔을 때 선원들이 느꼈을 공포감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갇혀버린 인간이 종국의 모습?
공포는 야만보다 잔인하다.
그리고 그 모습은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의 현재 모습이기도 하다.
어쩌면 전진호를 바라보는 관객은 사실 제일 먼저 전진호에서 죽은 유령인지도 모른다.
짙은 안개의 출처는 이것으로 분명해졌다.
암.담.하.다.



연극이 시작되자마자 파도소리와 함께 들리던
배우 강신일의 나레이션.
그래, 그 느낌을 압도(壓倒)라고 명명하자!
연극 <나는 너다>에서 고종으로 나온 강신일의 스크린 모습과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렀었다.
<해무>에서 그이 목소리를 듣는 순간,
매섭게 추운 어느날 한꺼번에 얼음이 쩡~~ 하고 일제히 갈라지는 것 같았다.
사람의 목소리가...
이럴 수가 있구나!
연극 <해무(海霧)>의 모든 것이
그의 나레이션 안에 깊이깊이 다 스며있다.
이야기의 시작과 결말이...
이 모든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그외의 다른 모든 것들 전부가 그 안에 고요하게 포효하고 있었다.
문득 무섭다.


바다에서 만나는 짙은 안개를 해무(海霧)라 한다.
바다에서 바람보다 무서운 것은 바로 안개다.
파도에도 길이 있고
바람에도 길이 있으나
안개에는 길이 없기 때문이다.
짙은 해무(海霧)는 어부들의 조각난 마음은 물론
바다와 하늘의 경계조차 허문다.
남는 것은 한없는 무기력과 끝을 알 수 없는 정체(停滯)와 고립(孤立).
어디서 다가올지 모르는 위험에 대한 공포뿐이다.
어둠이 아닌 빛 속에서 길을 잃는 것,
그것이 해무(海霧)가 주는 공포다.
어둠 속에선 불을 밝히면 되지만
빛 속에선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