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2. 5. 30. 08:00

<칠수와 만수>

 

일시 : 2012.05.04. ~ 2012.07.08.

장소 : 대학로 문화공간 필링 1관

연출 : 유연수

각색 : 유연수, 임나진

제작 : 극단 연우무대

출연 : 송용진, 박시범 (칠수) / 진선규, 안세호 (만수)

        김용준, 이이림, 황지영, 최현지

 

송용진이 드디어 연극에 도전했다.

그것도 30년 전통의 명작 <칠수와 만수>로.

처음 송용진이 "칠수"를 역에 캐스팅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땐 의외라고 생각을 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꽤나 잘 어울린다.

진선규는 2007년도에 이에 두번째 "만수"에 도전한다.

두 사람의 합(合)이 과연 어떤 시너지 효과를 이룰지 궁금했다.

1986년 초연 당시 문성근, 강신일 당시 4000회 공연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었다.

그 이후 박중훈, 안성기 주연의 영화로까지 만들어졌으니 대단한 문제작임에는 분명하다.

예전 공연들을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매 공연마다 당시 시대의 이슈들을 작품 속에 많이 투영시키는 모양이다.

그래서 재미도 그렇고 관객들의 호응도 즉각적이고 좋다.

예전엔 만수나 칠수 둘 다 시골에서 올라와 묵묵하게 가족들을 위해 일을 하는 캐릭터였다면

지금 칠수는 상당히 현실적(?)이고 입체적이다.

"슈퍼스타 K"를 꿈꾸는 만수 송용진.

이번 시즌은 다분히 송용진을 염두에 두고 만든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칠수가 도시 88만원 세대를 대표한다면 만수는 시골의 88만원 세대를 대표한다고 할까?

 

배우들은 주, 조연을 망라하고 정말 대단히 열심이다.

송용진, 진선규 두 사람은 그래도 정해진 캐릭터만 연기하니까 흐름을 잃거나 혼란이 생길 틈이 없겠지만

다른 4명의 배우는 1인 다역을 연기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을텐데

각각의 캐릭터를 확연히 구분해서 모습을 보면서 솔직히 많이 놀랐다.

특히 후반부에 칠수와 만수각 경찰과 대치하는 상황에서는

역할 바뀌는 시간 자체도 아주 짧아 보면서도 허덕였는데 대단들하다.

김용준, 이이림, 황지영, 최현지 4명의 배우에게 박수를...

연극의 설정 자체는 솔직히 현실성이 떨어진다.

18층 옥상에서 빨간 페인트통이 떨어지고,

그걸 떨어뜨린 두 사람이 사회불만 시위를 주도하는 중심인물로 몰아간다는 설정 자체는

아무래도 2012년도 현실에는 좀......

그래도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 괜찮아 한 번 쯤은 볼만한 작품.

껄렁한 송용진의 칠수도, 순박하고 꽁한 진선규의 만수도 다 자연스러워 연기가 아니라 두 사람의 실제 이야기같다.

무대 위에서 편하게 연기하는 배우를 보면 그게 또 관객 입장에서 그렇게  편하고 매력적일 수 없다.

개인적으론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작품이 조금 더 용기를 내서 확실하게 실날하고 확실하게 비판적이었으면 하는거다.

그래도 이 정도의 까발림도 예전에 비하면 정말 놀라운 발전이긴 하다.

 

극 중간중간에 배우가 직접 부르는 노래나 BGM으로 깔리는 노래를 듣는 재미도 의외로 괜찮다.

그리고 연극을 보고 나면 어쩔 수 없이 들국화의 "사노라면"은 한동안 머릿속을 떠다닐 수 밖에 없다.

작품을 통틀어  "사노라면"이 두세번 정도 나오는데 출연 배우들이 직접 부른 모양이다.

각각 다 다른 느낌으로 불렀는데

특히 깡통이 떨어질 때 최현지로 추정되는 여배우가 부르는 "사노라면"은 참 이쁘다.

(칠수와 만수의 슬로모션 액션과 대비되면서 참 인상적이었다)

마지막 송용진 버전의 "사노라면"도 느낌이 좋고..

한 번 쯤 가볍게 볼 만한 작품인긴 한데

단지 맨 앞 줄을 포함한 1층 앞쪽 관람은 피하는 게 좋겠다.

맨 앞 줄에서 관람했는데 계속 올려다봐서 공연 끝날 때쯤엔 목으로 오십견이 온 줄 알았다.

110분이 넘는 시간동안 수시로 뒷목을 잡고 주물려야먄 했다.

혹시 관람을 생각중이라면 2층 맨 앞 관람을 강력히 추천한다.

정말 심각학게 참고하길...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1. 3. 9. 06:02
 

박완서의 글은 그렇다.
오랫동안 깊고 따뜻하게 생각한 마음의 진득함,
꽁꽁 얼어있는 발을 녹여주는 포근함.
그리고 오래오래 고은 뽀얀 사골 국물에 후루룩 밥 말아 먹는 것 같은 꽉찬 포만감까지 느껴진다.
그래서 그분의 책이 꽃혀있는 서점 코너만 들어서도
시골 할머니집 아랫목에 앉아있는 느낌이었다.
그 할머님은 이제 더 이상 찐고구마를 소반에 담아 내올 수 없게 됐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 기억은 가슴을 따뜻하고 뭉클하게 한다.
갑작스럽게 실감이 된다.
더 이상 그 분의 새로운 자식들을 읽을 수는 없다는 사실이.
이제 아픈 배를 쓸어주고 지친 어깨를 두드려주던 정답던 손길을 마냥 그리워만 해야하는구나.
그랬다. 내게 박완서라는 소설가는,
두터운 가마솥에서 방금 긁어낸 푸짐한 누룽지같았다.
그래서 박경리의 타계 소식보다도
박완서의 타계 소식이 내겐 더 치명적이었다.


<잃어버린 여행가방>
박완서의 기행산문집.
노구의 몸을 한 발 한 발 움직여 찾았던 곳.
그 장소보다도 그 곳을 말하는 그분의 시선이 너무나 따뜻하고 정겹다.
챕터 시작 첫 페이지에 작게 담겨 있는 얼굴 사진은...
책 장을 넘기고 싶지 않을 만큼 오랜시간 다정하게 마주하게 한다.
문득 궁금하다.
누가 찍었을까?
풍요롭고 따뜻한 당신의 미소는 지금도 여전히 수줍은 소녀같다.
내게 박완서는 분명 로망이다.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는 로망...
어느날은 나도 박완서처럼 남도땅을 하나하나 밟으며 폭삭폭삭한 흙의 결을 느끼고 싶고
젖은 낙엽이 풍기는 냄새에 오랫동안 안겨있고 싶다.
비가 품은 냄새처럼 은근하고 약간은 비릿한 그 냄새...
벌써부터 이 모든것들이 당신처럼 그저 그립다.

...... 모든 것은 돌고 돈다. 가장 앞서갔다고 생각되는 게 가장 처진 게 될 수도 있다. 지금 가장 낙후된 고장처럼 보이는 것이 가장 앞선 희망의 땅이 될 수도 있다. 발전이란 이름으로 만신창이가 된 국토에 마지막 남은 보석 같은 땅이여, 영원하라 ......

박완서는 말했다.
...... 타는 사람보다도, 나는 사람보다도, 뛰는 사람보다도, 달리는 사람보다도, 기는 사람보다도, 걷는 사람이 난 제일 좋다 ......

이 글귀처럼
그분은 생전에 우리나라의 남도땅 구비구비를,
바티칸을, 중국을 통해 백두산을, 상해를
에티오피아와 인도네시아를
세계의 지붕 티베트를, 가트만두를 걷고 또 걸었다.
걷는 육신의 피로함은
말간 정신의 청명함으로 지금 내 눈 앞에 활자화되어 있다.
겸손하고 나직한,
그러나 선연하고 강인한 그분의 글을 나도 다리품하듯 읽고 또 읽었다..

"그립다"는 말...
참 두고두고 서럽구나......



한때 최인호의 이 에세이가 서점의 베스트셀러 윗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오히려 읽을 생각을 안 했었는데...
책을 손에 잡은 건,
아마도 표지에 있는 사진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강에 떠 있는 나룻배 한 척.
그리고...
책 속에 담긴 사진들은 내가 퓨파인더로 보던 시선 그대로다.
솔직히 책의 내용보다는 사진이 눈에 밟힌 책이다.
이렇게 말하면 턱없는 소리라 생각되겠지만
꼭 내가 찍은 사진들 같다. (^^::)

"인연"이라고 단어때문에
나는 이 책이 작가 최인호가 만남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일거라고 생각했다.
하긴, 따지고 보면 "인연"이라는 게 어디 사람하고만 맺을 수 있는 건가!
사람에 대한 인연보다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이 사람 아닌 것과 맺는 관계이리라.
꽃들과 나무들, 그리고 작은 것들을 바라보는 최인호의 시선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내겐 최인호의 책들이
아직은 여전히 낯설다.

* 공교롭게도 이 두 책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한 사람이 있다.
   영화배우 "안성기"
   내겐 "안성기"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같은 게 있다.
   문화예술인의 "노블레스 오블리제"라고 말하면 이해가 될까? 
   따뜻하고 바른 사람에게는
   누구라도 악한 감정이 생길 수 없다는 걸 안성기를 통해 느끼게 된다.
   참 보석같은 사람이다.
   어쩔 수 없이 빛나는 사람.
   그런데 그 빛은 과하지 않고 언제나 영롱하고 깨끗하다.
   "카리스마"라는 단어조차도 왠지 주눅들게 만드는 그런 사람 *^^*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