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1.20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1> - 정끝별
  2. 2011.01.18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2> - 문태준
읽고 끄적 끄적...2011. 1. 20. 06:27
하나의 단어에 시만큼 많은 세계와 의미를 담고 있는 게 있을까?
어쩐지 시인들은 나와는 다른 언어를 쓰는 제 3의 사람들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다른 언어라는 게 다행스럽게도 이해불가는 아니다.
가령 오규원에게 "여자" 라는 단어는 얼마나 깊고 넓고 그리고 애틋하고 여린가.
정현승에게 "눈물"은 한 세상의 탄생만큼 크고 위대하다.
천상병에게 "새"라는 한 음절의 단어는 또 어떤가?
누군가에게는 스쳐 지나가는 단어에 불과할 뿐인데
시인에게 그 단어는 세계의 모든 것 보다 더 모든 것이다.
그래서 시를 성큼성큼 빠르게 읽으면 왠지 그 단어들에 많이 미안해진다.
누군가에게 한 편의 짧은 시는 평생을 읽어도 읽어도 다 못 읽는 완결되지 않는 대하소설이 될 수도 있겠다.
문득 시 속 단어가 담고 있는 세계가 너무 넓고 깊어
그 안에서 길을 잃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나는 하게 된다. 거침없이...
시를 읽는 눈은 그래서 차지게 야무지면서도 듬성듬성하다.
시인 김승희는 말했다.
"시인은 천형을 앓는 무당이다"
가슴에 날이 바짝 선 작두 하나 올라온다.
맨발로 그 위를 올라서란다.
비릿하고 섬뜩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길.
천형의 삶!



시인들은 천성적으로 오래된 미래를 볼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마지막 순간에도 시를, 글을 놓치 못하고 제자의 손바닥에까지 쳔형의 문신을 새긴다.
한적한 오후다
불타는 오후다
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
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

"만성폐쇄성폐질환"을 앓다 2007년 타계한 시인 오규원은
제자의 손바닥에 유언같은 마지막 문장을 남겼단다.
어쩐지 처연하면서 쿨럭하고 잔기침이 쏟아지는 문장이다.
어디선가 한 잎의 쬐그만 여자 낙엽처럼 또르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 여자 남기고 시인은 정말 눈을 감았을까?
어쩌면 지금도 시인은
자신의 단어들과 함께 만나지지 않는 두 철길에 나란히 서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길에 자갈돌처럼 깔려 있는 숱한 기다림들.
눈 앞의 삶은 끝나도 기다림은 결코 끝이 없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1. 1. 18. 06:29
요즘도 시를 읽는 사람이 있을까?
작가도 직업이라면 그 중에 제일 고단하고 힘든 건 분명 시인일거다.
이렇게 책을 뒤적이는 사람까지도 주위사람들의 멸종된 공룡을 보는 듯한 시선을 받는데
쓰는 사람의 지난함과 헛헛함을 보는 시선은 또 얼마나 공허할까?
한번쯤 시인을 꿈꾸는 사춘기 아이의 마음도 사라지고
시는 어느새 속 편한 이의 속 편한 애장품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멀리 가지 않아도 내가 일하고 있는 곳만 보더라도
기형도니, 황지우니, 이성복을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좀 안다는 사람도 류시화나 안도현에서 종갓집 대가 끊기듯 딱 끊겨있다.
씁쓸하다.
여전히 살아 있지만 그리고 앞으로도 내내 살아있을테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멸종된 시의 존재가...



몇 년 전 올해의 시로 뽑혔던 문태준의 <가재미>
죽어가는 병상의 사람을 바닥에 바짝 붙어 있는 가자재로 표현했던 그 시를 읽으면서
코 끝이 찡해 울컥했던 기억.
병상 위에서 가재미 눈을 하고 세상을 보고 있는 사람이 꼭 나처럼 느껴져서
가재미 눈을 하고 한참을 막막해했었다.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시인 정끝별과 문태준이 각각 50편의 시를 소개하면서
각자의 생각을 시의 뒷편에 서걱서걱 기록했다.
과거에 교과서에서 밑줄치며 은유법, 직유법을 체크했던 김수영의 <풀잎>, 박목월의 <나그네>부터
김용택의 <섬진강>, 정진규의 <삽>, 김준태 <참개를 털면서>까지...
대중적이기도 하고 낯설기도 한 시들의 다정한 모임은
참 오랫만에 은근한 향기처럼 자유로웠다.
독자가 아닌 시인들이 추려낸 시는...
그래 어쩌면 화석화되고 멸종되는 그들 작업의 속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읽는 내내 자주 짠하고 마음이 서걱댔다.
문학과 지성사, 창작과 비평, 민음사의 시 문고판을 열심히 모았던 옛날 생각도 간절했다.
처음 구입했던 가격이 1000원이었는데 하면서 새삼 향수 비슷한 것에 젖기도 했고...
요즘도 시인들은 시로 밥 벌어 먹을가?
시인의 원고지는 뻑벅하고 눈은 시리고 팔은 저리다.
그래도 누군가의 가슴 속에는 또 다시 시가 꽃필 것을,
나는 여전히 믿는다.
꿈에서도 별은 찬 밥 같을지언정
여전히 그들은 숱하게 열리고 닫히는 문을 바라보며
오지않을 너일지라도 계속 기다리고 있을테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