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0. 8. 20. 06:35
별들의 전쟁터,
모든 엔터테이먼트 시장의 최종 목표인 헐리우드.
그곳에서 한국인 최초 미술총감독을 하고 있는 한유정의 글이다.
그녀는 지금 헐리우드에서 세트 위의 마이더스라고 불린단다.
1000 만원짜리 세트도 그녀의 손길이 닿으면 1억원의 세트로 탈바꿈되기에...
저예산으로 최상의 세트를 만들어 내는 미술총감독 한유정!
그녀가 2001년 참여한 저예산 영화 <베터 럭 투마로우>는
개봉 첫 주 최다관객 동원했고 선댄스 영화제에 초청받기도 했다.
현재는 파라마운트, 워너브라더스, ESPN, MTV 등 
기라성같은 제작사가 함께 일하기를 바라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촉망받는 미술감독 중 한 명이라니
대단한 열정의 결과임에는 분명하다.
‘훌륭하고 창조적인 눈을 가진 미술감독’,
‘세트를 최상으로 이끌어내는 미술감독’
그녀에 대한 헐리우드 감독들의 찬사이자 그녀와 함께 일 하고자 하는 이유다.
 


흔히 잘 나가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 있다.
태어날 때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태생부터 선택받은 사람이란 뜻이다.
부족한 건 없이 풍족하게 태어나 자신이 하고픈 일이라면 뭐든 할 수 있는 그런 사람.
한마디로 황태자같은 사람들이다.
(페리스 힐튼이나 악녀일기의 에이미 같은 부류라고나 할까?)
그녀도 그러겠거니 생각했다.
개천에서 용이 난 꼴은 아니지만 어쨌든 한유정이라는 동양 여자는
무대디자인을 공부하겠다는 단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26 살이라는 적지 않는 나이에 자신의 힘으로 미국 유학을 떠난다.
동양인이라는, 여자라는 두 가지 편견을 이기고
미술감독이 되기까지의 그녀의 노력과 열정은 기운차고 아름답다.
그런 모든 열정들이 결국은 그녀에게
한국인 최초 헐리우드 미술감독이란 타이틀을 거머쥐게 했다.



이런 책을 읽을때마다 느끼는 건,
내가 20 대라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
20 대에도 책을 제법 읽었었는데 그땐 오로지 문학 서적들만 읽었었다.
인문학서나 자기개발같은 책들은 거의 거들떠 보지도 않았었다.
잘난 사람들의 잘난 소리 듣는 게 괜히 배알이 아팠는지도...
지금이라도 20대의 열정을 가지고라고 말한다면 뭐 대략 할 말은 없다.
핑게거리로 밖에는 들리지 않을 테니까.
따지고 보면 한유정이라는 여자도 26살이라는 나이에
맨땅에 헤딩하듯 시작했는데...
내게 부족한 건 용기와 집념일거다.
그리고 어쩌면 심각하게 불량한(?) 체력과 건강도 한 몫 할테고.
이런 책들을 읽으면
심각하게 우울해진다.
탐나게 부러운 열정은 알싸한 배앓이로 고스란히 되돌아온다.
이 책, 참 뒤끝 있는 책이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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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oojung Han

할리우드 최초 한국인 미술총감독. 
스물여섯에 ‘무대디자이너’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LA로 유학.
학생 신분으로 정우성 고소연 주연의 LA 올 로케이션 영화 <러브 Love>(1999)의 미술총감독으로 발탁되어 영화계에 입문.
<리틀 히어로 2 Little Heroes 2>(1999)로 "세트를 최상으로 만들어내는 미술감독" 이라는 칭송을 받으며 할리우드에 성공적으로 입성.
<맨 프럼 엘리시안 필즈 The Man from Elysian Fields>(2001)로 고등학생 시절 우상이던 앤디 가르시아를 비롯, 믹 재거, 제임스 코번 등의 대가들과 함께 작업.
저예산으로 최상의 세트 효과를 낸 <베터 럭 투마로우 Better Luck Tomorrow>(2001)는 개봉 첫 주 최다관객 동원, 2001년 "올해의 영화 Top5"로 선정, 선댄스 영화제에 초청.
알래스카에서 촬영한 <허스 HERs>(2006)는 배우가 “세트에 들어선 순간 캐릭터를 이해하게 됐다”고 극찬할 정도로 고품격의 세트를 완성, 2007년 제 8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장편경쟁부문 대상인 JJ-Star상을 수상.
"한유정" 이라는 이름을 고집하고, 동서양의 조화를 꿈꾸는 "블렌딘 Blend-in" 사업을 추진하며 한국과 할리우드의 협력을 이끌고 있는 무대 뒤 주인공.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2. 19. 00:09


일시 : 2010.02.05 ~2010.02.21
장소 : 아크코 예술극장 소극장
원작 : 데이비드 해어
연출 : 최용훈
출연 : 윤소정(에스메), 서은경(에이미), 김영민(도미닉), 
        백수련(이블린), 이호재(프랭크), 김병희(토비)


이 매력적인 연극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할까?
윤소정, 김영민의 캐스팅만으로도 나는 탐이 났었다.
오랫만에 온 몸이 제대로 호사를 누리겠구나 기대하며 기다렸고 그리고 확실히 그랬다.
연극이 시작되기도 전에,
정성껏 꾸며 놓은 무대를 보면서 나는 혼자 "이쁘다!"를 연발했다.
확실한 뭔가가 있으리라는 떨리는 예감까지....


연극 <에이미>는 전부 4 막으로 되어 있다.
짧은 피아노 연주로 시작되는 각각의 막은
시간의 변화를, 세대의 변화를 그리고 논쟁과 원초적인 다툼을 담고 있다.
제목만으로는 참 순한 연극일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런데..
참 치열하고 아프고 그리고 정곡을 찌르는 연극이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이 연극은 모녀간의 논쟁, 그리고 사위와 장모간의 논쟁이다.
원만한 관계가 펼쳐지지 않으리란 건 상황만으로도 눈에 선하다.
그런데 표면상의 치열함보다 극의 내면이 담고 있는 치열함이 훨씬 더 치명적이고 날카롭다.
폭로와 논쟁, 그리고 결별.
예술가의 용기와 평론가의 질투.
장모님(에스메)을 연극에 빗대 고상하고 우아하게게 포장하지 말라며
연극의 종말은 운운하는 평론가 사위 도미닉.
천박하고 비열한 성공과 권력을 혐오하는 예술가 장모.
선입견과 편견으로 이루어진 대화는 피가 튀는 전쟁터보다 오히려 더 살벌하다.

 

뭐랄까?
처음엔 분명 연극으로 바라봤었다.
그런데 연극이 다 끝난 후엔 도저히 연극으로만 보여지지가 않았다.
연극 안에서 도미닉은 비난한다.
"연극이라는 자폐적인 작은 예술세계는 보통 사람들의 삶과는 철저히 유리되어 있다"고.
연극으로 대변되는 고전적 예술 매체를 통해 자신을 은근이 경멸하는 어머니를 비난하는 말이었지만
이 말은 지금의 공연예술을 향한 일침인 동시에
공연물 속에 빠져 살고 있는 마니아를 자처하는 자폐적인 관객에 대한 일침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나를 향한 말이란 뜻이다. 나 역시도 자폐적 성향이 너무 다분하기에...)
에스메와 도미닉의 관계는 극이 진행됨에 따라 여러 차례 뒤집힌다.
(그 둘 사이에서 에이미만 정말 죽어라고 죽어난다. 급기야는 실제로도...)
은근히 치명적으로...
그러나 그 역전은 또 아니러니하게도 도저히 화목하게 지낼 수 없다고 믿었던
두 사람의 관계 회복을 위한 하나의 열쇠이기도 하다.



에스메와 도미닉으로 대변되는 영화(영상매체)와 연극의 대립과 반목.
그리고 과거와 현대의 충돌은
어딘가에서 결국은 만나게 될 몰입 혹은 화합의 길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모든 예술적 행위는 어쨌든 "몰입"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니까.
그 둘은 어쩌면 에이미의 바람처럼
결국은  다른 시선(Amy's view)를 갖게 될른지도 모른다.
도미닉이 에이미를 배신한 게 인생의 한 장이었고
이제 그 장도 모두 끝났듯이,
다른 세대(매체)의 시작을 암시하고 있는지도...
세상에 이런 화해도, 이런 예고도, 이런 시작도 있을 수 있구나 싶어 눈이 매웠다.



누군가는 이 연극의 네 개 막을 "맛"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1 막은 봄나물로,
2 막은 단단한 육질이 느껴지는 고기로,
3 막은 진한 커피로,
그리고 마지막 4 막은 박하사탕으로...
적극적으로 공감했다.
아주 적절하고 그리고 동시에 아름다운 비유다.



윤소정, 김영민, 이호제, 서은경, 백수련.
그들이 만들어 낸 무대는 아름다웠고 풍성했다.
(나는 소위 젊은이로만 가득한 무대가 싫다. 
 그곳엔 어쩐지 시간도, 사람도 텅 비어 있는 것 같다.
 제 나이에 맞는 역할을 제 나이에 맞는 배우들이 공연하는 모습을 보는 건
 오랜 가업을 이어 받은 솜씨 좋은 장인의 맞춤옷을 소유하는 기분이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이들에게서 정성스런 위로를 받았노라 고백하는 중이다.
극의 마지막 세례의식을 연상시키는 장면.
극중극의 형태였지만 그 차갑고 조심성 가득한 물줄기 속에서
묘한 안도감과 씻김을 느낀다.
에스메의 마지막 대사가 지금도 내 귓가에 멈춰있다.
"시작하는거야!"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