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3. 4. 12. 08:25

일본 소설 두 권을 비슷한 시기에 읽었다.

한국에서도 엄청난 메니아층이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와 에쿠니 가오리.

참 다른 작가인데 이 두 작품은 묘한 서정성을 갖고 있다.

물론 그 서정성이라는 건 확실히 다르다.

<비밀>과 <용의자 X의 헌신>, <백야행>으로도 유명한 히가시노 게이고는

추리와 미스터리에 관해서라면 확실하게 독자를 잡아끈다.

전기공학과를 좋업했다고 했나?

그래선지 그의 소설들은 꽤나 과학적이고, 전문가적인 것 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책을 좀 읽었다는 사람들은 참신하다고 생각하진 않을테지만...)

확실한 건 스토리텔러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잃지 않게 글을 쓰는 미스터리 작가임에는 분명하다.

그래선지 그의 신작이 출판되면

구입해서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잘 챙겨서 읽는 편이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내가 지금껏 읽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과는 확실히 다르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을 두고 아주 서정적인 이야기였노라고 말하고 싶다.

"서정적"이라는 표현은 통상적으로 쓰는 그런 뜻은 아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서정성.

내 속의 뭔가를 아주 작게, 그러나 결정적으로 "툭"하고 건드렸다.

책을 번역한 양윤옥의 말대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중에서 오래도록 남을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더불어

어딘가 "나미야 잡화점"이 정말로 있어주면 좋겠다는 환상을 품게 한다.

그렇다면 나 역시도 기꺼이 그곳을 찾아가 가게 주인 앞으로 편지를 쓰고 싶다.

다음날 다시 찾아가 우유 배달 상자 속의 답장을 기다리면서...

사람은 참 단순하다.

때로는 어떤 작은 사건이, 한 권의 책이 복잡한 생각들을 가라앉히게 만든다.

이 책이 그랬다.

가슴 진한 감동을 준다거나 위로를 준 게 아니라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뜬금없는 말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아마도 아주 오래된 내 로망을 건드린 것 같다.

예전에 나는 그랬었다. 

편지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이 책은 과거의 한때(That point)를 그리고 나(It's me!)를 생각케 했다.

과거로 부터 도착한 답장!

그 안에는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내가, 그리고 미래의 내가 전부 담겨있다.

그런 의미에서 히가시노 게이코의 이번 추리는 꽤나 용의주도했다.

 

에쿠니 가오리의 <하느님의 보트>

나는 이 소설의 그녀의 신작인 줄 알았다.

그런데 2003년도 이미 출판된 책이다.

(뒤늦게 주목을 받고 있는 건가? 아니면 내가 너무 늦게 읽은건가?)

에쿠니 가오리는 일본 여류 작가 중에서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작가다.

그녀의 소설은 뭐랄까, 모든 걸 다 이야기하지 않고 살짝살짝 감추고 있는 느낌이다.

<냉정과 열정 사이>도 그랬고 <도쿄 타워>도 그랬고...

하나님의 보트를 탄 엄마와 딸.

난 이 모녀가 나라를 잃고 생명을 걸고 떠도는 보트피플보다 더 안스럽고 안타깝다.

과거는 "상자 속"에 담아두고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남자의 약속을 믿으며 추억과 상상, 흔적을  안고 어느 곳에도 차마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유랑민.

나는 요코를 결코 이해하지 못하겠다.

한 아이의 엄마로서 요코는 일종의 직무유기이고 책임회피다.

어른아이 요코와 아이어른 소우코는 둘 다 시간을 잃었다.

 

"우리한테 언제는 있을 곳이 있었나?

"있어."

"엄마가 말했을 텐데. 언젠가 아빠를 만날 거라고, 우리가 있을 곳은 아빠야."

"미쳤어."

"거긴 엄마가 있을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니야."

"나는 현실을 살고 싶어. 엄마는 현실을 살고 있지 않잖아."

........

"미안해"

"뭐가 미안하다는 건데?"

"엄마의 세계에 계속 살아주지 못해서."

 

엄마와 딸의 대화를 읽어내면서

난 참 많이 아팠다.

'그 사람이 여기 있다며..." 

단지 상상만으로도 힘을 되는 사랑.

(적어도 나라면 그런 사랑도, 그런 사람도 믿지 않았을텐데.)

책의 결말은 이렇다.

딸은 엄마의 현실과 떨어져 자신의 현실 속을 살기 위해 기숙사로 떠나고

요코는 그를 처음 만났던 도쿄로 돌아간다.

그리고 우연처럼, 운명처럼 

(이 단어... 참 폭력적이다)

그 남자와 재회하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그렇다면 이건 해피엔딩일까?

 

나는 재회한 두 사람에게 결코 해피엔딩은 오지 않을거라 단언한다.

떠돔을 선택한 사람은 정착할 수 없다.

뼈마다를 녹이는 사랑이 옆에 있다고 해도

그게 선택에 대한 예의다!

요코는 아마도 남은 시간을 정말 보트피플처럼 살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번엔 남자도, 딸도 함께 해주지 못할거다.

 

깍지 낀 두 손을 놓을 때가 왔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9. 8. 06:31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은 묘하게 서정적이다.
물가에 앉아 아주 천천히 작은 돌멩이를 던진 다음
역시나 아주 천천히 그 흔들림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
흔들림이 완전히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가 일부러 무심하게 다시 돌을 던지고 또 다시 기다리는 느낌.
일상같기도 하고
일상과 완전히 별개인 것 같기도 한 상황.
철저하게 현실적이면서도 몽환적인 느낌.
요시모토 바나나, 야마다 에이미와 더불어
일본의 3대 여류 작가로 불리는 에쿠니 가오리의 2010년 신작 <빨간 장화>를 읽다.



결혼 10년차를 넘긴 부부 이야기에 무슨 재미가 있을까?
신비감은 완전히 사라졌을테고 아이조차 없어 서
두 사람의 일상은 낮잠같은 무료함과
10년의 세월이 남긴 익숨함에서 오는 편안함이 있으리라.
딱히 둘 사이에 가슴 설렐 일도 없을테고
침묵과 별반 다름없는 수다를 조용조용 내뱉는 아내와
응! 어! 같은 건성의 의성어로 대꾸하는 남편.
아내는 남편은 전신주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점점 커지고 불가사의해지는 남편.
"어째서 나는 이 사람과 있으면 피곤해져 버릴까?"
결혼 10년을 지나온 아내라면 누구라도 한 번쯤 하게 되는 질문이 아닐까?
점점 현실의 남편보다 동일이지만 가상의 남편에게 더 많이 보호받고, 더 많이 의존하게 되는...
책의 아내 히와코는 그런 관계를 "불협화음"이라고 표현했다.
함께 있을 때보다 따로 떨어져 있을 때 남편을 더 좋아하게 된다는 아내의 유머러스한 독백은
진심인 동시에 진실이기도 하다.
이 부부,
위험할까? 삐걱댈까?
그래서 끝장을 보게 될까?



매년 크리스마스때마다 남편이 선물한 빨간 장화 모양의 과자!
3~4년이 지난 후 아내는 남편에게 말한다.
이제 빨간 장화 과자는 그만 선물하라고...
역시나 남편은 건성으로 대답하면서 돌아오는 크리스마스때마다 어김없이 빨간 장화를 선물로 사온다.
그러니까 이 "빨간 장화"는 상징적인 의미다.
"어째서 당신하곤 말이 통하지 않는 거야?"
(이 질문을 아내는 남편에게 했을까? 정답은 아니다. 어차피 남편은 듣지 않을테니까...)
남편 앞에서 끝없이 일상의 이야기하면서도 점점 외로워지는 아내.
세상 대부분의 아내들은 그래서 혼자하는 수다에 지치게 되면 생각하게 된다.
"외로운 건 그만하고 싶어..."

그러나 결말은 역시 일상이다.
남편과의 불협화음을 고백하던 아내 역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불협화음이긴 하지만 단조로운 화음과 견주면 이 또한 얼마나 매력적인가...라고.
어쩌면 결혼생활이란 건 정말 그런건지도 모르겠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어디에나 있는 막(幕)에 싸여 있는 듯한 느낌.
함께 하는 외로움이 주는 불안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모든 것에 익숙해지면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게 되는 지독한 아이러니.
에쿠니 가오리의 이번 소설이 그렇다.
일상을 가만히 들어올러 잠시 흔들어 본 후에(그것도 아주 조금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묘한 편안함이 있다.
그 편안함은 유쾌하기도 행복하기도 슬프기도 홀가분하기도 하다.
특별한 사건이나 이벤트 없이도 서정적인 글을 쓰는 작가.
마치 내가 10년의 결혼생활 속에 지금 막 쉼표를 찍고 있는 소설 속 여자같다.
복잡했지만,
측은했지만,
안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이 편해지기도 한다.
에쿠니 가오리...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09. 8. 15. 19:31
<냉정과 열정사이>를 함께 섰던
에쿠니 가오리, 츠지 히토나리 두 작가가
<냉정과 열정 사이>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다시 함께 소설을 펴냈다.
(여태껏 알고 있던 공통집필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글쓰기라 은근히 파격적이기까지 했는데....)
<냉정과 열정 사이> 그 이전의 이야기라고 할까?

<좌안> 그리고 <우안>
아주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전혀 다른 인생을 살면서도
서로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두 사람,
마리와 큐.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



인생과 인생 사이에는 강이 흐릅니다.
내가 늘 이쪽에서 살아가듯이 그리고 당신이 저쪽에서 살아가듯이
우리는 서로의 인생을 볼 수 없습니다.
시작은 같은 장소였음에도
강은 시간과 함께 하류로 나아갈수록 점점 넓어져서 우리를 멀어지게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인생이 아닌가 싶습니다
나는 우안(右岸)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좌안(左岸)에서 살고 있습니다.
같은 지구에 존재하는데도 나는 좌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릅니다.
인간의 수만큼 많은 강변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늘 강변에 서서 당신이나 만날 수 없는 가족, 친구들을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는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였을까?
그럴 수도 있고 결코 아닐 수도 있다.
기억을 잃어도 끊어지지 않는 관계
결코 연인이 될 수 없지만 늘 함께인 관계
soul mate라는 말로도 설명될 수 없는,
어쩌면 영원히 이해되지 않는 세상 모든 사람들의 모든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두자.



일본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두 책.
그리고 두 명의 남녀 베스트셀러 작가!
에쿠니 가오리!
그녀의 섬세한 감성과 내면표현은 참 쉽고 아름답다.
그래서 그녀가 표현하면 일탈도 편안하게 다가온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랑에 헤매는 마리라는 여자,
그녀의 전 생애를 관통하는 일탈도
그래서 내겐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편하게 다가온다.
불쌍함이나 도덕적 잣대를 들어대기보다는 긍정하고 인정하게 되는 심정.
에쿠니 가오리가 창조한 인물들은 언제나 그랬던 것 같다.
어쩌면 내 내면의 투영으로 인한 소박한 응원도 있었으리라.

츠지 히토나리!
작가로 활동할 경우에는 츠지 히토나리라는 본명으로
가수, 영화감독으로 활동할 경우 츠지 진세이라는 이름을 쓰는 남자
그랬었나?
왠지 그의 글들이 예전과는 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내 기억속 이 사람은 참 따뜻하게 감성적이었는데....
<우안>의 츠지 히토나리는  멀리 떨어져 있는 서술자같다.
왠지 거리감이 느껴지는 느낌.
왜 그는 큐에게 충분히 다가가려 하지 않았을까?
4권의 책을 읽고 문득 그게 궁금해졌다.
<우안>을 쓴 그에게 큐라는 존재는
혹 <좌안>에만 존재하는 인물이었던 건 아닐까?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