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4. 1. 15. 08:11

2년마다 한번씩 자유여행을 가야겠다고 혼자 다짐했었다.

그리고 두번째 다녀온 자유여행.

원래 예정대로라면 스페인과 포르투칼을 여행하는 거였는데

동생네가 함께 가자고 조르는 바람에 그래도 익숙한 터키로 방향을 수정했다.

그냥 터키 일주를 할지, 이스탄불과 산토리니를 갈지 두 가지로 고민하다

아무래도 조카들이 초등학생이라 터키일주는 무리일 것 같아 이스탄불과 산토리니로 정했다.

결론적으론...

선택은 나쁘진 않았다.

여행하는 내내 날씨는 좋았고

특히 아테네와 산토리니에 머무르는 동안은

지중해의 햇빛 속에 두명하게 헹궈지는 느낌이었다.

walking and warlking의 꿈을 충분히 실행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짬짬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골목길을 기웃거렸던 시간들,

하늘과 바다를 바라봤던 시간들.

그리고 사람들의 모습들을 몰래몰래 훔쳐봤던 시간들.

길을 찾아 이리저리 우왕좌좡하며 시행착오를 반복했던 시간들이

지금은 다 추억 그 이상이 됐다.

그건 그러니까...

"힘"이다.

앞으로의 2년을 버텨내게 하는 힘.

 

아쉽게도 골목과 길, 풍경같은 다정한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담지 못했다.

이런 것들은 적어도 내게는 하나의 완벽한 "이야기"인데

이번 여행에서는 그 이야기에 충분히 귀기울이지 못했다.

산토리니에서 만난 "casablanca soul"

이 골목 앞에서 혼자 얼마나 웃었던지!

골목 입구에 앉아있는 상점 주인 아저씨에게도 풍부한 casablanca의 soul이 느껴지더라.

루멜리 히사르에서 한 어머니가 아장아장 걷는 아기의 손을 잡고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가는 모습은

정말 홀릴듯 오래 쳐다봤다.

아름답고, 귀엽고, 따뜻하고, 다정해서...

이런 꿈같은 풍경들에 더 많이 귀길울여야 했었는데

내내 아쉽고 아쉬웠다.

 

 

아마도 변하지는 않을거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기전에 마지막으로 들르는 곳은

여전히 서점일 것이고

비행기가 땅을 벗어나면

창문을 통해서 서서히 드러나는 하늘길을 보며 여전히 설랠거고,

골목골목을 목적없이 서성이는 것도 여전할거다.

눈에 담는 것,

눈에 담기는것들에

점점 더 많이 선량해진다.

본다는 것,

그건 느낀다는 것과 동의어다.

한때 제일 절망적인게 시력을 잃는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을 읽으면서 그렇치 않다는 걸 알았다.

그래, 볼 수 없다는 건 확실히 치명적이긴 하다.

그러나 그리웠던 건 한 번이라도 봤다면

그걸 기억하면서 마음 안에서 두고두고 꺼내볼 수 있다.

사람은,

사랑때문에, 사람때문에 살 수도 있지만

기억때문에 살 수도 있다.

 

하여,

아무것도, 아무도 없는 나는

내 기억의 힘을 신앙처럼 굳게 믿는다.

그게 나를 살게 한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4. 1. 6. 06:02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나와 똑같은 감성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나는 슬프다.

이 사람도 쉽게 살아내는 사람은 아니겠구나...

덜컥 덜컥 덜미를 잡히는 감정들에 휩쓸려 흔들리며 제자리를 찾아가는 삶.

마치 conjoined twin 같았다.

정여울의 글.

40대를 바라보는 여자가 20대를 위해 쓴 글은 40대를 넘긴 내가 읽는다.

20대도, 30대도, 40대로 틀린 건 아무것도 없다.

다 똑같다.

자기의 일이 있어도, 자기의 사람이 있어도, 자기의 생각이 확고해도

사람들은 늘 방황하고 절망하고 흔들린다.

20대는 20대의 방황이 있고

30대는 30대의 절망이 있고

40대는 40대의 흔들림이 있다.

그 시간대를 지나오는 거.

20대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끔찍하진 않다.

 

여행을 가면,

언제나 풍경이 먼저 들어왔다.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면 그때서야 알게 된다.

아, 이번에도 내 사진이 한 장도 없구나...

책읽는 사람을 기웃거리는 모습도,

박물관과 박물관에 숨어있는 쉼터를 기가 막히게 찾아내는 본능도,

길거리 묘지를 지나치지 못하고 한참을 머무르는 습관도

"출구"라는 단어 앞에서 떠나지 못하는 미련도

거리의 악사가 연주를 시작하면 다시 되돌아오는 걸음도

어쩌면 그렇게 똑같을까!

정여울은 첼로를 배운다고 했다.

첼로까지는 아니지만 일주일에 한번 해금을 배우는 낯선 적응까지도 똑같다.

연주를 잘 하는 게 목적이 아닌 것까지도...

정여울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도플갱어" 같았다.

나도 모르게 정여울이 지나갈 40대가 그려진다.

그래도 정여울은 자신을 다독이는 법을 알고 있으니 잘 지나갈테wl

다행이다. 참 다행이다.

나는 참 힘들게 지나왔고 그래서 지금까지도 때때로 힘들고 지치는데...

몸이 아픈건 이젠 이력이 나서 아무렇지도 않다.

더 정직하게 말하면 육체적인 아픔에 대한 감각은 거의 무뎌졌다.

얼마나 아파야 아프다는 말할 수 있는지 솔직히 이젠 모르겠다.

그래서 부탁하고 싶다.

내가 힘들게 지내온 그 시간을 지나는 20대에게.

참지말고 아프면 아프다고 꼭 말하라고.

그게 비록 타인에게 엄살로 보인다해도 아픔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아픔을 느끼는 감각이 무뎌지는 걸 그냥 지켜보지 말라고.

참는다고, 숨긴다고 강해지는 걸 절대 아니라고.

위로받기를 주저하지 말라고.

그리고 기억하라고.

때로는 모르는 사람에게서, 혹은 낯선 풍경에게서만 받을 수 있는 그런 위로도 있다는 걸!

매번 사람이 답은 아니라고.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너무 많이 떠나고 싶어졌다.

어쩌나...

나는 지금 현재진행형으로 흔들리고 있다.

음악과 책으로 어떻게든 달래보다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으면.

제대로 사고를 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대는 그대가 원하는 걸 얻기 위해 어떤 거래라도 할 수 있는가?"

멜피스토펠레스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기꺼이 그의 파우스트가 되어 주겠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2. 10. 12. 08:24

여행의 시작과 끝은,

(특히 외국으로 여행할 경우)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대부분 비행기에서 시작되고 끝난다.

그래선인지 나는 꼭 공항 통유리로 내가 탈 항공기를 오래 바라보게 된다.

일종의 눈인사인 셈이다.

"비행기야! 잘 부탁해!" 류의... ^^

여행을 자주 가는 사람들은 이동수단에 대한 감회가 별로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내가 탈 비행기는 다른 비행기보다 뭔가 좀 달라보이고 다정하게 느껴진다.

(비록 그게 얼치기 여행자의 말도 안되는 상상일지도 모르겠지만)

 

김포공항에서의 오후 6시 40분 출발.

해를 이제 막 숨을 준비를 하고 있었고 하늘은 점점 붉어지기 시작했다.

상승의 압력차가 지나고 구름 위로 올라가면 펼쳐지는 또 다른 세상.

어쩌면 여행을 하는 이유가

구름 위의 세상을 보기 위해서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할 말을 잃게 만드는 거대하고 막막한 위대함에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다.

그래선가?

창가 자리가 확보되지 않는 여행은 왠지 시작이 쓸쓸하다.

사위는 태양빛에 따라 변하는 구름의 빛깔이란!

누군가 일부러 테두리에 색을 입힌 것 같다.

침묵 뒤에 이어지는 더 깊은 침묵.

사실은 창문을 뚫고 나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들이 기꺼이 받아준다면...

 

태풍의 끝자락에 있는 고베.

간사이 공항으로 향하는 차안에서 열심히 눌러대던 카메라 셔터.

하늘빛에 완전히 홀렸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어딘가로 쓸려들어가는 느낌.

바람때문에 흔들리는 차 안에서 나는 또 턱없는 상상에 빠졌다.

하늘에 틈이 생기고 거기서 뭔가가 그야말로 짠~~~ 하면서 나타날 것만 같아서...

그 순간을 꼭 목격해야 할 것 같아서...

 

일본에서 서울로 향하는 비행의 일정.

구름 위로 수시로 변하는 하늘빛과 구름을 보면서

나는 또 감동하고 감격했다.

그래, 이번 여행은 이렇게 아름다운 하늘을 본 걸로 이미 충분히 최고였다.

김포로 가까울수록 점점 많이지는 빽빽한 아파트 숲을 보면서는

좀 씁쓸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하늘 위에서 보는 아파트숲은 미니어처럼 귀염성이 있다.

우리... 참 빽빽하게 살고 있구나...

저 미니어처 한 칸 한 칸씩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치열하게 살고 있을까?

이제 곧 편입될 세상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기분은 편이나 신(神)적이기까지 하다.

당분간은,

한 숨을 조금 덜 쉬며 살게 되겠구나...

나는 그게 또 고마웠다.

 

일본에서으 마지막 밤.

아침에 등교해야 하는 조카가 12시 넘는 시간까지 깨어있었다.

빨리 자라고 해도 이모 이제 없으니까 같이 더 있어야 한단다.

조카의 이쁜 말에 나는 또 가슴이 뭉클했다.

언제나 그렇다.

나는 조카들에게 부방비상태로 녹고, 조카들에게 감격하고, 조카들에게 푹 빠져버린다.

조카들은...

나를 언제나 무장해제시킨다.

나의 완벽한 힘이자 희망.

이번 일본 여행의 키워드를 꼽으라면 딱 2 개를 꼽겠다.

조카와 태풍.

아. 그리고 언니와 형부도 ^^

 

* 그나저나 교토로의 조용한 산책같은 여행은 과연 언제쯤에나 가능할까?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1. 1. 19. 06:19
<그남자 그여자> 이미나가 쓴 책이다.
여러 권의 책을 출판했고 나름대로 꽤 많은 사람들이 읽은 것 같은데
솔직히 그녀의 책을 읽은 건 이게 처음이다.
고백컨데 이미나의 여행서인지 알고 집아들었다.
그런데 이걸 뭐라고 할까?
여행을 다녀와서 쓴 조금은 귀엽과 깜찍한 소설?
책 속의 주인공은 공연기획이 업인 행복한 아이 "행아"다.
실제로 이미나도 공연기획을 심심찮게 하는 사람이니
행아가 이미나의 일부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거다.
쉬는 날이면 공항을 가는 사람.
비행기만 봐도 가슴 설레는 사람.
그리고 여행으로 하나의 시절을 끝내게 되는 사람.
어쩌면 영원한 유토피아란 "여행"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김포에 가깝게 있는 근무처 덕분에 나 역시도 하루에 몇 번씩 하늘 위를 나는 비행기를 본다.
마음은 이미 그 비행기 안에 들어가있는데
몹쓸 놈의 몸은 여전히...



재미있다.
태호와 행아, 태희와 건호, 경우, 그리고 은수까지
주변에서 금방 찾을 수 있는 아주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들.
무엇보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전초전 같은 부분들에 공감을 하게 된다.
친구 태호와 반 고호의 동생 테오의 못한 일치감.
그리고 두 개의 여행지가 하나로 만나는 그 합치감도
읽으면서 재미있고 다행이다 싶었다.
다른 것과 틀린 것을 구별할 줄 알면
그 여행은 또 얼마나 편안하고 풍성해질까?
10일간의 여행을 계획 중인 내겐 약간 느슨함을 안겨주는 책이었다.
솔직히 줄거리로만 따진다면 흔한 칙릿소설이자만
다른 것을 보고 나니 귀여운 동네 꼬맹이들이 재잘거림같다.
요즘 세대들의 통통 뛰는 대사들을 읽는 것도 뭐 그런대로 재미있었고...
올 가을,
계획했던 터키로의 여행이 끝나면
개인적으로 이런 여행의 기록 하나 만들어야지 싶다.
^^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10. 28. 05:54
며칠 여행을 다녀왔다.
혼자 눈으로 쫒으며 걸었던 흙길은 충분히 포근했고
그 길에서 마주친 기백년된 나무와 쇠락한 사당들, 고택들은 신성하고 그윽했다.
처음엔 부러움 때문에 못된 심통이 일어 그만 덮어버리고 싶은 여행이었다.
그런데 눈으로 쫒는 한걸음 한걸음에 그만 내가 넋이 나갔나보다.
팍팍했던 무릎팍에 힘이 주면서 계속 걷자, 계속 걷자며
나도 모르게 스스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직접 걸어볼 깜냥도 안 된다면
그래, 이 여행도 그리 억지는 아니라며 나를 다독이면서...



책 속에는 꼭 걸어봐야 할 대한민국 아름다운 길 50 곳이 소개되어 있다.
별로 친절하게 세세한 코스를 이야기해주는 것도 아닌고
눈에 확 띄는 아름다운 풍경 사진이 지천인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꼭 내 두 발로 함께 걷고 있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그래서 촘촘한 글자에 꽤 무거운 책의 무게를 감당하면서도
이틀동안 지하철 안에서 읽어냈던 건지도 모르겠다.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아우르는 50 곳의 도보 여행지.
짧게는 3시간에서 길게는 무려 14시간을 걸리는 트레킹 코스를 소개하면서
중간중간 시나 옛글들을 운치있게 배치한 게 또 소박하고 정겹다.
세월과 함께 버려진 역사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걷다보면 보전되지 못하고 방치된 옛 것들이 꼭 말을 걸어오는 것 같지 않을까?
나도 한 번 기억해달라고...



몰랐었다.
서울 근교에도 걷기 좋은 곳이 이렇게 많이 있다는 걸.
그리고 그 길 속에 숨겨진 이야기가 또 그렇게 많다는 것도
억울한 생각이 들만큼 내내 몰랐다.
꼭 지리산 둘레길이나 제주도 올레길이 아니라도
서울 근교에도 일부러 공을 들여 걸을 길이 얼마나 많던지...
서울 성곽, 북한산성, 남한산성 오름길도
사라진 나룻터를 떠올리며 한강 따라 걷는 물길도
라이브 카페만 떠올리는 양수리에서 광나루까지의
물안개 자욱한 신비로운 아침길도
조금만 바지런을 떨면 두 발로 걸어 느낄 수 있었을텐데...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부지런한 사람은
발부터 가장 바쁘 사람이 아닐까?
피터 한트케의 글처럼 "걷는 사람"만이 세상을 온전히 느낄 수 있으리라.
그래, 걷자!
지쳐서 무릎이 시큰할 때까지...
그 시큰함이 고된 상쾌함으로 온 몸을 쾌활하게 만들지도...


탈 것에 몸을 싣고 가면 나는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걸을 때만 공간이 열리고 빈 공간들이 춤을 춘다!
걸으면서만 나는 나무에 달린 사롸로 몸을 돌릴 수 있다.
걷는 사람만이 머리가 어깨 위로 자라난다.
걷는 사람만이 자기 발에 발꿈치가 있다는 것을 경험한다.
걷는 사람만이 육체를 통한 이동을 느낀다.
걷는 사람만이 높은 나무의 소리를 정확하게 듣는다.
정적을! 걷는 사람만이 만회할 수 있으며,
자기 자신에게로 갈 수 있다.
걱는 사람이 생각하는 것만이 유효하다.

- 페터 한트케 <역사의 연필>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7. 28. 06:33
아나운서에서 여행작가로 과감하게 전업을 선언한 손미나.
그녀의 세 번째 여행기를 읽다.
스페인, 일본에 이어 이번엔 탱고의 나라 아르헨티나.
<스페인, 너는 자유다>를 읽으면서는 "의외로 잘 썼네!"라고 생각했었고
<태양의 여행자>에서는 그녀의 과한 욕심에 실망감을 느꼈었다.
아직 여행 작가로서의 손미나의 내공(?)이 좀 부족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전공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손미나는 남미에 대해 특별한 애정과 친밀감이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한 것 같다.
손미나의 제 2의 고향이 남미라는 사실.
(그래서 일본 여행기 <태양의 여행자>가 좀 아니라고 생각된건지도 모르겠다.
  일단 제목부터가 남미스러워 낯설었던 기억이...)
그녀는 세 번째 여행기를 이혼한 이후에 썼다.
그래서 그런지 개인적인 아픈 감정들이 책 속에 약간씩 담겨있다.
(다행히 거북하지 않을 정도로)
이 여행이 아무래도 그녀를 새롭게 다독이고 일으켜 세워준 것 같다.
그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누구라도...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
그 도시의 뜻은 "좋은 공기"라는 의미란다.
(참 다정하고 쾌활한 이름을 가진 도시구나...)
한 번도 존재한 적 없는 왕국의 신비로운 수도,
미로의 가장 은밀한 중심, 영원한 유혹의 도시...
생활인으로서의 직업, 그리고 영원을 위한 예술가로서의 직업.
국민 대부분이 두 개의 직업을 가진 곳.
예술과 생활이 언제나 삶의 일부가 되어 공존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
진한 탱고 음악에 맞춰 모르는 타인과도 몸을 부딪쳐가며 영혼의 춤 탱고를 출 수 잇는 곳,
타인의 영혼을 이해하고 함께 호흡하는 그 곳 부에노스 아이레스.
이 도시...
터키의 보스포루스 해협 다음으로 내가 가보고 싶어하던 곳.
그곳을 다녀온것 만으로도 나는 그녀가 부럽다.
한 번의 인생은 한 번의 인생과 같다는데...
몇 번의 인생을 살아내는 그녀의 삶은 또 얼마나 행복할까?



사람때문에 아팠던가?
이 여행기에서는 여행지보다 사람이 먼저 보이고 사람이 먼저 다가온다.
우리처럼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뭔가를 만들어 가는 투쟁에 가까운 삶을 살았던 민족.
그래도 우리는 단일민족이라는 동질된 결속력이라도 있었지만
아르헨티나는 이민족으로 이루어진 나라다.
그러나 삶이란,
늘 언제나 어디서나 치열하고 그리고 황홀하다.
작고 낡았지만 전통이 있는 오래된 찻집과 허름한 골목에서 만난 예술가가 선물한 그림 한 점,
열정적인 탱고 수업과 이국의 초보자가 추는 춤,
빙하기의 잔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아르헨티나 최남단 파타고니아.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씩씩한 여행객들과의 만남.
그리고 그 만남이 이어준 또 다른 여정들.
여행은,
그래, 그런 우연의 비일상성이 만들어내는 기적의 경험인지도 모르겠다.
책을 덮으면서 그녀는 충분히 위로받았구나 싶어 또 다시 가슴이 다독인다.
그랬다면, 이 여행은
그녀에게도 내게도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에.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너무나 사랑했던 작가 보르헤스는 그녀를 이 여행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보르헤스의 또 다른 말에 내 맘을 담는다.

새들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다.
물이 없는 세상도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책이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 보르헤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4. 21. 06:31
일  시 : 2010. 04. 17. ~ 2010. 04.25.
장  소 :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극  본 : 노시노부 코죠우
연  출 : 류주연
출  연 : 남명렬, 예수정, 김정영, 오일영, 장용철, 권지숙, 김원진, 신용진, 신용숙,




"잠들지 못하는 아빠와 일어나지 못하는 나 중에서 어떤 쪽이 더 불행해?"
어느날 딸이 이런 질문을 한다면,
아빠는 어떤 대답을 딸에게 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그 딸이 이미 3년 전 무참히 살해당한 딸이라면?
연극 <기묘여행>의 시작은 이렇다.
자신의 베개가 있어야 잠을 잘 수 있는 아빠와
꼭 그 자명종 소리여야만 잠에서 깰 수 있는 딸의 실랑이는
차라리 마음이 들뜨게 만들고 심지어 다정한 모습에 귀엽성까지 느껴진다.
그러나 여행의 비일상을 이야기하면서 여행가방을 정리하는  아빠의 가방 속에
청테이프, 로프, 염산, 드릴, 전기톱이 하나씩 등장하면
극은 분위기는 묘한 반전을 이룬다.
그래, 정말 이 여행은 <기묘여행>이 되겠구나...

 

연극 <기묘여행>의 원작은 2004년 일본의 토시노부 코죠우가 쓴 작품이다.
살해당한 딸의 부모(남명렬, 예수정)와 딸을 죽인 청년의 부모(오일영,김정영)가 만나서
사형이 확실시 되고 있는 살인자의 면회를 위해 함께 교도소를 찾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극에선 묘하게도 살인의 동기나 정황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아무래도 의도적인듯...)
그러니까 딸의 아버지는.
지금 여행가방을 싸면서 혹시 있을 기회를 위해 철저한 복수를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그의 무거운 가방은 그래서 이제 의미가 부여된다.
기회가 왔을 때 절대로 실수해서는 안 되니까,
그 짧은 순간에 가능한 모든 방법 중 한가지를 확실하게 선택해야 성공시켜야 하니까...
반대로 가해자의 부모는 지금 "희망"을 간절히 소망하고 있는 중이다.
항소를 포기한 아들에게 "살아야만 속죄도 할 수 있다"고 설득하고
가능하다면 피해자 부모가 아들에게 이 말을 해주시길 간곡히 부탁한다.
(그것도 여러번...)

이들의 1박 2일의 여정은
지금 방금 이렇게 시작됐다.
죽이려는 자와 살리려는 자의 동행...
  

 

우리나라 무대 배경은 일본의 배경과는 많이 다르지만
무대 뒤를 따라 둥그렇게 나 있던 길과 분위기 따라 달라지던 스크린 배경은
때론 아름답기도, 때론 섬득하기도 하다.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살인과 사형제도에 대한 이야기.
그러면서도 왠지 이질감과 동감을 동시에 주는 코믹한 설정들과 대사들.
교도관이었을때 사형집행 경험이 있다고 말한 코디네이터 "테라하라"의 한 마디가 귀에 선하다.
"인권이 도대체 뭡니까?"
연극은 피를 토하듯 섬득하면서도 평화롭고 고요하다.
이들을 감싸는 묘한 기운에 나는 평온함마저도 느낀다.
그러나 진짜 그럴까?
"눈 뜰 수 없는 난 너무 불행해!"
극에 나오는 모든 이들의 심정이 살해된 가오루의 심정과 같지 않았을까?
지금도 자신의 마음은 살의로 가득하지만 죽일순 없다고 말하는 아빠와
무표정한 얼굴로 사건을 지켜보다
살해자와의 면회에서 가오루를 돌려달라며 의자를 집어던지는 엄마 역시도
결국 눈 뜰 수 없는 사람들이었던 건 아닐까?
이들을 눈 뜨게 하는 방법은 아무래도 가오루라는 자명종 하나 뿐인지도...



이상하지?
난 아버지의 마지막 대사를 들으면서
깊은 감동을 느끼면서 동시에 참을 수 없는 살의를 느꼈다.
그리고 그 느낌의 시작은 딸이 아빠에게 들려주는 칼이 몸 속으로 들어오는 소리를 이야기할 때부터였다.
"뜨거운 물을 끼얹는 것 같이 뜨거워져서 소리가 났어!
 칼이 밀리는 소리, 피가 막 흘러나오는 소리.
 몸안으로부터 직접 들리는 우물거리는 이상한 소리
 어떤 악기로도 낼 수 없는 소리. 잊자마!, 아빠!"

혼(魂)인 딸의 대사가 끝나고
무대 스크린이 피가 튀듯 검묽게 변해가는 장면에선 "번쩍!"
휴즈가 끊겨버린다.
강렬하고 치명적인 뭔가가 가슴을 그대로 들이받는 느낌이다.
그래, 이제 이 말(馬) 위에서 도저히 유턴할 수는 없겠구나....

 <연출가 류주연>

살해된 딸 가오루의 아버지역으로 극의 전체적인 흐름을 끌고갔던
배우 남명렬 역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로
극의 마지막 부분을 꼽았다.
“살의로 가득하지만 도저히 죽일 수는 없다”
원혼(怨魂)인 딸 앞에선 복수하겠다 말하고 철저히 준비하지만 
결국 사형수 앞에선 무방비상태로 땀만 뻘뻘 흘리다 나오는 아버지.
인형을 찌르는 장면에서는 배우 입장에서 굉장히 연기하기 어려웠노라 그는 말한다.
더불어 관객들도 그 장면에서 배우가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까지도 전한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과 머릿속에 있는 풍경 중 어떤 게 진짜일까?”
당신이라면 이 질문에 뭐라고 대답하겠는가!
연극 <기묘연극>
생명과 인간 존엄에 대한 이야기 이전에
어쩌면 나 자신에 대한 정확한 폭로인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10. 2. 26. 06:02
 <희망을 여행하라> - 이매진피스 임영신, 이혜영


희망을 여행하라

혹시 “공정여행(Fair Travel)"이라는 말을 아십니까? 그럼 “공정무역(Fair Trade)"이란 단어는요?

공정무역(Fair Trade)이란 상품의 최초 생산자에게는 지속적인 자립을 도울 수 있는 정당한 가격이 지불되고, 소비자에겐 윤리적이고 건강한 제품을 구입하게 하는 새로운 글로벌 지원사업을 말합니다. 여기서 윤리적인 제품이란 아동노동을 착취하지 않고, 환경도 파괴하지 않는 그런 제품을 뜻하죠. 제품을 공급하는 나라는 대부분 제3세계 국가로 빈곤과 낮은 교육 수준, 열악한 환경의 공격을 받고 있는 나라들입니다.

우리나라에도 현재 공정무역 제품들이 상당히 많이 들어와 있고, 얼마 전에는 홈쇼핑을 통해 공정무역 커피가 판매되는 걸 보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공정무역의 대표 브랜드(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를 꼽자면 우리가 잘 아는 “아름다운 가게”를 들 수 있습니다.

공정여행은 우리가 아는 공정무역과 넓게는 그 의미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정여행(Fair Travel)이란 우리가 여행에서 소비하는 돈이 그 지역과 공동체 사람들에게 직접 전달되는 여행을 말합니다. “여행”이라는 행위를 통해 여행지의 숲이 지켜지고, 그 곳의 사라져가는 동물들이 살아나고 나아가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고 경험하는 여행입니다. 더불어 여행자와 그 여행자를 맞이하는 원주민이 서로를 성장시키는 여행이죠.

“여행”을 준비할 때 우리는 제일 먼저 “어디로” 떠날지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공정여행을 실행하는 사람들은 “어떻게”를 먼저 생각한다고 하네요. “어떻게”하면 그곳의 자원과 사람, 그리고 환경을 덜 파괴하는 여행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여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행의 들뜸과 흥분보다는 책임을 먼저 생각하는 여행이죠.

관광과 공정여행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라보는 “시선”에 있다고 합니다. 관광은 여행을 상품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소비”하는 행위이지만 공정여행은 “관계”에 그 시선을 맞춥니다. 그곳 원주민들과의 관계, 환경과의 관계, 재화의 공정한 분배에 대한 관계...

  

이제 여행에도 “페어플레이”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여행을 단지 “관광”과 “쇼핑”의 이벤트로 끝낼 것인가 아닌가는 온전히 여행자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책임감을 강조한 의미죠.

누구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을 겁니다. 나를 무한한 자유와 행복감에 빠져들게 하는 여행이 어쩌면 현지인에게 피해를 주고 고통을 주는 행위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현지인 포터를 동반한 트레킹에서 그들의 싼 인권비에 놀라면서도 그 인권비의 얼마가 그들에게 돌아가는지, 그들의 등짐을 보면서 진기명기를 보듯 감탄만 했는지도 모릅니다. 코끼리 등에서 별천지를 구경하면서 그들의 머리를 내리찍은 따거의 고통을 가늠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코끼리의 가죽은 아주 단단해서 전혀 아파하지 않는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코끼리의 이마에는 새로운 생채기에서 새로운 핏줄기가 흐르고 있다는 걸 등 위에 올라탄 우리는 결코 보지 못합니다.

우리는 가이드의 말을 절대적으로 믿고 신뢰하는 착한 여행객이니까요...

“여행”은 다른 문화를 단지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화를 직접 경험하는 것이며 경험한다는 것은 그 문화에 대한 존중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 이유로 누구든 타인의 공간을 방문할 때는 예의를 지켜야만 하죠. 우리가 그들보다 더 잘 사는 나라이기에 그 나라를 함부로 다룰 이유가 전혀 없다는 말입니다.

기억할 수 있을까요?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일본인을 상대로 한 “기생관광”의 핵심지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인이 동남아시아의 미성년자 성매매 관광의 최대 수요국으로 부상한지 오래죠. 이런 통계를 보면 어쩐지 여행이 범죄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미성년자 성매매는 확실히 불법행위죠.)

그렇다면 “여행”을 통해 우리가 원했던 건 정말 무엇이었을까요?


이 책 <희망을 여행하라>는 여행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책임을 묻는 책입니다.

여행을 구경을 하는 관광으로만 즐길 것인가 아니며 사람과 자연을 만나 배움을 얻고 함께 관계를 맺는 소통으로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만드는 책이죠.

꼭 전쟁과 외교로만 나라가 지켜지는 것은 아닙니다. 자국의 문화를 잃는다면 삶의 역사를 잃게 되는 것이죠. 우리 역시나 문화를 잃었던 과거가 있습니다. 우리가 끝끝내 문화를 지키고 보전해 나갔던 건 결국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진보”에 대한 강한 희망이었습니다. 

지금의 거대 기업의 관광산업을 보고 있으면 과거 식민지 문화의 거대 부활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행을 통한 인권 유린, 아동노동 착취, 환경 파괴는 결국 그 나라 문화를 파괴하고 급기야는 삶의 터전까지 파괴하기에 이르죠.

관광산업에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삶의 터를 빼앗기고 멸종의 위기에 처해있는 부시맨과 마사이족들. 그들은 지금 다국적 기업의 관광산업 볼거리로만 그 명맥을 겨우 유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신께 올렸던 신성한 제의는 관광지의 이벤트로 아무런 믿음과 기원 없이 매일 밤 끝없이 부활하고 있죠.

이제 관광지가 된다는 것은 삶의 존엄과 더불어 진실의 기록과 기억마저 삭제해 나가야 하는 냉혹한 정치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먹고, 마시고, 버리고, 그리고 떠나는 여행!

지금까지 우리가 했던 모든 여행도 이 과정의 반복은 아니었을까요?


리얼리티 투어, 에코 투어. 대안 여행, 윤리 여행. 공동체에 기반을 둔 여행...

“관광객”은 단지 구경하기 위해 여행하는 사람이고 “여행자”는 만남과 배움을 위해 여행하는 사람이라고 이 책은 말합니다.

일본에서 시작된 피스보트(Peaceboat) 그리고 학생 안식년으로 알려진 영미권의 갭 이어(Gap Year)는 이런 공정여행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82년 일본 역사교과서에서 일본의 아시아 군사침략을 “진출”로 표현한 것에 대해 세게 곳곳에서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었을 때, 이제까지 자신들이 배워 온 역사가 진실인가 하는 의문을 품은 일본 젊은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렇다면 현지에 가서 우리들의 눈으로 확인해 보자'고 생각했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 것이 피스보트의 시작이었다고 합니다.

피스보트는 1년에 네 차례 지구를 가로지르는 여행을 하는 일본의 NGO 단체로 벌써 2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죠. 피스보트는 이제 일본과 아시아의 역사를 넘어 지구의 환경, 인권, 여성, 분쟁, 빈곤문제 등 다양한 세계의 모습을 직접 만나 그곳 사람들에게 듣고, 배우며 여행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제교류, 연대, 자원봉사, 구호활동 까지도 펼치고 있죠.

이 피스보트의 가장 큰 매력은 승객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자주기획”이라는 프로그램입니다. “자주기획”이란 승객들 스스로 세미나나 스터디를 만들어 토론도 하고 공연 기획 등을 통해 승객들에게 의미있는 공연을 그들 스스로 보여주는 일련의 프로그램을 말합니다. 

피스보트에 탑승한 600여명의 세계의 젊은이들은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고 고민을 나누고 다른 사람에게 배우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교류하며 소통하게 됩니다. 하나의 진정한 지적 페스티벌이라고 할 수 있죠.

“Gap Year"는 영국과 미국의 대학들이 실시하고 있는 제도로 신입생이 입학 전 1년간 입학을 유보하고 세상을 경험한 후 공부를 시작하도록 하는 방법이죠. 영국의 윌리엄 왕자가 세인트앤드루스 대학에 들어가기 전 1년간 입학을 유보하고 갭 이어의 시간을 가져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갭 이어의 목적은 자신이 살아가야 할 세계를 이해하고, 이제부터 하게 되는 학문에 대한 진정한 목적과 의미를 찾는 자기배움의 일환이라고 합니다. 개인적인 휴학과 근본적인 차이는 학교가 직접 제도를 마련해 대학시절 전에 세상을 경험하고 자신을 돌아볼 시간과 경험을 권장하는 공교육의 일부라는 사실이죠.

우리가 아는 취업을 위한 하나의 스팩용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 책은 요즘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소위 해외봉사에 대한 위험성도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자신의 결단과 뚜렷한 목적의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단지 취업에 필요한 가점을 얻기 위한 하나의 필수코스가 됐다고 꼬집고 있죠. “해외연수”나 “외국어능통”조차도 이제는 흔한 스팩이 되어 버렸다는 뜻입니다. 해외봉사같은 스팩을 하나 가짐으로 글로벌 인재, 희생정신, 책임의식에 대한 홍보효과를 기대한다는 엄중한 지적이기도 하죠.

그들에겐 이것 또한 “관광”의 한 형태에 다르지 않습니다.

“시선의 폭력”이라고 이 책은 말하네요.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반성” 그 이전의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반성‘이나 ”각성“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로구나 하는 처절함. 이건 분명 생존과의 사투라는 생각.

“공정함”

어쩌면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공정함이 여행으로 스며들 때, 그 여행은 이미 배움과 이해를 넘어 소통과 관계의 세계로 우리를 진화하게 만듭니다.

여행을 바라보는 당신의 시선은 “진화”를 보고 있나요, 아니면 “파괴”를 보고 있나요?

몰랐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죠.

“진화”의 반대말이 “파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공정여행자가 되는 10가지 방법>


1. 지구를 돌보는 여행 : 비행기 이용 줄이기, 1회용품 쓰지 않기, 물을 낭비하지 않기

2. 타인의 인권을 존중하는 여행 : 직원에게 적정한 근로조건을 지키는 숙소, 여행사를 선택하기

3. 성매매를 하지 않는 여행 : 아동 성매매, 섹스관광, 성매매 골프관광 등을 거부하기

4. 지역에 도움이 되는 여행 : 현지인이 운영하는 숙소, 음식점, 가이드, 교통시설 이용하기

5. 윤리적으로 소비하는 여행 : 과도한 쇼핑 하지 않기, 공정무역 제품 이용하기, 지나치게 깎지 않기

6. 친구가 되는 여행 : 현지 인사말을 배우고 노래와 춤 배우기, 작은 선물 준비하기

7. 다른 문화를 존중하는 여행 : 생활 방식, 종교를 존중하고 예의를 갖추기

8. 상대를 존중하고 약속을 지키는 여행 : 사진을 찍을 땐 허락을 구하고, 약속한 것을 지키는 여행

9. 기부하는 여행 : 적선이 아니라 나눔을 준비하자, 여행 경비의 1%는 현지의 단체에!

10. 행동하는 여행 : 세상을 변화시키는 여행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10. 2. 3. 06:17

 <가만히 거닐다> - 전소연


가만히 거닐다

그랬던 적이 언제였나 생각해봤습니다.

“가만히” 무언가를 했던 적이 언제였는지...

솔직히 말해서 제목에서 느껴지는 심한 질투감이 이 책을 손에 잡게 했습니다. 표지에 담긴 사진도 한몫을 했다는 말도 함께 전합니다.

가만히 졸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한 사람과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또 한 사람, 그리고 약간은 몽롱한 느낌을 주는 그런 나른함까지.

오래 쳐다보니 마치 사진을 찍은 사람이 바로 나인 것만 같은 느낌도 듭니다.

책을 보면서 이런 동질감을 대면해야 한다는 건 확실히 당황스러운 일이죠.

1979년생 전소연.

본명보다 티양(Teeyang)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는 여자, 몇 번의 사진전과 그녀 이름의 책 몇 권까지 가지고 있는 엘리스같은 여자 전소연.

그녀가 교토와 오사카를 여행하고 책을 낸 2009년 그 시간에 저 역시도 간사이 공항에서 비행기를 내려 고베로 향하고 있었죠.

그녀처럼 가만가만 여행하지 못했고 발바닥에 불이 난 것처럼 매 시간을 서두르며 최대한 많이 보리라 다짐했던 수다스러운 여행이었습니다.

늘 부르튼 발과 낯선 장소에서의 잠이 달았을리 없었고 5일 동안 밤마다 불면과 피곤과 한판 대결해야하는 고단한 시간들의 연속이었죠.

그래도 아직 선명한 기억이 있습니다.

“Welcome to KANSAI"

그 문구 밑에 동그랗게 담겨있던 간사이 지역의 모습들.

허둥거리던 여행자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했던 또렷한 기억.


흔히 도쿄의 번잡함을 벗어나 한적하고 여유로운 여행을 원하는 이들이 선택하는 곳이 바로 간사이지방이라고 합니다. 이국적인 풍경과 전통적인 일본의 모습을 함께 담고 있는 곳, 그러면서 일상의 편안함까지 느낄 수 있는 곳 간사이.

간사이에서 그녀는 여행이 아닌 생의 빈틈을 찾아 차분한 한걸음 한걸음의 산책을 시도합니다. 기억을 걷는 듯한 그녀의 표정이 눈앞에 그려집니다.

일상처럼 잔잔하고 사소하게 머무는 여행, 그리고 사소한 시선 하나로 일상이 충만해지는 그런 여행을 하고 있는 그녀의 호흡은 깊고 단정했습니다.

낯선 누군가를 보던 시선은 어느새 책과 잘 어울리는 손을 가지고 있던 당신의 기억을 떠오르게 하고 그렇게 기억 속을 서성이다보면 어느새 울렁증이 멀미처럼 찾아오죠.

속도를 줄인 여행이 주는 긴 여운...

“...... 어쩌면 여행지를 선택하는 일은 운명과도 같다. 시기적절하게 불어오는 바람처럼 ‘그곳에 가야지’라는 생각이 스미게 되면 그곳에 가야 하는 운명이 되고 마는 것이다...... 어떻게든 마련하고 싶은 내 생의 빈틈은 ‘산책’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때로는 ‘여행’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여행은 단순히 낯선 지역으로 가서 다른 일상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공간에 가서 일상을 천천히 다시 만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산책과도 같은 매력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산책을 기록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녀의 기록은 “오전-오후-저녁-밤새벽”의 이름을 달고 일상의 하루를 꼭꼭 집어내 일기를 쓰듯 적어갑니다.

몰래 훔쳐본 누군가의 일기에서 나를 만나는 기분이란,

때론 섬뜩하기도 하고, 때론 다행이다 싶어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합니다.

그래 적어도 기다림을 잔인하고 버겁게 여기는 게 나 뿐만은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

그리고 그 느낌들이 고스란히 풀어진 사진들.

“...... 셔터를 누르는 순간 나와 당신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야기가 시작될 때까지 나는 당신을 지켜볼 것이고 가끔씩 미소를 보내기도 할 것이다. 당신과 나와의 거리는 가까워지거나 혹은 멀어질 것이다. 그러나 가깝고 먼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당신이 내 뷰파인더 안에 있느냐 없느냐이다. 당신 주변을 서성거리던 나는 호흡을 멈추고 셔터를 누르게 될 것이다. 당신과 나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결정적인 순간은 불과 몇 초 안에 찾아온다. 그러니 타이밍을 놓치지 말자. 사랑이든 사진이든 타이밍이 문제다..... ”

그녀가 찍은 사진들을 들여다보면 어딘가  엘리스의 나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을 것만 같습니다.

촘촘하지도 않고 오히려 어딘가 엉성해 보이기까지 한 그녀의 사진.

그 비어있는 여백이 그녀의 산책과 아주 많이 닮아 있어 보는 내내 따뜻했습니다.

뷰파인더로 세상을 만나는 일은.

늘 손끝을 떨리게 만드는 흥분이며 분주함입니다.

그 작은 뷰파인더 안에서 찍는 사람의 눈은 그러나 더 많은 걸 보고 더 많은 걸 알아챕니다. 그리고 기록을 다짐하죠.

그녀가 찍은 기록들을 보면서 그 밑에 하나하나 나의 기록들을 적어두고 싶었습니다.

그래요. 사진.

“찰칵” 소리와 함께 그대로 고정되는 한 세계.

그러나 찍힘으로해서 다시 새롭게 시작되는 또 한 세계.

사진을 찍으면서 저는 항상 방금 전의 세계와 지금의 세계를 생각합니다.

그 둘 사이의 간극은 짧지만 이젠 점점 더 차이가 생기고 멀어질 세상.


여행은...

그러니까 어쩌면 보기 위해 떠나는 것도, 비우기 위해 떠나는 것도, 그래서 다시 채우기 위해 떠나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계속 사는 거죠.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짧게 또는 길게 그것도 아니라면 기약 없이 살아가는 것.

기다림을 지우기 위해 나 자신을 조금씩 잃어버리면서 다시 또 살아가는 것.

어디에도 하염없이 나를 기다릴 마음 한 조각 흘리지 않고 살아가는 여행.

오랜 불면이 시작되면 저는 습관처럼 여행을 꿈꾸게 됩니다.

그 꿈이 만든 많은 생각들이 또 잠을 엉키게 하네요.

솔직히 한동안 낯선 여행지를 홀로 방황하는 독서가가 되는 건 아닐까 싶어 덜컥 겁이 나기도 합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허덕이며 관광지를 읽어내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죠.

그녀가 혹은 그가 다녀온 곳을 저는 꿈꾸고 싶지 않습니다.

빈틈을 향한 산책같은 여행도 그 끝은 있을테죠.

내 불면의 밤들을 그들이 차곡차곡 다독이며 위로합니다.

이제 조만간 불면의 산책도 제자리로 돌아와 잠을 청하게 되지 않을까요?

봄이 오면,

나른한 햇빛 속으로 졸음같은 산책을 떠나야겠습니다.

아마도 발걸음도 꾸벅꾸벅 졸게 되지 않을까요?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10. 1. 25. 06:16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 - 최영미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

나이를 깨닫고 살기엔 너무 어렸던 나의 20대 초반에 만났던 책입니다. 그 시집 앞에서 전 오지 않을 30대를 비웃듯 좀처럼 공감하기 힘들다 혼자 결정하고 책꽃이 한 켠에 방치하듯 내버려뒀더랬습니다.

나중에... 나중에... 그래 “서른”이 되면 그때 한 번 읽어주리라.

아마도 꽤나 거만한 다짐을 했었겠죠.

그리고... 정작 서른이 됐을 때는 까맣게 그 책을 잊어버렸고, “서른”을 지나버린 지금은 차마 두려워 책장의 표지도 건드리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십대였을 때 나는 나에게 삼십대의 시간은 결코 오지 않을 거라 호기있게 믿었었는데...

시인 “최영미”

그렇게 제때 읽지 못해 놓쳐버린 그녀의 시들은 아직까지도 제겐 조목조목 무안함과 면목 없음으로 남아 책꽃이 한 켠에서 물그러미 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마치 뭉턱뭉턱 시간이 통째로 도려내진 것 같은 휑한 느낌.

그런데  때로 그 느낌은 실제로 내 살점의 일부가 뜯기는 것처럼 저릿저릿 아프고 처절하기까지 합니다.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

여행집 신간으로 소개된 이 책이 눈에 들어왔던 건 아마도 작가에 대한 저의 이런 막연한 부채감이 한 몫 했으리라 짐작됩니다.

부채가 눈덩이처럼 쌓여 빚더미에 앉기 전에 이번엔 제때 읽어내리라 다짐하게 됐는지도...

작가 최영미는 이 책의 표지에 산문집이라고 책의 소속을 명확히 밝혔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단어 선택은 정말이지 솔직하고 정직했습니다.

이 책에는 여행지의 흥분감과 낯섬, 그리고 이국을 향하는 신비감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행지를 담은 그 흔한 사진조차 만나기 어렵죠.

여행은 “존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살기”위한 과정이라고 말하는 그녀는 이 책을 통해 삶과 사람을 기꺼이 만나 철저히 홀로 대화하고 소통하고 있습니다.

여행은 어딘가로 떠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누군가에게로 떠나는 것 또한 포함된다고 낮게 이야기하고 있죠. 

조곤조곤한 독백같은 대화들.

책을 읽는 내내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그것도 최선을 다해서 말이죠.

1부 "아름다움에의 망명"은 그녀가 그동안 국내의 신문과 잡지 등에 기고한 여행과 관련된 글들을 성실히 모아놓은 부분입니다.

시를 쓰고 소설을 쓰는 작가 최영미가 아니라 서울대 미대와 홍익대 미술대학원을 거친 미술학자로서의 그녀의 근원을 만날 수 있죠.

그녀에게 "미술"은 그러니까 영원한 노스텔지아인 셈입니다. 

불편해진 손이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미술의 정교함과 세밀함을 그녀는 글을 통해 대신 그려내기로 작정한 듯 보입니다.

2부 "예술가의 초상"은  문학, 미술, 영화 등 문화 전반에 대한 그녀의 짧은 사색과  개인적인 담론들이 오롯이 담겨있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숨겨진 이야기들과 위대한 예술가들의 애뜻한 비화들도 만날 수 있죠.
그리고 살아있는 사람들에 대한 인간적인 사귐의 글들까지도요.
솔직히 최영미가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좀처럼 믿어지지 않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작가 "최영미"를 그저 여류시인으로만 기억하려 했던 모양입니다.
선입견을 가진 삐뚜름한 시선이었죠.
여성을 글은 날카롭지 않고,  대담하지 않고, 그리고 체계적이고 치열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 담긴 글들...
삶이 치열하다는 걸, 하루하루가 생명을 목전에 둔 사람처럼 간절할 수 있다는 걸 가슴 뻐근하게 느끼게 합니다. 그것도 제겐 너무 치명적으로 잔잔하게...


오십을 앞에 둔 한 여자가 말합니다.

"여행과 스포츠는 내 삶이 다하도록 나와 함께 할 정열이다"

단지 이 말만으로도 지독히 그리고 강렬히 그녀가 부러워 야만의 짐승처럼 그녀의 사지를 물어뜯고 싶었다면 이해가 되실까요?

진심으로 저는 그러고 싶었습니다.
저 또한 그랬노라, 간절히 그래보고 싶었노라 그녀를 향해 발악이라도 하고 싶었습니다. 

여행지에서 할 일 없이 톡톡 손발톱을 깎으며, 발뒷꿈치의 오랜 각질을 정성껏 밀어내며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밀린 일기를 쓰고 싶었다고...

호들갑스럽게 유명 여행지를 눈도장찍듯 훓고 지나가는 게 아니라 가슴에 담긴 한 곳에 예정없이 머물면서 감정이 바닥날 때까지 그렇게 정착하듯 일상을 보내고 싶었다고... 

아직도 계속 건축중인 가우디 성당 앞에서,

미켈란젤로의 가죽을 들고 있는 섬뜩한 장면이 숨어있는 "최후의 심판" 앞에서.

나 또한 꾸역꾸역 밀려오는 졸음처럼 나른한 시간들을 오랫동안 보내고 싶었노라고...

내 눈 속에만 보이는 보물을 가슴에 숨기며 그렇게 애뜻하게, 그렇게 가슴 뻐근하게 그러면서도 잠시 무료하게 삶을 살아내고 싶었노라고...
그러나 그 꿈들이 내겐
항상 인류멸망의 최후보다 더 요원하고 늘 가팔라 상상만으로도 숨이 턱까지 차올랐노라고...


문득 그녀의 글들을 읽으며
저는 오래 참았던 숨을 크게 쉬어 봅니다.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라고 그녀가 말합니다.
그러나 이제 너무 겁쟁이가 되어버린 저는 알던 길도 잃을까봐 하루하루를 전전긍긍하며 살아갑니다.
정직하게 사랑하지 못했음으로 청춘을 잃은 사람.
그래서 젊은 적이 없기에 늙을 수도 없는 사람.
이 책을 읽는 저의 시선이 꼭 이랬음을 고백하게 되네요.
마음 안에 또 다시 굵은 매듭이 한 줄 묶이는 걸 느낍니다.
"예술에 재능이 없는 사람이 예술에 집착하는 것만큼 무서운 일은 없다네"
화가 세잔은 에밀 졸라의 이 말에 상처를 받고 그후로 죽을 때까지 세상과 등지고 살았다네요.
세상에 너무 많이 집착하며 살고 있는 저는 이제 무엇과 등지고 살아야 할까요?
책장을 덮은 마음 끝이 내내 묵직합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