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0. 2. 19. 00:09


일시 : 2010.02.05 ~2010.02.21
장소 : 아크코 예술극장 소극장
원작 : 데이비드 해어
연출 : 최용훈
출연 : 윤소정(에스메), 서은경(에이미), 김영민(도미닉), 
        백수련(이블린), 이호재(프랭크), 김병희(토비)


이 매력적인 연극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할까?
윤소정, 김영민의 캐스팅만으로도 나는 탐이 났었다.
오랫만에 온 몸이 제대로 호사를 누리겠구나 기대하며 기다렸고 그리고 확실히 그랬다.
연극이 시작되기도 전에,
정성껏 꾸며 놓은 무대를 보면서 나는 혼자 "이쁘다!"를 연발했다.
확실한 뭔가가 있으리라는 떨리는 예감까지....


연극 <에이미>는 전부 4 막으로 되어 있다.
짧은 피아노 연주로 시작되는 각각의 막은
시간의 변화를, 세대의 변화를 그리고 논쟁과 원초적인 다툼을 담고 있다.
제목만으로는 참 순한 연극일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런데..
참 치열하고 아프고 그리고 정곡을 찌르는 연극이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이 연극은 모녀간의 논쟁, 그리고 사위와 장모간의 논쟁이다.
원만한 관계가 펼쳐지지 않으리란 건 상황만으로도 눈에 선하다.
그런데 표면상의 치열함보다 극의 내면이 담고 있는 치열함이 훨씬 더 치명적이고 날카롭다.
폭로와 논쟁, 그리고 결별.
예술가의 용기와 평론가의 질투.
장모님(에스메)을 연극에 빗대 고상하고 우아하게게 포장하지 말라며
연극의 종말은 운운하는 평론가 사위 도미닉.
천박하고 비열한 성공과 권력을 혐오하는 예술가 장모.
선입견과 편견으로 이루어진 대화는 피가 튀는 전쟁터보다 오히려 더 살벌하다.

 

뭐랄까?
처음엔 분명 연극으로 바라봤었다.
그런데 연극이 다 끝난 후엔 도저히 연극으로만 보여지지가 않았다.
연극 안에서 도미닉은 비난한다.
"연극이라는 자폐적인 작은 예술세계는 보통 사람들의 삶과는 철저히 유리되어 있다"고.
연극으로 대변되는 고전적 예술 매체를 통해 자신을 은근이 경멸하는 어머니를 비난하는 말이었지만
이 말은 지금의 공연예술을 향한 일침인 동시에
공연물 속에 빠져 살고 있는 마니아를 자처하는 자폐적인 관객에 대한 일침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나를 향한 말이란 뜻이다. 나 역시도 자폐적 성향이 너무 다분하기에...)
에스메와 도미닉의 관계는 극이 진행됨에 따라 여러 차례 뒤집힌다.
(그 둘 사이에서 에이미만 정말 죽어라고 죽어난다. 급기야는 실제로도...)
은근히 치명적으로...
그러나 그 역전은 또 아니러니하게도 도저히 화목하게 지낼 수 없다고 믿었던
두 사람의 관계 회복을 위한 하나의 열쇠이기도 하다.



에스메와 도미닉으로 대변되는 영화(영상매체)와 연극의 대립과 반목.
그리고 과거와 현대의 충돌은
어딘가에서 결국은 만나게 될 몰입 혹은 화합의 길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모든 예술적 행위는 어쨌든 "몰입"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니까.
그 둘은 어쩌면 에이미의 바람처럼
결국은  다른 시선(Amy's view)를 갖게 될른지도 모른다.
도미닉이 에이미를 배신한 게 인생의 한 장이었고
이제 그 장도 모두 끝났듯이,
다른 세대(매체)의 시작을 암시하고 있는지도...
세상에 이런 화해도, 이런 예고도, 이런 시작도 있을 수 있구나 싶어 눈이 매웠다.



누군가는 이 연극의 네 개 막을 "맛"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1 막은 봄나물로,
2 막은 단단한 육질이 느껴지는 고기로,
3 막은 진한 커피로,
그리고 마지막 4 막은 박하사탕으로...
적극적으로 공감했다.
아주 적절하고 그리고 동시에 아름다운 비유다.



윤소정, 김영민, 이호제, 서은경, 백수련.
그들이 만들어 낸 무대는 아름다웠고 풍성했다.
(나는 소위 젊은이로만 가득한 무대가 싫다. 
 그곳엔 어쩐지 시간도, 사람도 텅 비어 있는 것 같다.
 제 나이에 맞는 역할을 제 나이에 맞는 배우들이 공연하는 모습을 보는 건
 오랜 가업을 이어 받은 솜씨 좋은 장인의 맞춤옷을 소유하는 기분이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이들에게서 정성스런 위로를 받았노라 고백하는 중이다.
극의 마지막 세례의식을 연상시키는 장면.
극중극의 형태였지만 그 차갑고 조심성 가득한 물줄기 속에서
묘한 안도감과 씻김을 느낀다.
에스메의 마지막 대사가 지금도 내 귓가에 멈춰있다.
"시작하는거야!"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09. 10. 21. 06:20
오랫만에 대학로에서 연극을 한 편 보다.
여성 연출가 박정희 연출, 극단 풍경의 <마라, 사드>
(원제 "사드씨의 지도하에 샤랑통 병원의 연극반이 공연한 장 폴 박해와 암살")
아르코 소극장의 그 따뜻함...
무대를 중심으로 좌,우로 나누어져 있는 객석
작은 소극장의 비지정석 좌석도 
가끔은 솔솔한 재미로 다가온다.
이미 무대 위에는 배우들이 자리잡고 있다.
좌석이 전부 채워지는 내내 배우들은
마치 그곳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시켜주듯 움직임조차 고요하다.
왠지 내가 보여지고 있다는 느낌.
괜히 몸이 움츠려든다.



개인적으로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신뢰의 깊이만큼 정당하게 인정하고 믿는 연극배우 남명렬!
그가 서는 무대라면 적어도 어떤 형태로든 배신감은 없다.
<마라, 사드>
20세기에 발표된 가장 주목할 만한 희곡 중 한 편으로 꼽히는 작품.
극작가 "페터 바이스"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작품이기도 하단다.
팽팽한 대각선의 구도 속에 느껴지는 긴장감.



무대의 배경은 샤랑통 정신 병원.
마르키 드 사드 후작은 실제로 이 샤랑통 정신 병원에 수감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사드(남명렬)가 직접 쓴 대본을 가지고
병원 환자들은 배우가 되어 연극을 시작한다.
정확히 말하면 마라와 사드. 두 사람의 사상에 대한 논쟁!
프랑스 대혁명의 이론가 장 폴 마라(홍원기)와의 
뒤집히고 뒤집히는 지적이고 황홀한 언어의 전쟁터.
그리고 결국의 행동의 결전장.
행동하지 않는 사상가는 과연 대중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까?
혹은 인간의 육체로 해방을 꿈꾸는 자는 진정한 해방을 소유할 수 있을까?
논쟁의 결말은
오로지 극을 보고 있는 관객의 선택에 달려있다.



입장시 관객들에게 나눠준 카드 한장!
한쪽은 사드의 색 검정,
반대쪽은 마라의 색 빨강.
오늘의 관객은 마라의 결말을 선택했다.
스크린에 나타나는 영상.
6.8 혁명과 베트남전쟁, 광주항쟁, 촛불집회... 
우리나라의 근, 현대사와의 절묘한 오버랩.
의외의 마무리. 그러나 신선함이 느껴질만큼 강렬하다.
문득, 사드의 결말은 어땠을까 궁금해진다.



연극은 무척 참신하고 새롭다.
정통 연극에 뮤지컬적인 요소, 스크린을 이용한 영화적 요소.
그리고 실제 밴드들이 연주하는 음악적 요소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결코 산만하거나 엉성하다는 느낌은 없다.
깊이와 선택에 대한 통찰 또한 잊지 않게 한다.
순간순간 관객을 몰입하게 만드는 신비감.
썰물과 밀물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느낌.
(분명 어떤 흐름과 호흡이 있디. 주술적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같은 공간에서 느끼는 타인과의 일체감.
신비로운 접신(接神)의 황홀감.



배우 남명렬...
관객에게 정확한 감정을 전달하는 그,
보고 있는 사람을 마지막 하나까지도 완벽에 가깝게 집중시킨다.
그가 말을 하면 듣고 싶지 않아도 전부 들을 수 밖에 없다.
정확한 딕션과 호흡 그리고 여백.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선한 웃음을 웃는 그의 모습을 기억하는 나는
도무지 무대 위의 그의 모습이 신비롭기만 하다.
그와는 전혀 다른 인물인데 그는 그 인물을 너무나 그답게 보여준다.
좀 걱정스러웠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사드"라는 성도착자의 모습을 보게 되는 건 아닌지...
그런데 역시 기우에 불과했다.
상당히 지적이고 논리적이인 사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렬하고 파괴적이기까지 한 모습.
인간에 대한 "충동질"
코르테를 안고 마라를 성토하는 번뜩이던 사드의 눈빛,
그 속엔 누구라도 거역못할 "광기"가 버티고 서 있었다.



"마라" 역의 홍원기.
배우로서의 이 분의 무대는 처음이라 낯설다.
신춘문예 당선, 연극배우이자 연출가이며
꽤 좋은 작품을 쓴 극작가이기도 한 홍원기!
음... 뭐랄까...
아마도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사드 남명렬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
상당히 비현실적으로 보여지게 연기한다는 생각을 그것도 너무 자주 했다.
의도적이었던 건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조잡한 내 이해력의 한계 때문인지도...



관객이 "마라"가 아닌
"사드"를 선택하게 되면,
극중 대본을 쓴 사드의 의도대로 마라의 죽음과 함께
환자들의 난동, 경호원들의 폭력적인 진압, 사드의 승리의 미소로 막이 내려진다고 한다.
"사드의 미소"
내가 보지 못한 그 결말,
사드의 미소 속에 담긴 언어가 궁금하다.




난 당신이 배반한 혁명을 믿을 뿐이요. 혁명은 계속돼야 해. 우리 위에 군림하던 돼지 같은 놈들을 제거하고 몰아냈지만, 그놈들의 자리를 차지한 혁명 동지들은 과거의 부귀영화에 대한 유혹을 느끼고 있어. 이제 모든 건 명백해졌어. 혁명에서 득을 본 사람은 부르주아들뿐이고 민중들은 여전히 고통만 당할 뿐이야 
                                         - 마라의 변

저렇게 떼를 지어 소란을 피우는 민중을 난 경멸한다. 난 모든 선한 의도를 경멸한다. 그런 건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사라질 뿐이다. 난 모든 희생을 경멸한다. 난 나 자신을 믿을 뿐이다. 
                                         - 사드의 변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09. 10. 20. 06:14
이제야 읽었다.
연극의 명성으로만 들었던 책.
어떤 내용일지 궁금했지만 선듯 손에 잡지 못했던 책.
연극도, 책도 명성으로만 알고 있던 책.
너무 진지할까봐 혹은 너무 민망할까봐 사뭇 걱정스러웠었는데
전혀 그런 느낌은 들지 않는다.



모든 여성은 대개 성기에 대한 엄청난 부담과 부끄러움을 안고 성장한다.
성기에 대한 부끄럽지 않아도 되는 때를 희망하며
이 책은 비밀시되고 은밀하게 취급했던
여성 성기게 입을 달고 말을 시작한다.
가령, 여성 성기에 옷을 입힌다면 적당한 옷은 어떤 것일까?
대표되는 냄새는 어떤 것일까?
그리고 말을 건다면 그 처음을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이런 질문에 당신도 한 번 답해보라 은근히 부추킨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다.
이 책을 처음 출판하기로 했던 출판사는
작가에게 계약금가지 지불했지만
결국 출판을 포기했하고 원고를 반환했다고 한다.
그 내용이 파격적이거나 과격하지도 않았는데
단지 여성 성기 운운하는 것에 지례 겁을 먹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강간이나 할례!
여성 성기에 행해지는 저급하고 치명적인 불행.
이 불행을 멈추는 시작은 은어나 속어로 불려지고 있는 여성 성기에
제대로 된 이름을 당당하게 부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단다.
불행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만 종식될 수 있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길은 여성 스스로 처벌이나 응징에 대한 두려움 없이
여성 성기에 대해 말하게 하는 것이라는 게 이 책의 요지이기도 하다. 



초경의 기억, 여성의 오르가즘, 신음소리
그리고 버자이너의 질감과 클리토리스에 대한 독백들.
이 책을 통해 만나게 되는 이야기다.
그러나 별 기대는 마시라.
어쩌면 당신들이 생각하는 그런 내용은 절대 아닐 수 있으니...
읽을 수록 왠지 서글퍼지는 책이다.
왠지 여성이, 여성을 여성이게 만드는 생물학적 성적 차이가
성적 차별보다 더 접근하기 힘든 철옹성처럼 느껴진다.



1996년 오프 브로드웨이 극장에서 초연됐다는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
우리나라도 지금 대학로 소극장에서 오랫동안 공연되고 있다.
위노라 라이더, 우피 골드버그, 케이트 윈슬렛, 브룩쉴즈, 기네스 펠트로 등
전 세계 유명 여배우들이 노개런티로 출연하게 만든 연극
그 출연료는 보스니아 등 소외된 세계 여성들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 마디로 무지 착하고 기특한 연극!
기회가 된다면 한 번 찾아서 보고 싶다.
혼자 조용히 버자이너의 독백들.
대꾸하게 될까? 나는?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09. 7. 9. 00:21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 앤 줄리엣> 한국어 공연

When  : 2009.07.04. ~ 2009.08.02.
Where :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Cast   : 로미오 (임태경, 신성록) / 줄리엣 (김소현, 박소연)
           벤볼리오 (이건명) / 머큐시오 (정재헌, 에녹) / 티발트 (김승대, 김보강)
           몬테규 부인 (강효성) / 케플렛경 (김진태) / 케플렛 부인 (신영숙)
           유모 (김현숙) / 신부 (류창우) /  영주 (임현수, 심재현) / 죽음 (김윤경, 최승희)




7월 7일 예술의 전당을 찾다
예전에 프랑스 오리지널 팀이 왔을 때 세종문화회관에서
다미앙 사그리의 로미오를 봤던 기억이 새롭다.
궁금증 반, 그리고 우려와 걱정 반
정확히 그런 심정으로 찾은 오페라 극장

최고의 목소리로 연주하는 사람
나의 nella fantasia!
크로스 오버 테너 "임태경"
73년생인 그가 이번에 살아내야 할 인물은
17살 로미오! 
(왠지 막막하다.... ^^;;) 
그가 무대 위에서 조심성을 더 빨리 던져버릴 수 있다면 좋겠다.
1막과 2막의 그는,
마치 다른 사람이 무대에 서 있는 것 같다.
연주와 연기가 조화되는 그 순간을,
지금보다 더 일찍 무대에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줄리엣과 더블로 부르는 노래들은 역시나 "임태경"스러웠다.
함께 노래하는 사람을 거의 완벽하게 서포트해주는 그래서 더욱 돋보이는 그, 임태경!

신예 박소연의 줄리엣은 괜한 걱정을 했다 싶게 좋았다.
목소리도 예뻤고 그리고 딕션도 훌륭해서 앞으로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이...
아마도 기라성 같은 대선배 박소현이 부담스럽진 않았을까?
그래도 임태경의 로미오만큼이나 김소현의 16살 줄리엣도 좀 민망한 상황이긴 하다. ^^ ;;

언제나 자기 역할을 100% 이상 해주는 이건명의 벤볼리오~~!
<렌트>, <유린타운>, <맘마미아>, <갬블러>, <틱틱붐>의 이건명.
<나생문> 연극으로의 외출이 그에겐 분명 좋은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이를 먹어도 당신 목소리의 청춘(?)은  여전했답니다. ^^

브로드웨이에 우리 공연 <마리아 마리아>를 올리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슈퍼 히어로 강효성!
분장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그 카리스마는 여전하시네요.
그런데 이상하게 난  강효성씨의 딕션이 만족스럽지 않다.
감정이나 표현력, 연기도 너무 좋은데 잘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게 너무 속상하다.
내 귀가 이상한건가????

티발트에 의해 죽음을 맞는 머큐시오역의 정재헌이란 배우는 처음 공연을 본 건데 괜찮았다.
죽는 장면이 약간 부자연스럽고 과장된 듯한 느낌이 있긴 했지만...
그리고 미안하지만,
티발트 김보강은 좀 많이 보강(?)을 해야 할 것 같다.
1막과 2막의 솔로곡 듣는데 내가 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

<캣츠>의 신영숙씨는 뭐 여전히 시원시원한 목소리로 레이디 케플렛을 보여줬고,...
신부역의 류창우씨는 몸이 아팠던 걸까?
목소리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노래 1막 후반부 <사랑으로>의 도입부가 순간 무너져버렸다.
속상했다. 많이....

죽음....
존재감에 혼란이 왔다.
어떤 장면에서는 푸닥거리를 보는 것 같기도 했고....
이 역할은,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순간순간 강한 임펙트를 남겨야 하는데
집중과  풀어짐이 너무 모호했다.
특히나 1막에서 로미오와의 장면은
그를 부축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로미오의 운명을 손아귀에 쥐고 흔드는 섬뜩하고 서늘한 죽음은 어디로 간거지?



라이센스 공연을 보면,
가사에 대한 안타까움과 실망이 늘 따라온다.
혹시 모두 똑 같은 사람에 의해 번역된 건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마저 들 정도로.
애써 운율을 맞춘 것도 아니고, 음절에 딱딱 맞게 단어를 넣은 것도 아니고....
때로는 이런 것들을 교정해주고싶다는 생각이 너무나 간절하다.
이런 오류에 대한 피드백조차도 안 된다는 게 심지어 너무 화가 난다.
그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하는건가?
진심으로???


 

우리 공연과 오리지널 공연의 같은 장면이다.
왠지 우리 공연이 많이 어수선하다는 느낌.
<증오>를 부르는 두 가문!
그 노래에 맞춰 댄서들은 오랜 가문의 증오와 미움, 분란을 표현해야 하는데...
어쩐지 한 사람씩 무대에 나와서 학예회 발표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치열했으면... 더 치열했으면....

 

아직 공연이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겠지만
음향의 균형이 좀 안 맞는 것 같다.
배우들의 소리를 때때로 잡아먹고 있다는 느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 라이센스 공연이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을지.
공연을 보는 내내
민영기, 조정은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생각났다.
이쁜 가사들, 대사들, 그리고 노래들...
그들을 다시 보고 싶다....

 


지금보다
미치도록 치열하고, 눈부시게 아름답기를....
그래서 미스테리한 상태로 남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미스테리를 풀어내는 건
정말 너무 힘들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09. 6. 21. 22:02
비오는 토요일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을 찾다.



오랫동안 너무나 기다리고 보고 싶었던
뮤지컬 <바람의 나라>



매번 보고싶어하는 마음과는 다르게
항상 인연이 없었던 공연



내가 선택한 캐스팅
<바람의 나라> 초연부터 계속 "무휼"을 살아낸 고영빈
그의 댄디한 작품만 봤던 나로써는 그의 무휼이 미스터리다.
<오페라의 유령>의 히어로,
양준모의 "해명"!
아비의 뜻에 의해 스스로 목숨을 버리고 동생 무휼의 머리 위에 얹힌 비운의 태자
연극 <아일랜드>로 정극을 경험한 그의 변화도 궁금하다.
그리고 <쓰릴미>의 그, 김산호
역시 댄디한 이미지가 강한 김산호라는 배우가 강인한 천상의 무사 "괴유"를 어떻게 만들어 낼지...



결론은,
숨쉬는 게 아까울 만큼
그리고 인터미션이 너무 지루하게 느껴질 만큼
소름끼치게 아름답고 황홀했다.



무대 뒤
빔 프로젝터를 이용한 에니메이션 배경들.
절대로 한순간도 유치하지 않았고
극의 내용에 맞게 너무나 충실하게 변화를 줬다.
조명, 음향, 음악, 의상 모든 것이
내 눈과 귀, 그리고 심지어 생각과 숨,
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잡아 먹었다.



서울예술단의 작품들은
역시 실망을 시키지 않는다는 믿음감!
혜암역의 고미경, 이지역의 도정주, 연비역의 박석용
그들이 받쳐주는 무대는 그야말로 든든했으며 환상 그 자체였다



예전엔 "무휼"이라는 배역이 그닥 매력적이지 않다고,
그래서 배우로써는 별로 탐나지 않는 역일거라고 생각했는데
단지 대사와 노래가 없더라도
몸짓만으로도 충분한 역할이 만들어 질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이제는 다른 생각을 품는다.
"무휼"이라는 역할!
남자 배우라면 정말 탐나는 역할이겠구나 하고....



"괴유"
후반부 20여분 동안 펼쳐지는 전쟁씬은 한마디로
괴유의 난장이었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그야말로 임펙트 강한 역할.
그의 거친 숨소리마저도 끔찍하게 아름다웠다.
군주를 위한 충성심
그리고 소름끼치는 맹렬함까지!



김진의 만화 <바람의 나라>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창작 뮤지컬!
우리 작품에 대한 무조건적인 애정의 의무보다 
작품 그 자체에 대한 애정이 담기게 된다.
어쩌면 그렇게 소홀하게 다룬 부분들이 한 군데도 없을까?
원작 만화를 이용한 배경과
클래식, 락, 힙합, 테크노, 클래식,
그리고 국악을 넘나드는...
음악적인 성찬만으로도 배가 부르고도 남는 작품!
(특히 이 작품의 메인 테마는 드라마 <하얀거탑>에서도  배경음악으로 쓰였단다)
웅장하고 아름답다.



게다가 자극적이지도 화려하지도 않았던 조명,
그러면서 극 내내 끊임없이 말을 전달하던 조명,
모든 게 꿈을 꾸는 느낌이다.
결코 깨고 싶지 않은 꿈.
현실로 돌아오지 못한다 할지라도
진심으로 그곳에 나도 있고 싶었다.
하늘 나무 위 혹은 하늘 나무 아래
그들이 꿈꾸는 "부도"에....



막으려해도 피할 수 없는 일
독을 품은 꽃이 씨를 뿌리네
그 꽃이 결국 활을 쏘네
운명은 눈감지 않으리.

피지 말았어야 할 꽃이여!
독을 품어야만 할 꽃이여!
칼날 위를 걸아가는 자여!
활을 뽑아야만 하는 자여!


내겐 너무 치명적이고 매혹적인 작품
<바람의 나라>
그 꽃이 결국 나에게 활을 쏜다.
가슴 한 복판을 향해
그대로 꽃.힌.다....
정..확..하..게..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09. 6. 14. 23:11

 

오랫만에 대학로에 나가 연극 한편 봤다.
내가 좋아하는 연출가 이해제의 작품 <설공찬전>
고전소설 <설공찬전>을 각색한 연극,
고소설은 귀신이 강림해서 저승에 머물면서 들은 이야기로 현실을 비판한다는 내용이란다.
지금 연극에선,
사촌 아우의 몸을 빌려 이승으로 돌아온 설공찬이
아비에게 못다한 효를 행하기 위해 권력을 얻으려 하는 내용이다.
재미있다. 충격적이고 실랄하다.
지금 정치하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꼭 보게 만들고 싶은 연극,
솔직히 정치하는 사람들이 모두 진짜 빙의된 자들은 아닐까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그런데 그건 확실히 아닌 것 같다.
그려려면 최소한 해학이나 풍자가 있어야 하는데 이건 순전 막가파들의 투전판 같으니....



아비보다 먼저 저승으로 떠난 아들 설공찬은
효를 행하기 위해 20일의 기한을 받아 사촌동생의 몸을 빌어 이승으로 돌아온다.
관직에 오르기 위한 숙부와의 거래.
그러나 현실의 부정함과 아비의 간절함을 깨닫고 부패한 사람들의 몸 속을 넘나들며
거침없는 비판과 독설로 투전판같은 세상을 휘젖는다.
오늘날의 위정자들께서도 아셨으면 좋겠다.
그렇게 더 가지려고 아둥바둥하지 마시라고.....
그런 빙의된 모습으로 살다가는
언젠가 영매에게 쫒겨 쥐고 있던 모든 건 훌훌 놓고 돌아가게 될지도 모른다고...
손 안의 것 전부 가지고 가지 못한다면,
당신네들은 그 손을 여기 두고 가실텐가????
아무리 가지려고 쥐고 또 쥐어도
당신 손이 거머쥔 것이라고는 "귀신놀음",
그 뿐이라는 걸 저기 저 사람들이 모두 알았으면 좋겠네.

"가진 손보다 빈 손이 더 무겁구나..."
무섭고 두려운 말이 아닌가 !
투전판 위의 당신들에겐 !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