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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21 연극 <마라, 사드> - 2009.10.17. PM 7:00
  2. 2009.06.14 설공찬전
보고 끄적 끄적...2009. 10. 21. 06:20
오랫만에 대학로에서 연극을 한 편 보다.
여성 연출가 박정희 연출, 극단 풍경의 <마라, 사드>
(원제 "사드씨의 지도하에 샤랑통 병원의 연극반이 공연한 장 폴 박해와 암살")
아르코 소극장의 그 따뜻함...
무대를 중심으로 좌,우로 나누어져 있는 객석
작은 소극장의 비지정석 좌석도 
가끔은 솔솔한 재미로 다가온다.
이미 무대 위에는 배우들이 자리잡고 있다.
좌석이 전부 채워지는 내내 배우들은
마치 그곳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시켜주듯 움직임조차 고요하다.
왠지 내가 보여지고 있다는 느낌.
괜히 몸이 움츠려든다.



개인적으로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신뢰의 깊이만큼 정당하게 인정하고 믿는 연극배우 남명렬!
그가 서는 무대라면 적어도 어떤 형태로든 배신감은 없다.
<마라, 사드>
20세기에 발표된 가장 주목할 만한 희곡 중 한 편으로 꼽히는 작품.
극작가 "페터 바이스"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작품이기도 하단다.
팽팽한 대각선의 구도 속에 느껴지는 긴장감.



무대의 배경은 샤랑통 정신 병원.
마르키 드 사드 후작은 실제로 이 샤랑통 정신 병원에 수감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사드(남명렬)가 직접 쓴 대본을 가지고
병원 환자들은 배우가 되어 연극을 시작한다.
정확히 말하면 마라와 사드. 두 사람의 사상에 대한 논쟁!
프랑스 대혁명의 이론가 장 폴 마라(홍원기)와의 
뒤집히고 뒤집히는 지적이고 황홀한 언어의 전쟁터.
그리고 결국의 행동의 결전장.
행동하지 않는 사상가는 과연 대중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까?
혹은 인간의 육체로 해방을 꿈꾸는 자는 진정한 해방을 소유할 수 있을까?
논쟁의 결말은
오로지 극을 보고 있는 관객의 선택에 달려있다.



입장시 관객들에게 나눠준 카드 한장!
한쪽은 사드의 색 검정,
반대쪽은 마라의 색 빨강.
오늘의 관객은 마라의 결말을 선택했다.
스크린에 나타나는 영상.
6.8 혁명과 베트남전쟁, 광주항쟁, 촛불집회... 
우리나라의 근, 현대사와의 절묘한 오버랩.
의외의 마무리. 그러나 신선함이 느껴질만큼 강렬하다.
문득, 사드의 결말은 어땠을까 궁금해진다.



연극은 무척 참신하고 새롭다.
정통 연극에 뮤지컬적인 요소, 스크린을 이용한 영화적 요소.
그리고 실제 밴드들이 연주하는 음악적 요소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결코 산만하거나 엉성하다는 느낌은 없다.
깊이와 선택에 대한 통찰 또한 잊지 않게 한다.
순간순간 관객을 몰입하게 만드는 신비감.
썰물과 밀물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느낌.
(분명 어떤 흐름과 호흡이 있디. 주술적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같은 공간에서 느끼는 타인과의 일체감.
신비로운 접신(接神)의 황홀감.



배우 남명렬...
관객에게 정확한 감정을 전달하는 그,
보고 있는 사람을 마지막 하나까지도 완벽에 가깝게 집중시킨다.
그가 말을 하면 듣고 싶지 않아도 전부 들을 수 밖에 없다.
정확한 딕션과 호흡 그리고 여백.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선한 웃음을 웃는 그의 모습을 기억하는 나는
도무지 무대 위의 그의 모습이 신비롭기만 하다.
그와는 전혀 다른 인물인데 그는 그 인물을 너무나 그답게 보여준다.
좀 걱정스러웠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사드"라는 성도착자의 모습을 보게 되는 건 아닌지...
그런데 역시 기우에 불과했다.
상당히 지적이고 논리적이인 사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렬하고 파괴적이기까지 한 모습.
인간에 대한 "충동질"
코르테를 안고 마라를 성토하는 번뜩이던 사드의 눈빛,
그 속엔 누구라도 거역못할 "광기"가 버티고 서 있었다.



"마라" 역의 홍원기.
배우로서의 이 분의 무대는 처음이라 낯설다.
신춘문예 당선, 연극배우이자 연출가이며
꽤 좋은 작품을 쓴 극작가이기도 한 홍원기!
음... 뭐랄까...
아마도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사드 남명렬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
상당히 비현실적으로 보여지게 연기한다는 생각을 그것도 너무 자주 했다.
의도적이었던 건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조잡한 내 이해력의 한계 때문인지도...



관객이 "마라"가 아닌
"사드"를 선택하게 되면,
극중 대본을 쓴 사드의 의도대로 마라의 죽음과 함께
환자들의 난동, 경호원들의 폭력적인 진압, 사드의 승리의 미소로 막이 내려진다고 한다.
"사드의 미소"
내가 보지 못한 그 결말,
사드의 미소 속에 담긴 언어가 궁금하다.




난 당신이 배반한 혁명을 믿을 뿐이요. 혁명은 계속돼야 해. 우리 위에 군림하던 돼지 같은 놈들을 제거하고 몰아냈지만, 그놈들의 자리를 차지한 혁명 동지들은 과거의 부귀영화에 대한 유혹을 느끼고 있어. 이제 모든 건 명백해졌어. 혁명에서 득을 본 사람은 부르주아들뿐이고 민중들은 여전히 고통만 당할 뿐이야 
                                         - 마라의 변

저렇게 떼를 지어 소란을 피우는 민중을 난 경멸한다. 난 모든 선한 의도를 경멸한다. 그런 건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사라질 뿐이다. 난 모든 희생을 경멸한다. 난 나 자신을 믿을 뿐이다. 
                                         - 사드의 변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09. 6. 14. 23:11

 

오랫만에 대학로에 나가 연극 한편 봤다.
내가 좋아하는 연출가 이해제의 작품 <설공찬전>
고전소설 <설공찬전>을 각색한 연극,
고소설은 귀신이 강림해서 저승에 머물면서 들은 이야기로 현실을 비판한다는 내용이란다.
지금 연극에선,
사촌 아우의 몸을 빌려 이승으로 돌아온 설공찬이
아비에게 못다한 효를 행하기 위해 권력을 얻으려 하는 내용이다.
재미있다. 충격적이고 실랄하다.
지금 정치하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꼭 보게 만들고 싶은 연극,
솔직히 정치하는 사람들이 모두 진짜 빙의된 자들은 아닐까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그런데 그건 확실히 아닌 것 같다.
그려려면 최소한 해학이나 풍자가 있어야 하는데 이건 순전 막가파들의 투전판 같으니....



아비보다 먼저 저승으로 떠난 아들 설공찬은
효를 행하기 위해 20일의 기한을 받아 사촌동생의 몸을 빌어 이승으로 돌아온다.
관직에 오르기 위한 숙부와의 거래.
그러나 현실의 부정함과 아비의 간절함을 깨닫고 부패한 사람들의 몸 속을 넘나들며
거침없는 비판과 독설로 투전판같은 세상을 휘젖는다.
오늘날의 위정자들께서도 아셨으면 좋겠다.
그렇게 더 가지려고 아둥바둥하지 마시라고.....
그런 빙의된 모습으로 살다가는
언젠가 영매에게 쫒겨 쥐고 있던 모든 건 훌훌 놓고 돌아가게 될지도 모른다고...
손 안의 것 전부 가지고 가지 못한다면,
당신네들은 그 손을 여기 두고 가실텐가????
아무리 가지려고 쥐고 또 쥐어도
당신 손이 거머쥔 것이라고는 "귀신놀음",
그 뿐이라는 걸 저기 저 사람들이 모두 알았으면 좋겠네.

"가진 손보다 빈 손이 더 무겁구나..."
무섭고 두려운 말이 아닌가 !
투전판 위의 당신들에겐 !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