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07.10.23. ~ 2012.03.31.
장소 : 대학로 예술마당 1관
출연 : 정동화, 윤현민, 임강희, 소유진, 임기홍, 최연동
작품자체도 좋기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정동화 배우 때문에 다시 본 뮤지컬이다.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에서 너무 인상 깊어서...
정동화, 임강희 임기홍.
캐스팅도 나무랄데가 없다.
정동화는 이 작품이 처음이지만 임강희는 과거에 여자 주인공을 했었고, 임기홍이야 멀티맨의 정석으로 이 작품의 공헌도가 이미 엄청나다.
그러니까 새로 김종욱이 된 정동화만 잘해주면(?) 된다는 뜻이다.
(본인 입장에서는 이게 조금이라도 부담감이 됐을까?)
뮤지컬 <김종욱 찾기>는 구성과 음악이 참 탄탄한 착장 작품이다.
2007년부터 시작됐으니까 이제 나이도 제법 먹었다.
지금까지 김종욱 19명, 사랑이 두려운 여자 17명, 멀티맨 17명이 출연했다.
오만석, 엄기준을 시작으로 신성록, 정상윤을 거쳐 정동화, 윤현민까지
왠만한 남자 배우들이 이 작품을 통과의례처럼 지나왔다.
조금은 소심하고 찌질한 캐릭터와 댄디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를 동시에 연기하는 재미.
<지킬 앤 하이드>처럼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개의 역은 아니지만
유별나게 차이나지 않으면서도 확실히 다르게 두 인물을 표현해야 한다는 거.
배우로써는 한 번 쯤 해봄직한 배역인 것 같다.
이 작품도 10년쯤 되면
학전의 <지하철 1호선>처럼 역대 울연 배우들이 다 모여 이벤트 공연을 해도 괜찮을 것 같다.
이번 시즌 6 공연에서는 라이브 밴드가 직접 무대 뒤에서 연주를 하는데 그것도 너무 좋았다.
소극장 공연이 라이브 반주가 변해간다는 건 정말 좋은 방향인 것 같다.
계속 라이브 연주를 해주면 좋겠는데 시즌 6에서만 한정적으로 한다니까 좀 서운하다.
늘 느끼는거지만 임기홍의 멀티맨은 참 대단하다.
신혼이라서 그런가?
안 그래도 넘치는 에너지와 끼가 예전보다 훨씬 넘친다.
뭐랄까 안정된 자의 여유가 느껴진다고 할까?
<못말리는 영애씨>도 병행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체력적으로 그저 놀라울 뿐이다.
(저질체력을 가진 사람이 늘 꿈꾸는 로망이 아닐 수 없다.)
에너지와 열정, 그리고 자기만의 멀티맨 캐릭터 구축에 관해서는
대한민국 뮤지컬 배우 중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참 똑똑하고 현명한 배우라고 생각한다.
주연은 아니지만 극에 없어서는 안되는 감초로써 독보적인 존재감을 주는 배우다.
그래서 나는 <김종욱 찾기>의 진정한 주인공은 임기홍이라고 감히 생각한다.
엄청난 순발력과 재치,
노래도 그 정도면 참 맛깔나게 잘 한다.
게다가 짧은 기럭지에 믿기지 않는 유연성까지...
어쩌다보니 임기홍 찬양 일색이 되버렸지만 암튼 좋은 배우라는 뜻 ^^
(내가 임기홍을 처음 본 게 2005년 한전아트홀에서 류정한이 지저스로 나왔던 <갓스펠>이라는 뮤지컬이었는데...)
정동화의 김종욱은 나쁘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론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의 앨빈만큼 적역은 아니었던 것 같다.
<SOML>를 먼저 보지 않았다면 잘한다고 생각됐을 것 같긴 하다.
이 작품에서도 역시 표정과 딕션이 선명하고 명확하다.
<SOML>의 뽀그리 머리를 어떻게 하고 나오나 걱정했는데 그것도 손을 잘 본 것 같다.
아쉬움이 있다면 김종욱이 아닐 때 조금만 더 찌질했으면 하는 바람 정도!
두 캐릭터가 너무 차이가 없는 것 같아서...
그래도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배우 중 한 명임에는 분명없다.
다음 작품이 세종M 씨어터에서 4월부터 공연될 연극열전 4 <M버터플라이>란다.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을 재해석 작품인데
르네 역엔 김영민, 전노민이 더블 캐스팅
송 릴링 역에 김다현과 더블 캐스팅이 됐다.
개인적으로 김영민, 정동화 페어를 기대 중이다.
잘 하겠지! ^^
"믿어! 믿으면 다 되게 되있어!"
* 이 날 여간해서는 안 하기로 다짐한 '하루에 공연 2개 보기'를 했다.
<백야>와 <김종욱 찾기>
피곤을 예상했는데 의외로 활력을 받고 돌아왔다.
다행이다!
2011년 일순위를 장식한 나의 공연 레퍼토리는 바로 뮤지컬 <김종욱 찾기>
한때 뮤비컬이 유행처럼 번졌는데 (금발이 너무해, 빌리 엘리어트. 라디오 스타...)
이 작품은 정확히 그 순서를 역행한다.
오만석, 엄기준, 오나라, 전병욱이 초연멤버였던 <김종욱 찾기>는
창작뮤지컬로 대학로 소극장에서 꾸준히 자리를 잡아가더니
급기야는 영화로 만들어지는 나름의 성과를 이뤄냈다.
제대한 공유의 첫 복귀작으로 화재가 되기도 한 영화 <김종욱 찾기>
반듯한 차도남(그야말로 김종욱스러운) 이미지를 가진 공유의 찌질한 연기와
가녀리고 청순한 이미지가 강한 임수정의 털털한 연기가 그런대로 볼만한 영화였다.
영화 덕분에 뮤지컬까지 찾아볼 생각도 다하고...
이창용, 정운선, 임기홍.
작년 여름 <The story of my life> 이후에 오랫만에 이창용의 무대를 보는 것도 기대됐지만
무엇보다 대한민국 뮤지컬계 최고의 멀티맨(절대 과장 아니다) 임기홍을 본다는 게
이 뮤지컬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실제로 날짜를 정할 때 고려한 게 이 두 사람이 만나는 날이었다.
남녀노소를 넘나드는 1인 23역의 임기홍!
바로 옆집에서 <금발은 괴로워> 멀티맨까지 병행하고 있을 정도로
멀티맨에 관한한 독보적인 존재다.
이런 존개감를 갖는다는 거,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비록 주연이 될 기회는 줄어들겠지만
나름대로 치열한 뮤지컬계에 이렇게 확고한 자기 위치를 만들었다는 게 참 대단하다 싶다.
무대 뒤에서 바쁘기는 또 얼마나 바쁠지...
수시로 옷을 갈아입고 등장하느라 멀미가 나지 않을까?
아마도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도 많을 것 같다.
"첫사랑 찾기 주식회사"
운명은 멀리 있지 않단다.
바로 곁에 있는 사람이 운명일 수 있다는 조금은 낮부끄러운 명제가 이 뮤지컬의 골자다.
줄거리보다는 상황 전개가 독특하고 재미있다.
특히나 남자 주인공이 완전히 구별된 1인 2역을 연기해야 하기에
연기력없이 섣불리 도전하기에는 좀 힘든 캐릭터다.
찌질남과 차도남!
이제 뮤지컬 3년차인 이창용은 캐릭터를 잘 만들어서 참 잘 하더라.
솔직히 김종욱일 때 그의 톤에 살짝 가슴이 설래기까지 했다.
부지런히 그리고 성실히 자신의 캐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이창용은
확실이 앞으로의 발전이 기대되는 신예이긴 하다.
<이블데드>의 좀비루돌프의 비약의 발전이라니...
임수정이 영화에서 여주인공을 하는 바람에 정운선의 건강미 넘치는 모습은
좀 안스럽긴 했지만 노래와 발음, 표정 연기가 참 좋았다.
뮤지컬이 소위 말하는 원조인데 임수정 덕분에 여주인공 이미지에 선입견이 생기는 건 아닌지
솔직히 조금은 걱정스럽다.
유쾌하고 즐거운 뮤지컬이다.
조금만 (사실은 많이) 어렸다면 아마 더 재미있었을텐데
혼자 격세지감을 느끼면서 웃으면서 봤다.
운명이니 첫사랑이니...
이제는 참 가물가물하다.
그런게 있나 싶기도 하고...
어디 "첫사랑 찾기 주식회사"가 있으면 의뢰라도 해볼까?
나조차도 진즉에 잊어버린 내 첫사랑을 찾아달라고..
어쨌든 그 첫사랑이 내 운명은
결코 아니었던 모양이다.
^^
□ 공연명 : 연극 '트루웨스트'
□ 극 본 : 샘 셰퍼드 □ 연 출 : 유연수
□ 기 간 : 2010년 11월26일~2011년 2월26일
□ 장 소 : 서울 종로구 컬처스페이스 nu
□ 출 연 : 리 (오만석, 배성우, 김태향)
오스카 (조정석, 홍경인, 이율, 김동호)
제작자 사장 & 엄마 : 임진순
"무대가 좋다" 시리즈 그 네 번째 작품 <트루 웨스트>
어쩌다 보니 무대가 좋다 시리즈를 다 봤고
그리고 앞으로 2 작품(아트, 대머리 여가수)도 볼 예정이지만
지금까지 본 무대가 좋다 시리즈 중에서 가장 맘에 들었다.
개인적으론 오랫만에 조정석과 오만석의 연극 무대를 보는 거라서 기대가 컸다.
이상하게도 조정석은 연극, 뮤지컬 다 괜찮은데
오만석은 뮤지컬보다 연극 무대에서 보는 게 훨씬 더 잘 어울린다.
너무 진지하게 몰입해서 그런가???
반듯한 성격의 모범생 동생 오스틴과 껄렁한 양아치 형 리.
그 둘의 역지사지(?)스런 모습은 재미있고 그리고 은근히 사실적이다.
(나만 그렇게 느꼈을까?)
90분 남짓의 시간이었는데 이상하게 2시간 처럼 느껴지는 연극이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건 그 시간이 전혀 지루하거나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사실.
두 형제의 사생결단을 보고 있노라니 시간도 약간 다르게 흐른 모양이다.
처음엔 오스틴 조정석의 연기에 반했고
그리고 조정석을 점점 끓어오르도록 열심히 빈정대며 부추키는 리 오만석의 연기에도 반했다.
(정말 한 대 확 때려주고 싶더라...)
난장판이 되는 형제의 모습과
똑같이 난장판이 되는 집 안의 모습을 보는 건
대리만족이자 거한 살풀이 굿 같기도 하다.
일렬로 쭉 나열되어 있던 온 동네 토스트기와
(어느 놈이 가장 바삭하게 구워지나 지켜보는 조정석의 모습이 얼마나 귀엽던지...)
자신이 밟은 토스트를 우걱우걱 씹어대던 적나라한 리의 모습.
그리고 형의 목에 전화선을 감고 죽일 듯이 조르는 오스카의 절묘한 간절함까지...
이 모든 모습을 지켜보는 건 일종의 관음적 즐거움이기도 했다.
어딘가 한 군데쯤 정상적이지 못한 가족의 모습.
오스카도, 리도
그리고 죽은 화가 피카소가 동네에 왔다며 보러 가자고 말하는 엄마까지도
일종의 정신착란의 상태에 놓여있다.
그리고 그건 모든 사람들의 일상이기도 하다.
착각을 현실로, 그리고 가보지 못한 길을 희망하고 꿈꾸는 평범한 모든 이들의 바람.
제목이 주는 느낌과 딱 맞아 떨어지는 작품이다.
2003년 영국에서 공연됐을 때는
안전상의 이유로 앞열 3열을 모두 비워두기까지 했단다.
그만큼 두 형제의 싸움이 리얼하고 치열했다는 의미다.
원래 연극 <트루웨스트>는 전통적으로 리와 오스틴 역의 배우들이
매일 역할을 바꿔가면서 공연을 해 화제가 됐던 연극이다.
우리나라에서 초연된다고 했을 때도
이런 방식으로 공연되겠거니 기대했는데
마지막까지 나온 스케쥴상엔 크로스되는 캐스팅은 없다.
개인적으로는 좀 아쉬운 부분이다.
하긴 조정석이 형 역할을 하기엔 초동안이긴 하다.
(당췌 누가 이 인간을 32살이라고 생각하겠는가??? 넌 도대체 어느 별에서 왔니???)
그래도 서로 바꿔서 연기했다면 그 재미도 만만치 않았을까?
네 작품만에 처음으로
"무대가 좋다"에서 괜찮은 작품을 봤다.
그래서 또 다시 기대하기 시작했다.
<아트>와 <대머리 여가수>를...
(7,8년전에 봤던 권해효의 "아트"는 정말 아트였는데...)
그리고 이 두 작품에는 대중적인 스타 마케팅이 현지까지는 없다.
아무래도 나무 액터스 배우들이 요즘 바쁜가 보다.
미안한 말이지만 참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덕분에 좀 진중하고 충실한 작품을 보게 되지 않을까 혼자 기대하는 중이다.
그래 이제 네 작품까지 왔으면
진심으로(그리고 양심적으로다) 무대가 좋아 질 때도 되긴 했다.
늘 궁금하긴 했었다.
누구한데 좋은 무대인지가... ^^
오만석, 조승우, 김다현, 송용진
초연때 4명의 헤드윅을 다 봤었다.
여장이 가장 예뻤던 건 역시 김다현 (여자보다 더 예쁘다. 꽃다현... 이기적이더라...)
제일 기억에 남았던 건 송용진 헤드윅이었노라 나름데로 결론을 맺었다.
조승우 헤드윅은 숱한 여성들의 비명소리에 묻혀 입만 댓발 나왔던 기억...
(대부분 제 뭐래니? 하고 옆엔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
관객들이여! 제발 타이밍에 맞춰 소리를 지르든 떡실신을 하시든 하라!)
오만석 헤드윅은 심야 공연이라 심신이 피로한 중에
오만석 손 잡겠다고 내민 누군가의 손에 뒷통수 얼얼했던 기억이 새롭다.
(아프긴 했지만 덕분에 정신 하나는 바짝 들더라...)
그래도 오만석의 "The origin of love"는 정말 눈물나게 아름답고 서글프더라.
역대 헤드윅의 모습들로 꾸며진 포토존은 어딘지 모르게 신선하게 느껴진다.
사진을 보니 개인적으로
송창의, 엄기준, 조정석의 헤드윅이 어땠을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뮤지컬 <헤드윅>
OST는 정말 너무나도 환장하게 좋은데 초연 이후 왠지 안 보게 된 뮤지컬.
(아무래도 악을 쓰며 방방 뛰기에는 기력이 너무 처절했던게지...)
윤도현의 가세로 새롭게(?) 불이 붙은 헤드윅을 다시 보게 된 건
순전히 최재웅이 선택했기 때문이다.
(나는 왜 항상 최재웅, 박정환에 여지없이 끌려다닐까???)
최재웅에게 헤드윅 가발이?
어쩐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무거운 가발 때문에 살짝 처진 눈꼬리가 더 내려가는 건 아닌지 솔직히 걱정스러웠다.
군대에서 열심히 대본 읽고 있을 조승우가
절친 최재웅에게 권한 뮤지컬이란다.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에 이어 이 남자, 참 친구 말 잘 듣는다 싶다.
(뭐 결론적으로 따지자면 나쁜 선택은 아니었지만...)
은근히 조승우라는 배우, 캐스팅 디렉터를 해도 되겠다 싶다.
의외의 발견 이츠학 최소영에 놀라다.
노래도 잘하고 무엇보다 사람이 그렇게 긴 다리를 가질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확실히 너무나 이기적이다. ^^
최재웅의 헤드윅은...
생각보다는 헤드윅(?)스럽지 않았다.
목소리 톤의 변화가 별로 없었고 관객들과 소통을 충분히 이끌어내지 못했다.
엥그리 인치 밴드는 오랫동안 헤드윅을 해 왔기 때문에
완벽에 가깝다.
간혹 최재웅 헤드윅이 이질감 느껴지는 존재처럼 다가오기도 했다.
오히려 헤드윅일 때의 최재웅보다
토미 노시스일 때의 최재웅이 훨씬 괜찮다.
그래도 그만의 표정과 감정표현들은 상당히 괜찮은 부분들도 많이 있었다.
모호한 느낌...
헤드윅의 존재가 원래 그렇긴 하지만...
어쩐지 그에겐 헤드윅이 딱 적합한 작품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쨌든 그의 변화는 놀랍다.
나는 그가 헤드윅을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여자도 아니고 남자도 아닌 헤드윅을 무대에서 연기하기 위해
배우들은 엄청난 메이크업에 무거운 가발을 쓰고, 몸의 털을 밀고, 화려한 드레스를 입는다.
그리고 마지막 토마토를 으깨는 장면을 위해서는
피나는 몸만들기가 필수!
군살없는 몸매에 매끄러움까지 갖춰야 하는 난코스가 남자 배우들을 기다린다.
이런 도전만으로도 어쩌면 <헤드윅>은 욕심이 생기는 배역이리라.
여자가 되어야 하는 남자와,
남자가 되어야 하는 여자의 이야기
헤드윅은 확실히 참 괜찮은 작품임은 분명하다.
아름다운 OST의 향연과 그리고 심장을 울리는 엄청난 비트.
내노라 하는 국내 유명 세션으로 구성된 라이브 밴드 엥그리 인치의 연주
공연장 안은 콘서트장이 되어버린다..
거기다 연민과 안스러움, 슬픔과 허무함까지.
충격적인 내용들이 반복되다가도
어느 순간 유머 또한 잃지 않고 톡톡 튀어나온다.
문제는 그러니까 그거다.
헤드윅을 누가 하느냐...
최재웅!
그의 선택은 모호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좀 방황중이다.
스티븐 손드하임의 문제작 <암살자들>
2005년도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초연됐을 때
관람 후 머리가 복잡하고 어지러웠다.
내 손에 한 자루 총이 들려있었다면 어쩌면
가차없이 대통령을 향해서가 아니라 내 머리통을 향해 쏘지 않았을까 생각했었던 기억도... ^^
엄기준, 오만석, 최재웅, 송영규, 박정환, 최민철, 김무열, 오세준, 홍윤희, 한혜숙...
지금은 정말 엄청난 배우들이 되어 버린 사람들이 출연했던 뮤지컬 <어쌔신>
내용이 어쨌든 간에 일단 별들의 전쟁이라고 생각했었다.
당대 뮤지컬 좀 한다는 남자 배우들이 모두 참여했던 작품 <어쌔신>
그리고 나는 <어쌔신>을
명성과 출연진보다도
보고 난 후 곱씹을수록 묘하게 점점 더 좋아졌던 작품으로 기억한다.
손드하임의 매력은 내게는 그렇다.
두고두고 소처럼 오랜 되새김질을 하게 만드는 사람
<스위니토드>를 보면서도 <컴퍼니>를 보면서도 그랬다.
<어쌔신>과 달랐다면 두 작품은 모두 보면서 바로 느낌이 왔었다는 것.
하지만 어쨌든 손드하임의 작품 모두는 내게 곱씹을수록 더 깊은 매력으로 다가온다.
<2005년 공연 포스터> < 2009년 포스터>
--> 개인적으로 2005년도 포스터가 맘에 든다.
2009년도 포스터는 너무 소란스럽고 수다스럽다.
역대 미 대통령을 암살한 9명 모두를 한자리에 불러 모으다...
이 발상 자체만으로도 지극히 매력적이다.
징하게 살 맛 나는(?) 지금의 우리 현실을 향해
유쾌한 한방을 날리는 개운함이라는 말도 꼭 해두자.
"대통령을 겨냥한 총구"라니...
무모할지라도,
상상만으로도 짜릿하지 않은가?
사진은 많이 흔들렸지만 일부러 찾아본 캐스팅이다.
최재웅의 오스왈드!
얼마 전 계원예고때부터 절친이었던 조승우와 함께 촬영한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으로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신인남우상을 수상하기도 한 최재웅.
(그의 "뇌전"은 참 인상적이었다. 그의 다음 영화를 나는 기대한다...)
초연때 그의 목소리는 그 숱한 별들 앞에서도 귀에 속속 들어왔었다.
그때 이 사람이 출연하는 작품은 꼭 챙겨봐야지 혼자 다짐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사실은 그의 작품을 참 많이 안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무대가 좋다.
느긋한 믿음감이라고 하면 이해가 될까?
(더불어 나 또한 너무 느긋해져서 다음에... 다음에... 하면서 놓쳐버린 그의 작품들이 숱하게 많다... ^^;;)
그런 그가 다음 작품으로 선택한 게 뮤지컬 <헤드윅>이다.
당연히 나는 이번에도 그의 <헤드윅> 역시나 무지 궁금하다.
(헤드윅은 초연 때 조승우, 김다현, 송용진, 오만석 4명의 캐스팅를 전부 봤다. 그 이후엔? 안 봤다. 어쩌다보니...)
물론 무지 이쁘겠지... 그럼 다른 것들은?
<오스왈드 & 발라디어 : 최재웅> <존 윌크스 부스 : 강태을>
프레스콜 사진 속에 담긴 그의 얼굴은 좀 불안했다.
그래도 무대 위에서 확인해야 옳은 거라 느긋하게(?) 생각하고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찾게 된 신촌의 The Stage
전체적으로 극은 초연때보다도 너무 많이 가벼워지고 코믹해졌다.
초연때 거부감을 느꼈던 사람들이 많았기에 나름데로 쉽게 다가가기 위한 방법이었을까?
좀 아쉽다.
아니 사실은 너무 많이 아쉽다.
블랙 코미디같은 날선 예리함과 이유있는 비꼼이 사라졌다.
초연의 기억을 미련맞은 소처럼 너무 오래 곱씹었던가?
장난기 넘친 발라디어에 순간 멈칫하다.
그러나 최재웅의 오스왈드는 오히려 더 깊어졌다.
이게 바로 그의 진면목이구나...
하나의 극 속에서 그는 뚜렷하게 구별되는 두 가지의 인물로 등장한다.
<어쌔신>의 대표 주인공을 사람들은 존 윌크스 부스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은 바로 오스왈드가 진짜 주인공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모든 이야기는 오스왈드의 선택에 의해 귀결되기에...
그의 선택이 없다면 결코 8명의 암살자들 모두가
시공을 초월해 한자리에 모일 수 없을테니까... ^^
스티븐 손드하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만든 사람이라고 하면 다들 무릎을 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류(어쌔신, 스위니토드)의 손드하임 작품들이 훨씬 좋다.
뭐 인간 자체가 우중중하고 전체적으로 조증모드라서 그럴 수도 있긴 하겠지만...
초연의 무대와 다르게
무대 양 편으로 피아노 두 대가 놓여있다.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하는 배우들...
<쓰릴 미> 때도 그랬지만 단지 피아노 하나만으로
극을 전개시킬 수 있다는 게 신비스럽다.
그리고 더 신비한 건,
피아노 하나만으로도 그 느낌이 충분히 전달된다는 사실이다.
화려한 음악에 익숙한 사람에겐 어쩌면 너무 단조롭게만 들려 심심했을 수도 있었으리라.
그들에게 살짝 말해주고 싶다.
원래 암살은 단조롭고 은밀한 거라고...
비겁하게 숨어서 조용히 숨을 죽이며 기다리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결정적으로 더 비겁하게 몸을 숨기고 한 지점(가슴팍 또는 머리통)을 향해 총을 쏘는 거라고...
준비동작이 화려할수록
발각의 위험은 오히려 증가한다.
레온 촐고츠의 이석, 찰리 귀토의 김대종, 새무얼 비크의 한지상
세 명이 눈에 띈다.
레온 촐고츠의 촛점 없던 멍한 눈빛과
(이석씨의 성공적인, 그리고 현재진행형인 다이어트에 박수를...)
환상에 빠져 자신만의 "케세라세라" 의 세계에 빠져있던 찰리 귀토.
두 사람은 초연의 느낌보다 개인적으론 더 맘에 든다.
그리고 초연시 오만석의 했던 새무얼 비크 역을 했던 한지상.
군 입대 전 마지막 작품이라고 했던가.
아마도 그는 군생활 중 후회는 없겠구나 싶다.
적당한 광기와 빈정거림, 그리고 번특이며 굴러다니던(?) 눈동자.
상당히 파격적으로 나오는 인물 새무얼 비크(대사의 대부분이 욕설 같은 느낌이라서... ^^';;)
한지상은 대체로 두려움 없이 잘 해낸 것 같다.
한동안 그는 금단현상에 시달리겠구나... 무대 위의 시간들이 그리워서..
아쉬웠다면 하얀 옷의 산타...
어두운 극의 분위기와 선명하게 대비되기에 그리 어색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어쩐지 산타는 빨간색이여야 맞는 것 같다.
(습관이란 이렇게 무섭다. ^^)
존 윌크스 부스 강태을.
개인적으로 엄기준의 존 윌크스 부스도 맘에 들진 않았지만
강태을의 부스는 너무 코믹스럽다.
(이 사람이 요즘 뮤지컬계의 꽃미남이라고 불린다. 나는 딱히...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이 인물을 어떻게 해석했던걸까?
무대 위에서 제일 이해가 안 가는 인물이었다.
코믹해도 "신념"과 "확신"은 있어야 하는데 그의 부스에게선 그런 것들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더 사격장 주인 같았다면 내 답답함이 이해가 될까?
그리고 리넷 스퀴키 프롬의 임문희.
그녀에게 미안하지만 실망했다는 말 또한 남겨두자.
역 자체가 상당히 "똘기" 흐르는 배역이긴 하지만
그렇게 극심한(?) 백치미까지 소유한 보기드문(?) 인물은 절대 아닐거라고 생각한다.
<2005년 빨간 산타 복장의 오만석 새무얼 비크>
놀이동산의 페러이드를 본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소극장 도전은 참 좋았는데
그 의도만큼 작품이 잘 나와주지 않은 것 같다.
오랫만에 다시 무대에 올려진다고 했을 때 개인적으로 많이 기대했었는데
결론은 기대한 것 보다 너무나 많이 아쉽다.
또 다시 미련한 소가 될 작정을 했었는데 돼새김할 게 별로 없다.
텅 빈 위를 들여다보는 미련한 소의 당혹감이라니...
중요한 건,
"정조준"이다.
정확한 목표를 향해 정확한 조준을 해야만 정확히 꿰뚫을 수 있다는 사실.
그런데 그들의 조준은 아무래도 좀 빗나간 것 같다.
목표물을 향해 잘 발사된 총알마저도
옆의 총알에 의해 궤도를 이탈하고 만다.
결국은,
방향을 잃은 총알 세례까지 피해야하는
황당한 슬랩스틱 코믹버전 총격전을 본 기분이다.
공연이 끝나고 지상으로 복귀하는 어깨가
왠지 뻐근하고 묵직하다.
"그래, 결코 총질은 아무나 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선량한(?) 시민이 피해를 볼 수도 있으니까..."
연극 <이(爾)>
작.연출 : 김태웅
2009. 06.09 ~ 07.08.
대학로예술극장대극장 (구 아르코시티극장)
평일 : 8시 토요일 : 3시, 7시 일요일 : 4시
출연 : 김내하/박정환 (연산) , 정원영 (공길), 진경/이화정 (녹수), 이승훈 (장생), 정석용 (홍내관)
<爾> 볼 때면 왜 항상 맘이 아플까?
난폭함을 가장한 갓난쟁이 연산의 슬픔도
연산을 휘두르다 비참한 최후를 맞는 녹수도
끝끝내 자신을 버리지 않는 왕을 둔 공길도
그리고 그런 공길을 품는 장생의 마음도
모두 다 서글픔이고 안타깝다.
2006년 극장 "용"에서 봤던 <이>를
다시 만나다.
영화 <왕의 남자>의 원작!
(영화와 연극이 비슷할 거란 생각은 그러나 하지 않는 게 좋을 듯....
정말 다른 느낌이다. 물론 근복적인 차이는 아니지만)
아르코시티 극장을 들어서면
내벽이 온통 공연장이다.
약간 올려다보는 눈높이가 오히려 시야를 가리지 않아
기특하다는 생각도...
<이>의 첫 장면은
웅장하기도 하고 왠지 흉물스럽기꺼자도 하다.
문 뒤로 서 있는 커다란 탈과
7명의 무희들이 나와 마치 처용무를 생각케 하는 춤을 춘다.
음산하며 비밀스런 기운까지 감도는 곳
연산은 화로 앞에서 어머니 신주인 듯한 종이를 태우며
그 절절한 마음을 통곡한다.
진심이었을까? 아니면 광기의 한 표현이었을까?
아직 선택이 어렵다.
(역시 이 장면은 2006년 이남희 연산을 생각나게 한다. 충격적이었었는데.....)
희락원 광대들의 한판 굿!
살짝 현실을 꼬집는 위트까지.
같은 풍자가 항상 먹힐 수 있는 현실이 참 싫다.
좀 달라져야 하는 거 아닌가????
차라리 현실이 이런 놀이판이라면
적어도 열심히 박수는 칠 수 있을텐데.....
얼~~~쑤 하면서.
김내하와 더블로 연산을 연기하는 "박정환"
2006년 "공길"이 "연산"으로 돌아오다.
"공길"을 건너 온 박정환의 "연산"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다.
기회가 된다면 보고 싶다는 바램.
4대 공길의 행운을 잡은 "정원형"
오만석, 박정환, 김호영에 이은 공길
남자배우라면 누구나 탐이 날 배역.
남자이면서 여자인 爾,
슬프게 매력적인, 그리고 모호한 이 사람.
장녹수의 옆을 지키던 또 한 남자(?)
홍내관 정석용,
베토벤 바이러스, 왕의 남자, 라디오스타의 감칠맛 나는 연기를 보였던 분.
이 분의 감초연기는 여기서도 빛을 발한다,
계획된 애드립과 액션인 것 같은데 왜 매번
같은 대사와 몸짓을 해도 처음 보는 것처럼 재미있는거지?
신기해....
(이런 게 내공일까?)
폭군 연산이 궁중광대를 사랑했다는 파격적인 설정!
뭐 요즘 세상엔 이딴 건 파격도 아니긴 하지만...
임금의 자리에 요즘 시대의 인물을 올리면 파격이 될라나?
뭐 워낙에 그 분 자체가 파격이고 별종이라
이딴 것 정도는 파격도 아닐 것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
참 다양한 종류의 폭군들이 있구나 싶다.
장생의 "이승훈"
이 분의 장생 연기가 나는 너무나 좋다.
(이 분 역시 영화 <왕의 남자>에 나온다. 광대 3인방 ^^)
그가 연산을 향해 거침없이 쏟아붓는 독설들....
"상감인지, 영감인지, 탱감인지...."
"저 대가리로 왕을 해도 될라나 몰라...."
(누군가 뜨끔하겠다.... ^^)
그리고 죽음을 눈 앞에 두고 벌이는 한판 놀이판
"난 내 가슴이 벌렁거릴 때만 살아있다고 느껴!"
산송장처럼 살고 있는 내가
마치 연산이 된 것 같아 뜨끔하다.
"저 놈이 영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난 이 대사에서 "사과하십시오!"가 생각났다.....)
연산을 향해 내뺏는 공길의 말!
왜 나를 버리느냐고 묻는 연산에게
"내가 임금을 버리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버리는 것입니다"라 답하는 공길!
처음으로, 다시 자유로,
물같은 자유로 돌아가는 공길의 마지막에
어쩔 수 없이 나도 함께 눈물을 쏟게 된다.
"현실! 그런 게 있었나!"
공길을 끌어앉고 혼자 앉아 있는 연산은 공길의 손에서 빨간 천을 풀어낸다.
(장생의 눈을 가렸던 바로 그 천)
주위는 이미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있고...
홀로 남아 유언같은 말을 남기는 연산.
"인생 한바탕 꿈! 그 꿈이 왜 이리 아프기만 한 것이냐....."
연기처럼 사라질 불길....
다.... 탔구나....
인생이 정말 한바탕 꿈인 건가?
그 꿈 속에 나 또한 내 놀이판을 잃어버린지 오래.
남는 건,
그래서 아무것도 없는건가?
다 사라져 재만 남아
마침내 그것도
후~~ 불어 날아가면 그 흔적도 없어질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