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 책거리2009. 9. 25. 06:17
 <나가사키 파파>- 구효서


나가사키 파파

 

오늘 소개할 책은 <나가사키 파파>입니다.

작가 구효서님은 1958년 생으로 신춘문예를 통해 1987년 등단해서 20 여년 동안 정말 많은 소설을 발표한 분입니다.

<카프카를 읽는 밤>,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  <마디>,  <그녀의 야윈 뺨>,  <물 속 페르시아 고양이>, 
<악당 임꺽정>, <낯선 여름>...

한 때 정말 열심히 찾아 읽던 소설가 중 한 분이었습니다.

<나가사키 파파>는 그가 6년 만에 선보인 장편소설입니다.(중간중간 중단편들은 계속 발표했었지만요)

기대했냐구요? 물론 기대했죠.

그리고 역시 기대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구요.

여성의 문체를 보는 듯한 따뜻함이며 디테일한 섬세함, 그리고 어떤 한 순간을 포착해서 멋지게 서술하는 그만의 특성들을 아주 맘껏 느낄 수 있는 소설이었답니다.

이분의 단편들을 모아서 만든 아주 유명한 영화도 있는데 혹시 아시나요?

바로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죠.


소설의 주인공은 일본 나가사키의 음식점 '넥스트 도어'에서 일하는 21세 한국인 “한유나”입니다.
그녀는 친부를 찾으려는 일념에 바다를 건너 지금 이곳 나가사키에 있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그녀에게 아버지에 대한 진실을 알리는 조금은 철없는 메일을 보내옵니다.

이야기는 주인공의 아버지 찾기라는 가시적인 목적에, 그녀 주변 인물들의 사연과 어머니의 메일을 통한 과거의 이야기가 서로 교차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바리데기>라는 전형적인 “아비 찾기”의 신화 원형을 이야기의 뼈대로 채택하고 있지만 결국은 그 원형을 벗어나 “자아 찾기”로 결말을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유나의 직장 동료들은 대부분 일본 사회의 주변적 존재들입니다.

일본 원주민 '아이누' 출신으로 자폐적 삶을 살아가는 일급 요리사 “쓰쓰이”.

부락민(천민 집단 거주지) 출신 여성을 사랑하는 식당 지배인 '“오오카”.

'조선' 국적을 고집하는 아버지와 불화를 겪는 재일동포 3세 “미루“ 언니.

이상하게 착하고 만만한 스무 살의 퀴즈왕 “히데오”

세상의 온 벽을 찾아다니며 그림을 그리는 그래피티 아티스트인 홀 담당 “기구치”.

엄마가 보고 싶어 눈물짓지만 죽어도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중국인 “아이코”.

그동안 숨겨왔던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과 '출생의 비밀'을 이메일로 털어놓는 철부지 엄마 박성희도 소설을 이끌어가는 또 다른 화자중 한 명입니다.

그녀의 남편 한빈, 그리고 한유나가 찾아 나선 또 따른 아빠 정민태.


궁금했습니다.

왜 <나사사키>란 지명을 차용했을까 하고요.

그래서 찾아봤죠. 그리고 나서 이해가 됐습니다.

<나가사키>는 순혈주의를 고집하는 일본 주류사회로부터 배척받는 이들의 삶터가 된 곳으로 일본 개항 역사의 시발지라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즉 모든 인종들이 혼합될 수 있는 그런 장소가 바로 나가사키였던 거죠.

일본의 순혈주의에서 배척당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아웃 사이드적인 장소.


이 소설은 아버지를 찾아 나선 오랜 길을 통해 오히려 아버지라는 개념을 해체하고 자신의 진정성을 찾아가는 내용입니다.

작가의 인터뷰 내용을 그대로 옮겨 볼까요?

"소설에서 뭘 드러내고 그러면 재미없어질까봐 (메시지를) 꼭꼭 누르긴 했지만 작품 속에서 조금씩 흘러나왔을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로 대표되는 혈통, 고향, 넓게는 민족, 인종 등 테두리 짓고 공통의 정체성을 강요하는 것들에 대해 다루고 싶었다"고...


“스물한 살, 나를 충동한 것은 결국 방황이었다!”

소설에 나오는 대목처럼 정말 그럴 때가 있습니다..

“사는 게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싶을 만큼, 모든 게 만만해지며 터무니없이 행복해지는 순간, 사각형 투성이의 공간도 더 이상 답답하지 않는 순간”이..

주인공 한유나는 생각합니다.

“더 이상 헤매지 않으려면 또 다른 아버지와 가족과 고향을 찾을 게 아니라, 나를 찾아야 하는 거 아닐까.”라고요.

아버지와 가족과 고향과 나라와도 무관한 나. 기대면서 닮고, 닮아서 군림할 수밖에 없게 될 나로부터 도망친, 전혀 다른 이름의 나.

그녀는 알게 된 것 같습니다.

<나>를 찾지 않는다면 어떤 아버지를 찾던 그 아버지를 잃게 될 거라는 거, 아니 결국 스스로 찾은 아비를 버리게 될 것이라는 것을요.


그렇다면 <아버지>란 여기서 결국 내가 품고 있던 옹졸한 꿍심의 다른 이름이었던 모양입니다.

지금까지 내 불확실성이 나 때문이 아니라 불확실한 아버지 때문이었노라 밀어붙일 수 있는 아주 그럴 듯한 보호막이 아버지였던 거죠.

“퓨전”이라는 말을 많이 들으시죠?

별개의 재료들이 합쳐져 제3의 다른 어떤 것으로 재탄생되는 퓨전의 신비,

이 책에서도 그런 퓨전의 냄새를 맡을 수 있습니다(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이질적인 사람들이 이곳 “넥스트 도어”에  모여 있습니다.

실제로 주인공은 이들을 가족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새롭게 만들어진 가족은 혈연과 지연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가족의 의미를 파괴하고 해체하는 그런 형태의 가족입니다.

아마도 주인공은 그 세계에서 더 큰 아버지를 찾게 되지 않을까요?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제가 일하는 곳에서 또 다른 형태의 가족을 만나서 많이 변할 수 있었음을 고백하게 되네요.

누구든 그럴 때가 없겠습니까!

나를 파괴하고 싶고, 철저하게 해체하고 싶고, 내가 내가 아니길 꿈꾸는 그런 때.

해답은 아닐지언정.

그래도 이 책은 공감을 하게 만들어 줍니다.

공감 또한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8. 26. 13:37
<다이어트의 여왕> - 백영옥


다이어트의 여왕 


<스타일>의 작가 백영옥이 쉬크하고 엣지(?)한 두 번째 칙릿소설 <다이어트의 여왕>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일단 재미 하나는 정말 제대로 있습니다.  뻔한 내용을 가지고, 그것도 제목에 책의 내용을 아주 노골적으로 다 드러내고서도 이렇게 재미있는 글을 썼다는 사실은 한없이 부러운 일이죠.

전작처럼 “요리사”가 등장합니다.

약간 차이가 있다면 <스타일>에서는 주변 등장인물이었는데 <다이어트의 여왕>에서는 드디어 주인공으로 등장을 했네요.


정연두!

28세 꽃다운 나이로 신장 173cm (여기까지는 참 부러운 대목입니다), 몸무게는 85kg, 조금은 육중한 몸을 가지고 있는 레스토랑 <퍼플>의 셰프.

어느 날 그녀는 3년 동안 사귄 애인 하정민(56kg)으로부터 결별을 통보받습니다.

뭐, 실연의 고통을 굳이 폭식으로 달랜 건 아니지만, 어찌됐든 이별 통보 후 그녀의 몸무게는 0.1톤에서 7kg 모자란 93kg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전 그녀의 “요리사”라는 직업과 “허기”(어떤 의미에서 “체중”)에 대한 논리가 참 정당하게 다가왔습니다.

“요리사는 절대로 배고프면 안 돼! 그러면 음식에 너무 관대해져. 그런 사람이 만든 음식에 디테일이 있을까? 좋아! 나 뚱뚱해. 근데 그건 내 직업병이야. 난 직업윤리를 가진 요리사이고, 무엇보다 내 직업병이 자랑스러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방송작가 친구 김인경의 강력한 권유로 <퍼플>도 그만두고 1억원 상금이 걸려있는 서바이벌 리얼 다이어트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8주간의 합숙소 생활을 시작합니다.

“비만은 질병이자 전염병이다”

첫날부터 14명의 육중한 경쟁자들이 들은 첫말은 전혀 달콤하지 않은 살벌한 말이네요.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딸에게 당당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미혼모 박순옥, “단비”라는 이름에 맞은 사람이 되어 잃어버린 자신의 이름을 찾겠다는 182cm, 121kg의 42세 최고령 참가자 최단비 여사, 운동할 때조차도 구두를 포기하지 못하는 악녀 캐릭터의 구두디자이너 송준희 등등....

눈물 많고, 사연 많고, 다른 무엇보다 특히나 살 많은 14명의 참가자들.

그들은 이제 A, B 두 팀으로 나뉘어져 각각의 미션을 수행하게 됩니다. 미션의 결과가 나오면 패한 팀에서 스스로 탈락자 1명씩을 선정하게 되죠.

이 상황에서 내가 살아남기 위해선 공개적으로 팀원을 비난하고 자신이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를 팀원에게 설득해야만 합니다.

“언어”와 “감정”의 전쟁터인 셈이죠.

어쩐지 “입”이라는 신체 부위가 범상치 않게 다가옵니다.

“요리사의 입”과 “작가의 입”

왜 작가들이 미각과 탐식에 열광하는지, 그리고 그와 관계된 인물들을 창조하는데 열광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작가의 발설 혹은 폭로의 욕구를 가장 잘 대변해주는 신체기관이 바로 “입”일 테니까요.

입의 말을 손으로 대신 말하면서 미(美)를 탐하는 작가와 손의 감각보다 입의 감각으로  미(味)를 탐하는 요리사....

이쯤이면 썩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폭로와 발설, 비방과 힐난의 긴 8주간의 시간이 끝나고 드디어 최종 우승자가 결정됩니다.

우리의 주인공 연두가 1억원의 여왕이 됐을까요?  8주간 총 48kg 살을 뺀 기적을 만든, 늘 모자를 쓰고 다녔던 최고령 “최단비” 여사가 최종 우승자로 뽑힙니다. 그리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다시 진짜로 시작됩니다.


일상으로 돌아온 정연두는 “최고의 스타. 정연두 셰프 입성! <다이어트의 여왕>이 마련하는 최고의 만찬을 즐기세요!”라는 광고간판과 함께 레스토랑 <퍼플>의 부주방장이 되어 다시 주방에서 일을 시작합니다. 매스컴의 효력으로 레스토랑은 연일 문전성시를 이루게 되고요.

그런데 이런! 그녀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벼락 스타가 되어버린 정연두 그녀에게서 점점 이상징후가 보이는 시작하네요.

점점 후각이 예민해지더니 급기야 야채도, 고기도, 그 무엇도 먹지 못하게 됩니다.

자신의 몸이 내는 비명소리를 피하기 위해 그녀는 수면제와 알약에 의지하며 요리를 하죠. 손님들에게 음식에 대한 클레임이 들어오는 횟수도 점점 늘어납니다.

음식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녀의 몸은 이제 늘 허기에 지쳐있습니다.

“한 번도 배고픈 적 없던 나는 늘 배가 고팠다. 너무 배가 고파서 칼을 쥔 손가락 열 개를 베어 뼈까지 와작와작 다 씹어 먹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내 몸을 베어 먹어버린다면, 그것으로 체중이 늘어날까? 하루 종일 주방에 서서 나는 양고기와 돼지고기를 써는 대신, 상상 속의 내 몸을 씹고, 분해하고, 으깨며, 요리했다. 나는 내 살을 잘라 사람들에게 먹이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 이 몸속에 존재하는 지방과 살덩이들을 다 제거하고 싶었다.”

그녀는 스스로 고백합니다.

내 위치는 분명 바뀌어 있었다고....


93kg -> 79kg -> 52kg -> 47kg -> 41kg

173cm의 신장을 가진 그녀의 몸피는 계속 말라갑니다.

미각까지 상실한 그녀는 결국은 <퍼플>에서 쫒겨나기에 이르죠. 맛을 느낄 수 없는 요리사가 만든 음식에는 결코 진실성이 담기지 못할테니까요. “신경성 식욕부진증”, 그녀는 이제 거대한 “거식의 세계”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미각을 잃은 세 치 혀가 내뱉는 말은 이제 그녀에게 공허할 따름입니다. 그녀의 “혀”는 드디어 “가짜”가 되버리고 말았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찾아온 요요현상에 대한 두려움.

그녀의 텅 빈 위는 금기야 그녀의 모든 생활까지도 텅 비게 만들어 버립니다.

게다가 하나씩 소위 까발려지는 참가자들의 진실들.

쇼에 참여하기 위해 일부러 살을 찌운 송준희, 우승자 최단비 여사는 성전환수술로 여자가 된 남자모델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인터넷에 유포되는 모델시절의 사진들, 그리고 정연두의 사진들과 무수한 댓글들....

그녀를 포함한 모든 괴물들의 적나라한 모습들.....

그녀는 어느덧 뚱뚱했던 시절의 자신을 조금씩 잃어가기 시작합니다. 그 시절의 미덕들, 긍정성, 명랑함, 사랑과 동경같이 빛나는 것들을요. 그뿐만 아니라 처음엔 수첩을, 다음엔 핸드폰을 그리고 삼 년을 지켜보던 고양이와 직장, 몇몇 친구들까지도 말입니다. 뒤돌아보니 어느새 그녀는 모두 다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결국 식이장애클리닉을 찾은 그녀에게 의사는 거식으로 인한 “가성치매”라는 진단을 내립니다. 그러면서 말하죠.

“정연두씨는.....말하자면 이 병을 사랑하고 있는 겁니다. 다른 모든 거식증 환자들처럼, 낫고 싶지 않은 거죠. 먹지 않는 것이 엄청난 능력이라고 자부하고 있어요..... 정연두씨는 기억이 돌아오는 것보다, 다시 뚱뚱해지는 게 훨씬 더 두려운 겁니다. 그렇지 않나요?”


사람은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보다 이해받고자 하는 욕구가 훨씬 크다고 합니다. 하지만 타인에게 이해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자신을 이해하는 일이라고 하네요. 바보 같고, 멍청하고, 때로 죽이고 싶을 만큼 어리석은 자신의 모습까지도요.

성공적인 치료로 50kg 진입을 앞두고 있는 정연두는 말합니다.

“이제야말로 나는 진짜 내 이야기를 고백하고 있었다. 바뀐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나 자신을 알기 위해선 타인의 시선 역시 필요하다는 것, 거울 없이는 자신의 앞모습은 물론이고 뒷모습까지도 우리는 결코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깨닫는 중이다.” 라고....

결국 그녀에게 필요했던 건, 잃었던 미각을 찾는 일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잃었던 귀를 잃었던 시선을 찾는 게 훨씬 더 필요했던 거죠.

드디어 그녀도 말하네요.

“이제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 기꺼이! 온 마음을 열고서 말이다....”

정상적인 생활로 복귀한 그녀, 정연두.

어느날 조카와 함께 찾은 서점에서 한 사람을 목격합니다.

그녀가 그렇게 살을 찌우기 위해 노력했었던 그 남자, 하정민이 불과 몇 개월만에 후덕한 아저씨의 모습이 되어 서점 안을 서성거리고 있습니다.

그의 모습을 목격한 그녀는 생각합니다.  예민하고 신경질적이었던 정민이 비로소 편안하고 온전한 연애를 시작한 건지도 모른다고..... 뚱뚱해졌지만 활기차 보이는 그를 보면서 이제야 끝나지 않았던 정민과의 연애가 진짜로 끝나게 됐다는 걸 그녀는 알게 됩니다.


“허기”란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삶의 “결핍”이라고 하네요. 때문에 우리가 사랑에 배고프고 관심에 목마른 것도 모든 거식증 환자들의 허기와 다르지 않다고 합니다.

“배고픔”과 “허기”를 적당히 잘 조절하고 지배(?)하는 것!

어쩌면 그게 내 삶의 여왕이 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닐까요?

조심하지 않으면 언제 “폭식”과 “거식”의 경계선을 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14명의 참가자들이 모인 만찬의 자리.

모든 비밀들이 하나하나 폭로된다고 해도 이제 그녀는 다시는 어떤 것도 잃지 않을 것 같습니다. 훨씬 끔찍한 것은 폐쇄된 공간에서 나가지 못하고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서 일어나기 마련이니까요.

여자들은 누구나 자기 안에 날씬한 또 다른 진짜 내가 살고 있다고 믿는다네요.

그래서 조금만 몸을 움직이고, 조금만 덜 먹으면 뚱뚱한 몸은 어느덧 낡은 코트처럼 벗겨지고 그 속에 원래의 내 모습이 들어날 거라고 생각하면서.... 몸 어딘가에 달린 지퍼만 찾아 쭉 열면 지금까지의 헌 몸은 사라지고 환상적인 새 몸이 눈앞에 펼쳐질거라고....

그러나 이런 “환상” 속에는 여지없이 “독”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이해할 것 같습니다. “환상”은 부디 “환상”속에 남겨두고 우리는 열심히 치열한 “현실”로 돌아와야 할 시간이라고 이 책은 말해주네요.

세상의 모든 결핍에 대응할 준비, 이쯤이면 당신은 되셨겠죠?

자, 이제부터 현실로 출발합니다.


"Are you ready~~?"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7. 6. 06:25
<혀> - 조경란

혀
 

탐욕적인 소설. 그리고 유혹적이며 관능적인 소설.

조경란의 소설 <혀>는 식욕이라는 본능의 식탁 위에 또 다른 본능인 성욕의 재료를 푸짐하게(?) 그리고 노골적으로 차려놓습니다.

화들짝!

너무 정직하고, 그리고 적나라해서 때론 민망하기까지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읽음직한 구미가 솔솔 당깁니다.

거식과 폭식, 그리고 떠나는 사랑과 시작되는 사랑, 이 모든 관계들....

누군가에게겐 세상의 어떤 맛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맛이 있듯이 어떤 사람으로도 도저히 대신할 수 없는 사람이 있기도 합니다.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됩니다.


13년 경력의 33살 요리사 정지원,

그녀는 “WON'S KITCHEN'이라는 자신만의 쿠킹 클래스를 운영하기도 했던, 꽤나 감각적이고 탐미적인 요리사였죠.

그런 지원과 7년 간 사귀던 건축가 석주가 그녀를 떠납니다.

그것도 그녀의 쿠킹 클래스에서 요리를 배우던 젊고 도발적인 모델 출신 이세연이라는 여자와 새로운 사랑에 빠져서 말이죠.

네, 이야기 자체는 참 진부한 치정관련 연예소설이죠.

그런데 그 표현이라는 게...

섬뜩할 만큼 사실적이고 노골적입니다.

함께 같은 꿈을 꿨던 그 사람을 잃은 그녀는 다시 예전에 일했던 “노베”로 돌아가 다시 요리를 합니다.

그곳에서 그녀가 만드는 하나하나의 요리 속에는 그녀 자신의 모든 심리상태가 함께 녹아들어갑니다.

그녀는 식욕에 대한 욕구마저 점점 사라지죠.

먹는 것에 대한 거부,

그것은 곧 관계에 대한 거부이며 더 심각해진다면 모든 인간관계에 대한 극단적인 파괴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식욕을 가진 자는 적어도 살아갈 의욕을 가진 자라고 말 할 수 있으니까요...

입으로 향하는 욕망을 스스로 거세시켜버린 사람.

그리고 결국은 사랑하는 사람이 새롭게 사랑하게 된 그녀의 혀를 잘라(이것도 일종의 거세) 요리를 한다는 그로테스크한 결말.

심지어 그렇게 요리된 혀는 아무것도 모르는 옛 연인의 마지막 만찬이 되어 그의 입 속에 한점한점 집어 삼켜집니다.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황홀한 맛을 남기면서요...


일류 요리사에겐 그들만의 묵시론적인 비밀이 있다고 하네요.

고객의 식욕을 채워주고 미각을 즐겁게 해주되 결코 만족시켜서는 안 된다는 묵시록.

한번 만족을 하게 되면 그 다음엔 더 큰 것을 원하게 되는 게 사람의 마음이기에 다음에 대한 기대를 반드시 남겨둬야 한다고요.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 100% 만족이 찾아온다면 결국은 금이 간 창유리를 통해 세상을 보게 되는 순간이 시작됩니다.

그리다 누군가 한 사람이 다른 방향을 바라보게 되면 남은 한 사람은 비참하고 함구적이고 잔인해지게 되죠.

그리고 남는 건 허기처럼 찾아오는 “분노” 뿐이죠.

그럴 때 입은 두 가지 중 한가지를 선택합니다.

폭식 혹은 거식

사람에게 사랑과 굶주림, 이 두 가지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 나타나게 되는 극단적인 자기 파괴의 방법!

한쪽은 입 안에 몰아넣음으로 인해 속을 채워 마침내 터뜨리겠다는 폭발의 자기 파괴.

한쪽은 입을 닫음으로 인해 내부를 태우겠다는 발화의 자기 파괴.

둘 다 막상막하의 막장 스토리이긴 하지만,

그것보다 더 극단적인 건 주인공 지원처럼 그 분노를 타인에게 쏟아내는 것일 겁니다.

이별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어쩌면 누구와도 사랑을 해선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엄마 뱃속의 태아에게서 가장 먼저 생기는 기관이 바로 “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가장 먼저 느끼게 되는 맛은 “쓴맛”이구요.

그러고 보니 사람이 나이를 먹어 간다는 건, 입 속으로 쓴맛의 기억을 자꾸 더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입이 갖는 사회성과 책임감!

어쩐지 좀 입이 천근 무게로 다가오네요.

온순해보여도 입 속엔 칼과 맞먹는 무기가 있다고 합니다.

치아와 혀.

당신이 입이 기억하고 있는 맛은 무엇입니까?

문득 그게 궁금해지네요.... ^^

 

* 이 책의 내용이 파격적이고 충격적인만큼 문단에서도 큰 파란을 일으킨 문제작입니다.

  다름 아닌 “표절” 시비로요.

  현재까지 명확한 결론은 나지 않은 상태입니다.

  논란의 핵은 주이란이란 신인 작가가 조경란의 <혀>가 자신의 신춘문예 응모작인 동명의  단편소설 <혀>
  를 표절했다는 글을 올리면서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그 단편소설의 심사위원 중 한 명이 바로 작가 조경란이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그 소설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심사위원의 모든 소설을 다 심사하는 건 아니라
  면서요....)

  왠지 주이란의 단편소설 <혀>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표절논란에 시비를 논할 깜냥은 되지 못하지만 어쩐지 흥미진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디까지나 문학적인 궁금증이죠.

  어설픈 활자증후군, 호모 북커스의 호기심 발동이긴 합니다만... ^^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