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4. 4. 11. 07:37

오소희의 글을 읽고 있으면

엄마인 그녀의 자리도 부럽고, 

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엄마와 함께 여행을 다닌 아들 JB도 부럽다.

"엄마"라는 이름.

이젠 내가 가질 수 없는 그 이름이기에

그녀의 글을 읽는 동안은 사무치게 그 자리가 그립고 부러웠다.

이 특별한 모자(母子)에게 쏟아지는질투심은,

참 대책없다.

게다가 라오스라니...

베트남의 메콩강과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를 꿈꾼 적은 있지만

라오스를 생각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길을 나란 사람이 감당할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녀의 글을 읽고 있으면 자꾸 "If..." 그 가정법의 세계를 생각하게 된다.

만약 내갸 엄마라면,

나는 아이와 함께 라오스나 북미를 갈 수 있을까?

그것도 페키지 여행이 아니라 자유여행, 배낭 여행을...

몇 번의 If를 생각해도

나는 못할 것 같다.

용감하고 현명한 엄마가 곁에 있다는 건,

아이에게 큰 축복이고 용기다.

 

소유에 대한 거친 욕망이 없는 곳, 라오스.

행복지수라는 건 소유의 개념과는 별개다.

물론 그들의 삶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건 아니다.

욕망하지 않는다면 발전의 가능성 또한 그만큼 적어지기에!

하지만 그게 부끄럽지 않은 곳.

그곳이 라오스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도 그랬다.

"Give me money!"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이유.

우리의 과거도 딱 그랬으니까...

 

오소희의 여행과 글이 마음을 건드리는 다른 이유 하나 더!

늘 그랬던 것 같다.

뭐가 됐든 그 여행이 단지 시간의 기록으로만 끝나지 않았다는데 있다

라오스를 다녀온 후 그녀는 블로그를 통해 글을 올렸다.

그렇게 모인 옷들을 꼼꼼히 정리해서 그걸 들고 다시 여행길에 올랐다.

참 무식하고 구태의연한 방식이지만

왈칵하고 무섬증이 일었다.

그러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면서는 혼자 뭉클해졌다.

오소희라는 사람은..

참 열심히 제대로 사는구나...

 

또 다시 나를 묻게 만든다.

요즘은 여행서가 나에게 집중 난타를 가한다.

정말이지 이러다 완전히 뻗어버리겠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2. 5. 28. 14:10

<헤다 가불러>

 

일시 : 2012.05.02. ~ 2012.05.28.

장소 : 명동예술극장

출연 : 이혜영, 강애심, 김수현, 김성미, 김정호, 호산, 임성미

극작 : 헨리크 입센

연출 : 박정희

제작 : 명동예술극장

 

<햄릿 1999> 이후 12년만에 배우 이혜영이 연극 무대에 선다!

그것도 '현대 연극의 아버지'로 불리는 헨리크 입센의 작품으로.

<인형의 집>으로 유명한 입센의 <헤다 가불러>는 세계 초연 이후 120년 만에 우리나라에 초연무대를 갖게 됐다.

그만큼 함부러 도전하기에 어려운 작품이란 의미일까?

세계적으로 이 작품이 공연될 때는 누가 헤다 역을 하느냐가 매번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는데 우리나라가 선택한 첫번째 헤다는 배우 "이혜영"이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작품의 카리스마가 어느정도인지 가늠이 된다.

솔직히 이혜영 한 명만 봐도 손해날 것 없는 작품이겠구나 생각하면서 일찌감치 예매를 했었다.

명동예술극장은 개관한 이래 나름대로 주관과 곤조(?)를 가지고 좋은 작품을 성실하게 제작해왔다.

개인적으로 처음 명동예술극장을 찾았는데

뭐랄까 어떤 독보적인 자존감 같은 게 느껴졌다.

살짝 독립군 같다고나 할까?

 

연극은 어렵다는 표현보다는 너무나 성실하고 극적이었다.

"헤다 가불러"라는 인물이 가지는 삶에 대한 욕망과 주도권에 대한 집착이 섬득하면서도 사실적이다.

고전적이면서도 섬세한 심리묘사나 대사들은 지극히 현대적이다.

한 인간, 한 여성의 마지막 이틀!

그 이틀의 시간이 평생의 시간보다 길고 강렬하다.

이 여자의 마지막은 또 얼마나 정당하고 당당한가!

삶의 주도권을 타인에게 빼앗기느니 차라리 모든 걸 던져버리겠다.

결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성이 아닌 아버지의 성을 그대로 고집할만큼 헤다는 자신의 삶에 주도적이었던 헤다.

그녀는 일종의 개척자였고 기획자였다.

"욕망"이라는 건 또 얼마나 치밀하고 관능적인가!

그리고 또 배우 이혜영은 얼마나 아름답고 관능적이고 화려하던가!

솔직히 길지 않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배우 이혜영에게 단 한 순간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헤다야 늘 아름답지 않니!"

테스만 고모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다.

아니 솔직히 "이혜영이야 늘 아름답지 않니!"가 정확한 표현이다.

대사와 동작이 너무 우아하고 아름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장되거나 힘이 들어간 게 아니라 정말 물처럼 자연스럽게 흐른다.

50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그녀는 젊은 헤다 역에 완벽히 동화됐고 충실했다.

무대에 서있는 자세와 눈빛, 동작 하나하나가 어찌나 당당하던지...

보는 내내 완벽히 압도당했다.

특히 커튼콜때 이혜영의 모습은 연극보다 더 감동적이었다.

뭐랄까?

무대와 관객에 대한 깊은 존경과 경외심이 담긴 인사였다.

범접할 수 없는 여신같은 신비감과 아우라에 숨이 막혔다.

 

헤다와 후반부에 심리대결을 펼치는 판사 역의 김정호의 연기도 압권이다.

서로 아닌 척 하면서 팽팽하게 당기는 그 긴강감이라니...

설정인지 아니면 실제 목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딘지 상대를 얕잡아보는 듯하면서 느물거리는 독특한 김정호의 목소리는 상당히 인상적이다.

표정도 너무 좋았고... 

이혜영뿐만 아니라 호산, 김수현, 강애심의 열연도 훌륭했다.

특히 이 모든 배우들의 목소리톤과 딕션이 믿어지지 않을만큼 좋았다.

아! 그리고 신비감을 주던 곱추 하녀 임성미에게도 박수를...

(이층에서 고개만 내밀던 하녀때문에 극 중간중간 정말 많이 놀랐다.)

마지막 헤다의 자살 장면.

마치 헤다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확실하고 독보적인 보석이 된 것만 같다.

아주 극도로 아름다웠다노라 말한다면 내가 이상한걸까?

 

헤다는 아름다웠다.

그리고 배우 이혜영의 헤다는 백만 배쯤 더 아름다웠다.

그 어떤 젊은 여배우도 이햬영의 젊음과 관능을 결코 따라오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두루두루 끔찍한 작품이었고 꿈같은 작품이었다.

 

아름다운 작품을 보면

오래오래 황홀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1. 7. 15. 05:50
최인호는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로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K에 대해 언급하더니
황석영은 <낯익은 세상>으로
소비와 생산의 세상이 남긴 인간 세상의 폐허를 이야기한다.
이러다  정말 "낯익은 OOO"이 문학적 화두가 되는 건 아닐까?
최인호, 황석영, 조정래...
요즘 문학계 노장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그리고 그 심상치않음이 나는 신명나고 즐겁고 그리고 고맙다.
(장편으로 새롭게 탄생된 조정래의 <황토>도 어여 읽어봐야지!)



그에게 이 소설은 여러 의미로 남다르리라.
작가생활 50년 최초로 전작으로 발표한 장편소설 <낯익은 세상>
작년에 <강남몽>의 표절시비로 구설수에 올랐던 황석영은
이번엔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을 떠올리게 하는 "꽃섬"이라는 세계를 만들어냈다.
작품을 위한 칩거였는지, 구설수를 피하기 위한 일종의 은둔(?)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소설을 쓰기 위해 그는 중국 리장(麗江)과 제주도에 거의 머물렀다고 한다.
시간이 멈춘듯한 장소였다는 중국의 리장.
그러나 그곳 역시도 대도시 뉴욕이나 파리처럼 
인간의 욕망에 의해 점령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소설의 모티브를 생각했단다.
뭐 굳이 그걸 중국까지 가서 느낄 필요는 있었을까 싶긴 하다.
왜냐하면 눈만 돌리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딱 그러니까.
소비와 생산의 잔재로 점점 폐해와 쓰레기더미로 변하는 세상.
난지도 쓰레기 매립지에 인접한 곳에 터잡고 산지 오래된 나는
어릴 때 문만 열면 온갖 기묘한 쓰레기 냄새가 아침을 그야말로 화끈하게 열어주곤 했었다.
그 쓰레기산이 지금 저렇게 멀쩡한 상암월드컵경기장으로 변신해서
서울시민의 쉼터가 됐다는 사실이 참 신기하긴 하다.
내가 아는 최고의 before-after 반전스토리가 아닐 수 없다.
옆길로 들어와버리긴 했지만
어쨌든 그 곳에 사람은 산다.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소설처럼 김서방네 가족이 사는 제 3의 공간(도깨비 세상)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지극히 팡당한 시츄에이션인 도깨비를 등장시킨 이유에 대해 황석영은 말했다.
"욕망의 추악한 냄새와 잿더미, 자연적 치유의 순환 고리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도깨비 정령들을 불러내 하나의 화해의 모티브로 제안했다" 라고...
글쎄...
내 지적 능력이 현격하게 떨어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김서방네 대가족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소리다.
"세상에 니들만 사는 줄 아냐?" 라는데
그렇다고 도깨비를 버젓이 등장시킨건 너무 환상적(?)이고 유아적이지 않나?
나이가 들면 어린아이가 된다는데...
황석영의 친구들도 그랬단다.
만년 문학은 "치매문학"이라고.
그래서 대략 그려려니 하고 이해하기로 했다. (*^^*)



수월하고 쉽게 읽혀지는 소설이다.
환상소설? 성장소설? 어른을 위한 동화? 혹은 재난 소설?
암튼...
읽으면서 코멕 맥카시의 <The Road>와 비교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The Road>가 대단한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황석영의 예전 성장소설들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딱히 줄거리가 중요한 것 같지도 않고
깊이감이 있어 읽고 난 후에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류의 책 역시 아니다.
성찰 혹은 반성 좀 하라고 훈계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냥 도깨비 세상 같다.

열심히 필력을 자랑하고 계시는 황석영이 현재 구상하고 있는 책이 있다는데
이게 또 의외다.
"내년이면 등단한 지 딱 반세기인데 50주년 기념으로 《이야기꾼》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쓸 거예요. 황석영을 아바타로 만들어 19세기에 두고 여러 풍랑을 겪는 이야기꾼의 일생을 다룰 예정이죠.연재가 아니라 전작으로 집중해 쓸 겁니다. 저의 80세,90세 때의 모습이 보이시나요?"
그러시단다.
황석영의 아바타라...
그 연세에 참 다양한 시도를 끊임없이 하는 저력은 일단 너무나 놀랍다.
결과물이 그만큼 잘 나와줬으면 하는 바람.
혹시 이러다 스타워즈급의 소설 한 편이 탄생하는 건 아닐까?
문득 황석영 아바타가 광선검을 들고 서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대략 난감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1. 7. 2. 06:01
전작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었다.
그래서 이 책도 선듯 손에 잡혔는지도...
넬레 노이하우스.
평범한 아줌마에서 일약 독일의 스타 작가가 된 그녀는,
아마 지금 무지 행복에 겹겠다.
한 우물을 이렇게 오랫동안 끈질기게 파면 결국 물을 보긴 보는 구나...
(진심으로 부럽다~~)
어쩌다 우리나라에는 순서가 마구잡이로 출판이 되긴 했지만
넬레 노이하우스가 쓴 타우누스 시리즈 4 권 중에 두번째에 이야기다.
<미움 받는 여자>, <너무 친한 친구들>, <깊은 상처>,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4 -> 3 -> 2 ->1 도 아니고 출판순서가 참 개념없다.
다음엔 아마도 <미움 받는 여자>가 출판되는 모양인데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책의 장르만큼이나 출판 순서도 미스터리다.


재미있는 건 넬레 노이하우스가 이 책을 자비로 출판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게 소위 말하는 대박을 터뜨린 거다.
독일에서 <해리포터> 시리즈보다 더 많은 판매고를 올렸고
더불에 점차 세계 독자들을 매료시키는 중이다.
더 어이없는 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수사반장 보텐슈타인과 여형사 피아 콤비가
멋지고 잘생긴 선남선녀들도 아니라는 사실!
이 두 사람을 제외하고 이야기마다 등장하는 사람들은 그 다양함만큼이나 흥미롭고 매력적이다.
아마도 이 두사람이 잘난 것 없는 이 두 인물에게 쉽게 동화되는 모양이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은 놀라울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그래서 일단 읽기 시작하면 한 번도 읽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추진력도 대단하다.
두 권의 시리즈를 읽고 난 느낌은
넬레 노이하우스란 작가가 상당히 박학다식한 인물이라는 거!
전문적인 지식이 나오는 분량도 상당하고
시대의 이슈 등을 이야기 속에 끌어들이는 능력도 대단하다.
작가라는 건 아무래도 이렇게 제 7의 감각까지도 전부 열려있려야만 할 것 같다.


아무래도 인간의 진화는 "욕망과 탐욕"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같다.
하나의 사건은 하나의 욕망 때문이 아니라
여러 욕망이 부딛치면서 더 큰 미궁과 비밀 속으로 위장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학생들에게 인정받는 고등학교 교사이자 환경운동가은 "파올라"의 죽음 역시도
타우누스 주민들의 욕망과 탐욕이 그 원인이자 결과다.
누구도 믿어서는 안되고 누구라도 일단 의심해봐야 한다.
하나를 알고자 한다면,
그보다 몇 배는 더 큰 다른 것들과의 대면을 각오해야 한다.
넬레 노이하우스는 좀처럼 실마리를 쉽게 노출시키지 않는다.
2권쯤 읽고 나서는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래서 어쩌면 다음 책이 나왔을 때 덜 흥미로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까지 느낌은 오랫만에 꽤 괜찮는 미스터리 시리즈가 탄생한 것 같다.
멋지다! 이 독일 아줌마!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1. 6. 23. 15:46


차범석 5주기를 기념하기 위한 헌정공연 <산불>이 임영웅 연출로 무대에 올려졌다.
1962년에 초연된 <산불>은
2007년에 국립극장 달오름에서 마지막으로 공연됐었다.
많은 사람들을 오래 기다리게 하더니 무려 4년만에 다시 무대에 올려졌다.
항상 공연기간이 짧아서 이례적인 매진사태를 만들었고
어떻게든 보겠다고 현장에 찾아가도 왠만한 자리를 구하기가 하늘이 별따기였단다.
워낙에 출연 배우들이 쟁쟁하기도 했겠지만
그만큼 원작이 갖는 힘이 대단하다는 뜻이다.
(실제로 그렇더라) 



차범석은 <산불>이라는 작품을 통해
한국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 본성과 욕망, 갈등을 그야말로 과장없이 드러냈다.
그런데 요즘 세대들이 이 작품을 보고 "사실주의 최고봉"이라는 찬사에 동의할지는 모르겠다.
그러기에는 전쟁이라는 참상이 그들에겐 너무 추상적인 단어이기에...
우리 세대는 그래도 부모님이 전쟁을 겪었기때문에 듣은 이야기라도 종종 있지만
(그리고 어릴 때 반공교육도 꽤 받았다. 비록 "공산당이 싫어요!"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저 멀리 아프칸을 떠올려 주는 것만도 고맙다 하겠다.
전쟁의 참상은...
감히 내 손으로 끄적거릴 그런 내용이 아니다.
단지 죽음의 극한 상황에서 보여지는 삶의 욕망.
그리고 그 욕망 속에서 은밀하지만 강하게 피어나는 욕망과 애욕.
육체적인 전쟁에서 또 다른 육체적인 욕망에 빠져들 수 있다는 게
예전엔 믿어지지 않았는데 지금은 알겠다.
그게 유일한 희망일 수도 있다는 걸...
그 유일한 욕망이 사람을 살아 남게 할 수도 있다는 걸...

 

 

6ㆍ25 전쟁 후 피폐해진 소백산맥의 산골마을
대나무숲, 하늘이 뚫린 듯 쏟아지는 눈, 지랄맍게 만발한 봄꽃과 불타는 산.
제작비 8억원이 들었다는 무대는 실제 마을을 그대로 옮겨온 듯 하다.
실사 크기의 초가집 2채와 산길,
실제 대나무 200그루를 무대에 세웠다는데 마지막에 공비토벌을 위해 산불로 타들어가는 무대 모습은
이런 표현이 적당할지 모르겠지만 섬득한 장관이었다.
제작자 신시컴퍼니 박명성 대표가 말했다.
"대극장 뮤지컬 제작 경험을 바탕으로 연극에서도 중장년 관객을 흡수하고 싶어 도전과 모험을 하게 됐다" 라고...
대형 라이센스 뮤지컬도 아닌 연극에 8억원의 제작비라!
도전과 모험이 확실하긴 하다.
작품 자체와 배우들의 연기는 정말 너무 훌륭하고 좋았는데
문제는 극의 시작과 막이 전환될때 들리던 피아노와 구음자.
그래도 처음엔 들어줬었다.
그런데 이게 점점 점입가경이다.
음이탈을 수시로 들락날락하던 구음자의 소리는 사실주의 최고봉이라는 연극을
순식간에 시트콤으로 전락시킨다.
나중엔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끌어내리고 싶더라.
(사람들이 실제로 그럴까봐 피아노 연주자와 구음자를 무대 아래에 배치했을까???)
작품만큼이나 이 되도 않던 퍼포먼스가 사람들 입에 많이 오르내리겠다 싶었는데
실제로 그렇더라...
차라리 강부자 선생님의 실랄하고 살벌하던 푸짐한 쌍욕을 무한 반복 재생하는게 골백번은 나았을 것을...
(지금도 이 구음자 생각하면 등골이 다 오싹하다)
 



6.25 전쟁의 포화 속에서 과부들만 남은 두메 산골.
전쟁에 남편을 잃고 시할아버지와 시어머니(강부자), 바보 시누이를 건사하며 사는 점례(서은경)는
부상당해 마을로 내려온 빨갱이 규복(조민기)을 대나무밭에 숨겨놓고 보살피다 서로 정이 들고 만다.
그러다 그 모습을 이웃집 과부 사월(장영남)에게 들키고 둘은 모종의 합의(?)를 한다.
두 사람이 밤마다 그분을 번갈아 가면 돌보기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장 신고하겠다는 사월의 육체적 욕망을 결국 점례는 따를 수밖에 없게 된다.)
"점례만이 그 사람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권리가 어디 있어?"
"점례에게 소중한 남자는 내게도 소중하니까"
코믹한 대사이기도 하지만 인간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대사라 등골이 다 오싹하다.
급기야 남자가 씨가 마른 과부마을에서 사월은 임신을 하게 되고
숨어있는 공비토벌을 위해 조상대대로 내려온 점례네 대나무밭은 붉은 화염에 휩싸인다.
점점 붉게 물드는 마을과 넋을 잃은 듯 서있는 점례의 모습.
처절한 삶이란, 불타는 욕망이란 붉은 환영과 매캐한 연기,
그 자체다.

 

강부자, 권복순, 서은경, 장영남의 연기는 흠잡을 수 없을만큼 치열하고 아름다웠다.
노익장을 과시하는 배우들이 TV 화면이 아닌 무대 위에서 혼신의 힘을 다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도 대책없는 감동이다.
그리고 그 모습은 실제로도 엄청난 감동이고 울림이었다.
이들 외에도 함께 출연한 모든 배우들의 열연은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시할아버지와 정말 바보같던 시누이까지...
(이 대목에서 구음자가 다시 떠올라 막막하다... 음이라도 정확하던가...)
이 작품이 해오름이 아니라 규모가 더 작은 곳에서 공연됐었으면
아마 느껴지는 감동이 더 크지 않았을까 살짝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드디어 <산불>을 봤는데...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8. 23. 05:38
세계사의 흐름을 다섯 가지 코드로 분석한 역사서다
당연히 역사학자가 쓴 책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다.
이 글을 쓴 사이토 다카시는 일본 메이지대학 문학부 교수다.
그렇다면 팩션류의 글일까?
이번에도 아니다.
아주 재미있고 그리고 쉽게 이해되는 정말 착한(?) 역사서다.



욕망 (Desire)
1. 세계를 양분하는 근대의 원동력 : 커피와 홍차
2. 세계사를 달리게 하는 양대 바퀴 : 금과 철
3. 욕망이 사람을 움직인다 : 브랜드와 도시

모더니즘 (Modernism)
1. 근대화의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2. 자본주의는 기독교로부터 생겨났다.
3. 경시된 근대의 '신체'

제국주의 (Imperialism)
1. 야망이 만들어낸 '제국'이라는 괴물
2. 성공하는 제국. 실패하는 제국
3. 세습은 제국 붕괴의 첫걸음

몬스터 (Monsters)
1. 현대세계를 지배하는 자본주의
2. 20세기 최대의 실험, 사회주의
3. 위기가 만들어낸 파시즘이라는 괴물

종교 (Religions)
1. 세계사를 움직이는 일신교 3형제 :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2. 암흑이 아니었다! - 재인식되는 중세
3. 이슬람에 대해 우리가 잘못 알고 있던 것들



책의 마지막 부분에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 강사 우석훈의 해제도 흥미롭다.
이 책을 두고 "백과사전적 지식의 귀환"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아주 딱 들어맞는 표현이다.
한 분야에 대해서 깊게 파고 들어가는 전문가적인 지식이 아니라
전반적인 흐름을 쉽게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는 글이다.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게 해준다는 의미다.
흩어져 있는 퍼즐들이 하나로 맞춰지는 재미랄까?
5개의 코드를 다시 세 개씩 세분화해서 설명하는 방식도 간소하니 좋다.
때로는 비교하는 방식으로,
때로는 역사를 풀어서 이해시키는 방식으로.
또 때로는 자신의 생각을 꽤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으로 책을 엮어간다.
큰 틀 안에 나름대로 변화가 많아 읽는 동안에 지루할 틈이 없다.
"시선을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이 책도 확실히 어느 정도는 지배적이리고 할 수 있겠다.
사회주의, 자본주의, 파시즘 등 자칫 딱딱하고 정치적일 수 있는 부분까지도
재미있고 부드럽게 설명한다.
몰랐던 이슬람 종교가 가지는 "느슨함"을 알게 됐고
종교의 이면에 숨어있는 끝나지 않는 제국주의 욕망을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유일신을 믿는, 사랑을 최우선으로 손꼽는 일신교 3형제(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왜 늘 다툼과 분쟁이 끊이지 않을까?
한번쯤 궁금해했던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해답을 주기도 한다.
반대를 위한 반대 "파시즘"의 아이러니와
노동자를 해방한다는 사회주의가 오히려 노동자를 국가의 노예로 만드는 현실,
붕괴된 소련의 모습에 대한 설명도 독자의 이해를 쉽게 끌어낸다.
색다른 시각을 갖게 하는 놀라운 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누구라도 한 번즘 읽어보면 괜찮을 책 (^^)
상식을 조금 넓혀준다고나 할까?
혹 전문가를 꿈꾼다면 나머지는 자신이 할 몫이다.
사실 이만큼만이라도 알고 있다는 게 어딘가?
상식이 무너진 시대에... (?)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8. 16. 06:44

예전에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구 문예회관)에서 공연을 기다리다
노천카페에서 황석영씨가 인터뷰하는 모습을 봤었다.
신간이 나오나 보다 생각했는데 그 책이 바로 이 책 <감남몽>이었던 듯.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황석영씨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렸는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라서)
그때 놀랐던 건 황석영씨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거였다.
뭔가 촬영을 하는 것 같긴 한데 저 늙은 아저씨는 누구지? 하는 얼굴로 쓱 지나치면서 가더라.
나는 그 옆에서 한참을 두근거리며 부끄럽게 바라보고 있었는데...
황.석.영.
처음 알게 된 건 초등학교 때 오빠가 가지고 있는 책을 통해서였다.
북한을 다녀와서 쓴 책인 것 같은데 제목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사람 빨갱인가?" 어린 마음에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책의 내용은 무지 어려웠지만 건성으로 읽으면서도 왠지 대단한 사람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뭘 좀 알게 된 뒤로는 그의 책은 정말 열심히 찾아서 봤다.
얼마전에는 프랑스 르몽드지가 그의 소설 <심청>을 여름 휴가지에서 읽어야 할 문학도서 1위로 꼽기도 했다.
한국이 아니라 프랑스에서 말이다.



최인훈와 함께 노벨문학상 후보로 자주 거론되는 작가 황석영.
황석영이 그 부분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는데 참 재미있고 통쾌해서 그대로 옮겨본다.
"내가 관심 없다고 열 번 넘게 얘기했어요. 노벨문학상이 월드컵도 아니고, 100미터 달리기도 아니고…. 내가 무슨 행동을 하면 노벨상 받으려고 그런다고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해서 짜증이 나요. 노벨상은 서구에서도 가치가 움퍽질퍽하잖아요. 동양문화나 동양문학에 대한 오해도 있어요. 이건 농담입니다만, 만약 주면 멋있게 거절 한번 해볼까요? 아니, 이런 말도 오해를 불러일으킬라. 나에게는 독자가 사랑해주는 것이 가장 큰 상이에요."
1943년 만주 창춘(長春)에서 태어난 황석영은 해방 후 평양을 거쳐 월남, 영등포에 정착한다.
경복고를 자퇴하고 1962년 '사상계'에 단편 <입석부근>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해병대에 입대해 2년간 베트남전에도 참전했고(1967~1969년),
해남·광주에서 현장문화운동을 하다가 광주항쟁을 겪고 그 진상을 세상에 알리는 활동도 했다. 
1989년에는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초청으로 방북,
그 사건으로 5년 동안 베를린, 뉴욕 등지에서 망명생활을 했다.
(내가 초등학교때 멋모르고 읽었던 책이 이 사건과 관계된 책이었다)
1998년 귀국해 5년간 복역하기도 했다.
황석영을 떠올리면 파란만장하기도 하고, 대담한 청춘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얼마전에는 강호동의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입담을 자랑하기도 했었다.
주변에서는 주책이라고 말렸단다.
지금 그는 트위터의 세계에 빠져있기도 하니 확실히 나보다 청춘인 건 분명하다.
(이 책 <강남몽>도 인터넷 연재소설이고...)
그는 당신의 일련의 활동(?)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작가가 세대장벽을 부수고 사회적 금기를 깨뜨려야 문화의 숨통이 트입니다." 라고...



"이 소설을 정의한다면 한마디로 우리의 욕망입니다."
소설 <강남몽>의 내용 80%는 거의 사실이라는데 실제 읽고 있으면 다큐나 역사서를 보는 것 같다.
그래서 일부러 문체도 딱딱 끊어서 썼단다.
<강남몽>은 1995년 6월 강남의 상품백화점 붕괴사건을 소재로 쓰여졌다.
(소설에서는 상품백화점이 대성백화점으로 나온다)
1,500여명의 사상자를 냈던 삼품백화점 사건은 당시에 모든 뉴스를 도배했었다.
멀쩡하던 건물이 한 순간에 폭싹 무너져내리던 참상을 목격하면서
분노하기에 앞서 어이없기까지 했었다.
저런 일들이 현실에서 가능하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었다.
(그 일 년 전에는 성수대교가 붕괴되면서 꽃같은 학생들의 희생을 목격했었는데...)
그런데 그 참혹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었다.
기적같은 사람들이 그래, 있,었,다.
그 기적같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사건이 일어난 이후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 한국의 근대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강남을 중심으로 "몽(夢)"을 쫒아 부나방처럼 달려드는 인간 군상들.
그 안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인간의 욕망과 치부들을 들여다보는 건
추잡하고 아픈 시간이었다.
한국의 근대사를 이렇게 노골적이고 정직하게 쓸 수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처음에 제목만 들었을 때 황석영의 글쓰기가 좀 달라졌나 싶었는데  
역시 황석영의 소설이다.
그리고 황석영이기에 쓸 수 있는 그런 역사이기도 하다.

1장 백화점이 무너지다
2장 생존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3장 길 가는 데 땅이 있다
4장 개와 늑대의 시간
5장 여기 사람 있어요 


화류계 마담에서 재벌의 후처가 되었다가 무너진 백화점에 깔리는 박선녀(1장),
일본군 밀정과 해방 후 미군 정보요원을 거쳐 얻은 권력과 정보로 강남의 대형 백화점 회장이 되는 김진(2장),
강남 부동산 사업가 심남수(3장),
강남 폭력조직 두목 홍양태와 강은촌(4장),
백화점 지하 매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임정아(5장).
각 장의 주인공의 이야기는 강남 개발과 한국 자본주의 근대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실제 일물들(김구, 박정희, 김재규)을 그대도 쓴 부분에서는 역사 속의 진실을
이름을 한 글자씩 바꾼 인물들의 모습에선 묘한 비꼼과 폭로가 담겨져 속이 다 시원해진다.
깡패 홍양태 - 조양은, 강은촌 - 김태촌,
80년대 사채시장의 큰손 이희철 - 이철희, 장영숙 - 장영자,
특무대장 김창수 - 김창룡...
이들이 개인적인 욕심과 이기심으로 시작된 게 정말 "강남몽"은 아니었을까?



황석영이 서술해낸 "강남형성사"는
허구가 아닌 사실이기에 더 긴장감있고 생생하다.
그의 말대로 마치 "꼭두각시놀음"을 떠올리게 한다.

..... 꼭두각시 인형 같은 캐릭터들이 남한사회의 욕망과 운명이라는 그물망 속에서 서로 얽혀서 돌아가고
그러면서 모르는 사이에 역사가 드러나게 하면 어떨까.
나는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차례로 무너지던 1995년 무렵을 일단 정치적으로는 형식적 민주주의 시대의 출발로, 경제적으로는 개발독재가 종언을 고하면서 한국 자본주의가 스스로 재생산구조를 갖추게 되는 시기로, 그리고 문화적으로는 사회변혁에 대한 열정으로 지식인의 머릿속에서만 형성되어온 민중이 걷잡을 수 없는 소비사회의 적나라한 대중으로 휩쓸려들면서 욕망이 얽혀가는 시대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소설은 바로 그즈음에서 시작하여 거꾸로 현재의 삶을 규정하는 최초의 출발점을 향하여 거슬러올라간다  ......


그러면서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사람살이가 어쩌면 꿈과 같이 덧없는 가상의 현실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강남몽(夢)"이라고 제목을 정했다고 한다,
이 사건이, 아니 이 모든 근대사가
우리에겐 정말 몽환이고 꿈이었을까?
쓰는 사람의 어깨도 묵직했겠지만 읽는 사람의 어깨 역시나 묵직해지는 글이다.
그래, 삼풍백화점 사건은
탐욕과 욕망이 만들어낸 근대사로 비롯된
뼈아픈 상처이자 역사임에 분명하다.
무너진 건 단지 건물 뿐이 아니었다...
어쩌면 아직도 균열이 멈추지 않아 또 다시 무너지게 될지도...
붕괴 속에 우리는 이제 무엇을 묻게 될까?
그리고 누가 또 다시 살아 남아 돌아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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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황석영은 이 책을 사회의 중추인 넥타이 부대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필독서로 읽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인다.
우리의 근대사를 되집으며 현대사를, 미래사를 조금이라도 생각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근대사를 마친 황석영은 지금 다른 이야기를 또 구상중이란다.
그의 말에 의하면 예술성 짙은 경장편을 쓰려고 한단다.
<강남몽>과 함께 오래 구상해온 영등포 이야기인 <철도원삼대>라는 제목의 소설도 쓸 예정이고..
개인적인 욕심이긴 하지만
두 작품 모두 빨리 만나볼 수 있다면 좋겠다.
그의 소설은 내겐 또 하나의 개안(開眼)이기에...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8. 3. 06:35
 <스타일> - 백영옥


스타일
 

"Hyorish"와 “신상녀” , "Rainism"

한때 우리나라 스타일을 대표하는 단어라고 할 수 있죠.

<스타일>이라.... 참 스타일 안 따라주는 제가 말하기엔 뭣 한 부분이긴 하지만 그래도 책이라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잠시 쉬면서...

(사실 저의 스타일이라 함은 “럭셔리”는 꿈도 못 꾸는 “없셔리”에, 실용이라 박박 우기는 “싼티” 패션인 관계로.... 근데 요즘 물가가 너무 올라 이러기 정말 힘듭니다...)

 

혹시 “칙릿(chick-lit) 소설”이라는 말 들어 보셨나요?

“젊은 여성”을 뜻하는 “chick"이라는 단어와 "문학”을 뜻하는 “literature"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신조어인데요, 영미 문화권에서 시작된 젊은 여성을 겨냥한 일명 “꽃띠 문학”을 지칭하는 문학 장르입니다.

칙릿 소설의 시작은 <브리짓 존스의 일기>가 그 시작이라고 하네요.

그 후에 정말 물밀듯이 쏟아졌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섹스 앤 더 시티>, <워커홀릭>, <쇼파홀릭>...

유행에 뒤처지면 혈압 무지 올라가는 우리나라도 문학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우리나라도 <달콤한 나의 도시>, <오늘의 거짓말>, <달의 바다>, <아내가 결혼했다>, 오늘 소개하는 <스타일>까지 칙릿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책들이 상당히 많이 출판되어 있답니다.

공통점을 꼽자면 일단은 무지 재미있다는 사실입니다.

내용 자체는 좀 가벼운 감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시대 변화를 보여주는 문학적 흐름임에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네요.

“신데렐라 콤플렉스”와 “여자 온달 신드롬”의  현대판 해석이라는 생각도 개인적으론 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killing time" 소설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답니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죽이기에 적당한 내용이라는 뜻이죠.(절대 시간 낭비의 개념은 아닙니다.... 저 역시도 기본적으로 간을 낭비하는 만드는 책은 세상에 없다는 주의거든요.)


패션지 「A 매거진」 여기자인 서른 한 살 이서정.

그녀는 직장 생활 8년차로 예금도, 보험도, 그 흔한 펀드에 애인 하나 없는, 현재 고민사항은 44 싸이즈 스키니진을 입고 그 체험담을 써야 하는 실로 엄청난 과업 성취를 주문받은 안타까운 인생입니다.

뭔 놈의 여자들은 전부 44에 환장을 했는지 본의 아니게 44 싸이즈의 강한 압박에 그녀는 괴로운 다이어트를 고민하고 있죠. (패션 잡지에 대해 너무 실감나게 그려 대단하다 했더니 실제로 작가 백영옥은 그쪽 일을 한 전과(?)가 있네요.)

거기다 전설적인 요리 평론가 “닥터 레스토랑”의 정체를 파악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까지 부여 받은 상황입니다.(제 발에 제가 넘어진 꼴로다.....)

음식칼럼 하나로 유명 레스토랑들을 초토화시킨 이 비밀스런 요리평론가는 매번 바뀌는 메일 주소만 알려져 있을 뿐입니다. 서정은 '닥터 레스토랑'의 이름은 커녕, 나이도, 주소도, 성별조차 모르고 있는, 일명  벽 보고 대화를 시도해야 하는 팡당한 시츄에이션에 그야말로 내던져 있습니다.(아~~ 죽일 놈의 밥벌이여~~~!!)

거기다 현대 직장 여성의 최대 관심 중 하나인 남자도 역시 등장해 주십니다.

애매모호한 선을 오고가는 직장 선배 김민준, 그리고 오래전에 선을 보기로 한 자리에서 만나보지도 못하고 퇴짜를 맞힌 의사였던 박우진이라는 남자까지...(이 남자 은근 신비주의 풍깁니다.)


<스타일>은 한마디로 젊은 세대들의 감각과 욕망에 대한 가벼운 터치의 소설입니다.

패션, 영화, 음식, 명품, 다이어트, 사랑, 등 다양한 소재들을 숨가쁘게 그러나 자연스럽게 쏟아내고 있죠. 그 속에 유행처럼 수시로 바뀌는 요즘의 젊은 세대들의 욕망들 또한 빠르고 다양한 방법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스타일>에 등장하는 이런 다양한 욕망과 욕구들은 또 다른 욕망들과 만나면서 때론 심한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고, 뜻하지 않은 곳에서 화해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에 휘둘려야만 하는 현실과 내면의 목소리 사이의 갈등, 명품에 대한 소비 욕망과 빈곤층에 기부금을 내고 싶은 욕망 사이의 갈등, 44사이즈의 스키니 진을 입고 싶은 마음과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고 싶은 마음 사이의 갈등.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계속해서 이런 다양한 욕망들과 갈등하게 되죠.(뭐 이런 것도 갈등꺼리가 되는 거냐고  묻는다면 결단코 갈등꺼리가 된다고 그것도 충분히 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갈등의 가장 오래고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오해와 진실 사이의 갈등이 아닐까요?

근거 없는 소문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 또한 근거 없는 소문에 의해 상처를 받고, 오해가 쌓여 진실과 점점 멀어지게 되는 갈등.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개인적인 루머와 외적 욕망, 피상적 인간관계에 의지해서 살아가고 있죠. 모두가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말입니다.

주인공 이서정은 그러한 삶에 회의를 느끼고 힘들어 하면서도 결국엔 현실 도피를 택하지 않고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는 방법을 찾습니다.

그녀는 결심하죠. 자신의 삶과의 화해를...

자신이 주변 상황들과 인물들에 대해 화해를 시도하자 이서정의 현실도 더 이상 그녀를 고달프게 하지 않습니다.

드디어 사람들과의 진짜 관계가 시작된 셈이죠.

진짜 관계라...

비록 stylish한 유행처럼 한 순간에 사라질 수 있는 관계일지라도 그 속에 진실을 담게 된다면 어쩌면 유행 그 이상을 만들어 내게 되지 않을까요?

서정도 진실 된 삶이 사실은 진실이 사라졌다고 믿은 자신의 현실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겁니다. 진짜 인생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금 있어야 할 바로 그 곳에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말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게 일명 죽이는 요즘의 “style”이라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지....

뭐 “Hyorish"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책, 분명 ”stylish"한 소설임에는 맞는 것 같네요...^^


* 이 책을 읽으면서 “아, 이거 또 드라마로 만들어 지겠구나” 했는데...

  역시나 발 빠른 SBS에서 드라마로 제작해 지난 주말부터 방송을 시작했네요 

  김혜수, 이지아, 류시원 주연...
  이들이 어떤 stylish한 드라마를 만들어갈 지 자뭇 궁금하기도 합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7. 20. 06:21
 <추락> - J.M. 쿳시


 추락


지적이면서 끔찍하게 치열한 책을 만나게 되면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 듭니다.

그리고 나면 정말 미칠 정도로 그 내용 속에 빠져들게 되죠.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그런 경험을 다시 했습니다. 지금 소개하는 <추락>이 바로 그런 충격을 안긴 책입니다.

오싹하다 못해 머릿속까지 서늘해지는 느낌.

J.M. 쿳시라는 작가의 책을 처음 읽게 된 게 도무지 억울하고 속상해서 화가 다 날 정도라고 하면 이해가 되실까요?

이 소설의 원 제목은 <치욕>입니다.(개인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왜 “추락”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됐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번역가 왕은철이란 분이 작가와 합의해서 제목을 고쳤다고는 하는데 “치욕”이라는 원제가 더 책의 내용에 적합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J.M. 쿳시!

가장 타협하지 않는 작가이자 가장 분명하고, 가장 용감한 작가로 알려진 사람!

2003년 스웨덴 한림원은 그를 96회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지목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플리처상보다 더 권위 있다고 알려진 부커상을 그것도 한 작가에게 두 번 주지 않겠다는 전례를 깨고 세계 최초로 두 번이나 수상한 작가이기도 합니다.

부커상 심사위원들은 “쿳시가 수상식에 참석하지도 않을 것이고 그 이후의 만찬장에서도 그의 자리가 비어있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를 선택했다”고 밝히기까지 했네요.

그리고 누군가는 이런 표현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의 글은 아이스 피겔로 얻어맞은 느낌"이라고....

누군가는 또 말합니다.

"심오한 정치의식을 지니면서도 모든 단어들을 아름답게 조합하는 작가"라고요.

그의 글은 비록 이 책이 처음이긴 하지만,

실제로 여기에 나오는 모든 단어들은 에너지로 충만합니다. 그 에너지는 때론 “파렴치”한 욕망의 형태로, 때론 걱정 가득한 “부성애”의 마음으로, 때론 비난과 욕설, 그리고 원망과 싸움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 살아 있기에 인정해야 하는 혹은 살아 있기에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의 선택에 대한 이야기.

이 소설 안에는 그런 살아 숨쉬는 현실이 그대로 담겨있습니다.

글의 위대함이란,

그 안에 살아온 시대가 거짓 없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을 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균형과 흥미를 잃지 않으면서도 진실을 품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우리네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감히 시도하기조차 어려운 일일 겁니다.

J.M. 쿳시, 이 사람의 글은 그래서 그대로 현실이 되어버립니다.


50을 넘긴 “데이비드 루리”.

욕망에 따라 행동하는 대학교수 루리는 스무살 제자 멜라니와 충동적인 사랑에 빠져 잠자리를 함께 합니다. 결국 멜라니 부모의 고발로 진상위원회가 열리게 되고 루리는 추문의 한가운데 위치하게 되죠.

사과문 발표를 강요하는 그들의 요구를 거부한 루리는 결국 대학을 떠나 딸이 살고 있는 남아프리카 농장에 잠시 머무르게 됩니다.

루리는 말합니다.

“내 사건은 욕망의 권리에 관한 것이다. 어떤 동물도 본능을 따랐다는 것 때문에 벌을 받게 된다는 걸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야기의 초반은 이렇게 좀 불편하고 파렴치하기까지 합니다.

책 제목 그대로 욕망대로 살아가는 한 인간의 추락상을 보여주고 있죠.

이 루리라는 남자의 욕망은 비난받아 마땅하긴 하지만 그래도 당당함과 이유 있음에 무조건 손가락질 할 수 없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적어도 이 사람은 자신이 스스로 욕망에 따라 살고 있음을 확실히 인정하고 있으니까요. 잠시 가면을 쓰고 기다리라는 주위의 권고조차 거부할 정도로요.

딸의 농장에서 함께 지내던 루리에게,

어느 날, 3명의 흑인 남성이 딸을 집단 강간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그 일로 급기야 딸 루시는 임신까지 하게 됩니다.

자 이제부터 이 이야기는 “치욕”의 이야기로 전개됩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은 단지 추락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내게서 생명이 시작된 딸에게 일어난 사건은 “추락”을 넘어 “치욕”으로 다가옵니다.

이 사람, 이 치욕의 시간을 어떻게 견디고 버텨나갈까요?

백인 지배가 종결되고 흑인 정권이 들어선 지금의 남아프리카 공화국.

과거 우리나라가 그랬던 것처럼 이곳도 지금 혼란과 변혁의 시대를 통과하고 있는 중입니다.

수백년간 지속되어 온 흑백갈등이 단순히 정권의 교체만으로 하루아침에 모두 해결될 수는 없는 일이겠죠.

어쩌면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 그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그만큼의 희생과 포기가 필요한 건지도 모릅니다.

흑인지배 지역에서 살아가기 위해 백인의 선택,

만약 당신이 그 세계를 선택했고, 선택한 그 세계에 머무르기 위해서 값을 치러야 한다면 당신은 어떤 추락도 혹은 어떤 치욕도 감당할 자신이 과연 있을까요?

살아가는 게 욕망의 문제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선택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흑인들의 땅을 떠나라는 아버지에게 딸은 자신의 선택을 말합니다.

“그러나 어쩌면 다시 시작하기에는 좋은 지점일 거”라고...

딸 루시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걸, 아무 것도 없는 상태로 밑바닥에서 출발하는 걸 배우겠다고 말합니다.

재산도, 무기도, 권리도 위엄도 그 무엇도 없는 본질에서부터 출발하겠다고요.

아비는 딸에게 묻습니다.

“넌 그 아이를 사랑하니?”

딸은 말합니다.

“아니요. 제가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하지만 그것에 관한 한 모성을 믿어야지요. 아버지, 저는 좋은 엄마가 될 작정이에요. 좋은 엄마이자 좋은 사람이 되겠어요. 아버지도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보세요“

딸은 지금 아버지의 과거에 대해 책망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불안하고 혼란한 세계를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믿음. 그들이 시작할 때 반드시 지니길 바라는 그 믿음에 대한 묵시론적 바램의 표현이죠.

불안의 시대면 여지없이 나타나 점점 커져만 가는 틈.

그 틈을 매울 수 있는 건 자신에 대한 “믿음” 그 하나뿐이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습니다.

한 세대와 한 세대 사이에는 커다란 장막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 장막이 내려오는 걸 보지 못했다고 해서 이미 내려진 장막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겠죠.

누가, 왜, 어떻게 이런 장막을 내렸는가에 대한 진상규명 탁상공론은 이제 더 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그 장막의 끝을 잡아야만 하겠죠.

다시 끌어 올리든, 힘껏 끌어 내리든 말입니다.

지금 스스로 추락의 시대, 치욕의 시대를 산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다시 한 번 정직하게 그 질문의 방향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만약 견딜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당신의 치욕은 결코 당신을 추락으로 이끌진 않을 거라는 걸 믿습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6. 22. 13:33
<듀이 : 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

                    - 비키 바이런, 브렛 워티  

듀이


반려 동물!

이제 우리나라에도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는 관계입니다.

예전에 집동물이라고 하면 키워서 먹는다는 보양(?) 개념의 축생이었는데 지금은 동반자 관계를 넘어 부모자식으로까지 발전된(?) 관계도 아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론 동반의 반려관계는 마음의 독거인(獨居人)인 그네들의 외로움과 고독감을 둘만의 긴밀한 소통으로 치유할 수 있는 묘한 “미스터리”의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긴 해도 지하철이나 공공장소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개나 고양이를 풀어놓고 마음껏 뛰어놀게 하는 “개어머님”, “개아버님”을 보면 개념도 함께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는 것 같아 난감한 표정을 짓게 되죠.

주먹만한 강아지도 무지 무서워하는 저로서는 쉽게 손에 들기 어려운 책이었습니다.

책 표지에 버젓이 등장하고 있는 눈 큰 고양이의 시선이라니......

예전부터 고양이는 영매(靈媒)로 쓰였다는데......

그래도 일단 만나보기로 했습니다.

그래봤자 뭐 책 속의 고양이일 테니까요.


1988년 1월 18일, 가장 추웠던 겨울 날 !

아이오와주 스펜서 마을 공공 도서관 사서 비키는 도서 반납함에서 동상에 걸린 자그마한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합니다.

세상은 매서운 계절보다 더 세차게 몰아치는 경제 위기의 상황이었죠.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동상 걸린 네 발을 가진 버려진 오렌지색 새끼 고양이는 그렇게 해서 "듀이“라는 새 이름을 갖게 됩니다.

“Dewey Readmore Books"

도서관 고양이로는 아주 적절한 이름이 아닐까요?

우여곡절 끝에 도서관에 새로운 식구가 된 “듀이”는 오랜 경제 위기로 희망을 잃어가는 마을 사람들에게 새로운 활력과 사랑, 위안을 안겨 주며 마을 전체의 친구가 되어 갑니다.

그런 듀이에게도 그만의 관계맺기 방식은 있습니다.

“한 번에 단 한 사람의 마음만을 얻어간다“는.....

한 번에 단 한 사람에게만 최선을 다함으로써 그 사람의 마음의 문을 끝내 진심으로 열고야 마는 작은 고양이 듀이.

인맥 네트워크의 대가라고 소개해드리고 싶을 정돕니다.

그렇게 마음을 얻어낸 듀이는 급기야 도서관을 찾는 사람 각자에게 필요한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 줍니다.

동물을 싫어하는 아이의 마음도 이해하고, 말벗이 필요한 노인들의 무릎 위로 올라가 기꺼이 체온을 나누며, 장애우 아이에게 웃음을 되찾아 주기도 하죠.

그렇게 이 작은 고양이는 마을 사람들을 하나로 만들어 갑니다.

단지 마음을 나누는 방식, 그것 하나로 말이죠.

사람을 완전히, 못 말린 정도로 믿어주는 고양이 듀이는 사람 사이의 연결 고리가 되어줌으로써 사람들 한명 한명을 특별한 존재로 만드는 비상한 재주꾼이기도 합니다.

실패하는 법이 없고 그리고 결코 실망하거나 포기하는 법이 없죠.

사람의 가치는 이웃들에게 얼마나 존경받느냐에 달려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듀이는 이미 고양이로써 사람의 가치 그 이상을 넘어서는 존재가 된 셈이네요.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만들어낸 큰 기적!

단지 반려 동물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갖는 서양인의 시선이 아니더라도 누런 피부에 까만 눈을 가진 이국(異國)의 제 눈에도 이 고양이의 특별함은 인지되고도 남습니다.

상처 없이 사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상처를 숨기는 사람은 어디서든 그 티가 나는 법입니다.

그러니까 이 고양이 듀이는,

상처를 보고 아는 체를 해 주는 고양이였다는 생각이 드네요.

보고도 뻔히 모른 체하고 지나쳐버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과감한 반기를 들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누설(漏泄)”

우리는 우연한 비밀을 알게 되면 크든 작든 폭로하고픈 누설의 욕망에 부딪칩니다.

그러나 아는 체를 해 달라며 온 몸으로 힘듬을 누설하는 사람을 보면 굳이 철저한 비밀보장을 맹세하며 못 본 척 고개를 돌려줍니다.

사실 그가 원한 건 그런 외면이 아님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 내가 옳았다 스스로 합리화하는 건지도 모르죠.

“듀이”라는 작은 고양이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 건,

도서관에 버려진, 그래서 그곳에서 사람들과 별 탈 없이 그럭저럭 잘 살아내고 있는 고양이라서가 아닙니다.

듀이의 역할이 결코 스펜서 도서관의 마스코트에 불과한 게 아니라는 걸 이해했다면 그렇게 숱한 "미투(mee too) 듀이“가 탄생되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됩니다.

엄밀히 말하면 그런 “미투 듀이”의 재생 역시 “동물 학대”의 또 다른 형태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죠.

확실히 도서관이라는 곳은,

고양이가 살 만한 적당한 곳은 아닙니다.

그런 도서관에서의 삶을 선택한 “듀이”

어쩌면 작은 고양이에게도 그 사실은 하나의 큰 도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 자신이 있을 곳을 찾아라. 그리고 가진 것에 만족하고 행복해하라.

 인생은 물질에 관한 것이 아니다. 사랑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사랑이 어디에서 찾아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


2006년 위종양으로 안락사하기 전까지 19년간 듀이는 자신이 선택한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습니다.

고양이에게 “신화”라는 단어를 쓰는 게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Dewey Readmore Books"는 이제 스펜서의 신화를 넘어 전 세계의 신화로 남겨졌습니다.

누군가 읽어주길 바라는 상처를 보게 된다면,

듀이처럼 재빠르게, 듀이처럼 적절하게, 그리고 듀이처럼 진심으로 그 상처를 알아봐주고 그리고 기꺼이 소통하는 사람이 되어 달라 이 책은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상처!

참 고약한 놈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 기회가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아픈 틈이기도 합니다.

“그 틈새로 들어가세요~~!‘

황금빛 커다란 눈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자, 그럼 이제 우리도 용기 한번 내 볼까요!!!


*듀이 공식 홈페이지 : www.deweyreadmorebooks.com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