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0. 6. 10. 08:26


2007년 초연된 <쓰릴미>는 류정한, 최재웅이 "나"를
김무열. 이율이 "그"를 했었다.
그리고 나는 무슨 이유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초연의 <쓰릴미>를 놓쳤다.
그리고 재공연이 됐을 때도 또 다시 몇 번을 놓치고...
겨우 작년 봄에 김우형/정상윤, 김산호/정상윤 페어의 <쓰릴미>를 두 번 관람했다.
그때 받았던 충격이란...
정상윤이라는 배우의 새로운 발견은 놀라움 그 자체였었다.
극 자체가 보는 사람을 완벽하게 집중하게 만들긴 하지만
정말 끔찍하게 집중해서 봤던 공연이다.
그리고 그 여운이 얼마나 깊고 그리고 오래 가던지...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놀랐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그리고는 또 얼마나 후회했던지... 류정한의 "나"를 보지 못한 것을...


       2007년 류정한(나), 김무열(그)                         2009년 정상윤(나), 김우형(그)

2010년 다시 돌아온 <쓰릴미>는 무려 4쌍의 페어가 "그"와 "나"로 나온다.
내가 선택한 페어는 "최재웅-나, 김무열-그"
공연 시작 한참 전부터 예매 싸이트에서 완판이 된 페어다.
(무섭더라. 엄청난 속도로 좌석이 빠져나가는게...)
다행히 무대 위 양 싸이드에 위치한 배심원석 예매에 성공했다.
무대 정면을 볼 수 있는 좌석이었다면 더없이 좋았겠지만
그래도 배심원석이 어딘가 싶다.
시야장애는 있지만 현장감 하나는 최고였으니까.
그리고 어쨌든 예매에 성공했으니...
(실제로 시야장애는 좀 있더라. 그것도 배우 최재웅의 탁월한 두상에 의한 시야장애 ^^)



<쓰릴미>는 1924년 시카고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유괴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뛰어난 두뇌, 부유한 집안 등 무엇 하나 부족할 것 없는 소위 말하는 엄친아 두 명이
어린 소년을 유괴하고 급기야 살해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동성애와 방화, 유괴, 살인 등의 내용이 거부감을 줄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보고 있으면 극 속에 완전히 몰입하게 된다.
그 오묘한 긴장감과 부도덕이 주는 은밀함은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들을 충분히 들쑤시고 자극한다.
기꺼이 공범자가 되어 협조도 은폐도 동조도 다 하고 싶다.
"그"와 "나"
동성애의 두 사람 사이에 어떻게든 붙어있고 싶은 심정이 절절해진다.



단 두 명의 배우와 한 대의 피아노로 이루어진 공연.
그 피아노의 변화를 따라가는 것 또한 놓쳐서는 절대 안 되는 부분이다.
내 귀엔 피아노가 마치 배우처럼 대사를 하는 것 같다.
감정의 변화와 분위기를 타이밍 정확하게 치고 들어오던 피아노.
예전 공연에서는 배우들의 동선보다 다소 아래 위치했던 피아노가
이번 공연에서는 공중으로 올라갔다.
덕분에 배우들의 동선은 더 자유로워졌고 피아노는 은밀해졌다.
(그리고 연주자, 정말 잘 연주하더라.)
몇 번씩 뒤집히는 반전과 치밀한 심리묘사.
몸싸움(?)같이 치열하고 처절하던 그와 나의 행동과 다툼같은 이유들이 
피아노 연주와 함께 숨통을 조였다 놨다를 수없이 반복한다.
"치명적인 유혹"
그건 다름 아닌 나를 향한 정확한 멘트였다.



무대석인 배심원석에서의 관람은 극의 타이트한 긴장감을 고스란히 느끼게 해준다.
극중 "나"의 위치였던 오른쪽 배심원석은
가끔 최재웅의 표정을 보지 못하게 하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그"의 김무열의 표정을 샅샅히 살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김무열은 데뷔작인 <지하철 1호선> 때부터 느꼈던 건데,
표정이 참 풍부하고 조명에 따라 다양한 분위기가 연출되는 배우다.
그리고 내가 생각할 땐 본인 스스로도 그걸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아주 적절하게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시켜 사용하고 있다는 느낌!
(무대 위에서 이런 영민한 배우를 보면 무지 즐겁다)
<지하철 1호선>에서 제비 역을 했던 그를 보면서 "젊은 놈이 잘하네!" 했었는데
그도 이젠 제법 선 굵은 배우가 되어 무대 위를 부지런히 꽉 채우고 있다.
그 또래 배우들 중에서 딕션도 가장 정확하고 선명하다.
TV 에서도 꽤 비중있는 역할로 많이 나와서 일반인들에게도 상당한 인지도까지 확보한 상태.
최재웅과의 12회 공연 완판의 혁혁한 공을 세운 것도 그의 역할이 상당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최재웅도 우스개소리처럼 말했었다.
"우리 팀의 강점은 김무열이 있다는 것이다"



김무열의 축복받은 체격조건 역시나 그를 돋보이게 하는 큰 장점 중 하나다.
마치 양복 카탈록 모델을 보는 느낌 (^^)
저런 색깔의 수트가 어울리는 사람 별로 없을텐데 그에게는 상당히 썩 잘 어울린다.
솔직이 이번 공연에서 "그"가 입는 수트가 개인적으론 마음에 안 든다.
예젠엔 짙은색 수트였는데 이번 의상은 어쩐지 가벼워보이고 심지어 유머러스해보이기도 한다.
조끼에 커프스까지 갖춘 완벽한 수트에 이런 느낌의 노익장이라니...
그런데 김무열 "그"는 그 옷마저도 거든히 소화하더라.
오히려 히스테리하게 느껴지기까지 했으니 신체조건의 탁월함을 무시할 수는 없겠구나 싶다.
특히나 무대 위에 서는 배우라는 입장에서는 축복받은 신체조건(^^)이라 하겠다.
김무열이 반대편 배심원석에서 조명을 받고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 종종 감탄을 하게 된다.
야누스적인 느낌이랄까?
대사와 노래를 부를 때 확연히 달라지는 목소리 톤도
이런 야누스적인 느낌을 갖게 만든다. 
해맑은 아이에게서 느껴지는 섬득함이라면 이해가 될까?



"나" 최재웅!
박정환과 함께 내가 열심히 찾아 보고 있는 무대 위 배우.
일단 나는 그의 독특한 대사톤이 참 좋다.
약간은 무성영화 시대의 변사를 떠올리게도 하고
상대방과 대화를 하는데도 늘 독백을 하는 것 같이 느껴지는 시니컬한 톤.
흔들리면서도 확신에 찬 눈빛은 특히나 <쓰릴미>의 "나" 역에 딱 적격이다.
과거와 현재를 왔다갔다 하면서 극을 이끌어가는 "나"
명확히 두드러지진 않지만 확실히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목소리 톤을 따라가면
그가 "나"의 심리상태를 디테일하게 표현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거기에 피아노 연주가 함께 덮일 때 느껴지는 묘한 긴장감이라니...
엄청난 몰입으로 스스로 "나"가 되는 그의 모습은 처연해서 안스럽기까지 하다.
그 감정을 무대 위에서 완벽히 드러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만약 극중 "나"가 완벽히 자신의 감정을 드러냈다면 <쓰릴미>는 긴장감은 완전히 허물어져 버릴 것이다)
최재웅은 확실히 <쓰릴미>에서 완벽한 공범자,
그 모습, 그 자체였다.
숨통을 조이는 긴장감이 아니었을까?
"나"를 연기한다는 것은....



... 안아줘, 만져줘. 사랑해줘!
널 갖고 싶어!
한 번이라도 날 제대로 느낀 적 있어?
날 만족시켜줘!
뭐든 할께, 자기야!
너 없인 나도 없어!
상관없어. 너와 함께 있을 수 있다면...

이런 민망한 대사들은 최재웅은 참 절절하고 강하게 잘 친다.
사람들은 <쓰릴미>에서 "나"는 여성적이고 "그"는 남성적이라고 말하는데
나는 두 사람의 페어를 보면서 정확히 그 반대를 생각했다.
최재웅의 "나"는 남성적인 심리가 강하고
김무열의 "그"는 은근히 여성적이라고...



예전 공연에서는 포인트를 주듯 웃음이 주는 곳이 몇 군데 있었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의도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부분들이 빠져있다.
(최재웅, 김무열 페어에서만 그런가??? 다른 팀들은 못 봐서...)
그리고 나는 그게 아주 좋다.
뭐랄까 웃음조차 끼어들 여지를 주지 않는 그 빡빡한 긴장감이...
단지 그 극의 웃음 요소라면 자주빛 수틀의자!
극의 분위기와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클래식하고 상당히 귀부인스러운 자태의 의자는
바라보고 있기가 민망했다.
피아노가 위로 올라간 걸 빼면 개인적으로 예전의 무대 배경이 더 마음에 든다.
너무 인위적인 나무도 그렇고...
처음 "나"의 등장 장면에서는 관객 출입구를 그대로 이용해서 훨씬 좋았다.
배심원석도 나쁘지 않은 것 같고...
배심원석 덕분에 전체적으로 무대가 타이트해진 느낌이랄까?
그래서 극의 느낌과 잘 맞아 떨어진다.
(그리고 배심원석의 관람객들 상당히 신중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관람한다. 정말 배심원같이...)



최재웅은 노래 부를 때 목소리가 참 맑고 깨끗하다.
언듯 들으면 보이 소프라노 느낌이 들 정도로...
무심한듯 하지만 수시로 변화는 표정과 대사톤을 따라가는 것도 "나"의 심리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그래서 그의 무대는 나는 가능하면 소극장에서 보는 게 더 경이롭다.
김무열. 최재웅....
이 두 페어의 만남은 참 묘하다.
여러 곳에서 "이중성"의 경험을 보고, 듣고, 느끼게 되니까.
다시 보고 싶다.
그러나 그건 불가능하다.
미치겠다.
나 역시나 "너무 멀리 왔다. 그를 따라 여기까지..."

 

   * 2009년 너무 놀라운 경험을 줬던 "정상윤- 나, 김우형- 그"의 <쓰릴미> 



                              의미심장하게 웃던 정상윤의 ending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10. 1. 18. 06:09
<너는 모른다> - 정이현

너는 모른다

“가족”이면서 “가족”이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

이 이야기를 저는 이렇게 소개하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최근에 읽은 책 중 가장 끔찍한 공포소설이기도 했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혼자 생각해봤습니다.

“가족”이라는 것이 실존적인 의미인지, 가치의 의미인지, 혹은 구성원 개개인이 가지는 익명성의 비밀을 완벽하게 보장해주는 철저한 이기주의자들의 집합체인지를...

<달콤한 나의 도시>, <오늘의 거짓말>로 대한민국 칙릿소설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정이현이 2년 만에 내놓은 신작입니다.

그녀의 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는 드라마에 이어 뮤지컬로도 만들어져 지금 초연 중에 있을 만큼 성공가도를 열심히 달리고 있죠.

솔직히 놀랐습니다.

그녀가 이렇게 치밀하면서도 냉소적인 소설을 썼다는 게...

2008년 8월부터 2009년 6월까지 근 1년간 인터넷교보문고에 연재했던 장편소설 <너는 모른다>. 그 모르는 타인들의 삶 속에서 어쩌면 유일하게 모든 걸 알게 되는 사람이 다름 아닌 책을 읽는 바로 “당신”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야기는 그렇게 읽는 이의 개입을 전적으로 그리고 지배적으로 선동합니다.

이제 선택만이 남은 셈이네요.

공모자가 되든, 은폐자가 되든, 혹은 폭로자가 되든 말입니다.

  

2008년 2월, 서초구 방배동 서래마을의 고급빌라.

중국을 상대로 무역업을 하는 김상호와 화교 출신 부인 진옥영, 초등학교 4학년인 바이올린 영재 딸 김유지. 그리고 김상호와 전처 사이에서 태어난 큰 딸 은성과 둘째 아들 혜성.

타인보다 더 무의미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주어진 “가족”이란 테두리.

전날 진옥영은 대전 친정에 다녀오겠다며 의붓아들 혜성에게 유지의 바이올린 레슨과 강습비를 부탁하죠. 아버지 김상호는 사업상 만날 사람이 있다며 혜성에게 집과 유지를 맡기고 일요일 낮부터 집을 비웁니다.

집에 있던 혜성은 또 다시 듣게 된 누나 은성의 자해 소식에 그녀의 오피스텔을 찾아가 함께 병원 응급실로 향하죠.

이렇게 가족들 모두가 집을 비운 일요일 오후,

딸 유지는 바이올린 과외 선생에게 전화를 걸어 레슨을 취소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혼자서 집을 나섭니다.

그리고는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지 않죠.

유지의 실종을 처음으로 알게 된 사람은 뒤늦게 돌아온 아버지 김상호였습니다.

뒤이어 집으로 돌아온 아들 혜성.

순간, 그들의 얼굴에 당혹감과 깊은 절망감이 엄습하죠.

유지는 도대체 어디로 실종된 걸까요?

유지의 실종은 스스로 선택한 가출이었을까요? 아니면 누군가의 목적을 위한 유괴였을까요?

유지가 실종되던 시간에 가족들 모두는 또 어디에 있었던걸까요?

잠시 이야기의 시선이 나에게 멈춰지는 것만 같습니다.

마치 이들을 지금까지 지켜본 사람이 바로 당신 아니냐며 노골적으로 묻는 것 같은 시선.

순간 내가 유지를 데리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 어쩔 수 없이 주위를 확인하게 됩니다.


막내딸이 실종됐던 바로 그 순간 그들은 뭘 하고 있었을까요?

이제 가족들의 숨겨진 알리바이가 하나씩 들춰집니다.

화교 출신 엄마는 그 시간 대전 친정이 아닌 대만에서 그녀의 오랜 연인을 왕명을 만나고 있었습니다. 이상한 예감에 서둘러 서울로 돌아온 진옥영은 딸의 실종을 알게 된 후 친정 식구들에게 부탁을 합니다. 그녀가 대전에서 그들과 있었노라고 말해달라고...

응급실에서 누나의 치료가 끝난 후 혜성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여자 친구 다은을 만납니다. 사건이 터지고 며칠 후 혜성 역시 친구 다은에게 부탁을 하죠. 그날 늦게까지 둘이 함께 있었던 것으로 해달라고...

의대에 합격했지만 등록만 하고 학교를 나가지 않던 혜성은 실제로 그 시간에 길거리를 배회하다 주차된 차에 불을 지르고 있었습니다.

그의 습관성 방화는 늘 같은 말로 끝을 맺습니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뒤늦게 여동생의 실종 소식을 들은 큰 딸 은성은 오래전 X-boy friend와 계획했던 엄청난 장난(?)을 떠올립니다.

부자 아버지에게 돈을 뺐기 위해 여동생을 납치한다는 계획...

그리고 얼마 전 급히 돈이 필요하다며 전화를 해온  X-boy friend의 통화를 떠올리며 그가 여동생 유지를 납치했다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수사를 위해 김상호와 함께 온 형사 문영광.

가족들 모두는 그가 경찰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는 사립형사였죠. 김상호는 그 사실을 가족들에게 철저히 숨긴 체 사건을 경찰에 신고했다고 말하며 문형사를 가족들에게 소개합니다.

자신의 아이가 사라졌는데 경찰이 아닌 고작 사립 형사라니...

이 집안 어쩐지 서로 뭔가 숨기고 있는 게 분명히 있긴 한 것 같네요.

김상호의 직업은,

그러니까 불법 장기 밀매 브로커였습니다. 한국에서 의뢰가 있을 때마다 “신선하고 건강하게 살아있는(?)” 장기를 중국에서 공수해 넘기는 일을 하고 있었죠. 가족들은 김상호가 어떤 무역업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그리고 구체적으로 알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어쨌든 그는 집 안에 상당한 돈을 가져다 주는 착실한 가장이었으니까요.

그 착실한 가장이 지금 금쪽같은 딸의 실종을 경찰에 알리지 못하고 혼자 해결하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가족 모두는 생각합니다.

유지의 실종은 자신 때문이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그 사실을 발설하지 않습니다.

갑갑하고 막막하고 미련한 시간들이 그들 곁을 부지런히 지나가고만 있죠.


작가 정이현은 말합니다.

" ...... <너는 모른다>에서 빠진 목적어는 바로 ”나“다. 한 가족이라도 서로 굳게 마음을 닫고 있지만 어느 날 폭탄이 떨어진다면 마음이 밖을 향하게 되는 미묘하고 작은 전환이 일어나게 된다...... ”

그녀는 가족이라는 상징적인 단위 속에 느슨하게 묶여있는 개인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 ...... 흔히 가족이라고 하면 끝까지 서로를 보듬어주는 따뜻한 존재라는 환상을 갖고 있는데 사실 대부분의 가족이 그렇지 않잖아요. 다 드러내는 것 같으면서도 감추고, 동시에 무언가 숨기는 것 같지만 진심을 내보이기도 하는 개인들을 가족이라는 이름 안에서 관찰하려고 했습니다...... "

작가 정이현의 이 말 때문에 저는 이 소설을 공포소설로 분류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 소설은 결말까지 꼭 읽어내야 하는 소설을 아닙니다. 오히려 마지막까지 읽고 나면 약간 실망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읽는 동안 “가족”이라는 이름의 “타인”때문에 극도로 선명해지는 두려움을 대면하는 일은 분명 버거운 일이 될 것입니다.

다중의 화자들에 의해 꾸역꾸역 고백되는 이야기들은 때로는 충격적이기도 때로는 비상식적이기도 때로는 넌더리가 나기까지도 합니다.

처음엔 제도권 안에 포함되지 못하는 소수자를 대변하는 소설인가 생각했다가, 다음엔 우리사회에 암암리에 퍼져있는 불법의 사업과 불륜에 대한 고발인가 생각했다가, 또 다시 현대인의 부서지고 파괴된 주체성에 대한 애도인가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작가는 사건 아래에 가라앉아 있는 또 다른 문제, 도시인들의 부스러진 일상을 그리려 했다는데 이 말 또한 도통 이해가 안 되는 건 마찬가지네요.

단지 책 속의 한 마디 말이 기억에 선명합니다.

자신의 딸일지도 모르는 유지의 실종소식을 듣고 한국으로 들어온 진옥영의 오랜 연인 밍은 유지를 구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스스로 위험을 자처합니다.

마지막 결정을 내린 그의 입에서 나온 말,

"어차피 나는,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니까..."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건 정말 무엇일까요?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긴 마음 끝이 이제는 많이 어지럽습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1. 12. 06:29

한겨울에 만나는 섬뜩함은 공포보다 더 절실하고 집요했다.
<오늘의 거짓말>의 작가 정이현.
그녀가 이런 글을 썼던 사람인가?
시작부터 고개를 가우뚱하면서 이야기 속으로
전적으로 빠져들게 된다.
재미있다. 그리고 끔찍하다...



아버지, 화교인 새어머니, 친누나, 그, 그리고 이복동생.
다섯의 가족이 갖는 익명성과 은밀함들.
그들을 가족이라고 말 할 수 있기는 한건가????
모든 가족이 집을 비운 시간.
초등학생 여자 아이는 탁자의 레슨비를 집어들고  홀로 집을 나와 그대로 사라진다.
아이의 실종에 모두 관여된 듯한 가족들.
그들 스스로 자신때문에
아니 자신의 비밀들로 인해 아이가 유괴됐다고 생각한다.
아이는 정말 어디로 사라져버렸을까?
퍼즐 조각처럼 산산히 부서지고 흩어져
오히려 더 비밀을 감추려고 치열해지는 가족들...
그들은 정말 가족이었을까?



중국과의 무역업으로 상당한 돈을 집으로 가져다 주는 아비,
그러나 가족은 그 아비의 무역업 품목을 알지 못한다.
아비는 직업은 장기밀매...(그것도 싱싱한...)
가족들은 어쩌면 서로 모른 척 하기로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비는 딸의 실종을 유괴로 단정하면서도 경찰에 신고하지 못한다.
사립형사를 고용해 가족에게 그가 경찰이라고 말하며
모든 것을 자신에게 맡기라고 말하는 아비.
그리고 대만에 오랜 연인을 두고 있는 새어머니.
몰래 주차된 자동차에 불을 지르고 달아나는 아들,
그리고 남자때문에 매번 자해를 하는 큰 딸.
가족은 모두 위태롭고 그리고 불법의 비밀들로 가득하다.
스스로 과외선생에게 전화를 걸어 레슨을 취소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을 떠난 아이는
정말 어디로 가버렸을까???

이 이야기의 모태는 아무래도 안양 여자 초등학교 실종사건이었을테다.
하루 평균 164명의 사람들이 사라진다는 대한민국.
어쩌면 정말 가족의 비밀로 인해 스스로 실종을 택하는 사람이
정말 있을지 모르겠다 생각한다.
이 책이 무서운 건 그런 현실감을
내 앞으로 너무 바짝 끌어당기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이는 어떻게 됐을까?
(미치 아이의 실종에 내가 깊이 관여된 것 같아 불편하기까지 하다)
읽고 난 마음 끝이 막막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8. 12. 1. 05:56

<황금 물고기> -르 클레지오


황금 물고기

 

르 클레지오...

우리나라 시인 고은과 함께 2008년 올 해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작가 중 한 명입니다.

그리고 그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구요...

생존한 작가 중 가장 아름다운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작가로 꼽힌다고 하는데, 단지 이 책 한권으로 그 평가를 절감했습니다.(번역된 문체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원문은 얼마나 아름다울지 좀 아찔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던 그는 최근(2008년 9월)까지도 이화여대 번역대학원 교환교수로 한국에 들어와 1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2001년에는 화순 운주사를 방문한 후엔 “운주사, 가을비”란 시도 발표했을 만큼 한국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고 하네요.

일단, 르 클레지오.... 천재 맞습니다.

23세의 나이에 쓴 첫 소설 <조서>로 프랑스 4대 문학상 중 하나인 르노도상을 수상하며 그야말로 화려하게 등단해서 <황금물고기>, <섬>,  <사막>,  <혁명>, <우연> 등 숱한 화제작들을  발표했습니다.

“끊임없이 다른 문명에 대해 호기심과 애정이 있는 작가”라는 언급도 있네요.

노벨상 수상이 확정된 후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상을 받는다는 건 시간을 얻는다는 걸 의미한다...“고.

잠시 이 말의 의미를 생각해 봤습니다.

이미 68세의 지긋한 작가가 시간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건...

작가로서 글을 쓰는 작업에 대한 책임감과 글이라는 것이 주는 문학적, 사회적 의무감에 대한 질책이 아닐 런지...


<황금 물고기>

그리 긴 분량은 아니지만 대서사에 해당하는 인간사가 들어 있습니다.

그것도 하얀 얼굴에 파란 눈을 가진 프랑스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까만 아프리카 흑인 계집아이의 인생사죠.


"오, 작은 물고기여, 작은 황금 물고기여, 조심하라!

세상에는 너를 노리는 올가미와 그물이 수없이 많으니."


물고기처럼 순진무구한 천진성과 강한 생명력을 지닌 흑인 소녀 라일라는 어느날 본향에서 인신 매매범들에게 의해 납치됩니다.

7살 유괴 돼 아랍으로 팔린 아이의 인생은 다 자란 어른의 인생이 될 때까지도 그야말로 끝없는 떠돔과 예기치 않은 불시착(?)의 연속이죠.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귀로, 혹은 귀향의 모티브는 하다못해 그 사람의 뒷모습마저도 아름답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목적지를 향한 발걸음은 적어도 길을 잃고 흔들리진  않을 테니까요.

책을 읽는 내내 어린 흑진주 라일라가 흔적을 지우는 건 아닌지 걱정됐습니다.

끝없는 도망과 탈출의 중간에 라일라는 지하철 거리의 가수 시몬느에 집에 가게 됩니다.

“너도 나와 같은 신세구나, 라일라,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몰라. 우리 몸이 우리 것이 아닌 거야”

그때 문득 그녀는 알게 됩니다.

왜 그녀들이 서로 닮았는지를...

그들이 자신의 육체를 가지지 못한 건, 항상 타인들에 의해 그들의 운명이 결정됐기 때문에라는 것을.


끝없이 떠돌던 그녀를 구원한 건 그녀의 고백처럼 “음악”이었습니다.

그녀는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면서 그녀와 함께 했던 모든 사람들의 이름으로 자신이 노래하고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그녀, 라일라가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는 시점이죠.

“이제 나는 자유로우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녀는 말합니다.

그리고 오래 전 그녀가 처음 유괴됐던 그 본향에 도착합니다.

이제 다시 그녀가 떠돌아다닐 일은 없겠죠?

그런데... 어쩐지 저는...

그녀가 이제 본격적으로 떠돌게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그 떠돔의 내면엔 이젠 평안함이 함께 할 것 같아 가슴을 쓸어 내리게 됩니다.


이 책을 읽어 가면서,

“다름”에 대한 이해가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색의 다름, 성별의 다름, 지역의 다름, 그리고 개인의 다름까지...

“다름”의 본질은 인정이나 이해의 측면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누군가의 삶을 다르다는 이유에 빗대 우리가 어떻게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요???

온전히가 아니라 그 일부라도 이해할 수 있다고 정말 말할 수 있을까요?

백인 성인 남성 작가가 쓴 흑인 여자 아이의 이야기...

백인과 흑인 두 사람의 손을 양 쪽으로 꼭 잡고 황인족인 나 또한 그 길 위를 함께 걷는 느낌입니다....

어쩐지,

평화롭네요. ^^

Posted by Book끄-Book끄